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엑스박스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대중 음악은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의 등장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문화와 하위 문화에 영향을 끼쳤던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한 세대를 정의내리는 주요한 문화적 요소였다. 게임에서도 음악은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허나 게임에서 배경 음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케이스들은 있어도, 음악 자체가 게임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케이스들은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음악을 게임을 관통하는 메커니즘으로 구성하기에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이 워낙 방대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EZ2DJ’ 나 ‘비트매니아’, ‘OSU’, ‘DJMAX’ 같은 리듬 게임들이 음악 게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긴 했다. 하지만 이들 게임의 메커니즘은 ‘정해진 악보에 맞춰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서 오랫동안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디오 서프’는 자기가 갖고 있는 MP3를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악보로 변환해주어 게임용 트랙으로 구성해 주었다. ‘비트하자드’는 음악 파일을 슈팅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재구성하였다.  ‘썸퍼’는 테크노와 강렬한 이미지 및 속도감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단순히 ‘음악을 연주한다’의 개념을 넘어서 ‘음악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시도는 장르에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은 분명했다. 
 
하이파이 러시는 탱고 게임 웍스에서 만든 액션 게임일 뿐 아니라, 음악을 게임의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삼으려 했던 여러 게임들의 시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리듬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의 편견에서 벗어나서 하이파이 러시(이하 하파러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후술하겠지만 하파러시를 리듬 액션 게임으로 분류하는 것은 꽤 적확한 분류이긴 하다. 그러나 보통 리듬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에서 게이머들이 받는 일반적인 인상들은 ‘정해진 악보에 맞춰 곡을 연주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분류로 자칫 성급하게 게임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자는 이야기다. 하파러시는 전통적인 음악 게임과 많이 다른 게임이기 떄문이다. 본 게임은 어쩌면 새로운 음악 게임 장르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파러시의 큰 얼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닌 ‘크립트 오브 더 내크로댄서(2015)’에서 나온 것이다. 크립트 오브 더 내크로댄서(이하 크오댄)는 무작위로 생성된 던전을 탐험하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이 게임은 음악에 맞춰서 게임이 진행되는데, 플레이어가 박자에 맞춰서 캐릭터를 움직이거나 공격하면 이득을 얻는 메커니즘이 있다. 따라서 음악은 이 게임의 플레이에 핵심이다. 일반적인 리듬 액션 게임과 크오댄이 크게 다른 부분이라면. 이 게임에서는 정해진 악보에 맞춰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용도로서 음악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이동, 공격, 적의 움직임, 보스의 특수 패턴 등등이 박과 박자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 맞춰서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지, 피할지 등등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오댄의 주요 게임 메커니즘은 음악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음악을 최소이자 기본으로 구성하는 단위는 ‘박’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단위 소리가 ‘박자’, 박자 단위가 구성하는 음악의 흐름이 ‘리듬’이다. 박자에 맞춰서 이동과 공격 등 모든 것이 행해지고 거기에 맞춰서 효과음이 나오기 때문에 크오댄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리듬감이 생긴다. 이 게임 플레이의 리듬감은 크오댄이 음악을 주요 메커니즘으로 삼은 게임이지만 정해진 악보를 플레이하는 게임이 아니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음악의 악보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만, 박자와 리듬감은 더 작고 유연한 개념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행동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다. 이 악보와 박자/리듬감 사이의 간극에서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행동이 보장된다. 또한 크오댄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테크노, 레게, 블루스 등등)을 추가하면서 음악의 하부 장르 전체를 인용하려는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하파러시의 큰 얼개는 크오댄에서 들고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음악의 박자와 리듬으로 완결되고 일관성 있는 법칙성을 갖고 있고, 플레이어는 그 박자와 리듬감에 맞춰 적들을 처리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파러시의 포부는 비단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본 게임에서는 적들의 움직임, QTE, 패링, 플랫포밍 등등 게임을 구성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스테이지들에 배치된 작은 환경이나 기물, 사물까지 박자에 맞춰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규칙(박자와 리듬감)이 음악이라는 더 거대한 구조물을 구성하고, 완성된 형태의 게임으로 이어진다. 이는 어떻게 보면 크오댄과 비슷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산이 더 투여된 만큼 더 섬세하게 짜여진 게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파러시는 장르적인 부분에서 크오댄과 다른 고민을 하고 더 섬세하게 다듬은 부분이 있다. 하파러시는 크오댄과 달리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공격 모션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공격 모션과 버튼 입력의 괴리를 고려했을 떄, 모든 공격들은 ‘반 박자 늦게’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장르 특성상 의도치 않은 엇박이 발생하게 된다. 이 엇박은 게임 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게임에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하파러시에서 박자와 리듬은 절대적인 ‘법칙’이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아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일종의 ‘예측 가능성의 영역’에 가깝다. 물론 박자에 맞춰서 약공격과 강공격을 섞어 쓰고, 회피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박자와 리듬을 맞추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이 본 게임에선 존재한다. 적의 근거리, 원거리 공격, 다수의 적들을 보호하는 실드 버퍼, 특정한 동료 호출 공격으로만 파훼 가능한 적들 등등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행동을 해야 한다. 단순히 흘러나오는 박자에 맞춰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타이밍에 맞춰서 공격하면 회피가 가능할지, 혹은 내가 안전한지 등등의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싸워야 한다. 리듬과 박자는 게임의 주요 메커니즘이고 정확하게 입력할 시에 보상을 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무조건 지켜야하는 것이 아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내가 할 일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예측가능성의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바로 ‘패링’이다. 빡빡한 판정과 프레임을 요구하던 여타 액션 게임의 패링과 달리 하파러시의 패링은 누르는 즉시 즉발적으로 발동한다. 즉 플레이어는 패링으로 자유롭게 공격모션을 캔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공격은 박자와 리듬에 맞춰서 이뤄지기에 공격하는 도중에도 상대방의 공격을 수월하게 예측하여 튕겨낼 수 있어, 패링을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흐름이 끊기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러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공격과 회피 이외에 패링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패링을 통해서 얻는 보너스 점수는, 플레이 중 종종 플레이어가 놓친 박자로 얻지 못한 점수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패링은 플레이어의 리듬감을 유지시켜 주는 동시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게 하여 주고, 플레이어의 운신의 폭을 늘려 준다.
 
