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307건

게임 이야기



게임 심즈는 심이라는 개개인의 삶을 구현하고 조작한 게임 이다. 장르로 표현하자면 라이프 시뮬레이터라 부를 수 있는 심즈는 개인들의 욕구와 삶을 시뮬레이션 요소로 구현하여 삶이라는 것을 게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공전절후의 인기를 끌었던 이 게임이 흥미롭게도 다양한 장르적 파생없이 오로지 심즈 라는 프랜차이즈 하나만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물론 세컨드 라이프나 최근의 인조이 같은 게임이 있기는 하지만, 심즈가 누렸던 흥행에 비교하자면 심즈라는 게임이 다양한 아류작과 파생을 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심즈라는 게임이 장르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숨어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목적성의 부재다. 게임 심즈에는 목적이 없다. 삶이라는 여행에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기 힘들듯이, 심즈라는 게임은 게임에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목표와 목적의식의 부재가 심즈라는 게임을 장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족쇄가 되었다. 어떤 게임이든 심즈와 차별점을 부여하려면 무언가 게임에 목적이나 목표를 제시해야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심즈라는 게임의 골격을 크게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완성도와 공전절후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심즈는 오로지 심즈만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림월드는 게임 트렌드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심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삶에 목적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삶과 게임의 목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물과 기름을 반발없이 섞는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수사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림월드가 만들어놓은 게임 트렌드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해서, 림월드 장르의 등장 뿐만 아니라 림월드 이후에 나온 게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크루세이드 킹즈 3 같은 물건일 것이다.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삶, 그 사이를 오고가는 정치와 음모라는 테마를 다룬 이 게임은 게임의 세부적인 요소들은 다르지만 큰 골격에서는 림월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림월드에서 게임의 시점은 크게 두개로 나뉘어져있다. 첫번째는 거시적 관점에서 플레이어가 기지를 만들고 물건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시뮬레이션의 차원이 있고, 두번째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 림들의 욕구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림들의 자유 행동들이 있다. 이 두 관점은 언뜻보기에는 서로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두 관점이 씨줄과 낱줄이 되어서 교차하여 직조되는 것이 림월드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관점의 결합은 이전의 게임들과는 서로 다른 맥락을 지닌다. 예를 들어 파엠 풍화설월을 보자. 여기서 플레이어는 전투라는 거시적인 관점과 학원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미시적인 관점을 배치해둔다. 언뜻 본다면 이 두 관점이 서로 공존한다는 측면에서 림월드와 파엠 풍화설월은 비슷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결합되는 방식일 것이다. 파엠 풍화설월은 거시적인 파트가 끝나면 미시 파트로, 미시 파트가 끝나면 거시 파트로, 그리고 이 파트들이 순환하면서 다른 파트의 요소를 넘겨주는 분리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림월드는 다르다. 처음 봤을 때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병존하면서 유리되어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림월드의 특징은 거시적 관점의 효율이 미시적 관점에서 비효율화 되는 것, 그리고 미시적 관점에서의 비효율이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화 되는 것이라는 두 층위의 모순적인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명제이지만, 이것을 상호 보완의 단계로 이끌고 때로는 시너지를 내게 만드는 것이 림월드의 가장 핵심 묘미라 할 수 있다.

우선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이 미시적 관점에서 비효율화 되는 명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림월드에서 1차적인 가장 큰 목표는 생존 및 행성에서의 탈출이다. 이를 위해서 자원을 생산하고, 인원을 할당하고, 기지를 만들며, 식량확보 → 기술연구 → 방어전투… 식으로 이러한 흐름을 계속해서 굴리는 것이 목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은 상당히 단순하다. 식량 생산이나 기술 연구, 방어 전투 등의 각각 요소들은 다른 전문적인 게임에 비해서 아주 고난이도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계획만 잘 세우면 문제없이 이야기가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림월드의 핵심은 이것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과 달리 미시적 관점에서 보자. 림들 개개인에게는 개개인의 욕구와 개성, 작업 범주가 있다. 가령 림 A는 방화벽에 약물중독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불을 지르거나 마약을 빠는 등의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 반면 림 B는 실내 선호 특성이 있어서 야외에 나갈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다. 물론 플레이어가 처음 어떤 림들을 데리고 정착지를 세울지 결정할 수 있지만, 그렇게 엄선(?)한 림들이 미세한 환경들(작업 동선, 랜덤 인카운터, 확률, 심지어는 애정 관계까지 등등)에 의해서 스트레스나 각종 요인들이 스노우볼링 되고 그 스노우 볼링 된 것들이 중요한 순간에 터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떄문에 거시적 관점에서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머릿속에서만 작동할 뿐이다. 매번 정착지를 생성할 때마다 사고치는 림들 때문에 다양한 문제가 터지게 되고, 심지어 세이브 로드할 때마다도 예측못한 다양한 사고들이 터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착지에서 효율을 잘 낼 수 있는 수단은 림 밖에 없다는 것(물론 노예나 메카노이드 같은 것들이 있지만, 투입 대비 효율이 뛰어나지 않다)과 림을 생존시켜서 탈출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림을 생존시켜서 탈출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는 점이 중요한데,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림의 욕구와 인간관계 등의 통제불가능한 변인들)들이 역으로 게임의 목표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게임은 다소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애물단지들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만드는 것이 이 미시적인 방해요소들이고, 더 나아가서 효율저하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게임을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게임을 보완하는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미시적 관점의 비효율을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화시키는 것이다. 림월드에서 림 개개인은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애정, 드라마, 스토리 등등 인간적인 비효율에서 비롯된 다양한 불순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하는 과제와 더 나아가 게임의 세부 목표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림과 림 사이의 애정관계가 있다면 결혼식이나 동거, 출산 등의 행위를 통해서 이러한 애정관계를 강화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효율이 존재할 수 있지만(출산이나 육아 같은) 그런 과정에서 림의 돌발행동을 억제하고(관계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관리)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든다. 이와 같이 플레이어가 인간적으로 애정할 수 있는 요소들을 추가하고, 그것이 플레이어의 통제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굴러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림월드의 미시적 관점의 인생은 잘 짜여져있다.

