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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리뷰]유희왕 마스터 듀얼
출시: 2022년 2월 3일
개발: 코나미
유통: 코나미
※ 엑박 메거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들어가며 –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간략한 역사

유희왕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를 토대로 한 TCG(Trading Card Game)이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중인 TCG 프랜차이즈이다. 96년 첫 연재된 만화 유희왕 속에서 1993년 최초의 TCG인 매직 더 개더링의 오마주인 듀얼 몬스터즈라는 TCG로 묘사된 것이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모티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작 만화에서의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의 테마와 서사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독립적으로 완성된 게임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보의 숨겨진 효과(기뢰화)라던가, 크리보가 증식한다던가 등의 원작 만화 자체의 카드 효과들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TCG와 원작 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만화의 재미와 별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룰들은 '그래서 유희왕 내의 카드 게임이라는게 뭔데?' 라는 의문을 자아냈다. 그렇기에 초기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 원작을 게임으로 옮겨놓는 재현에 가까웠고, 아직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잡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뒤로 갈수록 처음 매직 더 게더링을 오마주했던 원작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전개된 작품들은 원작과 다르게 '유희왕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룰과 콘셉트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 작품'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매 새로운 작품마다 실물 카드 게임에 대격변을 일으키며 작품과 상품들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DM에서부터 GX → 5Ds → ZEXAL → ARC-V → VRains 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카드들과 소환 방법들(싱크로 소환, 엑시즈 소환, 펜듈럼 소환, 링크 소환) 등이 추가되었고, 룰이나 금지/제한 카드에 대한 규칙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단순히 만화의 사이드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섰는데, 발매된 카드의 수나 판매된 카드의 매수 등이 매직 더 게더링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희왕 프랜차이즈가 한계를 맞이한 것도 프랜차이즈의 역사 동안 다양한 소환 방법의 추가와 룰의 복잡화에 기반했다. 서로 다른 룰을 적용받는 특수 소환만 총 6개(융합/의식/싱크로/엑시즈/펜듈럼/링크)였고, 프랜차이즈 전개 동안 극심한 카드 파워 인플레이션, 이전의 카드가 현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 한 카드 내에 복잡하고 끔찍하게 긴 텍스트가 들어가 가독성과 난해함의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물 카드 게임을 함께 운영하던 유희왕 프랜차이즈의 전략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신규 유입은 끌어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테마와 룰을 소개하기에 실물 카드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희왕 프랜차이즈는 신규 유저들은 기존 스피드 듀얼의 포맷을 명료하게 다듬은 러시 듀얼이라는 새로운 룰과 유희왕 세븐즈라는 애니메이션으로 관리를, 기존 카드 군과 유저들은 마스터 듀얼이라는 포맷으로 재정립하여 관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였다.

엑스박스를 포함한 전 기종으로 발매된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게임 제목 그대로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규칙 포맷인 마스터 듀얼 포맷을 토대로 만들어진 F2P 카드 게임이다. 재밌는 점은 23년 간 쌓아올린 현 마스터 듀얼의 포맷에 거의(약 1년 정도의 간극은 있다) 유사하게 나온 케이스는 유희왕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전에 나온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었기 때문에, 특정 애니메이션에 나온 제한적인 카드들로만 구성되었지만 본 게임의 경우에는 판권 문제 때문에 나오지 못한 일부 카드들(대표적으로는 삼환신의 수장인 호르아크티 같은)을 제외하면 현재 실물 카드 게임에 가장 유사한 모습이다. 

카드 게임의 특징과 매직 더 게더링을 통해 본 기본 흐름에 대한 간략한 분석

 

 

 마스터 듀얼을 본격적으로 리뷰하기에 앞서서 TCG 장르에 대해서 간략하게 분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TCG라는 게임 장르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문장구조에 단어를 집어넣는다'라는 구조를 가진 게임이다. 게임의 전체 룰은 문장구조와 문법에 대응하고, 각각의 카드들은 단어에 대응하며, 게임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서 문장의 완성도를 평가한다. TCG는 여타 보드게임 룰들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상당히 성긴 형태의 규칙을 갖고 있는데,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카드들을 규칙에 맞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카드 게임은 여타 보드게임과 달리 플레이어의 상상력과 개성이 보장되는 게임인데, 구조적으로 '문법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을 집어넣어도 상관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단어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각 카드와 카드가 룰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역량도 중요한 게임이다. 문장을 구성할 때, 문법에 맞는다고 모든 문장이 문장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의 맥락에 따라서 그 문장의 적절성(발화자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TCG에서 단어와 단어의 선택은 게임 룰에 맞춰 카드의 발동과 배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패에 들고 있는 카드들의 풀 내에서 짜임새 있게 카드를 이용해서 이득을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TCG라는 장르에서는 단어, 즉 카드를 재화로 취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르의 이름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어는 부스터/드래프트 팩을 통해서 무작위로 담긴 카드들로 카드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각 카드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카드들은 각각 희귀 등급이 정해져있고, 희귀도가 올라갈 수록 덱에서 키가 되는 역할을 맡는다. 트레이딩 카드 게임에서 트레이딩이란 이러한 희귀도 차이를 유저들 간의 거래 또는 샵에서의 거래를 통해 극복하게끔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유희왕이 오마주했었던 매직 더 개더링(매더개)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자. 위 그림과 같이 매더개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카드의 뭉치인 덱과 플레이어가 자신의 턴에 사용할 수 있는 패, 그리고 실제 게임이 플레이되는 필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매더개의 특징은 패에서 발동하는 모든 카드들이 '마나 자원'을 소비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나 자원을 턴마다 생성하는 대지 카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더개나 매더개의 가장 성공한 아류인 하스스톤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자원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아무리 강한 카드들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카드를 꺼내기 위해서 내 대지 카드들을 보호하고(대지 파괴 요소가 매더개에는 존재한다), 초반 턴에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위니(주로 1~2 코스트로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카드들) 카드들을 통해서 적절하게 나를 방어하기도 해야한다. 결국은 매더개는 자원을 적절하게 쌓아올리면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자신의 덱이 갖고 있는 포텐셜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덱을 전개해나가는 운영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다. 카드 간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한번에 휘몰아치기 보다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카드로 막아가면서 게임을 고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어드벤티지, 한국에서는 '아드'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한다. 아드는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와 상대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의 차이를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카드 한장을 사용하여 상대 필드 위에 카드 한장을 파괴하고 그 카드가 묘지로 갔다면, 플레이어는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한 장 카드를 막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점을 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두 장 이상의 카드를 제거했을 때, 나는 한장을 쓰면서 상대의 카드를 두장 이상 제거하여 최소 한 장 이상의 이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서 보면 TCG는 유려한 말싸움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단어들(카드들)을 모은 단어 뭉치(덱)를 만들고, 그 단어 뭉치에서 제한된 단어들만 뽑아낸다(손 패의 구성). 그리고 각 플레이어들은 언어의 문법(게임의 규칙) 내에서 각 단어를 조합해서 상대의 문장을 효율적으로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와중에 자신을 대표하는 멋진 단어들(희귀한 카드 같은)을 중심에 두고 단어 뭉치를 구성하거나 독특한 단어 뭉치들을 이용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부수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 TCG 장르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유희왕 분석 - 랩 배틀, 또는 드래그 레이싱

 게임으로써 유희왕은 만화와 다르게 만화를 소비하는 저연령층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게임이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원작 만화의 매직 더 개더링스러운 부분들(카드에 명기되지 않은  '키워드', 위에서 언급한 기뢰화의 케이스처럼)은 배제되고 매직에서 저연령층 소비자들이 어렵게 느껴질만한 요소들을 제거되었다. 가장 큰 변화점은 '마나 자원의 삭제'와 '카드 내에 모든 텍스트가 들어감'일 것이다.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신규 유입 유저에게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마나 자원의 관리'와 '카드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아니한다(키워드 시스템)', 그리고 '마법과 효과 처리를 하는 스택' 개념일 것이다. 스택은 유희왕에서 체인 개념으로 변화하였음으로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마나 자원 관리와 키워드 시스템은 유희왕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특히 플레이어가 자원을 관리하게 만들고, 강한 카드들이 곧바로 나오지 못하고 차근차근 게임을 쌓아올려가는 기제였던 마나 자원의 삭제는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런 부분이 삭제되면서,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보다 더 쉽고 빠른 게임 페이스를 지향하게 되었고, 만화의 주 소비층인 저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나 자원의 삭제 등의 변화점이 유희왕을 '무자원으로 빠르게 강한 몬스터를 꺼낼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유희왕의 독특한 점은 카드 자체가 이점으로 적용되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 정리한 것처럼, 몬스터 존/마법, 함정 존/묘지 존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카드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두었다. 자원을 삭제한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한정하였고, 마법/함정의 경우에는 앞면으로 빠르게 사용하거나(마법) 뒷면으로 세트 후 다음 턴에 발동한다(함정) 발동 상황에 대해서 제약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유희왕은 덱을 구성할 때 플레이어는 빠르게 깔 수 있는 몬스터/마법과 상대턴에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함정 카드, 최종적으로는 몬스터를 제물로 써서 더 강한 몬스터를 불러와서 상대 라이프를 줄여야 했었다. 흥미롭게도 규칙 자체는 매직 더 개더링보다 간소화되었어도 '게임에서 플레이어 서로가 주고 받는 상황'이나 최종 국면 자체는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지향했던 부분과 유사하였다.

