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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전반적으로 나사빠진 부분과 좋은 부분이 공존하는 이상한 작품.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나 옥토패스 트레블러, 그리고 최근에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트라이앵글 스트레티지 같이, 레트로 JRPG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작품들이 스퀘어 에닉스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가 로맨싱 사가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가 DS판 빛의 4전사와 파이널 판타지 초기작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이란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들 작품들이 '레트로한 작품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 '영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타겟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좁고 명확한 시장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이런 부분들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다:명확한 고객들(오래전부터 단련된 골수 JRPG 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인 만큼, 구세대적인 게임 시스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이 사람들이면 '이정도도 버티겠지?' 싶은,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들도 눈에 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에서는 스토리의 구성이라던가, 케릭터들로 NPC들과 상호작용하는 같은 요소들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데, 전투의 완성도와 별개로 구세대적인 상호작용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브레이버리 디폴트 2도 그런 한계에 명확하게 잡혀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전작들보다 더 퇴보한 부분들이 있어서 골때리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는 잡과 어빌리티의 육성, 그리고 약간의 뒤틀림이 섞인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인데, 브레이버리 디폴트 세컨드:엔드 레이어에서 삐끗한 모습(스토리의 모습 등에서)을 보여서 시리즈 전체가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디폴트 2는 세컨드의 변칙적인 모습에서 좀더 정통적인 흐름(1편의 모습)의 게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과 전작들 사이에 상당히 차이와 괴리가 생겼고 그 결과 전작에 비해 후퇴하게 된 부분도 생겼다.

 

- 가장 후퇴되었다 생각되는 부분은 어이없게도 잡과 어빌리티 육성 파트인데, 그냥 일반 인카운터에서 심볼 인카운터로 전투 조우 방식이 바뀌게 되면서 노가다가 더 어려워진 부분들이 생겨버리고 만 것. 심지어 심볼 인카운터에서 적들이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를 조우하면 도망가는 기믹도 추가되어서 한 곳에서 진득하게 레벨업 하는게 힘들어진 문제도 생겼다. 연속 전투의 보너스가 연속 심볼 인카운터 방식의 전투로 변경되면서 사실상 'JP 보너스 없이' 게임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런데도 희안한 점은 레벨링이나 잡 포인트 노가다, 육성들이 그렇게까지 빡세지는 않다는 점일텐데, 아마도 이후에 QA 단계 등을 통해서 레벨링이나 노가다 속도를 보정하는 과정을 도입하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덕분에 게임 플레이 시간 관점에서 보면 전작과 비등비등한 플레이 타임을 보여준다.

 

- 대신에 괜찮아진 부분은 각 잡과 어빌리티가 연계를 상정하고 각자 개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12렙이 되면 두번째 잡 특성이 풀리면서 각 잡이 강화되는 점이나 독특한 어빌리티, 기믹 등의 요소가 추가되어 재밌는 부분들이 많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디버프 전용 직업인 픽토맨서나 전용 디버프인 패인트 요소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 하지만 이상하게 전작들에 비해서 마법 직군이 키우기도 힘들고 데미지도 안나와서 쩌리가 된 느낌이 강하다. 전과 비교해서 어딘가 한 발짝 앞서면 한 발짝 뒤쳐지는 게임이란 느낌.

 

-스토리는 무난함 그 자체. 아주 인상적이진 않지만, 나쁘게 볼만한 여지도 적은 편이다. 

 

- 돈값은 하는데, 아주 훌륭한 게임은 아니라는 느낌.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애니메이션(~무한열차 전까지)을 감상한 내용입니다.

