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리뷰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조셉 켐벨은 일찍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써서 영웅 신화의 인간의 삶에 있어서 통과 의례 및 미시사들이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다룬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http://leviathan.tistory.com/883 이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이 책에서 조셉 켐벨은 영웅 신화의 모티브들은 사람이 겪는 인생의 고비들과 승리/실패에 기반하고 있으며, 현대에는 영웅 신화의 모티브를 대중문화가 이어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는 오랜 세월 내려왔던 영웅 신화는 인간의 기저 심리를 대변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조셉 켐벨의 관점을 빌린다면 신화의 역할을 이어받은 대중문화는 현대 대중의 욕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가장 젊은 대중문화이자 새로운 매체로써 영화, 소설 등이 걸어왔던 길을 벤치마킹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헤일로는 1~3편을 통해서 전통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4~5편을 통해서 영웅의 기원과 무거운 숙명에 다루었고, 스펙옵스 : 더 라인은 게임이라는 매체만의 특징으로 영웅 신화의 추악하고 어두운 전제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게임 역시도 영웅과 신화라는 갈래의 끄트머리에서 그들의 맥락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인류 문화의 한 줄기다.


그리고 헬블레이드는 그러한 신화의 끄트머리에서 여타 게임이나 대중문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죽은 남편을 되살리기 위해서 지옥으로 떠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헬블레이드는 닌자 씨어리가 야심차게 독자 개발 및 배급까지 맡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세누아가 남편을 잃고 그 죄책감에 환청을 듣는다는 설정을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면서부터 이 게임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진다:실제 사람들이 겪는 정신증과 환청, 환각, 강박증 등등의 경험을 게임에 직접적으로 이식하고 게임 서사의 주요한 축으로 설정함으로써 헬블레이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족적을 남겼다. 


헬블레이드는 액션 게임이라기 보다는 워킹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게임이다:전투나 퍼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비중이 적고(물론 여타 워킹 시뮬레이션에 비교하면 게임으로서의 모양새는 갖추긴 했다), 게이머는 세누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즐기는 쪽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심도있게 파고들어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헬블레이드를 게임 장르로써 미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헬블레이드는 장르로써 게임이 지녀야 하는 본질에 충실하다. 이는 게임이란 행위가 중요한 매체이긴 하지만, 여타 대중문화 장르나 매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하나가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경험'이다:게이머는 게임 내의 케릭터와 감각과 입장, 그리고 믿음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영화나 소설이 아무리 잘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감상자와 스크린 내부의 인물이 스크린이라는 물리적이고도 절대적인 장벽으로 가로막혀있어 완벽한 일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특징은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의 속성을 헬블레이드는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예를 들어 초반에 게임은 팔뚝의 검은 반점이 올라오는 것을 보여주며 죽으면 죽을수록 반점을 커지게 되고, 이 반점이 머리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세이브 데이터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실제 게임에서 그런 일은 아무리 죽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반점은 하나의 속임수이자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세누아라는 케릭터에게 이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해준다. 게이머는 게임 내내 실패하고 죽을 때마다 세이브 데이터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공포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음에도 말이다. 어째서 게임은 이런 속임수를 게임에 심어 놓은 것을까?