 

 

하지만 근 5년 간의 유희왕, 쉽게 이야기해서 최근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흐름은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대표적으로 극단적일 정도로 빠르고 유연해진 게임 진행 속도가 그렇다. 한 턴에 2~3마리의 상급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인 덱이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이고, 덱 서치, 샐비지, 대량 파괴, 퍼미션 등의 강렬한 난타전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시스템에 가장 유사하게 제작된 비디오 게임인 ‘유희왕 마스터 듀얼’ 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20년이 강산이 두번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긴 하지만,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까지 변화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마스터 듀얼에서 쉽고 강한 덱이라 할 수 있는 엘드리치 덱을 보면 쉽게 감이 올 것이다. 엘드리치 덱은 구성에 따라서는 덱에 황금경 엘드리치 3장만 넣고 돌리는, 초기 유희왕 유저로써는 상상조차 안 되는 과격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 돌려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덱이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덱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려면 아래 도표를 보도록 하자.

 

 

복잡하게 그려져 있지만, 핵심은 엘드리치 마법/함정들은 마법/함정 존에서 엘드리치를 소환하거나 상대 마법 함정을 카운터 치고, 사용되고 난 다음에는 무덤에서 엘드리치 마법/함정을 덱에서 서치/리필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엘드리치의 경우에는 패에서는 상대 필드의 몬스터/함정/마법 등을 파괴하는 견제 카드로, 묘지에서는 패 한장을 코스트로 스스로 되살아 올라와서 필드에 다시 소환된다는 것이다. 즉, 엘드리치 덱에서의 각 카드들은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묘지에 따라서 재활용되고, 카드 테마 내의 카드들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한 카드가 다른 카드들을 덱/패/묘지 등등에서 계속해서 줄줄이 불러낸다. 

즉, 모던 유희왕은 초기 유희왕에서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첫번째는 각 카드가 더이상 자신의 위치(몬스터, 마법/함정, 묘지 등)에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군데 이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범용 카드, 한 장으로 완성된 강력한 카드보다는 독특한 플레이 방식을 보여주는 수많은 테마군들 내의 카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플레이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공격측 전략 관점에서 보자. 모던 유희왕으로 넘어오면서 덱 서치/묘지 샐비지/덤핑 등의 요소 때문에 게임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게임은 이제 패 자원에 있는 카드 뿐만 아니라 덱과 묘지, 필드 등의 다양한 곳들의 자원들을 최대한 적재 적소에 배치하여 덱 전체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 엔진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리 엔진은 전개/운영덱 특성에 따라 플레이어가 판단하는 목표 카드들(높은 공격력의 효과 몬스터, 퍼미션 카드, 에이스 등)을 향하는 콤보의 흐름을 구축한다. 

 

 

본인이 마스터 듀얼에서 운영하고 있는 LL 트라이브리게이드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위 그림과 같이 LL 트라이브리게이드(통칭 LL 트라게) 덱은 두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라이브리게이드 테마의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링크 소환이 되는 트라게 축, 다른 하나는 LL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엑시즈 소환이 되는 LL축이다. 그림으로 보면 복잡해보여도 실제 운영 자체는 간단하다.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서 트라게 축과 LL축을 오가면서 몬스터를 전개하고, 상황에 따라서 서로의 축을 오갈 수 있는 카드들(너벨이나 마법 버드 콜 같은)을 활용해 축을 갈아탄다. 그리고 그 전개된 몬스터들을 이용해 상대 운영/전개를 방해한 뒤에 체력을 깎아 끝을 내면 된다. 요약하자면 게임의 전반적인 운영은 목표로 삼은 카드를 뽑기 위해 각 카드별로 이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위치(트라게는 묘지, LL은 주로 패)에 카드를 배치하고, 최대한 그 이점을 덜 소비하면서 효율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희왕은 빠른 진행과 능동적인 플레이어의 선택을 강조한다.

한편 방어 관점에서의 유희왕은 크게 패트랩과 퍼미션 전략 두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퍼미션부터 보자. 기본적으로 퍼미션은 '특정 카테고리의 행위를 막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가령 '효과 몬스터는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마법/함정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등의 텍스트가 여기에 속한다. 단순한 기능이긴 하지만, 상대의 특정 행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틀어막는다는 점에서는 무시무시한 기믹이며 여타 카드 게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룰이지만 유희왕에서는 퍼미션이 중요한 방어 전략으로 대부분 덱은 한 두개 이상의 퍼미션 요원이나 퍼미션 기믹을 탑재하고 있다.

두번째는 패트랩이다. 패트랩은 함정 카드와 비슷하지만, 손패에서 별다른 세트나 준비 없이 발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몬스터/마법/함정 가리지 않고 손패에서 발동할 수 있는 카드군을 유저들 용어로 패트랩이라 부르는데, 사실상 노 코스트로 나와서 상대의 진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방어이자 억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에서 예로 든 LL 트라게 덱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아래와 같은 흐름이 등장한다.

 

결국 엔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공략하는 것이 유희왕에서의 방어 전략인데, 문제는 여타 카드 게임에 비교하면 이러한 방어전략은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퍼미션 같이 한 카테고리의 행동 자체를 봉쇄하거나, 패트랩 처럼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요격 수단이라는 것 자체가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수단들이 없었다면 공격측의 전개에 방어측 플레이어가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 게임 플레이가 극단적으로 빨라진 만큼, 패트랩이나 퍼미션 한 두개 정도 있는 수준으로는 우회 루트로 빌드를 올리거나 카운터 운영을 하는 등의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희왕의 방어는 성을 잘 짓고 상대의 소모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날아오는 미사일을 다른 미사일로 격추시키는 일종의 요격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패트랩과 퍼미션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구사하여야 한다.

공격과 방어, 양 측면에서 유희왕을 세 요소로 요약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목표까지 도달하기 위한 콤보/루트의 산정
2.상대의 방어 전략들(패트랩 등)을 전제하고 공략에 나서는 것
3.1과 2를 반복하면서 상대 라이프를 깎아 승리에 도달.

 


위의 LL 트라게 덱의 경우, 트라게 축과 LL축의 전개를 섞어가면서 상대의 패트랩을 교란하고 퍼미션 요원들(특수소환 퍼미션 - 앙상블루 로빈, 대상 지정 효과 퍼미션 - 왕신조 시무르그, 마법 함정 퍼미션 - 안개 골짜기의 거신조)을 전개하여 상대의 패 소모를 유발하면서 이점 차이를 벌리다가, 마지막에 피니셔들(트라이브리게이드 흉조 슈라이그, 엑세스 코드 토커)을 투입해서 게임을 마무리 짓는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여타 카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빠른 전개와 과격함을 보여준다. 게임이 격렬한 만큼, 게임 시작 3턴 안에 대부분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승패의 흐름이 나며, 좀 더 극단적인 조합에 따라서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첫 턴에 덱 40장을 모두 써서 엑조디아를 모아 필승을 노리는 덱을 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게임은 드래그 레이싱(넓은 직선 대로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를 대결하는 레이싱)라고도 볼 수 있는데, 누가 더 빠르게 자신 덱의 목표 카드들을 뽑아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상대의 플레이에 재를 잘 뿌리는가로 승패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 때문에 유희왕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첫번째는 절대적으로 선공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덱이 패 5장 이내에서 필요로 하는 첫 전개/운영 요원들이 나오도록 덱을 구성해서 그 턴 내에 절반 정도의 목표 카드들이 나오게 되고, 목표 카드들로 먼저 집을 지어놓으면 그걸 뚫고 들어가지 못하게 퍼미션 요원 몇을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선공을 잡는 순간 패 상황에 따라서는 퍼미션과 함께 공격력 3000이상의 몬스터 2~3체 이상이 꺼내서 다음턴에 상대를 완벽하게 압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실제 게임에서는 이러한 선공의 절대적 유리함을 완화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안전장치들을 도입하였다. 선공 드로우의 폐지, 3판 2선승제 매치 플레이와 사이드 덱 전의 도입,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패트랩 등의 요소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선공을 잡아도 단판에서는 유리하지만 전체 매치에서는 적절한 밸런스가 맞게 된다. 허나 후술할 마스터 듀얼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두번째는 텍스트의 문제다.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과 달리 카드 한 장이 하나의 완성된 카드라는 개념으로 게임이 설계되었다. 예를 매직 더 게더링은 생물 카드에 비행이라는 키워드가 붙어있다면, 그 비행이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카드 내의 텍스트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유희왕은 카드 내에 그 카드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놓아서 그대로 그 규칙대로 사용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유희왕의 룰 적용이 중구난방이라는 점, 그리고 20년이 세월이 흐르면서 초창기 카드들과 후기 카드들의 규칙 충돌이 일어나는 점, 거시적인 부분이 아닌 세부적인 룰 작동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마스터 듀얼 -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카드 게임

 

 

마스터 듀얼은 현대적인 유희왕의 체계를 탑재하고 있는 게임이며, 게임 성격은 이전 비디오 게임 유희왕 프랜차이즈들과 많이 다르다. 과거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게임의 홍보와 애니메이션의 부가 상품으로 병존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 게임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듀얼 링크스 같은 게임도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카드 게임을 홍보하고 주 소비 고객이 저연령층이었던 과거의 유희왕에게 있어서 비디오 게임이란 케릭터 상품의 일부였다. 듀얼 링크스를 예로 들어보면 명확한데, 듀얼 링크스에서는 나오는 카드가 제한적일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케릭터마다 스킬이 주어져 있어서 유희왕 카드 게임을 그대로 즐기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케릭터를 조작하는 느낌을 주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마스터 듀얼은 이러한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유희왕 카드 게임에서의 카드 풀과 룰, 게임으로의 개성만으로 정직하게 승부한다. 이는 유희왕 마스터 듀얼 포멧(비디오 게임이든 카드 게임이든)이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올린 그 역사로만 우직하게 승부하겠다는 최근 유희왕의 전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덕분에 위에서 이야기한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십분 살리고 있다.