하파러시는 음악이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게임의 세계를 구축하고, 박자와 리듬감이라는 음악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였다. 음악, 박자, 리듬감과 같은 요소들이 오랫동안 음악을 구성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지만, 그것을 액션 게임 장르에서 전체적이고 통일성 있게 녹여내어 구성한 케이스들은 흔치 않았다. 하파러시는 그것을 이전의 프로토타입 없이 단번에 구현해낸 작품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에 비교해서 더더욱 빛난다.



지금까지 본 게임에서 음악이라는 문화를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보았다. 이제 본 게임의 OST와 그래픽에 대한 평가를 하며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선 OST를 보자. 음악이 핵심인 게임인 만큼, 하파러시는 훌륭한 OST 라인업으로 플레이어의 귀를 만족시킨다. 게임 특성상 모두 4박자로 통일되어 있긴 있지만, 특히 유명 락밴드나 뮤지션의 곡을 게임의 주요한 순간마다 배치해서 청각적인 만족도를 올린다. 나인 인치 네일스나 프로디지, 넘버 걸 등등 락을 좋아한 사람들이라면 알 법한 사람들을 데려와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악에서 좀 더 다양한 장르를 선택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다. 크오댄이 레게, 블루스 등 다양한 박자와 장르의 음악을 소화한 데 비해서 하파러시는 4박자 록 음악에 집중하여 게임을 구성하였다. 물론 크오댄의 경우에는 박자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면, 하파러시의 대원칙은 4박자 리듬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박자를 포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추후에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탱고 게임웍스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더 기대된다.

본 게임의 그래픽 또한 매우 화려하고 개성 넘친다. 원색 톤의 색깔을 쓰면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 물론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에 비하면 디테일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게임에서는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총평: 하파러시는 이제껏 나왔던 음악 관련 게임들이 했던 실험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장르 문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탄탄한 기본기, 잠재력 있는 게임 플레이 가능성 등은 앞으로 하파러시 기반의 게임이 나올 가능성을 열었다. 가격대(3~4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게임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더 나아가서 게임 패스의 라인업을 빛내는 게임이다. 게임패스를 구독하면 꼭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 인왕 2의 하드코어함을 생각하면 대단히 어려운 게임이거나 극단적인 게임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편에 속한 게임이라 놀랐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는 인왕 1이나 2보다 더 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게임이다.

