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크 2편, 어크 리벨레이션만 플래이했습니다. 3편은 플래이해보지 못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4는 어크 3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존재가 드러났으며, 어크 팬들에게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것이, 어크 4 발매 당시 어크 3 개발 시점에서부터 이미 4편은 만들고 있었다는 제작진들의 발언으로 인해서, 4편이 2편처럼 스핀오프작들[각주:1]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시스템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3편의 제작 중 '예견된 실패' 때문에 4편을 서둘러서 발매한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각주:2] 또한 동시에 이야기는 훌륭했지만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실패했던 리벨레이션의 존재나, 전반적으로 기대와 다르게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던 3편, 그리고 제작진들이 서둘러서 내려는 낌새가 보이는 4편으로 인해서 시리즈 자체가 대단히 위태위태한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는 것도 팬들의 우려가 드러난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다르게, 아니 이러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듯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는 정말 재밌는 작품이다;아마 재미 자체로만 따진다면, GTA5와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이 주는 충격, 즉 GTA5가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게임을 하게 만든 것에 비하면, 같은 오픈월드 장르로서 어크 4의 세계는 오히려 과거의 게임들이나 기존의 어크 시리즈에 기초하고 있다.[각주:3] 하지만, 어크 4의 특징은 단순하게 게임을 시스템적으로 재밌게 구성했다는 점을 떠나서, 해적 시대라는 테마와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행위들, 그리고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들어가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어서 몇몇 문제점들(특히 버그 등등의)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어크 4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대해적 시대다. 아름다운 카리브 해를 배경으로 상선을 약탈하고 엄청난 부를 쌓은 무법자들이 활개친 시대를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발터 벤야민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 에서 서술하였듯이, 그들이 법이라는 제약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법자에 대한 로망이나 판타지는 대중문화가 등장한 이후로, 줄곧,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되었다:어떤 때는 그 얼굴이 총을 든 카우보이였고, 어떤 때는 터프하며 시크한 전문 은행강도였고, 또 다른 시대에는 낭만적인 대도의 얼굴을 했을 뿐이다. 어크 4는 그러한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무법자의 판타지를 차용하고 그들이 과거에 했을 법한 행위들과 스토리, 배경설정들,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들을 게임 내에서 재현한다. 그렇지만 서부시대의 황혼과 낭만, 그리고 마지막을 다룬[각주:4] 레드 데드 리뎀션이 거대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할 거리들을 배치한 것과는 다르게[각주:5], 어크 4와 대해적들의 시대를 구성하는 것은 철저히 인위적이다:빠른 이동으로 불리는 게임 시스템이 사실은 애니머스라는 게임내 가상현실 시스템을 '해킹'하여 가능한, 일종의 빨리감기 라고 하는 지점이라고 설정하거나, 애니머스라는 가상현실 시스템의 조각들을 곳곳에 흩뿌려 넣거나 등등.


하지만, 어크 4가 지향하는 점은 GTA5나 레드 데드 리뎀션의 자연스러운 '풍경'들,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다[각주:6]:오히려 해적이라는 테마 아래서 해적이 할만한 것들, 해적 판타지를 채현하는 일종의 테마파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역사라는 요소를 이용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어크 시리즈의 핵심(시대를 즐기는 테마파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테마파크로서의 어크 시리즈가 가장 빛났던 부분은 바로 '역사적 대도시'의 존재다.[각주:7]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어크 4에는 대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각주:8] 대신에 어크 4에는 해적이라는 테마를 구현하는 주요한 배경이자 장소는 바로 '바다'다. 어크 4의 바다는 넓게 트여있는 동시에, 해적질의 대상인 상선과 군함들이 활개치는 공간이자, 수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는 것만으로 넋이 나갈것 같은 어크 4의 바다는 그래픽적인 부분에서도 훌륭하지만, 이것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변화무쌍한 날씨의 묘사이다. 어크 4의 바다에서 날씨는 단순히 평면적인, 그래픽적인 변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해일의 존재나 배에 큰 피해를 입히는 용오름의 존재, 심지어는 높은 파고, 즉 파도의 높이가 일종의 '엄폐물' 같은 역할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공간인 바다을 이용해서 어크 4는 게이머들이 즐길거리를 유기적인 구조로 구축한다:요새를 격파하면 수집 요소들의 위치가 드러난다던가, 항해 중에 포경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포경을 하거나 난파선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던가 등등.


