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의 RPG 프랜차이즈 라인업은 두가지로 나뉜다:첫번째는 파이널 판타지 같이 대자본이 들어가는  게임이고, 두번째는 실험적이고 복고적인 컨셉의 게임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두번째 부류의 게임들이다. 전자의 부류가 미래를 바라보고 비전을 추구하였다면, 후자는 과거의 명작 게임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복고적인 분위기를 추구하였다. 이는 자사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한 전형적인 투트랙 전략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대다수는 아니지만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를 공략하기 위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근래 스퀘어 에닉스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브랜드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일 것이다:파이널 판타지 외전 빛의 4전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실리콘 스튜디오의 브레이버리 디폴트는 고전적인 아트워크와 스토리라인과 함께 파이널 판타지의 잡 시스템에 브레이브/디폴트이란 턴 전투의 새로운 해석을 차용하였으며, 여기에 기존의 RPG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멀티플레이 요소를 도입하였다. 또한 게임 체험판을 사전에 배포하여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본편에 반영하는 등 상당히 독특한 전략을 취하였으며, 그 결과는 대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플레이어를 매료시키고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외에도 사가 스칼렛 그레이스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옥토패스 트래블러도 이 부류에 들어갈 것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사람들은 상당히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분명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부분은 복고 지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이 게임이 어느정도 규모의 게임인지(풀 프라이스? 아니면 인디 게임과 같은 소품류?) 알 수 없었고 안그래도 성능과 관련된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스위치에는 제대로 된 그래픽과 스케일의 RPG 하나 안나온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와 같이 게임 체험판을 공개하고 어떤 게임인지 대중에게 게임 플래이로 어필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조금씩 끌어모으기 시작하였다. 발매 이후, 다소 호불호가 엇갈리는 분위기가 있었긴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전세계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신규 IP 치고는 괄목할만한 성과였으며, 기본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매력적인 게임임을 반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8명의 주인공의 8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고전적인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RPG다. 우선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구성이다. 게임은 서로 다른 테마를 가진 8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모험을 펼치는 옴니버스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 케릭터 당 스토리는 4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챕터는 약 한시간 정도의 분량의 컷씬과 던전으로 구성되었다. 4시간은 RPG 스토리로서 절대적으로 짧은 쪽에 속하지만, 8명의 이야기인 만큼 전체 스토리 클리어까지 32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의외로 긴 분량을 자랑한다. 이러한 시도 자체는 근래 찾아보기 드문 독특한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실험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가 시리즈나 라이브 어 라이브 같이 실험적인 구조이긴 했지만 하나의 큰 이야기가 아닌 케릭터와 테마를 긴밀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이전에도 존재했었던 방식이다. 이는 RPG라는 장르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이들 게임들은 거대한 세계와 플레이어가 상호작용하며 그야말로 이야기에 있어서 역할Role을 강조하는 RPG 장르 특성에 초점을 맞춰서 플레이어의 분신이 되는 케릭터를 중심으로 게임의 모든 것을 구성한 것이다. 일찍이 사가 시리즈가 시리즈의 정체성을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절대로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다양한 케릭터와 관점에 초점을 맞춰서 세계와 이야기를 구성하는 순간, 구성해야하는 게임 콘텐츠가 여타 게임보다 배로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가 최신작 스칼렛 그레이스의 경우에도, 모든 이야기를 다 보고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려면 총 4회차를 클리어해야하며, 이는 요즘 게임의 트랜드에 정면으로 반하는(10~20시간 내외에서 클리어 가능한 싱글플레이 게임) 부분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실험은 이러한 고전의 흐름을 어떻게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있어서 각각 케릭터들은 테마를 대표한다. 