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278건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아이고 이제 좀 정신좀 차려야...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101  (0) 2024.01.01
231202  (0) 2023.12.03
231001  (0) 2023.10.01
230619  (0) 2023.06.19
221211  (0) 2022.12.11
게임 이야기



용과 같이 시리즈는 ‘지역적’이고 ‘동시대적’인 특색이 강한 작품이었다.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쉔무에서부터 일본/홍콩의 마을과 거리를 구현하면서 거기서 소일과 활극을 즐긴다는 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용과 같이 시리즈도 카무로쵸, 소텐보리 같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그 지역의 특산물과 즐길 거리를 즐기는데 방점을 찍었다. 또한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시대에 동떨어진 장르와 다르게 게임 내에서 즐기는 소일거리들은 ‘동시대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제로의 물장사에서부터 전화 데이트, 캬바레 같은 일본식 성인 유흥에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만남어플 등과 같은 신식 문물까지 오랜 시리즈의 역사동안 다양한 동시대의 문화를 게임에 녹여내려 했다.  

흥미로운 점은 용과 같이라는 작품의 지향점일 것이다: 게임은 분명 GTA 같은 게임과 비슷한 소재(범죄자, 일탈의 즐거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GTA와 전혀 다른 지향점을 보여준다. GTA식의 메트로폴리스 도시의 구현이었다면 용과 같이는 도시의 한 두 블록을 정밀하게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GTA의 도시가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광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면(물론 발매텀이 매우 긴 것도 한몫할 것이다), 용과같이는 짧은 발매텀과 그때 그때의 유행들을 반영한 미니게임, 트렌드의 변화로 게임 내에 즉각적으로 반영된 게임이었다. 물론 용과 같이가 작은 규모의 게임으로 구현된 것은 에셋을 최대한 재활용한다는 기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발매텀 동안 중복되는 미니 게임이나 기믹을 최대한 배제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요소들을 최대한 들고온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GTA가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일탈을 구현하는게 핵심이었다면, 용과같이는 약간의 문턱을 넘으면 손에 얻을 수 있는 일탈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런 ‘손에 잡을듯한 일탈’의 개념은 역으로 용과 같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컨셉과는 크게 맞물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용과같이 시리즈의 시작은 인협물으로 한국식 조폭물의 일본판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식 조폭물의 문제답게 야쿠자물 역시 현실 범죄의 미화,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미학과 겉멋든 모습들, 폭력적이고 과격한 묘사 때문에 점차 메이저한 장르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장르적으로 퇴색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서도 야쿠자는 강력한 법적 제재와 단속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문제는 ‘동시대성’과 ‘장르적 베이스’가 상충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야쿠자를 멋지게 표현하는 모습과 야쿠자는 행복하면 안된다는 장르 법칙 간의 모순, 시대가 지날수록 야쿠자는 설 곳을 일어가고 있는데 근 20년 가까이 시리즈를 지속하면서 야쿠자 주인공으로 메인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들 등등은 용과 같이 시리즈가 걸었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용과 같이의 강점은 구체적인 상상력과 지역에 기반한 상세한 요소들이었지만, 동시에 그 요소들을 게임으로 엮어 성립시키는 장르적 문법들이 역으로 게임 프랜차이즈를 옭아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멜로드라마나 소프 오페라 관점에서 본다면 완성도가 높아 세계적으로 팔릴 여지가 있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부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편의 방향성 변화는 활로를 뚫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단순히 액션 게임에서JRPG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야쿠자’라는 장르적 문법에서 넘어서서 ‘손에 닿을듯한 일종의 어반 판타지’로 넘어갔다. 야쿠자와 불량배들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잡몹이 되고, 하수구는 던전으로, 생활속 다양한 직업들은 판타지에 나올법한 전사, 도적, 마법사들로 치환된다. 사실 원래 용과 같이에서도 이러한 NPC들의 얼척없는 이야기들이나 황당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도 많아서 이러한 변화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는데, 용과 같이 7은 아예 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즉, 손에 잡을 듯한 일탈과 그 일탈을 뒷받침하는 상상력을 어반 판타지의 양식으로 재정립해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요소 자체를 일반화된 대중문화 코드로 희석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 용과 같이 7이었던 것이다.

용과 같이 7의 성공은 주인공을 키류 카즈마에서 카스가 이치반이라는 인물로 세대교체하는 주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7편의 등장으로 지난 20년 동안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쌓아온 용과 같이를 정리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키류 카즈마의 존재는 용과 같이의 기반이 구세대적인 야쿠자 인협물에 기반하는 산 증거이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게임에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과 같이 제로에서처럼 캬바레를 간다던가, 미니카 대전을 즐긴다던가, 당구를 친다던가 등의 소일거리들은 사실 우리 윗세대들이 주로 하는 소일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일거리들은 아랫세대로 내려올수록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재미가 없게 느끼거나 하는데,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표상하는 과거의 감수성을 넘어서 게임 콘텐츠를 과거의 영역으로 제약하는 한계가 된다.

