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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여신전생 시리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였으며, 수많은 파생작들을 통해서 노하우들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였다. 87년 처음 나온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을 시작으로 한 여신전생 시리즈는 이후 진여신전생 시리즈(슈퍼 패미콤에서 PS, 닌텐도 3DS까지)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아틀라스를 도산의 위기에서 살린 외전인 페르소나 시리즈(특히 3과 4)와 데빌 서머너 시리즈, 소울 해커즈, 파엠과의 콜라보인 환영이문록, 쿠즈노하 라이도우 시리즈 등등 여신전생 시리즈의 방계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은 지난 25년간 수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이 쌓은 노하우들은 서로 공유되고 전승되면서, 마치 시리즈 속 악마들이 강해지는 것처럼 시리즈의 완성도를 점차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한 시리즈의 노하우와 완성도가 정점에 달해 판매고라는 목표와 함께 맞물린 케이스가 바로 페르소나 3일 것이다. 페르소나 자체는 여신이문록으로 분류되며, 직접적으로 여신전생 시리즈와 맞닿아있진 않지만 악마 합체나 프레스 턴 시스템과 같은 여신전생 시리즈만의 시그니처 시스템들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여신전생 세계관의 일부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 학창생활과 커뮤니티를 통한 관계의 발전과 전투에의 영향, 이를 뒷받침하는 자잘한 시스템들이 맞물리면서 '이상적인 학창생활'을 구현함으로 여신전생 특유의 칙칙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탈피해서 대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되면서, 다른 작품들을 '방계'로 밀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는데, 정통의 계보라 할 수 있었던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3편 녹턴 매니악스 이후로 위자드리 스타일로 싸게 만드는 등(진여신전생 4편과 4 파이널, 스트레인지 저니 같은) 다소 찬 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서구권까지 포함해서 50만장 이상 ~ 100만장 미만으로 팔릴 때, 페르소나 4는 플2 황혼기에 나와서 거의 단독으로 200만장을 찍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진여신전생으로 여신전생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 일변도로 진행되는 여신전생 프랜차이즈의 상황은 딱히 좋지 않게 보였다.

진여신전생 5는 4 이후 근 10년 만에 나온 완전 신작이다. 특히나 진여신전생 4가 3에서 3D 폴리곤 형태로 악마를 묘사했던 것과 달리 위자드리와 같이 초상화 띄워놓고 효과만 그 위에 겹쳐놓는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3편과 유사한 느낌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환호했다. 물론 스위치 발매가 된 2017년 이후 첫 트레일러 공개가 되고 나서 아무런 소식없이 4년을 기다리긴 했지만, 2021년 11월 드디어 게임이 발매되면서 진여신전생 신작에 대한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전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가 집약되었고, 이전  시리즈의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모감도 존재하는 것이 진여신전생 5다. 하지만, 동시에 4년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진여신전생 5나 여신전생 시리즈는 고전적인 JRPG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공간은 던전과 마을로 이원화되어 있고, 던전 내에서 플레이어는  탐색을 하면서 던전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역경인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점차 강해지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던전에서 자원을 소비하는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을에 복귀하여 이를 보완하여야 한다. 고전적인 RPG에서는 육성이 보통 레벨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더 많은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 라는 식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여신전생의 시리즈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조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시스템인 '악마회화'와 '악마합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악마회화와 악마합체는 쉽게 이야기해서 플레이어의 동료가 '소모품이자 스킬을 계승하는 용도'의 악마가 되는 부분이다. 전투 시 레벨업을 통해서 더 강해지기 보다는 던전과 상황에 맞춰서 각각의 역할과 목적에 맞게 악마를 합체시키고, 악마를 합체시키기 위해서 전투중에 조우하는 적 악마들과 대화하고 교섭해서 이들을 동료로 끌어들여 합체 소재로 쓰든가, 아니면 레벨업을 시키고 스킬을 얻든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존의 RPG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는다.

진여신전생 5는 위와 같은 내용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몇몇 변화점을 추가한 작품이다. 5편의 큰 변화점들은 오픈맵, 심볼 인카운트, 던전 구성, 마가츠히 시스템들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묶여서 진여신전생 5편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완급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재밌는 게임이 된다. 다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진여신전생 5는 기본적으로 오픈 맵의 구성을 취한다. 기본적으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믹이 있는 던전과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이원화된 케이스였다. 그러나 진여신전생 5는 이를 바꿔서 오픈맵 형태로 변화시킨 것은 시리즈 최초다. 진여신전생 5의 필드를 오픈월드가 아닌 맵으로 표현한 것은 최근 자주 보여지는 오픈월드의 개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일단 게임의 규모 측면에서 트리플 A 게임이라고 분류할 수 없고, 오픈월드에서 보여지는 세계와의 상호작용 같은 요소나 자유로운 탐색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5편은 심볼 인카운터를 도입해서 '내가 원하는 때 싸울 수 있다/전투를 피할 수 있다' 라는 관점에서 편의성과 쾌적함을 추구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가 복층구성의 거대한 던전에 가깝다는 점이다. 반대편에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비교해보자. 야생의 숨결에서 하이룰은 거대한 세계이며,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원칙들을 게임의 규칙으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을 때도, 자원의 관리(스테미너)나 속력이나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야생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의 세계는 과거 던전의 형태에 가깝다. 점프하여 층을 옮길 수 있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긴 해도, 달리면서 점프를 할 필요가 없고,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점프를 하면 층을 바꿀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에서 맵은 작은 복수의 빌딩 던전이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고, 거기까지 도달하는데는 '단 하나의 정답 루트'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여신전생 5는 예산이 적게 들긴 했지만 기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와 폐허에 대한 기믹을 활용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오픈맵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던전맵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갈 것인가? 라고 고민하면서 맵을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최근 오픈월드 게임의 전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보면 다소 오해가 있을만한 디자인들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맵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게임을 플레이해야 게임 진행이 수월해진다.

전투, 레벨업, 육성 부분에서 진여신전생 5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점이 발생한 부분이다. 변경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여신전생 시리즈를 들여다 봐야 한다. 3편에서 프레스턴 시스템을 도입하여 "약점을 찔리면 죽는다"(약점을 찌르면 늘어나는 데미지+상대 턴이 늘어난다)라는 개념이 있어서 적이나 플레이어나 '한 대만'이라는 독특한 긴장감이 있는 작품이었다. 3편에서 4편으로 넘어오면서 내성, 무효, 반사 스킬들을 악마에게 계승하는 것이 쉬워져서 방어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쉬워진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중반 이후 급락하는 난이도를 후반에서 만능 속성으로 난이도를 재조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난이도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편의 프레스턴이나 전투에서의 숫자감각 등은 이후 많은 시리즈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스케일링 되는 수치나 악마 관리 육성 등의 감각 등은 페르소나 시리즈로 넘어와서도 공유되는 부분이다.

5편은 진여신전생 시리즈상 가장 잘 조율된 게임이다. 다양한 요소들에 세밀한 조정이 가해졌는데, 이러한 조정들이 어우러져서 기존의 여신전생 전투의 페러다임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5편에서 프레스 턴 시스템은 턴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작들과 동일하지만, 턴을 연장하기 위해서 3~4편과 달리 약점 이외에도 '크리티컬'이 중요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작품에서도 크리티컬이 프레스턴을 유발하긴 했지만 낮은 확률로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기에 어려웠다면, 5편에서 크리티컬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터지는 기술이나 속성과 물리 공격이 섞인 기술들, 더 나아가 관통물리나 필중 크리가 등장하는 등 물리 기술 폭이 증가하고 크리티컬을 운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곳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겼다. 

