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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http://leviathan.tistory.com/1681)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임무 수행 도중 약 30년 전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고 충격적으로 출산의 흔적까지 찾아낸다. 리플리컨트가 출산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되므로 이를 덮으려는 경찰 조직과, 그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 더욱 완벽한 리플리컨트를 거느리고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K’를 쫓는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리플리컨트의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수록 점차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K’는 과거 블레이드 러너였던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만나 전혀 상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는 진짜와 가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안드로이드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을 무엇이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주요한 능력으로 설정한 점, 가짜 양이 아닌 진짜 양을 사고 싶은 데커드의 고뇌와 피로, 마지막으로 일련의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서 약간이나마 희망 섞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 등을 통해 소설은 철저한 논리적인 흐름과 과학적 가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소설의 핵심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감정의 이입'과도 같은 모호한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필립 K 딕은 이러한 모호성을 통해 진짜와 거짓이 구분이 점점 힘들어지는 산업 문명과 도회적인 고독과 우울감 등을 한 데 어우러놓았으며, 수많은 SF 소설 팬들을 매료시킨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은 리들리 스콧이 위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이 소설을 잘 읽지 않고 원작을 각색하여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점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가 자신의 창작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피로에 찌든 배나온 중년 데커드가 헐리웃 액션 배우인 해리슨 포드로 변하는 등 블레이드 러너는 원작을 모두 뜯어고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의 핵심은 여전히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의 모호성,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에서는 그것이 점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피로감을 독특한 문체로 풀어냈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철저하게 상징의 시각화와 모호한 상징 네트워크에 구성하여 기반하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흥행 대참패로 이끌었지만, 영화사에 길이 남는 SF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여전히 구작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강렬한 이미지들과 상징의 느슨한 네트워크, 그리고 일반적인 장르 영화의 전개와는 다른 비정형적인 전개들까지. 좋게 이야기하면 개성이 넘치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대중들에게 먹힐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데에 가장 적격은 바로 드니 빌뇌브이다:드니 빌뇌브는 일반적인 영화 시놉시스들을 미장센과 프레임, 비주얼을 이용해 한바퀴 꼬아놓는데 재능이 있으며,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그 재능은 어느정도 발휘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드니 빌뇌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이 십분 발휘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독창적인 재해석들과 이미지들이 원작에 사로잡혀 희석되었다는 느낌이다.


1982년 블레이드 러너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가 우리에게 약속한 미래는 추적거리는 중금속 산성비와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퇴폐적인 네온사인들, 그러한 암울한 세계에 바벨탑처럼 위압적으로 서있는 마천루였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드니 빌뇌브는 우리에게 자연물이 모두 죽어버린 인공물의 미래를 약속한다. 오프닝 시퀸스의 광활하게 펼처진 합성농장들의 유리 온실들,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들과 퇴폐적인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도시, 도시 너머의 쓰레기장들 등등 영화는 자연물의 존재를 완벽하게 배제한다. 그리고 이 인공물의 이미지들 속에서 자연은 죽었거나(사퍼의 집 앞에 놓여있는 하얗게 고사한 나무, 닳고 닳아버린 목마 인형) 허구(스텔린의 기억 제작소 시퀸스 같이)에 불과하다.


이런 철저한 인공물의 세계는 원작 소설과 전작의 테마인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진짜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전작이 시각적 상징을 통해서 데커드가 인간인지 자체에 의문을 갖게끔 만드는 등 서사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면, 2049는 영화 내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며 서사의 모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2049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압도적인 인공의 풍경이다:영화는 거대한 인공의 풍광 속에서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다. 기하학적이고 압도적인 도시 건물들에서부터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폐허와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라져버린 호텔까지, 영화의 모든 이미지들은 피로감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2049의 등장인물들 모두 어딘가 피로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이미 자신을 둘러싼 풍광에 압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49는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보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전작이 오프닝 시퀸스에서 눈이 등장하거나 타이렐의 안경(나중에 로이는 타이렐의 눈을 엄지로 터뜨린다), 데커드가 레이첼을 테스트할 때 스크린을 통해서 바라본다던가, 인간과 합성인간을 구분하는 보이그트 캄프 시험이 동공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 등등에서 무언가를 본다라는 시각적 인지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산업 문명과 매스 미디어의 등장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다채롭고 화려한 시각 자극을 대중에게 선사해왔기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닌 '스크린'이나 '안경'을 통해서 거쳐서 보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인공성에 전작은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2049의 보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는 전작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부분도 있지만(월레스 비서인 합성인간 러브가 드론을 조종하는 안경으로 K를 보는 점, 월레스의 드론 의안, 거실에 놓여있는 K의 책상 위치-창문을 바라보는 등등) 전작에 비해서 더 나아간 부분도 있다:K의 가상 연인은 조이의 경우, 홀로그램으로써 반투명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반투명함이 그녀를 인지하는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실제의 것의 아니라는) 만든다. K는 조이를 사랑하나, 동시에 홀로그램이라는 이 '반투명함'(실제하되, 실제하지 아니한다)이 영화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모호'의 영역으로 이끈다. 또다른 모호의 이미지는 물을 통해 반사되는 빛과 어둠의 일렁거림이다:월레스의 집무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빛의 반사가 아닌 빛과 어둠의 교차하는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서부터 2049는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전작의 레이첼은 데커드와 관계하여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경찰국장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경이며,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왜냐면 진짜와 거짓은 분명하게도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돌하게도 2049는 바로 이 진짜와 거짓을 섞어버리고, 그 혼합에서 무언가 새로운 진짜와 희망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K는 프로그래밍 된 대로 행동할 뿐인 가상 연인 조이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짜라 할 수 있을까, K가 가진 주입된 기억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들은 과연 거짓이었을까, 합성인간과 인간이 사랑하여 낳은 자식은 과연 거짓일까. 진짜와 거짓의 이분법이 아닌 진짜와 거짓이 섞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2049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기억이 존재한다:영화는 본다는 행위와 함께 기억과 기록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스텔린 박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억의 핵심은 불분명하며 흐릿하고 뒤섞여있다는 점이다. 대정전으로 모든 데이터들이 유실되었을 때, 구세대적이고 불분명한 아카이브는 남아서 후세에 기록을 전파한다. 기억이 단순히 과거 사실의 인지 그 이상을 넘어서 시간에 의한 필연적인 소멸에 저항하고 흐름을 거스르는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기억이 설령 K에게 주입된 것이라 하더라도, K는 그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진짜 데커드의 딸이 누구인지를 추론해내게 된다. 그것이 설령 거짓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K는 거기서 감정을 이입하여 무언가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에 자신만의 야심을 섞어서 만든 훌륭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전작이 그랬듯이 2049 역시도 이미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있는 작품이며, 감상자의 능동적인 해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2049는 전작을 너무 충실하게 따른 나머지 방대하고 느슨한 서사를 만들어버렸다. 장르 영화적인 몰입이 전혀 없고 도시의 살인적이고도 위압적인 풍광 아래서 관객마저도 같이 신음하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또한 전작에 많은 부분을 답습한 나머지, 이미지들이 너무 방대하게 퍼져있다는 것도 문제다. 만약 기억과 진실-거짓의 관계에 대해서 조명하고자 했다면, 차라리 전작에서의 이미지들(특히 쓸데가 하나도 없었던 리들리 스콧 특유의 종교적인 이미지들)을 대거 처내고 거기에 초점을 맞췄으면 훨씬 괜찮았으리라 본다.


