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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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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그렇다면 그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랑시에르는 “정치는 언제나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실로 정치는 매우 적게 혹은 드물게 발생한다”(<불화>)고 말했다. 정치는 그저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인간의 가장 탁월하고 고귀한 활동’ 같은 것도 아니다. 정치는 언제나 중단, 개입, 혹은 효력을 수반한다. 정치는 불일치이며, 무언가를 파열시키는 것이다. 체임버스는 “정치는 치안질서에 도전하고 방해하면서 그 질서를 파열시키거나 전치시키며, 어쩌면 결국에는 치안질서를 변화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정치가 수행하는 일의 전부”라고 말한다.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00614.html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존 포드의 영화는 극도로 '반동적'이다. 그의 영화에는 공동체가 있고, 각각의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역할들이 있다. 공동체에서 노동하는 남자의 역할, 남성을 포옹하는 여성, 이들이 서로 화합하여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서부는 공동체를 펼치기 위한 가능성이 공간이 된다. 이 모든 과정 자체가 미국의 이상향American Dream을 구현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존 포드 영화의 이러한 경향성은 '반동적'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미국의 이상향이란 이미 오래전 무너져버렸고(굳이 멀리 내려가지 않더라도 트럼프의 당선과 연결지어 생각해봐도 될 것이다),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이란 이상향은 커녕 이제 웃음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포드의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위대한 감독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이러한 반동적인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70년대 뉴 웨이브 영화 감독 중 몇몇 감독들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좌파적이라 할 수 있는)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감독으로 존 포드를 꼽았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다. 존 포드의 세계관(보수적 공동체)과 좌파적 지향성이란 전혀 맞닿아보이지 않지만, 존 포드의 영화를 좀 더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존 포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공동체는 이미 완성된 형태가 아니고 '만들어져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넘어서야 하는 것들은 외부의 위험과 함께 공동체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존 포드 영화의 통찰은 공동체 내부의 어둠을 들여다 보는 동시에 숭고한 가치와 믿음을 제시한다는 점에 기반한다. 존 포드의 영화에 자리잡은 공동체의 어둠은 언뜻언뜻 드러난다:수색자에서는 조카 딸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영향을 받았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이야기하는 전직 기병대원이 등장하고,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에서는 어둠 속에서 비겁하게 무법자를 향해 총을 쏘는 주인공이 등장하며, 역마차에서는 약한 여성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남성도 같이 등장한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황색 리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추장과 교류하고, 더 나아가서 아무도 죽지않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도 이 사례에 들어갈 것이다. 순간이지만 이렇게 잊을 수 없는 광경을 통해서 존 포드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단순히 외압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닌 내부의 모순과 어둠을 극복하고 함께해야한다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청년 링컨은 존 포드의 대표작으로 이런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선택하고 있는 시점이다:젊은 링컨은 남북전쟁 이전, 링컨이 초짜 변호사인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링컨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노예 해방선언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업적을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위대한 업적에서 빗겨나서, 소박한 인간이 어째서 위대한 업적을 거둘 수 있게 되었는지, (존 포드가 생각하는)미국적인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청년 링컨에서 링컨은 위대한 리더가 아닌 '한량'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는 마을 축제에 참여하여 파이 맛 컨테스트 심사자를 맡고, 줄다리기 대회에서 참여해서 마차 뒤에 끈을 달아 반칙을 쓰는가 하면, 사무실 창가에 앉아 다리를 꼬고 유대인 하프를 치기도 한다. 그의 모습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지도자의 거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링컨은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사람,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공동체의 어둠을 꿰뚫어보고 나름대로 그에 대처해 나간다:마을 축재 때, 사람들이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전후 관계를 따지지 않고 용의자 형제를 린치하려 한다. 밝고 활기찼던 낮의 축제와 다르게 밤은 공동체의 히스테리와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 있고, 용의자 형제와 군중 그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젊은 링컨 하나 뿐이다. 흥미롭게도 넉살맞게 군중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그의 모습은 공동체의 어둠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히스테리를 풀어주고, 집으로 보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되, 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링컨은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공동체의 방법론(사람과의 유대, 관계론에 따라)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위태로운 방법론을 취하고, 이러한 방법론은 그를 영화 내내 여러번 시험에 들게 한다.

 

이러한 방법론에 대척되는 것은 법정에서 검사가 취하는 방법론일 것이다:그는 이기기 위해서 대중의 감정을 선동하고, 용의자 형제의 어머니를 감정적으로 학대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전적으로 그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과 유리되어 있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러한 것이 어떤 점에서 보았을 때는 영화가 엘리트와 사회 지배 계급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관점과 맞닿아있다 할 수 있다:마을의 축제를 보는 자리에서 동료 변호사는 다른 다수의 대중과 다르게 의자에 앉아서 축제를 관람한다. 그리고 링컨은 자연스럽게 그 의자 옆에 다른 대중과 앉는다. 이러한 '공동체와 동화되지 않음'과 '대중을 지배계급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한다'라는 점을 부각함으로 링컨과 다른 지배층이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랑시에르가 그러했듯이, 정치가 '드물게 발생하며 현재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불화라 할 수 있다면, 링컨은 공동체의 어둠과 지배계급의 조작이 극대로 발휘되는 시점에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점에서 존 포드와 링컨이 바라보는 지향점은 대단히 단순하지만 원칙적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 영화에서 그러하듯, 젊은 링컨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그가 변호사가 되기로 선택하는 순간, 혹은 부자들이 주최한 무도장에서 나와서 멀리 바라보는 장면, 강을 따라 용의자 형제의 어머니를 찾아 올라가는 장면 등등에서 자연과 강의 풍광은 중요한 미학을 구성한다. 거기서 링컨은 남들과 다르게, 더 먼 곳을 동경하는 표정으로 강을 바라본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 그가 뭘 해야하는지를,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야하는지를 찾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 장면들은 미국의 광활한 자연풍광을 통해서 미국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론에서 링컨은 용의자 형제가 쓴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환대를 받는 링컨을 영화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묘사한다:마치 그가 훗날 책임져야 했었던 막대한 책임들에 대한 중압감을 표현하는 듯한 이 장면들은 그가 가야할 길이 쉽지 않은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젊은 링컨은 존 포드가 어째서 시대가 지나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공동체의 어둠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변칙적으로 영화에 녹여냄으로서 공동체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단순한 공동체 찬가가 아닌,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숭고한 믿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고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젊은 링컨은 존 포드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게임 이야기

