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http://leviathan.tistory.com/1681)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임무 수행 도중 약 30년 전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고 충격적으로 출산의 흔적까지 찾아낸다. 리플리컨트가 출산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되므로 이를 덮으려는 경찰 조직과, 그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 더욱 완벽한 리플리컨트를 거느리고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K’를 쫓는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리플리컨트의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수록 점차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K’는 과거 블레이드 러너였던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만나 전혀 상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는 진짜와 가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안드로이드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을 무엇이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주요한 능력으로 설정한 점, 가짜 양이 아닌 진짜 양을 사고 싶은 데커드의 고뇌와 피로, 마지막으로 일련의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서 약간이나마 희망 섞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 등을 통해 소설은 철저한 논리적인 흐름과 과학적 가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소설의 핵심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감정의 이입'과도 같은 모호한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필립 K 딕은 이러한 모호성을 통해 진짜와 거짓이 구분이 점점 힘들어지는 산업 문명과 도회적인 고독과 우울감 등을 한 데 어우러놓았으며, 수많은 SF 소설 팬들을 매료시킨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은 리들리 스콧이 위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이 소설을 잘 읽지 않고 원작을 각색하여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점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가 자신의 창작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피로에 찌든 배나온 중년 데커드가 헐리웃 액션 배우인 해리슨 포드로 변하는 등 블레이드 러너는 원작을 모두 뜯어고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의 핵심은 여전히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의 모호성,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에서는 그것이 점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피로감을 독특한 문체로 풀어냈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철저하게 상징의 시각화와 모호한 상징 네트워크에 구성하여 기반하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흥행 대참패로 이끌었지만, 영화사에 길이 남는 SF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여전히 구작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강렬한 이미지들과 상징의 느슨한 네트워크, 그리고 일반적인 장르 영화의 전개와는 다른 비정형적인 전개들까지. 좋게 이야기하면 개성이 넘치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대중들에게 먹힐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데에 가장 적격은 바로 드니 빌뇌브이다:드니 빌뇌브는 일반적인 영화 시놉시스들을 미장센과 프레임, 비주얼을 이용해 한바퀴 꼬아놓는데 재능이 있으며,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그 재능은 어느정도 발휘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드니 빌뇌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이 십분 발휘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독창적인 재해석들과 이미지들이 원작에 사로잡혀 희석되었다는 느낌이다.


1982년 블레이드 러너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가 우리에게 약속한 미래는 추적거리는 중금속 산성비와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퇴폐적인 네온사인들, 그러한 암울한 세계에 바벨탑처럼 위압적으로 서있는 마천루였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드니 빌뇌브는 우리에게 자연물이 모두 죽어버린 인공물의 미래를 약속한다. 오프닝 시퀸스의 광활하게 펼처진 합성농장들의 유리 온실들,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들과 퇴폐적인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도시, 도시 너머의 쓰레기장들 등등 영화는 자연물의 존재를 완벽하게 배제한다. 그리고 이 인공물의 이미지들 속에서 자연은 죽었거나(사퍼의 집 앞에 놓여있는 하얗게 고사한 나무, 닳고 닳아버린 목마 인형) 허구(스텔린의 기억 제작소 시퀸스 같이)에 불과하다.