마스터 듀얼은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지면서 수혜를 톡톡이 입은 게임이다. 일단 위에서 언급하였던 룰의 적용과 복잡한 재정들, 중구난방인 카드 텍스트들이 프로그램에 의해서 자동으로 처리가 되며 플레이어가 쉽게 놓칠 수 있는 카드의 체인 발동 타이밍 같은 것들을 게임이 잡아줌으로 처음 유희왕 게임을 접하는 플레이어라도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다. 또한 덱 레시피를 검색해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점이나 덱 레시피 구성 시 연관카드 검색 같은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편의 기능들도 충분히 갖췄다. 카드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다.

다만 마스터 듀얼이 모던 유희왕의 매력을 살리고 있는 점과 기본적인 완성도와 편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과 별개로 두가지 문제는 묵과하기 힘들다. 첫번째는 마스터 듀얼의 매치 시스템이다. 원판이 3판 2선승제의 매치 시스템을 통해서 선공이 유리한 구조를 어느정도 벨런스를 맞추었다면, 비디오 게임 마스터 듀얼에서는 오로지 단판 매치 규격만 지원하기 때문에 상대 덱을 파악해서 사이드 덱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이드 덱 전이 없을 때 강세를 보이는 몇몇 덱들(특히 유저들의 원성을 듣는 디클레어 기반의 드라이트론 같은)이 엄청난 강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두번째는 현 환경과 1년 정도 텀을 두고 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6천여장의 카드 풀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핑계겠지만, 최신 테마들의 기믹을 못 쓴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감질난다.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가 현재 블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국내에서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의 등장 이후 스탠다드 포맷(근 2년간의 블록들 카드로만 덱을 구성해서 게임을 하는 것) 게임 플레이가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상당수 사라졌다는 증언들을 고려해보면 결국 코나미와 마스터 듀얼이 염려하는 점은 프랜차이즈 간 카니발리제이션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텀을 둔걸로도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건이지만, 마스터 듀얼을 통해서 보여지는 코나미의 정책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마스터 듀얼은 기본적으로 갖출 것들은 갖추고 있지만, 기술적인 짜임새가 아쉬운 부분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픽에 비해서 프레임 드랍 이슈가 발견되는 등 고작 이걸로 버벅거린다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UI가 어딘가 허전한 점, 비공개 방에서는 발생하는 네트워크 이슈들 등등은 치명적이진 않지만 무시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또한 게임 포멧들이 단판 게임 포멧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다양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금제를 다양하게 걸거나, 특정 테마 위주의 이벤트라던가) 등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마스터 듀얼은 게임 플레이 자체에 하자는 없고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뭔가 완벽하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묘하게 빠져있는 듯한 게임이다.

결론

결론을 내리자면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분명 재밌는 게임이다. 원작 실물 카드 게임의 재미도 잘 살렸고, 비디오 게임이 되면서 한결 편해진 부분들도 존재한다. 이후 다룰 재화 소비 구조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게임 자체도 초반에 시원시원하게 원하는 덱들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좋은 부분이다. 그러나 완벽하다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 원작인 실물 카드 게임의 매력은 잘 살리고 있지만,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들, 편의 요소들 등이 결여되어 있고, 그 부분들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뭔가 소금물을 마신거 마냥 마시고 나서 더 목이 마르게 만드는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있고, 한번 유희왕이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적어도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별도로 돈을 쓰지 않더라도 재밌게 즐길 게임이기 때문이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명작의 조건은 마지막화에 조지는 거라고!"

-호에로 펜 中

 

우리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배운다:사람이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무언가에 대한 해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질문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소통 방식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창작물들, 특히 장기연재작에서 하나의 사건과 질문이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경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째서 그런것일까? 장기연재물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극에 집중하게끔 만들어야 극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하나의 질문이 하나의 대답으로 일대일 대응이 된다면, 모든 극과 갈등, 의문은 마무리되고 더이상 이야기는 진행될 여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연재, 방영되는 상영작들에서 질문은 계속해서 질문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극의 전체 구조를 심각하게 무너뜨릴 소지가 있다. 우리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말라 라는 격언을 배우는 것을 생각해보자.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답이다. 질문에 새로운 질문이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의 크기를 키우고,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여 계속 극에 몰입하게 하는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동시에 답 없은 질문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극이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도 같이 커진다. 위 호에로 펜의 대사처럼, '마지막에 조져버리는 것'은 그러한 질문들이 쌓이고 쌓여서 무너질 때, 답변없이 작가가 극에서 도망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호에로 펜이 이야기한 '마지막에 극적으로 조져버리는' 케이스는 생각외로 적다. 샤먼킹 처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프린세스 하오 같은 말도 안되는 엔딩을 내고 도망친 뒤에, 다시 졸렬하게 돌아와서 재연재를 하는 그런 작품은 창작물 역사를 통털어 봐도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마지막에 극적으로 조져버리고 튀는' 케이스보다도 '천천히 추하게 지저분해지며 망하는' 케이스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엑스파일의 예로 들어보자: 엑스파일은 외계인이 2012년 지구를 식민지화 하고 인류를 노예화 한다는 거대한 음모가 메인 플롯으로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큰 이야기를 전개했었다. 하지만 인기가 식지않고, 계속해서 드라마가 계속되면서 작가들은 점점 거대해지는 이야기에 끝을 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과 이야기를 붙여나가서 이야기의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결과, 실제 외계인 음모가 실현되는 2012년이 도래하고, 스컬리와 멀더의 자식이 생기고, 주요 악역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되어 버렸다.

결국 극이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던지더라도, 그 질문들은 이미 답을 내놓은 상태에서 짜임새 있게 진행을 해야 이런 상황에 봉착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전개들에 대한 질문과 답 쌍을 편집증적으로 정해놓고 진행한 진격의 거인 같은 작품이 있지만, 여기서 간략하게 다룰 작품은 용과 같이 7:빛과 어둠의 행방이다. 처음 전혀 이야기와 관련없어 보이는 용과 같이 7은 장장 2시간 가까이에 걸친 오프닝 시퀸스 이후 본격적인 게임으로 이어진다. 파이널 판타지 13 같이 배경 설정을 길게 풀어놓는 타입의 서사라 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긴 오프닝 시퀸스가 생각외로 사람의 관심을 끈다는데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은 과거 요코하마의 이야기 - 과거 감옥에 들어가기 전 카스가 이치반의 이야기 -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 배신당한 카스가 이치반 - 카스가 이치반이 자신의 두목을 찾아가 대면하는 점 - 배신할거 같지 않은 두목이 자신을 배신하는 사건 - 갑자기 요코하마에 떨어짐 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이 폭풍같이 몰아치면서 플레이어들에게 '다음에 무슨일이 일어날까?' 라는 궁금증을 계속 들게 만든다.

하지만 용과 같이 7이 좋은 서사를 보여주는 게임인 이유는 그러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적절한 답들을 다 제공한다는 것이다:어째서 첫 과거 요코하마 이야기가 맨 앞에 배치되었는가? 어째서 두목은 카스가 이치반을 배신했는가? 어째서 눈을 떴는데 카무로쵸에서 요코하마로 갔는가? 놀랍게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모든 질문들에 게임은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고, 그것이 질문과 대답이 쌍으로 맞물려 문제 해결/질문 제시가 되면서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결국 핵심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도, 그 끝에는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질문과 대답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던져져야 한다. 용과 같이 7이 소프 드라마 관점에서 좋은 구성을 보여주었던 것은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훌륭한 완급을 보여준다는 점이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질문과 대답의 쌍들이 구조화 되어서 끝에 이루어지는 결론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납득 가능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게임 이야기

 

※ 본 글은 월간 엑스박스 매거진 2월호에 수록된 칼럼입니다.(전체 잡지 링크)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의 하녀는 매일 아침 여덟시에 식사를 가져오는데 이날 아침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도시 전설Urban Legend 대해서 아는가? 전통적인 전설이 아닌 현대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전설들을 다루는 작품들, 장르로 정리하자면 도회지 판타지Urban Fantasy 이야기는 도회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전설이나 환상을 이어나가는 서브 컬처 장르다. 도회지 판타지는 사이비 과학과 오컬트, 미신, 범죄, 신화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각각 하나씩만 놓고 보더라도 거대한 장르를 구성할 있는 요소들이 도회지 판타지에 묶일 있는 이유는 독특한 하나의 핵심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 전설은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떠한 원인이 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있고, 과정을 통해 결과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도회지 판타지에는 결과가 존재하고, 결과에 대한 실존하지 않는 다원론적인 설명(외계인이 그랬다, 사이비 컬트가 그랬다, 연쇄살인마가 그랬다, 돌연변이가 그랬다) 붙이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을 다시 뒤집어서 합리적인 추론의 탈을 뒤집어 써서 다시 포장을 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이라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SCP 재단의 문건들이 있을 것이다. SCP 재단은 위키 사이트로 다양한 허구의 도시전설들을 이야기가 아닌 위키 문서의 형태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SCP 재단에서 다루는 것들은 하나 같이 세상의 이치에서 동떨어진 것들(쉽게 이야기하면 완벽한 허구)인데, 이를 위키 문서로 묘사하면서 묘사 대상에 대한 상상력 함께 일종의 법칙성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과 법칙성은 특이하게도 '검열된 문서'라는 양식을 통해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SCP 문서들의 검열된 부분을 , 그것에 대한 규모나 입에 담기 어려운 끔찍한 진실을 상상할 있다. 반면에, SCP 등장하는 문서 위험도의 등급이나 다양한 부록 문서들, 논리적으로 배치된 다양한 매체들을 때면, 이것이 통제 가능하며 설명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을 있다.