헬블레이드에서 정신증은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테마다:사람이 지각하는 실제의 물리 세계와 인지 세계가 서로 불일치하여 환각과 과도한 인지, 빛번짐 등을 경험하고 환상이 실제한다고 믿게 되는 정신증은 정신 의학계에서도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 증상이다. 세누아는 중증의 정신증과 환상, 편집증, 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게임의 모든 내용들은 실제가 아닌 세누아가 인지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게임은 딜리온이나 드루스, 세누아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기억속의 컷신은 실제 영상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팔의 독이 머리에 도달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강제로 삭제된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게임 시스템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세누아의 믿음을 플레이어가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이 세누아의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무작위로 일어나는 광증으로 묘사하진 않고, 그것을 대다수의 게임이 그렇듯이 멋있거나 웃기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헬블레이드는 실제 환청을 겪었던 사람들과 정신증 전문가들의 조언을 빌려 이것을 고통스럽고도 충실하게 묘사한다. 게임 내에서 환청과 환각은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테마이자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다:목소리들은 끊임없이 게이머에게 조언을 해주며, 전투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각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환각에 기반한 퍼즐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만드는데, 퍼즐 자체는 아주 새롭거나 놀랍지 않지만 환각이라는 요소를 적재적소에 잘 살렸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바로 게임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세누아의 여정에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나올 때마다, 환청들은 더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조롱하거나 절규하며 이 순간 세누아가 느끼는 감정과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을 일치시킨다. 세누아는 가끔씩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게이머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거는데, 제 4의 벽을 넘어서 자신의 일부(환청)를 인지하고 말을 거는 세누아의 모습은 소름끼치는 동시에 오묘한 느낌(서로 연결되어있는)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서 컷씬에서는 어둠이 세누아에게 말을 걸거나, 기억들을 되짚을 때 제 3자의 카메라가 아닌 세누아와 대화하는 당사자의 시점에서 카메라를 배치한다. 즉, 플레이어는 세누아의 일부이자 어둠이며, 좋았던 기억이자 트라우마의 일원으로써 세누아의 여정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헬블레이드는 실사와 환상을 무작위로 섞어서 쿨하고 멋진것으로 만들지 않고, 게이머와 세누아가 일치되어 동일한 절망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그 중에서도 발군인 것은 음향 연출이다:머리 속을 뱅뱅 돌면서 환청이 게어머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음향 연출은 게임에서 찾아보기 드문 시도였고 정말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을 클리어한 본인마저도 7.1 체널 헤드셋은커녕 2체널 이어폰을 끼는 것조차 두렵게 느껴질 정도로 헬블레이드의 음향 연출은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몇몇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헬블레이드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게임 사상 정말로 독특한 경험을 플레이어들에게 선사한다.






헬블레이드가 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오고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속임수가 숨어있다:세누아는 켈트인이지만 게임의 배경이 되는 것은 북구 바이킹 신화이다. 어째서 켈트족이 바이킹 신화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 이는 바이킹 족의 노예였던 드루스가 세누아에게 바이킹 신화를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며, 바이킹에 의해서 딜리온이 죽음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즉, 헬블레이드의 북구 신화 모티브들은 창작자가 소비자에게 전달해주는 일반적인 구조가 아닌, 소비자가 스스로 컨텐츠를 재창작하는 2차 창작의 과정인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죽음에서 불러오기 위해서 저승으로 떠나는 영웅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던 모티브이긴 하지만, 이러한 2차 창작의 과정을 통해 헬블레이드는 그 모티브를 세누아의 인생에 있어서 고통스러웠던 부분과 행복한 부분과 연결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변모한다. 예를 들어 저승의 신 헬라는 화형 중 반이 불타버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신을 물어죽였던 펜릴은 자신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아버지의 환영이 된다. 그리고 불에 대한 트라우마와 자신이 계속 경험하는 환각은 각각 불의 거인과 까마귀의 신으로 등치된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 이외에도 딜리온과의 좋은 추억들은 신마저도 쓰러뜨릴 수 있는 검을 버려내는 신화적 제의로 재현됨으로써 세누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한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들이 일반적인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와 동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화 컨텐츠의 소비와 동일하게 생각한다. 헬블레이드가 교묘하게 파고드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게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영웅이 신화적 위업을 창출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과정이 아닌 개인의 모티브들이 신화 모티브에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이 위대한 업적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임을 은연중에 깔아둔다. 세누아 뿐만 아니라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조차도 처음에는 '자신의 정신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신화적 업적을 세우는 과정'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신화적 모티브에 대응되는 개인적 모티브들이 반복되고, 여정의 끝에서 세누아가 자신의 트라우마의 근원(아버지가 어머니를 화형하는 것을 직접 목도한)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게이머와 세누아는 이 거대한 환상의 구조를 간파하게 된다:어머니의 죽음과 헬라의 모습이 일치하는 점, 어째서 펜릴과 어둠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었는가, 그리고 이 모든것 자체가 세누아(동시에 게이머)의 환상이란 점과 결국 딜리온은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블레이드의 지옥은 그야말로 진정한 지옥이다. 워낙 많은 게임들이 지옥을 악마들이 조각난 시체를 홈 인테리어 포인트 정도로 써먹는 세태에서 헬블레이드는 지옥의 근원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세누아의 고통으로부터 지옥을 쌓아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세누아가 거니는 지옥과 경험하는 환청과 환각 그 모든 것들은 세누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세누아와 게이머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포인트를 파고들어 무너뜨리고자 하고 있다. 일찍이 학살기관에서 '지옥은 사람의 대뇌피질에 새겨져 있다'라고 했듯이, 한 인간의 지옥은 오롯이 그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헬블레이드는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지옥의 이미지는 기존 신화의 역전이라 할 수 있다:헬블레이드의 이야기 구조는 신화적이되 신화이지 않다. 한 개인의 비극적인 인생에 맞춰져서 신화적 모티브를 배치해두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원래의 사건들을 되짚어 올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화라는 컨텐츠를 소비할 때, 켐벨이 이야기했었던 것과 같은 모티브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신화나 영웅에 열광하는 것은 신화와 개인 사이에 서로 맞닿아있는 강렬한 접점과 모티브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가 집중한 점은 바로 이 접점이며, 그것을 게임이라는 일체화된 경험의 매체를 통해서 세누아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고통과 슬픔으로 바꾸어놓는다. 만약, 헬블레이드의 서사를 그대로 소설이나 영화로 옮겼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싸구려 반전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왜냐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어쨌든 관객은 세누아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스스로 세누아의 위치에서 세누아가 본 것들, 들은 것들, 느낀 것들을 일치되게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는 그저 싸구려 반전물이라 칭할 수 없는 깊이감이 존재한다. 그 깊이감은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특징이다.  