 

데메오는 VR 보드게임이다. 일반적으로 VR, 더 넓게보면 비디오 게임과 '보드게임'의 조합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VR 게임들 상당수가 체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경험들 상당수는 플레이어의 시점에 맞춰서 카메라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게임 중에 대표작이러 할 수 있는 하프라이프 알릭스나 비트 세이버 같은 게임들 역시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액션을 구성한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의 시점과 다르게 하여 독자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드게임을 VR 게임으로 옮기는 것은 이러한 경향성과는 다소 빗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사람이 직접 계산을 하여 조작해야 해서 비디오 게임보다 더 작은 스케일로 즐길 수 밖에 없는 보드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만드는 것도 별로 포인트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보드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나, 보드게임에 비디오 게임의 프로그램을 이식하려는 교차 시도는 꽤 많았고 성공한 케이스도 많았다. 하스스톤이나 쉐도우버스 같이 TCG를 게임의 형태로 옮겨서 성공한 케이스들도 꽤 많았고, FFG에서는 광기의 저택 2판이나 디센트 2판 앱 같은 게임들에서 가상의 마스터+게임을 트래킹하는 툴로 컴퓨터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적이 있었다. 요는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결합은 포인트만 제대로 짚어내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들 게임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은 1.보드게임에서 사람이 직접 룰을 소화하고 다루는 부분을 통제하고, 2.스스로 생각해서 이들을 다루게 한 것이다. 즉, 기존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의도된 불편함/번거로움'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능동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데메오의 게임 구성은 심플하고 단순하며, 직관적이다.  플레이어는 로그라이크 게임처럼 랜덤으로 생성된 3개의 던전을 해쳐나가면서 내려가야 한다. 최대 4명까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각자 맡은 케릭터들을 조작해서 던전을 탐험하고 몬스터들과 전투를 해야 한다. 게임에서 나오는 물량은 단순히 공격만으로 풀어내기에는 많기 때문에, 각 직업별로 이용할 수 있는 스킬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스킬 카드는 몬스터를 죽여서 경험치를 획득하거나 상자를 루팅하거나 돈을 모아서 얻을 수가 있다. 

 

데메오는 보드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 답게 상당히 보드게임에서 몇몇 요소들을 편하게 정리한다:플레이어가 경험치를 얻어서 받는 카드는 자동으로 핸드로 들어오게 되고, 적의 체력 계산이나 사소한 계산들을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등의 편한 부분들이 많다. 대신, 다른 요소들은 '실제 보드게임을 하듯이' 구성을 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진짜 케릭터 말을 집어서 움직이듯이 배치하고, 왼손을 뒤집어서 카드 패를 확인하는 등, 조작 체계를 실제 보드게임을 하듯이 구성한 점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실제 조작이나 이런 부분들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원하는데 편리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도 훌륭한 부분이다.

 

데메오의 핵심 재미는 바로 협업이다:데메오의 게임 플레이는 복잡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오는 몬스터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능동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다른 사람과 무엇을 해야하는지, 언제 어떤 카드를 써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야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보이스 채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키보드를 이용한 채팅이나 별도의 채팅 프로그램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소소한 이점이다.

 

VR 관점에서 데메오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해준다:기존의 게임들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행위들을 경험해주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면, 데메오는 보드게임의 귀찮은 부분들을 제거하고 재밌는 부분만 잘라내서 즐기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현실에서 보드게임은 분명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카드와 주사위, 컴포넌트 등의 요소들을 배치하고, 정리하고, 룰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등의 요소들은 분명 보드게임을 하는데 큰 방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메오는 그러한 과정을 단순화 시키고, 실제 말을 조작하고 움직이는 요소들을 추가하여 마치 진짜 보드게임을 하는 듯한 경험을 주는데 성공한다.

 

결론적으로 데메오는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는 게임은 아니다:실제 보드게임을 찾아보면 이런 류의 게임들은 꽤 많은 편이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이나 경험도 그렇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데메오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요소를 정확하게 파고들고 깔끔하게 구성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을 것이다. 많은 VR 게임이 꽤나 높은 곳(트리플 A게임이나 기존 비디오 게임 장르)을 바라보고 게임을 구성하는데 집중한다면, 데메오는 틈새를 파고들어서 VR 게임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개인적으로 VR 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면, 함께할 친구들을 모아 데메오를 해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게임 이야기

 

 