*이후 전개에 대한 다소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항상 바뀐다. 사회의 조류에 따라, 많은 흥행작들은 뜨고 지고 사라진다. 마치 패션이나 트렌드와 같은 유행처럼 말이다. 벤야민은 그렇기에 유행의 본질은 죽는 것이라 보았다:결국 유행하는 것들의 핵심은 대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유행의 흐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몇몇은 너무나 성공해서 그 작품을 빼놓고 다른 작품을 논하는게 힘들게 되고, 몇몇은 흥행과 관계없이 다른 작품들이 보지 못한 선구자적인 혜안을 드러내서 죽지 않는다. 그런 작품들은 더이상 유행의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닌, 그 사회에 하나의 '상수'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건담이나 드래곤볼, 원피스, 진격의 거인 같은 작품들처럼, 10년이 지나도 다시금 회자될 작품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다루고자 하는 귀멸의 칼날은 그런 작품의 문턱에 올라와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작년 여름쯤에 이미 연재가 마무리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애니화의 광풍 이후 귀멸의 칼날의 인기는 식지 않고 오히려 더 치솟고 있는 중이다:무한열차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일본 영화 관람 인원 '2,000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 중이고, 앞으로 2기 애니와 완결까지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광풍은 몇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귀멸의 칼날이 애니화의 수혜를 엄청나게 받은 것은 확실하다:몇몇 초반 부분의 늘어지는 전개가 정리 되고, 무한열차 이후 정립된 연출이나 이런 부분들을 애니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해석하여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몇년간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손 놓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귀멸의 칼날은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봤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눈요기할만한 요소가 많은 물건이란 것이다:우키요에 풍으로 그려진 호흡과 필살기 연출 등은 확실히 애니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뒤흔들만할 정도로 강렬하다. 대표적인 예가 루이와의 싸움에서 일륜도로 목을 배는 장면의 연출이다:루이의 실을 뚫고 나가 히노카미 카구라로 루이의 목을 치는 장면은 이미 애니와 만화를 비교하는 분석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장관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적으로 귀멸의 칼날이 애니의 수혜만 받은 작품이라 볼 수는 없다:애시당초에 원작 만화에서 그러한 연출과 미학(우키요에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색체와 굵은 붓 필치)을 정립하지 않았다면, 애니에서 재해석할만한 요소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극의 구성이나 묘사, 연출, 설정의 구성 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귀멸의 칼날은 최근 몇년간 보였던 소년 만화의 공식에서 다소 빗겨나가는 독특한 감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귀멸의 칼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감정 묘사나 이런 부분들이 소년만화 답지 않게 섬세하다는 점이다. 젠이츠와 이노스케와 처음 만나고 장구 도깨비와 싸우는 초반 에피소드를 보자:여기서 탄지로는 이전 도깨비와 싸움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고전하는데, 작가는 그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남으로서의 자신의 역할,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전개한다. 부상 때문에 아프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는 것은 소년 만화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귀멸의 칼날은 그런 난관을 더 큰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고난을 긍정하는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모습에서 보통 소년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인 탄지로가 갖는 미덕이 '그 나이 또래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구체적인 수준'의 무엇이라는 것이다. 탄지로의 주요 모티브인 장남이기 때문에 아픔을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이나 이제는 가장이니까 남은 네즈코를 지키고 인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에게 공감하고 자비를 보이는 따뜻함 등은 여타 소년 만화에서는 스케일이 커지면서 금방 희석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소소한 미덕'에 집중하고 극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애니를 소비하는 주 소비자층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부분들이 있다.

 

귀멸의 칼날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구조 측면에서 상당히 탄탄한 모습을 보인다:마음을 잇는 자들(귀살대)와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자들(도깨비들)을 서로 대립하게 두고, 그 둘 사이에서 인물과 극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단순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대단히 효과적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 키부즈치 무잔 같은 미형 악역이 인기를 크게 못 끄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무잔은 '이기적인' + '그러면서 아전인수격으로 헛소리를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는' 인물인데, 극에서 그 어떤 이입의 여지를 주지 않는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이입하기보다 '생긴것과 다르게 추하기 짝이 없다' 라는 감상자의 평을 이끌어낸다.

 

결국 이러한 이기심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귀살대와 마음을 잇는 자들인 것이다.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탄지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이어나가면서 성장하고 결국에는 무잔을 쓰러뜨리는 게 된다: 자신의 동기들, 무한열차의 렌고쿠, 죽은 자신의 가족들 등등 탄지로가 이들의 마음을 잇고자 하고 그들 역시 탄지로를 이끌기 때문에 탄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위업들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예가 애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귀멸의 칼날 이후 전개에서 희대의 메리수로 불릴 수 있는 요리이치일 것이다. '그' 키부츠지 무잔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정작 무잔을 죽이지 못한 점에서 전개에 구멍이라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요리이치 라도 무잔을 죽이지 못했지만 결국 그의 마음을 잇는 호흡의 계승자들에 의해서 무잔이 죽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탄지로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극의 테마를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귀멸의 칼날은 3가지 측면(섬세한 묘사, 공감 가능한 미덕과 인물들, 대칭적이고 분명한 구조)에서 미덕을 갖고 있고, 이 덕분에 일본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연재작들이 테마나 구조에서 흔들리는 부분을 많이 보여준것과 달리, 귀멸의 칼날은 상당히 깔끔한 마무리와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대중적인 작품치고 호평할 부분이 많다. 애니화 되는걸 따라서 쭉 정주행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https://leviathan.tistory.com/2309

 

 

젤다 무쌍:대재앙의 시대는 야생의 숨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외전격 작품이다. 무쌍 시리즈는 오래전부터 주요 닌텐도 프랜차이즈(파엠과 젤다의 전설)와 콜라보를 해왔는데, 젤다무쌍의 경우 이전에 하이룰의 전설들(리뷰)이란 성공적인 전작이 있었다. 그 때의 젤다무쌍(하이룰의 전설들)도 '무쌍 치고는 잘 만들었지만, 여전히 무쌍의 한계에 사로 잡혀 있는 게임'이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이번 대재앙의 시대 역시도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생각보다 신선했던 부분, 기존 무쌍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함도 함께 갖고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무쌍 시리즈의 기본은 크게 세가지다:첫번째는 거대한 전장의 구현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전장이란 개념을 현대적인 게임의 개념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트리플 A 게임에서 보여지는 살아있는 세계와 무쌍 시리즈의 전장이란 스테이지는 완전히 다르다. 트리플 A 게임이 기본적으로 완결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스템과 콘탠츠를 집어넣으려 한다면, 무쌍 시리즈의 전장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빈 공간에 배경 텍스처를 채워넣은 정도'로 무의미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적들과 아군들, 거점들 등등 역시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플레이어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플레이어는 짜여진 스크립트대로 거점을 돌파하거나, 적장을 제거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무쌍 시리즈의 스테이지들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점에서 점으로 쭉쭉 진행해나가는 일직선의 구조다. 그리고 게임 내의 상당수 이벤트들은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거대한 전장을 구축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숨기는 요소다.