5편에서 크리티컬 요소를 강화하는 추가 요소로 "마가츠히"가 있다:마가츠히가 모이면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거나,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 마가츠히를 모아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 되는 요소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양쪽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말인 즉슨, 상대가 마가츠히를 발동하면 무조건 프레스턴이 발동된다는 것인데, 상성의 유불리를 떠나서 가드를 따로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프레스턴이 발동하기 때문에 5~10레벨 이상 플레이어가 들고 있어도 방심하다가 전멸당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가드를 더 적극적으로 섞고, 마가츠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프레스턴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공격 패턴(관통 능력 있는지 여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전투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아이템이나 스킬에서 일시적으로 방어를 강화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상당히 어울린다는 점이다. 물리 공격을 방어하는 물장석, 마법공격을 반사하는 마반경 등등의 아이템들이 있고, 추가적으로 스킬로 그러한 요소들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폭을 늘려주는데, 4편의 초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메두사와 5편의 초반 수문장인 히드라를 비교해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4편의 경우, 내성이나 무효 속성이 거의 없고 약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메두사가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다면, 5편의 경우 아이템인 물장석/화장석 같은 무효화 아이템만 재때 써주고 약점 찌르면서 프레스 턴만 벌어주면 어떻게든 클리어하는게 약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방어 상성 관점에서 유연성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방어 전략에서 유연성을 주고,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준비하게끔 만든다.

육성 관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악마 합체와 스킬전승, 내성 맞추기 등이 4편 기반이긴 하지만, 여기에 허물 시스템과 향이라는 아이템을 새로 추가하였는데 이것이 편해지는 요소와 불편해지는 요소로 동시에 적용되었다. 허물은 악마가 레벨업 할 때 일정 확률로 드롭하는 아이템인데, 주인공에게 스킬을 옮겨주는 용도뿐만 아니라 내성도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성 관리를 이전작들보다 더 수월해지게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허물 수급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내성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악마 육성에 능력치 없과 레벨업을 쉽게 할 수 있게끔 하는 향과 경전을 추가하고, 탐색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끔 하여서 악마 육성을 쉽게 해주는 부분이 생겼다.

전반적으로 진여신전생 5는 훌륭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로 완벽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다. 첫번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적인 RPG 구조는 던전과 마을의 이원화된 구조, 그리고 던전 내에서는 사냥과 탐색, 육성이 전투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사이클을 돌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진여신전생은 던전 내에서는 완벽한 사이클을 보여준다. 문제는 내리터브 사이클을 관장하는 마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진여신전생 5에서 플레이어는 폐허가 된 도쿄를 던전으로,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도쿄가 다른 한 축으로 구성되는데 게임의 모든 회복, 상점, 육성 등의 모든 요소들이 던전 내의 세이브 포인트인 용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을로 돌아갈 일이 없어지고, 내러티브를 진행할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약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덕분에 게임의 거대한 규모에 비해서 서사가 매우 짧게 느껴지는데, 5~6개의 챕터 구성으로 되어있고 도쿄를 거대한 폐허로 5분할 하는 야심찬 모습도 보여주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굵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게 고작 5개 정도라 맵 크기만큼 서사를 못채우는 문제가 있다.

물론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라인을 집중하여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진여신전생5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NPC가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진여신전생 시리즈들은 각각의 스토리라인(뉴트럴, 카오스, 로우)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 인물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특징이 있다. 진여신전생 4편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었는데,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대화선택지나 내용에 따라서 스토리 라인 분기가 갈리게 되고, 그 분기에는 일부의 진실만이 담겨있어 플레이어가 전체를 보고 싶으면 여러번 게임을 클리어해야 했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 5에서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성향이 갈려도 마지막 엔딩 전의 선택지에서 엔딩 분기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지를 돈내고 바꾸는게 가능한(!) 시리즈 사상 초유의 분기처리를 보여주었다. 결국은 플레이어의 성향이 게임에 잘 녹아들지 않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행위와 결과가 납득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초유의 선택을 보였다. 

결국 이것은 게임 자체가 미완의 스토리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게임 극후반부라 할 수 있는 지고천의 레벨 디자인이라던가, 스토리 전개, 레벨링 구조상 비어있는 부분(70~90 레벨링이 거의 불가능한)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진여신전생 5는 정말로 완급조절이 뛰어난 작품이고,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근 5년의 개발기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미완성된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는 분명히 있고, 플레이할만한 가치도 있다. 제노블레이드 2와 같은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미완성이긴 하지만 분명 꿀리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미완성된 부분들의 단점이 너무 크고, 장점이 너무 빛나기 때문에 그 단점이 더 눈에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 J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시도해볼만 하지만, 여신전생 시리즈 특성 상 완성판이 나올 수 있으니 그 완성판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게임 이야기

 

 

개인적으로 모바일 게임의 한계이자 가능성은 바로 조작 체계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게임의 생태계는 직관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터치 조작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터치 조작들은 스마트폰의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의 조작 체계를 어플의 목적에 맞게 일종의 에뮬레이션(emulatioan, 하드웨어적으로 수행되는 작업을 소프트웨어로 흉내내어 처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은 ‘하나의 기능’에 충실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기능들을 어플의 목적과 스마트폰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기 때문에, 전문화된 기기가 아닌 일종의 ‘유니버설’한 기기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스마트폰으로 걸음을 측정하는 만보계 어플들이나 캐시워크 같이 걸을 때마다 일정 재화를 충족하고 리워드를 받고 소비하는 어플들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만보계나 어플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들이 과연 ‘이들의 목적’ 하나만을 위한 것일까?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스마트폰의 만보계는 3축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 센서를 복합적으로 측정해서 해당 정보를 측정한다. 과거의 만보계들에 비해서 기술적으로 더 세련되고 복잡한 기술이 적용되었긴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스마트폰의 이러한 기술들은 기본적으로 ‘그 목적을 위해서 탑재되었다’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전문적인 기술 보다는 보편적인 기술이 적용되어서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물론 역으로 이러한 보편적이고 강화된 기능들, 위에서 예를 든 자이로 센서나 3축 가속도 센서 같은 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더 섬세하게 발전한 것들도 있다.

 

스마트폰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들이 스마트폰을 전제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에뮬레이션과 같은 일종의 ‘기술적 속임수’라고 보기 힘들 수 있다. 다만, 유달리 스마트폰에서도 에뮬레이션이라는 기술적인 속임수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직접 조작해서 플레이하는 모바일 게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DS 에뮬레이터 같은 어플 같은 것들이 ‘에뮬레이션’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발을 걸치고 있긴 하지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은 바로 게임 패드나 조작 콘트롤러를 터치 스크린의 형태로 옮겨 놓은 것들이 대표적 사례다. 즉, 게임패드와 같은 조작 체계를 스크린의 형태에 터치되는 버튼 형태로 구현해두고, 그 조작을 게임 내에서 에뮬레이션 함으로써 실제 콘솔/PC 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을 스마트폰 환경에서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조작하는 게임들의 상당수는 기술적으로 부합하진 않지만, 경험의 제공 측면에서 에뮬레이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의 한 축에는 콘솔이나 피씨에 원판 게임이 있고 크로스 플레이 형태로 구현되는 게임이 상당수이다: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포트나이트나 포켓몬 유나이트 같은 게임들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다른 접근이긴 하지만 ‘스마트폰과 기존 플랫폼과는 동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 없지만, 최대한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라는 전제로 접근하는 게임들도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와일드 리프트 같은 게임이 그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게임을 모바일에 맞게 튜닝을 하고, 그 튜닝의 핵심에 ‘조작 체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 조작하는 게임’들의 부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아무리 모바일 게임이 콘트롤러 그 자체를 에뮬레이션을 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그 조작 경험을 에뮬레이션 할 수 없다. 버튼을 눌러 발동한다라는 디지털적인 0과 1의 조작 체계조차도 물리적인 버튼이 있냐 없냐에 따라서 그대로 경험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가상 컨트롤러의 경험이다. 그리고 아날로그 스틱이나 트리거의 조작 같은 것은 구현하기 더 까다롭다:스틱을 살짝 당겨서 살금살금 걷는다던가, 혹은 트리거를 반 트리거만 당겨서 레이싱 게임에서 반 가속을 하게 만든다든가 등의 조작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패드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네 손가락 조작(왼손 엄지, 검지 / 오른손 엄지, 검지)과 달리, 스마트폰의 조작에서는 두 손가락 조작(양 엄지)만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자 제약사항이기도 하다. 손가락 4개에서 버튼의 조합(가령, 왼쪽 트리거 조준과 오른쪽 트리거 사격, 여기에 이동 조작과 카메라 조작을 함께 하는 것)으로 기존 체제에서 조작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두 손가락 조합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 조작의 가지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결국 모바일 게임에서는 기존 패드 조작 시스템과 달리 버튼의 수를 늘리거나 조작을 단순화시키는 접근 방법 말고는 위와 같은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놓은 해결방법(버튼의 수를 늘린다든가, 조작을 단순화시키든가)들 모두가 결국은 기존 게임의 에뮬레이션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조작을 단순화시킨다면(예를 들어, 페오엑과 그림던, 디아 3를 섞어놓은 모바일/PC 동시 출시 게임인 언디셈버 같은 게임이 그럴 것이다), 게임 자체가 기존 장르 같이 깔끔하고 정교하게 돌아간다기 보다는 상당히 무디고 둔탁하게 돌아간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렇다고 버튼의 수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화면에 버튼이 늘어날수록 폰의 화면을 가린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은 버튼이 늘어나게 되면서 화면이 난잡해지고 실제 게임을 하는 화면이 줄어들게 되면서 게임 플레이를 할 때의 판단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갤럭시 폴드 3는 직접 조작하는 게임의 문제를 정말로 간단하게 해결한다:폴드 3는 기존 화면에서 약 2배 가까이 넓은 스크린을 제공하면서 버튼을 많이 배치하여도 실제 게임 화면을 손가락이 가리거나 하는 등의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폴드 3에서 플레이하는 배틀그라운드 뉴 스테이츠의 예를 보자:실제로 패드와 키보드 조작에서 사용되는 많은 버튼들이 개별로 배치되어 있지만, 화면이 커진 덕분에 실제 게임을 하는 영역을 많이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버튼 크기를 확보해서 조작성과 가시성 양쪽을 잡아내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기존 배틀그라운드의 조작감을 그대로 이어받는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동조작 없이 이정도면 큰 불편함 없이 기존 게임에 비슷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온 셈이다.