최근 오큘러스 퀘스트 2를 구매하면서 VR을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가격이 여타 VR 기기에 비해 적절하다는 점(40만원 대), 기존 기기들이 다르게 스탠드 얼론으로 작동한다는 점 등은 오큘러스 퀘스트2를 최고의 입문 기기로 만들어주었다. 좋은 디스플레이와 조작계가 함께 결합하였던 HTC Vive의 구버전과 사실상 성능이 엇비슷한 수준인데, Vive가 대략 100만원 정도의 가격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코스트 다운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덕분에 본인은 VR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VR이 여타 스크린이나 모니터 기반의 영상매체와 다른 점은 카메라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점일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어서 세계를 구축한다. 컷과 시퀸스, 모든 것들은 카메라의 내부에 존재하며 카메라의 바깥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세계와 그 세계를 의도를 갖고 구성하는 '시선'의 존재는 전통적인 영상 매체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VR은 다르다. 물론 VR 역시도 세계를 찍는 카메라가 존재하며, 이를 통해서 다양한 영상을 찍어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하는 점은 VR에서 시선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VR 체험을 하는 사람에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VR은 화면을 카메라의 프레임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닌, 화면 안에 공간이 존재한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시야각을 제공한다. 그리고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위치의 영상을 송출하면서, 마치 '깊이가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두 요소와 함께 플레이어의 머리와 시선의 맞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시선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VR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서 그 시야각 내의 물체나 요소들을 바라보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체험하는 것 같은 몰입감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시선을 결정한다'라는 요소는 현 단계의 VR에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인 동시에, 제한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분명 시선을 움직이는 점은 이전과 다른 몰입감을 제공해주는 부분이지만, 기존 영상과 다르게 시선을 강제할 수 없어서 영상의 집중도를 높일 수 없다는게 큰 문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VR 영상 중에 테슬라의 자동 운전을 체험하는 VR 영상이 있다. 이 영상의 핵심은 테슬라 자동 운전을 체험하게끔 하는 것이지만, 본인이 신경쓰였던 부분은 차의 시트 부분에 지저분하게 떨어져있는 부스러기들이었다. 이와 같이 기존의 경험과 경험이 아닌 다른 사소한 정보들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의 영상 매체보다 더 산만하고 집중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영상 문법의 변화'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 보여진다. 기존의 영상 매체에서도 미장센 등을 통해 프레임 내에 다양한 정보를 배치하는 방법론이 있었다. VR은 그것이 그저 카메라의 시선 바깥의 넓은 공간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다만 이러한 공간의 배치 부분에서 VR의 방법론은 공간을 의도된 '부분'이 아닌 완결된 하나의 '전체'로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에 있어서 VR 진입 장벽을 높이는 주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영화적 컷씬이나 3인칭, 1인칭 카메라 움직임이 기존 영상 매체에 근거하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게임도 갑자기 VR로 옮겨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조작 관점에서도 많은 이슈가 있다:키보드나 패드를 그대로 이용하기 힘들고, 특유의 모션 트래킹을 게임에 접합시켜 VR 고유의 경험을 만들려는 시도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테이블 탑 시뮬레이터의 경우, 보드 게임 말을 집거나 내리는 것은 마우스와 비슷하게 할 수 있지만, 시점을 옮기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특히 양쪽 손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와 조작, 이 두 부분 때문에 기존의 게임을 그대로 VR로 옮길 수 없다는 점은 VR 게임이 흥할 수 없는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성공은 상당히 눈여겨 볼만하다:벨브는 이전부터 컷씬을 이용하기 보다는 체험형으로 플레이어가 직접 이벤트를 바라보게 만든다던가,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처리가 능한 회사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VR의 장점이자 난점이 벨브에게는 VR 게임의 강점으로 다가온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제대로 플레이해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기대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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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흑백 무성영화 시기에 영화 매체를 정의내린 영화와 인물들을 꼽자면, 거기에는 항상 버스터 키튼과 그가 만든 영화들이들어갈  이다. 성룡이 스스로 버스터 키튼을 가리켜 자신의 우상이라 했고, 로저 이버트 같은 평론가나 영화 감독들도버스터 키튼을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이라 칭송할 정도로 버스터 키튼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그리고 지금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의 핵심은 영화 매체 특징에 근거한다고   있다. 서부로 가다를 예로 들어보자:여기서 키튼은 기차에서 홀로 내려서 수천마리의 소를 끌고 우시장으로 향하려 한다. 문제는 그들이 거쳐야 하는 것이 LA 대도시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튼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좌충우돌하고, 수많은 소들이 등장해서 도시의 대중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과정에서 버스터 키튼은 카메라와 상황을 역동적으로 구성한다:빨간 악마옷을 입고 달리는 키튼과 그의 꼬리에 꼬리를 잡고 달리는 수많은 경관들,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들과 다채로운 상황들까지. 영화 클라이맥스의 다채로운 스턴트들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훌륭하다. 그리고 이러한 동적인 흐름이야말로 '영화적'이라   있다.

 

버스터 키튼 영화의 동적인 흐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동시대의 코미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체플린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 찰리 체플린의 경우, 영화의 코미디와 흐름이 고전적인 코미디 쇼에 가깝다   있다. 체플린 영화에서시퀸스와 코미디는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꽁트라   있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만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키튼의 영화들은 상황과 공간을 다채롭게 구성하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세트나 제한된 공간이 아닌 열린공간과 롱테이크를 이용해서 경이롭고 끊임없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키튼의 영화들의 특징은 그의 삶의 이력과 맞닿아있다:그는 영화인으로 살기 , 곡예나 스턴트 등으로  비즈니스에서 명성을 쌓았던 사람이었고 이러한 그의 경험은 영화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영화적인 트릭을 배제하고 스턴트와 곡예를 통해서 영화 전체를 경이로 승화시킨다. 그러한 현장감과 이를 목격하는 관객의 모습들이 키튼의 영화의 특징이라  있다. 이는 비슷한 스턴트를 보여주지만 시각 트릭을 이용한 헤롤드 로이드 영화와 상당히 다른데, 카메라의 프레임내에서 위험한 상황을 안전하게 연출하는 로이드 영화와 달리 키튼의 영화들은  순간의 아슬아슬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튼의 영화가 단순하게 스턴트만으로 구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훌륭한 무성영화 배우인데, 그것이 영화의 테마와 스턴트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버스터 키튼 영화에서 키튼의 인물들은 항상 외톨이고 사회의 메이저에서 벗어나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키튼의 케릭터들은 항상 주류에 편입되고자 노력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는데, 키튼 영화서의 스턴트들은 이러한 노력의 절절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스턴트를 키튼은 항상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연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절박한 순간에도, 비참한 순간에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이러한 포커페이스가 상황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삶의 희로애락을 승화시킨다.