심지어는 비효율적인 욕망들을 효율적으로 하는 행위들도 존재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림월드가 과거 게임들과 다르게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방문자와 정착민의 눈알을 뽑는 컬트 집단을 만들어서 운영한다고 쳐보자. 눈알을 뽑는다는 점에서 게임의 난이도를 자체적으로 어렵게 만들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이 맹인 컬트 집단의 작업들을 최대한 효율화하여 구성할 수 있다. 즉, 비효율적이고도 비합리적인 행위들을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재미에 맞춰서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산지 동굴 정착민 플레이, 툰드라 에스키모 플레이 등의 다양한 콘셉트 플레이가 가능하다. 즉, 림월드는 플레이어가 비효율적인 욕망과 행위들을 효율적으로 행하고 관리하면서 거기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게끔 하는 자유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림월드는 효율과 비효율이 서로 씨줄가 낱줄이 되면서 직교하여 새로운 재미라는 맥락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결합이 게임 장르 트렌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림월드는 인간이라는 요소가 게임의 흐름과 목적 아래 비효율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플레이어는 인간이라는 요소와 목표라는 요소 사이를 저글링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한다는 구성을 제시했다. 이는 인생이라는 요소를 게임화 시키는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였는데, 인간이라는 변수가 방해 요인이자 목표라는 모순된 상황에서 큰 게임을 끌고 나가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팀버본과 같은 도시 건설 게임에서 볼 수 있듯이, 림월드처럼 세밀하지 않지만 비버라는 도시 정착민들을 전체가 아닌 개개인의 욕구로 쪼게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이 개개인의 비버 정착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게임을 플레이 해나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림월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림월드 라이크라 할 수 있는 노랜드나 클랜포크 같은 게임들도 함께 출시되는 것을 보면 림월드가 게임의 모티브 뿐만 장르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도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림월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작품이자 동시에 인간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게임에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답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DLC로 계속 게임의 외연을 확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드 커뮤니티나 모딩도 잘 구성되어 있어서 모딩 관점에서도 게임이 편리하게 되었다는 점은 게임의 재플레이 가치를 높이는 부분이다. 게임에 있는 요소들이 어느정도 관심이 가는 부분들이 있다면 꼭 플레이해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게임 이야기

 

* 스위치 2 버전으로 플레이한 리뷰입니다.

* 스토리 리뷰는 별도로 뺍니다.

 

사이버펑크 2077은 발매 당시에는 게임 업계가 소비자에게 약속한 과대광고의 표본이었다. 정말로 많은 것들을 약속하였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고 버그는 산재하여서 게임을 제대로 클리어하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문제가 산재한 나머지 게임이 더 나아질거란 보장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마케팅으로 쌓아올린 기대감을 완성도로 무너뜨린 게임들(EA의 앤썸 같은)이 그 명성을 복구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사이버펑크 2077은 그정도 수준으로 엉망인 게임은 아니다. 그 동안 수많은 업데이트와 패치, 팬텀 리버티의 발매 등을 통해서 기존의 게임을 뜯어고치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지만 노맨즈 스카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버펑크 2077 엣지러너라는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인하여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올라간 것도 한 몫했다.

그러나 유념해야하는 점은 사이버펑크 2077이 5년 간의 노력과 팬텀 리버티로 얼마나 좋아졌던 간에, 게임의 본질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이 튕기거나 진행 불가능한 버그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버그가 많으며(체감상 베데즈다 오픈월드 게임의 버그보다도 더 많다고 느껴진다), 설계나 구성 측면에서 아쉽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다. 즉, 사이버펑크 2077이 5년 동안 한 업데이트와 노력은 더 재밌어지기 위한 노력이었다기 보다는 게임으로 부족했던 게임이 그나마 게임답게 바뀌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지향점은 이머시브 심이라 불리는 게임 장르를 오픈월드 액션 RPG에 접합하는 것이었다. 플레이어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춰서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고, 그것이 플레이스타일과 게임 내용에 유의미한 변화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사이버펑크 2077의 지향점이었다. 실제 게임 플레이도 플레이어의 스탯에 따라서 뚫리는 숏컷, 암살 미션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존재하거나, 잠입 플레이를 위한 루트와 전투광을 위한 게임 루트가 공존하는 모습 등등 다채로운 게임 방식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머시브 심 장르의 핵심은 다양함, 유연함, 그리고 디테일이다.  이런 류의 게임들의 예로는 히트맨 암살의 세계나 데이어스 엑스 리부트 시리즈, 디스아너드 시리즈, 프레이 리부트가 있다. 이런 이머시브 심의 게임 내의 각각 요소들을 스크립트가 아니라 각자의 독립적인 규칙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플레이어는 그 규칙들을 관찰하고 개입하여 게임을 풀어나가기 위한 행위를 수행하여야 한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게임의 스테이지가 정해놓은 다양한 루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창의적이거나 임기응변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끔 게임의 각 요소들이 맞물려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히트맨의 예를 들어보자면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 초창기에는 사고사 등의 정해놓은 스크립트를 따라가지만,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총이라는 도구로 소음을 낸 다음에 주의를 분산시켜서 타겟을 기상천외한 속도로 암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단순히 게임이 깔아놓은 루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도구를 활용해서 게임을 유연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게 이머시브 심의 핵심인 것이다.

이머시브 심을 오픈월드 액션 RPG에 섞겠다는 점에서 사이버펑크는 매우 야심차기도 했지만, CD 프로젝트 관점에서는 위험한 도전이기도 했다. CD 프로젝트가 개발한 위처 3와 사이버펑크 2077의 게임 플레이 지향점이 워낙 상이한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만들던 제작자들이 갑자기 발더스 게이트 3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이버펑크 2077의 테마는 사이버펑크라는 SF 였음에 비해서, 위처 3는 판타지였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걱정은 사이버펑크 2077에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이버펑크 2077은 구조로 보았을 때는 아쉬운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머시브 심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유연함의 구색을 갖추었다 할 수 있는데 그 구색을 갖춘 부분들이 전문적인 장르에 비교하면 한없이 떨어지고, 그래도 좀 구색을 갖추었다고 판단이 되는 비슷한 작품(스카이림 같은)과 비교해도 어딘가 나사 빠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잠입과 관련한 부분들인데, 이머시브 심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도화된 맵 디자인이나 시스템과 달리 사이버펑크 2077의 맵 구조는 어딘가 성기고 나사가 빠져있다. 