용과 같이 7 외전은 키류 카즈마를 떠나보내주기 위한 작은 진혼곡이다. 용과 같이 제로의 시스템(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는)을 도입하면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콘텐츠들을 집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7이나 과거작들 같은 메인 시리즈와 같은 야망이나 힘을 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시리즈가 10장 이상의 볼륨을 자랑했다면, 용과 같이 7 외전은 6장 남짓의 분량에 이전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반전이나 즐길거리 요소들을 빼고 오로지 구작의 미니게임이나 시스템들을 다듬고 재활용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분량뿐만 아니라 용과 같이 7 외전은 의도적으로 작품의 포부를 줄여버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애당초에 7에서 ‘키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이야기의 곁가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지만, 8편에서 마지막으로 출연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키류가 걸었던 길과 야쿠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어째서 더 이어질 수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야기에 큰 힘을 쏟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7 외전이 구시대적인 게임 플레이를 다듬기는 하지만 숨기지 않는 부분들은 보면 더더욱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진다:7편에서는 이미 잘려나간 캬바클럽과 같은 미니 게임 요소나 새로운 미니 게임 요소는 넣지 않고 상당수 구작의 미니 게임들을 가져온 점, 격투 스타일을 두가지로 줄여서 다듬어 버린 점들이 그러하다. 7이나 구작들, 특히 4나 5편, 제로 같은 작품에서는 플레이 케릭터 수를 늘려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와 기믹을 보여주려 했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어깨에 힘을 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7 외전은 8편을 위한 구작의 앵콜에 가깝다. 애당초에 8편 발매 2개월 전에 게임패스를 통해서 풀린 점이나 풀 프라이스 가격보다 살짝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 점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키류 카즈마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생긴 점이 그러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키류 카즈마에게서 ‘퇴물이 되어 늙어버린’ 자의 애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 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이번작에서는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조용히 살아가며 과거의 영광과 악명에서 거리를 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그의 행동에는 과거를 억누르는 연륜과 동시에, ‘자기는 아직 늙지 않았다’라는 묘한 호승심이 상충되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캐슬 투기장에서 더 높은 등급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이나, 미니카 서킷에 도전을 한다던가 하는 등의 활동에서 과거를 추억하면서 ‘난 아직 늙지 않았다’와 ‘나는 아직도 강하다’라는걸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우리 같은(=야쿠자) 사람들의 꿈이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비하면 쓰레기다 라고 일축하는 모습에서 그런 호승심과 거리를 짓는 성숙함도 보여준다. 

이러한 대비되는 두 감수성이 용과 같이 7 외전의 핵심이자, 동시에 플레이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키류 카즈마의 모습이 기존 흰 양복의 붉은 셔츠를 입는 전형적인 야쿠자의 모습에서 검은 정복으로 바뀐 점이나 오프닝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장면, 그가 즐기는 미니게임이나 소일거리들이 대부분 용과 같이 제로 때부터 내려오는 40~50대의 추억과 소일거리에 기반한 점들은 그를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고 삶에 지쳐버린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뒤쳐지고 지치고 늙은 키류 카즈마가 하고자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아직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또다른 하나는 너무 늦기전에 뒷세대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 모순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게임은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고, 용과 같이 7 외전은 분명 작은 스케일에 아주 훌륭한 완성도라 할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잘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에서 용과 같이 제작진들의 강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통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개념이긴 해도 그러한 통속적인 개념들의 대비를 통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이미지와 스토리를 각인시키는 부분이 용과 같이 시리즈의 강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용과 같이 7 외전은 8편을 위한 기대감을 고취시키는 프롤로그의 관점과 키류 카즈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에필로그의 관점에서 모두 좋은 작품이다. 물론 독자적인 작품이 아닌 ‘무언가’의 끝이자 시작으로 기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본다면 7편이나 이전 작품에 비해서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용과 같이 제작진들이 소프 오페라의 문법을 다루는 관점에서 완숙미를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7편의 변화나 저지먼트 아이즈 같은 외전들, 키와미 같은 작품들 등등을 통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시도에서 일본 로컬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도 먹힐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관점이 대단히 ‘구시대적’인 부분들은 있지만, 구시대의 사람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현시대 사람이 못되더라도 적어도 현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것을 용과 같이 시리즈와 용과 같이 제작진은 증명해냈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23년은 진짜 엉망진창이었는데 새해는 뭔가 달랐으면 좋겠네요.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217  (0) 2024.02.17
231202  (0) 2023.12.03
231001  (0) 2023.10.01
230619  (0) 2023.06.19
221211  (0) 2022.12.11
게임 이야기

 

- 스팀덱 처분하고 레노보 리전 고를 약 2주 정도 사용한 후기입니다.

- 생각보다 들고다닐만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기기라는 인상. 잘 사용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이 기기보다 스팀덱에 대한 평가가 더 올라가는 기묘한 기기입니다.

- 기기 하드웨어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떨어지는게 너무 눈에 보이는 기기.

- 스펙적으로 본다면 스팀덱보다는 훨씬 뛰어나며, 기본적으로 윈도우 기반의 UMPC이기 때문에 더 많은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쓴다던가, SSD 용량을 확장한다면 기본적인 사무 업무나 작업을 하는 것이 왠만한 사무용 피씨만큼의 성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펙적으로 본다면 화면 크기가 늘어났기 때문에 영화나 다른 사무용 업무, 웹 서핑을 수행하기 괜찮다. 기본적으로 윈도우 11의 타블렛 UI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무게도 스팀덱 보다 좀 더 무겁긴 하지만, 게이밍 노트북이나 여타 기기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가벼운 축이고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경계선에 있다. 