- 결국은 와룡도 세키로와 같이 '스테미너가 없는' 액션 게임인데, 스테미너를 없앤 대신 체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서 방어와 튕겨내기로 체간을 깎아내거나 관리하게끔 만들었다. 와룡은 스테미너라는 요소를 삭제하는 대신, '기세'라는 자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기세가 단순히 방어적인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양의 영역과 음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공격을 계속해서 성공시키면 기세가 점점 올라서 도술을 쓰거나 다양한 활동들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음의 영역으로 떨어졌을 경우 공격을 추가적으로 받았을 시 자세가 무너져서 위험한 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기세 자원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직관적인데,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서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다. 공격이 무자원으로 나가기 때문에 계속해서 적을 밀어붙일 수 있고, 한번 기세 좋게 밀어붙이면 적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역으로 단순히 공격만으로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없고, 중간 중간 가드 불가능한 공격을 가할 때도 있기 때문에 패링을 중간 중간 섞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패링의 경우, 와룡도 세키로와 유사하게 상당히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기존 가드버튼에 통합되어 있었던 세키로의 패링 버튼과 달리 와룡의 패링은 회피 버튼과 연결되어 있다. 패링 버튼 난사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패링과 회피를 통합한 것으로 보이고, 때로 패링을 헛칠 때 짜증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패링을 했을 때의 리턴이 상당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패링은 와룡의 주요 메커니즘 중 하나다.

-특이하게도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사기 시스템이 있다. 적을 격파하면 할수록 사기가 점점 올라서 적들을 상대로 강해지게 되는데, 역으로 죽으면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간다. 대신 게임은 곳곳에 깃발을 설치하여 떨어지는 사기의 최저 한도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게임의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꼼꼼하게 맵을 탐색하며 플레이하면 계속 죽어도 깃발로 최소 한도 사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어렵게 느껴지면 맵을 꼼꼼히 탐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맵 상의 깃발을 모두 점령했다는 전제 하에서 게임 플레이는 그렇게 어렵진 않다. 오히려 기세 자원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침착하게 패링하면 보스도 많은 시도 없이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왕 1에서 2로 넘어갔던 케이스를 생각하면 게임 난이도를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려고 다양한 요소를 집어넣은 것들이 있고, 이 때문에 전작들과 상당히 다른 게임으로 변화했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최종 완성본을 하기 전까지는 확답하긴 힘들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변종이 나온 느낌이 있다.