 

버스터 키튼 영화는 드라마와 스턴트, 코미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훌륭한 영화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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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 그럭저럭 잘쉬었다고 해야할까...?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랜든 크로넨버그(아들)와 데이빗 크로넨버그(아버지)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르다:신체 손괴, 정신과 육체의 결합, 섹스의 묘사 등등은 많은 테마를 공유한다. 하지만 아버지 크로넨버그가 근대적인 유물론과 소재를 써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들 크로넨버그는 좀 더 현대적이고 즉물적인 감성의 영화를 만든다. 아버지의 비디오드롬, 그리고 아들의 안티바이럴을 예로 들어서 비교해보겠다. 비디오드롬에서 아버지 크로넨버그는 미디어를 수용하기 위해서 새로운 감각기가 자라나고, 무비판적으로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은 현대의 미디어 관점에서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비디오'나 텔레비전, 방송국 같은 물건들을 활용하는 모습 등에서 이미 지금의 시대에도 통용되지만 현대적Up-To-Date이진 않는 물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가 통용된다는 점에서 고전적Classical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다르다. 안티바이럴에서 아들 크로넨버그는 연예인에 대한 현대인들의 병리학적인 집착과 심리에 집중한다. 아들 크로넨버그는 아버지 크로넨버그와 달리 욱체적인 변형을 좀더 '즉물적'인 형태로 표현하는데, B급 호러 영화나 고어영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버지 크로넨버그와 달리 아들 크로넨버그는 사진을 한 경력 덕분에 좀 더 이미지를 구현했다. 차가운 질감이나 강박적인 구도, 인공적인 미장센과 컷 분할 등의 요소는 아버지 크로넨버그와 차별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영화 포제서(2020)가 등장했다. 포제서Possessor는 빙의하는 자라는 의미로, 빙의하다Possess라는 단어에서 따온 단어다. 이는 영화에서 타인의 인격에 빙의하여 타겟을 암살하는 자인 주인공을 일컫는 말인데, 이 단어의 선택부터 영화는 현대인의 '인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함을 암시한다:빙의라는 개념의 출발은 전근대적인 개념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대나 중세 기독교, 혹은 동양 샤머니즘의 개념에 기반한다. 악마나 악령은 사람의 나약한 영혼을 파고들어 그의 영혼과 인격을 지배하고, 그것을 가리켜 고대인들은 '빙의'라 하였다. 하나의 육체, 두개의 영혼, 하나의 육체를 두고 선과 악이 갈등하며 싸우는 것이야말로 빙의의 본질이다. 핵심은 두 개의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의 하나의 바탕 위에서 공존하면서 갈등하는 것, 그것을 내쫒기 위해서 다른 한 존재를 바깥으로 내쫒는 엑소시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 호러 영화인 엑소시스트를 보라.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 악마가 어린 소녀의 영혼을 파고 들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신부가 가정에 들어와 어린 소녀의 몸에 들어간 악령을 내쫒는다. 

 

포제서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빙의의 개념을 부정하는 곳에서 출발한다:포제서에서 빙의자와 빙의당하는 자는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며, 한 인간의 빈틈을 파고 드는 것이 아닌, 빙의자와 빙의 당하는 자의 융합이 포제서의 핵심인 것이다. 이는 암살 시나리오의 개연성으로 드러난다:영화는 암살 타겟이 죽는 개연성을 빙의 당하는 자의 주변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시켜서 암살이 대단히 자연스러운 사건인 것처럼 포장을 한다. 타겟의 살해는 빙의당하는 자에 있어서 개연성이 있는 행동이다. 빙의자는 그저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약간 밀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빙의자와 빙의당하는 자는 일종의 공생 관계가 된다. 이를 영화는 일종의 욕망과 삶의 데칼코마니의 형태로 풀어내는데, 서사적인 관점에서 주인공의 삶과 빙의당하는 자가 묘하게 겹쳐보이게끔 만든 것, 성교의 이미지가 거울을 통해서 서로 구분되게끔 만들어진 부분, 반사된 이미지로 동일한 이미지를 여러개로 컷을 나누는 등 모든 것들이 반복되고 유사하다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죽이는 자나, 죽는 자, 그들의 주변환경이나 그들이 공유하는 욕망 이런 것들이 모두 결국은 현대인들이 공유하는 의식이자 양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현대인의 의식 아래에 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영화의 초반 시퀸스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여기서 영화는 주인공이 원래 시나리오와 다르게 암살 타겟을 아주 너저분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왜 주인공은 굳이 그를 그렇게 너저분하게 죽였는가? 그리고 왜 그 후에 자살을 하지 못한 것일까? 넘쳐흐르는 끈적거리는 피, 피를 만지는 질감, 그리고 자살할 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주인공, 이 모든 것들이 앞서 이야기한 이미지와 대칭되는 모습을 보인다. 깔끔하지 않고, 정돈되지 않았으며, 불현듯 터져올라서 끔찍한 결과를 남기고 사라지는 것. 암살 시나리오가 암살 하는 자의 주변 환경을 두고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를 이루었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끈적함이야말로 현대인의 무의식과 은밀한 욕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과 빙의당하는 자를 통해서 이 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암살 시퀸스가 끝난 후, 아버지의 유품을 만지면서 죄책감을 언급하고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자. 주인공은 집앞에 서서 정상적인 부모와 아내를 연기하는 것을 연습한다. 마치 그러한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 페르소나와 욕망 사이에서 주인공은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정 내에서도, 직장에서도 끊임없이 정체성이 흔들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빙의당하는 자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연인의 마약 딜러인 남자는 연인에게 마약을 공급하면서 연인의 아버지 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몰리고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정체성은 주변 상황에 의해서 계속해서 위협받고 흔들리지만, 빙의된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의 욕망과 삶을 훔쳐보게 된다. 탈출에 실패한 이후, 빙의 당한 자는 주인공의 삶을 역으로 훔쳐보게 되는데 정신세계 주인공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주인공의 삶과 욕망을 들여다 보고 주인공의 삶을 파괴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행동이 역으로 주인공의 행동과 겹쳐 보인다는 점인데(주인공의 집 앞에서 주인공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에서), 이는 동시에 빙의 당한 자가 빙의한 자를 역빙의하는 일종의 융합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정체성이 불안정한 두 현대인의 결합과 이해는 빙의 당한 자의 '착각'으로 이어진다. 그는 주인공의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욕망을 들여다 봄으로 그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의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녀의 가족 역시 그저 또다른 하나의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사실 이는 어느정도 복선이 깔려있었는데, 빙의 당하는 자가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닌 '주인공의 가죽을 뒤집어 쓴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자식을 감정적으로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에서 그녀가 가족에게 감정이 정형적이 아닌, 끈쩍하고 파괴적인 감수성이 숨어있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똑같은 아버지의 유품을 들여다보면서 주인공은 초반 시퀸스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지만 죄책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결국 그녀의 가족이라는 페르소나 역시 쉽게 내던질 수 있는 가면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행해왔던 끈적한 살인 장면들의 연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현대인의 화려하고 다양한 가면들 속에서, 오롯이 현대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욕망 뿐이었다는 것이다.