 

폴드 3가 보여준 것은 ‘큰 화면 스마트폰’이 보여준 모바일 게임의 가능성이다:예전에 비해서 스마트폰의 액정은 점점 커지고 있고, 큰 화면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해왔었다. 노트북과 폰 사이에 태블릿이라는 새로운 기기 영역이 개척된 것도 그러하다. 무게라는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조작할 수 있는 화면이 커짐으로 모바일 게임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은 더 커진 셈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조작 방법론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더 큰 화면의 스마트폰이 여는 가능성이란 ‘자동조작이나 둔탁한 조작이 아닌 콘솔이나 피씨에 가까워지는 가상 패드 조작과 게이밍의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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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는 닌텐도로 나온 메트로이드 시리즈와 코나미에서 나온 캐슬베니아(일본쪽 명칭으로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 두 이름을 합쳐서 만들어진 조어다. 정확하게는 메트로이드가 먼저, 월하의 야상곡이 등장한 이후에는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가 정착했다. 메트로베니아는 2D 플랫포머의 하위 장르지만 단방향적인 스테이지를 두고 달려나가는 거대한 스테이지를 설정해두고 플레이어가 스테이지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메트로이드와, 여기에 RPG 요소들을 탑재한 월하의 야상곡을 통해서 장르적으로 성립되었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이후 캐슬베니아 시리즈로 이어져내려오다가, 2D 플랫포머가 메인 스트림에서 내려온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게임이나 소규모 제작 게임들(블러드스테인드나 할로우 나이트 같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확실한 점은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 자체는 여전히 현역이고, 많은 개수와 재해석이 이루어진 '살아있는 장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원판이라 할 수 있는 메트로이드와 캐슬베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을 잃었다는 점일 것이다. 캐슬베니아의 경우, 코나미의 노선 변경과 프로듀서인 이가라시 코지의 이탈 등의 다양한 일들이 겹치면서 2010년 전후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메트로이드는 조금 달랐다. GBA로 나온 메트로이드 퓨전 이후, 메트로이드는 프라임 시리즈를 내면서 기존 메트로이드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걸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메트로베니아 혹은 메트로이드 장르에 속한 메트로이드 게임은 사실상 2002년 퓨전이 마지막이었다. 1인칭 액션 게임으로 새로운 방향성으로 나가고, 그것이 결말을 맺은 프라임 3부작이 07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침묵은 어찌보면 캐슬베니아 시리즈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할 수 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커럽션 이후 14년, 그리고 퓨전 이후 19년만에 등장한 2D 메트로베니아 게임이다. 메트로이드 프라임 4가 나오는데 기약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 사이를 매꿔줄 작품이 필요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메트로이드 퓨전으로부터 정식으로 이어지는 속편이었다는 점은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제작사인 머큐리 스팀이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를 만든 제작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선택이 그렇게 까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동시에 근 20년만에 다시 2D 메트로이드 장르로 돌아온 것일까? 그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가? 라는 질문들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긴 했을 것이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메트로이드나 케슬베니아의 역사를 넘어서 장르 그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드레드는 프라임 4이 나오지 않는 기대감을 채워줄 지 여부를 떠나서, 지금와서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다시 그 문법을 따르면서 재조명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까지 대답해야 했었던 부담감을 지고 있는 게임인 셈이다.

 

드레드는 특이하게도 메트로이드 기본 시리즈 본연에 충실한 게임이다: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능력들을 얻고, 스테이지를 풀어나간다. 놀라울 정도로 드레드는 이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19년 간의 공백동안 있었던 장르적 변주나 발전을 철저히 배제한 체 우직하게 기본 구성으로 승부를 본다. 게임은 3DS 버전 사무스 리턴즈에서 적용한 우 스틱으로 조준하는 시스템과 후술할 몇몇 부분을 빼면 이전 메트로이드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고 그 차이를 제외한다면 19년전의 메트로이드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훌륭하게 작동한다. 기본적인 장르적 재미 자체는 이미 30년전부터 보장된 시리즈지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러한 시리즈의 본질에 충실하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새로운 능력을 얻고, 더 나아가서 보스와 싸운다. 최근 게임들이 많은 부분 포기했다 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재미가 떨어질만한 구간에서 새로운 요소를 투입해 재미를 주는 진행 곡선'은 메트로이드 드레드에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드레드는 메트로베니아, 아니 그보다도 더 이전의 메트로이드의 뼈대에 기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베이스가 되는 게임 플레이는 이전 시리즈와 같이 상당히 깊이가 있다. 메트로베니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던 월하의 야상곡이 능력의 구분에 따라서 맵을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거칠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월하의 야상곡에서 스테이지들은 상당히 러프하고 분명하게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데, 더블 점프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박쥐 변화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 등등으로 얻는 능력에 따라서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이 분명하게 정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메트로이드 시리즈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능력에 따른 스테이지 구분들을 다양한 테크닉 등을 통해서 뛰어넘을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이 가능했다. 요컨데, '그 능력을 해금하지 않고도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숨겨진 테크닉과 구간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깊이 때문에 드레드는 실제 플랫포밍 플레이를 진행할 때 더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하는 편이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흐름은 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의 케이스 때와 유사하다:게임은 고전 2D 플랫포밍 게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한 편, 그 속에 두 가지 트렉을 숨겨두는 것이다. 하나는 게임 스테이지를 그대로 따라갔을 때의 정석적인 흐름, 또다른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깊이 이해했을 때 색다른 흐름으로 경험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두 흐름이 상충되지 않고(강제적인 게임 플레이로 게임을 쉽게 만들지 않고, 동시에 게임 난이도를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 등), 서로 상보적인 동시에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점(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에서는 바나나 코인과 같은 요소가 그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에서는 업그레이드 요소가 그러할 것이다)에서 드레드의 큰 흐름은 동키콩 프로즌 컨트리와 맞닿아 있다:2D 플랫포밍에서 스피드 러닝의 테크닉과 플랫포밍 게임에서의 테크닉을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에 드레드는 E.M.M.I라는 독특한 변주를 준다:E.M.M.I.는 특정 스테이지 구간에서만 등장하는 보스형 몹이며, E.M.M.I.는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구간 내의 보스를 잡아 1회성 능력인 오메가 빔을 해금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피해서 돌아다녀야 한다. 즉, 이 스테이지에서는 E.M.M.I.가 일종의 이동형 즉사 장애물로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최대한 이들을 피해서 E.M.M.I가 없는 스테이지 밖으로 피신해야 한다. 이동형 즉사 장애물이 나오는 게임들이 최초는 아니지만, E.M.M.I.는 상당히 넓은 구간에서 지독하게 플레이어를 쫒아온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서는 스테이지 내에 있는 다양한 요소(자력 벽이나 카트, 작은 통풍구 등)들이나 플레이어의 능력(투명해지는 능력 등등)들을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 이러한 E.M.M.I.가 등장하는 구간이 플레이어가 계속 진행하는 방향에 등장하기 때문에, 게임에 긴장감을 계속해서 더 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 자체가 상당히 일방향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하나 하나 따져보면 진행 방향이 분명히 정해져있는 게임이긴 한데, 그래도 최근의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들처럼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탐색하거나 하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중반 이후에 맵을 탐색할 수 있게끔 풀어주기는 하는데, 그 타이밍이 좀 늦다는 느낌이 강한 기분이다. 더 넓은 맵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는 진행 구간을 늘려줬으면 더 재밌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아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배려하기 위해 제작사가 넣은 부분이라 판단된다. 다만, 너무 배려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들긴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여전히 지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임이다. 숙련된 플레이어면 5~7시간을 하면 클리어하긴 하겠지만, 그 5~7시간을 매우 만족하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음번 작품에서는 좀 더 플레이어를 풀어주고 좀 더 몰아붙여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게임 이야기

