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이정도로 실패할줄은 몰랐겠지?


*미디엄의 글(https://medium.com/p/78f465b2dc37)을 블로그에 맞게 편집해서 올린 글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비타는 기기 컨셉 자체로는 ‘성공’한 기기다. 기기가 섬세해서 고장나기 쉽다던가, 후면터치 기능 같은 어디쓰는지 알 수 없는 기능이 들어간다던가, TV 아웃 단자를 만들어놓고는 쓰지 않다가 갑자기 신품에서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던가 등의 ‘사소한’ 문제들은 잠시 잊어버리도록 하자. 비타는 기본적인 컨셉 자체는 절대로 실패할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기기였다.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스마트폰의 컨셉을 최대한 게임기에 접목한 기기가 비타였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의 터치조작, 즉 보편적인 조작감과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휴대폰 3G망 기능을 추가, 게임 소프트를 ‘어플리케이션’의 개념으로 접근한 점, 이런저런 어플리케이션들을 이용해서 현재 흥하고 있는 SNS나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었다는 점, 게임 매시징 기능을 통해서 PSN 친구끼리 소통할수 있는 등등은 비타의 포부가 스마트폰의 컨셉을 게임 기기 자체에 접목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대세와 흐름을 따라가는 기기. 그렇기에 실패할 수 없는 기기. 그것이 바로 비타였다.


하지만 현재 비타의 상황이 어떤가? 휴대용 기기 시장이 강세인 일본에서조차 경쟁기인 3DS는 커녕 자신의 구세대 기기인 PSP와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일본 바깥의 시장에서는 있는지 조차 의문일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기기가 바로 PS 비타다. 경쟁기기인 3DS 소프트들이 일본시장 단독으로 백만, 2백만, 3백만을 찍고 있는 동안, 비타는 단독으로 30만장도 넘는 소프트가 없는 등 그야말로 고전의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발매 2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비타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연말까지 충만한 3DS 소프트 라인업과 다르게, 비타의 라인업은 전적으로 빈곤하기 그지없으며 설령 괜찮은 타이틀들이 몇몇 섞여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킬러타이틀이 부재하고 있다. 심지어 2014년으로 라인업을 넘기더라도, 비타의 라인업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비타가 현재까지의 상황에 봉착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비타의 기기 컨셉은 전적으로 스마트폰에 기초하고 있지만, 비타는 스마트폰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할 거리, 즉 앱이 전적으로 부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현재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축을 차지할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타는 어떤가? 전통적인 패드 인터페이스에서부터 시작해서, 후면터치, 전면터치, GPS, 마이크, 후면/전면 카메라, 모션센서에 한국외 지역 한정이긴 하지만 3G기능까지. 비타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오히려, 스마트폰보다 크기가 커진 대신에 게임에 있어서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비타에는 할 것이 없다. 얼마나 할 것이 없는지, 그 기능들을 모두 사용하는 게임이나 어플리케이션을 본적이 없을 정도다.


이는 전적으로 기기를 만드는 컨셉과 별개로 소프트를 만드는데 있어서 소니가 ‘철학’이 부재하였다 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오히려, 이는 비타의 막강한 ‘기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면터치와 후면터치의 양립, 처음본다면 상당히 신선하고 새롭다. 어찌보면 DS의 양면 스크린을 의식한듯한 이 양면터치는 역설적이게도 게임 소프트의 조작감을 갉아먹는 암적 존재로 둔갑한다. 양면터치를 활용한 퍼스트 파티 게임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패드 파지법에 저항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데, 예를 들어 리틀 빅 플래닛의 경우에는 후면터치로만 조작하는 스테이지에서는 보통의 패드 파지와 다르게 한손으로 비타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보이지도 않는 비타의 후면을 툭툭 건드리는 이상한 조작을 강요하기도 한다.