 

영화 포제서는 아들 크로넨버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색체를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SF 작품으로도 훌륭한 작품이고, 현대적이다. 크로넨버그를 좋아했고, 안티바이럴을 좋게 보았다면 기회가 되었을 때 꼭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 크로스/더블 크로스 리뷰입니다.(leviathan.tistory.com/2189)

 

본인이 근래 게임 취미 생활 중 놓쳐서 아쉬운 게임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단연코 몬스터 헌터 월드였을 것이다.(초반 약 10시간 정도 밖에 플레이하지 못했다) 도스 기반의 프론티어와 트라이 G에서부터 더블 크로스까지, 하나의 게임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했던 본인으로서는 지난 10여년 간 쌓여있었던 소위 '몬헌다운' 것들이 한번에 일신되어서 세계적인 게임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하는 전화점이 된 게임이기 때문이었다:월드에서 몬헌은 맵에서 바로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던가, 맵의 복잡도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들이 많아졌다던가, 여러 편의 요소들이 증대되었다던가 등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부분은 있겠지만, 지금 현재까지는 몬스터 헌터 프랜차이즈는 월드로 인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스위치용 버전인 라이즈가 등장하게 된다.

 

몬스터 헌터 라이즈는 월드와 아이스본 이후로 다시 휴대기로 돌아온 몬스터 헌터라 할 수 있다. 몬스터 헌터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몬스터 헌터 포터블과 포터블 세컨드로 이어지는 휴대기 사양의 몬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휴대용 기기들은 몬스터 헌터 프랜차이즈의 매력을 십분 살리는 플랫폼이었다:언제 어디서라도 가볍게 게임을 키고 즐길 수 있다는 점, 몬스터 사냥 등의 반복 작업을 이동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모여서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은 몬헌이란 프랜차이즈와 잘 어울리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월드와 이전 몬헌들, 그리고 라이즈와의 관계다. 우선은 몬스터 헌터 월드가 어째서 나왔는가, 그리고 기존의 몬헌들이 어떤 속성을 가졌느냐를 이해해야 몬헌 라이즈를 이해할 수 있다:한 때는 PSP 하드 그 자체였던 게임이었고, 트라이 G나 4, 4G, 크로스, 더블 크로스 등을 거치면서 휴대기로 승승장구한 몬헌 프랜차이즈는 흥미롭게도 '일본 내수 시장 한정'의 게임이었다. 한국은 북미나 일본이나 양쪽 모두 게임 문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트라이와 트라이 G가 나온 배경은 포터블 서드까지 베이스를 두고 있는 PSP 자체가 일본 시장에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계적으로 깔린 3DS와 협업하는 것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이었다. 물론 4에서 더블 크로스까지, 해외 전개가 그렇게 까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4와 4G에서 보여준 한국 닌텐도 지원이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에서는 사실상 사라진 것을 보자,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캡콤이 원하던 세계적인 몬헌이란 명성은 월드에 도달했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계화 실패의 베이스에는 소위 '몬헌 다움'이라는 요소가 있다. 대부분의 '몬헌 다움'이란 몬스터 헌터 1편 ~ 도스, 세컨드 포터블 G급 까지 이어지는 몬헌의 기본 골격에 기반한 것이다. 적에게 데미지를 입혔을 때 숫자가 뜨지않는다던가,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의 숫자가 한정되었다던가, 조합서가 없다면 조합에 실패할 수 있다던가, 장비는 어떻게 강화되는지 알 수 없는 등의 요소들이 이러한 몬헌다움의 예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몬헌다운 게임 요소들의  핵심은 '불친전한 요소를 통해 플레이어가 항시 생각하고 준비하며 사냥을 해야한다'였다:플레이어는 몬스터에 맞게 모든 준비물들을 준비해야 했었고, 무기도 거기 맞춰서 준비해야했다. 이러한 몬헌다움은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해오고, 공략 커뮤니티가 자리잡은 곳(일본이나, 한국 같은)에서는 그럭저럭 잘 작동했지만, 그 바깥(서구권)에서는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힘든 구조였다.