흥미롭게도 도회지 판타지의 이러한 부분들은 부조리극이라는 근현대 문학과 어느정도 맥락이 닿아있는 처럼 보인다. 부조리극의 대표자인프란츠 카프카 소설들처럼 조리에 맞지 않는 ,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 도시 문명에서 느껴지는 소외와 불안감을 다루는 것이다. 이전 근대문학에서 찾아볼 없는 부조리극의 독특한 감수성은 전적으로 도시라는 공간 기반하고 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곳에서 모여서 살고, 과정 속에서 불가해한 일들이 일어난다. 도시와 산업 문명을 지탱하는 관료제도 그러하다. 전통적인 관료 제도 내에서는 일은 잘게 쪼개진 업무들과 그것의 집합체인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며, 조직들은 서로 하는 업무를 없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도시 문명과 관료주의에 대한 현대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것이 카프카 부조리극의 일반적인 모티브라 있다.

 

 

 

흥미롭게도 부조리극 역시 도회지 판타지와 미학적으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변신을 예로 들어보자. 그레고리는 잠자는 벌레가 되었다, 라는 전설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주인공이 영문도 모른 벌레가 된다는 이해가 되는 문장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그레고리는 잠을 자다가 벌레가 되었다라는 사실이 아닌 그것이 전제가 되어서 전개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자가 어떻게 가족의 짐이 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메마른 과정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현실적'이라 있다. 모순된 두가지, 묘한 현실성과 순수한 거짓의 결합, 결합을 통해서 카프카의 변신은 수많은 평론가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다.

카프카의 심판에서는 좀 더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요세프 K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으며 죽는다. 법제도 바깥에 서있으며 자신을 처벌하는 제도로부터 처벌당하는 내용인 심판에서 중요한 것은 요세프 K가 취하는 태도와 그에 대한 법 제도의 배척과 공격일 것이다. 연극적으로 과장된 영화를 만들었던 오손 웰즈가 영화화한 버전의 심판에서는 이것이 기괴하고 과정되며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변호사(오손 웰즈 역)가 법으로부터 고발당한 자신의 의뢰인에게 일종의 협박을 가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이지 않지만(어떤 법조항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인가?), 구체적인 불안과 협박(법조인들과 그 세력들이 의뢰인을 안좋게 본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판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 공존하는 장면을 도출한다.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우리 역시도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어렴풋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장면인 것이다.

이러한 카프카의 부조리극은 도시문명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모순의 진리가 도시 문명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출퇴근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군중들이 대중교통에 타고, 밀려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가능한가? 혹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장막 뒤의 동력에 대해서는 모두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첨단 서비스들처럼, 그것이 동작하는 것은 알지만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도시와 기계문명은 관료제와 분절화된 과학 기술 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는 평생토록 그 일부만을 보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서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제는 우리의 이성에 맞지 않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이 모순된 개념이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사회 속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대로 굴러간다는 것, 그것이 부조리극이 꿰뚫어보고자 한 현대문명의 본질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재해석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도회지 판타지는 부조리극으로부터 모순된 두 명제의 공존(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의 미학을 물려받았지만그 미학에 갇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관통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갖는 욕망이고, 도회지 판타지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회지 판타지의 전설적인 작품이 바로 90년대 드라마였던 엑스파일일 것이다:21세기 도래 이전의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 음모론, 종말론 등을 B급 호러 영화식의 특수 분장과 CG, 모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진실은 저 너머에Truth is out there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모든 것을 부정하라Deny everything 같은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내며 90년대 수억의 음모론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동시에 의도친 않았겠지만 수많은 백신 음모론으로 2020년대 백신 반대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작품이었다. 엑스파일은 단순히 세기말의 열풍을 타서 흥행한 작품이 아닌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의 한 축을 완성시켰는데, 도시 전설에 대해서 수사극이라는 도시 문명에서 성립하는 전통적인 장르 문법과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좌절, 실패 등을 통해 사람들이 도시문명에 대해 느끼는 이해에의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엑스파일의 핵심은 도시전설이 권위에 의해 은폐된 진실과 맞닿아 있고, 그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권위적인 방법론(과학, 정부 등)이 아닌 대안적 방법을 통해서 접근하는 데 있다. 과학에 의해서 비과학적인 요소로 규정되어 있는 요소들(외계인, 오컬트, 신비주의, 혹은 대안과학 등등)을 드라마의 플롯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학의 방법론(스컬리)와 대안 과학의 방법론(멀더) 변증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멀더의 가설 제시 - 스컬리의 과학적 반론 - 감춰진 진실에 도달)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미국 드라마나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의 방향성이 그 어느 쪽의 진실도 분명하게 맞다 틀리다를 결론짓지 않기 때문에, 그 모호성과 불안함이 20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엑스파일의 주요한 이야기 전개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위라는 힘과 맞닿아 있다. 엑스파일 내의 권위(정부나 과학 등등)에 있어서 감춰진 진실과 왜곡된 정보는 일반 대중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빼앗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엑스파일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던 부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명제(모순의 진리)의 원인을 귄위라는 명확한 대상으로 특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진리를 꿰뚫기 위해 드라마의 구조를 진실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하여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 엑스파일은 모순의 진리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인(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손)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을 상정하는 것이야 말로 도시문명의 부조리함과 이해 불가능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함, 불가해함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으로 '대안적 진실'에 사로잡혀 버리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유일한' 진실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이야기하는 '음모론'인데, 모든 사건에는 뒤를 조작하는 배후세력이 있고 그 배후세력의 음모에 따라 세상 만사가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엑스파일은 그러한 음모론자(멀더)와 정상 과학(스컬리) 사이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비율을 맞추었고, 모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통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나가지만 문제는 엑스파일을 즐기는 대중들이 음모론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현재 유행하는 음모론들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데(아마도 엑스파일에 많이 나오는 음모론은 백신과 관련된 음모론일 것이다), 엑스파일이 '대안적 진실'에 대한 설파는 많든 적든 현대 음모론자들과 사회에 끼친 좋지 않은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엑스파일이 부조리를 꿰뚫기 위해, 불가해 - 가해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대안적 진실에 갇히게 되어 이야기의 결론은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훌륭하지 못했다엑스파일의 메인 스토리 전개와 결론을 보면 그것이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드라마 내내 보여주었던 모호함과 불길함이 점점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음모와 설명들에 갇히게 되면서 유치해지는 전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엑스파일의 결말은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엔딩으로 끝났다. 마치 현실의 음모론자들이 모든 사건을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음모로 설명하려 하다가 결국 추하게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렇기에 엑스파일은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이 있다전반적으로 2010년대 이후 유행하고 있는 SCP 재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컨트롤은 부조리와 모순,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측면에서 기존의 도회지 판타지와 맥이 닿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주인공인 제시가 총을 잡고 FBC의 국장이 되는 것인데이 과정에서 국장이 되는 자가 총을 소유한다가 아닌 총이 국장이 될 자를 선택한다, 라는 역전된 인과관계를 통해서 도회지 판타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부조리함의 정서가 묻어나온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컨트롤은 특이하게도 도회지 판타지를 다루면서도 엑스파일 이후로 나왔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나 불가해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과는 다소 다른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오랜 떠돌이 삶을 살던 주인공이 동생을 찾기 위해 FBC의 건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제시가 찾고자 하는 것은 유일한 혈육인 딜런 뿐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현상들, 미스터리는 오히려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컨트롤의 핵심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Take Back Control 이라 할 수 있다. FBC의 건물로 찾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부조리함의 그 자체였다. 마을 쓰레기 장에서 찾아낸 슬라이드를 통해서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동생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제시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을 떠나 추적을 피해다니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녀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취했던 행동은 자신이 이런 지경에 도달하게 만든 요인(슬라이드 프로젝터)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찾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삶의 중요한 요소를 찾아 이 상황의 통제권을 되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주인공 제시가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컨트롤은 부조리 -불가해함의 가해함, 가해함의 불가해함 등의 요소들- 3가지의 이미지 층위 형태로 묶어낸다. 첫번째는 부조리의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강박적인 이미지의 아스트랄 플레인Astral Plain 차원의 이사회Board. 이들은 FBC를 설립한 권위있는 존재로써 하얀색 공간 속의 뒤집어진 검은 피라미드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이들은 도움을 주지만 숨겨진 자신들만의 아젠다를 갖고 있어서 어딘가 의뭉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이사회에 반대하는 존재의 등장이나, 이사회가 플레이어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DLC의 모습 등은 강박적인 질서와 통제를 통해 이들이 실제 사람들이 사는 층위(주인공이나 FBC의 사람들)과 유리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이사회Board의 존재가 관료제도에서 보여지는 최상위 의사 결정 집단의 존재와 동일한 명칭을 쓴다는 점인데, 보통 도회지의 감수성에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료제도인 것을 생각한다면 컨트롤에서 이들의 존재는 마냥 좋은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미지는 주적인 히스Hiss. 이들은 특이하게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마치 맑은 물 속에 뿌려진 오염물질 같이 둔탁하고 통제되지 않고 퍼져나가는 혼탁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게임 내에 히스가 만들어내는 혼돈이나 파괴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히스가 드러내는 부조리의 측면은 바로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그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심리, 혼돈, 악의 그 자체이다. 그들이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 등은 후술할 스테이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바로 폴라리스Polaris이다. 폴라리스는 북극성, 혹은 다른 이름으로는 이끄는 별Guiding Star로 알려진 이 존재는 게임 내에서 제시의 머릿속에서 말을 걸며 그녀를 인도한다. 세이브 포인트인 통제 지점에서 탁한 이미지의 히스를 몰아낼 때 반짝거리는 수정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폴라리스는 위에서 언급한 부조리의 두가지 측면(강박적 이미지의 이사회와 혼란스럽고 오염의 이미지인 히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존재가 전혀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점에서 불가해한 존재이긴 하지만 부조리의 두 불가해한 측면(강박적 원칙과 혼란/오염) 속에서 정확하게 주인공 제시가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설명 불가능하지만 부조리를 가로지르는 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클라이맥스에서 폴라리스를 잃어버리고 제시가 히스에 잠식되는 순간, 게임은 이 3가지의 이미지를 한데 섞어서 게임 스토리의 테마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히스가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FBC의 잡무를 처리하는 말단 직원이 되어서 편지를 전달하고, 책상을 치우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마치 관료제와 현대 데스크잡의 악몽을 형상화한 듯한 이 스테이지는 현대 사회의 일상 그 자체이자 어느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상황을 깨부시기 위해서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제시가 하는 것이 주어진 명령을 거스르는 것, 더 나아가서 폴라리스가 항상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히스를 몰아낸다.

