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그냥 스포일러 덩어리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스포합니다.

*두번째 문단부터 초강력한 스포일러 던질겁니다.

*전 경고했습니다.




바이오쇼크의 스토리가 재능 있는 자들의 파업과 사회가 이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아인 랜드의 아틀라스적인 발상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야기였다면, 인피니트의 스토리는 쇼비니즘과 제노포비아 등을 국가의 다양한 모습을 평행우주라는 SF적인 장치를 통해서 비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쇼크 원작이 게이머가 눈치채못하게끔 치밀하게 복선을 깔아두면서 이를 단하나의 충격적인 반전[각주:1]으로 터뜨리는데 집중한다면, 인피니트의 이야기 구조는 만천하의 모든 것을 까발려버리는 부분[각주:2]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시작부터 만천하에 모든 것을 까발리는' 게임의 이야기 구조는 게이머에게 처음부터 게임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며 세부적인 디테일의 모든것이 맞물려 들어가는 구조를 취한다.[각주:3] 물론 인피니트 역시 전작의 스토리의 미덕인 '게임 시스템과 스토리 사이의 밀접한 연관'은 인피니트 내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인피니트의 스토리의 본질은 국가, 즉 미국에 대한 쇼비니즘을 뛰어넘어서 종교화되고 광신화된 애국심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인피니트는 일방적으로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적인 접근을 취하지 않는다. Vox Populi(민중의 목소리 라는 의미의 라틴어)의 혁명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부분, 콜롬비아의 주민들의 콤스톡에 대한 부커 드윗의 맹목적인 증오, 순수한 어린 양에서 점점 세상의 더러움에 찌들어가는 앨리자베스의 케릭터 변화까지 인피니트는 국가(혹은 그에 대한 광신)가 무조건 잘못했으며 이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이며 천진난만한 아나키즘적 발상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는 사실 콤스톡이 부커 드윗이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된 '또다른' 부커 드윗이었다는 점을 통해서 극대화 된다.


부커 드윗과 콤스톡의 동일성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두개의 측면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운디드 니 대학살[각주:4]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부커 드윗은 이후 PTSD에 시달리면서 술과 도박에 찌들어서 지내게 된다. 부커 드윗의 운디드 니 대학살의 경험과 PTSD는 미국(혹은 국가)의 죄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그에게 찾아온 '세례식'[각주:5]이란 그 죄의식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커 드윗은 이를 부정하고, 콤스톡은 이를 긍정하면서 이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콤스톡과 부커 드윗을 현재의 그들로서 존재하게 된 주요한 모티브가 바로 '죄의식'이라는 것이다.


부커 드윗은 이후 핑커튼 탐정 사무소[각주:6]에서 일하면서 미국 근현대사에 있어 어두웠던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하지만 새사람으로 거듭난 콤스톡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종교를 만들어내며,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미국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공중도시 콜롬비아를 만들었다. 재밌는 점은 게임의 구조는 콤스톡이 만들어낸 이 화려한 미국의 '테마파크'라 할 수 있는 콜롬비아[각주:7]를 미국의 어두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간 부커가 탐험하면서 그 밝은 이상향 속에서 썩어서 곪아터지고 있던 본질을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롭게 인공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마치 거기 없는 사람들처럼 청소나 잡일을 하는 유색인종들과 외국인[각주:8]들, 운디드 니 대학살과 중국 의화단 진압[각주:9]을 미화시키는 영웅들의 홀에서 정작 콜롬비아의 영웅 콤스톡은 거기없었다고 일갈하는 슬레이트[각주:10], 시간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과 휴식시간을 경매에 붙여서 최저한의 삶을 향한 경쟁에 돌입하는 빈민들 등등을 통해서 묘사되는 콜롬비아는 찬란하고 밝게 빛나고 있는 이상향을 위해 수많은 인간들의 비참함 위에 세워진 모순적이고 뒤틀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두 케릭터가 '죄의식'이라는 모티브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콜롬비아의 존재는 운디드 니 대학살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콤스톡은 그러한 대학살(혹은 국가에 의한 폭력)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종교화된 이상적인 국가를 위해서 다시끔 운디드 니의 학살 같은 국가의 폭력을 반복하고 정당화하며 구조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부커 드윗은 콤스톡과 다르게 이러한 구조적인 긍정과 미화를 거부한다. 애시당초의 그의 존재는 그런 대학살의 경험이 미화되고 씻겨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수 밖에 없는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렇기에 그가 콜롬비아, 즉 또다른 자아의 결정체에 대해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다분히 자기혐오적이며 냉소적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이 둘은 한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데, 둘다 '망가진 인간'형이라는 점이다. 콤스톡의 웅장하고 위대한 선지자적인 이미지는 실상 그가 PTSD에 찌들었다가 세례식이라는 엄청난 마약을 한 약쟁이 선지자[각주:11]에 불과하며 부커 드윗 역시 술과 도박에 찌들어서 자신의 딸(=앨리자베스)을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팔아넘기고 모든 사건의 원흉을 제공한데다가, 그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기억까지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각주:12]