결론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블레이드 러너 전작의 완벽한 재림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좋아할 것이다. 문제는 블레이드 러너가 세기말과 디스토피아적 세계, 모호함에 대한 이미지로 재평가 받을 여지가 있었다면 2049에게는 그런 재평가 기회가 존재하지 않을 거란 점이다. 거기에 건질 것이 충분히 많이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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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어렸을 적 자주하였던 가위 바위 보에는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게임 시스템이 내포되어 있다:가위는 보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긴다. 서로 맞물리는 상성을 통해서 하나가 완벽하게 게임을 지배할 수 없는 팽팽하게 맞물린 긴장 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변덕스러운 확률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위 바위 보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상대가 과거에 선택했던 선택지를 두고 무엇이 앞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추론하고 자신의 선택을 수정해나간다. 이 선택 수정의 과정을 통해서, 게임은 단순하지만 일종의 심리전 형태를 띄게 된다. 가위 바위 보의 메카니즘은 이미 수많은 게임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으며, 특히 대전액션의 경우에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가 타격 - 홀드 - 잡기 형태의 가위 바위 보 상성을 완벽하게 재현한 적도 있다. 혹자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가 '초보랑 싸우면 어떤 선택지를 꺼낼지 몰라 무서운 게임'이라고도 평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콤보 도중에 상대의 콤보를 끊고 서로 주고 받는 공방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반다이 남코와 닌텐도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격투 게임인 폭권의 확장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은 철권 프랜차이즈와 포켓몬 프랜차이즈의 융합을 다루고 있다. 혹자는 과거 나왔었던 포켓몬 스타디움의 계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포켓몬 스타디움 자체가 정진정명한 3D RPG 쪽에 가까웠단 것을 생각한다면 대전 액션의 장르적 양태를 빌어 포켓몬 게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최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철권스러운 부분은 모션 부분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오히려 폭권 기존 대전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페이즈 전환이라는 시스템과 가위 바위 보 상성 시스템을 깔아둠으로써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을 만들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가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를 포켓몬 배틀의 감각을 그대로 대전액션 게임으로 채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폭권 토너먼트 공방의 핵심은 가위 바위 보처럼 서로 맞물리는 공격-카운터 공격-잡기의 상성관계다.(기존 포켓몬의 속성간 상성은 폭권에선 100% 배제되었다) 공격은 잡기를 이기고, 카운터 공격은 공격을 이기며, 잡기는 카운터 공격을 이긴다. 이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의 타격 - 홀드 - 잡기의 상성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공격간의 상성은 유사하더라도 실제 게임에서 구현되는 공격간의 상성은 완벽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의 공격간 상성은 공방 중에 끊임없이 오가는 선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상대에게 두드려 맞는 중에도 플레이어는 홀드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에 상/중단을 홀드할 것인지 아니면 하단을 홀드할 것인지를 결정하여 역습을 펼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한번의 콤보로 출혈을 강제하기 보다는 공방 양측 모두 콤보 도중 선택지를 고르는 심리전이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폭권 토너먼트의 경우는 콤보 루트가 고정되어 있고, 공격 당하는 중에는 끝까지 공격을 맞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오히려 콤보 도중에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하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와 다르게, 폭권의 경우에는 처음 서로 선택지를 골라서 공격을 주고받는 한 합에서 공격 양상이 결정된다. 즉, 폭권 토너먼트는 가위 바위 보 한판으로 다음 흐름이 결정되는 형태라면,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공방 중에도 끊임없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게임 양태를 결정하는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누군가 폭권 토너먼트를 가리켜 생각외로 턴제 액션 게임 같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했다:게임은 상대의 선택지를 잘 살펴보고 선택지 3개 중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두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기상공방 때 두드러지는데, 기존의 게임들이 기상 무적시간+기술의 무적시간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기상할 수 있는가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눈치 게임이었다면, 폭권 토너먼트에서는 그 기상공방으로부터 새로운 한 합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기상 공방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대신에 게임은 이러한 3지 선다형 공방에 모든 초점이 맞을 수 있도록 게임 전반을 간소화 시켰다:폭권 토너먼트가 국내에서 상당한 악평(?)을 듣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버튼 대충 몇개 누르면 콤보가 다 이어진다'라는 것인데, 실제로 폭권에서는 풍신/파동권 같은 방향키 커멘드 없이 한 방향 버튼과 공격 버튼 조합으로 자동 콤보가 구성되거나 기술이 나가는 포케 콤보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안그래도 콤보에 맞는 도중 중간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임에서 게임을 단조롭게 만든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것처럼 보이지만, 폭권 토너먼트는 여기에 포켓몬 무브 캔슬과 서포트 시스템, 각 케릭터 간의 극명한 개성을 부여함으로써 게임의 공격 시스템을 단조롭게 만드는 걸 피한다. 우선, 포켓몬 무브 캔슬에 대해서 보자:모든 포케 콤보는 콤보 도중에 포켓몬 무브라는 기술(A 버튼)을 통해 캔슬할 수 있다. 이 포켓몬 무브 캔슬은 콤보 도중 자유롭게 캔슬가능(예를 들어, YYYY 포케콤보의 경우, 마지막 Y를 제외하면 1~3단 공격 중 언제라도 A버튼 또는 방향키 A 버튼 조합을 눌러 캔슬할 수 있다)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대폭 늘려준다.


또한 각 포켓몬의 뚜렷한 개성도 게임을 깊이있게 만드는데 한몫한다. 게임에는 총 스탠다드, 테크니컬, 파워형의 3가지 포켓몬이 존재하며 이 포켓몬들은 체력과 시너지 게이지가 모이는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스펙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각 포켓몬들은 무브셋이나 강점/약점이 뚜렷하게 정해져있다:예를 들어 나무킹의 경우, 빠른 속도와 함께 씨앗을 필드에 심어서 상대를 압박하는 고속 설치형 포켓몬이며, 다크라이의 경우 설치형 케릭터 다운 운영과 함께 상대를 암흑 차원으로 끌어들여 전반적인 콤보와 데미지를 늘리는 버프효과를 부여하는 트리키한 포켓몬이다. 기본적인 올라운더형 케릭터인 루카리오를 제외하면 동일한 무브셋이나 운영 방법을 가진 포켓몬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데, 심지어 루카리오와 가장 비슷한 올라운더형 포켓몬인 번치코 조차도 상대가 맞지 않으면 자기 체력을 깎아먹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전투 방식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단순히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의 문제뿐만 아니라 큰 관점에서 게임 운영도 포켓몬의 선택에서 달라진다.