 

 

 

그렇기에 월드는 어떻게 보면 기존의 작품들을 모두 해체해서 0부터 다시 재구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오래된 건물 하나를 벽돌단위로 해체해서, 그것을 기존 건물에 새로운 구조물을 붙여서 새롭게 만든 것이다. 본인이 월드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을 들자면, 숫돌이 아이템 창을 차지하지 않는 점과 숫돌이 더이상 소모품이 아니고 장비품이 되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부분까지 게임이 아닌 플레이어가 챙겨야 한다는 점(숫돌 들어갈 아이템 파우치 칸 정도는 확보해야하는), 그것이 몬헌다움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월드는 그러한 몬헌다움에서 벗어나서 '제작진이 생각하는 몬헌 프랜차이즈의 근원'에 맞게 게임을 재구성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라이~ 더블 크로스까지 이어지는 도스 이후의 몬헌들이 전혀 게을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월드의 고민을 앞서서 진행하고 도스 기반의 몬헌을 통해서 풀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한 작품들이고, 그 결과 많은 변화점이 몬헌 시리즈에 누적되었다.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Z축의 도입'일 것이다. 몬헌 도스는 전통적으로 평면적인 몬헌으로 높낮이에 따른 액션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서 트라이는 수중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물속이라는 3차원 공간에서 싸운다는 발상을 통해 3차원 공간을 한정적으로 재현하였다. 하지만 수중전은 상당히 느린 페이스로 진행되었고, 이런 점 때문에 몬헌과 어울리지 않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트라이의 고민은 결국 4편의 단차 액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높이 뛰어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몬스터 등에 올라타서 데미지를 주고 큰 경직을 유도하는 단차액션, 그리고 높낮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조충곤이라는 무기의 등장은 제작진의 새로운 몬헌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조충곤이나 단차 액션 이때부터 Z축 판정 범위가 큰 공격들이 몬스터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고어 마가라의 횡방향 브레스나 샤갈 마가라의 십자 브레스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때부터 몬헌은 좀 더 입체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트라이에서 4와 4G로, 그리고 이어지는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는 몬헌이 더이상 예전의 모습을 띄지 않겠다는 결론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필살기 개념인 수기와 스타일은 기존의 몬헌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들을 실제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정립한 것들이었다. 수기를 이용해서 무적 판정으로 공격을 씹는다던가(한손검 라운드 포스 같은), 부시도 스타일로 포효 같은 패턴을 회피하는 등 기존 몬헌에서 방어구에 붙은 스킬을 능동적인 액션의 형태로 재구축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점은 게임 플레이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방어구 스킬에 목메지 않게), 몬스터 디자인에도 많은 변화점을 주었는데, 디노발드나 발파루크 같이 '넓은 범위를 빠르게 공격하는' 스타일의 몬스터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라이즈는 월드의 편의성과 월드 이전 몬헌들의 고민을 결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Z축을 도입한 입체적인 몬헌(트라이와 4, 4G)과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몬헌(크로스와 더블크로스)의 결합이 몬헌 라이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 개발 당시 제작중이었던 라이즈는 원래는 기존 더블 크로스나 4 시리즈에 가까운 물건이었는데, 월드의 성공 이후 월드 요소들을 적극 차용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이다.

 

라이즈가 추구하는 입체적인 몬헌, 소위 Z축 몬헌은 '밧줄벌레 액션'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흥미롭게도, 4 이후로 추가된 고저차를 이용한 점프 액션이 4의 기존 단차 액션이나 크로스의 에어리얼 스타일로 하나의 시스템에 국한된 것과 달리 달리 밧줄벌레 액션은 게임 전반의 흐름을 모두 뜯어고쳤다는데 의의가 있다. 우선 밧줄벌레의 경우, 여타 게임의 그래플링 훅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그래플링 훅을 이용한 액션을 통해서 기존의 맵에서는 올라갈 수 없는 지형을 오른다던가, 높은 수직의 벽을 달려서 타고 올라가던가 등의 다양한 액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투 측면에서 밧줄 벌레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끼친다. 첫번째는 '낙법'의 존재다:기존 몬헌에서는 날아가는 공격에 맞고 다운되는 경우에 얄짤없이 굴러가서 누워있어야 했고, 그 결과 몬스터가 구석에 헌터를 몰아넣고 확실하게 헌터를 기절시켜버리는 공격을 자주 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라이즈에서 낙법은 마치 격투 게임의 기상 낙법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날아갈 때 하나의 밧줄벌레를 소비해서 원하는 위치에 납도 상태로 착지하게 만들어 준다. 이 때 플레이어는 물약을 소비하거나, 자신을 날린 몬스터에게 다시 날아가서 역으로 공격을 가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시도할 수도 있는데, 기존에는 누워서 일어나기 까지 구르기 버튼이나 연타하면서 후속타에 맞지 않기를 기도하던 때와 비교하면 적극적으로 플레이의 흐름을 플레이어 쪽으로 끌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점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밧줄벌레 기술이다:이는 더블 크로스의 수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밧줄벌레를 소비하면서 몬스터에게 강력한 공격을 가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버프를 얻을 수 있다. 크로스나 더블 크로스에서 이러한 스킬들이 잦은 빈도로 쓰지 못하는 '필살기' 개념에 가까웠다면, 라이즈에서 밧줄벌레 기술은 밧줄벌레라는 자원을 이용해서 항시 사용할 수 있는 스킬로 변화했는데, 이 덕분에 크로스나 더블 크로스보다도 더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대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기술이나 조작관점에서 본다면 전작에 대비하여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은 무기긴 하지만, 밧줄벌레와 낙법의 추가로 기존 대검의 단점들(느린 이동 속도와 구르기에 의존적인, 한방을 먹이기 위해서는 포지셔닝이 중요한데 포지셔닝이 어려운 상급자용 무기 등)을 상당히 보완할 수 있다. 밧줄 벌레 납도는 빠르게 무기를 납도하고 원하는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고, 금강 모아베기는 몬스터의 몇몇 공격 패턴을 무시하고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먹일 수 있다. 물론 대검의 특징은 느린 이동 속도, 묵직한 한방 등의 요소들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런 요소들 때문에 도저히 못해먹겠다'라는 요소는 거의 사라졌다 볼 수 있다. 즉, 개성을 유지하되 밧줄벌레와 관련된 기술들이 단점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라이즈는 게임 전반을 변화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용조종이다: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밧줄벌레보다도 단차 액션의 요소를 능동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맵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조작해서 다른 몬스터를 공격하고 큰 경직을 유도하는 요소다. 밧줄벌레 기술을 맞춰서 용조종 수치를 올리는데, 이전의 단차 액션이 점프 액션에만 대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더 유연한 수치를 축적할 수 있게 만들어놨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몬헌에서 몬스터의 난입이 난이도를 올리는 일종의 패널티 요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용조종은 '다른 용이 난입하는 것이 이제는 이점이 된다'라는 부분이 되었다. 