- 성능적으로도 스팀덱 대비해서 더 뛰어난 수준. 당장 몇몇 게임들의 경우, 게임 플레이 프레임이 올랐다는게 느껴질정도로 차이가 난다. 디아블로 4 같은 게임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들 등등 기존 스팀덱에서는 40프레임 정도를 방어하던 게임들이 60프레임 이상을 방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와인 기반의 프로톤이 갖고 있던 윈도우 '에뮬레이션'의 문제를 윈도우 네이티브로 해결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 그러나 스팀덱과 달리 기기 '전용 OS'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꽤 많다. 우선 범용적인 윈도우 OS의 태블릿 UI나 사용감 자체도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데, 레노보 리전 고용 대응 소프트웨어도 완성도가 너무 엉망이다. 특히나 스팀덱 같이 빅픽처 모드와 스팀덱 OS 기반으로 다듬어진 UI/UX 컨트롤러의 조작감과 대비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스팀 외부의 ESD(예를 들면 엑박 게임 패스같은)를 쓰면 키보드와 기본 컨트롤러 사이에서 충돌까지도 발생한다. 

- 컨트롤러 버튼은 많은데 정작 스팀덱 처럼 뒷면 컨트롤러 버튼을 따로 지정하거나 사용못한다는게 좀 치명적이다. 기존 스팀덱 컨트롤러는 후면 컨트롤러 버튼을 매핑하고 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 분리 컨트롤러 기믹은 좋은데 문제는 스위치처럼 컨트롤러 두개를 결합할 수 있는 조립형 지지대 같은것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 전반적으로 덜 무거운 게이밍 노트북이라 생각하고 쓰면 상당히 만족스럽고, 스팀덱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더 좋은 기기를 생각하고 사기엔 좀 애매하다. 무게도 무게고 게임 하나만 하는 용도로 쓰기엔 OS 완성도도 너무 떨어진다. 무엇보다 조금 프레임과 해상도를 희생하면 이미 스팀덱에서도 레노보 리전 고가 할 수 있는 거의 상당수의 것들을 처리할 수 있다. 60프레임이 좋긴 하지만, 30프레임이라는 포멧이 왜 표준이었는가? 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 결론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만(게이밍 "노트북"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모두에게 추천해주기는 어려운 기기. 

게임 이야기

 

 

디아블로 2의 등장은 게임 역사의 한 장을 바꾸었다. 수많은 적들을 죽이고, 장비를 획득하고, 스킬과 스탯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케릭터를 키우는 구조를 우리가 아는 형태로 처음 정립한 건 디아블로 2였다. 그리고 좀 더 뒤로 흐름을 넓혀서 본다면 게임의 장르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폐지 줍기’ 게임으로 일컬어지는 파밍 게임 장르의 큰 틀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2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갖고 이야기하고 그리워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디아 2의 기록적인 성공은 수많은 아류작과 파생작, 계승작들을 만들어냈고 다양한 시도와 실패, 성공들을 동반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디아블로 2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단순히 게임 하나만의 추억이 아닌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로 진행된 액션 rpg 장르 전체에 대한 추억이자 그 이후의 게임들로 이어지는 계보에 대한 향수이자 집단 기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디아블로 2 본편의 양식과 장르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너무 낡아버렸다. 디아블로 2가 게임 역사의 큰 흐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 이유에는 디아블로 2의 문법들을 많은 게임들이 충실하게 잘 따라했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존재했다:가령, 디아블로의 개발자 중 하나였던 빌 로퍼가 만들고 총을 수집하는 1인칭 디아블로로 시작하여 실패를 겪은 헬게이트 런던은 보더랜드와 데스티니라는 양식으로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큰 틀에서의 추상적인 구조는 디아 2를 따르고 있지만, 그것을 fps의 툴셋으로 옮기기 위해서 데스티니와 보더랜드는 수많은 자기 해석과 새로운 방법론, 레벨링 구조, 콘탠츠 구조들을 만들었는데 시작은 디아 2였을지 몰라도 결국 도달한 결과물이 완전히 상이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디아블로 2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숨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화된 디아 2의 장르와 양식은 역설적이게도 디아블로 2 원전을 점점 낡은 양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는데,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구조의 한계와 유행의 종료, 유저 편의성의 문제, 엔드 콘탠츠와 반복 플레이에서의 문제 등은 아무리 고전이라도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즉, 디아블로 2는 분명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기고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현재에 있어 ‘동시대’라 할 수 없는 지나간 흐름의 게임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4가 디아블로 3 이후로 무려 11년 만에 발매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대와 함께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라는 의문이 섞인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간 블리자드가 겪었던 아노미와 실망스러운 행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디아블로 2 형식의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로스트 아크 같은 게임들이 이런 게임 장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고(물론 후술하겠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디아 4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상당수의 트리플 A 게임들이 디아블로 2의 비전을 소화하고 있기에 디아블로의 신작이 지금 시대에 그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것과 별개로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양식,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가 지금 관점에서는 “굳이?”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어느정도 대중의 평가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영역들을 제껴두고 보더라도 게임 자체는 준수하게 나온 게임이다. 물론 디아 4가 디아 2 이후의 새로운 혁신의 영역을 열었다던가, 혹은 시대의 명작이라든가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후술하겠지만 블리자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디아 2의 성공은 아마도 재현될 수도 없고 재현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아블로 4가 발매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우주 최고의 쓰레기 게임’, ‘자기들이 뭘 만드는지도 모르는 게임’이라는 표현들은 너무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2 이후 걸었던 다양한 게임들을 조합하고 절충하여 코어와 캐주얼 사이의 그 어딘가 절충안을 찾으려 한 게임이다. 물론 그것이 어중간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디아블로 4는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없이 만들지도 않았고 골격 자체는 상당히 잘 잡혀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많이 사로잡혀 있는 가장 큰 미신 중 하나는 블리자드라는 게임 제작사가 ‘혁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역사를 잘 살펴본다면 블리자드의 성공작들 전후에는 블리자드가 벤치마킹하고 발전시킨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존재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그 장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을 들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선각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블리자드는 이러한 작품들을 벤치마킹해서 자기만의 양념을 몇스푼 얹어서 완성시키는 일종의 트렌드 팔로어 개념에 가까웠다. 비주얼적인 변화와 발전 때문에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디아블로 1이 넷헥 스타일의 게임(흔히들 로그라이크라 불리는)의 경험을 발전 승화시킨 게임이란 걸 감안하고 디아블로 2가 그 디아블로 1의 가능성을 승화시킨 게임이란 점, 그리고 마지막에 팔로잉 할 작품이 없어서 허공에 헛발질하면서 망한 디아블로 3의 케이스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버워치나 하스스톤의 흥망성쇠도 그렇고, 종합하여 보았을 때 블리자드라는 회사의 오히려 ‘벤치마킹하여 양념칠만한 요소가 있는가?’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회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디아블로 4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아블로 4가 벤치마킹한 게임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선은 로스트 아크다: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로스트 아크라는 게임이 없었다면 디아블로 4의 게임 구조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와 보스 레이드, 지역단위로 끊어져있는 퀘스트 동선, 카메라를 쓰는 방식 등등 큰 틀이나 자잘한 틀에서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루머에 따르면 디아블로 4가 위처나 다크소울과 같은 RPG를 벤치마킹했다는 루머가 있다. 물론 우리가 그 모습을 알 길이 없고, 디아블로 3 이후로 있었던 디아블로 관련 프로젝트들이 난항을 겪으면서 진상은 오리무중에 빠졌지만 로스트 아크의 발매가 2018년이고 디아블로 4의 첫 공개가 2019년 11월이란 점을 쉽게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스테로이드를 빤 늙은이”다. 기본적으로 로스트아크의 핵심 골자들은 추억에 기반한다. 디아블로 2와 같은 핵앤슬래시나, 와우나 mmorpg 같은 장르 등등 2018년 시점에서는 이미 일부 게임을 제외하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장르였다. 스마일게이트의 대표가 ‘한번 쯤 추억을 집대성한 위대한 게임을 한번 내보자’라는 꿈이 없었다면,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기획서 단계에서도 통과되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추억을 드림장르의 형태로 구현해보자 라는 이 이상한 목표가 “과거를 받아 현재를 구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비전을 가진” 형태의 게임을 만든게 아닌 “현재의 탈을 뒤집어 쓴 뒤 편의성을 갖추고 미래의 가능성도 포섭하려 한 과거의 게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괴이한 이상을 집대성한 부분이 바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를 쓰는 로스트아크의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콘솔 트리플 a 게임의 도래 이후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는 게임의 영화적 경험이나 연출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를 등뒤나 어깨 뒤에서 바라보는 3인칭 시점이나 1인칭 시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로아는 여전히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방식을 고수하면서 정작 연출 자체는 고전 아이소매트릭 게임의 연출이 아닌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연출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로아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들과 연출들(과격한 줌인, 스테이지의 고저차를 연출하는 간단한 플랫포밍, 카메라 촬영 각도를 틀어서 공간감을 표현하기 등등)을 보여주었다. 로스트아크의 카메라 워크와 연출은 나름 성공적이긴 했지만, 이런 괴이한 조합들로 인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함을 갖게 되었다.