이런 철저한 인공물의 세계는 원작 소설과 전작의 테마인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진짜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전작이 시각적 상징을 통해서 데커드가 인간인지 자체에 의문을 갖게끔 만드는 등 서사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면, 2049는 영화 내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며 서사의 모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2049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압도적인 인공의 풍경이다:영화는 거대한 인공의 풍광 속에서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다. 기하학적이고 압도적인 도시 건물들에서부터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폐허와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라져버린 호텔까지, 영화의 모든 이미지들은 피로감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2049의 등장인물들 모두 어딘가 피로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이미 자신을 둘러싼 풍광에 압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49는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보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전작이 오프닝 시퀸스에서 눈이 등장하거나 타이렐의 안경(나중에 로이는 타이렐의 눈을 엄지로 터뜨린다), 데커드가 레이첼을 테스트할 때 스크린을 통해서 바라본다던가, 인간과 합성인간을 구분하는 보이그트 캄프 시험이 동공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 등등에서 무언가를 본다라는 시각적 인지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산업 문명과 매스 미디어의 등장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다채롭고 화려한 시각 자극을 대중에게 선사해왔기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닌 '스크린'이나 '안경'을 통해서 거쳐서 보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인공성에 전작은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2049의 보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는 전작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부분도 있지만(월레스 비서인 합성인간 러브가 드론을 조종하는 안경으로 K를 보는 점, 월레스의 드론 의안, 거실에 놓여있는 K의 책상 위치-창문을 바라보는 등등) 전작에 비해서 더 나아간 부분도 있다:K의 가상 연인은 조이의 경우, 홀로그램으로써 반투명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반투명함이 그녀를 인지하는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실제의 것의 아니라는) 만든다. K는 조이를 사랑하나, 동시에 홀로그램이라는 이 '반투명함'(실제하되, 실제하지 아니한다)이 영화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모호'의 영역으로 이끈다. 또다른 모호의 이미지는 물을 통해 반사되는 빛과 어둠의 일렁거림이다:월레스의 집무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빛의 반사가 아닌 빛과 어둠의 교차하는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서부터 2049는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전작의 레이첼은 데커드와 관계하여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경찰국장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경이며,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왜냐면 진짜와 거짓은 분명하게도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돌하게도 2049는 바로 이 진짜와 거짓을 섞어버리고, 그 혼합에서 무언가 새로운 진짜와 희망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K는 프로그래밍 된 대로 행동할 뿐인 가상 연인 조이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짜라 할 수 있을까, K가 가진 주입된 기억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들은 과연 거짓이었을까, 합성인간과 인간이 사랑하여 낳은 자식은 과연 거짓일까. 진짜와 거짓의 이분법이 아닌 진짜와 거짓이 섞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2049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기억이 존재한다:영화는 본다는 행위와 함께 기억과 기록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스텔린 박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억의 핵심은 불분명하며 흐릿하고 뒤섞여있다는 점이다. 대정전으로 모든 데이터들이 유실되었을 때, 구세대적이고 불분명한 아카이브는 남아서 후세에 기록을 전파한다. 기억이 단순히 과거 사실의 인지 그 이상을 넘어서 시간에 의한 필연적인 소멸에 저항하고 흐름을 거스르는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기억이 설령 K에게 주입된 것이라 하더라도, K는 그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진짜 데커드의 딸이 누구인지를 추론해내게 된다. 그것이 설령 거짓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K는 거기서 감정을 이입하여 무언가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에 자신만의 야심을 섞어서 만든 훌륭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전작이 그랬듯이 2049 역시도 이미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있는 작품이며, 감상자의 능동적인 해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2049는 전작을 너무 충실하게 따른 나머지 방대하고 느슨한 서사를 만들어버렸다. 장르 영화적인 몰입이 전혀 없고 도시의 살인적이고도 위압적인 풍광 아래서 관객마저도 같이 신음하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또한 전작에 많은 부분을 답습한 나머지, 이미지들이 너무 방대하게 퍼져있다는 것도 문제다. 만약 기억과 진실-거짓의 관계에 대해서 조명하고자 했다면, 차라리 전작에서의 이미지들(특히 쓸데가 하나도 없었던 리들리 스콧 특유의 종교적인 이미지들)을 대거 처내고 거기에 초점을 맞췄으면 훨씬 괜찮았으리라 본다.