 

 

밧줄벌레와 연관된 변화점들은 라이즈가 이전 몬헌들의 요소들을 한 데 아우러서 '능동적이고 강한 플레이어'를 만드는데 있다:Z축과 대한 재해석과 월드의 편의성이 합쳐져서 게임의 흐름은 물흐르듯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더이상 구석에 쳐박혀서 기도하면서 구르기를 연타하지 않아도 되고, 회복이나 공격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몬스터가 난입하거나 하는 것은 이제 강력한 딜 찬스로 변화하였다. 분명 역대 가장 쉬운 몬헌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가 그만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해야 강해지는 선순환적인 요소가 있는 몬헌이기도 하다.

 

밧줄벌레 뿐만이 아니라 무기 액션 전반에서도 이러한 능동적인 움직임을 장려하는 변화점을 찾아볼 수 있다. 수렵피리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텐데, 버프와 딜 사이클을 분리해놓은 이전작의 조작을 탈피해서 '연주 없이 공격해도 버프를 주는 점'과 '육질을 무시하는 음파 공격 형태를 추가'한 점 덕분에 이전과 다른 공격적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몬헌 라이즈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쉬워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촌장이나 집회소 5성 까지는 상당히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긴 한데, 6성부터 7성까지 등장하는 적들이 라이즈의 게임 변경점에 대응하여 상당히 공격적으로 바뀐 점은 상당히 눈여겨 볼만하다. 진오우가 같은 몹들은 상당히 높은 Z축 판정을 갖고 플레이어를 압박하고, 밧줄벌레 낙법이 불가한 공격이 등장하지 않나, 마가이마가도 같은 몹은 엄청난 속도와 넓은 판정 범위로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그 외에도 느리지만 착실하게 압박해오는 고샤하기나 약체화되었지만 여전히 전통의 강자인 라잔 같은 몹들도 6성 이상에서 플레이어를 압박해오기 때문에 마냥 쉬워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현재로써는 엔드 컨텐츠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백룡야행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 있다. 몬헌 답지 않게 많은 몹들이 나오는 것을 디펜스 해야한다는 부분이 이질적이고(실제로도 공격받다 퇴각한 몹들이 그냥 사라지는 부분이 나오는 등 좀 이질적인 흐름이긴 하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는 상당히 단조로운 패턴이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본인의 추측으로는 아직 라이즈의 엔드 컨텐츠는 '풀리지 않았다'라고 보여지는 부분들이 있다:몇몇 무기들(예를 들어 포호룡 타마미츠네 무기들 등)이 최종강화가 나오지 않은 점들을 감안한다면 이게 끝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엔드 컨텐츠가 아닌 중간과정으로 백룡야행을 평가한다면, 다수의 평가와 다르게 상당히 괜찮지 않을까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더블 크로스에서도 호석과 돈을 뿌려주는 아트랄 카가 영맹화와 다른 엔드 컨텐츠에 접근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해줬던 것을 생각한다면, 호석용 소재와 다양한 고급 소재를 주는 백룡야행도 보상 측면에서 좋은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백룡야행 자체는 난이도는 낮긴 하지만 기존 노산룡이나 지엔 모란 토벌전을 좀더 능동적인 형태로 바꾸었기 때문에 의외로 틈틈이 손가는 요소가 많은 편이다: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서브 과제들을 클리어할 필요가 있고, 4명의 팀원들이 밀접(GTFO 같이 마이크 키고 서로 100% 합을 맞추는)하게 협업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상황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다해줘야 하기 때문에 상시 긴장감은 유지되는 편이다. 기존 사냥을 하는 게임과 다른 미니 레이드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마지막 주인 개체 같은 적들이 상당히 강하게 나오고, 패턴들도 무섭게 나오기는 하지만 반격의 봉화가 켜진 상태에서 주인 개체를 무지막지하게 후드려 패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점이라 할 수 없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지금 현재(21년 4월 중순) 기준으로 고룡이나 진 엔딩이 해금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이후 업데이트를 통해서 엔딩이나 몬스터들이 풀릴 예정이라 하고, 원래 G급이 풀려야 몬헌이 100% 컨텐츠를 갖추기는 하지만 진엔딩조차 풀리지 않은 건 다소 의아한 부분이긴 하다. 일단 호석을 파밍하면서 천천히 기다리고는 있지만, 몬헌 라이즈는 일종의 '서비스'형 몬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몬헌 라이즈는 이전의 몬헌에서 훌륭한 부분들을 모두 자기 것으로 들고 오는데 성공한 몬헌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라이즈에게 '최고의 몬헌'이라는 칭호를 줄 수 없는 이유를 라이즈는 보여주었다:몬헌은 계속해서 이전의 작품들을 흡수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라이즈 역시 이후에는 더 훌륭한 몬헌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몬헌 프랜차이즈의 건승을 기원하며, 스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구매해서 플레이 해보기를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파이어 앰블램 시리즈는 각성을 통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파이어 엠블램은 케릭터가 죽어버리면 돌아오지 않는다던가, 무기는 소비되어 사라진다던가 등의 특징을 지니면서 고정 팬층을 들고 있었지만, 게임큐브와 위 버전 이후로 시리즈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이는 JRPG나 SRPG와 같은 게임들이 후대로 들어갈수록 새로운 팬층 유입이 힘들어지면서 생기는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사는 마지막 파엠을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각성을 만들었고, 이것은 엄청난 대박을 쳤다.

