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이 글은 파이어 엠블렘을 처음으로 접한 플레이어의 기준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물론, 다른 시리즈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자료수집 및 검색을 하고 쓴 글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네타가 있습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는 FC 시절부터 닌텐도와 함께해온 시리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리즈의 오랜 역사와 팬층, 닌텐도의 라이트한(?) 성향과 별개로, 파엠의 게임성은 하드코어의 극치를 달렸다. 한번 죽으면 되돌아 오지 않는 유닛, 뭔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행동의 결과, 랜덤한 성장 때문에 애정을 갖고 키우던 케릭터가 병신이 되질 않나 반대로 아무런 기대도 안하던 케릭터가 급부상 하는 등 요즘 게이머가 보면 뒷목잡고 쓰러질만한 요소들의 향연이었다. 그와 별개로 파엠 시리즈는 SFC 이후로 이어지는 두터운 팬층에 힘입어서 현재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시리즈였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작들의 부진[각주:1]과 일본 SRPG라는 장르 자체의 부진으로 인해서 미래가 불투명한 시리즈였기도 했다. 5년만의 신작, 각성이 나오기 전까지는.


간략하게 요약을 하자면, 각성은 파엠 시리즈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요즘 게이머들이 쉽게 접근하고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진 명작이다. 하지만, 각성은 아주 무모한 도전장을 던졌고, 시리즈 팬들에게 있어서는 '이게...재밌긴 한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특이한 작품이 되어버렸다.


파엠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죽으면 돌아오지 않는 케릭터와 게이머를 쉴새없이 빡치게 만드는 요소에서 나오는 하드코어함이다. 특히 파엠 시리즈의 경우, 공격 한 두번에 골로 가버리는 적은 체력, 무조건 1:1로만 적을 처리, 개별 유닛 생존기의 부재, 불리한 상성으로 인해 확정적으로 받는 공격의 존재[각주:2] 등등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게이머에게 대단히 불리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잘못 방심했다가는 애지중지 키웠던 유닛이 한순간에 사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파엠의 성장은 전통적으로 랜덤 성장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아수라장을 해치고 애지중지 키운 케릭터가 레벨업을 했는데도 레벨업한 결과가 비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여기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난수 고정 시스템[각주:3]까지 얹어주면, 요즘 게이머는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게임이 완성된다. 하지만, 파엠의 독특한 매력은 바로 이러한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쾌감에 있다. 특히, 툭하면 죽는 수라장과 랜덤 레벨업이라는 난관을 모두 해치고 큰 케릭터에 대해서 게이머가 갖는 애착, 그리고 그런 장애물들을 뛰어넘었다는 게이머의 자부심과 성취감은 다른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다.


파이어 엠블렘:각성의 시스템은 지난 시리즈에서 좋게 평가받았던 시스템들을 모두 모으는데서 시작된다. 성전의 계보에서 등장한 결혼과 자식세대, GBA 3부작에서 나온 프리맵, 마이유닛-군사 유닛의 존재, 지원 회화 등등을 하나의 작품에 집어넣었다. 또한 새로운 시스템인 듀얼의 존재는 케릭터 육성을 편하게 하는데, 한 유닛에게 보조 유닛이 붙은 방식인 듀얼 시스템은 유닛과의 관계에 따라서 지원 공격/방어가 들어오며, 듀얼 상태인 유닛의 능력치를 올려서 생존률/공격력을 동시에 올려준다. 시리즈의 총집대성이자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한 작품이긴 하지만, 정작 트라키아 776이나 다른 작품에서 나온 몸통박치기, 체격-포획 시스템이나, 피로도 시스템 등등의 다소 하드코어한 시스템들[각주:4]은 포함되지 않았다.


각성의 가장 큰 특징이자, 그리고 시리즈에 대한 최대의 반역은, 바로 '무한한 육성'에 있다. 기존의 시리즈는 하급직->상급직으로 전직할 수 있는 마스터 프루프만이 존재 했으나, 각성에서는 마스터 프루프와 더불어서 체인지 프루프 라는 클래스 체인지 아이템이 추가되었다. 이 아이템의 핵심은, 레벨 조건만 만족 시키면[각주:5] 문자 의미 그대로 무한하게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작들이 최대 레벨[각주:6]에 도달하면, 더이상 성장할 수 없었던 것에 반해서, 이번작에서는 프리맵과 함께 플레이어가 원하면 계속 노가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초반에 쓰고 버리는 유닛[각주:7]조차도 무한한 전직을 통해서 최종 보스를 서걱서걱 썰어버리는 괴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무한 육성의 절정은, 자식세대 유닛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부모세대의 능력과 스킬, 직업을 물려받는[각주:8] 자식세대는 성장의 폭이나 스킬의 조합 측면에서 이미 부모세대 유닛의 잠재력과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는다.