디아블로 4의 큰 구조와 연출, 게임의 흐름은 분명 이런 점에서 로스트아크를 따왔다. 분명 디아블로 4의 많은 부분들은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편의성과 구조, 파밍 흐름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아이소매트릭 카메라와 연출방식, MMO 요소들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지향점의 괴리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트리플 A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인데, 명백히 로스트 아크를 레퍼런스로 차용한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로스트 아크가 없었다면 과연 디아블로 4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와 비슷하게도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부분들이 디아블로 4에 잘 어울리기도 하는데, 결국 디아블로 4가 걷고자 하는 길이 원류로의 회귀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와 같이 디아블로 2를 발전시키되 새로운 아젠다로 게임을 구성한다라는 혁신과 실패의 과정과 다르게 디아블로 2를 배낀 게임들을 최대한 벤치마킹해서 안전하게 게임을 이끈다는 구성을 취한 점이 게임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는 실패작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후대 디아블로 2의 정신적 계승작들에게 큰 가이드라인을 준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3의 핵심은 게임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기존의 직업별 공용자원이었던 마나를 제거하고, 마나 대신에 각 직업별 자원 및 자원 순환 매커니즘을 집어넣어서 자원을 수집하고 – 딜로 자원을 소비하고 하는 사이클을 무한히 돌리게끔 만드는 구조를 만들었다. 디아 3의 목표는 개성을 주되(자원 순환 구조를 직업별로 달리 주는 것) 그 허들을 낮게 만드는(기술에 문양을 끼우는 방식으로) 것이었다. 디아 3는 전자는 성공적이었지만, 후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고 말았는데 커스터마이즈 영역이 문양과 기술으로 이원화되어 단순화되고 그 결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명확해져서 커스터마이즈와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디아블로 3의 명백한 실패는 결과적으로 게임이 ‘아이템이 없으면 세팅을 완성시킬 수 없다’라는 것이 매우 컸다. 딜 메카니즘을 완성시키는 전설이나 세트 아이템들이 없다면 플레이어가 손을 대거나 차이점을 만들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디아블로 3는 오리지널 초창기에 아이템 거래를 위한 현금 경매장을 도입하고,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오로지 클리어했던 액트를 다시 재클리어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게끔 만들었다. 거기에 살인적인 난이도를 추가하여, ‘옛날 게임의 구조에 돈을 벌기 위해서 현금 경매장이라는 요소를 추가하고, 거기에 냔이도까지 살벌한’ 기이한 게임을 만들어버렸다. 물론 현금경매장의 폐지, 확장팩의 추가와 대균열, 현상금, 정복자 등의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게임은 어느정도 괜찮았던 본바탕을 건져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아이템 망겜이라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카나이의 함 같은 시스템을 추가했어도 결국 블리자드가 디아 3의 확장팩 개발을 포기한 것은 디아블로 3가 구조적으로 회생불가능하다는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의 실패에서 학습하고 더 나은 작품들(가장 큰 벤치마킹의 대상은 패스 오브 엑자일이다)을 배껴서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디아블로 4의 핵심은 이전 디아블로 3에서 세트 아이템 한 벌이 했던 딜 메카니즘을 전설과 고유아이템, 정복자 노드와 문양 단위로 쪼게고 그것들을 모아서 딜 매커니즘을 구성하게끔 만들었다. 처음보면 엄청나게 많은 내용에 압도되지만, 디아블로 4 케릭터 육성 및 세팅의 핵심은 결국 고유 및 전설 아이템의 세팅이고, 이 점에서는 디아블로 3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위상”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원하는 옵션과 세팅의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구제책을 제공한다:가령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세팅과 전혀 다른 아이템이지만 전설 능력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온 경우, 전설 능력만 위상으로 추출하여 보존하고 나중에 나온 희귀/전설 아이템에 덧씌워서 원하는 전설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희귀템에 대한 구제책도 되면서 기존 전설 아이템을 다시 재활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파밍 위주의 게임에서 적절한 구제책을 제공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게임은 던전을 완료 시, 위상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탑재하여서 파밍의 최저한도선을 설정하였다. 아무리 내가 원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먹지 못하더라도 최저한도의 옵션의 세팅을 맞출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을 마련해둬서 파밍에 대한 허들을 낮춘 것이다. 또한 정복자 보드의 존재는  그리고 흥미롭게도 개별 전설 문양들로만 보면 다소 번잡하고 느리게 느껴졌던 게임이 전설과 고유 아이템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디아블로 3가 지향했던 무자원+달 사이클 형태의 게임에 가까워 진다. 그 과정에서 고유나 전설이 들어가거나 빠지면서 사이클이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이전 세트템 기반의 게임이었던 디아블로 3보다는 좀 더 세밀한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이 100마리, 1000마리 학살 같은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는 게임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아블로 4는 핵앤슬래시 느낌이 나지 않는다’라고 혹평한 부분들은 전투의 느린 속도에 기인한 것이다. 디아블로 4는 방어와 공격 메너니즘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보강과 제압이라는 메커니즘을 넣었고, 이걸로 초기 전투를 진입할 때의 진입장벽을 높였다. 보강은 일종의 방어 버프로 생명력 이상의 보강을 두르고 있을 시에 데미지 감소 버프를 주고, 제압은 플레이어가 보강 상태에 도달했을 때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에 합산하여 데미지를 주는 시스템이다. 제압과 보강 메커니짐은 각 직업별 딜 사이클 시스템 내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 돌입시 보강을 빠르게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보강을 채우는 과정이 플레이어 관점에서는 너무 느리고 답답하며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보강을 채우고 나서는 게임은 180도 달라지게 되는데, 보강된 수치가 데미지 메커니즘에 들어오면서 데미지 계수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루이드의 경우,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 버프를 받으면서 확정 제압을 더해서 1만 단위 데미지가 10만, 100만 심지어는 1억 단위 한방 데미지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 보강은 계속 채워주지 못하면 결국 점차 사라지는 버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꾸준히 딜을 넣거나 스킬을 넣어주면서 일정 보강을 채워주는 작업을 해야한다. 즉, 플레이어 딜 고점은 이전보다 엄청 높아졌지만 보강이라는 요소 때문에 플레이어가 신경써야하는 요소가 자원과 쿨타임 외에 새로운 것이 생겨난 것이다.