 

데스 루프는 아케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액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콜트를 플레이하며 섬에 존재하는 8명의 선지자를 단 하루만에 모두 다 죽어야 한다. 이머시브 심 게임이라는 점과 암살 타겟들을 차례대로 처리해야한다는 점에서  게임은 아케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이전 작들인 디스아너드 시리즈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데스 루프에 이전작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게임의 흐름 자체가 하나의 스테이지를 여러번 플레이하게끔 짜여있다는 것이다.

 

데스루프의 핵심은 가벼움과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다:디스아너드 시리즈와 비교해보면 이 게임의 특이한 부분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편인데. 기존의 디스아너드 시리즈들이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게임 속 다양한 요소들과 반응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이머시브 심을 지향했었기 때문에 게임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세밀하게 짜여졌으며, 동시에 '플레이하기 무거운 형태'를 지향했다. 가령, 플레이어가 블링크를 이용해서 고저차를 이용한 은신을 하는 게임 플레이를 지향한다고 하자. 이렇게 은신 형태의 게임을 플레이할 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화나 스킬에 필요한 포인트 등이 결국은 '제한된 재화 내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선택해서 나가는 것'을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선택한 플레이 스타일은 쉽게 다시 돌아가기 힘든 그런 부분이 있다. 모든 자원과 게임 플레이의 지향성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는 디스아너드와는 사뭇 다르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플레이어는 대부분의 무장과 스킬들을 쉽게 맞출 수 있고, 스킬을 쓰는데 이용되는 에너지도 자동으로 회복되며, 잠입의 실패에 대한 처벌도 관대하다. 게임은 이전 디스아너드나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들에 비하면 대단히 관대하다는 인상인데, 이는 게임의 전반적인 구조 때문에 그러하다.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는 빠르고, 시원스러우며, 플레이어로 하게끔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시도하게끔 만든다. 데스루프는 이전 이머시브 심 게임들에 비해서 아드레날린을 한껏 들이킨 모습을 보여준다:플레이어는 원없이 달리고, 원없이 특수능력을 쓰며, 강력한 초능력들로 적들을 농락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들과 비교할 때, 전면전과 잠입 플레이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인데, 잠입을 하다 실패했을 시 빠르게 전면전으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전면전에서 밀리면 빠르게 이탈하고 적들에게서 한숨 돌리는 것도 쉽다. 적들 AI의 반응성이나 경보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고, 체력을 제외한다면 플레이어의 화력이나 능력이 다른 게임보다 더 강하게 책정되었다.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 핵심은 기본적으로 게임 스테이지들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전 게임들과 다르게, 데스루프에서는 기본적으로 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머시브 심답게 각각의 맵들은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의 맵 크기만 놓고 본다면 데스루프의 맵 크기와 다양성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게임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감되는 게임 스테이지의 크기는 더 적은 편이다.

 

대신 게임은 맵을 줄여놓은 대신에 다양한 방향성을 부여한다:각 스테이지에 대해서 4개의 시간대를 쪼게놓은 뒤, 8개의 타겟과 다양한 이벤트들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스테이지 각각은 분명 기존의 디스아너드의 맵들 크기거나 혹은 그거보다 작은 편이지만, 시간대를 각 스테이지에 바리에이션을 두고, 각기 다른 이벤트들을 시간대별로 배치하여 마치 서로 다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분명한 점은 데스루프의 게임은 겉보기와 다르게 '로그라이크'는 아니다. 게임 내 모든 요소들은 정확하게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고,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이벤트들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이지를 외워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플레이어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 다음 시간대 스테이지가 바뀌는 것 뿐이다. 대신 하루가 지나면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소지품과 모든 게임 진행 상태가 리셋된다는 점에서 로그라이크 같이 생기는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스킬이나 장비 등을 쉽게 전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핵심은 '전체 구조를 익히고, 필요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스테이지에 변화를 유발해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스루프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선형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그 선형의 게임 플레이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더 잘하게 되고, 강해지는 것이 게임 경험의 핵심이다. 선지자를 암살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선지자를 암살하는 순서와 처리하는 시점은 고정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그 단 하나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임은 이러한 과정을 UI/UX 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UI/UX가 가르키는 방향으로만 잘 진행해도 큰 막힘없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데스 루프의 게임 스타일은 이전 디스아너드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그 깊이가 얕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들은 전적으로 적 AI들 때문이다:AI들의 감지나 반응 속도, 움직임들은 상당히 딱딱하고 느리며 단순하다. 이 덕분에 소음기 달린 권총들을 구하기 시작하면, 게임의 난이도가 너무나 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소음기 권총 헤드 한방에 적을 끝낼 수 있고, 다른 초능력들을 사용하면 더 게임이 쉬워진다. 기존 디스아너드 시리즈를 플레이 해본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쉽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플레이 구성이 '하나의 스테이지를 탐색하며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루프로 넘어가서 탐색한 정보를 토대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스테이지를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탐색하고 다음 시간으로 넘어갈 때, 망설임 없이 넘어가길 바라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AI 적들이 너무 똑똑하거나 게임 플레이에 발목을 잡았다면 루프를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기존 이머시브 심에 비해서 '이머시브 심이되 플레이어의 파워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벼움을 추구하는 것이 데스 루프다.

 