이렇게 보면 각성은 레벨 9999 찍고, 환생과 케릭터의 무한 육성을 모토로 내새우는 디스가이아와 게임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디스가이아와 각성의 매력포인트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성의 난이도가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각주:9] 각성은 여전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이며, 플레이어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방어 기제는 여전하다. 플레이어가 판단을 잘못하면 유닛들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각성은 전작들과 다르게, 어느정도 시점이 지나면 일방적인 학살이 가능[각주:10]하다. 물론 그러한 육성의 과정은 대단히 재밌다고 할 수 있다.


각성은 닌텐도 퍼스트 파티 게임 답게, 닌텐도 하드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고 있다. 다른 평행세계의 존재라는 설정으로, 엇갈림 통신에 자신의 기사단을 등록해놓고 타인의 게임에 등장하는 요소로 타인의 기사단에 가입을 하거나, 물건을 사고 팔거나, 서로 싸우는 시스템은 닌텐도 하드니까 가능한 잔재미라 할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브레이브리 디폴트 처럼 하루에 인터넷에서 랜덤한 플레이어를 자신의 대륙에 소환하는 방식을 취했으면, 이러한 요소가 더 빛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스토리는 평범한 일본식 판타지물이다. 가끔식 드는 발칙한 생각인데, 이 키즈나 라는 존재는 일본인들 유전자에 각인된 밈수준이며, 아주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이야기(전체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전체)의 판타지 버전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뭐 그런 삐딱한 시선을 제외하면, 각성은 메인 스토리 보다는 지원회화로 일컬어지는 유닛과 유닛 사이의 대화가 더 인상깊다. 다양한 성격의 유닛들이 서로에 대한 이야기와 설을 풀어내는 지원회화는, 특히 자식세대의 추가로 절정을 맞이하는데 자식세대-부모세대의 대화, 자식세대-자식세대의 대화 등등 복잡하고 가변적인(누가 부모인가, 누가 자식인가, 혹은 누가 형제인가) 관계를 잘 다루어 냈다고 할 수 있다. 


파이어 엠블렘:각성은, SRPG라는 사양하는 장르에 있어서 새로운 흥행 포인트를 찾은[각주:11]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물론, 각성은 팬들에게 상당히 반역적인 작품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시리즈의 본질을 왜곡한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시스템 자체가 잘 잡혀 있으며 더 다듬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SRPG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해볼만한 작품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3DS로 즐길만한 게임이다.







  1. Wii로 나온 새벽의 여신의 애매한 평가, DS로는 과거 작품들의 리메이크만 나왔다. [본문으로]
  2. 심지어는 AI도 이걸 노리고 진짜 집요하게, 집요하게 상성을 물고 늘어진다. 한두번 정도는 요행으로 피하는것이 가능하나, 한두명 이상이 덤빌시에는 그냥 사망 확정. [본문으로]
  3. 가령 A유닛이 명중률 40%의 상황에서 B유닛을 공격해서 죽였다. 세이브-로드를 해서 똑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명중륭 40%인 A유닛이 B유닛을 죽인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참고로 체격-포획 시스템이 최초로 나온 트라키아 776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SRPG 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본문으로]
  5. 타 클래스 전직은 10레벨 이상, 자기 클레스 레벨 초기화는 만랩 20레벨 달성. [본문으로]
  6. 하급직 20레벨->상급직 20레벨 [본문으로]
  7. 초반 도우미 늙은 기사 유닛들, 이번작에서는 젊은 집사(.....)인 프레데릭이 그 포지션이지만. [본문으로]
  8. 물론 남성 한정/여성 한정 직업으로는 클래스 체인지가 불가능 하지만, 단 '스킬'은 이어받을 수 있다. [본문으로]
  9.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디스가이아도 절대 쉬운 게임은 아니다. [본문으로]
  10. 물론 GBA 3부작 이후로는 그런 경향이 생기기는 했지만, 각성은 좀 그게 심하다... [본문으로]
  11. 디스가이아를 생각하면, 당연한 세일즈 포인트일수도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