위와 같은 점에서 컨트롤은 엑스파일이나 여타 도회지 판타지가 쉽게 빠지는 '대안적 진실에 매몰되어 점차 구차해지는 이야기'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물론 컨트롤도 도회지 판타지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모습 등은 먼저 온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 부조리함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컨트롤은 중요한 두가지 명제(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그리고 그것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를 통해서 부조리함을 통제하는 힘을 되찾는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레메디는 본 게임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전달력 있게 풀어 나간다. 때문에 컨트롤은 이전 도회지 판타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필자는 요즘 갤럭시 폴드로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라는 이동시간에서 발생하는 로스를 최소하는 것이 게임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돌리고 있는 게임은 포켓몬 유나이트, 명일방주, 유희왕 마스터 듀얼, 매직 아레나 등 정도인데 하루 24시간 중 운동이나 공부, 식사 시간 등의 필수적인 시간들을 제외하고 3시간 정도를 게임에 투자하고 있으니 이들 전체를 플레이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결국은 재미가 있어도 이 게임들 중에서 냉정하게 우선순위가 내려가 구조 정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샘이다.

현대 게임 시장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더이상 게임 시장이 무주공산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게임은 지금 한정된 플레이어 자원, 특히 플레이어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게임은 신규 유저풀이 꾸준하게 늘고 있어도 그것의 성장 속도는 콘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 시장 초기와 비교될 수 없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할 수 있겠지만, 게임시장은 현재 성숙한 단계고 유저 풀은 한정되어있다. 유저 풀이 한정적이라고 본다면,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떻게 상대 유저풀을 내쪽으로 끌어오느냐이다. 즉, 성숙기의 게임 시장에서 상대 유저풀을 빼앗는 것은 주요한 전략이고, 더 나아가서 게임의 재미를 넘어서 '마케팅'적인 요소가 더 강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저 리텐션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일단, 게임의 재미라는 장르 자체의 본질과 보편성은 잠시 재쳐두고,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이라는 범위 내에서 한정지어서 게임을 보도록 하자.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의 특이함은 기본적으로 '문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플레이어가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원과 성취는 점점 로그함수의 곡선을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노력에 효능감 곡선을 비례시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재화가 투입되는 시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을 '문턱'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이 문턱을 넘어서서 플레이어의 재화(=돈)를 소비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수가 얼마나 오랫동안 게임에 접속하는가, 라는 리텐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텐션을 유지하고 플레이어와 소통하는 수단이 일반적인 마케팅에서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라 할 수 있는데, 모바일 게임에서 CRM 수단은 게임 내의 메세지 발송, 혹은 앱푸시, 이메일 등의 다양한 수단으로 나뉘어져있다. 이러한 CRM을 통해서 게임 회사는 플레이어에게 두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첫번째는 현재 이러한 게임이 있다는 '리마인드'의 제공이다:많은 모바일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관심 범위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자연소멸한다. 어떻게 보면 모바일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할 수 있는데(마치 여타 소비재 산업 마케팅에서 고객의 수명이 있다고 정의내린 것 처럼), 이러한 리마인드 차원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모바일 게임의 기대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문턱을 넘기 위한 혜택의 제공을 알려주고, 거기 맞춰서 문턱을 넘어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기본적인 게임의 재미가 보장되는 선에서, 플레이어에게 '다시 접속했을 때의 이점을 제공해준다는 정보를 주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즉, 플레이어에게 '문턱'을 넘기 위한 일종의 역치를 낮추는 요소(무료 가챠나 재화 등)를 제공하는 것인데, 기존에 문턱을 넘을 때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 부분을 낮추는 부분이라 이러한 넛지Nudge(팔꿈치로 쿡쿡 찔러 눈치를 주는)는 리텐션을 극적으로 늘려줄 수 있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두가지 방법들보다도 이러한 두가지 방법들을 실행하기 위한 전략, 플레이어에 대한 프로파일링이다:범죄 프로파일링 개념처럼, 마케팅에 있어서도 프로파일링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프로파일링 기법들은 '통계학적으로 각각 보편적인 속성들을 겹쳐서, 구체적인 포인트를 짚은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성별, 연령대, 나이, 사는 곳, 취미 등등의 요소들은 큰 틀로 놓고 봤을 때 거대한 숫자지만(에를 들어, 서울 인구 1000만에 남성 인구가 500만이라는 식으로), 그것에 필터링을 거는 조건이 더 늘어날수록 프로파일링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더욱 뚜렷해지고 데이터 관점에서 걸러낼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범죄 프로파일링이 용의자나 그들의 행동양식을 좁혀 나가는 방식Narrow Down이라면 마케팅에서 프로파일링은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전체로 구성하고 그 사람들의 다른 소비 포인트,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로 따지면 '문턱'을 찾아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대 남성, 직장인, 가챠는 보통 새로운 픽업 케릭터가 나올 때 10연차 정도 소소하게 돌려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사람의 주요 구매 패턴과 동인은 무엇인가? 이 사람이 게임 재화의 소비 패턴을 발현시키는 방아쇠는 무엇인가? 이러한 고객 세그멘테이션이 있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높은 확률로 가질 수 있는 다른 속성들(가령 여케를 좋아한다, 특정 타임의 여케를 좋아한다 등)을 속성을 추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을 페르소나Persona 기법이라 하는데, 데이터로 뽑혀진 특성을 가진 계층을 더 구체화 시키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여 플레이어가 경험할 수 있는 페인 포인트나 매력 포인트들을 역으로 짚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리텐션을 유지하는 주요 전략(플레이어가 이탈하기 전에 잡는다)으로도 이용되지만 자연스럽게 타 게임으로 이탈하는 고객을 잡는 요소로도 이용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플레이어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친다면, 이 사람은 어느 게임에 더 매력을 느끼는가? 제작사가 먼저 그 매력 포인트를 가진 요소들을 만들거나, 제공한다면 유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직접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웹커머스 사업체에서는 마케팅이나 고객 경험 개선을 위해 쓰이는 방법이고, 또 상대 서비스를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페르소나 분석의 쓰임새는 상당히 폭넓다.