그에 반해서 액션 관점에서 사이버펑크를 보자면 기본적인 구색을 갖춘 채로 게임 플레이는 탄탄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총기류에서부터 근접전투, 퀵 핵(마법)까지 다양한 전투 수단을 갖고 있으면서 초근접 전투에서 치고 빠지는 플레이, 은신을 이용한 전투, 총기류 싸움까지 다양한 액션을 소화하고 있다. 초기 세팅들(총기를 쓸거냐, 근접을 할거냐, 아니면 마법을 쓸거냐)이 끝나고 난 뒤에는 각자 케릭터 컨셉에 맞게 ‘강하다’를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어서 이 부분의 구성을 잘 다듬어진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액션을 뒷받침하기 위한 파밍이나 사이버웨어 강화요소는 반복 파밍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마이너스 요소다. 액션 자체는 분명 재밌는 점이 있지만, 등장하는 적들이나 전투, 상황 등이 단조로운 편이고 이것은 반복 미션 등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이버웨어나 아이템을 강화하기 위해서 부품들을 끊임없이 파밍하게 만들어서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에 지치게 만든 점은 다소 마이너스 요소다. 팬텀 리버티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이용한 서브미션 반복이나 도그타운 공중 드랍 같은 요소들을 집어넣었지만, 게임의 70~80%를 차지하는 본편에서는 여전히 반복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미션 구조도 마이너스인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미션들은 픽서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반복이라 느껴질 반복적인 부분들이 많은데, 단순히 특정 지역에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오라는 구조의 미션이 워낙 많고, 미션이 1회성으로 끝나서 RPG의 퀘스트 라인을 즐긴다기 보다는 뭔가 못만들어진 이머시브 심 게임을 계속해서 재탕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만들어버렸다. 

미션 뿐만 아니라 콘텐츠 구성에서도 미래의 도시라는 공간을 제대로 못살리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오픈월드의 핵심은 비어있는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라는 측면에서 위처 3와 같은 게임의 감각과는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스토리 파트 글에서 별도로 이야기하긴 하겠지만, 단순히 중세 판타지를 미래로 옮긴 것이 아닌 미래-현대라는 사이버펑크를 무대로 할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라는 풍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위 내용을 1차적으로 정리하자면 사이버펑크 2077의 문제는 전반적으로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스카이림과 같은 수준의 게임을 만들려고 한 것이 CD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것인데, 스카이림이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엘더스크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기나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다. 차라리 몇몇 요소들을 과감하게 처버리고 액션과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요소에만 집중해서 게임을 재구성했다면 이정도로까지 해매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아쉬운 부분은 사이버펑크 2077이 못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노력을 안했다던가 고민을 안했다던가 등의 문제가 아니라 꿈을 너무 높게 잡았다는 문제가 더 컸다. 자동생성형 콘텐츠나 전화의 존재, 메인 퀘스트 라인의 배분, 빠른 이동의 존재 등등을 넣었을 때 분명 위처 3와 다르게 미래 도시라는 배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정작 비어있는 것을 어떻게 채워넣을까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이 너무 확연했다. 위처 3를 예로 들어보자면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 몬스터가 무엇인지 조사하고 추적하고 사냥하는 과정이 하나의 퀘스트 라인으로 묶였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즉, 위처 3에는 테마와 게임 구성이 유기적인 결합이 있었다면, 사이버펑크 2077에는 그러한 것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이버펑크 2077의 테마에 맞는 세계와 스테이지 구성이 이루어졌더라면 게임은 지금보다 더 훌륭한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본 리뷰는 스위치 2 판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으며, 많은 부분 칼질당하긴 했지만 사이버펑크 2077은 스위치 2로 즐길만한 수준이다. 물론 도그타운 같은 곳에서는 30프레임 방어가 안되서 들쭉날쭉할 때도 있지만 이는 모든 콘솔 버전들이 겪는 문제고, 다른 곳들을 감안한다면 휴대나 거치 모드 모두 그래픽이나 성능 양쪽 측면에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버펑크 2077은 CD 프로젝트의 위처 3와 같은 고점과 비교하기에는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은 게임이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거칠고 투박하고 덜컹거리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목표가 더 낮게 잡혔으면 더 훌륭한 게임이 되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좀 더 잘 다듬어진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준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림월드  (3) 2025.06.28
[감상]스위치 2 사용 및 감상 후기  (1) 2025.06.08
GTA 6 트레일러와 짧은 이야기  (1) 2025.05.11
[칼럼]스위치 2에 대하여  (0) 2025.04.26
[리뷰]문명 7  (0) 2025.04.11
게임 이야기

 

- 전반적인 인상은 스팀덱의 강화 버전. 즉, 스팀덱이 스위치에 대해서 가졌던 컨셉들(강화된 스펙을 지닌 휴대용 게임기기)을 강화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역으로 이야기한다면 '스팀덱'의 강화버전이기 때문에 스펙적으로는 분명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치의 기믹에서 본다고 한다면 그 연장선에서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 사이버펑크 2077을 돌렸을 때(10시간 정도 플레이), 상당히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후에 프레임 드랍이 일어나는 구간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30프레임을 칼 방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NPC 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는데 그게 그정도로 티가 나는가 하면 그정도는 아니었던거 같다. 전반적으로 그래픽의 수준을 본다면 플4~플4프로 수준의 깡스펙을 DLSS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디테일을 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경우, 싱글 컨텐츠는 30프레임으로 돌아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멀티 플레이나 대전 환경에서는 칼같이 60프레임을 유지하고 있고, 또 눈여겨 봐야하는 부분은 그 디테일이 엑박 시리즈 S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만족도가 높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마리오 카트 월드는 오픈월드+24인 멀티라는 점에서 게임기의 스펙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케이스로 보여진다. 

-싸펑이나 마리오 카트 월드는 리뷰를 쓰긴 쓸건데 언제 어떻게 쓸지는 좀 고민해보고 써야할듯 하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림월드  (3) 2025.06.28
[리뷰]사이버펑크 2077 - 게임 플레이 편  (2) 2025.06.24
GTA 6 트레일러와 짧은 이야기  (1) 2025.05.11
[칼럼]스위치 2에 대하여  (0) 2025.04.26
[리뷰]문명 7  (0) 2025.04.11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롱레그스라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독인 오즈굿 퍼킨스의 가족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오즈굿 퍼킨스의 아버지인 안소니 퍼킨스는 헐리웃에서 활동하는 유명배우였는데, 게이라는 사실을 숨긴채로 아내인 베리 배런슨과 결혼하였고, 이것이 감독의 유년시절을 관통하는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비밀을 자식이 알지 못하게 숨기는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어두운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 아들, 기억 속에서 어두운 트라우마처럼 들러붙어있는 아버지의 이미지까지, 롱레그스의 창작 모티브들은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롱레그스는 '무서운'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우울한' 공포 영화다.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주인공인 리 하커가 어머니가 숨긴 어두운 비밀과 자신의 트라우마를 파해쳐 올라가는 내용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퀸스를 보자. 4대3 화면 프레임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소녀의 관점에서 그 사건이 있기 전날의 상황을 회상하는데,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롱레그스의 얼굴이 '프레임 바깥'에 있다가 불현듯 4대3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어떻게 해서 생기느냐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영화는 리 하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구성한다. 그리고 그 세상의 주요 키워드는 강박과 반복이며, 강박은 대칭을 통해서 구성된다. 롱레그스 사건에 투입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용의자를 잡아내는 장면을 보자. 여기서 하커는 아무것도 없는 집을 응시하다가 거기에 용의자가 있다 라고 단정하는데, 계획도시마냥 정리된 미국의 교외 마을의 비슷 비슷한 집들의 모습에서 하커가 바라보는 것은 대칭된 집의 이미지다. 영화는 이와 같이 대칭되는 이미지와 그 가운데 주인공을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밀어 넣으며 주인공을 가둬둔다.