 

두번째는 다양한 케릭터들과 단순화된 액션이다. 무쌍은 오랫동안 단순한 액션으로 상당히 악명 높은 게임이었다:모든 공격들은 기본 공격의 연결로 이어지는 콤보와, 콤보 몇단에 특수공격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무쌍은 수많은 케릭터들을 집어넣음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모든 케릭터들은 고유의 모션과 성능을 갖고 있다. 하나 하나 케릭터들은 단순하지만, 케릭터들 마다의 운영 방식이 크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케릭터를 할 때마다 마치 다른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쌍 시리즈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는 RPG와 노가다 요소다:무쌍 시리즈는 스토리 완결 후, 수많은 노가다와 무기 육성들을 엔드 컨텐츠로 내놓는다. 영미권의 그라인딩Grinding(갈아넣다, 게임 용어로 노가다에 해당하는 단어)이 적절한 표현이다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인 게임 재화들(돈과 무기들)을 갈아넣어서 강한 케릭터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이것이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여타 그라인딩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뒤집어 엎을 정도로 엄청나게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수치상으로 강해지는' 다소 급이 낮은 형태의 그라인딩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요컨데, 무쌍 시리즈의 핵심은 '무언가 거창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순하고, 하지만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야생의 숨결을 생각하고 게임을 한다면, 게임이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다. 대재앙의 시대는 단순하고 일직선적이며, 게임 경험을 구성하는 근본에서 야생의 숨결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야생의 숨결에 나온 요소들을 재해석해서 무쌍 시리즈에 접합시키는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 덕분에 대재앙의 시대는 무쌍 시리즈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대재앙의 시대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기존 작들 보다 콤보(콤보 7~8 까지 있는게, 콤보 6정도로 축소되었다고 보면 된다)가 간소화된 대신에 케릭터의 개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작들에 비해서 참전하는 케릭터 수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도 있지만(20명 남짓), 기본 공격과 강공격 외에도 케릭터 액션과 케릭터 고유 자원(우르보사는 번개 게이지, 임파의 경우 적의의 인 같은)들이 대거 도입되어서 전작들에 비교해서 각 케릭터들 사이의 차별점을 공고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또다른 특징은 시커 아이템을 이용한 4개의 고유 액션을 부여하였다는 점이다:기존 시커 아이템들이 게임 내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주요한 열쇠가 되었다면, 대재앙의 시대에서 시커 아이템들의 경우에는 중보스~보스급의 주요 공격 패턴에 대응하기 위한 용도다:전작의 하이룰의 전설들에서도 그랬듯이, 대재앙의 시대도 보스급 이상의 적들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용도로 아이템을 이용한다. 하지만 의존도는 전작보다 대폭 올라갔다 할 수 있는데, 전작들이 회피와 공격만 잘했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면 대재앙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아이템 사용이 약점 노출과 함께 적의 강력한 공격 패턴을 방어하는 용도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전작과 다르게 시커 아이템을 이용한 공격이 각 케릭터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각 케릭터들마다 시커 아이템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각 케릭터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가장 독특한 케릭터가 시커 스톤을 사용하는 젤다일건데, 콤보가 콤보 2까지 밖에 없지만(!) 대신에 시커 스톤으로 불러낸 오브젝트들을 한꺼번에 기폭하는 케릭터 액션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공격 연타로 얼음기둥을 소환하거나 콤보 2로 대형 폭탄을 불어낸 다음에 케릭터 액션으로 한꺼번에 쓸어내버리는 전략이 주요하다. 또한 시커스톤을 이용한 공격이기 때문에 시커 스톤 관련 버프가 일반 공격에 적용된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비슷한 무브셋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 무쌍류이지만, 대재앙의 시대의 경우에는 정말로 모든 케릭터가 하나의 무브셋을 공유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케릭터 운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케릭터 하나 하나를 육성하고 적응하는 재미가 있다.