대신 게임은 줄리아니라는 독립 변수를 부여한다:줄리아니는 고정되어있는 선지자들의 행적이나 스테이지 구성과 다르게 플레이어를 능동적으로 사냥하는 적인데, 좋은 총기와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게임 내에서는 일종의 '보스'나 '문지기'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싱글플레이에서 줄리아니는 플레이어의 위치만 알 뿐 여전히 둔감한 AI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싱글플레이의 줄리아니는 플레이어가 쉽게 농락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줄리아니가 사람이 잡아서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도 가능하다. 일종의 다크소울처럼 '암령 플레이'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진행했을 때 게임 플레이의 질이 많이 높아진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문제는 게임을 플레이 했을 당시에는 멀티플레이가 잘 잡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만약에 플레이를 원한다면 사람들을 잡아 같이하길 추천하는 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데스루프는 빠르고 가벼워졌고 그 바운더리 내에서는 훌륭한 게임이다. 달리면서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초능력을 마음대로 쓰며, 막히지 않고 빠르게 플레이하기를 원한다면 데스루프는 훌륭한 게임이다. 다만 알아둬야 하는 점이 있다면, 이 게임은 기존의 이머시브 심 게임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가볍고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이머시브 심 게임들을 해봤다면 당혹스럽게 느껴질 부분들이 꽤 있다. 멀티까지 포함해서 보았을 때는 훌륭할 수 있지만, 같이 할 사람을 고정적으로 구했을 때의 이야기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구매를 할 때, 꼭 호평만 보고 구매하지 말고, 양쪽 장단점을 모두 비교하고 구매할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게임 이야기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엑스박스 독점 오픈월드 레이싱 게임이다. 구엑박 시절부터 함께한 유서 깊은 레이싱 시리즈였던 포르자 시리즈는 일반적인 레이싱 시리즈였던 모터스포츠, 그리고 오픈월드 시리즈였던 호라이즌으로 나뉘게 된다. 호라이즌에서 플레이어는 축제의 슈퍼스타로, 맥시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자동차 레이싱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서킷 레이싱,  스트리트 레이싱, 차량 스턴트 등의 활동을 즐기게 된다. 이런 레이싱 장르의 게임들이 보통은 한 두개의 활동에 집중하는걸 생각한다면, 포르자 호라이즌 시리즈의 야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자 호라이즌 5는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게임이다. 레이싱 게임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핵심적인 재미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으로 생각하보면 레이싱 장르가 입문 난이도가 높은 것도 이 '빠르게 달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어느 속도로 코너로 감속해야 하는지, 자동차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이싱 장르에는 '완벽한 주행'이 존재한다:모든 서킷과 코스에는 정답이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정확히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이싱 장르의 게임이 점점 시뮬레이션에 가까워질 수록 게임의 입문 난이도를 높이는 원인이 되었고, 레이싱 게임에서 많은 요소들을 단순화 시키고 플레이어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레이싱 아케이드 류의 장르(니드 포 스피드 같은)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포르자 호라이즌 5은 시뮬레이션과 양쪽 모두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다루고 있는 활동의 범위가 매우 넓고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클래식 세단 ~ 슈퍼카까지)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심케이드(시뮬레이션+아케이드) 레이싱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자동차들과 특징들을 세밀하게 구현하고는 있긴 하지만, 기존 시뮬레이션 레이싱에서 나오지 않는 요소들도 존재하고 게임의 주요한 축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 주행 시점으로 돌아가는 되감기 버튼, 레이싱 중 최적의 주행경로와 속도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주행 이외에도 드리프트나 기물 파손 등을 점수화 하고 경험치를 얻는 구조, 외관만 부서지고 실제 주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요소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포르자 호라이즌 5의 아케이드 요소들은 게임을 단순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게임에 빠르게 적응하고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부분들은 뛰어난 그래픽이나 음향, 음악들과 잘 어울러져서 플레이어에게 주행의 쾌감을 전달하는데 반복 플레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또한 후술할 시뮬레이션 요소들과 오픈월드 요소들로 인하여 단순한 반복이 아닌 게임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콘탠츠 소비 구조가 구축된다.

 

포르자 호라이즌 5의 시뮬레이션 요소들은 다양한 차들과 튜닝 요소다:포르자 호라이즌 5에는 수많은 차들이 존재하고, 이 차들은 튜닝을 통해서 더 정교하게 성능을 조정할 수 있다. 게임은 다양한 상황(로드, 서킷, 스트릿 레이싱, 스턴트, 오프로드, 크로스 컨트리 등등)에서 레이싱을 제공하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차와 튜닝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이다. 튜닝으로 성능을 조정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처음 초반에 제공해주는 3개의 차들이다:이들은 튜닝에 따라서 거의 상당수의 상황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튜닝을 통해서 상황에 맞게 차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등급도 자유자재로 조절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튜닝이라는 요소는 게임의 폭과 다양성을 넓혀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튜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차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혹은 일상생활에서 차를 타는 정도로만 차를 아는 사람에게 엔진이나 타이어, 심지어는 타이어 공기압까지 조정을 해야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심한 허들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순정 차량으로 레이싱을 하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일종의 한계치가 있는데, 그 한계치를 돌파하기 위해서 튜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포르자 호라이즌의 가장 독특한 점이자 강점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주행의 편의성을 아케이드 레이싱의 방법론으로, 주행의 깊이와 다양성을 시뮬레이션의 방법론으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 자체는 이전 레이싱 게임에서도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었던 부분들이었다. 포르자 호라이즌 5가 다른 레이싱 게임보다 높게 비상하는 것은 이러한 방법론들을 오픈월드와 커뮤니티라는 거대한 횡적 다양성으로 묶고 있는 부분에 있다:기존의 게임들이 다양한 방법론들을 한데 묶어서 하나의 축으로 깊이있게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처음 콘탠츠들은 쉽게 버려지는 경향성도 있었다:레이싱 게임은 보통 처음 언락되는 자동차들이나 트랙들, 난이도들은 이후 게임에서 플레이되지 않는다.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초반 콘탠츠의 리플레이 가치는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포르자 호라이즌 5의 핵심적인 매력과 재미는 '레이싱 서킷에 정답은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자동차의 수와 종류만큼 존재한다'에 존재한다. 포르자 호라이즌 5에서는 낮은 등급(B~A등급)의 자동차들이나 트랙들이 자주 다시 플레이된다. 튜닝의 깊이도 있지만, 트랙에 다양한 차량들을 가지고 와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다. 그것은 게임이 횡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부한 콘탠츠들과 서킷을 제공하고, 튜닝이나 다양한 차량들로 매번 달리는 재미를 다르게 한다. 어떻게 보면 트리플 A 게임이 도달한 궁극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데, 깊이와 콘탠츠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모두 사로잡아 플레이어를 만족시킨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게임 내에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플레이어들이 함께 달리는 감각을 제공한다. 자신의 튜닝 설정을 제공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튜닝을 할 수 있게 하든가, 서킷 이벤트를 만든다든가, 길거리 1대1 레이싱을 즐긴다든가, 데칼을 공유한다든가 등의 다양한 콘탠츠들을 유저가 만들고 공유하고 그리고 함께 즐긴다.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포르자 호라이즌의 커뮤니티 공유 구조는 편리하며, 게임의 오픈월드 구조와 콘탠츠 재생산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결론을 내리자면,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축제라 할 수 있다. 달리는 것도 재밌고, 달리는 과정에서 점점 더 능숙해지는 과정도 재밌고, 사람들과 게임을 같이하는 것도 재밌다. 레이싱 게임들이 보통 매니악한 유저층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게임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훌륭한 게임이다. 게임 패스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플레이해보기를 추천하며, 게임패스가 없더라도 구매해도 아깝지 않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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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광기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광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단순히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광인이라 부르기에는 이 정의는 너무나 무딘 정의라 할 수 있다:고대에서 광인들은 때때로 미래를 예지하거나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되어 중요한 직책을 맞기도 했기 때문이다. 환각과 광기에 기반한 통찰력은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현대 사회가 인정하는 광인과 광기의 정의와 범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이는 광기의 특징에 기반한다:광기는 종종 일반적인 논리의 단계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요소들을 유연하게 연결한다. 그것은 때때로 일반적인 논리로 통찰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개척하는데, 그 광기의 유연함과 논리를 벗어난 자유로움이야말로 광기의 핵심이다.

 

사이코너츠 2는 구 엑박 시절 광기넘치는 플랫포밍 게임인 사이코너츠 1편의 정식 후속작이다:구엑박에서 엑박 360, 엑박 원을 넘어서 엑박 시리즈 엑스까지 콘솔 3대를 뛰어넘는 근 20년만의 신작인 셈이다. 1편은 컬트 게임의 명작이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근 20년만에 정식 신작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인 동시에 걱정되는 일이었다. 더블파인 스튜디오가 오랫동안 게임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사이코너츠와 같은 플랫폼 게임은 만든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너츠 2는 그러한 불안을 떨쳐내고 20년만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게임이었다.

