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사진과 본문은 하등관계가 없습니다.


게임 감상 및 비평에 있어서 세가지 갈래-수집가, 게이머, 그리고 비평가.

미디엄에 올린 글을 블로그에 맞게 재편집해서 올립니다.

(https://medium.com/p/6674253e1918)


유튜브와 함께 소위 UCC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화 비평(감상, 또는 무엇이든 간에)에 있어서 새로운 흐름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영상으로 비평/감상 하기’다. 기존의 비평/감상들이 철저하게 활자화되었다면, 이들 UCC 시대의 비평/감상은 양식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이전 세대와 궤를 달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UCC에 있어서 1세대라 할 수 있는 제임스 롤프-AVGN, 그리고 그의 뒤를 잇는 앵그리 죠와 제로 펑츄에이션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물론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게임 영상 제작자들이 있지만, 본인이 1차적으로 감상한것과 함께 한국에까지 자막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영상만 다루고자 한다.








제임스 롤프, 이제는 앵그리 비디오 게임 너드, 줄여서 AVGN으로 유명한 이 인디 영화 제작자는 2004년 친구들끼리 돌려보려고 만든 캐슬배니아 욕설 리뷰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고 2006년부터는 이러한 컨셉을 발전 계승한 만든 AVGN 시리즈가 지금까지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스타이자 모든 게이머들의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자세한 역사와 특징들은 우리 모두의 친구 엔하 위키를 확인하시라! http://rigvedawiki.net/r1/wiki.php/The%20Angry%20Video%20Game%20Nerd?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AVGN의 특징을 아주 거칠게, 세가지로 축약하자면


1.오로지 옛날 게임, 그것도 망한 게임만을 다룬다.

2.그리고 망한 게임을 하는 궁극의 자학을 한다.

3.그 과정 중에 욕을 쓴다. 특히 창조적인 욕을 많이 쓴다.


이다. 사실, 성공 요인들이 단순해 보이기 때문에 AVGN의 성공 이후 많은 AVGN의 마이너 카피들이(게임을 하면서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쌍욕을 하면서 까는) 유행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AVGN에 대해서 쉽게 간과하는게 있다면, AVGN이 쌍욕과 저급한 유머들, C급 영화에도 안쓰일법한 특수효과를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AVGN은 제임스 롤프의 치밀한 계산 위에 짜여진 시리즈라는 것이다.


제임스 롤프가 AVGN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지점은 추억의 재구축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AVGN이 추억을 구축하는 지점은 좋은 기억들, 좋았던 옛날에 대한 반추가 아닌, 전적으로 부정적인 기억들(망한 게임, 또는 게임기들에 의해서 고통받았던 어린날의 기억들)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이 재해석은 바로 추억을 추억으로만 회고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낡은 NES(패미컴)에 정품 팩을 꽂고 게임을 다시 플래이하는 ‘행위’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제임스 롤프는 이 행위를 철저하게 단편/저예산 영화의 문법에 의해서 구축한다.


이 옛날 게임을 ‘다시 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변증법적이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고(추억으로서 존재하는 정명제), 어른이 된 제임스 롤프가 이를 다시 플래이함으로써(추억에 대한 반명제), 추억 속의 쉿게임에 대한 새로운 결론을 도출한다(추억과 현재 행위의 결합, 합명제. 동시에 재밌는 점은 제임스 롤프는 어떻게든 과거에 클리어하지 못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그것이 게임 지니라는 치트라도-을 다 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게임의 시작, 플래이, 엔딩이라는 게임의 흐름과 함께 에피소드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AVGN의 에피소드들은 에피소드 내에서도 철저하게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그때그때의 즉흥적인 감정에 근거해서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계산을 하면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AVGN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욕설조차, AVGN 메이킹 영상에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고 제임스 롤프는 고백한다.(그가 처음 플래이 할 때, 욕설을 고안하는 장면, 그 버벅거림이란 AVGN이 단 한번의 촬영이나 즉흥적인 감성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리고 AVGN은 과거의 서브컬처 전반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인용을 보여주는데, 요즘도 통용되는 ‘영화 원작이 있는 게임=망게임’이라는 공식이 적용된 게임을 할 때 그는 아주 능숙하게 그 원작요소들을 ‘낡은 질감’의 형태로 재현한다. 공포영화 원작 게임을 다룬 에피소드들을 예로 들어보자. 마이클 마이어스, 제이슨 부히스, 프레디 등등이 나와서 제임스 롤프를 괴롭히는 이 에피소드들은 원작 영화들의 요소들과 게임 이야기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구성을 보여주며, 원작의 B급 특수효과들을 아련한 싸구려 특수효과로 다운스케일링하는 동시에 홈메이드적인 감수성과 그 시대 그 영화들에 대한 추억으로 재구축한다.(이 때가 AVGN이 가장 찬란하게 빛난 시기였다) 특히 프레디의 갈퀴손에 대항해서 파워글러브를 꺼내들어서 승리를 거둔 제임스 롤프가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 파워 글러브를 다루는, 부드러운 전개는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문화 패러디와 게임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데 성공한다.


