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게임 전반적인 흐름이 글 내에 있습니다.


*엔딩에 대한 심각한 네타도 있습니다(가려놓은 상태)


*멀티플레이 리뷰는 제외되어있습니다. 어차피 할 생각도 없고...




1.


툼레이더와 라라 크로프트는 언차티드 등의 액션 어드벤처나 페르시아의 왕자, 어새신 크리드 등으로 대변되는 파쿠르 플랫포밍 게임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인이 초등학교 시절 때, 툼레이더 2편이 보여준 흥미진진한 모험들에서, 최근작 언더월드(2008년작)의 하드코어한 플랫포밍까지, 툼레이더는 오랜 세월동안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리고 이젠 비밀이 가득한 고대유적을 탐사하며 퍼즐을 풀고, 보물을 챙기고, 그리고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치고박고 싸운다는 툼레이더의 게임 구조는 이제 장르 공식이라 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흔한 요소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툼레이더는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줘버린, 진부한 게임 시리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서 툼레이더만의 개성이 무엇이고 매력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각주:1]


2.


툼레이더(2013)은 그에 대한 해답이다. 물론 그 해답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 후술 하겠지만, 본작은 완벽하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몇몇 뚜렷한 단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탈 다이나믹은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것을 희생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툼레이더와 라라 크로프트는 이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매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3.


리부트의 게임 컨셉은 '생존 액션 어드벤처'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라. 이 게임에서 '서바이벌'의 요소는 눈꼽만큼도 없으니까.[각주:2] 캠핑장은 레벨업과 무기 업그레이드, 글고 순간이동 겸 세이브를 위한 체크포인트의 기능을 한다. 섬은 야생동물로 가득차 있지만, 야생동물들을 쏴서 시체를 회수하면 경험치와 일부 회수자원을 얻을 뿐 생존을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든가 등의 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극후반에 들어서면 주체할 수 없는 탄약과 무식할정도로 강력한 능력 때문에 무쌍을 찍을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이 생존 이라는 컨셉을 구현하는 방식은 게임 시스템적인 부분이 아닌, 게임 내의 연출적인 부분에 기반을 둔다. 개인적으로, 이번 리부트의 장르는 생존 '호러' 어드벤처라고 생각한다. 과거 작품에서도 온갖 기괴한 트랩들과 기묘한 괴물들에게 끔직하게 살해 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작은 아예 대놓고 이런 끔찍한 장면들을 노렸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보여주지만, 속에 들어가면 끔찍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섬이라는 게임 배경[각주:3] , 인간의 입으로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 그리고 게임 내내 연출이나 스토리적으로 고통받는 라라 크로프트와 그녀를 위해 준비된(?) 전용 데드씬[각주:4] 까지, 직접적으로 호러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이 만들어내는 섬이란 공간은 불쾌하고 끈쩍하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드는 지옥도의 연속이다. 그리고 지옥 같은 공간과 잘짜여진 스토리텔링이 결합하면서 게임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4.


생존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생존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어떠한 끔찍한 사고나 재난을 거치고도 '살아남은' 경우를 가르켜 생존자, 생존했다 라고 한다. 즉, 생존이란 명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끔찍한 상황에 처함을 '당하는' 피동적인 상황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다. 게임은 라라의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나는 모험을 찾아 길을 나섰다. 하지만 내가 모험을 찾기 전에, 모험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게임 초중반 라라가 지속적으로 처하는 상황은, 라라의 의지와 관계없는 끝없는 '피동적' 상황의 연속이다. 그녀는 섬에 상륙하자마자 불의의 습격을 받아 시체들과 함께 거꾸로 메달리며, 탈출 과정에서 철근이 복부를 관통당하고, 시체들과 함께 구르는 등 끝없는 재해와 고난에 마주친다. 게임 연출은, 이러한 라라의 상황을 과격하게 보여주며, 이러한 과정에서 라라의 모습을 피해자처럼 그려낸다. 실제로도 초반의 라라는 이 거대한 재앙의 피해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로스에게 눈물로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덫에 끼어서 낑낑거리는 장면, 버튼 한번 잘못 누르면 한번에 골로가는 QTE들, 심지어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조차[각주:5] 게임은 그녀를 가해자나 주인공이 아닌, 재수없는 상황의 피해자처럼 묘사를 한다.[각주:6]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녀는 끔찍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갖고 살아남는 '생존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이때부터 게임은 라라의 '능동적인' 움직임이 주가 된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섬의 비밀을 파해치고,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드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생존 '의지'를 드러내는 요소는 중후반 이후 게임 플래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네발로 기어서 회피를 하는 모습[각주:7]에서부터 임기응변적인 물건들을 다양한 용도로 쓰거나 상상을 뛰어넘는 흉기로 써먹는 부분[각주:8] 등등 게임 플래이 역시 점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라라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에서 파크라이 3의 주인공 제이슨 브로디와 많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제이슨이 광기가 판치는 섬에 적응하다보니까 어느새 그 자신도 광기에 전염되어 있는[각주:9] 모습을 게임 플레이와 게임 연출적으로 보여주었다면, 툼레이더 역시 그 상승 및 강화의 과정이 비슷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파크라이 3가 좀더 은유적이고 게임 플래이 자체에 은연중에 깔아놓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툼레이더는 직접적이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연출을 풀어낸다.