 

사이코너츠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플랫포밍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라즈를 조작해 사이코너츠에서 사람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면서 머릿속의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 깊숙한 곳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사이코너츠가 거의 20년 전의 게임 치고 놀라웠던 부분은 현대적인 3D 플랫포밍 게임과 비견해도 낡지 않은 게임 플레이와 스테이지, 그리고 유연한 스테이지 구성에 있다:사람의 머릿속 처럼 광기 넘치게 구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나아갈 길이 뚜렷하게 제시되고 나아가게끔 유도하는 점 등은 최근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광기라는 측면에서 사이코너츠는 정말로 훌륭하다:스테이지의 다양한 요소들은 등장인물의 정신 세계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모습들인데, 마치 말도 안되는 요소들이 등장인물들 머릿속의 내적 논리에 의해서 하나의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광경은 장관이다. 정갈하게 정리된 샤샤의 머릿속에 점점 카오스가 펼쳐지는 장면이나, 생선의 머릿속에 고질라와 같은 스테이지가 만들어진다 하는 등의 장면들은 '말이 전혀 안되는데 묘하게 말이 되는' 모습들이다. 전반적으로 사이코너츠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러한 정신나간 것들이 실제 말이 되게끔 구성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사이코너츠 2는 사이코너츠 1의 미덕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다. 사람의 머릿속을 게임 스테이지로 풀어내는 듯한 게임 스테이지 구조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첫번째 게임 스테이지인 닥터 로보토의 스테이지를 보자:인셉션을 패러디한 구조인 이 스테이지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닥터 로보토로부터 흑막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심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닥터 로보토가 저항하면서 원래 설계되었던 스테이지는 점점 로보토의 치과처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두가지 컨셉의 스테이지(의도적으로 로보토를 속이기 위한 스테이지 + 로보토의 내면이 형상화된 치과 스테이지)가 점점 섞이면서 스테이지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 일품인 스테이지인데, 사이코너츠 2의 모든 스테이지들은 이런식으로 게임의 플롯과 컨셉, 게임 내의 플랫폼 컨셉들이 함께 어우러져있어 게임을 흥미롭게 만든다.

 

사이코너츠가 훌륭한 점은 뭔가 대단히 난잡한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진행하는 과정은 직관적이라는 것이다:사람의 머릿속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하더라도, 나아갈 길이 어딘지를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의 스테이지 디자인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 이러한 가이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너츠 2가 1편보다 더 나아진 부분은 이러한 스테이지들이 단순히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 스테이지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콜튼 부울의 스테이지를 예로 들어보자:콤튼은 주변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인물인데, 플레이어인 라즈는 그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서 그의 정신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이 때 콤튼의 정신세계는 음식 만들기 버라이어티 쇼로 재구성되는데, 주변인(포드 크롤러, 포사이스, 제나토)의 손인형들이 쇼 게스트로 나와 음식을 요구하며 콤튼을 압박하고, 라즈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음식을 만들면서 그의 중압감을 해소하고자 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인형탈과 보스전을 치루고 난 뒤에 그 인형탈들을 조작하던 손이 사실은 콤튼의 손이라는 점을 통해 '그러한 부담감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라는 것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그 외에도 밥 자나토의 정신세계나, 감각을 찾아 떠나는 헬무트 풀베어의 여정 같은 장면에서 단순히 출발지 ~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플랫포밍 스테이지와 달리 다양한 컨셉과 흥미로운 설정들, 스테이지 기믹들을 붙여서 구성을 한다.

 

사이코너츠 2에는 다양한 초능력들이 등장하고, 이 초능력들을 이용해서 전투와 플랫포밍 양쪽을 다 이끌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파이로키네시스 능력은 막혀있는 벽을 불로 뚫을 수도 있고, 적들에게 불을 붙여서 도트 데미지를 입히는 능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8개의 초능력이 등장하고, 여기에 뱃지를 추가해서 전투나 플랫포밍에 유리한 능력을 해금하는 것이 초능력의 능력이긴 한데, 플랫포밍 쪽에 비해서 전투쪽의 초능력은 쓰이는 것만 쓰이는 느낌이라 좀 애매한 느낌이 있다.

 

전투는 전작과 유사하게 근거리/원거리를 자유롭게 섞어가면서 싸우는 전투 방식을 취한다. 평타 콤보와 원거리을 전담하는 초능력들을 이용해서 적들과 싸우게 되는데, 단순히 적들을 두드려 패는 것 외에도 몇몇 몹들은 상당히 독특한 기믹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배드 무드의 경우, 몹을 무적으로 만들어내는 근원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죽일 수 없는데 정신적으로 기분 나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한 기믹이라 할 수 있었다. 게임은 이와 같이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적으로 형상화하였는데, 이것들이 상당히 게임의 컨셉과 명확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에 재밌게 느껴진다. 다만, 몇몇 보스들은 기믹보다 좀 억지로 들어갔다는 느낌(밥 자나토 보스전 같은)이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코너츠 2는 요즘 트리플 A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센스와 완성도 높은 스테이지를 자랑하는 플랫포밍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패스에 기본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꼭 플레이하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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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워해머 프랜차이즈의 본류는 미니어처 워 게임이지만, 이 프랜차이즈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방계 게임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코옵 레이드물이라 할 수 있는 워해머 퀘스트(블랙 포트리스나 커스드 시티 같은), PC게임으로도 나온 적이 있는 블러드 보울이나 스커미셔 게임인 워크라이, 킬팀 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마 가장 성공적이고, 미니어처 워 게이머가 아닌 일반적인 보드게임 플레이어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것은 언더월드일 것이다.

언더월드는 전용 6면체 주사위(공격, 방어, 마법)를 이용하며 2명 이상의 플레이어(최대 4명)가 각자의 워밴드와 덱을 구성하여 전장에서 싸운다. 플레이어들은 워벤드를 움직이고 싸우며, 승점을 주는 목표 카드를 통해 승점을 얻고 게임에 이로운 효과를 주는 갬빗 카드를 뽑아서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총 3턴이 지난 뒤, 가장 높은 승점을 득점한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언더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 자체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게임에 등장하는 유닛의 수(3~5개 정도)도 적을 뿐더러, 한 턴에 한 유닛당 이동은 단 한번뿐이고, 차지(이동과 공격을 함께 했을 때)를 했을 시에는 이외의 공격이나 다른 액션이 불가능하게 된다. 언더월드의 기본적인 룰은 제한적이고,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이동 거리, 공격에 대한 기대값 등도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배우고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갬빗 카드와 오브젝트 카드가 끼게 되면서 수많은 변수들이 생겨난다. 총 20장의 갬빗 카드 덱(1회성 효과인 플로이와 유닛 버프 카드인 장비 카드로 구성된다)과 12장의 오브젝트 카드 덱을 이용해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우선 오브젝트 카드부터 살펴보자:오브젝트 카드는 플레이어가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시에 카드를 제시하고 달성을 선언하여 승점을 가져간다. 승점은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후에 이야기할 갬빗 카드 중 장비 카드를 발동하기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써도 쓰이기도 한다.

갬빗 카드(플로이와 장비 카드)는 어떻게 보면 게임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상대에게 데미지를 주거나, 반영구적인 버프를 주거나, 추가적인 이동을 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요소들로 활용이 가능한데 갬빗 카드는 기존 게임의 '제한적인 게임 플레이를 넓혀 준다'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장비 카드를 제외하면 플로이 카드의 발동 조건은 생각보다 널럴하다는 것이다: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거나, 한 턴에 이용할 수 있는 플로이 카드 수가 제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카드를 소비하고, 액티베이션 시에 카드를 수급하면서 추가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언더월드는 갬빗 카드나 오브젝트 카드가 소비되지 않으면 상당히 답답한 흐름을 보여준다.

역으로 상대의 파워 스텝(플로이나 장비 카드를 붙일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의 카드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게임 플레이와 전략의 역동성을 늘려주는 부분이다. 상대가 발동하는 카드를 보고, 그에 맞게 자신의 카드를 발동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 턴에 멍하게 손놓고 있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게임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더월드는 반쯤은 '카드게임'이라 불리기도 한다. 농담으로 넘기기 어려운 것이, 게임에 역동적인 흐름을 더해주는 것이 갬빗 카드와 오브젝트 카드인데, 이것을 자신의 워벤드와 얼마나 잘 조합해서 들고 오느냐에 따라서 게임의 흐름이 완전히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품을 샀을 때 딸려오는 기본덱(대부분 워벤드 전용 카드로만 채워져 있는)의 경우에는 전용 카드들로만 채워져있는데, 이 전용 카드들 덱만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답답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확장팩에 포함되어 있는 공용 카드들을 잘 섞어서 덱을 잘 짜고 게임을 유리하게 풀어가는것이 핵심이다. 