종합하자면 모바일 게임이 부분유료화라는 수익 구조와 게임 플레이 구조는 모바일 게임 유저라는 한정된 풀의 고객들을 더 잘게 쪼게서 봐야하는 전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단순히 혜택과 상품 홍보의 측면을 넘어서, 경쟁 게임과 자사 게임의 특장점을 비교하고 어필하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가려야한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은 여타 게임 시장에 비교해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유물론이란 기본적으로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다'라는 개념이다. 다양한 철학자들이 유물론에 기반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지만, 유물론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한 것은 마르크스일 것이다: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여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을 집필하여 자본주의 비판 및 공산주의라는 사상과 체제를 만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유물론의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사회 근간을 구성하는 경제체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착취 구조를 비판하여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공산주의의 등장 이후, 인류 현대사 100년은 격동의 100년을 보냈고, 그것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이어지며 공산주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이어졌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여전히 동일한 맥락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과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마르크스의 분석의 핵심은 '하부 구조(경제 시스템)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다:마르크스의 역사론에서는 사회는 경제 생산의 단계에 따라 총 다섯 단계(원시 공산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사회주의 사회)를 밟아서 변화하고, 그 각각의 단계의 사회는 인간 공동체의 생산-배분 체제에 기반하여 상부(사회 지배 구조)를 구축한다. 즉, 생산과 배분라는 경제 체제(하부 구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상부 구조)가 구축된다는 것인데, 현대적인 산업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본에 기반한 공장 생산, 노동자-자본가의 이원화된 계급 구조,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관념과 경제 구조 등등이 현대 사업사회의 구조를 구성하는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5단계인 사회주의 사회 실험이 소련의 해체로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 마르크스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에 대한 막연한 추론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무엇보다도 여러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점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과거의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분석은 의미가 있고, 이 글에서 모티브로 다루고자 하는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라는 명제는 그 어느 곳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막강한 분석 구조다.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게임의 역사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하부 구조가 경제 체제를 의미하고 상부 구조가 사회 레짐 체제를 의미한다면, 게임에서는 하부구조/경제 체제는 그 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상부 구조는 게임의 재미 등을 구조하는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거의 게임(~00년대 까지)에서 상부 구조(게임 재미나 이런 부분들)는 하부 구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처럼 보였다. 다양한 실험작들, 대중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매니악한 구조, 시뮬레이션의 구조를 보여주는 게임들 등등은 지금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긴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하부 구조의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이다:00년대 전후의 게임들은 어떻게 보면 주류 문화에 끼지 못하는 하위 문화라 할 수 있었다.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콘솔 및 PC 게임의 시대로 넘어오는 00년대까지 시장은 급격하게 크고 있었지만, 산업적 특성과 하위 문화(해커, 주류에 대한 반문화 등등)가 여전히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였다. 전적으로 게임 시장과 산업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었고, 그 누구도 성공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문법을 성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에서 게임은 '노동력' 외에는 별도의 자본과 설비가 필요하지 않은 산업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여지(벌어들이는 수익이 예측 불가한 점, 초창기 게임 제작자들이 돈보다도 열정으로 무장한 십자군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절하지 못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노동한 케이스들도 여기에 한 몫 할 것이다)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물가는 오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는 게임의 가격들, 점차 대규모화 산업화 되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을 산업적으로 재생산하는 프로세스가 확립되는 것, 마케팅을 통한 구매 계층의 저변이 점차 넓어지는 것, 무형의 에셋들이 재활용되는 구조를 취해 점차 '생산 수단'이자 '자본화' 되는 상황, 반문화적인 개발 방법과 문화가 점차 쇠퇴하고 조직과 구조가 확립되면서 점차 게임의 개발이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서는 점 등이 게임 산업을 점차 주류 문화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러면서 점차 게임의 수익구조, 즉 하부 구조가 게임의 상부 구조에 끼치는 영향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전통적인 게임 시장(콘솔/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지속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시즌패스와 DLC 자체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것이 패키지 게임이라는 구조 자체를 바꾸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법(완결된 게임으로 내야 한다는 것)을 무너뜨릴 수 없기에, 이러한 수익구조가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지양되는 일이긴 했다. 반대로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바일 게임의 경우, 게임의 수익구조를 만들어두고 거기에 상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재미와 시스템들을 쌓아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과 전통적인 게임 시장/제품과는 다른 재미 구조를 갖고 있다. 소녀전선의 예를 보자:보드게임과 진형을 바꾸어가는 실시간 전투 조작 등과 별개로 소녀전선은 칸코레로부터 이어지는 콜렉션 게임의 시스템과 가챠, 그리고 그 가챠를 뽑기 위해 투입되는 이중의 재화와 환전(실제 돈/노동력이 케릭터로 바뀌어지는 구조)을 자원 관리 및 자원을 벌어들이는 구조로 치환해서 만든 점은 새로운 재미 요소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가 과거의 재미와 1대1로 대응되는가의 부분에서는 회의적인데, 결국은 재화가 돌기 위한 구조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결제로 완결된 구조를 제공하는' 기존의 게임 시장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그 하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게임의 재미와 연결지어서 비평하는 것은 모바일 게임을 비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게임 비평에 있어서 상부 구조만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보통은 채택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 그러한 방법론을 취했다간 모바일 게임 구조를 반절밖에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이나, 문화적인 영역 등등), 모바일 게임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지어서 설명해야 기본적인 부분들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여신전생 시리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였으며, 수많은 파생작들을 통해서 노하우들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였다. 87년 처음 나온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을 시작으로 한 여신전생 시리즈는 이후 진여신전생 시리즈(슈퍼 패미콤에서 PS, 닌텐도 3DS까지)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아틀라스를 도산의 위기에서 살린 외전인 페르소나 시리즈(특히 3과 4)와 데빌 서머너 시리즈, 소울 해커즈, 파엠과의 콜라보인 환영이문록, 쿠즈노하 라이도우 시리즈 등등 여신전생 시리즈의 방계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은 지난 25년간 수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이 쌓은 노하우들은 서로 공유되고 전승되면서, 마치 시리즈 속 악마들이 강해지는 것처럼 시리즈의 완성도를 점차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한 시리즈의 노하우와 완성도가 정점에 달해 판매고라는 목표와 함께 맞물린 케이스가 바로 페르소나 3일 것이다. 페르소나 자체는 여신이문록으로 분류되며, 직접적으로 여신전생 시리즈와 맞닿아있진 않지만 악마 합체나 프레스 턴 시스템과 같은 여신전생 시리즈만의 시그니처 시스템들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여신전생 세계관의 일부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 학창생활과 커뮤니티를 통한 관계의 발전과 전투에의 영향, 이를 뒷받침하는 자잘한 시스템들이 맞물리면서 '이상적인 학창생활'을 구현함으로 여신전생 특유의 칙칙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탈피해서 대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되면서, 다른 작품들을 '방계'로 밀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는데, 정통의 계보라 할 수 있었던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3편 녹턴 매니악스 이후로 위자드리 스타일로 싸게 만드는 등(진여신전생 4편과 4 파이널, 스트레인지 저니 같은) 다소 찬 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서구권까지 포함해서 50만장 이상 ~ 100만장 미만으로 팔릴 때, 페르소나 4는 플2 황혼기에 나와서 거의 단독으로 200만장을 찍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진여신전생으로 여신전생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 일변도로 진행되는 여신전생 프랜차이즈의 상황은 딱히 좋지 않게 보였다.

진여신전생 5는 4 이후 근 10년 만에 나온 완전 신작이다. 특히나 진여신전생 4가 3에서 3D 폴리곤 형태로 악마를 묘사했던 것과 달리 위자드리와 같이 초상화 띄워놓고 효과만 그 위에 겹쳐놓는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3편과 유사한 느낌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환호했다. 물론 스위치 발매가 된 2017년 이후 첫 트레일러 공개가 되고 나서 아무런 소식없이 4년을 기다리긴 했지만, 2021년 11월 드디어 게임이 발매되면서 진여신전생 신작에 대한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전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가 집약되었고, 이전  시리즈의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모감도 존재하는 것이 진여신전생 5다. 하지만, 동시에 4년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진여신전생 5나 여신전생 시리즈는 고전적인 JRPG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공간은 던전과 마을로 이원화되어 있고, 던전 내에서 플레이어는  탐색을 하면서 던전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역경인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점차 강해지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던전에서 자원을 소비하는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을에 복귀하여 이를 보완하여야 한다. 고전적인 RPG에서는 육성이 보통 레벨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더 많은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 라는 식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여신전생의 시리즈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조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시스템인 '악마회화'와 '악마합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악마회화와 악마합체는 쉽게 이야기해서 플레이어의 동료가 '소모품이자 스킬을 계승하는 용도'의 악마가 되는 부분이다. 전투 시 레벨업을 통해서 더 강해지기 보다는 던전과 상황에 맞춰서 각각의 역할과 목적에 맞게 악마를 합체시키고, 악마를 합체시키기 위해서 전투중에 조우하는 적 악마들과 대화하고 교섭해서 이들을 동료로 끌어들여 합체 소재로 쓰든가, 아니면 레벨업을 시키고 스킬을 얻든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존의 RPG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는다.

진여신전생 5는 위와 같은 내용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몇몇 변화점을 추가한 작품이다. 5편의 큰 변화점들은 오픈맵, 심볼 인카운트, 던전 구성, 마가츠히 시스템들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묶여서 진여신전생 5편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완급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재밌는 게임이 된다. 다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진여신전생 5는 기본적으로 오픈 맵의 구성을 취한다. 기본적으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믹이 있는 던전과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이원화된 케이스였다. 그러나 진여신전생 5는 이를 바꿔서 오픈맵 형태로 변화시킨 것은 시리즈 최초다. 진여신전생 5의 필드를 오픈월드가 아닌 맵으로 표현한 것은 최근 자주 보여지는 오픈월드의 개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일단 게임의 규모 측면에서 트리플 A 게임이라고 분류할 수 없고, 오픈월드에서 보여지는 세계와의 상호작용 같은 요소나 자유로운 탐색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5편은 심볼 인카운터를 도입해서 '내가 원하는 때 싸울 수 있다/전투를 피할 수 있다' 라는 관점에서 편의성과 쾌적함을 추구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가 복층구성의 거대한 던전에 가깝다는 점이다. 반대편에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비교해보자. 야생의 숨결에서 하이룰은 거대한 세계이며,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원칙들을 게임의 규칙으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을 때도, 자원의 관리(스테미너)나 속력이나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야생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의 세계는 과거 던전의 형태에 가깝다. 점프하여 층을 옮길 수 있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긴 해도, 달리면서 점프를 할 필요가 없고,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점프를 하면 층을 바꿀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에서 맵은 작은 복수의 빌딩 던전이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고, 거기까지 도달하는데는 '단 하나의 정답 루트'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여신전생 5는 예산이 적게 들긴 했지만 기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와 폐허에 대한 기믹을 활용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오픈맵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던전맵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갈 것인가? 라고 고민하면서 맵을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최근 오픈월드 게임의 전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보면 다소 오해가 있을만한 디자인들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맵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게임을 플레이해야 게임 진행이 수월해진다.

전투, 레벨업, 육성 부분에서 진여신전생 5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점이 발생한 부분이다. 변경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여신전생 시리즈를 들여다 봐야 한다. 3편에서 프레스턴 시스템을 도입하여 "약점을 찔리면 죽는다"(약점을 찌르면 늘어나는 데미지+상대 턴이 늘어난다)라는 개념이 있어서 적이나 플레이어나 '한 대만'이라는 독특한 긴장감이 있는 작품이었다. 3편에서 4편으로 넘어오면서 내성, 무효, 반사 스킬들을 악마에게 계승하는 것이 쉬워져서 방어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쉬워진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중반 이후 급락하는 난이도를 후반에서 만능 속성으로 난이도를 재조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난이도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편의 프레스턴이나 전투에서의 숫자감각 등은 이후 많은 시리즈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스케일링 되는 수치나 악마 관리 육성 등의 감각 등은 페르소나 시리즈로 넘어와서도 공유되는 부분이다.

5편은 진여신전생 시리즈상 가장 잘 조율된 게임이다. 다양한 요소들에 세밀한 조정이 가해졌는데, 이러한 조정들이 어우러져서 기존의 여신전생 전투의 페러다임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5편에서 프레스 턴 시스템은 턴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작들과 동일하지만, 턴을 연장하기 위해서 3~4편과 달리 약점 이외에도 '크리티컬'이 중요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작품에서도 크리티컬이 프레스턴을 유발하긴 했지만 낮은 확률로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기에 어려웠다면, 5편에서 크리티컬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터지는 기술이나 속성과 물리 공격이 섞인 기술들, 더 나아가 관통물리나 필중 크리가 등장하는 등 물리 기술 폭이 증가하고 크리티컬을 운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곳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겼다. 