 

적들이 전작에 비해서 매우 능동적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기본적으로 병풍이긴 하지만, 높은 난이도로 갈 수록 이들 병풍들이 '한 대씩만 휘둘러도'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게 무쌍 시리즈라 할 수 있는데, 대재앙의 시대에서는 잡몹들이 동시 공격 패턴(뿔나팔을 불면서 일제 사격을 한다던가) 등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나, 중보스에서 대형보스까지 패턴들이 크고 위협적인 것들이 많다. 방어력과 관련된 옵션이 일절 없기 때문에 데미지 감쇄가 거의 없는 대재앙의 시대 특성 상, 적의 공격을 가드하거나 피하는 것이 중요한데 패턴을 우선적으로 커트할 수 있는 시커 아이템 이용이 중요하고, 야생의 숨결에도 있었던 회피-러쉬 공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컨데, 무쌍 시리즈 치고는 플레이어가 단조롭게 버튼만 눌러서 쓸어버리는 것이 아닌, 피하고 패턴에 맞춰서 행동하는 등의 대응도 중요한 게임인 것이다.

 

원작이 있는 게임 답게 팬 서비스도 확실하다. 코로그 씨앗 찾기 같은 본편 요소 뿐만 아니라, 맵과 상호작용해서 적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는 기믹(예를 들어서 풀밭에 불을 지르면 더 많은 데미지가 들어간다던가) 같은 것도 충실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기믹은 바로 신수를 조작해서 적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미니 게임이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미니게임 정도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지만 '과연 100년 전에 신수를 조작해서 싸운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팬들의 갈증을 단박에 해소하는 강렬한 미니 게임 스테이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젤다무쌍:대재앙의 시대는 무쌍치고는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있고, 야생의 숨결에는 못미치만 오랫동안 패드를 잡고 플레이하게 만드는 강점을 지닌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문제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첫번째는 맵의 구성이다:기본적으로 무쌍 시리즈는 평면과 골목으로 구성된 맵에 거점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 방식인데, 대재앙의 시대에서 몇몇 맵들은 야생의 숨결에서 차용한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인 부분들이 이가단 아지트나 하이랄 성일텐데, 맵이 고저차가 있고 디테일한 부분들이 있어서 해메기 딱 좋은 구조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벤트 따라서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하는 게임인데, 맵의 복잡성을 너무 크게 올린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두번째는 케릭터 업그레이드 콘탠츠다. 금번 대재앙의 시대에서는 케릭터 업그레이드와 관련된 부분을 소재와 돈을 주고 업그레이드 하는 하이랄 챌린지 형태로 구성을 해두었는데, 이것이 하이랄 맵 전체에 흩뿌려진 형태이기 때문에 추적하기 어렵고, 원하는 케릭터를 업그레이드 할 때 전체 업그레이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나마 소재의 경우 시커 아이템 추적 기능을 이용해서 추적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러개 추적을 활성화 시키면 추적이 '무엇을 추적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대재앙의 시대는 몇몇 결점에도 불구하고 즐길만한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무쌍 시리즈가 콜라보나 본가나 매번 나올때마다 저평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게임의 돈값어치 만큼의 플레이타임과 재미를 보장해주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숨결 같은 게임을 기대하면 분명 실망하겠지만, 적당히 기대감을 낮추고 외전으로 즐긴다면 충분히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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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은밀한 한 탕을 설계한 범죄 조직원 ‘카세’ 야쿠자와 손을 잡은 부패 경찰 ‘오토모’ 그리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복서 ‘레오’  잃을 것 없는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바로 그날 밤 예상치 못한 유일한 변수 ‘모니카’가 나타나고 완벽했던 그들의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뒤틀리기 시작하는데…(네이버 영화)

 

감독 미이케 다케시는 참으로 독특한 감독이다:빠른 제작 속도, 똘끼넘치는 연출들과 B급 감수성들, 엄청난 폭의 장르를 소화하는 모습 등등. 오디션이나 비지터 Q 같은 작품에서 역전재판이나 용과 같이 영화판 같은 작품들까지 그의 행보는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의 연속에서도 미이케 다케시가 거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그만의 뚜렷한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다. 퍼스트 러브도 그러한 관점에서 미이케 다케시의 영화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퍼스트 러브는 기본적으로 부조리극의 양식을 취한다:완전 범죄를 위해 세운 계획은 제 3의 변수(레오의 개입)에 의해서 무너지고, 계획의 붕괴와 함께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인간 군상들이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는 코엔 형제의 영화들이나 몬테 헬만의 영화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도다. 그들의 작품들처럼 퍼스트 러브는 이러한 상황에서 극을 기묘한 긴장감으로 채워넣는다: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낀 사람들의 어색함과 계획 외의 요소가 개입하였을 때의 당혹감 사이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대로 튀어 다닌다. 

 

하지만 퍼스트 러브는 코엔 형제의 무덤덤하고 냉소적인 유머감각이나 몬테 헬만의 광기와 독기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퍼스트 러브는 레오와 유리(=모니카)가 만나면서 생기는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오프닝 타이틀이 뜨기 전까지, 그들의 인생은 희망없고 생기없는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레오는 재능있는 복서였지만 태어날 떄부터 부모로부터 버림 받았고, 승리나 삶에 있어서 어떠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리는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환상과 마약 금단 증상 속에 갇혀서 고통받고 있다. 이 둘을 지배하는 감각은 '무력감'이다:어찌할 수 없는 환경과 상황에 대한 무력감들로 그들은 자기 자신에 갇혀서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연명할 뿐이다.