여기에 폭권은 서포트 포켓몬 시스템을 집어넣는다:서포트 포켓몬 자체는 이미 과거의 킹오파나 여타 게임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스트라이커 개념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서포트 게이지를 채우고, 자신이 필요할 때 이들을 부를 수 있는데 단순히 견제용에서부터 콤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용도, 체력 회복, 디버프, 심지어는 더블 점프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누리공) 서포트 포켓몬까지 게임 전개를 다채롭게 하는 양념 구실을 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폭권 토너먼트는 3가지 선택지를 두고 공방이 진행되는, 조작이 단순하지만 케릭터 마다 깊이가 있는 좀 특이한(?) 격투 게임 1 정도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폭권 토너먼트를 포켓몬 배틀을 재현하는 독특한 게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그것은 바로 페이즈 전환이다. 위에 글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폭권 토너먼트는 한 합에서 이길 때마다 그 합의 승리자가 가하는 데미지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근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콤보가 이어질수록 그 콤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안전 장치를 마련해두는 경우가 많다:네더렐름 게임에서는 필살기 게이지를 일부 소비하여 콤보를 탈출 할 수 있는 콤보 브레이커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길티기어나 블레이블루 같은 게임에서도 사이크 버스트로 상대의 콤보 도중 이를 밀쳐내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폭권 토너먼트에도 이러한 기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폭권 토너먼트은 콤보 도중 상대를 밀처내는 전술적인 부분이 아닌 페이즈 전환이라는 큰 흐름의 '전략'에서 플레이어가 운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폭권 토너먼트에는 두가지 페이즈가 존재한다:첫번째는 3차원의 필드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필드 페이즈와 두번째는 기존 대전 격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2차원 평면의 1:1 대결 구도이다. 각각의 페이즈는 일정 데미지를 상대에게 주는 것으로 조건이 되어 전환이 발생한다. 필드 페이즈에서 듀얼 페이즈로 이행될 때 페이즈 전환을 일으킨 게이머는 깎여나간 자신의 체력 중 일정량을 회복한다. 그리고 주로 데미지 누적이 발생하는 페이즈는 듀얼 페이즈다. 개괄만 접해놓고 보았을 때, 페이즈 전환과 페이즈 시스템의 존재는 비직관적이다:어째서 탄막 액션이 일어나는 필드 페이즈와 근접 격투가 주가 되는 듀얼 페이즈가 하나로 섞일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보았을 때, 이 페이즈 시스템은 왜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대한 사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페이즈 시스템의 핵심은 게임의 흐름을 강제로 조절함으로써 게임 플레이 흐름 전반을 안배하는 용도이며, 이는 시스템 개괄을 흩어봤을 때보다 실제 체감할 때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페이즈 시스템에서 중요한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첫번째 일정 데미지를 받을 때 페이즈가 전환된다, 두번째 필드 페이즈에서 듀얼 페이즈로 이행할 때 일정 체력을 회복한다. 첫번째는 게임이 데미지를 많이 주는 콤보에 의해서 한번에 게임이 역전되거나 밀리는 상황을 방지한다. 듀얼 페이즈 때 게이머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대 데미지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화려한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상대 공격을 읽고 흐름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콤보라도, 이미 상대가 데미지가 누적된 상태라면 콤보 도중에 튕겨나가면서 강제로 페이즈가 전환되기 때문에 효율을 100%로 이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듀얼 페이즈 이행 시 체력을 일정량 회복하는 것은 게임을 한쪽의 압승이 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아무리 데미지를 많이 주는 듀얼 페이즈에서 밀리더라도, 필드 페이즈에서 착실하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페이즈 전환을 유도하면 역전을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이 플레이어의 계산 아래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며, 약간의 체력회복+상대의 체력 손실+상성 간 우위를 점한 한 합으로 인해서 극적인 역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모든 시스템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폭권 토너먼트는 매번 어떤 선택지를 꺼낼 것인지라는 전술적인 선택과 페이즈 조절 및 체력 관리라는 전략적인 측면 양측 모두에서 매력적인 강점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특히 폭권 토너먼트의 페이즈 시스템은 여타 상성과 게임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게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필드 페이즈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상대를 견제할 수 있으며, 듀얼 페이즈에서는 화려하지만 간단한 콤보와 3지 선다의 공방이 게임을 한쪽의 우위로 이끌지 않게끔 하고 있다. 처음 보기에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폭권 토너먼트는 모든 게임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으며 게임이 3지 선다 공방에 초점을 맞춰져 있기에 초보나 격투 게임 피지컬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여지가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폭권 토너먼트 자체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티가 난다는 점이다:게임 내의 그래픽 디테일은 필드와 포켓몬을 제외하면 극단적으로 낮춰져 있으며 배경의 둥실둥실 떠다니는 사람 텍스처와 모션을 보면 10년전 그래픽들이 떠올라 할 말이 없어질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컨텐츠의 문제다:게임은 분명 잘 만들어졌지만, 그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극히 단순하다. 폭권 토너먼트 원판에서는 1:1 대전 이외에 다른 게임 플레이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디럭스로 오면서 3:3 팀 매치가 추가되기는 하였지만 1:1 매칭에서 크게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디럭스로 넘어오면서 모든 케릭터는 언락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 덕분에 내용이 하나도 없는 스토리 모드나 왜 있는지 모르는 데일리 첼린지 모드를 게이머가 플레이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남은 것은 플레이어 아바타 옷과 멘트를 꾸미는 정도인데, 그 커스터마이즈 폭이 좁고 일러스트 위에 일러스트를 덧입히는 형태로 수집욕이 하나도 안생긴다.