5편에서 크리티컬 요소를 강화하는 추가 요소로 "마가츠히"가 있다:마가츠히가 모이면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거나,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 마가츠히를 모아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 되는 요소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양쪽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말인 즉슨, 상대가 마가츠히를 발동하면 무조건 프레스턴이 발동된다는 것인데, 상성의 유불리를 떠나서 가드를 따로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프레스턴이 발동하기 때문에 5~10레벨 이상 플레이어가 들고 있어도 방심하다가 전멸당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가드를 더 적극적으로 섞고, 마가츠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프레스턴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공격 패턴(관통 능력 있는지 여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전투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아이템이나 스킬에서 일시적으로 방어를 강화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상당히 어울린다는 점이다. 물리 공격을 방어하는 물장석, 마법공격을 반사하는 마반경 등등의 아이템들이 있고, 추가적으로 스킬로 그러한 요소들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폭을 늘려주는데, 4편의 초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메두사와 5편의 초반 수문장인 히드라를 비교해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4편의 경우, 내성이나 무효 속성이 거의 없고 약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메두사가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다면, 5편의 경우 아이템인 물장석/화장석 같은 무효화 아이템만 재때 써주고 약점 찌르면서 프레스 턴만 벌어주면 어떻게든 클리어하는게 약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방어 상성 관점에서 유연성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방어 전략에서 유연성을 주고,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준비하게끔 만든다.

육성 관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악마 합체와 스킬전승, 내성 맞추기 등이 4편 기반이긴 하지만, 여기에 허물 시스템과 향이라는 아이템을 새로 추가하였는데 이것이 편해지는 요소와 불편해지는 요소로 동시에 적용되었다. 허물은 악마가 레벨업 할 때 일정 확률로 드롭하는 아이템인데, 주인공에게 스킬을 옮겨주는 용도뿐만 아니라 내성도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성 관리를 이전작들보다 더 수월해지게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허물 수급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내성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악마 육성에 능력치 없과 레벨업을 쉽게 할 수 있게끔 하는 향과 경전을 추가하고, 탐색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끔 하여서 악마 육성을 쉽게 해주는 부분이 생겼다.

전반적으로 진여신전생 5는 훌륭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로 완벽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다. 첫번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적인 RPG 구조는 던전과 마을의 이원화된 구조, 그리고 던전 내에서는 사냥과 탐색, 육성이 전투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사이클을 돌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진여신전생은 던전 내에서는 완벽한 사이클을 보여준다. 문제는 내리터브 사이클을 관장하는 마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진여신전생 5에서 플레이어는 폐허가 된 도쿄를 던전으로,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도쿄가 다른 한 축으로 구성되는데 게임의 모든 회복, 상점, 육성 등의 모든 요소들이 던전 내의 세이브 포인트인 용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을로 돌아갈 일이 없어지고, 내러티브를 진행할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약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덕분에 게임의 거대한 규모에 비해서 서사가 매우 짧게 느껴지는데, 5~6개의 챕터 구성으로 되어있고 도쿄를 거대한 폐허로 5분할 하는 야심찬 모습도 보여주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굵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게 고작 5개 정도라 맵 크기만큼 서사를 못채우는 문제가 있다.

물론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라인을 집중하여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진여신전생5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NPC가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진여신전생 시리즈들은 각각의 스토리라인(뉴트럴, 카오스, 로우)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 인물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특징이 있다. 진여신전생 4편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었는데,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대화선택지나 내용에 따라서 스토리 라인 분기가 갈리게 되고, 그 분기에는 일부의 진실만이 담겨있어 플레이어가 전체를 보고 싶으면 여러번 게임을 클리어해야 했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 5에서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성향이 갈려도 마지막 엔딩 전의 선택지에서 엔딩 분기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지를 돈내고 바꾸는게 가능한(!) 시리즈 사상 초유의 분기처리를 보여주었다. 결국은 플레이어의 성향이 게임에 잘 녹아들지 않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행위와 결과가 납득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초유의 선택을 보였다. 

결국 이것은 게임 자체가 미완의 스토리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게임 극후반부라 할 수 있는 지고천의 레벨 디자인이라던가, 스토리 전개, 레벨링 구조상 비어있는 부분(70~90 레벨링이 거의 불가능한)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진여신전생 5는 정말로 완급조절이 뛰어난 작품이고,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근 5년의 개발기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미완성된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는 분명히 있고, 플레이할만한 가치도 있다. 제노블레이드 2와 같은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미완성이긴 하지만 분명 꿀리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미완성된 부분들의 단점이 너무 크고, 장점이 너무 빛나기 때문에 그 단점이 더 눈에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 J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시도해볼만 하지만, 여신전생 시리즈 특성 상 완성판이 나올 수 있으니 그 완성판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게임 이야기

 

 

개인적으로 모바일 게임의 한계이자 가능성은 바로 조작 체계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게임의 생태계는 직관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터치 조작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터치 조작들은 스마트폰의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의 조작 체계를 어플의 목적에 맞게 일종의 에뮬레이션(emulatioan, 하드웨어적으로 수행되는 작업을 소프트웨어로 흉내내어 처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은 ‘하나의 기능’에 충실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기능들을 어플의 목적과 스마트폰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기 때문에, 전문화된 기기가 아닌 일종의 ‘유니버설’한 기기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스마트폰으로 걸음을 측정하는 만보계 어플들이나 캐시워크 같이 걸을 때마다 일정 재화를 충족하고 리워드를 받고 소비하는 어플들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만보계나 어플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들이 과연 ‘이들의 목적’ 하나만을 위한 것일까?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스마트폰의 만보계는 3축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 센서를 복합적으로 측정해서 해당 정보를 측정한다. 과거의 만보계들에 비해서 기술적으로 더 세련되고 복잡한 기술이 적용되었긴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스마트폰의 이러한 기술들은 기본적으로 ‘그 목적을 위해서 탑재되었다’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전문적인 기술 보다는 보편적인 기술이 적용되어서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물론 역으로 이러한 보편적이고 강화된 기능들, 위에서 예를 든 자이로 센서나 3축 가속도 센서 같은 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더 섬세하게 발전한 것들도 있다.

 

스마트폰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들이 스마트폰을 전제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에뮬레이션과 같은 일종의 ‘기술적 속임수’라고 보기 힘들 수 있다. 다만, 유달리 스마트폰에서도 에뮬레이션이라는 기술적인 속임수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직접 조작해서 플레이하는 모바일 게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DS 에뮬레이터 같은 어플 같은 것들이 ‘에뮬레이션’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발을 걸치고 있긴 하지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은 바로 게임 패드나 조작 콘트롤러를 터치 스크린의 형태로 옮겨 놓은 것들이 대표적 사례다. 즉, 게임패드와 같은 조작 체계를 스크린의 형태에 터치되는 버튼 형태로 구현해두고, 그 조작을 게임 내에서 에뮬레이션 함으로써 실제 콘솔/PC 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을 스마트폰 환경에서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조작하는 게임들의 상당수는 기술적으로 부합하진 않지만, 경험의 제공 측면에서 에뮬레이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의 한 축에는 콘솔이나 피씨에 원판 게임이 있고 크로스 플레이 형태로 구현되는 게임이 상당수이다: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포트나이트나 포켓몬 유나이트 같은 게임들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다른 접근이긴 하지만 ‘스마트폰과 기존 플랫폼과는 동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 없지만, 최대한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라는 전제로 접근하는 게임들도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와일드 리프트 같은 게임이 그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게임을 모바일에 맞게 튜닝을 하고, 그 튜닝의 핵심에 ‘조작 체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 조작하는 게임’들의 부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아무리 모바일 게임이 콘트롤러 그 자체를 에뮬레이션을 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그 조작 경험을 에뮬레이션 할 수 없다. 버튼을 눌러 발동한다라는 디지털적인 0과 1의 조작 체계조차도 물리적인 버튼이 있냐 없냐에 따라서 그대로 경험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가상 컨트롤러의 경험이다. 그리고 아날로그 스틱이나 트리거의 조작 같은 것은 구현하기 더 까다롭다:스틱을 살짝 당겨서 살금살금 걷는다던가, 혹은 트리거를 반 트리거만 당겨서 레이싱 게임에서 반 가속을 하게 만든다든가 등의 조작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패드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네 손가락 조작(왼손 엄지, 검지 / 오른손 엄지, 검지)과 달리, 스마트폰의 조작에서는 두 손가락 조작(양 엄지)만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자 제약사항이기도 하다. 손가락 4개에서 버튼의 조합(가령, 왼쪽 트리거 조준과 오른쪽 트리거 사격, 여기에 이동 조작과 카메라 조작을 함께 하는 것)으로 기존 체제에서 조작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두 손가락 조합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 조작의 가지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결국 모바일 게임에서는 기존 패드 조작 시스템과 달리 버튼의 수를 늘리거나 조작을 단순화시키는 접근 방법 말고는 위와 같은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놓은 해결방법(버튼의 수를 늘린다든가, 조작을 단순화시키든가)들 모두가 결국은 기존 게임의 에뮬레이션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조작을 단순화시킨다면(예를 들어, 페오엑과 그림던, 디아 3를 섞어놓은 모바일/PC 동시 출시 게임인 언디셈버 같은 게임이 그럴 것이다), 게임 자체가 기존 장르 같이 깔끔하고 정교하게 돌아간다기 보다는 상당히 무디고 둔탁하게 돌아간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렇다고 버튼의 수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화면에 버튼이 늘어날수록 폰의 화면을 가린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은 버튼이 늘어나게 되면서 화면이 난잡해지고 실제 게임을 하는 화면이 줄어들게 되면서 게임 플레이를 할 때의 판단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갤럭시 폴드 3는 직접 조작하는 게임의 문제를 정말로 간단하게 해결한다:폴드 3는 기존 화면에서 약 2배 가까이 넓은 스크린을 제공하면서 버튼을 많이 배치하여도 실제 게임 화면을 손가락이 가리거나 하는 등의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폴드 3에서 플레이하는 배틀그라운드 뉴 스테이츠의 예를 보자:실제로 패드와 키보드 조작에서 사용되는 많은 버튼들이 개별로 배치되어 있지만, 화면이 커진 덕분에 실제 게임을 하는 영역을 많이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버튼 크기를 확보해서 조작성과 가시성 양쪽을 잡아내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기존 배틀그라운드의 조작감을 그대로 이어받는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동조작 없이 이정도면 큰 불편함 없이 기존 게임에 비슷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온 셈이다.