결론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블레이드 러너 전작의 완벽한 재림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좋아할 것이다. 문제는 블레이드 러너가 세기말과 디스토피아적 세계, 모호함에 대한 이미지로 재평가 받을 여지가 있었다면 2049에게는 그런 재평가 기회가 존재하지 않을 거란 점이다. 거기에 건질 것이 충분히 많이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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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어렸을 적 자주하였던 가위 바위 보에는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게임 시스템이 내포되어 있다:가위는 보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긴다. 서로 맞물리는 상성을 통해서 하나가 완벽하게 게임을 지배할 수 없는 팽팽하게 맞물린 긴장 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변덕스러운 확률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위 바위 보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상대가 과거에 선택했던 선택지를 두고 무엇이 앞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추론하고 자신의 선택을 수정해나간다. 이 선택 수정의 과정을 통해서, 게임은 단순하지만 일종의 심리전 형태를 띄게 된다. 가위 바위 보의 메카니즘은 이미 수많은 게임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으며, 특히 대전액션의 경우에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가 타격 - 홀드 - 잡기 형태의 가위 바위 보 상성을 완벽하게 재현한 적도 있다. 혹자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가 '초보랑 싸우면 어떤 선택지를 꺼낼지 몰라 무서운 게임'이라고도 평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콤보 도중에 상대의 콤보를 끊고 서로 주고 받는 공방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반다이 남코와 닌텐도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격투 게임인 폭권의 확장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은 철권 프랜차이즈와 포켓몬 프랜차이즈의 융합을 다루고 있다. 혹자는 과거 나왔었던 포켓몬 스타디움의 계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포켓몬 스타디움 자체가 정진정명한 3D RPG 쪽에 가까웠단 것을 생각한다면 대전 액션의 장르적 양태를 빌어 포켓몬 게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최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철권스러운 부분은 모션 부분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오히려 폭권 기존 대전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페이즈 전환이라는 시스템과 가위 바위 보 상성 시스템을 깔아둠으로써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을 만들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가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를 포켓몬 배틀의 감각을 그대로 대전액션 게임으로 채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폭권 토너먼트 공방의 핵심은 가위 바위 보처럼 서로 맞물리는 공격-카운터 공격-잡기의 상성관계다.(기존 포켓몬의 속성간 상성은 폭권에선 100% 배제되었다) 공격은 잡기를 이기고, 카운터 공격은 공격을 이기며, 잡기는 카운터 공격을 이긴다. 이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의 타격 - 홀드 - 잡기의 상성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공격간의 상성은 유사하더라도 실제 게임에서 구현되는 공격간의 상성은 완벽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의 공격간 상성은 공방 중에 끊임없이 오가는 선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상대에게 두드려 맞는 중에도 플레이어는 홀드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에 상/중단을 홀드할 것인지 아니면 하단을 홀드할 것인지를 결정하여 역습을 펼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한번의 콤보로 출혈을 강제하기 보다는 공방 양측 모두 콤보 도중 선택지를 고르는 심리전이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폭권 토너먼트의 경우는 콤보 루트가 고정되어 있고, 공격 당하는 중에는 끝까지 공격을 맞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오히려 콤보 도중에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하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와 다르게, 폭권의 경우에는 처음 서로 선택지를 골라서 공격을 주고받는 한 합에서 공격 양상이 결정된다. 즉, 폭권 토너먼트는 가위 바위 보 한판으로 다음 흐름이 결정되는 형태라면,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공방 중에도 끊임없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게임 양태를 결정하는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누군가 폭권 토너먼트를 가리켜 생각외로 턴제 액션 게임 같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했다:게임은 상대의 선택지를 잘 살펴보고 선택지 3개 중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두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기상공방 때 두드러지는데, 기존의 게임들이 기상 무적시간+기술의 무적시간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기상할 수 있는가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눈치 게임이었다면, 폭권 토너먼트에서는 그 기상공방으로부터 새로운 한 합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기상 공방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대신에 게임은 이러한 3지 선다형 공방에 모든 초점이 맞을 수 있도록 게임 전반을 간소화 시켰다:폭권 토너먼트가 국내에서 상당한 악평(?)을 듣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버튼 대충 몇개 누르면 콤보가 다 이어진다'라는 것인데, 실제로 폭권에서는 풍신/파동권 같은 방향키 커멘드 없이 한 방향 버튼과 공격 버튼 조합으로 자동 콤보가 구성되거나 기술이 나가는 포케 콤보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안그래도 콤보에 맞는 도중 중간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임에서 게임을 단조롭게 만든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것처럼 보이지만, 폭권 토너먼트는 여기에 포켓몬 무브 캔슬과 서포트 시스템, 각 케릭터 간의 극명한 개성을 부여함으로써 게임의 공격 시스템을 단조롭게 만드는 걸 피한다. 우선, 포켓몬 무브 캔슬에 대해서 보자:모든 포케 콤보는 콤보 도중에 포켓몬 무브라는 기술(A 버튼)을 통해 캔슬할 수 있다. 이 포켓몬 무브 캔슬은 콤보 도중 자유롭게 캔슬가능(예를 들어, YYYY 포케콤보의 경우, 마지막 Y를 제외하면 1~3단 공격 중 언제라도 A버튼 또는 방향키 A 버튼 조합을 눌러 캔슬할 수 있다)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대폭 늘려준다.