앨리자베스는 이렇게 두명의 아버지 사이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로 화한다. 아버지(부커 드윗)의 구조를 받아 탑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아버지(콤스톡)의 업적과 악행에 충격을 받고 이 둘 사이에서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전혀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각주:13], 이는 기본적으로 그녀의 노력들이 잘못된 식에 다른 수를 집어넣어서 별다를것 없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지막에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를 원인인 '아버지' 콤스톡에게로 돌리는데, 처음에 순수했던 그녀가 콤스톡에 대한 살의를 품는 부분은 아버지들의 죄의식에서부터 비롯된 일련의 비극들이 극단적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힘을 되찾은 앨리자베스에 의해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부커 드윗은 이 모든 비극을 막기 위해 세례식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물에 빠져죽는다 라는 선택지를 선택한다. 이는 한명의 콤스톡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 자체를 제거함으로서 거대한 폭력의 순환고리를 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게임 초창기에는 멀티 엔딩으로 구상된 시나리오가 게임 본편에서는 단 하나의 엔딩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바이오쇼크 처럼 부커 드윗의 선택에 따라 부커가 될 수도, 콤스톡이 될수도 있는 그런 구조를 보여주려고 했던것처럼 보이나[각주:14], 다양한 선택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엔딩을 채택한 이유는 이렇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단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라는 숙명론적인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해본다.


1편에 비해서 스토리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면, 게임의 결말이 갖는 '애매모호함'을 지적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1편의 결말이 보여줬던 '해결책'은 그것이 게임이 제기했던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인피니트의 결말은 하나의 비극에서 분리된 두개의 케릭터, 두개의 국가가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낸 비극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분리되기 직전에 자살을 해야한다는, '해결책'이라고는 하기 미묘한 다소 극단적인 결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엔딩 스탭롤 이후에 보여주는 부커가 안나(=앨리자베스)의 요람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컷을 끊는 장면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갈수 밖에 없다는 쪽을 긍정하는 느낌이나, 이를 그렇다고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엔딩 이후의 보너스 영상의 모호함이 너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게임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치밀하고 교활하게 구성이 되어있지만, 혁명적이지는 않다. 인피니트 자체에 대한 다소 공정하지 못한 평가일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서브컬처 내에서 이러한 평행세계를 다루는 클리셰적인 장치들이 인피니트 내에서도 다소 비슷한 장치들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보여준 평행세계에 대한 사랑(?)은 상당히 심도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인피니트 이전에 등장한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들[각주:15]을 고려해볼 때 인피니트가 한발 '늦었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인피니트 자체가 서구권 게임 중에서는 거의 최초로 평행세계라는 컨셉을 이용해서 정밀하고 교활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모티브와 구조적인 측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노에인'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각주:16]


하지만, 인피니트의 미덕은 혁명적인 스토리가 아닌 정교하고 치밀하게 쌓아올려진 스토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단순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파쿠리 일변도로 변질되고 있는 게임 스토리에 경종을 울리는 훌륭한 작품이며, 10년 20년이 지나서도 스토리에 대한 치밀한 구성으로 인용될 작품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1. Would You Kindly? [본문으로]
  2. 평행우주에 대한 암시, 부커 드윗이 다른 평행우주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여러 장치들, 어째서 콤스톡은 부커드윗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루테스 자매 등등 [본문으로]
  3. 큰 스토리에서부터 게임의 시스템, 심지어 게임 내의 세세한 스토리나 시스템 장치까지. [본문으로]
  4.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A%B4%EB%94%94%EB%93%9C%EB%8B%88%20%ED%95%99%EC%82%B4%EC%82%AC%EA%B1%B4?action=show&redirect=%EC%9A%B4%EB%94%94%EB%93%9C%20%EB%8B%88 [본문으로]
  5. 기독교적 의미에서 세례식은 물을 통해서 죄를 씻어내고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본인이 기독교도가 아닌고로 자세하게는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본문으로]
  6. http://rigvedawiki.net/r1/wiki.php/%ED%95%91%EC%BB%A4%ED%86%A4%20%ED%83%90%EC%A0%95%20%EC%82%AC%EB%AC%B4%EC%86%8C [본문으로]
  7. 심지어 이 찬란한 미국의 이상향의 주요 운송수단은 롤러코스터(=스카이 라인)이다. [본문으로]
  8. 주로 아일랜드인. [본문으로]
  9. 평행세계의 콤스톡과 도시 콜롬비아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미국 정부와 대립하였고, 결국은 콜롬비아가 미국에서 독립하게되는 구실로 작용하게 된다. [본문으로]
  10. 아이러니 하게도 콤스톡은 거기 있었다. 재밌는 점은 슬레이트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본문으로]
  11. 이점에서 선지자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실물 보다 큰'(http://leviathan.tistory.com/1665)의 약쟁이 선지자 에드와 콤스톡의 이미지가 겹친다고 할 수 있다. 둘다 거대한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잘것 없다. 심지어 콤스톡이 부커와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는 분노한 부커 드윗에 의해 우스꽝 스럽게 분수에 머리를 박도 죽는 장면 등등에서 '실물 보다 거대한' 인물임을 시사한다. [본문으로]
  12. 인트로에서 '피험자는 자신의 없는 기억을 조작하게 될 것이다' 라는 구절은 바로 이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본문으로]
  13. '민중의 목소리'에 대한 그녀의 순진한 믿음과 중국인 기술자를 구하려고 여러번 이 평행세계 저 평행세계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 등등 [본문으로]
  14. 실제 게임 내에서 선택지가 다수 존재하나, 그것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본문으로]
  15. 크로스 데이즈, 노에인, 슈타인즈 게이트 등등 [본문으로]
  16. 평행세계의 현실을 확정짓는 존재, 하나의 모티브에서 갈려나온 두명의 케릭터와 그 둘 사이의 대립 등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