재밌는 점은 대칭이라는 관념일 것이다. 대칭이란 공간 내에서 어떠한 축을 기준으로 하여 동일한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칭에 있어서 축과 공간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대칭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공간과 중심되는 축이 존재해야만 성립될 수 있다. 영화의 첫 시퀸스처럼, 4대3의 공간에서 공간 바깥에서 등장하는 트라우마(롱레그스)가 하커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정의하고 그 세계 내에 갇혀있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즉, 하커의 세계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프레임에 갇혀있게 만들고, 그 갇힌 세계에서 남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무의식적이고도 강박적으로 찾는 재능이 생긴 것이다. 

하커라는 인물 역시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다. 중요한 점은 영화의 반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트라우마가 의식적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하커를 억압한다는 점이다. 하커의 소녀적인 모습(바닥에 증거 파일들을 늘어놓고 분석하는 모습은 전문가의 모습보다는 소녀의 소꿉장난처럼 보인다)이나 정상 가족에 끼지 못하는 모습(상사의 가족과 가상선을 두고 완벽하게 유리되고 분절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은 하커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모습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억압되는 모습임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반전은 씁쓸하고 우울하다. 하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우마의 진실을 알게 되고, 어머니의 파괴적인 모성애(하커를 살리기 위해 악마와 계약하고, 하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신해서 가족을 죽여온 것)를 마주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하커의 아버지가 없다는 점과 롱레그스가 어머니와 모의하여 가족들을 참살했다는 점이 결합하면서 롱레그스가 마치 '유사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감독의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감정(화해할 수 없는)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어두운 사실로부터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완벽한 보호가 아닌 '살아남는 것을 허락받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자식의 기억에 알게 모르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점은 영화나 감독의 개인사에 있어서 매우 씁쓸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오즈굿 퍼킨스의 롱레그스는 감독의 개인사를 프레임과 미장센을 이용해 훌륭하게 우울함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감독의 개인사를 알지 못한다면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을 이해하고 본다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서 강박증과 불안, 우울을 갖게 된 수많은 어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사랑과 어긋남, 강박, 그리고 그 씁쓸함이 커버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서브스턴스의 국내 흥행 성공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지만(바디 호러 장르의 흥행이라니!), 영화를 자체만 놓고 본다면 사람들에게 어필을 할 수 있는 내용과 연출로 무장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젊음에 대한 이미지 소비와 착취, 자기 파괴 등이 데미 무어의 열연과 맞물리면서 좋은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바디 호러의 불쾌함과 함께 신체와 상징들을 이미지와 명확하게 연결지음으로써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도 영화의 흥행에 한 몫하였다. 요컨데 서브스턴스는 바디 호러 장르의 불쾌함과 이미지의 불분명함(몸과 상징의 구현)을 명확하게 만들어내어서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브스턴스의 명징한 상징과 이미지들은 때로 이 작품의 앝은 구조를 너무 쉽게 드러내기도 한다. 마치 초반부 데니스 퀘이드가 새우를 까서 먹으며 새우를 마치 늘어진 남성기를 흔드는 것처럼 묘사하듯이 말이다. 어떻게 본다면 너무 직설적인 표현들인데, 이 너무 직설적인 표현과 구조들이 관객을 이입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무언가 관객과 영화 내의 인물이나 장치들에 연결되어 일종의 공감각을 형성하여 관객을 뒤흔드는 것이 뛰어난 바디 호러의 강점이라 한다면, 서브스턴스는 관객을 스크린 바깥에 안전하게 놓고 쇼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극 내에서 '캐릭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의 묘사나 구성이 된 것은 엘리자베스 밖에 없고, 하비와 같은 인물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불쾌한 쇼 비즈니스 그 자체에 불과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엘리자베스의 복제이자 이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인 수 마저도 캐릭터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묘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는 일견 보기에는 명료한 관계처럼 보인다. 늙어버린 엘리자베스가 젊음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세계에서 사랑받기 위해 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명제가 맞다고 가정한다면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번째는 엘리자베스가 수를 만든 이유는 분명하지만, 어째서 수가 엘리자베스를 착취하고(=척수액을 뽑아서 자신을 유지하기) 엘리자베스는 척수액이 뽑힐 때마다 더 추하게 늙어가는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착취라는 것은 착취하는 자가 착취 당하는 자로부터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행하는 것인데 수는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에 수는 엘리자베스를 착취할 이유가 명확하게는 없어 보인다.

두번째는 서브스턴스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자가 이야기하는 '균형'의 문제이다. 처음 설명할 때처럼, 둘을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서브스턴스를 통해 만들어진 복제체와 본인 사이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이라 한다. 그런데 겉보기에 젊음과 늙음이라는 관계에서 '균형'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가? 젊음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고, 늙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균형이라는 것은 양쪽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서 유지를 해야하는 것인데, 지나간 것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절대적 장벽 사이에서는 이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브스턴스를 젊음과 늙음의 육체에 대한 내용으로 보는 것은 일견 직관적이긴 하지만, 함정이 있는 해석이다. 이를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육체의 이미지와 실제 육체 간의 괴리에 대한 관점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어째서 이미지의 육체(=수)가 실제의 육체(=엘리자베스)를 착취하는가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미지의 육체는 실제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의 육체를 착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육체가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육체는 이미지의 육체를 보면서 자신이 원본임에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열등감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는데 서브스턴스에서 그 자기 파괴적인 행위는 바로 '폭식'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육체가 자신을 파괴적으로 즐기는 행위가 '섹스'인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하지만 이 관계성은 영화의 배경에 의해서 의도치 않게 숨겨져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육체의 이중적인 이미지(이미지와 실제)는 이미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서 많이 보여진 현상이다. 수많은 보정 필터, 스테로이드, 호르몬, 성형 수술 등으로 인해 육체의 이미지들은 실제보다 더 과격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서브스턴스의 메타포는 그렇게까지 놀라운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브스턴스의 배경이 헐리웃과 LA 라는 쇼 시스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이다. 처음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는데, 이 명예의 전당 헌액과 늙어버린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젊은 여배우가 어떻게 차츰 사라지는가 라는 '시간'의 벡터가 자연스럽게 개입하고 그것이 '젊음'과 '늙음'이라는 두 이미지의 대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즉, 젊은 육체와 늙은 육체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잘못된 구도는 영화의 배경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문제였던 것이다.