또한 각 포켓몬의 뚜렷한 개성도 게임을 깊이있게 만드는데 한몫한다. 게임에는 총 스탠다드, 테크니컬, 파워형의 3가지 포켓몬이 존재하며 이 포켓몬들은 체력과 시너지 게이지가 모이는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스펙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각 포켓몬들은 무브셋이나 강점/약점이 뚜렷하게 정해져있다:예를 들어 나무킹의 경우, 빠른 속도와 함께 씨앗을 필드에 심어서 상대를 압박하는 고속 설치형 포켓몬이며, 다크라이의 경우 설치형 케릭터 다운 운영과 함께 상대를 암흑 차원으로 끌어들여 전반적인 콤보와 데미지를 늘리는 버프효과를 부여하는 트리키한 포켓몬이다. 기본적인 올라운더형 케릭터인 루카리오를 제외하면 동일한 무브셋이나 운영 방법을 가진 포켓몬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데, 심지어 루카리오와 가장 비슷한 올라운더형 포켓몬인 번치코 조차도 상대가 맞지 않으면 자기 체력을 깎아먹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전투 방식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단순히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의 문제뿐만 아니라 큰 관점에서 게임 운영도 포켓몬의 선택에서 달라진다.


여기에 폭권은 서포트 포켓몬 시스템을 집어넣는다:서포트 포켓몬 자체는 이미 과거의 킹오파나 여타 게임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스트라이커 개념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서포트 게이지를 채우고, 자신이 필요할 때 이들을 부를 수 있는데 단순히 견제용에서부터 콤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용도, 체력 회복, 디버프, 심지어는 더블 점프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누리공) 서포트 포켓몬까지 게임 전개를 다채롭게 하는 양념 구실을 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폭권 토너먼트는 3가지 선택지를 두고 공방이 진행되는, 조작이 단순하지만 케릭터 마다 깊이가 있는 좀 특이한(?) 격투 게임 1 정도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폭권 토너먼트를 포켓몬 배틀을 재현하는 독특한 게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그것은 바로 페이즈 전환이다. 위에 글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폭권 토너먼트는 한 합에서 이길 때마다 그 합의 승리자가 가하는 데미지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근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콤보가 이어질수록 그 콤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안전 장치를 마련해두는 경우가 많다:네더렐름 게임에서는 필살기 게이지를 일부 소비하여 콤보를 탈출 할 수 있는 콤보 브레이커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길티기어나 블레이블루 같은 게임에서도 사이크 버스트로 상대의 콤보 도중 이를 밀쳐내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폭권 토너먼트에도 이러한 기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폭권 토너먼트은 콤보 도중 상대를 밀처내는 전술적인 부분이 아닌 페이즈 전환이라는 큰 흐름의 '전략'에서 플레이어가 운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폭권 토너먼트에는 두가지 페이즈가 존재한다:첫번째는 3차원의 필드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필드 페이즈와 두번째는 기존 대전 격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2차원 평면의 1:1 대결 구도이다. 각각의 페이즈는 일정 데미지를 상대에게 주는 것으로 조건이 되어 전환이 발생한다. 필드 페이즈에서 듀얼 페이즈로 이행될 때 페이즈 전환을 일으킨 게이머는 깎여나간 자신의 체력 중 일정량을 회복한다. 그리고 주로 데미지 누적이 발생하는 페이즈는 듀얼 페이즈다. 개괄만 접해놓고 보았을 때, 페이즈 전환과 페이즈 시스템의 존재는 비직관적이다:어째서 탄막 액션이 일어나는 필드 페이즈와 근접 격투가 주가 되는 듀얼 페이즈가 하나로 섞일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보았을 때, 이 페이즈 시스템은 왜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대한 사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페이즈 시스템의 핵심은 게임의 흐름을 강제로 조절함으로써 게임 플레이 흐름 전반을 안배하는 용도이며, 이는 시스템 개괄을 흩어봤을 때보다 실제 체감할 때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페이즈 시스템에서 중요한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첫번째 일정 데미지를 받을 때 페이즈가 전환된다, 두번째 필드 페이즈에서 듀얼 페이즈로 이행할 때 일정 체력을 회복한다. 첫번째는 게임이 데미지를 많이 주는 콤보에 의해서 한번에 게임이 역전되거나 밀리는 상황을 방지한다. 