즉,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은 짧은 딜사이클을 끊임없이 돌리는 게임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딜사이클을 돌리면서 한방 한방을 묵직하게 꽂아넣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디아블로 3는 컴퓨터가 정해준 대로 자동 변속이 되는 현대적인 스포츠카라면 디아블로 4는 수동 변속으로 꾸준히 속도와 기어 변속을 유지 해줘야하는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손은 더 많이 가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 플레이어의 손을 타거나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게임 자체는 다른 게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편이긴 하더라도, 그 방향성을 잘 잡고 본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디아블로 4에는 흥미곡선이 하락하는 구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디아블로4에서  플레이어는 레벨 30까진 스킬들을 해금하고, 50 이후에는 정복자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된다. 30까지는 게임의 메커니즘을 익히고, 50부터는 본격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100% 활용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에서 50 사이의 구간에서 플레이어가 비약적으로 강해지거나 게임 메커니즘이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들이 많다. 이 구간에서 플레이어는 스킬을 찍거나 릴리트의 재단을 찾으면서 정복자 레벨이나 스킬 레벨을 올리면서 강해지는 밑밥을 깔아둘 수 밖에 없다. 디아블로 4에서는 이 과정을 스토리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방법말고는 없는데, 시즌 케릭터 같은 경우에는 이 과정 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한 스킬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가 올라가는 것이지 플랫 뎀(고정된 데미지)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레벨이 오른다고 더 강해지는게 체감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아쉽다.