워벤드들의 운영의 경우, 기본적인 워벤드의 개성과 맞물려서 운영하는 덱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크게 오브젝트 점령과 그 점령에서 오는 이점으로 게임을 끌어나가는 점령덱, 상대를 화력으로 제압하고 거기서 승점을 얻는 킬덱으로 나뉘진다. 하지만 워벤드에 따라서 명확하게 킬 중심이냐, 점령 중심이냐가 구분되어있지 않은 점, 각 워벤드의 특성을 고려해 덱을 구성하면 그에 따라서 운영하고 상대 운영을 카운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은 게임의 전략적 선택지가 늘어난다.

결론을 내리자면 단순하고 제한적이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기본 게임 룰 위에 갬빗과 오브젝트 카드라는 변칙성을 부여하여 다양성을 늘린 것이 워해머 언더월드라 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플레이어의 실제 계산하고 복잡한 판정을 따라야 하는 미니어처 게임이나 확장성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보드게임과 달리, 워해머 언더월드는 상당히 유연하고 파고들수록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고, 빠르고 배우기 쉬우며, 무엇보다 재밌다. 실제 튜토리얼 게임이나 처음해보는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하면서 막힘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게임이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드게임을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생각한다.

게임 이야기

 



미니어처 게임에는 생각보다 놀라운 트랜드가 있다:게임 원작을 기반으로 한 미니어처나 보드 게임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다키스트 던전이나 둠의 보드 게임, 폴아웃 시리즈 기반의 미니어처 게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어째서 비디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이라는 원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복잡하면서 번거롭고, 시간은 오래걸리는 복잡한 형태의 게임이 수요가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게임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특수한 수요들을 미니어처 게임이나 보드 게임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직접 수치를 계산하고 룰을 적용하여 생각하는 것들 등등 단순히 게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불편한 부분들이나 귀찮은 부분들, 사람과 직접 물어보면서 커뮤니케이션 하고, 미니어처를 준비하고 도색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미니어처 게임을 아우르는 거대한 과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과 게임 문화, 그 이상으로 장르적 양식으로서 이런 스커미셔 미니어처 게임들 중 몇몇의 좀 더 흥미로운 점들은 기존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비대칭'일 것이다. 인피티니 게임의 예를 들어본다면, 카모플라주나 배치 위치를 숨기는 히든 디플로이먼트의 존재, 분신 등의 다양한 트릭 요소들이 있다. 포인트와 규칙 측면에서 플레이어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 서있지만, 동시에 게임의 보이지 않는 부분(보이지 않는 배치, 상대의 진짜 목적 등)까지 고려하여 상대와 게임을 이해하고 판단해야하는 점에서 플레이어는 거대한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봐야 한다.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통칭 BMG)은 스페인 미니어처 게임 제작사인 나이트 모델에서 만든 게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DC 코믹스에서 유명한 케릭터 중 하나인 배트맨과 그의 조력자들, 그리고 고담시의 악당들이 서로 목적을 갖고 싸우게 되는 내용으로 게임이 구성되어 있다. 게임의 규모로 따지면 소규모 워밴드(리더 한명, 사이드 킥 한명, 그 외의 몇몇 프리 에이전트들과 헨치맨들)들이 치고 받고 싸운다는 점에서 소규모 접전을 전제로 하는 스커미셔 게임으로 분류된다. 

기본적으로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은 6면체 주사위를 이용하며, 두 명의 플레이어가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처음 유닛 배치와 특별한 상황(불이 났다던가, 비가 내린다던가 등)을 설정한 뒤, 플레이어들은 최대 5턴까지 게임을 진행하여 게임을 플레이 한다. 승점은 오브젝트 카드에 적혀있는 조건을 달성할 때 얻을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오브젝트 카드에 미션 목표 외에도 카드를 이용해서 효과를 발동할 수 있다.

스커미셔 게임이고, 총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은 엄페를 끼고 총격전을 전적으로 벌이는 게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게임은 몇몇 특수 룰을 통해서 총을 이용한 원거리 전에 좀더 '신중한' 태도를, 그리고 근접하여 서로 치고 받는 형태의 게임으로 재구성한다. 게임은 전투가 '밤'에 일어난다는 것 때문에 특정 거리 바깥에서 총을 쏠 때 상당한 패널티를 부여하고, 탄창을 제한되게 주어서 플레이어가 총을 생각없이 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총의 데미지 포텐셜이 높은 점 덕분에 총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총을 정확하게 쏠 수 있으며 근접 전투가 가능해질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서 싸우는 것이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거리 바깥에서는 총을 쏠 때 패널티가 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최대한 빨리 치고 들어가야 하며, 이런 점 덕분에 게임 자체가 상당히 시원시원하게 진행된다는 인상이 있다.

대신 게임은 모든 유닛들이 액션을 쉽게 할 수 있지 않다:플레이어는 각각 4개의 매니퓰레이션 마커를 갖게 되는데, 이 매니퓰레이션 마커를 가진 유닛만이 공격, 액션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게임의 매 턴마다 플레이어들이 누구에게 이 마커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누가 행동하는지 등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특정 유닛을 잘라먹던가 하는 등의 대응도 가능하지만, 동시에 턴 시작할 때 자유롭게 배치하는 등의 규칙 밖에 존재하는 능력도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에 예측 불가능한 면모도 존재한다 할 수 있다.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은 자신의 목표가 상대방에게 숨겨진 게임이다:플레이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란브젝트 카드들을 달성해야 한다. 이러한 카드들은 플레이어의 손에 들어와있는 4장의 패들 중에서 게임 중에 플레이어가 행한 것들만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인데, 플레이어가 달성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상대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보고 목표 달성 상황 등을 추리하고 행동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게임의 양상을 모두 숨기는 것은 아니다:플레이어들은 유닛을 조작할 때, '서스펙트' 마커를 설치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이 봤을 때 수상한 행동'을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서스펙트 마커들을 까는 것을 통해서 각 팩션들이 '서로의 목적과 아젠다를 숨기고 무언가 하는 행위'를 보여준다. 물론 오브젝트 카드에서 서스펙트 마커를 이용하지 않고 곧바로 달성 가능한 카드들도 있지만, 서스펙트 마커를 이용하는 카드들이 상당히 많고 서스펙트 마커를 이용해서 오브젝트 카드의 목표와 별개로 이면 효과를 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서스펙트 마커를 적절한 위치에 까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이 케릭터 게임으로 훌륭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플레이어의 목적과 게임 플레이 방식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진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의 손에 들려있는 오브젝트 카드의 목표는 여전히 숨겨져있기는 하지만, 각 진영의 목표는 그 진영의 행동양태와 맞닿아있다:예를 들어 조커의 경우, 서스펙트 마커를 폭탄이나 독극물 컨테이너 등으로 이용하며,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입혀도 목표를 달성하여 승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커다운 공격적이고 혼돈의 화신다운 게임 플레이 방식을 보여준다. 다른 플레이어 진영들도 원작 케릭터들의 특징들을 잘 따라가고 있다. 역으로 플레이어의 행동들을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진영으로 큰 흐름을 추리할 수 있다는 점도 완전한 비대칭이 아닌, 상대의 행동을 추리하는 재미를 선사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큰 전개나 룰 측면에서는 쉽지만, 게임의 입문이 쉽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각 유닛별로 게임에 영향을 주는 키워드들이 많이 달려있는데, 이것들이 케릭터 운영 전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두 숙지하는 것은 필수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리더급만 되도 키워드가 거의 16개 가까이 달리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부분들이 꽤 있다. 또한 몇몇 진영의 옵젝 카드의 경우, 게임과 진영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이기 때문에 원활한 게임을 원한다면 먼저 카드를 읽고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배트맨 미니어처 게임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케릭터 게임이고, 전개나 룰 자체가 시원시원한 부분이 있으며 특유의 목표 달성 시스템과 매력적인 게임 시스템 등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다만, 입문 시에 어느정도 케릭터에 관련된 키워드들이나 카드 조건 등을 숙지하고 외워야 게임 자체가 스무스하게 진행할 수 있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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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백 4 블러드는 레프트 4 데드와 이볼브의 제작자들(터틀락 스튜디오)이 이름도 비슷하게 만든 작품이다. 현재 엑박 시리즈 엑스 기반으로 오픈 베타를 진행 중인데, 해당 오븐베타를 기반으로 감상을 정리하였다.