서브스턴스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구도 자체를 너무 명확하게 잡으려 하다가 오히려 불필요한 구성을 추가해서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SNS의 시대인만큼 헐리웃이라는 배경을 제거하고 SNS와 관심을 끌기 위해서 행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위들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였다면 서브스턴스의 이야기는 명확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갑이 지난 데미 무어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젊어서는 섹스 심볼로 유명했었던 그녀가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했었던 연기들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메소드 연기였을 수도 있다. 그녀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라는 케릭터가 인물로 성립할 수 있었는데(수에 대한 애증, 자기 혐오와 파괴 등), 다른 인물들이 인물들로 성립되기에는 너무나 평면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데미 무어의 연기가 더더욱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서브스턴스는 바디 호러 영화의 입문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너무 얕고, 혼란이 있을만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차라리 헐리웃이라는 공간이 아닌 SNS와 같은 것들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이미지에 더 부합했을텐데 그 부분은 안타깝다 할 수 있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짧게 치는 글들 위주로 글을 쓰려 합니다(GTA6 트레일러 글은 그걸 위한 것)

트위터에서 쓰던 글을 이쪽으로 옮겨서 글로 정리해보고자 하네요.

블로그 활성화를 위한 작업이라 생각해주세요.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0115  (0) 2025.01.15
240909  (0) 2024.09.09
240525, 재활중  (0) 2024.05.25
240331  (0) 2024.03.31
240217  (0) 2024.02.17
게임 이야기

 

 우리는 비디오 게임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시대의 이름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다:GTA3의 등장 이후 GTA5에 이르기까지 GTA는 단순하게 하나의 게임으로 끝나지 않고 대중문화와 시대의 총합으로 설계된 야심찬 작품이었다. 실제 스탭롤만 1시간이 넘어가는 긴 스텝롤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GTA가 인용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내용들은 결국 현재적Contemporary이기 때문이다. 서부극에 대한 애정으로 서부극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같은 작품이 창작자의 개인적 욕망에 근거한 작품이었다면(레데리 2에서 영화 원전을 고르는 폭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GTA 시리즈는 철저하게 산업화된 작품이고 그 자체로 자기 복제이자 자기 인용인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GTA6의 등장은 시대를 정의 내릴 것이고, 그 정의가 앞으로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물론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본인은 GTA 시리즈에 대해서 항상 호의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게임 시장이라는 것은 트리플 A에서 B급, C급 까지 다양한 라인업의 게임들이 각자의 리그에서 다양하게 싸우는 상황이지, gta5가 나왔을 때 한때 커뮤니티를 휩쓸었던 '단 하나의 태양 gta5'라는 개념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커뮤니티라는 것의 극단적인 성향을 생각한다면, 본인의 불호의 감정은 엄밀하게 GTA를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커뮤니티를 향해야 한다(물론 본인은 게이밍 커뮤니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GTA5가 나오기 전 후, 커뮤니티나 SNS에서 느꼈던 찬사들은 본인의 이 불호의 감정의 대상을 혼동하게 만들기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TA 시리즈의 현재성은 상당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사회에 대한 축소이자 미국 사회에 대한 자기 풍자이기도 한데, 메인 스토리를 통해서 풀리는 이야기와 별개로도 사이드 스토리나 게임 내의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미국 사회의 현 주소를 과장해서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이 발매되는 텀(거의 12년 만의 신작 발매!)을 생각한다면, 이 현재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는 동시대성과 과연 얼마나 맞닿아있을지도 상당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즉, 과연 GTA 개발사가 근 12년 동안 바라본 미국 사회에서 어떤 점들을 GTA6에 녹여내었는지, 그리고 그 녹여낸 내용이 과연 12년이라는 기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가 느끼는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락스타는 이미 GTA4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 GTA5에서 SNS나 중산층 가정의 위기, 스마트폰의 등장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게임에 녹여내었다면 과연 이번 GTA6에서는 어떠한 것들이 게임에 추가되고 이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남게 될 것인지과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특히 GTA5 이후로 GTA는 그저 GTA만으로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레데리 2가 보여주었던 야망이 GTA5의 스케일과 디테일이 맞물리게 된다면, 과연 락스타가 바라보는 미국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추가적으로 근 몇년간 격동하는 세계와 미국 정세가 미국 한정으로 풍자적아고도 정교한 미니어처 세계와 만나게 되면 과연 변할지 변하지 않을 지 그것이 흥미로운 지점인 것이다.

 