 

이러한 무력감은 좀 더 확대해서 본다면 일본이나 전세계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무력감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무력한 젊은이들의 첫 만남은 벼랑 끝에서 이루어진다: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레오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며, 유리는 부모의 빚 때문에 조건만남을 강요당하고 몸을 팔다가 범죄 계획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되면서 죽을 위험에 처한다. 그들의 만남은 부조리한 동시에, 어쩌면 필연적이다:자신의 책임도 아닌 사건과 파국의 끝에서 서로를 만났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벼랑 끝에서 서로를 만남으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간다.

 

레오와 유리를 둘러싼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들과 충돌이라는 점,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휘말린다는 점에서 부조리하지만 흥미롭게도 미이케 다케시는 이 부조리를 재해석한다. 레오는 뇌종양 때문에 상대가 어이없게 뻗은 럭키 펀치에 쓰러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상황을 부합하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거리 점쟁이가 의사가 확진해준 뇌종양 판정과 다르게 인생 앞으로 시작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레오가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 뇌종양은 오진이었고 점쟁이 말이 맞았다는 사실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은 맞이한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일들(의사의 말이나, 앞날이 보이지 않는 미래, KO에 대한 적당한 설명인 뇌종양 같은)은 전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럭키 펀치는 진짜로 '럭키 펀치'(레오의 삶에 대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부조리함은 일종의 '기적'과도 같은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적은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나가게 한다:신주쿠 한 복판에서 유리가 약과 트라우마 때문에 환각을 보지 않았다면 레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레오가 뇌종양이라 진단받지 않았다면, 상대가 운좋게 휘두른 럭키 펀치를 맞지 않았다면 유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어찌할 수 없는 삶에서 만났던 기적과도 같은 부조리함이 레오의 첫사랑First Love을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미이케 다케시의 센스는 여기서부터 빛을 발한다:애시당초에 삶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이 조리에 맞고 이치에 맞는 것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대단히 유쾌한 무언가로 표현한다:예를 들어 카세가 주리를 기절시키고 아파트에 데려다 주는 시퀸스를 보자. 침대에 주리를 내려놓고 아파트를 나가려는 순간에서 갑자기 주리의 어머니가 튀어나온다. 카세가 '보통은 혼자 사는거 아니냐고'라고 불평하는 장면과 주먹 한방에 죽어버린 주리의 어머니, 카세가 화재로 주리와 범죄현장을 은폐하려 하지만 '앗뜨거'하면서 튀어나와서 살아남는 주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부조리들이 이어지면서 주리는 카세를 뒤쫒을 방법을 야쿠자에게 알려주고, 이야기는 흘러가게 된다. 극 중반 이후부터의 모든 이야기들이 이런 '부조리함'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것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바로 카세와 레오, 유리, 그리고 오토모가 처음으로 만나 차에 타고 서로 뭐하는 인간들인지를 물어보는 시퀸스일 것이다:쉴세없이 카메라를 한 인물에게서 다른 인물로 핑퐁하듯이 빠르게 넘기는 이 장면에서 미이케 다케시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유쾌한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분명 피가 튀고 사람이 죽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묘하게 희망찬(?) 탈출구를 보여준다는 점과 황당할 정도로 웃기다는 점에서 퍼스트 러브는 미이케 다케시 식의 '멋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배경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지만 말이다.

 

또 눈여겨 봐야할 점은 미이케 다케시가 바라보는 영화속 공간들이다. 일본의 현대적인 풍경과 달리, 퍼스트 러브의 세계는 쇠락하고 우울하며 시대착오적이다. 뒷골목의 쓰러져가는 중국집, 복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스포츠, 유리가 살았던 무너져 가는 판잣집들, 일본의 밤거리,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공구 쇼핑몰들이 그러하다. 인물들 역시 풍경의 연장선에 존재한다:더 나아가서 시대착오적으로 행동하는 야쿠자와 중국 마피아들, 복서인 레오 등등. 미이케 다케시는 멋지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닌 구질구질하고 버려진 세계에 집중한다. 

 

이러한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끝나고, 레오와 유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분명 어제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무엇보다도 살아있다는 에너지로 충만하게 된다(재활치료를 하는 유리의 모습이나 레오가 권투 시합에서 이기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라) 젋은이가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희망과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미이케 다케시의 퍼스트 러브는 재기발랄하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희망과 따스함을 잃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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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일신상의 변화로 작년 3월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직을 하고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워해머 40K는 오랫동안 해보고 싶은 숙원의 취미 중에 하나였다:실물의 모델들을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설정이나 분위기 등에 오래전부터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문에 가장 큰 발목을 잡는 것은 예산, 그리고 모델 조립과 도색이었다. 워해머40K 미니어처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이야, 학생 때와 비교하였을 때 직장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도색과 조립에 대한 압박감이었다. 게임을 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모델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하는데,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직을 하기 전, 잠깐의 짬은 이러한 의문과 부담감을 떨쳐내고 워해머 40K 미니어처 시도를 해볼만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술이나 손재주와 크게 관계가 없었던 본인은 도색하면서 모델을 버릴 각오로 도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니어처 모델 도색의 난이도는 걱정하는 것보다 낮았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본인의 1년간의 경험을 분석하여 정리한 것이 본 글이다.