-기대한 것과 다르긴 하지만, 특이한 게임이라는 인상이 있고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제임스 그레이만큼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감독도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마치 지알로의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처럼 그의 영화는 단 하나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타자로 살기, 우울함과 축축함,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등등까지 리틀 오데사에서부터 아마겟돈 타임까지 제임스 그레이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 재생산했다. 보는 사람으로써는 그의 일관성에 질릴 때도 있기도 하고, 그의 집념에 존경을 느낄 때도 있는, 그야말로 양가적인 감정을 제공해주는 것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묘미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 중 아마겟돈 타임은 가장 근원이자 변칙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어떻게 제임스 그레이라는 인간이자 예술가가 만들어진 최초의 모티브를 다룬다:벗어나고 싶은 현실, 부모의 사랑과 감정적인 억압, 자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탈출하고자 하지만 좌절하고 다시 중력에 사로잡혀 떠내려올 수 밖에 없는 무겁고 축축한 슬픈 결말까지. 제임스 그레이가 실제 겪었던 자신의 삶의 사건들이자 모든 자신의 영화의 모티브를 다루는 영화인 만큼 여지껏 나왔던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다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가장 변종과도 같은 작품이며, 자신의 삶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는 작품이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통상적으로 보여주던 유대계 이민자의 문화 외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도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펑크, 디스코, 레게나 아프리카계 미국 빈민층들의 하위 문화들, 차별받고 억압받는 문화 등등까지 이러한 이야기들이 서브 플롯으로 주요하게 등장한다. 엄밀하게 보자면 비주류긴 해도 백인이기에 덜 차별받고 주류 사회에 낄 수 있는 이주 유대인들의 위치와 다르게 아프리카 미국인들은 절대 주류에 낄 수 없었고, 그러한 차별들을 공공연하게 받았다. 주인공과 친구는 탈출하는데 실패하고 절도로 경찰에 잡히지만, 주인공이 운좋게 빠져나가고 주인공 친구가 잡혀서 소년원에 가는 것은 이 둘의 계급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단순히 가족 공동체를 넘어서서 세대 간의 공감대와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재자와 희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본적으로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던 중재자인 어머니의 역할을 더 넘어서 세상을 알려주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롤모델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이 할아버지라는 것이다:할아버지의 존재를 통해서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았었던 서로 다른 두 성향의 조화(아버지와 어머니, 부성과 모성의 갈등)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골암으로 죽었을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가족에서 구심점을 잃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독특한 점은 아마겟돈 타임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는 유대계 이민자의 삶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였고,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종, 문화적인 특수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모든 이야기들이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유대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자신의 문화적, 인종적인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집단을 벗어나서 새로운 존재인 또래 친구 집단을 등장시킨다. 함께 일탈을 하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주류 사회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 등등까지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느끼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섬세하게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배치하면서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마겟돈 타임이 다른 제임스 그레이 영화보다 높게 비상하는 부분은 단순히 타집단에 소속된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집단이 격차를 느끼는 것, 그리고 부조리하고 무례한 세상까지 넓게 바라봤다는 것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에 선역, 악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게끔 양가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과거를 형성했던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는 과정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제임스 그레이가 '거부'하고자 하는 요소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사립학교와 트럼프를 위시한 상류층 인물들의 차별적인 발언들, 유대인이 고통받았던 역사 등까지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종의 '악'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임스 그레이가 경험했던 백인 상류층과 엘리트의 무지이자, 편견, 그리고 억압이다. 이들이 드러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들은 단순히 오해와 선의, 혹은 그레이가 이전까지 다뤘던 문화적 무거움과 공동체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과 완전히 다르다.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절망이다:레이건이 당선되었을 때 핵전쟁Amaggedon Time이 일어날 것이라고 절망하던 가족들의 모습처럼 세상에 무지와 차별이 승리할 때마다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주인공은 어리고, 나아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파멸적인 상황을 벗어난 것 뿐이다. 세상에 무지와 무례는 넘쳐나고 할아버지는 죽어 가족은 구심점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좋았던 기억들을 간직한 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지와 무례함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강당의 연사를 뒤로 하고 주인공이 떠나는 장면과 지나쳤던 다양한 사건들이 오버랩 되는 장면은 그의 유년시절을 뒤로한 채 성장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연장에 있지만, 가장 크게 변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자기 인생의 모티브에 맞춰서 우울하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수성으로 다뤄왔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은 그러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질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서 그 세계를 넓히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그의 영화에서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드러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를 본다면 꼭 추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조던 필 감독의 놉은 여러모로 장르적으로 기괴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UFO를 다루는 이야기처럼 시작되던 이야기는 크리처 물로 방향성을 선회하던가, 동물, 영화나 찍는 것에 대한 상징과 은유, 인종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많은 부분들이 버무려져 있다. 언뜻 보기에 영화 내에서 하나 하나 상징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놉의 이야기는 너무 거대하고 장황하게 잡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 하나 풀어서 놓고 본다면 놉의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장황하지도 허황되지도 않고, 오히려 조던 필의 영화들(겟아웃, 어스)에서 이어지는 분명한 경향성과 계보를 걷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과도하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감독은 장르적인 문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요소들을 비틀어 배치하고 관객에게 그걸 엮는 재미와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놉은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괴수물'이다. 그것이나 에일리언, 프레데터와 같은 영화들처럼 사람들을 죽이는 그로테스크한 괴수가 등장하고, 그것과 싸워 살아남는 과정을 영화는 다루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놉이 괴물이 나오는 괴수물의 장르 공식을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놉은 영화의 중간까지는 외계에서 온 존재와 외계인이 일으키는 미스터리에 대해서 다루는 것처럼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SF 장르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본다면 외계인과 괴물이라는 요소들은 묶일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외계인을 다루는 이야기는 어떤식으로든 '아젠다'가 존재하고, 그것이 괴수물과 다른 부분이다:예를 들어 고전 SF 영화인 지구 최후의 날을 보자. 외계인은 화평을 가져오려 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공포가 파멸을 부른다는 이 고전 SF 영화에서 외계인이 들고온 이 아젠다는 분명하게 냉전, 핵전쟁과 멸망의 공포에 근거한 아젠다였다. 이런식으로 외계인의 등장은 우리가 갖고 있는 내부적인 아젠다와 우리 자신을 대면시켜 모순 또는 조화를 이루는데 많은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아젠다는 문명화된 존재가 아니면 세울 수 없는 추상적이거나 고차원적인(정복, 평화, 공존, 전쟁, 갈등 등) 것들이 상당수인데 이는 문명과 문명의 충돌을 통해 사회가 갖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거나 드러내어 관객의 공감을 유발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수물은 다르다. 괴수물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기원(외계에서 왔는가, 아니면 원래 이 세계에 숨어있는가)이 아닌, 그것이 작동하는 메카니즘이다. 그들은 분명하게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고, 그 생태계는 현실의 생물들의 메카니즘을 모방한다. 하지만 그 모방의 과정에서 몇몇 요소들을 그로테스크하게 확대 재생산하여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한다. 에일리언의 예를 들어 보자:에일리언에서 제노모프는 복잡한 생식 과정(알 -> 페이스 허거 ->체스트 버스터->성체 제노모프) 거치며, 제노모프의 디자인 자체가 남성기와 여성기의 뒤틀린 이미지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과 생식, 탄생이라는 전체 프로세스의 뒤틀린 메타포라는 것은 분명하다. 즉, 괴수물은 현실 생물이 갖고 있는 요소들을 기괴하게 비틀어서 재생산하며, 그것은 생물이 갖고 있는 생태라는 규칙에 얽메인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영화 놉으로 돌아와보면, 이 영화가 어째서 외계인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고 괴물을 다루는 영화인지 분명해진다. 진 자켓에게는 아젠다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사냥하고 포식할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조던 필이 여기에 '아젠다 없음'과 '괴수의 생물적인 부분'을 '영화사'에 결합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독의 독특한 관점이 놉을 다른 괴수 영화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로 만들어낸다.