게임은 이러한 피동적인 라라의 상황에서 능동적인 라라의 모습까지 서서히 에스컬레이트 하는 모습과 그 에스컬레이트의 과정 중간 중간에서 폭발하는 해방감의 완급을 잘 조절하고 있다. 라라의 끈질긴 생명력에 겁을 먹는 적들에게 도발을 하는 라라의 모습이나, 수류탄 발사기를 얻고서 '이제 도망쳐봐라, 이 나쁜 놈들아!'라고 외치는 라라의 일갈은 그동한 당해오고 억눌렸던 라라의 상황을 한번에 터뜨리는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툼레이더는 근래 나온 고만고만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던 게임들과 다르게 훌륭한 템포 조절로 몰입감과 긴장감, 해방감을 동시에 갖는다.



그렇다고 아쉬운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5.


게임 스테이지는 전반적으로 언차티드에 아캄 어사일럼[각주:11]을 섞은 듯한 기묘한 형태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스테이지' 단위로 나뉘어진다. 물론 그것이 구체적으로 미션 XX, 스테이지 XX 등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은 하나로 이어져있다기 보다는 캠프와 캠프 사이의 공간 단위로 분절되어 있으며, 개별 스테이지만 놓고 본다면 언차티드의 스테이지 구성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파쿠르를 이용한 플랫포밍으로 벽타기, 메달릴 수 있는 색칠된 난간, 봉 곡예 등등 언차티드적인 스테이지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언차티드와 다른 점은, 라라는 캠프에서 언제라도 캠프에서 다른 캠프로 이동할 수 있으며, 각각의 스테이지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이나 문서, 그리고 과제를 언제라도 반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스테이지는 아캄 어사일럼의 아캄 수용소처럼, 능력이 해방됐을 때 접근 가능한 곳이나 모을수 있는 물건이 늘어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게임의 메인 스토리텔링과 별개로, 섬이라는 공간에 있는 유물과 문서를 모아서 과거 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왔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자연경치에서부터 오래된 유적들, 2차세계대전의 일본군 벙커에, 토막난 시체와 해골들이 쌓여있는 지옥도와 유황온천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장소에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문서와 유적들은 자세한 배경 설명을 제시한다.


다만, 기존의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하드코어한 플랫포밍은 리부트 작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데, 마치 라라를 죽이려고 덤비는 트랩들과 기계장치들은 사라지고, 언차티드 같이 난간에서 난간으로, 로프에서 로프로, 점프와 다음 난간을 인지하고 넘어가는 형식의 간단한 플랫포밍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대중성을 감안하면 이러한 언차티드 식의 마법의 자석 손바닥이 적절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전통이었던 코어한 플랫포밍이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6.


게임의 전투는 상당히 '기묘'하다. 기본적으로 적들이 라라를 향해 끊임없이 몰려오고 저돌적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자주하는, 상당히 공격적인 패턴의 전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언차티드 3와 비슷하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언차티드 3와 다르게, 툼레이더는 '엄폐' 개념이 없다. 아니, 있긴 한데 특이하다. 툼레이더는 상당히 특이한 엄폐 개념을 보여주는데 엄폐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적이 있으며, 라라가 엄폐물 근처에 있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면 라라는 자동적으로 엄폐물에 엄폐한다. 이게 따로 엄폐 버튼이 있어서 엄폐를 하고 해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엄폐한 뒤에 조준 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형태를 취한다.