 

워해머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Games Workshop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가 있다:수집, 조립, 도색, 플레이. 흥미로운 점은 미니어처 워 게임이 '보드게임'의 하위 장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게임 플레이보다도 다른 요소들(수집, 조립, 도색)이라는 부분들이 중요한 키워드로 뽑혔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두고 본다면, 워해머 40K는 보드게임과 프라모델 수집 및 도색이라는 영역과 함께 걸쳐있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하는 재미를 구성하는 측면에서 이러한 수집과 도색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부분들이 있다.

 

 

우선 조립, 도색의 난이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도색이라는 과정이 어렵고 대단히 귀찮은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취미를 하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도색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의 표현대로, 기본적으로 도색은 '색칠하기'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칠해야하는 곳에 적당한 색을 칠하기만 해도 절반 이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워해머 40K의 모델들은 훌륭한 조형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40k의 미니어처 모델은 현실의 물체를 작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비례를 그대로 미니어처 모델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들을 상당히 '과장되게' 표현을 한다. 즉, 미니어처 모델들은 직접 들고 보았을 때, '눈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디테일'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델들을 잘 살펴본다면 각각의 구획들이 뚜렷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인는 도색을 할 때 '칠해야하는 구역'과 '칠하지 말아야 하는 구역'을 분명하게 구분해준다. 이런 점에서 놀라울 만치 작은 모델을 칠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워해머 40K 모델은 대단히 직관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Games Workshop이 제시하는 도색 방법론은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이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Games Workshop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먼저 모델에 베이스가 되는 색을 올리고, 음영을 주는 쉐이드를 칠한 뒤에, 마지막에 빛이 닿는 부분에 밝게 빛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에 색을 올린다. 이렇게 기본 색, 음영, 구획을 구분 짓는 경계를 밝게 칠해주는 작업만으로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초심자에게도 편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다만 조립의 경우에는 모델의 연식에 따라서 상당한 편차가 있다:기본적으로 스프루(조립되기 전의 키트 상태)에서 부품을 잘라내기 위한 니퍼와 조립을 위한 접착제만 있어도 모든 키트를 조립할 수 있지만, 연식에 따라서는 접착제만으로 제대로 조립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의 키트들은 정확하게 파트별로 조립하기 쉽게끔 구성되어 있지만, 연식이 된 모델들은 파트별로 조립하는데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크론 쪽의 리치가드, 이모탈 키트들이 그러한 경향성을 보여주는데 포즈를 잡는데 재량을 주고자 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초심자에게 다루기 고역인 부분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립/도색에 있어서 워해머 40K와 Games Workshop이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유튜브와 앱 환경이라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Games Workshop도 이러한 두가지 환경에 초점을 맞춰서 도색과 조립에 대한 요소를 지원한다. 기본적으로 설명서 형태의 도색 작례 같은 것을 공유하지 않는 대신. Games Workshop은 거의 모든 도색 튜토리얼을 유튜브로 올리고 있으며, 시터델 컬러 앱이라는 앱을 통해서 도색의 색조합 등을 공유한다. 이는 상당히 직관적인 접근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멋지게 모델을 도색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 입문의 허들을 상당히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더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Games Workshop 공식이 아닌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공유되는 커뮤니티의 접근방법론일 것이다:공식 작례 이외에도 프로 모델러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론들과 팁들(웻 블렌딩, 제니털 하이라이팅,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도색 등등)이 영상을 통해서 공유되고 있으며, 멋진 작례들을 통해서 더 높은 단계의 도색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또한 다양한 키트들의 부품들을 모아서 새로운 모델로 재창조하는 컨버전도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커뮤니티는 Games Workshop의 공식 도색 튜토리얼이나 지원보다도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단순히 게임이 아닌, 도색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가 워해머 40K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흥미롭다. 영미권의 미니어처 커뮤니티가 '게임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며, 당연한 부분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보드게임은 물리적인 공간(게임 테이블)과 요소들(모델이나 보드 같은)이 개입하기 때문에 결국은 물리적인 지역과 분명한 인맥 중심으로 돌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모바일 환경의 구축으로 이러한 물리적 공간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확장되기 시작되었다.