그나마 디럭스로 넘어오면서 좋아진 점은 하나의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1:1 매칭을 지원한다는 점이다:기존의 위유 버전 폭권 토너먼트에서는 로컬 대전의 경우, 프로콘과 위유 패드를 나누어서 한 사람은 위유 패드로, 다른 사람은 TV 스크린을 보면서 플레이해야하는 귀찮은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히지만,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에서는 테이블/TV 모드/무선 통신/온라인 모드 모두 게임을 지원하며, 특히 조작 자체가 단순하다 보니 조이콘 한쪽으로도 충분히 조작가능한 점은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로컬 게임의 경우 분할 스크린보다는 한 스크린에서 두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점은 게임 플레이 시 숙지되어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첫 보기에는 좀 괴상한 물건이긴 하지만, 게임 자체의 흐름은 탄탄하게 잡혀있다고 할 수 있다. 턴제 포켓몬 배틀을 대전 격투 게임으로 훌륭하게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전 격투 게임 자체로도 보았을 때 그 깊이가 있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람과 1:1 대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며, 암즈에서도 아쉽다고 느껴진 컨텐츠 분량 부분이 몇 배로 더 아쉬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매칭하는 것을 즐긴다면 폭권 토너먼트 디럭스는 훌륭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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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초창기 게임 매거진 칼럼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당신은 이 글을 당신의 어깨 뒤에서 읽고 있습니까? 라는 글이 있었다. 이 칼럼에서 필자는 당시 맥스 페인 등의 3인칭 슈터 게임들의 카메라 시점에 대해서 다루는 칼럼이었다. 3인칭 시점이라는 개념 자체는 게임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은 아닌데, 소설에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용어가 있었고 영화는 프레임을 잡는 카메라가 인물의 시점에서는 떨어져있는 제 3의 위치에 배치되었다. 여기서 제 3의 위치란, 실제로 그 사건을 경험하는 자신(1인칭)과 그 당사자(2인칭)과는 다른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이 3인칭 시점을 많이 사용한 데에는 몇몇 이유가 있겠지만, 대중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의 레벨디자인과 영화적 스펙타클 양쪽 모두를 고려한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총을 쏘는 경험과 레벨 디자인을 하는 경험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는 것은 외부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3인칭 시점이다. 또한 영화적 스펙타클을 즐기기 위한 구도로써 영화와 비슷한 시점을 적용하는 이유도 있다. 초창기 게임들이 외부의 고정되어있는 곳에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전체 미장센과 스테이지 구도를 보여주는 형태가 많았지만(예를 들어, 타임 코만도라던가), 언차티드 같이 연출 기법이 발달하고 슈팅 매카니즘과 레벨 디자인, 그리고 몰입감을 살리기 위해 3인칭 시점이라도 케릭터의 어깨 뒤에 딱 달라붙는 숄더뷰 방식이 흥하고 있다.


하지만 헬블레이드는 독특하게도 2인칭 관찰자 시점을 적용한다. 물론 게임 기법상으로는 3인칭 시점과 그에 걸맞는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헬블레이드는 2인칭 관찰자 시점이며, 플레이어의 시선은 세누아의 동반자인 '게임 내의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게이머는 게임 내에 실존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세누아의 머릿속에 있는 환상이자 세누아와 동일한 인지 세계를 일부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2인칭 관찰자 시점은 헬블레이드의 분위기를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주는데, 세누아가 때로는 게이머의 존재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스크린 너머의 인물에게 종종 공허한 눈길로 눈을 맞추는 세누아의 모습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러한 헬블레이드의 특징은 게임을 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데드 스페이스나 이블 위딘에서 죽음은 하나의 스펙타클로 소비된다. 그러나 헬블레이드에서 세누아의 고통과 믿음은 게이머의 것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3인칭 액션 게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은 이들을 여행의 참가자로 포함하여 고통을 받는 당사자는 아니되 그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이해할 수 있는 위치를 만든다. 그리고 게이머가 세누아를 조작하는 행위는 게이머가 직간접적으로 이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는 인상응 부여하는데, 이러한 헬블레이드의 특징은 여타 소설이나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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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리뷰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조셉 켐벨은 일찍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써서 영웅 신화의 인간의 삶에 있어서 통과 의례 및 미시사들이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다룬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http://leviathan.tistory.com/883 이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이 책에서 조셉 켐벨은 영웅 신화의 모티브들은 사람이 겪는 인생의 고비들과 승리/실패에 기반하고 있으며, 현대에는 영웅 신화의 모티브를 대중문화가 이어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는 오랜 세월 내려왔던 영웅 신화는 인간의 기저 심리를 대변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조셉 켐벨의 관점을 빌린다면 신화의 역할을 이어받은 대중문화는 현대 대중의 욕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가장 젊은 대중문화이자 새로운 매체로써 영화, 소설 등이 걸어왔던 길을 벤치마킹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헤일로는 1~3편을 통해서 전통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4~5편을 통해서 영웅의 기원과 무거운 숙명에 다루었고, 스펙옵스 : 더 라인은 게임이라는 매체만의 특징으로 영웅 신화의 추악하고 어두운 전제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게임 역시도 영웅과 신화라는 갈래의 끄트머리에서 그들의 맥락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인류 문화의 한 줄기다.


그리고 헬블레이드는 그러한 신화의 끄트머리에서 여타 게임이나 대중문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죽은 남편을 되살리기 위해서 지옥으로 떠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헬블레이드는 닌자 씨어리가 야심차게 독자 개발 및 배급까지 맡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세누아가 남편을 잃고 그 죄책감에 환청을 듣는다는 설정을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면서부터 이 게임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진다:실제 사람들이 겪는 정신증과 환청, 환각, 강박증 등등의 경험을 게임에 직접적으로 이식하고 게임 서사의 주요한 축으로 설정함으로써 헬블레이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족적을 남겼다. 


헬블레이드는 액션 게임이라기 보다는 워킹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게임이다:전투나 퍼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비중이 적고(물론 여타 워킹 시뮬레이션에 비교하면 게임으로서의 모양새는 갖추긴 했다), 게이머는 세누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즐기는 쪽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심도있게 파고들어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헬블레이드를 게임 장르로써 미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헬블레이드는 장르로써 게임이 지녀야 하는 본질에 충실하다. 이는 게임이란 행위가 중요한 매체이긴 하지만, 여타 대중문화 장르나 매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하나가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경험'이다:게이머는 게임 내의 케릭터와 감각과 입장, 그리고 믿음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영화나 소설이 아무리 잘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감상자와 스크린 내부의 인물이 스크린이라는 물리적이고도 절대적인 장벽으로 가로막혀있어 완벽한 일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특징은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의 속성을 헬블레이드는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예를 들어 초반에 게임은 팔뚝의 검은 반점이 올라오는 것을 보여주며 죽으면 죽을수록 반점을 커지게 되고, 이 반점이 머리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세이브 데이터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실제 게임에서 그런 일은 아무리 죽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반점은 하나의 속임수이자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세누아라는 케릭터에게 이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해준다. 게이머는 게임 내내 실패하고 죽을 때마다 세이브 데이터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공포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음에도 말이다. 어째서 게임은 이런 속임수를 게임에 심어 놓은 것을까?