세누아가 겪었던 그 모든 고통은 조각나버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며, 환각과 환청에 고통받던 자신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딜리온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세누아의 여정은 동시에 고통의 근원과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억압 등을 깨달으면서 세누아는 이 여정 자체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깨닫고 받아들인다:헬라와의 일전 바로 직전에 세누아는 자신의 머리속을 괴롭혔던 수많은 목소리를 뒤로 한채 앞으로 떠나는 과정이나 마지막 전투에서 어둠이 이 모든게 환상이라면 딜리온은 애시당초에 살릴 수 없었다는 협박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전에서 속삭임은 단 하나만 들린다:혼란스럽지도 않고, 울리지도 않지만 조용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이 말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세누아에게 이렇게 속삭인다:이제 놓아줘Let go 라고.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세누아는 딜리온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떠올리고, 헬라는 딜리온의 두개골을 들어 절벽 아래로 놓아준다. 그 순간 헬라는 세누아가 되며 모든 환상은 사라지게 된다. 딜리온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를 놓아주는 것, 자신의 트라우마와 어둠, 환각을 걷어낸다. 한 인간이 개인적인 비극을 극복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게이머를 그 재현의 일부로 만들어낸 헬블레이드의 엔딩은 그 어떤 게임의 엔딩보다도 무게가 있고 아름답다. 


결론을 내리자면, 헬블레이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일찍이 스펙옵스가 영웅 서사에 대해서 악의적인 비꼬기와 조롱을 가했다면, 헬블레이드는 여지껏 진지하게 다뤄본적이 없는 소재로 신화라는 이야기 구조를 근본부터 재점검 하였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게임이 여타 대중매체들과 기술적이기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을 헬블레이드는 여실히 증명하였으며, 스펙옵스와 같은 플롯의 뒤틈이 아닌 게임과 게이머 사이의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를 플레이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그 고통은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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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가 유명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악명 높은 것(?)을 꼽자면 공장식 작품 생산 방식이 있다:인피니티 워드와 슬레지해머, 트라이아크 3개 스튜디오 체제로 1년 단위로 게임을 돌아가면서 만든다는 이 신묘하고도 경악스러운 발상은 '매년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보장하는 타이틀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라는 게임 제작사상 초유의 기록을 만들어내었다. 단일 작품으로는 콜옵 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하는 작품은 많다:하지만 전체 프랜차이즈를 놓고 본다면 아마도 콜옵 프랜차이즈 전체 판매고에 근접하는 게임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콜옵 프랜차이즈 개발은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강점을 계승하고 약점은 보완하고자  3개의 스튜디오가 독자적인 동시에 유기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블랙옵스 3의 멀티와 인피닛 워페어의 멀티를 비교해보자:인피닛 워페어의 기본적인 멀티 골격은 블랙옵스 3의 그것이라 볼 수 있으며, 무기 벨런스나 맵 디자인은 인피닛 워드의 독자성이 가미된 물건이다(물론 결과물이 그리 흥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게임 개발 패턴은 일본 게임 프랜차이즈인 무쌍 시리즈에서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삼국무쌍 2편 이후로 전장을 종횡무진하면서 적들을 물리친다는 무쌍 시리즈의 컨셉은 아시아권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북미쪽에서는 컬트적(?)인 팬덤층을 보유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이 게임의 시스템(일기당천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 버튼 연타와 강-약공격 조합으로 모든 액션을 구현할 수 있는 점 등)이 확립된 이후로 무쌍 시리즈의 모든 작품은 대부분 '동일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무쌍 시리즈는 모두 동일한 게임이라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쌍 시리즈가 수많은 파생작품들을 가지고도 꾸준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게임에 조금씩 다른 바리에이션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이러한 바리에이션이 가장 성공한 사례는 젤다 무쌍이라 할 수 있다:모든 사람들은 '어째서 젤다에 무쌍이 섞여있는가?'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젤다무쌍을 보았다. 하지만 젤다무쌍은 의외로 충실하게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기믹을 게임 내의 액션에 접합시켰다:도구를 사용하는 기믹이라던가, 여타 무쌍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 보스전의 기믹이라던가 등등은 젤다의 전설을 그대로 들고온 것이 아닌, '무쌍이라는 정체성 아래서 새로운 것들을 이식하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파이어 엠블렘 무쌍도 이런 부분에서 나름대로의 충실함을 보장한다:파엠 시리즈에서 등장한 더블 유닛을 일종의 스트라이커 형태의 공격과 방어로 재해석한 점, 클래식 파엠의 죽으면 돌아오지 않는 전사 기믹, 인연 스킬, 창-도끼-검의 맞물리는 관계와 위크 포인트 시스템의 결합 등은 단순히 파엠 무쌍이 아무 고민이나 노력 없이 게임을 그대로 이식한 작품이 아님을 드러낸다.