 

물론 보드 게임이나 워해머 40K가 완전히 물리적인 공간과 요소들로부터 벗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정보, 도색에 대한 정보, 방법론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지역과 인맥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입문과 더 깊은 탐구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또한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칭찬 받고, 개선점을 찾고, 교류하는 것도 이 취미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도색과 조립, 컨버전 등에 대한 커뮤니티의 접근이 상당히 '초보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취미들이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에 대해서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잘 알고 있었고, 초보들이 접근해서 더 높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이끄는 방법론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유튜브나 모바일 환경, 온라인 커뮤니티의 도래는 이러한 정보들의 흐름을 좀 더 원활하게 흐르게 만드는 촉매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커뮤니티가 게임이라는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일수도 있다:어떻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소비하는지를 두고 정보를 교류하거나,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들은 분명 게임이라는 콘탠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부분을 눈여겨 보면서 도색과 조립을 즐긴다면, 충분히 워해머 40K도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취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워해머 40K의 도색은 상당히 매력적인 재미를 가진 취미가 된다. 단순히 게임을 위한 노동 작업이 아닌,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고 완성해가는 과정을 즐기는 요소가 있고, 무언가 배우고 적용하는 재미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시간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때로 실패할 때도 있고, 원하는 모습이 안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도색은 단순히 게임을 위한 요소를 만드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완결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을 커뮤니티가 뒷받침하고 재미를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단순히 도색과 콜렉팅을 위해서 모델을 사는 사람이 상당수의 매출을 차지한다는 점은 이러한 재미 요소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워해머 40K에서 도색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넘어서 독립적인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만드는 것도 재밌고, 칠하는 것도 재밌다.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새로운 사람들이 어떻게 입문하고 더 잘하게끔 유도하는지를 잘 알고 있고, 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만약에 워해머40K에 관심이 있었지만, 도색 때문에 망설였던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 입문 셋(매 판본마다 페인트+모델 셋을 함께 파는 상품이 있다)을 사서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코미디라는 장르는 웃음이라는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르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 것일까? 웃음이라는 감정을 정의하는 것은 여러 것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웃음의 특수성은 '위치의 변화'일 것이다:웃음은 어떤 소재의 높낮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만약 높은 위치를 점하는, 예를 들면 고상하거나, 위대하거나, 아름답거나 한 것들이 추하거나, 하찮거나, 비루한 것이 되었을 때, 그 '높이의 차이'에서 우리는 웃음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비행 서커스나, 성배나, 브라이언의 생애 같은)일 것이다.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은 기본적으로 70년대의 영국의 엄숙주의에 기반한다. 위대한 영국, 성과 예절에 엄격했던 영국의 사회 분위기는 성과 권위에 대하여 대단히 엄격하였다. 몬티 파이썬이 파고드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이들은 성과 권위의 단단하고 높은 위치들을 '추락'시킨다. 엄숙한 초상화들은 외설적인 그림과 사진들과 콜라주 되어서 뛰어놀고, 높은 권위를 가진 자들(판사나, 음악가 같은)은 이상한 개념에 집착하여 촌극을 빚어낸다. 부조리하면서 떄로는 초현실적인 개념의 연결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는 이후 많은 코미디 장르에 영향을 끼쳤다.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부분은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가 단순한 스탠드업 코미디의 말장난이나 좌충우돌의 슬랩스틱식 코미디를 벗어나서 '영상매체'의 특수성을 십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콜라주되는 이미지들도 그렇고, 각종 편집을 이용한 컷과 시퀸스의 배치와 배분, 연결들을 통해서 권위를 추락시키거나 생소하고 낯선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TV 코미디 프로그램 스러운 '웃음'을 삽입하여 웃음 포인트를 명확하게 잡는 부분들은 TV 프로그램 스러운 부분들이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방식으로 따로 논다는 점에서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의 특성이 영화적으로 드러났을 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브라이언의 생애다:이 영화는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브라이언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종교와 정치에 대한 풍자를 이어나간다. 꽁트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성배와 다르게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브라이언의 생애는 '영화'라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드러난다. 기독교에 대한 강도 높은 비꼬기(메시아와 종교, 그를 따르는 사람들까지)를 보여주는 영화는 십자가에 메달린 사람들이 브라이언에게 삶이란 부조리 하며, 그걸 있는대로 받아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끝을 낸다:이러한 장면에서 영화는 코미디의 핵심이 '부조리함'과 '높은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로운 점은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들(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이나 세브린느, 비리디아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 같은)도 이러한 특성(부조리함과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부뉴엘은 초현실주의 사조를 이끈 감독으로 유명한데, 영화 내에서 부르주아의 문화들과 관음증들을 상징과 교차하여 배치하고, 지배계급에 대한 차가운 경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루이스 부뉴엘이 이러한 경멸을 표현한 방식도 몬티 파이썬이 이용한 코미디의 방식과도 유사하다. 자유의 환상을 예로 들어 보자:자유의 환상에서 부르주아들은 응접실에 설치된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배설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화장실에 설치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이렇게 교양을 차리는 식사와 은밀하게 용변을 보는 것을 서로 뒤섞어 놓음으로 부르주아가 갖고 있는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이 부뉴엘의 방법론이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들은 코미디의 방법론을 따르는 것과 별개로 전혀 '웃기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려면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에서 권위는 추락하여 특정한 '위치'에 도달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르포를 쥐 옷을 입는 사람들로 치환시켜서 만든 꽁트에서는 동성애라는 당시 무거운 주제가 쥐 옷을 입는 사람들이라는 사소하고 엉뚱한 것으로 치환되어 사소한 것에 대해 엄숙함과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세태를 비꼬는 것으로 바꾼다. 혹은 브라이언의 생애에서는 메시아의 삶은 평범한 젊은이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도 이러한 방법론이라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코미디의 방법론에서 추락은 결국 '어느 일정한 위치' 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에서 추락은 '어느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에서 추락은 무한한 상태다. 자유의 환상에서 한 에피소드를 보자:옥상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던 남자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 받는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담배를 한까치 태우고, 변호사와 검사와 악수를 한 뒤에 재판정에서 나와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진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는 것은 법정과 법에 대한 권위의 추락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달하고 치환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이 에피소드에서 법과 제도는 추락하고 기능을 상실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웃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위치에 도착하지 않는다.