대신 50렙에서부터는 플레이어의 재미가 지수함수의 형태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 나은 희귀템을 문양을 활용해서 전설 아이템을 만들고, 스스로 아이템을 세팅하고, 더 나아가서 고유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어떤 세팅을 맞출건지 연구하고, 문양을 레벨업하고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고민하고 바꾼 만큼 게임이 달라지는 구간이기 때문에 디아블로 4는 이전의 밋밋한 구간보다 훨씬 더 재밌어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종반에 가서 기본 게임 골격은 급격하게 꺾이게 된다. 게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엔드 콘텐츠는 악몽 던전 100단과 릴리트의 메아리를 잡는 보스전인데, 양쪽다 30~50렙 구간처럼 단계적으로 강해지는 요소도 없고 밋밋하게 레벨을 올리거나 좋은 아이템이 나올 떄까지 노력하는 것 외에는 끝에 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디아블로 4의 구조 자체가 근래의 운영형 게임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운 공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시즌 1과 2에서는 시즌 퀘스트나 콘텐츠들을 통해서 최종 엔드 콘텐츠까지 갈 수 있는 로드맵을 구성해놓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루팅류 게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운영의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모습을 판단하기 보다는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피드백을 잘 받아주고 잘 운영하는지’가 디아블로 4의 전체 콘텐츠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즌 1과 2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1에서는 릴리트의 재단을 처음부터 플레이어가 뚫게 만들고 백트래킹을 심하게 유도하여 플레이어가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었다면, 시즌 2에서는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 까지 플레이어에게 분명한 로드맵을 제공한다(시즌 피의 사냥터  악몽 던전  월드 이벤트  바르샨  지옥물결  두리엘  릴리트  지르의 도살장) 시즌 1과 2의 차이점은 디아블로 4의 제작자들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여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시즌 1의 콘텐츠나 문양을 적절한 부분에 분배한 부분들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너무나 ‘당연한’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호평이 다소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오버워치에서 보여준 운영상의 난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음을 반증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멀리는 디아블로 3의 현금경매장이나 디아블로 이모탈, 오버워치의 운영 등등을 통해서 본다면 블리자드라는 회사는 점점 쇠퇴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시즌 1에서 흔들리긴 했어도 시즌 2를 통해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나 패스 오브 엑자일 같은 게임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할 후발 주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 4는 본 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다. 디아블로 3마냥 확장팩에도 불구하고 회수 불가능했던 그런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디자인은 아니며, 운영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나아질 여지가 있는 게임이다. 세간에서 시즌 1의 혹평이 심했지만, 시즌 2에서 커버한 모습을 통해 어느정도 신뢰할 여지가 생겼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디아블로 4는 구매해서 손해보지 않을, 오랫동안 놓고 플레이할만한 서비스형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디아블로 2의 등장은 중요한 장르적 개념의 증명이었다:플레이어의 분신인 케릭터를 레벨을 올리면서 성장시키고, 각자 개성을 가진 기술들이나 적이 떨어뜨린 아이템으로 강해진다는 발상은 RPG의 장르의 등장과 태동, 그리고 전작인 디아블로 1편에서부터 형성되어 내려온 장르의 고유 맥락이었다. 하지만 그 맥락이 시스템과 문법을 만나게 되어 하나의 게임으로 정립이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레벨을 올리면서 얻는 제한적인 자원(스탯과 스킬 포인트)들을 사용해 케릭터의 큰 얼개와 개념을 잡고, 그 과정에서 아이템들을 파밍하여 케릭터를 완성시키는 것은 디아블로 2에서 정립되었다. 또한 난이도 설정 방식과 반복 플레이, 랜덤으로 생성되는 맵, 래더 시스템이나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하드코어 시스템 등도 이 작품에서 대중적으로 정립되었다. 물론 좀더 따지고 놓고 보면 넷핵과 같은 랜덤 생성식의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이미 디아블로 1과 2의 베이스라 할 수 있었지만, ‘던전의 탐색’이 아닌 ’케릭터의 육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의 스타일로 굳게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디아블로 2의 등장은 ‘파밍’과 ‘스킬’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케릭터의 개성을 구성하는 점에서 이후의 게임 장르에 큰 궤적을 그렸다. 당시 나왔던 수많은 실험작들(세이크리드 같은 마이너한 물건에서 헬게이트 런던 같은 실패한 프로토타입까지)의 등장 이후, 디아블로 3가 나오기 전후로 해서 디아블로 2의 스타일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타이탄 퀘스트,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토치라이트, 그림 던 같이 디아블로 2를 받아들이되 자신만의 새로운 색체를 가미하여 성공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디아블로 2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넘어선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작품들이 상당히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것처럼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디아블로 2에서 영감을 얻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에서는 아이템에 스킬이 붙는 ‘아이템 스킬’ 개념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특정한 룬 스톤들을 순서대로 삽입해서 룬 워드 아이템을 만드는 디아블로 2의 시스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스킬과 스탯 배분과 별개로 아이템에 새로운 기능을 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디아블로 2 이후의 소위 핵앤슬래시 게임들은 디아블로 2의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받아들여서 발전 시키는데 더 집중을 하였다.