또한 바다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활동인 항해와 해전은 세심하게 다듬어져있다. 어크 3에서부터 도입된 해전의 존재는, 사실상 게임의 테마로부터 어느정도 동떨어진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어크 3가 제시한 해전의 완성도와 별개로, 미국 혁명과 항해와 어떤 밀접한 관련이 있겠는가? 하지만 대해적시대와 항해, 해전의 결합은 게임 내에서 테마와 게임 플래이 사이의 높은 결합과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해적 답게 해전으로 군함을 격파하고 선상 전투를 벌여서 물자를 약탈한다. 그리고 이 물자를 팔아서 배를 강하게 만들고, 무기를 사거나, 수집품을 사는 등의 행위를 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 해전을 벌이는 것을 반복한다. 아주 단순한 흐름이기는 하지만, 어크 4는 이 단순한 반복마저도 재밌을 정도로 해전을 짜임세 있게 구축한다. 게임에서 플래이어는 인간이 아닌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기는 하지만, 게임은 배를 움직이는데 있어 최대한 복잡한 요소들을 쳐냄으로서 직관적인 움직임을 보장한다:풀세일-하프 세일-정박 3단기어(?) 넣듯이 속력을 조절하며, 속력이 느릴수록 선회속도가 빨라진다, 바람을 등지면 빨라진다 라는 단순한 원리들이 게임을 지배한다. 하지만 단순한 원리에도 불구하고, 어크 4의 해전은 전적으로 쉽다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배인 잭도우 호는 마개조(?) 덕분에 말도안되는 화력을 자랑하지만, 해상에서 조우하는 군함들은 대부분 3척이나 혹은 그 이상의 수의 대열을 지으면서 이동한다. 그렇기에 1:1의 경우가 아닌, 1:다수의 경우가 게임상 해전의 대부분이며 플래이어는 방심했다간 순식간에 전멸하는 참사를 겪기 십상이다. 이런 지점에서 게임은 난이도 벨런스 조절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해상에서의 할 거리와 다르게, 어크 4는 육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전작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암살미션을 하거나, 애니머스 조각을 모으고, 뱃사람의 노래를 모으는 등등 다양한 할거리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과거 작품들의 최대 강점이었던 역사적 대도시의 탐험은 아쉽게도 이번작에서는 소규모의 형태로 재현될 뿐이다. 물론 그 당시 카리브 해에 거대한 도시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크 4도 이러한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는지 도시의 존재를 최대한 줄이면서 '탐험'이라는 테마 아래서 공간을 다양하게, 그리고 분절적으로 구축한다. 게이머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작은 섬들과 마을들, 그리고 도시, 유적들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탐험하게 된다. 어찌보면 정신산만해질 수 있는 부분이며 동시에 게임의 진행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크 4는 손쉬운 빠른 이동과 항해의 즐거움을 강조함으로서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사실, 그렇기에 어크 4에서 육상활동이란 해상활동의 곁다리이자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각주:9]


반면에 스토리 미션의 구도들은 살짝 아쉬운 느낌이 있다. 주요 스토리 미션은 반은 해전, 반은 육상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제는 바로 육상활동으로 구성된 미션들에 있다. 기본적으로 어크 특유의 어정쩡한 미행 미션들(잠입을 하라는건지, 파쿠르로 내려다보라는건지)은 여전히 플래이어에게 큰 고통이다. 물론 이번작에서는 매의 눈으로 마킹하면 벽뒤에 있더라도 시야에 들어온 것으로 간주해서 미행 자체가 쉬워지기는 했지만, 해적이라는 테마와 어느정도 엇나간다는 느낌이 있기도 하다. 게임 내에서 잠입 미션을 주는 경우도 상당한데, 이 경우 파크라이 3의 잠입 기제 '덤불 속에 숨으면 아무도 눈치 못챈다'를 들고와서 상당히 깔끔하게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어크 시리즈는 애시당초에 잠입게임이 아니며, 잠입 매카니즘 자체가 상당히 괴상한 게임이기에 이러한 변화점은 어찌보면 환영할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 측면에서 게임은 해적이라는 테마와 판타지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훌륭하게 비튼다. 시리즈 사상 가장 깨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켄웨이는 '관측소'라는 허황된 꿈을 쫒는 속물적인 황금만능주의자이며, 심지어 스토리 끝까지 암살단에 가입하지 않고, 오히려 암살단-템플러를 오가며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물론 그가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속물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그에게 유쾌한 속성들[각주:10]을 부여함으로서 이 인간을 단순히 역겨운 인간으로 구축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어크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가졌던 결함들[각주:11]에 비교하면 에드워드의 결함은 대단히 크다. 그리고 그의 결함과 부에대한 집착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점점 피해를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부를 얻으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그의 멍청함은 주변 사람들 뿐만아니라 플레이어까지 질리게 만든다. 이렇게 어크 4는 꿈과 낭만, 자유로움이라는 해적과 무법자의 판타지를 이용해서, '왕에게 충성하기 싫어서 해적이 되었지만, 그 자유로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이라는 해적 판타지의 구축과 파괴를 동시에 수행한다.