이들 테마는 단순하지만 확고하다:복수, 공동체의 헌신, 구원, 신뢰 등등 모든 테마들은 클리셰적이며 모든 이야기는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클리셰라 해서 이야기의 뒤가 궁금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각 케릭터별 이야기들은 단순하지만 잘 작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몇몇은 상당히 인상적이기도 하다:예를 들어 프림로즈의 스토리 라인의 경우, 아버지의 복수를 실행하는 강인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원수들을 하나씩 추적해서 죽인다는 류의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복수를 위해서 인내했던 괴로움에 대해서 다뤄내면서 이야기에 나름대로 쓴 맛을 더해주고 있다. 각각의 케릭터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만의 개성을 갖게 된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여기에 독특한 기믹을 부여한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각 케릭터들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패스 액션이란 기믹을 통해 게임 내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학자인 사이러스는 관찰을 통해서 각 NPC들의 뒷 이야기들을 알아낼 수 있고, 올베릭은 NPC에게 결투를 걸어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과거 RPG에서 경험했던 요소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과거 RPG에서 사람들은 길거리에 있는 NPC들에게 말을 걸어서 게임에 대한 정보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얻어내고는 하였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서도 패스 액션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발동시킬 수 있고, 이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이며 잘 작동한다. 패스 액션은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NPC들과 세계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게임의 세계와 테마를 확장하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




전투는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콘텐츠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턴제를 기반으로 8명의 케릭터 중 4명의 케릭터를 조합하여서 파티를 짜서 진행하게끔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턴제 전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게임으로, 흥미롭게도 같은 유통사의 다른 개발사(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천주와 아키바 시리즈의 어콰이어가,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는 실리콘 스튜디오가 만들었다)와 유사한 컨셉을 보유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와 다르다.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의 전투 개념은 한 턴의 시간 및 기회의 확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게임의 전투는 브레이브 액션과 디폴트 액션을 통해 한 턴에 여분의 행동을 소비하거나 다음 턴을 위해 행동을 저축하는 등, 일종의 턴에 대한 부채와 수입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턴에 정말로 다양한 행동들이 이루어지며, 어떤 행동은 여러 개의 턴(또는 브레이브 액션)을 소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한 턴에 얼마나 많은 행동을 할 수 있는가? 가 아닌, 한 턴에에 얼마나 플레이어의 행동을 응축하는가가 관건이다. 게임에서 한 턴에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턴마다 쌓이는 BP를 소비해서 이 행동의 효과를 스케일링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P를 소비하지 않으면 가해지는 데미지가 300정도 수준이라면, BP를 최대로 소비하였을 때 플레이어가 가할 수 있는 데미지는 1200 정도 수준으로 데미지가 스케일링 된다. 이처럼 한 턴에 얼마나 행동을 효율적으로 응축시키는가가 전투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브레이크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모든 적들에게는 약점이 있고, 이 약점에 데미지를 가해서 방어를 벗겨내면 적은 한 턴 동안 행동 기회를 잃고 스턴이 걸리게 되며 데미지가 강하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약점을 벗겨내는 행동에는 제한이 있다. 물리속성의 공격은 각 약점별로 최대 4회(스킬의 경우, 더많은 회수로 공격할 수 있지만 명중률이 보장되지 않고 되는 무기가 있고 안되는 무기가 있다)뿐이며, 마법으로는 2~3회가 최대다. 이 회수를 유념하여 케릭터 조합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을 찌르기 위해서는 케릭터와 잡 조합을 전략적으로 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와 비슷하게 잡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브레이버리 디폴트는 두개의 잡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케릭터 기본 잡 이외에 하나의 잡만 착용할 수 있으며 각 케릭터별로는 중복된 잡을 부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티를 짤 때 케릭터들과 잡의 조합을 신중히 고려해야한다. 특히 잡별로 공략할 수 있는 약점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파티는 케릭터별로 역할을 분명히 정하고 컨셉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케릭터의 컨셉을 공고하게 잡고 파티를 구성하는 것은 이 게임에 있어서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다.