 

폴드 3가 보여준 것은 ‘큰 화면 스마트폰’이 보여준 모바일 게임의 가능성이다:예전에 비해서 스마트폰의 액정은 점점 커지고 있고, 큰 화면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해왔었다. 노트북과 폰 사이에 태블릿이라는 새로운 기기 영역이 개척된 것도 그러하다. 무게라는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조작할 수 있는 화면이 커짐으로 모바일 게임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은 더 커진 셈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조작 방법론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더 큰 화면의 스마트폰이 여는 가능성이란 ‘자동조작이나 둔탁한 조작이 아닌 콘솔이나 피씨에 가까워지는 가상 패드 조작과 게이밍의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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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뭐라고 불렀소? 하워드?
- 아뇨,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고...
  아내가 아닌 여자가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아요
  제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제 아내도 아니죠
  제 아내가 아닌 약혼자는 스티브라고 부르지 않고...
  하워드라고 부르죠 아시겠어요?

- What's Up Doc?, 1972

하워드 혹스의 걸작 코미디 베이비 길들이기는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광기넘치는 코미디 영화다:범생이 샌님이 지금식으로 이야기하면 천연계라 할 수 있는 여자의 페이스에 휩쓸려서 자신이 원치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베이비 길들이기는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서는 코미디의 장르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분류된다. 베이비 길들이기의 전위성은 각본과 펀치라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계속해서 휘몰아친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휘몰아치는 대사와 상황이 물흐르듯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베이비 길들이기는 각본이 대단히 훌륭하게 짜여진 작품이다.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코미디의 핵심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이어지는 것'에 있다. 우선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베이비는 길들여진 '표범'의 이름이다. 시작부터 길들여진 애완동물과 표범이라는 두가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코미디 컨셉은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생기는 오해와 어색함에서 생기는 웃음에 기반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높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들(권위 있는 존재나 존경 받는 존재 같은)이 낮은 위치로 떨어지는 수직적인 낙차에서 발생되는 웃음이 아닌 대등한 위치에 놓여있거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짓는 것인데, 영화는 서로 맞지 않는 어색한 것들의 연결을 넘어서 상반된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까지 능숙하게 연결 짓고, 속도감 있게 다루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이것을 속도감 있게 재현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관계대명사이다. 이것과 저것, 그것으로 구성되어있는 관계 대명사는 사물의 실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발화자의 거리에 따라서 발화 대상을 편리하게 부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베이비 길들이기는 대화하는 쌍방의 상황이 전혀 다르고 그 거리와 지칭 대상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연속해서 설정함으로 능숙하게 오해를 살만한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의 중간에 살인 표범과 애완용 표범이 둘이 동시에 등장해서 서로 오해를 사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서 여주인공이 살인 표범을 베이비라 착각하고 실제 포획해서 경찰서로 끌고 들어오는 장면 등은 영화 내내 오해에 오해를 쌓아올리며 만들어낸 훌륭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 속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샌님 같은 남주인공과 자유로운 여주인공이다:베이비 길들이기에서는 건장한 이미지인 캐리 그랜트가 지적인 남주인공 박사의 이미지를 연기하였는데, 이러한 불균형한 모습과 함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에서 영화가 유지하는 '오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의 맥락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남주인공이 그런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자칫 무례하거나 폭력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선을 유지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대척되어 온갖 광기와 카오스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맡는데, 남주인공과 상극인 여주인공은 상극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이 상극이 자석의 S와 N극 처럼 들러붙는 과정을 쉴세없이 주고받는 펀치 라인의 빠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서 성립한다.

 

그리고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왓츠 업 닥은 베이비 길들이기의 리메이크 작이다. 리메이크 작인만큼 큰 개념이나 매력적인 부분들을 따오기는 했지만, 흥미롭게도 왓츠 업 닥은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부분과 새로운 장르적 특성들을 함께 녹여낸 작품이었기에 리메이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왓츠 업 닥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작품 자체가 워너브라더스에서 만든 1930년부터 만들어온 단편 만화영화인 '루니 툰'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애시당초에 제목 자체가 루니 툰의 간판 케릭터인 벅스 버니의 입 버릇(뭔 일이쇼What's Up, Doc?)에서 따온 제목인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주인공인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이미지가 묘하게 롤라 버니를 연상케 한다는 점, 극 중 내에 오마주 형태로 루니툰이 영상이 들어갔다는 점들이 그러하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베이비 길들이기 보다 좀 더 '포괄적'이라 할 수 있는데, 루니 툰은 1920~30년대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막스 브라더스가 출연했던 고전 코미디 영화에 베이스를 두고 있고 이 스타일은 단순히 관계 대명사의 오해 외에도 다양한 코미디 요소들을 섞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브라더스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상식이 상식처럼 묘사되는 점이나 강박적으로 어떤 행동 하나에 집착하여서 영화 속 인물들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나 상대 케릭터를 능숙하게 엿먹이는 각본과 펀치라인 등은 전반적으로 막스 브라더스의 코미디 영화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강박적으로 하나의 상황에 집착하는 모습은 루니 툰과 베이비 길들이기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긴 하고, 왓츠 업 닥에서는 양쪽의 전통과 특징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왓츠 업 닥이 리메이크를 하면서 베이비 길들이기와 달라진 점은 크게 두가지다:첫번째는 과격해진 슬랩스틱과 스턴트들이다. 베이비 길들이기가 30년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슬랩스틱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왓츠 업 닥은 루니 툰이 197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보여준 과격한 슬랩스틱이나 액션 장면들을 영화에 두 장면으로 녹여내는데, 첫번째는 리셉션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련의 슬랩스틱들, 그리고 두번째는 대단원에서 서로가 원하는 가방을 쫒아 추격전을 벌이는 슬랩스틱 시퀸스가 있다. 무심하게 컷을 잡고 그 속에서 과격한 슬랩스틱을 이어가는 과정은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특징과 루니툰의 특징이 함께 들어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성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기존의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왓츠 업 닥은 성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게 보여주는데,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목욕 장면이나 피아노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하는 등은 시대가 변화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베이비 길들이기와 다르게 여주인공이 성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를 함으로 단순히 말괄량이나 천연임을 넘어서 그것이 성적인 에너지와 자유분방함,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시대의 인물형(다양한 학문을 전공하면서 박학다식한 모습을 보여주는)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왓츠 업 닥은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선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원작의 쉴세없는 상황 변화와 펀치라인을 유지하면서, 변화한 시대상과 영화가 발전하면서 쌓아올려진 장르적 특징들, 무엇보다도 그것을 하나로 통제하고 자신의 색체를 넣는 감독의 능력까지 모두가 반영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면 양쪽 모두 함께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미니어처 모델에 색을 올리는 도색을 한 2년이라는 기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도색이라는 취미는 평화로운 취미다:작은 미니어처 위에 한 땀 한 땀 붓질로 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심적인 평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역으로 이야기하면, 색깔이 바깥으로 삐져나가면 상당히 심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색은 하나의 대상에 천천히 집중하여 반복되는 동작으로 단조로운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단조로운 리듬을 정신과 몸에 천천히 새기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날선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집중, 단조로운 리듬, 그리고 그것의 반복은 도색이라는 취미를 마음을 가라앉히는 취미로 만들게 된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도색이라는 취미는 대단히 어려운 취미로 보일 수 있긴 하지만, 도색하는 미니어처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색의 분할을 상정하고 디자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할된 색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미니어처들의 디자인들은 도색을 하는 사람의 지식과 욕심만큼이나 더 세부적으로 디테일을 올릴 수 있다. GW의 미니어처들을 예로 들어보자:스페이스 마린의 경우, 간단하게 도색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단색으로 색을 모두 올린 뒤 몇몇 디테일들에 대해서만 다른 색을 써도 된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각각 장갑 패널마다 빛나는 부분에 대해 반사되는 빛 묘사를 하는(흔히 도색판에서 이야기하는 Non Metalic Metal, 즉 금속색의 도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일반 도료로 묘사를 하는 것) 것으로 묘사할 수 있는데 단색 아머 패널 하나만으로도 거의 6개 이상의 도료를 쓸 수 있다.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도색을 취미로 삼은 사람들에게 두가지 덕목이 요구된다:하나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테크닉과 색에 대한 탐구열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도색이라는 취미는 도색을 하는 사람의 자율이 중요한 취미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방법을 찾아가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끈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면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도색은 일종의 수양의 취미다. 스스로 가다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집중과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모든 취미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과정' 역시 중요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색이라는 취미는 거의 모든 것이 DIY의 영역이기 때문에 결과를 향한 과정이 더 부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모델들이 비싸고, 시간이 많이 들고, 본 궤도에 오르기 까지 인내심과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찾고 번잡한 자신을 잊고자 하는 취미를 찾는다면 도색도 괜찮은 취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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