AVGN 시리즈가 장기화되면서, AVGN 시리즈의 특징들은(1.망게임/망게임기를 플래이한다 2.철저히 의도되고 계산된 에피소드 구성 3.실제로 플래이함을 통해서 추억을 현재의 기억으로 재구축한다) 하나의 ‘수집가’적인 특징을 띄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리뷰 게임들은 롬이나 복사팩이 아닌 진품을 구매해서 한다는 AVGN의 철칙이나, 32X를 리뷰할 때 ‘게임 윗면에 팩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서 진열장에 진열하기 어렵다’라는 불만을 토로할 때의 제임스 롤프의 모습은 그가 정진정명 콜렉터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AVGN의 에피소드들이 ‘수집’하고 있는 게임의 역사들-정확하게는 망한 게임에서부터 게임기(32X나 세가 새턴 CD, 인텔리비젼 등등), 그리고 심지어는 게임이 망하지는 않았지만 ‘실패한’ 역사(하이드라이드 에피소드 같은)와 이제는 흐름 저너머로 사라져버린 것들(닌텐도 영화 에피소드 같은)과 추억(모탈 컴벳, 킬러 인스팅스)까지- 마냥 옛날에 대한 올드 게이머의 향수가 아닌 게임계 전반의 ‘실패와 사라진 것의 역사’를 구축함으로서 다른 UCC들과의 독자적인 차별성을 확립한다.


예를 들어보자. 파워 글러브 같은 경우, 모션 센서를 이용한 조작이란 개념은 훗날 Wii의 조작 개념으로 발전 계승된다. 붉은색과 검은색 단색의 적흑의 3D 입체 게임기였던 버추얼 보이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지만, 훗날 3DS의 3D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다시금 부활을 맞이한다. 또한 에피소드 전반에 깔려있는 ‘난이도 조절’에 대한 문제제기, 조작에 대한 문제제기(실버서퍼의 경우 그 누가 셀렉트 버튼이 폭탄인줄 알았겠는가?)등등은 철저하게 게임산업이 평균화 되기 이전 중구난방이었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훌륭한 ‘사료’로 볼수 있다. 게임의 선정성과 잔혹성? 아타리 포르노 에피소드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에피소드들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문제제기를 엿볼 수 있다. 이와같이 제임스 롤프가 구축하고 있는 게임업계 실패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와 밀접하게 맥락이 닿아있다. 이 과거를 재구축하는 수집가 제임스 롤프는 거대한 과거를 인과관계로 구성하는 역사가와 다르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재성을 갖고 있는 물건들을 끄집어내고 플래이하고 살려냄으로서 우리가 현재의 게임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벤야민이 에두아르트 푹스를 위대한 수집가라고 일컬었듯이, 먼 훗날에 제임스 롤프 역시 위대한 수집가로서 기록될것이라 나는 믿는다.