 

이는 부뉴엘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스페인 인이었던 부뉴엘은 프랑코 정부 수립 후 망명하며 전세계를 떠돌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바라봤던 세계는 절망으로 가득찼을 것이다:혁명은 실패하고, 학살은 묵인되며, 시위는 무자비하게 탄압당했다. 실제 그의 영화들에서 실제의 사건에 모티브를 둔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절멸의 천사는 실제 학살을 방조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이며, 자유의 환상의 엔딩은 당시 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의미하는 부분이었다. 신성모독으로 유명한 비리디아나의 경우에는 가톨릭 성찬식을 빈민들의 만찬과 섹스로 치환시켜 종교의 권위를 무너트렸고, 어느 하녀의 일기는 아동 성추행 살인범이 파시스트가 되는 결론으로 이끈다.

 

그렇기 떄문에 부뉴엘의 영화는 부조리 코미디 장르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웃기지 않고 싸늘하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고, 절망의 끝은 없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는 웃음도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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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개인적인 이야기

 

글 좀 쓰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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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소설과 영화, 이야기라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허구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들이 허구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것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영화는 가장 이 이상에 가까울 것이다:실제하는 것들(사람, 풍경과 같은)을 가상을 연기하기 때문에, 실제하는 것이라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벤야민이 언급한 배우의 거짓된 아우라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영화의 이미지를 실제 배우에 이입하여 배우를 숭배하는 것이야 말로 실제와 영화의 가상을 서로 혼동하는 사례라는 것이 벤야민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살인의 낙인, 동경 방랑자, 야수의 청춘 등등)은 이러한 대전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기본적으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은 장르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동시에 'B급 싸구려' 테이스트가 강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B급 싸구려'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B급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목적성(특정 대상의 관객을 만족시킨다, 특정 장르의 문법을 충족한다)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제한된 예산과 연출들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위 B급 영화의 연출 같은 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이러한 B급 영화의 테이스트와 일반적으로 다르다. 기본적으로 B급 영화들은 이러한 흐름들을 속이려 한다:마치 아무리 그것이 속임수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뻔뻔하게 영화의 흐름에 녹여내려 한다. B급 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아무리 속임수를 진실처럼 믿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이 거짓을 '진짜'라 생각하지 못하게끔 만든다. 살인의 낙인 같은 작품에서 종이 연극을 이용해서 연출을 하거나 하는 등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연출이나 미장센들은 스즈키 세이준이 웃기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웃기는 부분들은 기본적으로 웃기려는 의도들을 내재하였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은 '원래 그러한 것(장르 영화의 공식)을 거짓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의 핵심은 강박적인 공간의 구성과 연출이라 할 수있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의도적으로 작위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야수의 청춘에서 한 컷에서 두 공간이 서로 다른 원색으로 구성하거나, 하나의 공간에 투명 유리를 배치해두고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게끔 하여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들이 실수가 아닌 전적으로 '의도된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B급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박적인 흐름일 것이다. 장르 영화 공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쓸모 없거나 의미없는 설정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함으로 영화 전반에 불협화음을 만드는 것이 스즈키 세이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박증과 불협화음이 아름다움으로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바로 공간의 구성일 것이다:스즈키 세이준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의 공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들을 활용한다. 동경 방랑자의 마지막 시퀸스의 컷구성이나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밖에서 여성을 채찍질하는 시퀸스의 구성 등등은 작위적인 미학으로 차 있다.

 

물론 이러한 구성이 벤야민이 지적한 거짓된 아우라를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즈키 세이준이 추구한 것인 어린아이가 추구하는 '전복적인 재미'라 할 수 있다. 장르와 마초이즘, 야쿠자에 대한 환상을 전복하여 강박적이고 바보같이 보이게 만드는 것, 그 속에서 일반적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연출을 추구하는 것이 스즈키 세이준 영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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