 

-레프드 4 데드 1편과 2편이 지금 게임 장르에 큰 영향을 준 점은 1) 4인 코옵이라는 구조를 구축한 것, 2) 좀비 장르를 게임에 훌륭하게 접합시켰다는 점 덕분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레프트 4 데드 시리즈는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상당히 잘 짜여져 있는 게임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게임에서 복잡한 부분을 빼고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하였으며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달라지는 구조를 통해서 최대한 반복되는 느낌을 지우게 만들려고 하였다. 사실 지금 와서도 사람들이 꾸준하게 레프트 4 데드 2를 계속 하는 것은 그런 단순하지만 탄탄한 게임 플레이에 매료되어서 계속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백 4 블러드는 전반적으로 레프트 4 데드를 너무 의식해서 게임을 만든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의식하는 것이 그대로 배끼겠다, 혹은 좋은 점에 집중하겠다 이런 쪽이라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원작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원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에서 단순함이 가지던 미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최대한 게임을 복잡다단하게 구성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추가한 부분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이 결국 상당히 원작의 미덕들에 대치되어 백 4 블러드와 레프트 4 데드를 비교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 그러나 그런 새로운 부분들이 딱히 잘 작동하는 부분이란 느낌이 전혀 없다.

 

- 가장 큰 부분은 덱 시스템. 카드를 뽑아서 자기에게 유리한 효과를 적용하거나, 게임 중에 각 라운드 별로 주는 특수효과하는 등의 시스템이 있다. 레프트 4 데드 시리즈는 AI 감독이라 하여 플레이어의 상황과 진행 상황에 따라서 좀비 호드를 불러오거나 특수 좀비를 배치하거나, 아이템을 배치하는 등의 무작위 생성 시스템을 갖고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로그라이트 류의 선조격이라 할 수 있는 요소인데, 백 4 블러드의 경우에는 이걸 야심차게 더 복잡한 형태로 구성하였다:플레이어도 AI 감독이 게임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추가하는 대신, 역으로 플레이어도 덱을 구성하고 등장하는 변수에 대응하여 카드를 뽑아 대응하는 형태가 된다. 즉, 게임 자체의 변형이 늘어나고 거기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선택을 자유롭게 하는 유연성을 갖고자 한 것이다.

 

- 추가적으로 게임 플레이에서 협동을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부분들이 생겼다. 레프트 4 데드에 비해서 백 4 블러드의 경우 탄약을 더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적 체력이 상대적으로 올라갔고, 권총이 무한 탄약이 아니게 되었으며, 근접전 제한이 걸리게 되었다), 그 결과 산탄총/저격총/돌격소총 등의 총 구분을 각자 정해놓고 무기를 필수적으로 나눠 써야 탄약을 아끼면서 싸울 수 있다. 

 

- 위와 같은 두가지 특징(1. 스스로 통제하는 변수들, 2. 반강제적인 코옵)이 결합하면서 백 4 블러드 자체는 게임을 레프트 4 데드의 아케이드 같이 빠르고 호쾌한 흐름을 가지면서 플레이어가 생각하고 정교한 전략을 가진 게임이 되고자 하는데, 문제는 이 두가지 상반된 특징이 같이 결합한다고 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전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좀더 신중한 플레이를 게임이 강제하는 부분이 있는데 레프트 4 데드가 갖고 있는 빠르고 호쾌한 플레이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비단 전작의 미덕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백 4 블러드의 게임 플레이는 그렇게까지 썩 괜찮지 않다는 인상을 주는데, 기본적으로 레프트 4 데드와 같이 큰 복도+성긴 스테이지 구조를 보이면서도 플레이어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맵 구석구석을 탐사해야 해서 전반적으로 게임 플레이가 느리고 답답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차라리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최대한 플레이어를 옥죄는 듯한 게임 플레이를 만들고 싶었다면 GTFO를 참조하면 되었을 건데, 전작이라는 후광을 어떻게든 얻어보려고 전작을 무리하게 끌고 오려다가 서로 어울리지 않은 것을 섞은 느낌이다.

 

- 문제는 이러한 경향성이 이볼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었는데, 게임 플레이와 시스템 자체가 이질적인 것들을 죄다 섞어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문제를 일으키는 패턴이 백 4 블러드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볼브에 이어서 백 4 블러드까지 보니 대체 어떻게 레프트 4 데드를 만들었는지 좀 의구심이 들 정도다.

 

- 게임 패스에 공짜로 들어있으니 하긴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레프트 4 데드 보다는 끌리진 않는 게임이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뭔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절대 들지 않는다.

게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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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색 취미가 생겨서 요즘 워해머 모델도 구매하고 이것저것 시도 중인데, 그중에 새롭게 시도중인 인피니티. 스페인 미니어처 게임 회사인 코르부스 벨리의 모델들인데, 워해머 같은 큰 게임은 아니지만 희안하게도 국내에서는 상당히 활발한 커뮤니티를 갖고 있고 게임도 꽤나 잘 돌아가는 편이라 입문을 결정했다. 주석 모델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끌리는 부분이었고, 스커미셔 게임이었다는 점도 상당히 끌리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구매를 결정.

 

- 모델이 작다. 기본적으로 25mm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워해머 40K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이스 마린이 32mm인걸 감안하면 약 75% 정도 크기다. 그 덕분에 칠할 때도 상당히 고생하기 했다. 정밀한 디테일들이 많아서 얇은 붓을 필요로 할 때도 많은데, 스페이스 마린 얼굴 칠할 때도 안쓴 콜리브리 세필을 써서 얼굴을 칠하기도 했다. 대신 모형이 작은 만큼 색 올리는 속도도 빨라서 겜퀄 기준으로는 하루에 여러 개 완성하는 것도 일이 아니다.

 

- 크기가 작아졌지만, 디테일이 상당히 오밀조밀하게 올라간 편. 색분할만 제대로 해서 올리기만 해도 상당히 만족스럽게 색을 올릴수가 있는데, 문제는 너무 작다 보니까 색분할을 할때 어떤 요소에 어떤 색을 올릴 것인지 좀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다. 도색 했을 때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긴 한데, 도색 시작을 이걸로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 느낌.

 

- 점점 희안한 포즈 덕분에 도색 난이도가 올라가고 워해머에 비해서 상당히 깔끔하고 안정적인 포즈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동일한 포즈 일변도도 아니고, 모델 조형들이 같은 유닛이라도 서로 다른 조형을 갖고 있어서 상당히 개성 넘친다. 

 

- 하지만 작아진 모델, 디테일한 조형보다 더 난이도 높은게 있다면 '주석'이라는 것. 일단 탈크 벗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키트 게이트 다듬기, 조립하기, 프라이밍, 구부러진 부품 펴기 등의 다양한 사전 작업들이 필요한데 플라스틱에 비해서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다. 주석이라는 물건이 결국 재도색 난이도가 낮다는 점 빼고는 좋은 점이 딱히 없는데, 심지어 전처리 과정이 두개가 더 추가(탈크 제거, 피막 강화를 위한 메탈 프라이머 밑작업)되는게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인피니티 모델로 입문을 한다면 워해머 입문보다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 주석 최악의 단점은 피막 정착이 힘들다는 것. 그 때문에 도색이 진짜 잘 까진다는 것. 손이 쓸리는 부위들이 쉽게 까지는데 까질때 마다 마음이 꺾이는걸 경험할 수 있다. 메탈 프라이머를 쓰면 이런 문제를 좀 회피할 수 있다는데, 지금 도색한 분량에는 적용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마감재 부분만 신경쓰고 있는 중.

 

- 에폭시 퍼티가 준 필수인 모델. 베이스에 접착시키는데 일단 필요하고(몇몇 모델은 순접으로 세우기 너무 힘들다), 모델 조립 시 순접+자세 잡아주는 용도로 쓴다. 메탈 프라이머도 필수지만, 자세를 잡기 위해서 에폭시 퍼티는 함께 구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 게임은 아직 못해봤지만, 수집을 위한 모델러들에게도 상당히 추천할만한 제품군. 모델들 자체가 전반적으로 예쁘고, 모델을 뒷받침하는 설정이나 일러스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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