 

각성의 성공은 전적으로 '파엠 프랜차이즈의 재발굴'이었다:각성이 착안한 부분은 죽으면 돌아오지 않는 케릭터들에게 이입하고 많은 투자(경험치나 무기 등)를 해서 어렵게 이끌어오는 것이었다. 파엠 각성은 케릭터 지원회화와 다양한 상호작용(인연 시스템이나 더블 페어 짜기 등), 연계, 부모-자식 세대의 육성 등의 요소들을 전작들로부터 빌려와서 케릭터 게임으로 발돋움 하였다. 이후 각성의 성공에 고무받은 제작진들은 진영을 나누고 각 인물들의 개성을 강화시킨 뒤,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개의 시나리오로 나눠서 접근한 파엠 if였다. 파엠 if는 시나리오의 호불호가 갈려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리즈 사상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은 if 이후 나온 최신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다. 풍화설월은 각성과 if의 성공에 기반을 둔 작품인데, 기본적으로 교사인 플레이어가 사관학교에서 인물들을 육성하면서 전투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들의 케릭터 게임으로서의 특성을 들고가는 편이다. 그러나 게임의 시스템이나 이런 부분들은 전작들을 그대로 들고오기 보다는 프린세스 메이커나 안젤리크 같은 육성 게임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접목시켜서 게임을 새로운 영역으로 나간다.

 

각성 이후 파엠은 매력적인 케릭터에 이입하면서 이들을 육성하고, 다른 인물들과 교재하면서 관계를 발전시키며 전투를 풀어나가는 것이 메인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 파엠의 클래스 기반 전투는 다변화된 육성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자식세대의 존재로 인해서 '고정된 케릭터 육성'이 고착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자식 세대의 등장은 이들이 왜 등장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토리 설정상의 난점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풍화설월은 그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과 전투 파트를 나누고 '점진적인 성장'을 도입한다. 이를 위해 서사의 배경을 사관학교로 옮기고, 교육파트에서 케릭터들을 교육시키고 전투 파트에서 레벨업을 통해 성장하는 개념을 바탕으로 게임 전체를 재구성한 것이다. 전작에서는 '케릭터=직업=스킬=자질'이 동일시 되었지만, 이번작에서는 스킬과 직업, 케릭터를 분리하여 세부적인 조정을 가할 수 있게 하였다. 예를 들어, 전작에서 마법사형 케릭터가 있으면 마법사 중심의 케릭터 육성만 가능했는데, 풍화설월에서는 초기 마법사 직업을 벗어나서 아예 전사 직업으로 변경하고 교육을 통해 스킬을 모두 전사 스킬과 무기 숙련도를 달아줘서 전사로 운영하고 전투를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시키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장에 전사로 키울 수 없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플레이어는 케릭터와 연관된 거의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재량권을 갖게 되었다.

 

 

그외에도 교육 파트에서 케릭터들과의 유대를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대련을 하거나 사우나에 가거나, 티타임을 갖거나, 합창을 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통해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케릭터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게임인 페르소나 부분과 닮은 부분이 있는데, 전투 외에도 . 이러한 유대가 후술할 전투 파트에서 케릭터간 지원이나 연계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각성 이후로 파엠은 케릭터 간의 다양한 지원회화를 지원하게 되면서 이러한 지원회화들을 보고 이야기적인 만족감도 높다.

 

전투 파트는 케릭터의 육성을 통해서 모으고 쌓아올린 여러가지 스킬들을 조합해서 이끌어 나가야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전통적인 시스템도 세그먼트를 나눠서 접근했다는 것이다:기존의 창>검>도끼>창...의 가위바위보 상성은 이제 창 특효/검 특효/도끼 특효 등의 스킬셋을 달아서 발동시켜야 한다. 이렇게 케릭터를 세분화 시켜서 쌓아올린 결과물을 전투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랜덤 성장으로 성장 폭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여전하지만, 이전에 비해서 플레이어의 재량과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그 외에 새롭게 추가된 부분은 기사단이나 계략과 같은 부분일 것이다. 플레이어는 케릭터 단일 유닛에 기사단을 별도로 장비처럼 부착시킬 수 있는데, 케릭터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동시에 일종의 광역 공격인 '계략'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한번에 여러 적들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고,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거대 마수와 같은 적들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기 때문에 기사단과 계략은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전투와 교육 파트를 둘로 나누고 서로 피드백하는 구조(교육을 통해 스킬이나 직업을 위한 자질을 육성하거나 케릭터간의 관계를 쌓고, 전투를 통해 이를 레벨업이란 결과로 이어가는 것)를 통해서 게임을 유기적으로 이어 나간다. 어떤 점에서 문명같은 4X 류의 게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깊이를 보여주는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케릭터에 대한 목표를 잡고 육성하고 유대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전작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이는 모든 요소들을 잘게 쪼게서 조금씩 쌓아나가고, 그걸 매 플레이 주기에 따라서 결과형태로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피드백이 확실하다.

 

물론 이러한 요소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스킬 등을 세부적으로 쪼개고 이걸 조금씩 적층시켜서 케릭터를 키우는 것은 결국 일정 시점이 지나면 큰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문제를 만든다. 이것이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 후반부의 교육파트인데, 케릭터들간의 관계도 이미 어느정도 고정되었고 스킬이 어느정도 완성되었기 때문에 육성하거나 교류할만한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상당히 루즈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스토리 측면에서 풍화설월은 전반적으로 전쟁 드라마와 학원물 사이에서 나름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다. if나 각성에 비하면 분명하게 드라마로서 완성도가 확실히 높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를 파편화시키고 숨김으로 전체 스토리를 그대로 추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일단 이야기만 총 4개의 루트가 있고, 그 4개의 루트고 각 루트별로 지원회화들을 모두 따라 잡으면서 확인해야 하는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특히 한 루트당 40시간 ~ 60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게임 전체의 스토리라인을 너무 하드코어하게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전반적으로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은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세계화 대중화를 이끌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작들이 상당히 일본의 서브컬처에 잡혀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풍화설월은 게임과 스토리 라인 양측면에서 상당히 보편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게임 육성이나 스토리라인이 파편화되어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만들게 한 점은 다소 아쉽지만, 좀 더 보완한다면 이러한 골격의 파이어 엠블렘이 앞으로도 재밌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만든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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