하지만 무쌍 시리즈의 문제는 게임이 단순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방계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어서 가능성을 소진한다는데 있다. 심할 때는 1년에 2~3개의 무쌍 게임을 찾아볼 수 있고, 다른 기기로 컨버전 되거나 다른 프랜차이즈와 콜라보를 시도하는 등 무쌍 시리즈의 제작사인 오메가 포스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활동이 오히려 프랜차이즈의 수명과 팬들의 피로도를 가속시킨다는 점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오메가 포스가 차세대 무쌍인 진삼국무쌍 8에서 제시하는 것은 오픈월드와 시스템의 일신이다:오픈월드 시스템과 잡졸들을 특정 상태로 만드는 액션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메가포스나 코에이 테크모가 이러한 게임을 만들어본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불안하다. 그리고 기존의 방계 무쌍 작품들의 성공이 무쌍 시리즈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함이란 매력 포인트에 기반하여 가지 치기를 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8편은 시리즈의 본질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라는 우려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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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현대사에 있어서 나치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절대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 걸쳐서 수많은 악과 악행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들을 보아왔다:징기스칸은 가는 곳곳 사람의 머리를 잘라 탑을 쌓았고, 중세시절부터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으며, 신대륙 탐험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정복사였고, 근대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인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짓을 자행하였다. 역사적으로 악은 보편적이었지만 나치만큼 뚜렷한 악행의 아이콘이 된 경우는 드물다. 어째서일까? 단순히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들의 헤게모니 문제였던 것일까? 모든 악은 그저 상대적일 뿐일까? 


나치가 시대를 대표하는 악이 된 이유는 현대 국민 국가의 등장, 그리고 그 국가가 사람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서 탑을 쌓았지만, 효율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등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차를 이용한 대규모 물류 시스템, 집단 수용, 격리, 그리고 '처리'까지 이루어지는 관료제 시스템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궁극적인 이상향을 만들지 않았다. 나치가 그 어떤 역사의 거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현대 시스템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인간을 처리하였다'와 '현대의 과학과 정치사상 등을 빌어 그 모든 개소리들을 정당화하였다'라는 사실 덕분이다. 나치의 잔학성은 단순히 사람들을 자극적으로 죽였다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존재와 가능성 자체를 말살하는 범죄였었다. 그리고 과거에도 개념상으로 존재하였던 범죄를 과학과 관료제와 법과 시스템 등의 이름을 빌어서 실제로 구현했었고 실제 성과를 거둔 것도 나치가 최초였다.


