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본문과 사진은 하아아아드으으으응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길게 끌었군요. 마지막 편입니다.

저번 中편까지는 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 대중문화의 정치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간략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일본 대중문화의 정치성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의 표출이고, 동시에 기성세대의 충성의 대상이자 일본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초 강대국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반세기 가량의 일본 고유의 정형적 정치 구조에 의한 결과이며, 젊은 세대는 그러한 정형성을 깨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대중문화의 정치성은 인접국이자 과거 일제에게 피해를 받은 우리나라나 중국이 보았을 때 상당히 위험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젊은 세대의 정치적 성향에는 문제 상황인 현재와 나아가야 할 미래만 존재할 뿐, 청산해야 할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몇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도록 하죠.

먼저 일본이 식민지 상황 아래서 억압받는다는 설정을 차용한 코드기어스를 보죠. 사실, 일제 강점기를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불쾌한 소재입니다. 자신들이 한국이나 대만, 미얀마 등에서 일으켰던 잔혹행위는 망각하고, 자신들이 브리타니아라는 미국에 예속되고 억압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재밌는 점은 코드기아스의 제작자가 명백하게 일본 내에서도 좌익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코드기아스의 설정을 놓고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자 사전 인터뷰에서 제작자는 자신이 일본 내의 조총련계 사람들과도 변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과연 코드기아스라는 작품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설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스였고, 자칭 조총련 계 재일교포들과 교분이 있다는 사람이 한국과 한국인의 느끼는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는 공각기동대 SAC 2nd GIG에 등장하였던 일본의 북한 파병 문제입니다. 이것도 한때 설정의 문제를 두고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었죠.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라는 점입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대부분이 세계 군사 초강대국들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일이 예를 들어 볼까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군사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중국, 한때 미국과 자웅을 겨루었던 군사 대국 러시아에, 모든 국력을 군사력에 기울이는 북한, 군 병력 및 기술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대한민국, 여기에 군사력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일본까지. 요컨대, 한반도 주위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화약고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유사시 북한군과 한국군이 충돌 하게 되면,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힘의 균형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는 다양한 열강들이 이권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간섭을 하려 하겠죠. 그 경우, 일본 역시 한반도에 개입하길 원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 있어서 2nd Gig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파병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할 것입니다. 사실, 원칙상 자위대 파병은 일본 평화헌법에 근거하여 불가능하지만, 현재는 이를 개정하여 자위대 파병을 관련 법률 제정없이(현재는 자위대 해외 파병은 관련 법을 '제정'하여야만 가능합니다)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죠.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통해, 국외 지역에서의 작전 수행능력 향상(이는 2nd Gig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입니다)을 도모하고, 국제적으로 일본의 군사적 정치적 지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인 것이죠.

하지만, 2nd Gig는 설정보다 설정의 기반에 깔려있는 제작자들의 태도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작품의 설정 자체는 한국에 대한 적대감이나 멸시감에 근거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응당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설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과연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민들이 과거 겪었던 일제 강점기라는 고난의 역사를 쉽게 잊어버리고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주둔을 허락할 수 있는가?' 의 문제인 것이죠. 일본의 파병 의도가 정치적이든 인도적이든 간에, 의도의 문제를 떠나서 한국인들의 정서상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한 민감한 사안과 특수성을 떠나 정치적 상황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제작자들이 과거에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않았나)라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샐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의 크고 작은 부분에서 이러한 코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치적 코드는 상당히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서 외면하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사실, 과거 작품의 경향에 있어서도 신선조와 개화기 이후의 낭만적 시기 이후에서부터 1950~60년대까지의 소위 '대일본제국 시기'가 완벽하게 대중문화의 코드에서 소실되었다는 점 등은 이미 일본인들이 과거에 대해서 상당히 외면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도 기성세대를 비판하지만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비슷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죠. 사실, 그들 입장은 기성세대의 과오와 자신들은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번 부에서도 다루었듯이, 젊은 세대가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전통적인 일본 기성세대와 체제를 벗어나서 새로운 일본을 수립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와의 단절'이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젊은 세대의 움직임은 과거 기성세대와 일본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한 맹목적 무시가 전제되어 있죠. 그렇기에 그들은 과거의 일어났던 일본의 과오나 사건들, 그리고 주변국과의 특별한 역사적인 관계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생각하였을 때, 미국과 옛것으로부터 독립한 강하고 새로운 일본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소위 일본 내에서 '좌파'적인 정치성향을 지는 제작자나 감독들이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무개념적이고 우익적인 견지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상당히 불가해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타국의 이목과 과거의 역사를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과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치적 성향은 이렇습니다. 타국민의 입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치성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되지만,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나갈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다는 점에서 많은 걱정이 드는군요. 일본이라는 국가는 하나의 온실과도 같은 국가입니다. '일본'이란 거대한 온실 아래서, 토양, 기후, 습도, 기타 환경 등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성격이 강하죠. 그러한 국가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과거의 일본이 보여주었던 폐쇄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기에 주변국에 사는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암울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부분은 일본 내의 의식있는 흐름에 의해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야 할 부분인데, 글쌔요... 일본이란 나라의 특성상, 의식 있는 흐름이라도 그것이 일본 전체의 사회적 흐름에 거스른다면 전반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일본의 행보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