놉이 분명 영화사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인용(최초의 영화, 말 목장과 동물 스턴트, 동물 배우 등)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그것이 진 재킷이라는 괴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뚜렷하게 보여지진 않는다. 하지만 몇몇 상식적인 가정과 영화사적인 접근을 전제로 하고 본다면, 놉의 전체 그림이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놉이 괴수물이라 해도, 놉에서 주인공 집단의 목표는 일반적인 괴수물에서 보여지는 괴수의 사냥과는 차이가 있다. 주인공 아버지는 분명 괴수에 의해서 죽었지만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사고였고, 원한을 갚자고 이야기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6개월)이 흘렀기에 영화는 진 재킷을 향한 직접적인 분노의 감정선을 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괴물을 추적하는 것은 괴물이 '실존한다'라는 것을 증명하여 유명해지고자 하는 일확천금의 접근이 더 강하다. 이들의 촬영기법이 발전하고 이해도가 올라갈 수록, 그들의 목표인 진 재킷의 촬영과 부와 명성에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서사의 과정들에서 촬영감독과 수동 크랭크식 촬영장비가 등장하면서 확연하게 영화사와 영화 놉 사이의 맥락이 선다는 것이다.

어째서 최초의 영화(흑인 기수가 말을 타는)와 영화적인 의의, 동물과 괴수의 존재가 놉이라는 영화에서 한 데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일까? 놉에서의 주인공들이 찍으려 하는 영상은 고전적인 영화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기원에서 출발한다. 다른 영화사적 사례로 뤼미에르 형제가 찍어 올린 기차의 출발을 예로 들어보자:단지 기차의 출발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수많은 관객들은 충격을 받거나, 실제 기차가 관람석을 향해 돌진하는줄 알고 도망치는 등의 해프닝을 보였다. 초창기 영화들은 이런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서사가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일종의 첨단 어트렉션이었다. 최초의 영화인 달리는 말과 흑인 기수, 혹은 기차의 출발처럼 말이다. 일상에서 보기 드문 상황을 찍어서 유희거리로 소비하는 것, 그것이 주인공들이 하려는 촬영 행위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어트렉션으로서 초창기 영화가 놉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촬영감독이 편집을 하고 있는 육식동물의 포식장면들은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고 포르노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박하고 날 것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초창기 영화들처럼 편집없는 단순한 행위의 재현이라 할 수 있는데, 촬영감독이 앞으로 찍을 진 재킷의 포식장면들에 대한 은유이자 복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트랙션으로 분명하고 뚜렷한 메타포는 놉 내에서 동물을 소비하는 사건이나 상황들이다. 주인공이 헐리웃 영화를 위해서 말농장을 운영하는 점, 유명한 시트콤에서 침펜지 고디가 사람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한 점, 주프가 죽기전 말을 이용해서 진 재킷을 끌어들이려 하는 점 등등이 그러하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진 재킷 외에도 고디와 말 농장의 다른 말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영상 - 어트랙션 - 동물 - 소비에 대한 의미망을 구축하려 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바로 '나쁜 기적'이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주인공 여동생에게 묻는 것처럼, 나쁘지만 기적처럼 사람을 매혹하는 관념이나 현상을 영화에서는 나쁜 기적이라 이야기한다. 영화 놉에서는 그것이 진 재킷이고, 진 재킷은 고디로, 다른 말들로, 그리고 동물의 포식으로, 촬영감독이 보는 투박한 초기 영화로 거대한 의미망을 구축한다. 이 의미망을 따라가보다 보면 나쁜 기적이 의미하는 바가 다소 명확하게 드러난다:나쁜 기적은 일어나면 나쁜일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시각을 매혹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자극이다. 촬영감독이 찍는 영상들처럼, 우리는 거대한 동물을 먹는 뱀의 포식장면들처럼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극적이며 날 것이지만 우리의 눈을 때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에너지의 과잉과 파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순환 사이클의 극단적인 확대 재생산 등등, 우리는 이러한 나쁜 기적의 개념을 '그로테스크'라는 다른 단어로 칭할 수 있다.