이렇게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몇몇 제약조건들을 부여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신중하게 전투를 진행하게끔 만들었다. 특히 보스나 적들의 기믹들이 다양하고, 고전적인 RPG에서 찾아볼 수 있는 즉사나 상태이상 패턴 등은 단순히 강력한 화력으로 전투를 압도할 수 없게끔 구성해놨다. 게임을 최대한 풀어나가기 위해서 게임 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많은 리뷰어와 플레이어들이 지적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그건 바로 8명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서로의 스토리와 행적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교류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곁다리에 불과하며, 정해진 조건에서 버튼을 눌러서 확인하지 않으면 이벤트를 확인할 수도 없다. 중요한 점은 8명의 주인공들의 메인 스토리에는 서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전무하며, 8개의 스토리는 완벽하게 별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사가 시리즈나 라이브 어 라이브 같은 게임들이 다양한 케릭터들의 이야기들이 한 데 모여서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이야기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히든 보스의 존재와 맞물린 이야기를 통해 모든 케릭터의 스토리가 이어져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반전이 드러나는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고 반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테마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게임의 근본적인 한계다: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애시당초에 거대한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게임의 작은 스케일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마을의 숫자나 NPC의 숫자, 던전의 규모 등등은 게임이 상당히 작게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물론 전투 중에 조우하는 적들이나 적들의 패턴들, 보스의 패턴들은 다양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적들이나 플레이어의 케릭터들은 그대로 서있고, 복잡한 애니메이션 없이 이펙트만 움직이는 형태의 그래픽 구조다 보니 게임에 있어서 아이디어는 많이 들어갔을지언정 예산이나 시간이 많이 투자되었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한 케릭터 당 여타 케릭터의 개입없이 4시간이라는 스토리를 할당한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보여진다:한 케릭터를 설명하고 완결짓는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다른 케릭터가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8명의 케릭터가 서로의 스토리에 개입하여 이야기가 복합적인 형태로 구성된다면 단순하게 경우의 수만 따져봐도 엄청날 것이며 이에 요구되는 스크립트나 콘텐츠의 분량도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대신 콘텐츠의 단순함을 숨기기 위해서 레벨링 구간을 도입하였는데, 스토리 별로 권장 레벨을 설정해두고 8명의 케릭터를 고루 키워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강제하였다. 또한 패스 액션 등의 NPC와의 상호작용, 서브퀘스트 라인의 불친절한 부분은 단순하지만 플레이어가 모든 것을 일일이 하나씩 눌러보고 실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채택하여 필연적으로 시간이 소비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예산이 적게들어간 부분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속임수들이 잘 작동하여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은 제작자들의 노련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이러한 부분들은 분명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다:사람들은 분명 RPG에 있어서 하나의 테마와 거대한 이야기, 클라이맥스를 즐기고자 한다. 플레이어 자신의 행위로 인해서 거대한 세계가 바뀌고 여운에 잠기는 것, 그것이 RPG를 끝까지 플레이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그러한 요소가 부족하다. 8명의 케릭터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잘 작동하지만, 굳이 그걸 8명이나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오히려 8명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산만해지지 않았나라는 의구심도 있고, 숫자를 줄이고 더 집중하였으면 더 매력적인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래픽과 BGM 측면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이 게임은 도트풍의 그래픽 스타일을 지향하지만, 언리얼 4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전투 이펙트나 브레이크 시의 이펙트를 생각해보면 일견 납득되는 부분들도 있다. 게임은 애니메이션을 최대한 적게 쓰되, 플레이어가 극적으로 느낄만한 부분(브레이크 시의 이펙트라던가)에는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들여 연출과 이펙트를 구성하였다. 덕분에 분명 도트풍의 복고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적인 그래픽을 보여준다. BGM은 연출의 고양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으며, 한 곡 한 곡 버릴것 없이 매우 인상적이다.


결론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게임의 특징(옴니버스+소소한 규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구매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타이틀이다. 이 게임에는 거대한 규모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계획된 대로 잘 작동되는 편이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게임을 원하거나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게임을 선택하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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