이렇게 본다면 엄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실 분들도 많을것이라 생각하지만, 게임의 전투 패턴을 생각하면 '엄폐 버튼 없이 엄폐'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적들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근접공격병, 수류탄 투척병, 그리고 원거리 공격병으로 나뉘어진다. 엄폐형 TPS가 자칫 엄폐를 잘하면 그 자리에서 모든 적을 털어먹는 것이 가능한 게임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바리에이션을 둔 듯한 느낌이다. 특히 근접병 및 수류탄 투척병의 경우 엄폐한 상태의 라라를 공격할 수 있으며, 이들을 상대한다고 엄폐에서 나오면 원거리 공격병들[각주:12]이 공격을 한다. 결국, 라라는 엄폐물에서 엄폐물로 회피버튼을 연타하면서 빠르게 이동,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크리스탈 다이나믹이라는 제작사가 전투 시스템에 별로 뛰어나지 못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고려해보면[각주:13], 치밀한 고민을 한 흔적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잠입/스텔스 킬 부분은 완벽한 언차티드의 판박이 이다. 기본적으로 적들은 소리 보다는 시야에 더 민감한데, 심지어 바로 뒤에 있는 동료를 잠행 도끼 킬로 제거하고 있더라도 멀뚱멀뚱히 먼산만 바라보고 있는 적의 인공지능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잠입이라는 요소를 강조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7.


그래픽과 사운드의 경우, 좀 맥빠지는 총기음을 제외하면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아름다우며, 프레임은 대단히 안정적이다. 현세대 말에 콘솔 제작 노하우가 쌓인 상황에서, 더이상 좋아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도 생각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툼레이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라라 성우의 열연이었다. 끔찍한 상황에 당황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에서부터, 쌍욕을 하면서 적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라라' 다운 부분까지, 하나의 목소리로 다양한 케릭터를 커버하는 모습은 높게 평가할만하며, 후속작에서도 이 성우가 라라 역을 맡았으면 한다.


8.


툼레이더 리부트는 완벽한 게임은 아니며, 기존의 팬들을 화나게 할 수도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툼레이더 리부트는 대단히 가치가 있다. 한때 액션 어드벤처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툼레이더는, 언차티드나 페르시아의 왕자 등등의 신흥 프랜차이즈에 밀려서 코어한 게임 프랜차이즈로 주저앉았었다. 하지만 리부트에서 완전히 다른 컨셉으로 탈바꿈한 툼레이더는 라라 라는 케릭터의 성격을 재정립하였으며, 그 과정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앞으로 크리스탈 다이나믹이 어떤 툼레이더를 만들어낼지, 대단히 기대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 이런 게임들을 선두했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하드코어한 플랫포밍...이라고 하고 싶다. 솔직히.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다. [본문으로]
  2. E3 게임플레이 영상에서 라라가 음식을 구하는 부분, 캠핑 관련 부분등은 연출적인 것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3. 도대체 그 많은 해골과 시체가 어디서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정도로 엄청난 사체와 해골 더미를 게임 내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4. 제작진은 이런 유니크 데드씬이 무려 22개나 된다고 밝혔다! [본문으로]
  5. 정당방위이기는 하지만. [본문으로]
  6. 하지만 몇몇 게임웹진 리뷰에서 지적하였듯이, 라라의 첫살인 이후 라라의 파괴신적인 면모가 갑작스럽게 대두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라라는 3~4명의 광신도를 끔살내버린다. 상당히 기묘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능력을 해방하면, 단순히 회피를 하는 것을 넘어서 카운터 공격으로 적의 무릎 뒤쪽에 화살을 꽂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후반의 스톰가드들을 상대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테크닉이다. [본문으로]
  8. 구급상자가 없자 라이터로 화살촉을 가열해서 상처를 지져서 소독하던가, 길에서 주운 로프를 화살에 묶어서 사용하며, 잡동사니로 무기를 마개조하지를 않나, 라이터와 화살 조합으로 불화살에서 심지어는 네이팜 화살을 만드는 등등 [본문으로]
  9. 게임 연출이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게임 시스템상 게이머의 플래이의 과격성이 능력을 얻을떄마다 급격하게 상승한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문신'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드러난다. [본문으로]
  10. 상실은 잃음을 당하는 것이지만, 희생은 스스로 잃을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뭐 이런 뉘앙스? [본문으로]
  11. 또는 본인은 '케슬베니아:월야의 야상곡'으로 대표되는 메트로베니아에 비교하고 싶기도 하다. [본문으로]
  12. 초반에는 활쟁이들이지만, 후반으로 가면 기관총을 든 적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위험도는 점점 올라간다. [본문으로]
  13. 소울리버 2는 애매했으며, 데빌메이크라이가 나오고 난뒤에 나온 디파이언스는 스토리는 둘째치더라도 전투가 재밌었다고 빈말로 말을 못하는 수준이며, 툼레이더:언더월드는 차라리 전투 빼고 거기에 퍼즐과 플랫포밍을 집어넣어줬으면 했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