어크 4의 스토리는 그렇기에 대 해적시대를 관통한다. 사략선[각주:12]들이 사략선이 금지되자 해적이 되고, 해적이 전성기를 맞이했다가 대해적들이 차례로 몰락하고 블랙 바트-바솔로뮤 로버츠의 죽음과 함께 대해적 시대가 끝을 맞이하는 대해적시대를, 에드워드 켄웨이는 모든 주요한 사건들[각주:13]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대해적시대의 본질에 접근한다. 왕과 국가를 등지고 자유를 추구했던 인간들이, 단지 도둑질과 술주정으로 방만하게 자유를 소비했을 뿐이라는 점, 그리고 에드워드 켄웨이도 그 바람 속에 휩쓸리다가 소중한 것들을 잃고 깨달음을 얻는 것, 암살단의 신조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3부작에 따라 점점 완숙해지는 에지오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에드워드 켄웨이는 대단한 케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극후반에 성장하는 부분이 너무 급하게 전개되는 지점이나, 나머지 케릭터들이 에드워드의 성장을 위한 일종의 장치적인 존재로 활용되는 점은 아쉽다라고 할 수 있다.


어크 4는 소셜 게임 및 게임 바깥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실험적인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상대 함선을 나포하여 함대를 꾸리고, 이를 통해서 돈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브라더후드에서부터 도입된 멀티의 존재는 여전히 건재하며, 재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만.


어크 4에 큰 흔집을 내는 요소는 바로 버그다. 물론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버그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자잘한 버그들, 텍스쳐 사이에 끼인다던가, NPC가 스크립트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체크포인트를 다시 불러와야하는 등 귀찮게 만드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또한 한글판의 경우에는 끔찍한 한글화라는 문제가 덤으로 붙는다. 수배 레벨을 원하는 레벨로 번역을 해놓는다던가...많이 심각하다. 물론 한글화 자체를 안한거 보다는 훨씬 좋은편이지만.


결론적으로 어크 4는 대단히 재밌는 게임이다. 물론 아예 완벽한 게임도, 새로운 게임도 아니다. 하지만 게임은 세심하게 짜여져 있으며, 대해적시대에 대한 판타지와 로망을 충족시키는데 성공한다. 또한 테마파크로서 충분히 즐길거리가 많은 점, 아니 오히려 즐길거리가 넘쳐나서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13년 막바지인 현재, 왠만한 대작 게임들이 안나오거나 상당히 망가져서 나오고 있는 와중에 나온 즐길만한 게임이라는 점도 어크 4를 추천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1. 레벨레이션과 브라더후드 [본문으로]
  2. 흔히 어크 3의 시대가 미국혁명-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시대의 도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심장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 지점들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3. 어크 시리즈 전통(?)의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베이스로 배경설정 때우기 등등에서 메인 스토리-세계를 구성하는 서사 사이에 이원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어크 시리즈의 경우, 현대-과거의 서사가 서로 분리-교차되는 지점들 때문에 서사가 매우 복잡해서 그것을 이해/느끼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기도 헀다. [본문으로]
  4. 무법자들을 모두 죽여서 최후의 무법자가 되버린 자의 최후, 시적인 아름다움. [본문으로]
  5.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사람이 도움을 청한다던가... [본문으로]
  6. 살아있는 세계, 일종의 자기완결적인 세계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게임적인 요소의 차단, 어크 4에서 같은 게임적인 시스템을 허용하는 지점들은 자연스러운 세계에서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본문으로]
  7. 가장 높은 지점에 존재하는 뷰 포인트-동기화시스템은 탁트인 전경을 제공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본문으로]
  8. 어찌보면 어크 3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과거의 어크 시리즈의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9. 해적이 바다가 주 무대가 되야하지 않을까? 도시가 주무대로 활동하는 해적이란 사실 어찌보면 웃기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본문으로]
  10. 대사라던가 등등 [본문으로]
  11. 알테어-오만함, 에지오-복수에 눈멈, 코너-다혈질 [본문으로]
  12. 국가가 공인한 해적. 다른 나라의 함선을 약탈하는 선박들을 지칭함. [본문으로]
  13. 사략선이 해적이 되고, 해적 공화국이 세워지며, 해적 사면령, 에드워드 티치의 죽음, 그리고 대해적 시대의 종말을 고한 바솔로뮤 로버츠의 죽음까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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