그런 점에서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놀라운 게임이었다. 뉴 오더는 나치를 다룬 게임, 아니 영화 등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치가 행한 범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나치가 '이루어내고 싶었던' 세계를 조명한 것이었다. 뉴 오더의 악역 데스헤드 윌리엄 슈트라세가 게임 역사상 길이남을 명대사, "결국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가 파괴한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것으로!"를 통해서 구체화되듯이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실제 나치가 만들고 싶었던 세계를 디젤펑크와 각종 나치 관련 루머들, 더 나아가서 그 시대의 대중문화와 분위기를 한데 섞어서 '과장된 정상 세계'의 형태로 구현한다:나치 양식의 콘크리트 건물들은 페이퍼 플랜들보다 수십, 수백배 뻥튀기 되었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팝 뮤직들은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의 어레인지 버전처럼 총통에게 충성하지 못한 젊은이의 후회로 둔갑되어버린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것은 섬세하지는 않지만 울펜슈타인 뉴 오더의 세계 속에는 '과연 이것이 우리 현실 세계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라는 꿰뚫어봄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한때 좋았던 사람들은 눈감고 나치에 협력하고, 과거와 지금이 별반 차이없다고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미국인, 아리아인의 표본과 저항군 사이의 경계에 놓인 블라즈코윅즈 등등 정상성이 비정상적으로 넘처흐르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저항군, 여성, 장애인, 정신병자, 늙은이, 소수민족 등등의 세상에서 빗겨나간 사람들의 절망에 찬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엣지 매거진은 프리뷰에서 언급하듯이, 뉴 오더의 케릭터 조형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타즈에 가깝지만 정작 거기에는 휴머니티와 페이소스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엣지는 의도치 않게 뉴 오더의 핵심을 꿰뚫어보았다:특공대물이라는 영화 하부 장르를 나치에 대한 도덕적 복수(바스타즈의 결말이 히틀러 시체에 갈갈갈 총질하고 악독한 나치 장교의 이마에 나치 문양 칼빵을 새겨주는 것이라는 걸 잊지말자)와 결합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은 디젤펑크와 함께 나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무엇이 도덕적이고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전도를 일으키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와 어울리는 한 쌍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나치가 지배하는 미국을 그리는 뉴 콜로서스는 그런 점에서 전작의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가상의 적에 의해서 침공당하는 미국의 이미지는 이미 콜옵 프랜차이즈나 홈프론트 시리즈에서도 다뤄진적이 있지만, 이는 뉴 콜로서스의 지향점과는 다르다. 홈프론트나 콜옵 프랜차이즈에는 미국인에 본토 침공에 대한 뿌리깊은 트라우마와 공포가 숨어있다. 언젠가 저들이 우리 영토를 짓밟기 전에, 우리가 먼저 되갚아줘야 한다는 자극적인 공포를 게임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 이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공포에는 깊이가 없다:어째서 저들이 미국을 미워하는가, 라는 대목에서 이들은 지극히 무력해진다. 콜옵 고스트의 사례처럼 미국인의 존재를 지워내는 인종청소란 끔찍한 범죄가 행해지는데도 게임은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지 않고 '남미인들은 모두 미국을 증오한다'라는 편견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자극만이 존재하며, 이야기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 콜로서스는 다르다:"이건 괴물의 짓이야 - 아니, 인간이 짓이지 " 라는 짧은 대화 속에서 게임은 깊은 절망을 보여준다. 절망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가 단순한 자극, 그리고 자극의 역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요소들로 가득찼다면 절망의 감수성에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느끼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뉴 오더가 그랬듯이, 뉴 콜로서스 역시도 그런 '무게'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뉴 콜로서스의 새로운 주역들은 UFO 설을 신봉하는 음모론자와 흑표당원, 그리고 심지어 2차세계대전 전후로 전멸한 미국 공산당 계열 인물들이며, 이들은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뉴 콜로서스는 1961년의 미국을 디젤펑크 풍으로 재조립하였지만, 그 속에는 전작과 동일하게 위험한 전도를 깔아두고 있다:보이 스카웃을 다룬 시트콤은 히틀러 유겐트로, 미국인들이 즐기던 퀴즈쇼는 언어 말살 정책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KKK 단이 나치에게 독일어 레슨을 권유 받는 등 우리가 믿고 있었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흐트려놓는다. 하지만 뉴 오더가 그랬었던 것처럼, 뉴 콜로서스에서도 그것은 단순한 전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이는 이미 뉴 오더를 통해서 보여준 스토리텔링의 성취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기대는 과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뉴 콜로서스는 암울한 시기에 훌륭한 맥락을 가지고 등장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차별과 혐오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이 행해지고 이성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뉴 콜로서스는 그것을 전도 시키고, 어두웠던 역사의 그늘에 빛을 비추며,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미국, 새로운 거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나큰 결격 사유만 없다면, 뉴 콜로서스는 뉴 오더의 강점을 이어받아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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