앵그리 죠 쇼는 아쉽게도 본인으로서는 많이 보지 못한 시리즈다. 사실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것도 얼마 안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앵그리 죠 쇼가 기존의 UCC와 다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몇편 안되는 에피소드에 기초해서 봤을 때), 그것은 바로 그가 ‘게이머’라는 것이며 그것을 순수하게 즐긴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적인 동시에 날카롭다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우리 모두의 친구 엔하위키를 참조하시라 http://rigvedawiki.net/r1/wiki.php/The%20Angry%20Joe%20Show?action=show )


앵그리 죠 쇼는 사실 ‘빡친다’라는 감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욕을 남발하는 AVGN의 아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그의 리뷰는 철저하게 ‘정론적’이다. 그는 게임 영상과 자신이 플래이한 감각, 그리고 느낀 점을 근거를 들어서 조목조목 나열한다. 이렇게 봤을 때, 앵그리 죠 쇼는 오히려 AVGN의 좋은 점들(무작위로 보이지만 철저하게 계획되고 계산된)을 갖고 들어온 듯 한데, AVGN이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영화로 구성했다면 앵그리 죠의 에피소드들은 각각이 하나의 ‘쇼’이다. 물론 대본과 리뷰에 대한 이야기, 치밀한 분석 등등에서 앵그리 죠 쇼는 ‘계획된’ 부분이 많지만 동시에 그가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행동들(분노의 허우적 거림이나 특유의 표정, 특히 함박 미소라던가)은 연기라기 보다는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발악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긍정적인 의미다)


앵그리 죠 쇼가 AVGN이나 다른 게임 UCC에 비해서 차별될 수 있는 점은, 바로 그의 트랜드에 대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반응이다. 엑스박스 원 컨퍼런스 때 그의 실망과 분노는 그다운 직설적인 반응이었다. 동시에 그런 솔직함을 뒷받침하기 위한 치밀함을 보여주는게 앵그리 죠이다. 특히 라이드 투 헬:레트리뷰션 같은 희대의 망작의 경우에는 무려 20시간(!)에 걸쳐서 게임을 플래이한 후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딥 실버와 관련된 이야기와 과거의 뉴스들까지 모두 정리해서!)까지 들고오는 치밀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앵그리 죠 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AVGN과 유사한 화난 게이머라는 컨셉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치밀한 대본과 연출,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의 인용 등등이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와 차별될 수 있는 것은 트렌드에 대한 그의 즉각적인 반응과 동시에 그의 솔직하고 진솔한, 어떤 측면에서는 게이머들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 덕분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제로 펑츄에이션이 있다. 얏찌라 불리는 인디 게임 제작자(그는 5 Day a Stranger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가 만드는 리뷰 시리즈로, 말그대로 Zero Punctuation, 쉼표가 없다는 제목을 반영하는 듯한 속사포같은 말솜씨가 인상적인 리뷰 시리즈다.(자세한 내용은 우리 모두의 친구 엔하 위키를 참조하시라. http://rigvedawiki.net/r1/wiki.php/Zero%20Punctuation )


하지만 이 게임 리뷰 시리즈는 위에서 다룬 시리즈들과 전적으로 다르다. 제로 펑츄에이션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아니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얏찌의 엄청난 ‘독설’ 때문이다. 제로 펑츄에이션을 즐겨 듣는 사람들 조차도 얏찌의 말은 몇마디 건너 뛰어서 받아들여야한다고 할 정도로 독설로 가득찬 이 시리즈는 에피소드 3분 동안 칭찬이 한 두마디 정도 나오면(심지어는 비판하는 부분이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서 적게나온 것만으로도!)그것만으로 훌륭한 게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할 말을 다한 셈이라 볼 수 있다.