오히려 디아블로 2의 장르적 개념적 발전은 소위 '폐지줍는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가 발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자면 총 쏘는 디아블로라 불렸던 보더랜드의 등장과 데스티니 같은 게임들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MMO든 패키지든 무엇이든 간에 디아블로 2의 등장은 반복 플레이와 스킬과 스텟을 배분하여 성장하고 아이템을 파밍해서 점점 강해진다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디비전 같은 게임이나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루트 슈터류의 게임들이 이러한 디아블로 2의 방계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물론 철저하게 혈통을 따지는 사람들 중에서는 '디아블로 2와 그 직계 후손들'과 루트 슈터 류의 게임들을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로스트 아크의 케이스처럼 '이것은 MMO지, 디아블로 2의 핵앤슬래시 류 장르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로스트 아크가 MMO의 큰 장르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그 뿌리를 디아블로 2 스타일의 핵앤슬래시와 파밍 게임에 두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로스트아크 이전 시대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MMO의 뿌리가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 울티마 온라인 같은 류의 게임들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로스트아크가 디아블로 2의 베이스를 두고 더더욱 그러하다(물론 여기에 타겟팅 논 타겟팅 등등의 장르 양식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한다면 복잡해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요소와 제반 상황을 볼때는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면 디아블로 2의 방계이자 서자라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무지막지하게 많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무작위로 생성되는 아이템을 주워나가고 레벨을 올리는 형태의 게임들은 상당수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디아블로 4의 리뷰나 디아블로 2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디아블로 2의 구시대적인 양식이 디아블로 3의 실패와 디아블로 4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요즘 너무 엉망진창이었네요.

디아블로 글 현재 작성 중이니 작성되는대로 다시 뵙겠습니다.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217  (0) 2024.02.17
240101  (0) 2024.01.01
231001  (0) 2023.10.01
230619  (0) 2023.06.19
221211  (0) 2022.12.11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올드리치 립스키의 해피엔드는 한 사형수가 사형당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생애를 거슬러올라가는 것을 역재생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사형은 탄생으로, 감옥은 학교가 되고, 결혼의 과정은 역으로 이혼을 위한 과정이 된다. 역재생의 논리는 이미 고전적인 흑백영화나 영화의 테크닉에서 꽤나 많이 사용되었던 테크닉이자 문법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역재생은 ‘기존의 것을 낯설게 한다’ 라는 측면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코미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역재생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왜냐면 역재생의 변칙적인 흐름은 어디까지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라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흐름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서 흐름을 예측하게 된다. 흐름을 예측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상식으로 예측 불가능한 엉뚱함과 논센스야말로 코미디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논센스가 상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의 강점은 역재생과 시간을 역으로 구성하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재생의 변주에 정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섞어넣는 것이다. 한 시퀸스를 예로 들어보자:주인공의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기 위해서 외간 남자를 불러놓고 티타임을 갖는 이 장면에서 아내와 남자는 음료를 마시면서 과자를 계속해서 먹어치운다. 이것이 역재생으로 진행되는만큼 이 둘이 과자를 계속해서 뱉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점은 과자를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차를 뱉어내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지만, 불투명한 찻잔 때문에 차를 마시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마신다‘라는 정방향의 흐름과 ’과자를 뱉어낸다’라는 역방향의 흐름이 공존하게 되면서 예측불가능한 논센스들을 만들어낸다.

해피엔드는 장면 장면을 이렇게 정방향과 역방향의 흐름을 엮어서 묘사하는 것 외에도 역순으로 진행되는 인물의 대사나 큰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말이 되면서 말이 안되는 모순된 흐름을 같이 구성하고 있다. 해피엔드의 시작은 치정살인을 한 주인공의 사형에서 시작되서 주인공의 출산을 끝으로 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치정살인의 대상이었던 두번째 사랑이자 아내가 주인공의 첫 사랑이자 벗어나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가 되고, 첫번째 사랑이 주인공이 되찾아야 하는 사랑으로 묘사한다. 해피앤드는 큰 틀에서 첫 사랑에서 느끼는 불완전함을 두번째 사랑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치정극의 구조로 표현한다. 중요한 점은, 정방향과 역방향 모두 이야기가 상식적인 흐름에서 말이 되게끔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재생의 기묘함과 비교되는 정방향의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역재생에서 나오는 코미디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드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코미디 영화이자, 코미디 영화의 교보재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영화 글들 위주로 쓰는 중...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101  (0) 2024.01.01
231202  (0) 2023.12.03
230619  (0) 2023.06.19
221211  (0) 2022.12.11
221130  (0) 2022.11.30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소년이 세상에 나오면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모두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있을거라 생각하고, 모든 일들이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년들의 욕망, 혹은 소년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스럽게 해소해주는 것이 소년만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오랜 과거로 올라간다면 이러한 소년만화의 이야기들은 영웅서사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황금가지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다룬 담론들처럼, 대중 작품에서 다루는 서사의 상당수는 소년의 성장에 모티브를 두고 있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과 난관들을 서사의 구조로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의 논의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성공하는 서사‘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설이나 신화의 단계에서 본다면 영웅이 실패해서 몰락하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에서 소년이 실패하는 소년만화란 생각보다 정석적으로 풀어낸 것을 찾아보기 힘든 분야다. 애시당초에 사람들은 대중문화에서까지 실패를 찾고 싶지 않다. 하늘까지 올랐다가 뜨거운 태양에 날개가 추락해 떨어지는 이카로스의 깨달음은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보고 싶고 열광하고 싶은 깨달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사이버펑크 2077의 전일담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이 나이트 시티를 활보하는 용병이 되어 성공하고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엣지러너는 트리거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과감한 연출 방식으로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를 확장한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엣지러너의 성공은 엄청났어서, 심지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엉망이었던 런칭을 덮어버리고 다시 사람들을 사이버펑크 2077을 하게 만드는 동력을 만들었다.