듀얼 페이즈 때 게이머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대 데미지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화려한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상대 공격을 읽고 흐름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콤보라도, 이미 상대가 데미지가 누적된 상태라면 콤보 도중에 튕겨나가면서 강제로 페이즈가 전환되기 때문에 효율을 100%로 이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듀얼 페이즈 이행 시 체력을 일정량 회복하는 것은 게임을 한쪽의 압승이 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아무리 데미지를 많이 주는 듀얼 페이즈에서 밀리더라도, 필드 페이즈에서 착실하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페이즈 전환을 유도하면 역전을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이 플레이어의 계산 아래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며, 약간의 체력회복+상대의 체력 손실+상성 간 우위를 점한 한 합으로 인해서 극적인 역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모든 시스템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폭권 토너먼트는 매번 어떤 선택지를 꺼낼 것인지라는 전술적인 선택과 페이즈 조절 및 체력 관리라는 전략적인 측면 양측 모두에서 매력적인 강점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특히 폭권 토너먼트의 페이즈 시스템은 여타 상성과 게임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게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필드 페이즈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상대를 견제할 수 있으며, 듀얼 페이즈에서는 화려하지만 간단한 콤보와 3지 선다의 공방이 게임을 한쪽의 우위로 이끌지 않게끔 하고 있다. 처음 보기에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폭권 토너먼트는 모든 게임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으며 게임이 3지 선다 공방에 초점을 맞춰져 있기에 초보나 격투 게임 피지컬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여지가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폭권 토너먼트 자체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티가 난다는 점이다:게임 내의 그래픽 디테일은 필드와 포켓몬을 제외하면 극단적으로 낮춰져 있으며 배경의 둥실둥실 떠다니는 사람 텍스처와 모션을 보면 10년전 그래픽들이 떠올라 할 말이 없어질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컨텐츠의 문제다:게임은 분명 잘 만들어졌지만, 그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극히 단순하다. 폭권 토너먼트 원판에서는 1:1 대전 이외에 다른 게임 플레이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디럭스로 오면서 3:3 팀 매치가 추가되기는 하였지만 1:1 매칭에서 크게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디럭스로 넘어오면서 모든 케릭터는 언락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 덕분에 내용이 하나도 없는 스토리 모드나 왜 있는지 모르는 데일리 첼린지 모드를 게이머가 플레이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남은 것은 플레이어 아바타 옷과 멘트를 꾸미는 정도인데, 그 커스터마이즈 폭이 좁고 일러스트 위에 일러스트를 덧입히는 형태로 수집욕이 하나도 안생긴다.


그나마 디럭스로 넘어오면서 좋아진 점은 하나의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1:1 매칭을 지원한다는 점이다:기존의 위유 버전 폭권 토너먼트에서는 로컬 대전의 경우, 프로콘과 위유 패드를 나누어서 한 사람은 위유 패드로, 다른 사람은 TV 스크린을 보면서 플레이해야하는 귀찮은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히지만,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에서는 테이블/TV 모드/무선 통신/온라인 모드 모두 게임을 지원하며, 특히 조작 자체가 단순하다 보니 조이콘 한쪽으로도 충분히 조작가능한 점은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로컬 게임의 경우 분할 스크린보다는 한 스크린에서 두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점은 게임 플레이 시 숙지되어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첫 보기에는 좀 괴상한 물건이긴 하지만, 게임 자체의 흐름은 탄탄하게 잡혀있다고 할 수 있다. 턴제 포켓몬 배틀을 대전 격투 게임으로 훌륭하게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전 격투 게임 자체로도 보았을 때 그 깊이가 있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람과 1:1 대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며, 암즈에서도 아쉽다고 느껴진 컨텐츠 분량 부분이 몇 배로 더 아쉬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매칭하는 것을 즐긴다면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훌륭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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