얏찌의 이 시리즈가 이런저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철저하게 게임을 한 사람들에 입장에서는 공감을 할 수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다. 본인의 경우에는 몬스터 헌터 트라이에 대한 얏찌의 리뷰에 대해서, 시리즈의 팬으로서 상당히 불쾌함을 느꼈는데 기본적으로 얏찌가 공격하고 있는 지점들은 바로 시리즈의 기본틀들이며(‘몬스터를 상대하고 본인의 실력과 장비를 향상시키면서 더 강한 몬스터에 도전한다’) 이를 조롱하고 몬스터 헌터를 하는 사람들을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얏찌의 리뷰 원칙은 철저하게 ‘싱글 플래이’ 위주이기 때문에(심지어 2회차도 안하는듯 하다) 현재의 트랜드(멀티플래이)에서부터 대단히 벗어나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얏찌가 이 시리즈를 구축하는 근본 지점은, 다른 시리즈들과 완벽하게 다르다. 다른 시리즈들은 게임 내부로 들어가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게임을 다루었다면, 얏찌는 게임을 플래이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게임 외부에서 게임을 평가한다. 얏찌가 공격하는 지점들은, 게임을 즐겨본 게이머라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아주 근본적인 지점들인 동시에 ‘게이머가 간과하는 지점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와우에 대해서 “대체 어떻게 사람이 WoW 같은 물건을 리뷰해요? [레벨 어업!] 게임의 오락적 가치를 볼려구요? 그 씨발 킬수를 볼려구요? 왜냐면 그 노동력 손실에 방치돼서죽어간 아기들 수를 계산해보면 주요 자연재해와 동급인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한데요.”(트위터 계정 @zero_kr_bot 인용)라고 평가한다. 사실 와우를 재밌게 사람들로서는 불쾌할 수 밖에 없는(자신의 레벨업과 노동력 손실로 죽어간 아이들을 연관시키면서 사람 신경을 긁는) 언사인데, 동시에 얏찌가 이런식으로 비판을 한 지점들, 레벨업과 엔드 컨텐츠에 천착하는 게임의 구조에 대한 얏찌의 전방위적인 비판은 그러한 기분 나쁨을 뒤로 하고 생각해본다면 게임 전체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작가주의’적인, 동시에 게임에 대한 얏찌의 확고한 시각들은 게이머로 하여금 건강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GTA 5 리뷰에서는 하이스트 준비 미션의 경우 플래이어의 선택 문제를 두고 ‘샌드박스 게임에 있어서 선택의 문제란 이런겁니다. 결국 게임에 큰 영향을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게이머한테 선택권을 주는척 하는 것일 뿐이거든요’라고 단박에 GTA5와 샌드박스 게임을 동시에 까버리는 신묘함을 보여준다. 그런 그의 의식은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는 정도로 강박적인데 스펙 옵스:더 라인의 리뷰의 경우에는 ‘제가 이 게임을 깔만한 요소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아마도 잘난척하는 이야기가 되버릴 겁니다(방구소리)’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심지어 배트맨:아캄 어사일럼 리뷰 도중에 스스로 ‘나는 비판을 통해서 칭찬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욕하지 않은 부분은 다 괜찮아요’라고 밝히기 까지 하였다.


얏찌의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철학은 스펙 옵스를 통해서 어떤 확고한 지점에 도달하는데, 게임이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게임이 게이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그만의 어떤 기준이 있음이 뚜렷해진다. 물론 그 외의 그가 좋다고 평가한 게임들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얏찌의 리뷰가 그의 주관에 사로잡혀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비판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얏찌는 스스로의 확고한 철학에 기초하여 게임을 리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런 ‘타협하지 않는 지점들’ 덕분에 그로 인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가치를 확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얏찌의 리뷰가 게이머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게임 내부에서 게임에 매료된 게이머가 아닌, 게임 외부의 냉소하는 게이머가 모든 내부의 존재에 대해서 아주 직관적인 공격이자 편견을 드러내어 게이머를 불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게임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리시키는 효과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리뷰는 전적으로 불친절하며 듣는 사람들에게 이질적이다. 그의 리뷰들은 철저하게 영상매체 친화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차갑게 기호화 되어있으며(다른 UCC들이 제작자들의 얼굴이 들어간 것에 비교하면, 얏찌는 스스로를 졸라맨과 같은 극단적인 기호로 치환시켜 버린다), 그의 속사포 같이 빠른 대사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가기 힘들게 만든데다가 심지어 내용까지 불쾌하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불친절함이란 의도적인 장벽이자 의식의 과속방지턱을 뚫고 들어갔을 때, 얏찌의 리뷰는 빛을 발한다. 그가 스스로의 미학이나 철학을 강변하는 장문의, 유저친화적인 리뷰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이정도로까지 ‘성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논쟁을 스스로 만들어냄으로서,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원하는 바(그런 지점들에 대한 논쟁들)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그의 리뷰가 100% 맞다고는 할 수 없다. 얏찌의 확고한 주관은, 가끔씩 그의 리뷰를 청취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조차 낮설고 생소하기 그지없는 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철저한 게임 외부적인 ‘비평가’적 시선은 단순히 게임 구매를 위한 리뷰와 평가를 찾는 것을 넘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자신이 게이머라면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고, 제로 펑츄에이션이라는 시리즈 자체는 편견과 냉소로 가득찬 물건이기에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로 펑츄에이션 시리즈는 끝없이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시리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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