게임 이야기

스위치 2가 6월 5일에 발매 예정이다. 글을 쓰는 지금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스위치 2 예약에 응모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공식 스토어를 통해서 예약을 시도하는 사람이 약 220만명이 될 정도로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전 기기였던 스위치도 엄청나게 성공하였지만, 이번 스위치 2도 사람들에게 강점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스위치 2의 핵심은 스위치 1에서 성능을 강력하게 올린 점에 가깝다는 것이고, 이것은 생각보다 지금 게임 시장의 트렌드와 많은 부분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스위치 2의 성능 강화는 최근 니치 시장에서 흥행하고 있는 폼펙터인 UMPC와 스팀덱의 성공과 맥락을 함께한다. UMPC는 그래픽 카드를 제외하고 CPU에 달린 내장 그래픽을 활용하여 게임을 돌리는 기기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 처리 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처리 기술들(DLSS나 FSR)이 등장하면서 내장 그래픽의 성능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는데, 여기에 작은 화면 해상도가 결합되면서 생각보다 합리적인 스펙으로(적당한 그래픽과 편의성) 트리플 A 게임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이 UMPC의 성공과 맞닿아 있다. 스팀덱의 등장으로 인해서 다양한 pc 개발 업체에서 독자적인 UMPC라는 기기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즉, 단순히 게임을 들고 한다에서 ‘최첨단’ 게임을 들고 한다라는 개념이 스팀덱의 성공과 맞닿아있는 것이고, 이는 기술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스팀덱과 UMPC류의 기기들의 판매량이 스위치 판매량의 10분의 1도 안되는데, UMPC의 성공을 스위치의 성공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지만 역으로 작은 화면에서 트리플 A 게임을 돌리는 것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이미 스위치 1에서 검증된 부분이기도 하다. 모탈 컴벳 시리즈의 이식이나 둠과 둠 이터널의 이식, 다양한 스위치 동발 버전의 이식들은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였다면 다양한 수요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팀덱의 등장과 사람들의 트리플 A 게임을 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은 그런 수요를 반증하였다. 즉, 스위치 1의 서드파티 동발 게임들의 존재는 스팀덱과 같은 서드파티 또는 고사양 휴대용 게임에 대한 수요의 가능성을 열었고, 스팀덱의 성공은 그 가능성이 단순히 작은 가능성이 아닌 더 넓은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다. 이제 스위치 2는 그러한 가능성을 다시 받아 더 큰 버전으로 확대하였다.

물론 스팀덱과 스위치 2의 성공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부분들도 있다. 우선 스팀덱에서 다루는 스팀 게임들의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피씨나 고정된 환경에서 플레이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즉, 휴대 모드에서 게임을 돌릴 때 필요한 요소들(예를 들어 전원 버튼을 눌러서 슬립 모드로 들어갔을 때, 게임을 일시정지 시킨다던가 등)이나 최적화의 문제(UI나 UX의 부분, 성능이나 os 차원에서 최적화하는 이슈, 수동으로 설정하는 옵션 등) 등에서 완벽하게 휴대용 게임이 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팀덱은 pc와 휴대용 게임기 어딘가에 있는 어중간한 포지션이고, 완벽하게 휴대와 거치기를 오가는 하이브리드 게임 전용 기기인 스위치나 스위치 2와 비교하자면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떻게 본다면 궁극적으로는 베이스가 되는 ‘소비자 층’의 차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팀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피씨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으로, 이미 거치된 고사양 피씨를 통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주가 되는 소비자들이다.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스팀의 베이스는 휴대용으로 즐기는 트리플 A 게임이라는 영역과는 정 반대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기 떄문에 스팀덱의 존재와 니치한 성공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못봤던 영역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바로 ‘확실하게 플레이 하는 양식이 정해져있는 사람들’(예를 들어 콘솔이나 큰 화면에서 게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도 휴대용이라는 틈새 시장이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 시장에는 트리플 A 게임을 어디에서든 즐긴다 라는 공식을 확립한 것이 스팀덱의 존재였다. 즉, 스팀덱은 단순히 틈새시장을 뚫은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 문법이 확실하게 지배하는 곳에서 새로운 수요를 발견했다’로 봐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위치 2는 닌텐도가 오랫동안 추구하였던 서드파티의 다변화라는 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게임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닌텐도는 위와 위유 이후로 끊임없이 서드파티를 자신의 게임 플랫폼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를 하였다. E3에서든 닌텐도 다이렉트에서든 간에 서드파티를 완전히 배제한 발표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는 위의 기형적인 성공에서 비롯되었다:위는 전례없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게임기나 폼팩터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장난감이자 닌텐도 퍼스트 파티의 존재 때문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위 때 나왔던 서드파티 게임들은 하나 같이 위의 성공에 편승하는 동시에 어딘가 동세대 발매된 같은 게임들에 비교한다면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위라는 게임의 독특한 조작 방법과 떨어지는 성능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닌텐도에게 위의 성공은 양면적인 결과(엄청난 판매량과 서드파티의 궤멸)를 불러일으켰고, 위유의 실패는 그렇기에 필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스위치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서드파티를 다시 끌어들이긴 했지만, 스위치 초창기 야숨에서 마리오카트 8, 마리오 오딧세이와 제노블레이드 2 까지 이어지는 발매 후 약 8개월간의 게임의 흐름 속에서 눈에 띄는 서드파티가 없었다는 사실은 기록적인 성공 뒤에 감춰진 닌텐도 플랫폼의 부실한 서드파티 라인업이라는 암울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스위치 2는 스펙으로 따지면 플스 4와 프로 사이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가면서 다양한 게임들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스위치의 성공과 스팀덱의 등장 등으로 수요와 공급 모두 성숙해지는 환경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놀라운 결과물들(보더랜드 4의 동시 출시, 사이버펑크와 엘든링의 이식, 프롬 소프트와의 독점 콜라보 등)을 낼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는 위유 이후로 끊임없이 닌텐도가 노력했었던 것의 결실을 맺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이밍 콘솔과 게임의 스펙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고, 닌텐도 스위치 2가 여기에 한세대 정도 뒤쳐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국 뒤쳐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게이밍 콘솔과 게임의 그래픽 스펙은 무한히 좋아지는게 아니라 로그함수 곡선 마냥 그 성장률이 감쇄하고 있다는 점이다:스펙이나 그래픽적으로 뛰어난 게임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발매텀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발매텀이 늘어난다는 것은 개발 기간과 기술적인 요구치가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는 역으로 게임 개발과 발매의 리스크를 늘려버리는 것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래픽이 최첨단으로 간다고 해서 플레이어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체감 효과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스펙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발매하는 것에 대한 게임 개발사들의 필요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암묵적인 동의(?)는 시장에 어느정도 깔려있는 편이다. 스위치 1의 성공과 스팀덱의 성공은 그러한 것을 가시화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세대를 버티는데 있어서 스위치 2의 스펙은 생각보다 통할만한 부분들이 있다.

