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일로 세계관은 아주 철저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인류와 코버넌트의 접촉 이후로, 인류는 코버넌트의 압도적인 물량에 밀리고 밀려서 차례로 식민지와 주민들을 잃고 있었으며, 모성인 지구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 콜 교전수칙이라는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힘든 정신나간 명령[각주:1]을 내리고,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초인 병사로 길러내는 비인륜적인 행위를 하는 등등 생존을 위한 필사의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헤일로 시리즈 전반의 이야기는 이런 '절박한' 상황은 하나의 뒷배경에 불과하며, 결론적으로 마스터 치프의 활약은 압도적이고 절박한 상황에서 승리를 거두는 위대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헤일로:리치는 이러한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의 직전으로 테이프를 돌린다. 인류의 가장 큰 식민지중 하나인 리치 행성의 몰락은, 헤일로 시리즈 내내 회자될 정도로 인류에게 있어 거대한 비극이었다. 헤일로:리치는 바로 이 리치 행성의 비극을 다룸으로서 패배와 절박함의 이야기를 다룬다.


리치의 스토리는 막 노블팀으로 옮겨온 노블 6[각주:2]와 노블 팀이 코버넌트의 리치행성 침략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설정상 리치 행성은 코버넌트 함대의 포격으로 전 행성이 유리화[각주:3]당할 운명이었고, 노블팀의 필사의 발악과 자그마한 승리는 뒤이어 오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패배와 절망에 밀려서 묻혀버린다. 헤일로 넘버링 시리즈와 다르게 리치의 스토리는 몰락의 비장미에 초점을 맞춘다. 


리치의 비장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게임 플래이는 코버넌트라는 집단이 얼마나 인류에게 있어서 무서운 존재였는가의 형태로 재구성한다. 그런트들은 자신들이 불리해지면 수류탄을 들고 자폭돌격을 감행하며, 엘리트들은 사이드 스텝으로 공격을 피하거나 쉴드가 사라지면 엄폐를 한다. 헌터는 처음 만났을 때 재앙 수준에 가까우며, 중력 해머를 들고 미친듯이 돌진하는 브루트는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기존의 시리즈도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적들의 난이도나 다양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리치는 그런 헤일로 시리즈 중에서도 적들을 가장 잔인한 형태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편과 3편에서 채택했던 자동 회복되는 쉴드 형태의 체력 시스템[각주:4]을 바꾸어서, 자동 회복쉴드+메드펙으로만 회복되는 체력의 형태로 이원화 해서 체력관리의 난이도를 올리는 한편, 2편 3편의 듀얼 윌딩[각주:5] 방식을 삭제해서 플레이어의 화력을 줄여버린다. 물론 그렇다고 플레이어를 마냥 너프한 것이 아닌, 3편의 도구 개념을 묠니르 갑옷에 통합시켜서 언제 어디서나 사용하기 쉽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변화점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1편이나 3편[각주:6]과 다르게 적들은 강해지고 플레이어는 약해지는, 상대적으로 체감 난이도가 기존의 시리즈 보다 훨씬 올라갔다.


하지만, 리치의 이야기는 대책없는 패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제작진들은 리치 행성에서의 희생과 승리가 없었다면 헤일로 본편의 영광 역시 없을 것이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필라 오브 어텀이나 헬시 박사를 본떠서 만든 코타나, 그리고 선조의 유물을 통해서 알아낸 헤일로의 좌표[각주:7] 등등을 통해서 노블팀, 그리고 리치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리치라는 작품 전반에 깔아둔다. 그리고 이러한 결실이 헤일로 시리즈에 도달하기 위해서, 게임은 점점 노블팀의 희생을 통해 비장미를 더한다. 코버넌트 프리깃과 함께 자폭한 조지, 스케럽을 잡기 위해 자폭한 카터, 맥건을 사수하다 죽은 에밀...노블팀은 이 패배의 역사에서 최후의 발악, 그리고 최후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게임의 엔딩은, 이런 비장한 패배의 미학을 극대화시킨다. 필라 오브 어텀이 떠난 뒤에, 리치 행성에 홀로 남겨진 노블 6. 마지막 남은 그가 끝없이 몰려오는 코버넌트를 상대하는 장면을 노블 6의 관점에서 묘사하는 부분은 시리즈를 뛰어넘어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엔딩이라 할 수 있다. 탄약이 떨어지자 권총을, 권총 탄약도 떨어지자 주먹으로 엘리트와 싸우는 노블 6의 외로운 싸움은 인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러한 의지의 결실이 헤일로 시리즈의 마스터 치프에게로 이어진다 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헤일로 리치는, 그야말로 번지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헤일로였으며, 인류의 장엄한 발악이라는 시리즈 컨셉 측면에서 본다면 헤일로 리치는 헤일로 시리즈를 완결되게 만드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리치야 말로, 헤일로의 본질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헤일로에 입문하는 게이머라면 4편 이전에 리치를 꼭 해보기를 권한다.




  1. 콜 교전수칙 원문. 콜 교전 수칙 내곽 식민지와 지구를 지키기 위하여, 모든 UNSC 함선 또는 시설들은 코버넌트가 인류의 주요 거주지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채로 코버넌트에게 포획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코버넌트 군대가 포착되더라도 모든 배와 행성간을 기반으로 한 연락망에 관계된 정보를 삭제한다. 모든 정보가 사라졌는지 삼중망으로 확인하라. 삭제 바이러스 '청소부'를 실행하라(UNSCTTP://EPWW:COLEPROTOCOL/Virtualscav/fbr.091 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코버넌트에게서 도망칠 경우, 모든 함선들은 지구, 내곽 식민지, 또는 다른 모든 인구 밀집 지역으로도 오지 않도록 무작위로 도약 지점을 설정해야 한다. 모든 UNSC 함정은, 만약 코버넌트 군대에게 포획될 상황에 처한다면 반드시 자폭해야 한다. 다음 사항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반역죄로 취급해 UNSC 군법 JAG 845-P와 JAG 7556-L 항목에 의거해 종신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본문으로]
  2. 흔히들, Lone Wolf, 외로운 늑대로 잘 알려진. [본문으로]
  3. 지표면의 토양이 녹아서 굳은 뒤에 유리처럼 반짝거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 [본문으로]
  4. 콜옵 형태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5. 양손에 무기를 드는. [본문으로]
  6. 2편은 아직 못해봤으므로... [본문으로]
  7. 웃기는건, 1편의 스토리에서는 코타나가 콜 교전수칙에 근거, '무작위로' 워프를 해서 헤일로 시설을 찾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헤일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이런 형태의 설정 오류가 어느정도 있다. 1편 막바지에서 코타나, 치프만 살아남았다고는 하는데, 실은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던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