헬블레이드에서 정신증은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테마다:사람이 지각하는 실제의 물리 세계와 인지 세계가 서로 불일치하여 환각과 과도한 인지, 빛번짐 등을 경험하고 환상이 실제한다고 믿게 되는 정신증은 정신 의학계에서도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 증상이다. 세누아는 중증의 정신증과 환상, 편집증, 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게임의 모든 내용들은 실제가 아닌 세누아가 인지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게임은 딜리온이나 드루스, 세누아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기억속의 컷신은 실제 영상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팔의 독이 머리에 도달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강제로 삭제된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게임 시스템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세누아의 믿음을 플레이어가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이 세누아의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무작위로 일어나는 광증으로 묘사하진 않고, 그것을 대다수의 게임이 그렇듯이 멋있거나 웃기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헬블레이드는 실제 환청을 겪었던 사람들과 정신증 전문가들의 조언을 빌려 이것을 고통스럽고도 충실하게 묘사한다. 게임 내에서 환청과 환각은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테마이자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다:목소리들은 끊임없이 게이머에게 조언을 해주며, 전투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각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환각에 기반한 퍼즐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만드는데, 퍼즐 자체는 아주 새롭거나 놀랍지 않지만 환각이라는 요소를 적재적소에 잘 살렸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바로 게임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세누아의 여정에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나올 때마다, 환청들은 더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조롱하거나 절규하며 이 순간 세누아가 느끼는 감정과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을 일치시킨다. 세누아는 가끔씩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게이머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거는데, 제 4의 벽을 넘어서 자신의 일부(환청)를 인지하고 말을 거는 세누아의 모습은 소름끼치는 동시에 오묘한 느낌(서로 연결되어있는)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서 컷씬에서는 어둠이 세누아에게 말을 걸거나, 기억들을 되짚을 때 제 3자의 카메라가 아닌 세누아와 대화하는 당사자의 시점에서 카메라를 배치한다. 즉, 플레이어는 세누아의 일부이자 어둠이며, 좋았던 기억이자 트라우마의 일원으로써 세누아의 여정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헬블레이드는 실사와 환상을 무작위로 섞어서 쿨하고 멋진것으로 만들지 않고, 게이머와 세누아가 일치되어 동일한 절망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그 중에서도 발군인 것은 음향 연출이다:머리 속을 뱅뱅 돌면서 환청이 게어머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음향 연출은 게임에서 찾아보기 드문 시도였고 정말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을 클리어한 본인마저도 7.1 체널 헤드셋은커녕 2체널 이어폰을 끼는 것조차 두렵게 느껴질 정도로 헬블레이드의 음향 연출은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몇몇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헬블레이드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게임 사상 정말로 독특한 경험을 플레이어들에게 선사한다.






헬블레이드가 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오고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속임수가 숨어있다:세누아는 켈트인이지만 게임의 배경이 되는 것은 북구 바이킹 신화이다. 어째서 켈트족이 바이킹 신화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 이는 바이킹 족의 노예였던 드루스가 세누아에게 바이킹 신화를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며, 바이킹에 의해서 딜리온이 죽음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즉, 헬블레이드의 북구 신화 모티브들은 창작자가 소비자에게 전달해주는 일반적인 구조가 아닌, 소비자가 스스로 컨텐츠를 재창작하는 2차 창작의 과정인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죽음에서 불러오기 위해서 저승으로 떠나는 영웅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던 모티브이긴 하지만, 이러한 2차 창작의 과정을 통해 헬블레이드는 그 모티브를 세누아의 인생에 있어서 고통스러웠던 부분과 행복한 부분과 연결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변모한다. 예를 들어 저승의 신 헬라는 화형 중 반이 불타버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신을 물어죽였던 펜릴은 자신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아버지의 환영이 된다. 그리고 불에 대한 트라우마와 자신이 계속 경험하는 환각은 각각 불의 거인과 까마귀의 신으로 등치된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 이외에도 딜리온과의 좋은 추억들은 신마저도 쓰러뜨릴 수 있는 검을 버려내는 신화적 제의로 재현됨으로써 세누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한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들이 일반적인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와 동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화 컨텐츠의 소비와 동일하게 생각한다. 헬블레이드가 교묘하게 파고드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게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영웅이 신화적 위업을 창출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과정이 아닌 개인의 모티브들이 신화 모티브에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이 위대한 업적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임을 은연중에 깔아둔다. 세누아 뿐만 아니라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조차도 처음에는 '자신의 정신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신화적 업적을 세우는 과정'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신화적 모티브에 대응되는 개인적 모티브들이 반복되고, 여정의 끝에서 세누아가 자신의 트라우마의 근원(아버지가 어머니를 화형하는 것을 직접 목도한)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게이머와 세누아는 이 거대한 환상의 구조를 간파하게 된다:어머니의 죽음과 헬라의 모습이 일치하는 점, 어째서 펜릴과 어둠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었는가, 그리고 이 모든것 자체가 세누아(동시에 게이머)의 환상이란 점과 결국 딜리온은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블레이드의 지옥은 그야말로 진정한 지옥이다. 워낙 많은 게임들이 지옥을 악마들이 조각난 시체를 홈 인테리어 포인트 정도로 써먹는 세태에서 헬블레이드는 지옥의 근원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세누아의 고통으로부터 지옥을 쌓아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세누아가 거니는 지옥과 경험하는 환청과 환각 그 모든 것들은 세누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세누아와 게이머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포인트를 파고들어 무너뜨리고자 하고 있다. 일찍이 학살기관에서 '지옥은 사람의 대뇌피질에 새겨져 있다'라고 했듯이, 한 인간의 지옥은 오롯이 그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헬블레이드는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지옥의 이미지는 기존 신화의 역전이라 할 수 있다:헬블레이드의 이야기 구조는 신화적이되 신화이지 않다. 한 개인의 비극적인 인생에 맞춰져서 신화적 모티브를 배치해두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원래의 사건들을 되짚어 올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화라는 컨텐츠를 소비할 때, 켐벨이 이야기했었던 것과 같은 모티브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신화나 영웅에 열광하는 것은 신화와 개인 사이에 서로 맞닿아있는 강렬한 접점과 모티브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가 집중한 점은 바로 이 접점이며, 그것을 게임이라는 일체화된 경험의 매체를 통해서 세누아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고통과 슬픔으로 바꾸어놓는다. 만약, 헬블레이드의 서사를 그대로 소설이나 영화로 옮겼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싸구려 반전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왜냐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어쨌든 관객은 세누아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스스로 세누아의 위치에서 세누아가 본 것들, 들은 것들, 느낀 것들을 일치되게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는 그저 싸구려 반전물이라 칭할 수 없는 깊이감이 존재한다. 그 깊이감은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특징이다.  


세누아가 겪었던 그 모든 고통은 조각나버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며, 환각과 환청에 고통받던 자신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딜리온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세누아의 여정은 동시에 고통의 근원과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억압 등을 깨달으면서 세누아는 이 여정 자체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깨닫고 받아들인다:헬라와의 일전 바로 직전에 세누아는 자신의 머리속을 괴롭혔던 수많은 목소리를 뒤로 한채 앞으로 떠나는 과정이나 마지막 전투에서 어둠이 이 모든게 환상이라면 딜리온은 애시당초에 살릴 수 없었다는 협박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전에서 속삭임은 단 하나만 들린다:혼란스럽지도 않고, 울리지도 않지만 조용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이 말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세누아에게 이렇게 속삭인다:이제 놓아줘Let go 라고.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세누아는 딜리온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떠올리고, 헬라는 딜리온의 두개골을 들어 절벽 아래로 놓아준다. 그 순간 헬라는 세누아가 되며 모든 환상은 사라지게 된다. 딜리온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를 놓아주는 것, 자신의 트라우마와 어둠, 환각을 걷어낸다. 한 인간이 개인적인 비극을 극복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게이머를 그 재현의 일부로 만들어낸 헬블레이드의 엔딩은 그 어떤 게임의 엔딩보다도 무게가 있고 아름답다. 