엣지러너의 핵심은 몰락 그 자체다. 어떻게 주인공인 데이빗 마르티네즈는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가고, 그리고 추락하게 되었는지를 다룸으로써 태양에 너무 가까워진 이카로스의 추락 그 자체를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이 지극히 ‘소년만화’의 구조에 맞닿아있다는 것이 엣지러너의 훌륭한 점이다. 화려하게 비상한 만큼 모든 걸 잃으며 추락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엣지러너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게임의 클리셰와 전제를 기묘하게 비틀었다는 점일 것이다. 게임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라면 주인공이 몸에 부하가 걸리거나 위험이 있는 기술들을 어떤 제약이나 패널티 없이 잘 쓰는 것을 자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게임에서 이러한 제약사항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에게 ‘금단의 힘’을 제공하고 금기를 넘어서는 쾌감을 제공해주는 일종의 내러티브를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네러티브적인 제한이 플레이어의 힘을 실제 제한하는 케이스들은 상당히 드물다. 하지만 엣지러너는 이러한 클리셰를 교묘하게 이용하다가 뒤틀어버린다.

주인공 데이빗은 크롬(인간을 강화시키는 인공 신체)에 대한 부하를 적게 받는 재능을 가진 인물이다.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크롬을 얼마나 많이 달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무력이 결정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데이빗은 사이버펑크의 세계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셈이다. 이는 엣지러너의 원작인 사이버펑크 2077에서 용병 V와 구도가 비슷한데 크롬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V가 힘과 인연으로 나이트 시티의 최정상에 오르는 것이 원작 게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V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전설이 되었다면, 데이빗은 전설이 되지 못하고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데이빗은 스스로 전설이자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롬의 부작용으로 인해서 멈춰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V가 아니었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자Edgerunner에 불과한 거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경계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예외인 자신’ 클리셰를 무너뜨리긴 했어도, 주인공 데이빗의 몰락은 극에서 계속해서 예견되었다. 극 중 데이빗을 움직이는 모티브는 모두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들이었다. 가장 큰 모티브는 1화에서 죽어버리는 데이빗의 어머니의 유언 아닌 유언이었다:‘아라사카의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죽기전 데이빗과 싸우는 그 순간에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이 데이빗을 주박처럼 옭아메고, 데이빗이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다가 경계의 저편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마지막 화에서조차 데이빗이 루시를 구하기 위해서 사이버사이코 상태에서조차 ’아라사카 정상까지 가겠다‘ 라는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가 여전히 1화의 주박에 사로 잡혀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할 가능성을 준 또래 집단들도 역설적이지만 그의 파멸을 앞당기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의 롤모델이 되었던 메인 역시 그의 사이버사이코 상태의 환상 속에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크롬을 사용하고 자신을 밀어붙였던 강박적인 심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메인이 망가지는 과정 자체는 데이빗의 몰락과 많은 부분 비슷한데,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다가 주변인들을 내치고, 자신의 연인과 친구들을 모두 잃고 사이버 사이코가 되어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메인의 죽음은 데이빗에게 더 많은 신체를 크롬으로 대체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고, 그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로 이어졌다. 

그렇기 떄문에 역설적이게도 시리즈가 끝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때까지 데이빗의 심리 상태는 강박과 죽은 자들의 주박에 사로잡힌 자기 자신이 없는 자기 파괴적인 상태였다. 이 때문에 그의 연인인 루시와의 관계 조차도 서로 바라보는 벡터가 달랐다. 첫 만남에서 루시는 데이빗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그건 타인의 꿈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이는 데이빗의 동인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루시가 삶을 살아가는 관점인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빗과 루시는 일종의 상극에 서있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서로 삶을 바라보는 관계가 다르더라도 데이빗과 루시의 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순수한 관계라는 점이다. 루시가 데이빗을 위해서 아라사카의 해커들을 제거하고 데이빗의 흔적을 숨기고자 했던 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의 안전을 지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었던 것도 데이빗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데이빗은 루시를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은 루시의 그것과 상당히 달랐다:데이빗은 그녀에게 헌신했지만 동시에 루시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그의 사랑의 형태였다.

이로 인해서 엣지러너의 가장 큰 비극이 완성된다:루시와 데이빗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식과 벡터가 달랐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감정이 닿았어도 서로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루시는 자신이 죽더라도 데이빗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전했지만, 데이빗은 루시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꿈은 루시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 가장 마지막의 순간에서조차 두 연인의 소망은 닿을 듯 말듯 하며 교차해버리고 아련한 감정만을 남긴 채 장대한 파멸을 맞이한다.

트리거는 색체와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 그리고 추락과 상승의 동선 등을 통해 위에서 분석한 엣지러너의 이야기 구도를 훌륭하게 구성한다. 아라사카 타워와 달, 데이빗의 추락, 화려하지만 마치 병든 것 같은 채도 높은 노란색의 이미지, 네온 빛깔로 표현된 산데비스탄의 잔상들과 사이버펑크 도시의 느낌 등은 교과서적인 동시에 통일감을 제대로 구성하였다 할 수 있다. 서사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작품으로써 훌륭한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이미지와 다르게 본질적으로 엣지러너는 대중매체의 정석적인 흐름을 뒤집고 몰락의 아름다움과 애틋함, 안타까움을 잘 드러낸 탄탄한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1 2 3 4 ··· 228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