게임 이야기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 만큼 본인에게 껄끄러운 글쓰기는 없을 것이다. 보통 시리즈 게임들은 게임이 제공해주는 코어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시리즈별로 나름의 정체성을 가미하는 작업들을 수행한다. 가령 예를 든다면 몬스터 헌터 와일즈에서는 오픈월드와 필드의 콘탠츠화라는 기믹을 게임에 집어넣기 위해서 기존 몬헌 시리즈의 정체성을 조정하는 작업을 해서, '이전 시리즈와 유사하지만 그래도 본작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명 시리즈는 2편, 3편 이후로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게임을 개선하거나 추가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의 변화점들이 '미세하지만 쌓이다보면 큰 영향이 가는 변화점'들이 많았는데, 가령 문명 5편에서 육각형 형태의 타일로 보드를 구성하는 점 등은 게임을 보는 문외한이 보았을 때는 미세한 변화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근간을 뒤흔들었던(유닛의 움직임, 상대 유닛과의 대치 등등) 큰 변화였었다. 그렇기에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은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어떻게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기술해야하는 리뷰이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다소 지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문명 7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러한 문명의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난 게임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명이라는 핵심 경험을 두고 게임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 기믹들(타일 모양, 종교나 사회제도, 정치 등등)에 변화를 두어 이를 쌓아 차별화된 시리즈를 만들었던 기존 문명 시리즈와 달리, '우리는 이런 게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 위에서 모든 게임 요소들을 과감하게 조절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명 7은 문명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단아적인 작품이 되었는데, 단순히 경쟁작인 휴먼카인드와 유사하다의 논쟁을 넘어서 문명이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는 문제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문명 7이 어떤 게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문명 7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문명 7은 문명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명이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은 한줌의 개척자에서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게 핵심적인 재미인 게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의 세부적인 요소들(불가사의, 종교, 사회 제도 등등)을 이용해서 문명의 확장과 발전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부스팅과 스노우볼링을 해야하는데,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의 난점은 이 부스팅과 스노우볼링 단계에서 시스템이 다소 비직관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명 6의 특수 지구를 중첩하여 보너스를 쌓아서 스노우 볼링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잘 읽는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라 문명 특유의 스노우 볼링에 대한 이해도와 감각, 판단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유명 유튜버들의 플레이만 보고 따라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단순히 도시를 짓고 소소하게 문명을 올리다가 게임을 종료하는 것을 반복하는 플레이를 하는 초보자들이 문명 시리즈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 7의 방향성은 어떻게 본다면 '게임을 잘 아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시스템으로 다듬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문명이었다면 플레이어가 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몇십턴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문명 7은 이것을 플레이어가 어떤식으로 게임을 플레이어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목표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서 그 행위에 대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문명 7은 이러한 방향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두가지 측면에서 시스템을 구성하였다:첫번째 측면은 시대의 구성이다. 문명 7은 의도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분절하여 각 시대별로 시대별 목표를 제공하고. 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심지어는 군사나 정치 유닛의 배치까지도 바꾸는 초 강수를 뒀다. 예전 문명에서 시대는 연속성이 있게 구성되어 있었고, 플레이어의 슈퍼 플레이에 따라서 상대 플레이어는 기마궁수로 놀고 있는 동안 나는 탱크 몰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게임의 목표나 유닛의 배치, 발전 상태 등 다양한 것들이 리셋되기는 하지만 후술할 목표 시스템 측면과 맞물리면서 각 시대별로 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산'을 남기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두번째 측면은 목표와 네러티브의 제공이다. 기존 문명에서는 게임의 최종 목표(정복이든, 우주선 탈출이든 간에)를 제외한다면 플레이어가 게임 중간에 얼마나 게임을 잘했는지, 목표에 부합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중간 지표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명 7에서는 각 시대마다 군사, 종교, 상업 등의 목표를 제공해주고, 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누적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즉, 플레이어의 행위가 전통이라 하는 소버프들로 이어지고, 이것이 플레이어가 게임 동안 쌓았던 인프라와 결과물들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측면만 놓고 본다면 문명 7의 지향점은 대단히 명확하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스노우볼링에 대한 개념을 분절화 시키고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플레이어가 좀 더 명확한 동기부여와 로드맵을 가지고 게임에 임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문명 7이다. 그리고 기존 인프라들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숙련된 플레이어들의 경우 보너스를 중첩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문명과 비슷한 부분들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문명 7은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문명 7은 '페이퍼 플랜' 위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문명 7의 문제는 변화가 너무 인위적이고 극단적인 부분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이 문명의 발전 노정에서 바라본다면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색하게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가령 고전 시대에서 대항해 시대(정확하게는 발견 시대지만)로 넘어갈 때, 어째서 플레이어는 고전 시대에는 바다 건너의 대륙을 항해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인가? 왜 시대의 마지막에는 항상 내 문명의 약점에 부합하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인가? 게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플레이의 핍진성 측면에서는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게임에서 종종 발생한다. 물론 기마궁병과 탱크가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는 게임 시리즈에서 현실 역사의 핍진성을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이 삐걱거리지 않게끔 걸어둔 과속방지턱들이 때로 게임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문명 시리즈가 여지껏 추구해왔던 역사의 연속성과 문명 7의 방향성은 상당히 대치된다는 점이다. 문명 시리즈는 이전부터 골수 팬층이 많은 게임이었고, 팬들마다 최애 문명이 있어서 새 작품이 나오면 새 작품은 사지만 결국은 그 문명으로 돌아가는 경향성을 갖는 특이한 팬덤을 가진 게임이었다. 즉, 문명 시리즈는 쉽게 이야기해서 팬층의 보수성이 일반적인 게임 시리즈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게임의 완성도와 완전히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초반의 압도적인 부정적 평가는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명 7은 아직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부분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게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우선 이러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 게임 내에서 내러티브를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문명류의 게임에서 랜덤 이벤트를 통해서 선택에 소소한 보너스를 주고 플레이어가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게끔 만드는게 관건인 부분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내러티브가 심하게 약하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완전히 SF 적 상상력으로 게임을 채워넣을 수 있는 스텔라리스의 랜덤 인카운터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문명다운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게임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크다. 문명은 확장팩으로 완성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명 7은 게임으로 기본이 부족한 부분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정찰병의 자동 정찰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정찰을 눌러줘야 한다던가, 유닛의 주요 조작 버튼을 아예 빼놓는다던가 숨긴다던가, 혹은 UI UX가 완전히 엉망진창이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들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들은 확장팩이나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은 당장 처리하고 게임을 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행이도 파이락시스에서 해당 부분을 인지하게 빠르게 대처중에 있다지만, 애시당초에 이런 눈에 보이는 부분들은 해결하고 게임을 내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내리자면 문명 7은 분명 노림수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도 해서 낸 작품이긴 하지만, 그 완성도가 다른 문명들(확장팩이 나오기 전 기준으로)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도 뭔가 나사가 한 둘 빠진 작품이다. 분명 잘 다듬어서 확장팩까지 낸다면 게임이 지금보다 반등할 여지는 충분히 있고, 새로운 문명 시리즈의 스탠다드가 될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인 것도 맞지만, 너무 성급하게 미완성인 게임을 냈다는 인상이 없지않아 있다. 다소 기대를 내려놓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작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액션 게임에 턴이 있다는 발상 자체는 처음 듣는 사람들이면 생소하겠지만, 액션 게임들을 오래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는 묘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행동의 단위가 분절되어 있는 턴제 게임과는 완전히 다르며, 즐기는 계층도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게임의 단위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분절하여 본다면 원자 단위에서 동일한 부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턴제 게임에서는 턴이라고 하는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단위를 이용하여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여 액션 게임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보통 '행동'(공격이든 움직임이든 뭐든)을 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한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정해놓은 기회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는 턴제 게임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플레이어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모든 행동들은 프레임 단위로 분절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행동을 했을 때 행동에 대한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모두 완료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어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즉 어떻게 본다면 플레이어는 유연한 단위인 시간이라는 범주에서 행동이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간의 개념도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대상은 공간을 점유한다. 3차원의 게임 기준에서 본다면 공격 판정은 공간 내에서 특정 시간 동안만 유효한데, 이 판정이 상대에게 닿는가가 공격이 실제 유효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공간 내에서 얼마나 상대와 근접할 것인지, 멀리있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도 시간보다는 좀 간접적이지만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액션 게임 내에서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적에게 접근하거나 거리를 벌리거나 하는 등의 기술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공간 역시 액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연한 자원 내에서 본다면 액션 게임에는 독특한 턴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공격 행동을 보자. 모든 공격 행동들의 프레임은 버튼을 눌렀을 때 준비 자세를 취하는 프레임, 그리고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마지막으로 공격을 마무리짓고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 프레임 내에서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것은 2번째 단계로 이 프레임을 공간 내에서 적에게 맞춰서 피해를 주는 것이 액션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액션 게임의 턴이 있다는 개념은 이 시공간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명확해진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시간이라는 시간표와 공간이라는 좌표평면 상에서 일종의 '비용'으로 작동한다. 한번 행동을 하게 되면 그만큼 시간을 소비하고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동시에 공격을 행할 시 생기는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공격을 헛쳤을 경우의 리스크는 매우 큰데, 게임 내에서 공격은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이후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방비로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파고든다면 뒤의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을 취소하고 다음 액션으로 이어가는 캔슬 개념이 존재하거나, 적이 가드하고 있을 때 공격을 맞추면 일종의 징벌적 개념으로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더 길어지는 개념이 존재하는 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는 어떨까? 몬스터 헌터는 어떻게 본다면 액션 게임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액션 게임 장르에서 별의별 변칙적인 게임들이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몬스터 헌터는 근 25년의 역사 속에서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 헌터의 기본 골격은 위에서 이야기한 시공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액션 게임들과 비교해본다면 대단히 명확한데, 하나의 적을 두명이서 팬다는 아스트랄 체인 같은 게임이나 회피의 무적시간을 적의 공격과 겹칠 시 시간을 느리게 하여 프리딜 타임을 주는 베요네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최근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시공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치트키' 무기들을 주는 '하이퍼한 개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핵심이고, 몬스터 헌터는 플레이어에게 시공간 자원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를 주지 않고 정직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헌터와 몬스터가 서로 턴을 주고 받는다는 게임의 흐름 상에서는 턴제 게임과 비교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몬스터 헌터다.