결론을 내리자면, 헬블레이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일찍이 스펙옵스가 영웅 서사에 대해서 악의적인 비꼬기와 조롱을 가했다면, 헬블레이드는 여지껏 진지하게 다뤄본적이 없는 소재로 신화라는 이야기 구조를 근본부터 재점검 하였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게임이 여타 대중매체들과 기술적이기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을 헬블레이드는 여실히 증명하였으며, 스펙옵스와 같은 플롯의 뒤틈이 아닌 게임과 게이머 사이의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헬블레이드를 플레이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그 고통은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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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가 유명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악명 높은 것(?)을 꼽자면 공장식 작품 생산 방식이 있다:인피니티 워드와 슬레지해머, 트라이아크 3개 스튜디오 체제로 1년 단위로 게임을 돌아가면서 만든다는 이 신묘하고도 경악스러운 발상은 '매년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보장하는 타이틀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라는 게임 제작사상 초유의 기록을 만들어내었다. 단일 작품으로는 콜옵 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하는 작품은 많다:하지만 전체 프랜차이즈를 놓고 본다면 아마도 콜옵 프랜차이즈 전체 판매고에 근접하는 게임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콜옵 프랜차이즈 개발은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강점을 계승하고 약점은 보완하고자  3개의 스튜디오가 독자적인 동시에 유기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블랙옵스 3의 멀티와 인피닛 워페어의 멀티를 비교해보자:인피닛 워페어의 기본적인 멀티 골격은 블랙옵스 3의 그것이라 볼 수 있으며, 무기 벨런스나 맵 디자인은 인피닛 워드의 독자성이 가미된 물건이다(물론 결과물이 그리 흥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게임 개발 패턴은 일본 게임 프랜차이즈인 무쌍 시리즈에서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삼국무쌍 2편 이후로 전장을 종횡무진하면서 적들을 물리친다는 무쌍 시리즈의 컨셉은 아시아권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북미쪽에서는 컬트적(?)인 팬덤층을 보유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이 게임의 시스템(일기당천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 버튼 연타와 강-약공격 조합으로 모든 액션을 구현할 수 있는 점 등)이 확립된 이후로 무쌍 시리즈의 모든 작품은 대부분 '동일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무쌍 시리즈는 모두 동일한 게임이라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쌍 시리즈가 수많은 파생작품들을 가지고도 꾸준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게임에 조금씩 다른 바리에이션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이러한 바리에이션이 가장 성공한 사례는 젤다 무쌍이라 할 수 있다:모든 사람들은 '어째서 젤다에 무쌍이 섞여있는가?'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젤다무쌍을 보았다. 하지만 젤다무쌍은 의외로 충실하게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기믹을 게임 내의 액션에 접합시켰다:도구를 사용하는 기믹이라던가, 여타 무쌍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 보스전의 기믹이라던가 등등은 젤다의 전설을 그대로 들고온 것이 아닌, '무쌍이라는 정체성 아래서 새로운 것들을 이식하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파이어 엠블렘 무쌍도 이런 부분에서 나름대로의 충실함을 보장한다:파엠 시리즈에서 등장한 더블 유닛을 일종의 스트라이커 형태의 공격과 방어로 재해석한 점, 클래식 파엠의 죽으면 돌아오지 않는 전사 기믹, 인연 스킬, 창-도끼-검의 맞물리는 관계와 위크 포인트 시스템의 결합 등은 단순히 파엠 무쌍이 아무 고민이나 노력 없이 게임을 그대로 이식한 작품이 아님을 드러낸다.


하지만 무쌍 시리즈의 문제는 게임이 단순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방계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어서 가능성을 소진한다는데 있다. 심할 때는 1년에 2~3개의 무쌍 게임을 찾아볼 수 있고, 다른 기기로 컨버전 되거나 다른 프랜차이즈와 콜라보를 시도하는 등 무쌍 시리즈의 제작사인 오메가 포스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활동이 오히려 프랜차이즈의 수명과 팬들의 피로도를 가속시킨다는 점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오메가 포스가 차세대 무쌍인 진삼국무쌍 8에서 제시하는 것은 오픈월드와 시스템의 일신이다:오픈월드 시스템과 잡졸들을 특정 상태로 만드는 액션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메가포스나 코에이 테크모가 이러한 게임을 만들어본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불안하다. 그리고 기존의 방계 무쌍 작품들의 성공이 무쌍 시리즈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함이란 매력 포인트에 기반하여 가지 치기를 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8편은 시리즈의 본질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라는 우려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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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있어서 나치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절대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 걸쳐서 수많은 악과 악행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들을 보아왔다:징기스칸은 가는 곳곳 사람의 머리를 잘라 탑을 쌓았고, 중세시절부터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으며, 신대륙 탐험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정복사였고, 근대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인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짓을 자행하였다. 역사적으로 악은 보편적이었지만 나치만큼 뚜렷한 악행의 아이콘이 된 경우는 드물다. 어째서일까? 단순히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들의 헤게모니 문제였던 것일까? 모든 악은 그저 상대적일 뿐일까? 


나치가 시대를 대표하는 악이 된 이유는 현대 국민 국가의 등장, 그리고 그 국가가 사람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서 탑을 쌓았지만, 효율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등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차를 이용한 대규모 물류 시스템, 집단 수용, 격리, 그리고 '처리'까지 이루어지는 관료제 시스템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궁극적인 이상향을 만들지 않았다. 나치가 그 어떤 역사의 거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현대 시스템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인간을 처리하였다'와 '현대의 과학과 정치사상 등을 빌어 그 모든 개소리들을 정당화하였다'라는 사실 덕분이다. 나치의 잔학성은 단순히 사람들을 자극적으로 죽였다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존재와 가능성 자체를 말살하는 범죄였었다. 그리고 과거에도 개념상으로 존재하였던 범죄를 과학과 관료제와 법과 시스템 등의 이름을 빌어서 실제로 구현했었고 실제 성과를 거둔 것도 나치가 최초였다.