일찍이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만들었던 이나후네 케이지는 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비타의 인터페이스는 전적으로 취사선택하여 사용해야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비타를 돌려서 까는 발언인데, 비타의 인터페이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튀는 부분, 사용하기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 바로 비타의 후면터치이며, 결정적으로 소울 새크리파이스는 후면터치를 사용한 부분이 이스터 에그적인 부분 밖에 없었다. 오히려 비타 게임 치고 상당히 재밌고 잘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게임들은 후면터치를 ‘강제’하지 않거나 후면 터치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비타의 실패는 ‘전세계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 휴대용 기기라는 ‘틈새 시장’은 전적으로 스마트폰 게임 시장이라는 강력한 ‘대체시장’에 밀리고 있으며, 비타의 실패는 전적으로 일본 시장에서의 실패로 국한지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소니의 퍼스트 파티를 제외하고 일본 개발사들이 비타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란 비타의 단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비타의 장점이란, 직접적인 경쟁자인 3DS와 간접적인 경쟁자인 스마트폰 게임들까지 다 합쳐서 ‘강력한 성능’과 ‘다양한 인터페이스’ 정도다. 하지만 지난 비타의 라인업들 중에서 이 둘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페르소나 4G의 경우, 게임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JRPG로서 잘 만든 게임이고, 장시간 플래이해야하는 장르 특성상 들고 다니면서 하기 편한 플랫폼인 비타와 궁합이 잘 맞았을 뿐 이것이 비타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게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킬존 머서너리는? 리틀 빅 플래닛은? 다들 괜찮은 게임이긴 하지만, 이것들을 들고 다니면서 해야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 자체로는 ‘실패작’이라 분류할 수 있는 그라비티 데이즈가 아이러니하게도 비타가 나아가야하는 이상향-비타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의 제공-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지역외 한정으로 3G 비타의 경우에는 사정은 더욱 엉망이다. 비타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그런데 이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비타의 성능과 인터페이스를 감안하면 전통적인 MMORPG를 비타로 이식하고 3G 모델과 결합시키는 것은 상당한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타로 나온 MMORPG는 판타시 스타 온라인 2 밖에 없으며, 앞으로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가 나올 예정이긴 하지만 2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달랑 2개 밖에 없다는 점은 도대체 3G 기능이 왜 필요한가 싶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3G 기능과 게임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비타의 3G 기능은 무엇에 쓴단 말인가? 비타가 지원하는 빈약한 소셜 네트워크 기능은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에 밀려서 의미가 퇴색한다. 결과적으로 3G 비타는 정말로 쓸모없는 기능인 것이다.


비타의 실패는, 3DS의 성공에 비추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기 발매전 컨셉 자체는 3DS의 실패가 명확해 보인다. 3D 영상의 활용과 강화된 DS라는 컨셉이라는 3DS의 심플한 컨셉은 3D 영상의 퇴조와 함께 자기 소프트 내에서도 3D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기가 적을 정도가 되는 등 3DS의 3D영상 정책은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기의 한계 때문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여전히 DS에 매달려 있으며,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들, 예를 들어 인터넷 브라우징 기능의 경우에는 차라리 없는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엉망인 측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3DS의 성공은 그런 부차적인 기능의 부족함이 드러내기 보다는 게임 자체에 집중하면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몬헌 4의 경우, 완벽하게 기기 성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재미에 있어서는 헌팅 액션의 원류임을 작품 자체로 과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재밌는 점은, 다른 헌팅 액션이나 게임들이 기기의 성능이나 한계, 또는 불편함 때문에 혼자서 하는 게임을 강요하였다면(심지어 비타로 나온 다른 게임들마저도 그러하다!), 몬헌 4의 경우 엄청나게 쾌적한 온라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서 역설적이게도 ‘온라인’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게임이 되었다. 멀티플래이 환경을 편리하게 조성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간략하게나마 제한하면서도 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넣어두는 등, 몬헌4는 ‘부족하지만 그나마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포켓몬 X,Y의 경우, 오히려 비타의 모든 게임들보다 스마트폰 시대의 소셜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기존의 게임들과 스마트폰 시대의 게임들 사이에서 하이브리드되어 태어난 기묘한 게임의 모습을 보여준다. 와이파이이라는 지역적인 제한에 의존하고 있는 멀티플래이 환경이지만, 지나간 사람-아는 사람-친구 사이의 관계와 O파워를 통해서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 프로모션 동영상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미라클 교환으로 모르는 사람과 재미로 교환을 하는 등등의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포켓몬스터 XY가 완벽하게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3DS라는 제한된 기기 환경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래이에 있어서 필요한 인터페이스들을 대부분 구축하고 있으며 불편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게임에 있어서 소셜 게임적 요소를 집어넣은 시도들은 브레이버리 디폴트 같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런 3DS의 강세가 시사하는 점은 게임에 있어서 기기의 성능과 하드웨어적인 인터페이스는 종속적인 문제로, 결국은 얼마나 그 기기가 갖고 있는 인터페이스나 특징들을 활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아이디어’가 뛰어난가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니가 인디 게임 제작자들을 자사의 비타 게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비타에 있어서 희망이자 동시에 무저갱과도 같은 절망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외부에서부터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소니의 굳은 의지와 함께, 대규모 자본이 들어갈 여지가 사라지는 점, 그리고 자신들은 비타로 아이디어를 낼 ‘능력’ 자체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