물론 액션 RPG로써 고전적인 게임 감성을 지니고 있는 소울류 게임이 득세하면서 역으로 큰 변화가 없는 몬스터 헌터 게임이 소울류와 비교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재밌는 점은 몬스터 헌터 게임들이 긴 역사속에서 요즘 액션 게임들과 다른 나름의 하이퍼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몬스터 헌터와 소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공격에 스테미너가 소비되지 않는다(=공격이 또다른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다)인데, 이 때문에 공격과 방어, 생존을 위해서 스테미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느린 페이스로 게임을 이끌어나가야하는 소울류와 달리 몬스터 헌터는 공격에 시공간 외의 자원을 소모하는게 거의 없기 때문에(특정 무기의 특정 기믹들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몬스터 헌터는 게임 내의 독특한 자원들을 추가하여서 턴을 주고 받는 페이스를 올리는 방법을 취한다. 몬헌에서 처음 이것이 등장한 것이 바로 필살기가 등장한 몬헌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였다. 몬헌 트라이와 몬헌 4에서 몬헌 더블 크로스로 넘어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 몬헌다움이라는 개념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부분이 바로 이 필살기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과연 몬헌에 필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몬헌다움에서 어긋나지 않을까가 핵심이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건랜스의 용격포나 대검의 모아치기 같은 일격필살 같은 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기믹의 과감한 변화라는 개념에서 연결지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크로스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이후 몬헌들이 좀 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몬헌 라이즈는 월드와 다른 더블 크로스의 직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필살기 개념들을 밧줄벌레라는 자원과 밧줄벌레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였다. 재밌는 점은 낙법과 같은 개념들이 밧줄벌레와 함께 통합되었다는 점이고, 밧줄벌레가 필살기인 동시에 생존기(낙법)로 사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맞으면 맞을수록 생존기에 밧줄벌레를 써서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반면, 플레이어가 밧줄벌레를 써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하게 된다면 클리어 시간을 단축시키는 높은 리턴을 가진 부분이 된다는 점은 밧줄벌레라는 자원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후 나온 와일즈는 몬헌 라이즈의 밧줄벌레 같은 자원들은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라이즈 이전의 월드와 유사한 부분들을 많이 띄게 된 작품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몬헌 월드 아이스본에 있었던 상처 시스템을 좀 더 범용적인(과거에는 클러치 클로라는 기믹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와일즈에서는 일반 공격으로 생성할 수 있게 만든) 개념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라이즈나 이전 몬헌에서 만들어진 기믹들(몬스터 특정 위치에 마크가 찍히고 그 마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득을 본다)은 여전히 상처 시스템에 적용되는 부분이고, 밧줄벌레와 같은 자원은 없지만 몬스터의 턴을 무시하고 내 턴으로 가져오는 상쇄나 카운터 기능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는 최근 몬헌 트렌드를 들고 왔다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스위치 2에 대하여  (0) 2025.04.26
[리뷰]문명 7  (0) 2025.04.11
[리뷰]발라트로  (0) 2025.02.28
[칼럼]용과 같이 8에 대하여  (2) 2025.01.31
[리뷰]인디아나 존스 : 그레이트 서클  (0) 2025.01.15
1 2 3 4 ··· 231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