그런 점에서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놀라운 게임이었다. 뉴 오더는 나치를 다룬 게임, 아니 영화 등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치가 행한 범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나치가 '이루어내고 싶었던' 세계를 조명한 것이었다. 뉴 오더의 악역 데스헤드 윌리엄 슈트라세가 게임 역사상 길이남을 명대사, "결국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가 파괴한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것으로!"를 통해서 구체화되듯이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실제 나치가 만들고 싶었던 세계를 디젤펑크와 각종 나치 관련 루머들, 더 나아가서 그 시대의 대중문화와 분위기를 한데 섞어서 '과장된 정상 세계'의 형태로 구현한다:나치 양식의 콘크리트 건물들은 페이퍼 플랜들보다 수십, 수백배 뻥튀기 되었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팝 뮤직들은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의 어레인지 버전처럼 총통에게 충성하지 못한 젊은이의 후회로 둔갑되어버린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것은 섬세하지는 않지만 울펜슈타인 뉴 오더의 세계 속에는 '과연 이것이 우리 현실 세계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라는 꿰뚫어봄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한때 좋았던 사람들은 눈감고 나치에 협력하고, 과거와 지금이 별반 차이없다고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미국인, 아리아인의 표본과 저항군 사이의 경계에 놓인 블라즈코윅즈 등등 정상성이 비정상적으로 넘처흐르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저항군, 여성, 장애인, 정신병자, 늙은이, 소수민족 등등의 세상에서 빗겨나간 사람들의 절망에 찬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엣지 매거진은 프리뷰에서 언급하듯이, 뉴 오더의 케릭터 조형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타즈에 가깝지만 정작 거기에는 휴머니티와 페이소스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엣지는 의도치 않게 뉴 오더의 핵심을 꿰뚫어보았다:특공대물이라는 영화 하부 장르를 나치에 대한 도덕적 복수(바스타즈의 결말이 히틀러 시체에 갈갈갈 총질하고 악독한 나치 장교의 이마에 나치 문양 칼빵을 새겨주는 것이라는 걸 잊지말자)와 결합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은 디젤펑크와 함께 나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무엇이 도덕적이고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전도를 일으키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와 어울리는 한 쌍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나치가 지배하는 미국을 그리는 뉴 콜로서스는 그런 점에서 전작의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가상의 적에 의해서 침공당하는 미국의 이미지는 이미 콜옵 프랜차이즈나 홈프론트 시리즈에서도 다뤄진적이 있지만, 이는 뉴 콜로서스의 지향점과는 다르다. 홈프론트나 콜옵 프랜차이즈에는 미국인에 본토 침공에 대한 뿌리깊은 트라우마와 공포가 숨어있다. 언젠가 저들이 우리 영토를 짓밟기 전에, 우리가 먼저 되갚아줘야 한다는 자극적인 공포를 게임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 이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공포에는 깊이가 없다:어째서 저들이 미국을 미워하는가, 라는 대목에서 이들은 지극히 무력해진다. 콜옵 고스트의 사례처럼 미국인의 존재를 지워내는 인종청소란 끔찍한 범죄가 행해지는데도 게임은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지 않고 '남미인들은 모두 미국을 증오한다'라는 편견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자극만이 존재하며, 이야기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 콜로서스는 다르다:"이건 괴물의 짓이야 - 아니, 인간이 짓이지 " 라는 짧은 대화 속에서 게임은 깊은 절망을 보여준다. 절망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가 단순한 자극, 그리고 자극의 역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요소들로 가득찼다면 절망의 감수성에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느끼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뉴 오더가 그랬듯이, 뉴 콜로서스 역시도 그런 '무게'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뉴 콜로서스의 새로운 주역들은 UFO 설을 신봉하는 음모론자와 흑표당원, 그리고 심지어 2차세계대전 전후로 전멸한 미국 공산당 계열 인물들이며, 이들은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뉴 콜로서스는 1961년의 미국을 디젤펑크 풍으로 재조립하였지만, 그 속에는 전작과 동일하게 위험한 전도를 깔아두고 있다:보이 스카웃을 다룬 시트콤은 히틀러 유겐트로, 미국인들이 즐기던 퀴즈쇼는 언어 말살 정책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KKK 단이 나치에게 독일어 레슨을 권유 받는 등 우리가 믿고 있었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흐트려놓는다. 하지만 뉴 오더가 그랬었던 것처럼, 뉴 콜로서스에서도 그것은 단순한 전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이는 이미 뉴 오더를 통해서 보여준 스토리텔링의 성취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기대는 과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뉴 콜로서스는 암울한 시기에 훌륭한 맥락을 가지고 등장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차별과 혐오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이 행해지고 이성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뉴 콜로서스는 그것을 전도 시키고, 어두웠던 역사의 그늘에 빛을 비추며,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미국, 새로운 거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나큰 결격 사유만 없다면, 뉴 콜로서스는 뉴 오더의 강점을 이어받아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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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들은 많은 게이머들의 꿈이었다:수많은 사람들과 협동, 경쟁한다는 발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게임은 창작과 향유, 양 측면에서 상호 보완 발전하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본격적인 콘솔 MMO 게임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라 할 수 있다. 톰 클랜시의 디비전이나 데스티니 1편 같은 게임들이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고 등장한 것은 불과 3~4년전의 일이니 말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프라와 산업의 성숙도라 할 수 있다. MMO 같이 상시 온라인에 접속해야하는 게임이 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확충된 것은 콘솔 기준에서 본다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으며, PC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검증된 성공 모델을 콘솔 게임에 어떻게 옮길 것인지에 대한 제작자들의 생각도 필요했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데스티니와 디비전이었고 이들의 고민은 실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기록적인 흥행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수많은 게이머들이 실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데스티니와 디비전은 그 자체로도 재밌는 부분이 많은 게임이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았으며 마케팅과 게이머의 인식 사이에 괴리가 심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데스티니 2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콘솔 MMOFPS 장르의 표준을 세웠다:스토리의 혁신, 레벨링 구조와 아이템 파밍 구조, 2번의 DLC와 2번의 확장팩을 통해 가다듬어진 게임플레이 등등은 1편이 부족했었던 부분을 모두 뜯어고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데스티니 2의 컨텐츠 소비 구조는 그 어떤 MMO 게임보다도 세련되고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와우 같은 PC MMO 게임에 비교한다면 데스티니 2의 컨텐츠 분량은 많은편이라 할 수 없지만, 데스티니 2는 분량이 아닌 게임 플레이의 유기적인 흐름과 그에 따른 몰입 및 보상이 더 인상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스티니 2는 파밍이 중심인 FPS다:이러한 게임들은 소위 '폐지를 주워서 더 나은 폐지를 줍는 게임'이라고도 불리는데, 반복적인 사냥과 컨텐츠 소비를 통해서 플레이어는 현재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들보다 더 나은 아이템을 장비하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아이템을 최적화 시키며 강해지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상당수의 파밍 중심의 게임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아이템을 덜 지루하게 획득하게 만드는가'가 게임 디자인의 중요 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데스티니 이전에 파밍 중심의 FPS를 성공시킨 보더랜드 프랜차이즈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적들을 잡고 박스를 열때마다 쓸만한 무기들이 쏟아지는 막 퍼주기로 이 문제를 쉽고 간단하게 해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더랜드 프랜차이즈의 문제는 게임이 그런 점에서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전혀 섬세하지 못할 뿐더러, 컨텐츠의 소비 구조가 매우 단순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보더랜드는 이를 무지막지한 DLC 발매로 커버하였지만, 게임 내에서 일어나는 장비와 컨텐츠 분량의 인플레와 복잡화, 더 나아가서 무너지는 게임 벨런스로 인해 발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막장이 되어버리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데스티니 2의 강점은 컨텐츠 소비 템포를 반복되고 지루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배분되었고, 컨텐츠 소비 속도의 많은 부분을 플레이어의 자율에 맡겨두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데스티니 2는 1편과 유사하게 적당한 크기의 월드맵 몇개와 인스턴트 던전, 레이드, 패트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임이다. 데스티니 2에서 크게 바뀐 점은 1편의 컨텐츠 부분이 아닌 컨텐츠의 소비 속도와 템포다:플레이어는 월드맵에서 패트롤과 퍼블릭 이벤트, 로스트 섹터 탐험 등의 자잘한 컨텐츠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 게임은 이러한 이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으로 토큰을 주는데, 플레이어는 이 토큰을 각 지역 NPC에게 줌으로 자신이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 레벨보다 더 높은 레벨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게임은 이러한 토큰을 모으기 위한 크고 작은 활동들을 조밀하게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선택하게끔 만듬으로써 게이머는 플레이 내내 끊김없이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데스티니 2가 각각의 활동들이 별다른 특이점 없는 단순한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작위의 이벤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것이 가시적인 보상으로 직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게임은 이런 부분에서 각 컨텐츠의 깊이보다는 컨텐츠 간의 유기적인 소비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데스티니 2 컨텐츠에서 큰 변화는 인스턴트 던전 - 좋은 보상으로 이어지는 MMO 구조를 탈피하여 월드맵 중심으로 게임 플레이를 재편하였다는 점이다. 많은 게임들이 인던을 통해서 어려운 보스에 덤비는 구조를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파밍을 위해서 인던 중심으로 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게임이 반복적이고 지루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와우 등의 MMO에서도 월드맵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보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데스티니 1편에서도 월드맵 중심의 퍼블릭 이벤트나 테이큰 킹의 패트롤 및 바운티 모드가 존재하였지만 데스티니 2처럼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데스티니 2는 1편의 컨텐츠들을 최대한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정리하였고, 컨텐츠의 소비 시간과 보상을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써 플레이가 지루하지 않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스스로 컨텐츠를 연결하여 소비하게끔 만들었기에 게임이 반복적이지 않게끔 느껴진다는 강점도 있다. 