'그로테스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과 죽음을 극단적으로 뒤튼 것을 총칭한다. 그리고 그로테스크를 즐기는 문화는 신화에서부터 근대로, 그리고 현대로 이어진다. 근현대 대중문화에서 그로테스크의 소비는 꽤나 역사가 깊었다:죽은 사람을 관람하는 프랑스 파리의 부검소 문화나 피와 폭력을 묘사했던 그랑 기뇰 등등은 대중문화가 확립되는 초창기에도 그로테스크는 중요한 소비 요소 중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기차의 도착과도 같은 초창기 영화들도 기차가 들어오는 충격적인 장면을 재현함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어트랙션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재현이나 구성 이전에 그로테스크를 필름에 담아두는 원시적인 영화의 개념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미지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이 진 재킷의 영상을 찍고자 하는 것은 일확천금인 동시에 초기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감독은 인종과 공간을 추가적으로 설정한다:흥미로운 점은 영화에서 주 동력을 구성하는 인물들이 미국 사회의 메인 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백인이 아닌 흑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히스패닉, 아시아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촬영감독이 백인이긴 하지만, 그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외부인'이자 '영화계 인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의 인물로 볼 수 없다. 또한 헐리웃과 서부라는 공간과 맞물리면서 추가적인 맥락을 형성한다:대중 영화의 공간인 헐리웃과 일확천금의 공간인 서부가 결합하면서, 이는 일종의 서부극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종합하자면 영화 놉은 일종의 초기 영화에 대한 헌사를 괴수물의 형태로 풀이한 영화이며, 추가적으로 거기에 미국 사회의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관점을 담아 해석한 작품이다. 겟 아웃에서 어스까지 조던 필 감독은 자신이 본 것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합쳐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냈고, 그것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영화사적인 맥락이나 다른 이미지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놉은 괴수물로 훌륭한 영화이다. 그리고 놉의 미덕이란 '뻔뻔함의 미학'이다: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보여지는 사각 물체가 사실은 진 재킷의 눈동자고, 그 진 재킷의 사냥 메카니즘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감지하여 사냥을 한다'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영화 미드소마의 테피스트리 처럼 뻔뻔하게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메카니즘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미드소마가 복잡한 이미지를 엮어서 기괴함의 컨텍스트를 구축했다면, 놉의 경우에는 연출과 카메라, 그리고 사운드 디자인에 많은 방점을 찍는다. 전자기기를 멈추게 하는 진 재킷의 능력 때문에 기괴하게 느려지는 효과음과 음악들, 바람부는 날에 한 점 움직임 없는 구름, 전혀 유기체라 느껴지지 않는 진 재킷의 디자인과 그것의 포식장면 등등은 어떤 사전지식 없이도 훌륭하게 기묘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가장 압권인 것은 진 재킷이 큰 소리 없이 부드럽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광경들일 것이다. 거대한 UFO처럼 보이는 육식 동물이 뻔뻔하게도 산등성이와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광경들은 마치 호랑이와 같은 거대한 육식동물의 날렵함과 은밀함을 금속과 비행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뻔뻔하게 구현하여 매우 인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더 뻔뻔하게 진 재킷이 자신의 유선형 몸체를 드러내는 광경에는 독특한 인상을 심어준다.

결론적으로 영화 놉은 훌륭한 괴물 영화이며, 조던 필의 영화 연출과 이미지 구성 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는 많은 이미지들과 유기적인 관점들은 상당히 흥미롭긴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다. 단순히 괴물 영화로 봤을 때도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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