디비전이나 보더랜드 시리즈, 이전에 나왔었던 파밍 FPS(심지어 전작인 1편)와 비교하였을 때, 데스티니 2의 성공은 게임 전체의 혁신이라기 보다는 게임 템포를 부드럽게 조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정만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스티니 2는 파밍을 지루하지 않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게이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게임플레이의 혁신은 없지만 데스티니 2가 전작에 비해서 월등하게 나아진 부분들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데스티니 2는 레벨업을 통과의례로 만들어 간략화 시키고, 일정 수준까지 장비를 파밍하기 쉽게 만들어 게이머가 레벨업과 파밍 중 지치지 않고 스토리 미션 클리어 및 엔드 컨텐츠에 입문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엔드 컨텐츠 입문하는 단계에서부터는 일정 '임계점'을 돌파하기 어렵게 만들어둠으로써 컨텐츠의 소진을 최대한 막고 있다. 현재로써는 레비아탄 레이드 미션과 나이트폴 스트라이크가 엔드 컨텐츠이지만, 12월 오시리스의 저주 등으로 정기적인 컨텐츠 업데이트가 이루어질 예정이기에 컨텐츠의 소비 구조나 속도에 대해서 논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게임은 케릭터가 강해지는 과정 자체가 무작위적인 과정이 아닌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로드맵'을 제공하고 그 과정을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있게끔 만든다는 점(퍼블릭 히로익을 공략하거나, 암시장 상인에게서 물품 구매, 주간 미션 진행 등등)은 무작위성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데스티니 2의 강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전작이 거대한 세계관을 소개하는데 바쁜 나머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핵심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내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면 데스티니 2는 단순하지만 몰입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 라인과 케릭터들이 있다. 전작이 가디언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스토리의 체감이 아닌 끊임없이 대사로 풀어냈었다면(물론 확장팩으로 갈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데스티니 2는 이야기의 중심을 간략하기는 하지만 빛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로 옮김으로써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게임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빛에 의해 선택 받은 인물들과 선택에 대해서 컴플랙스를 가진 악역(심지어 로마 황제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확신범이다), 단순히 여행자가 선택한 가디언을 넘어서 스스로 빛을 찾아 세계를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까지 데스티니 2는 번지가 헤일로 때 보여주었던 이야기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 물론, 게임 대부분의 시간은 필드에 돌아다니는 불쌍한 잡몹들을 족치고 상자를 까는데 쓰이지만, '대체 뭐 어쨌단 말인가?' 싶었던 1편의 스토리 텔링(가디언의 부활에서 벡스의 검은 정원까지 이어지는 본편 스토리)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픽 부분에서 본다면 데스티니 2는 트리플 A 특유의 규모와 디테일이 살아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전작에 등장했었던 스테이지들은 한군데도 등장하지 않지만, 각각의 월드맵들(타이탄, 이오, 네서스, EDZ)은 자신만의 색조와 디테일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 것이 아닌듯한 독특한 풍광들을 자랑한다. 특히 데스티니 2는 전작과 확장팩들에 비해서 규모감을 강조하는 연출과 그래픽을 보여주는데, 태양을 불태우는 병기인 전능자Almighty 에서 벌어지는 미션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트리플 A 게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규모감과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전 부분인 크루시블의 경우, 전작에 비해서 오히려 퇴보한 부분들이 있다:기존의 샷건이나 스나이퍼 라이플 등의 일반 무기군이 제한된 탄약을 쓰는 파워 웨폰군으로 옮겨가면서 게임은 자동 돌격 소총, 점사 돌격 소총, SMG, 단발 소총 등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비슷한 무기군들이 경쟁전에 주로 쓰이는 주요 무기가 되어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거기서 거기로 고만고만해지는 문제가 생겼다. 또한 상대의 위치를 미니맵 표시기를 통해서 항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버림으로써, 개개인이 실력으로 게임 판세를 뒤집는 것은 힘들어졌으며 팀 단위로 뭉쳐다니면서 마이크로 화력을 집중하는 플레이가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상대 위치를 미니맵에 표시하는 시스템은 데스매치 중심의 게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콜옵 시리즈에서 가장 사기적인 킬스트릭이 상대의 위치를 찍어주는 UAV였다는걸 생각하면 이러한 변화점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결론적으로 데스티니 2는 전작의 기대에 못미치는(그래도 재밌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비하면 훨씬 더 유기적이고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테이큰 킹, 라이즈 오브 아이언 등의 확장팩을 여러개 거치면서 쌓인 노하우가 게임 디자인에 접목되면서 가능해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데스티니 2는 디비전을 넘어서 콘솔 MMO 에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주변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오래동안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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