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앞서서(전작 설명)
2005년 발매된 모노리스의 호러 FPS F.E.A.R.는 그 전까지의 FPS와 호러 사이의 결합의 공식을 뒤바꾸어놓은 작품입니다. 예전까지의 호러 FPS는, 아니 대부분의 호러 게임은 서양 스플레터물이나 크리쳐, 좀비물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F.E.A.R. 이전에 발매되었고 호러 FPS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 같은 경우, 그 전에 나온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영화들처럼 서양 호러 영화의 공식에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F.E.A.R.는 여태까지 나온 호러 FPS 장르와 다르게 동양, 특히 일본의 링과 주온류의 공포 영화의 공식을 따랐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조합이었지요.
2005년에 나왔던 F.E.A.R.의 첫 시도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강한 초능력을 지녔기에 어릴 때 시설에 갇혀서 햇빛도 못보고 군사 실험의 희생양이 된 소녀 알마. 그녀는 죽어서도 풀리지 않는 원한때문에 원령이 되어서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원한으로 인해서 생기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상 현상들, 뭔가 있을거 같은 분위기, 세상에 대한 알마의 분노를 대변하는 펙스톤 페텔과 클론병들, 그리고 폐허가 된 공장, 연구실, 텅 빈 사무실 등지의 음습한 분위기 등 동양적인 호러 감성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또한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었던 인공지능과 그래픽은 당시 게이머들에게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전반적인 평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전에도, F.E.A.R.는 평균 88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받아내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러한 평단과 상업적인 성공을 얻은 F.E.A.R.는 후에 모노리스의 손을 떠나서 두 개의 확장팩-Extraction Point와 Perseus Mandate-를 내게 됩니다만, Extration Point는 오리지날 F.E.A.R.의 카피 버전이라는 평을, Perseus Mandate는 완벽한 망작이라는 평을 듣게 됩니다. 모노리스는 Perseus Mandate가 나오기 직전, Project Origin이라는 공식 F.E.A.R.의 후속작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합니다. 개발 당시에는 시에라 측과 F.E.A.R.라는 타이틀을 두고 저작권 분쟁이 있었지만, 발매되기 몇달전 시에라와의 협상으로 F.E.A.R.라는 타이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F.E.A.R. 2:Project Origin
F.E.A.R.2는 F.E.A.R.의 '공식' 후속작입니다. 이는 모노리스가 전에 타임게이트가 만들고 내놓은 Extraction Point와 Perseus Mandate, 이 두작품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만든 F.E.A.R.야 말로 진정한 F.E.A.R.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Extraction Point와 Perseus Mandate에서 진행된 스토리를 부정하고, 원작 F.E.A.R.에서 알마를 가두기 위한 오번의 연구시설 폭파 30분전으로 돌아갑니다. 시점도 원작의 포인트맨이 아닌, 아마텍의 사장인 제네빕 아라스티드를 확보하기 위해 투입된 델타 포스 특수부대의 마이클 베켓의 시점에서 이루어지죠. 이와 같이 F.E.A.R. 2는 아예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E.A.R.2는 전작과 확장팩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4년전의 F.E.A.R.에 비해서 그래픽적으로 발전하였고, HUD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호러영화적인 연출도 전작에 비해서 깔끔해졌고, 물론 무기와 적들도 추가되었습니다. F.E.A.R.2는 전작을 깔끔하게 다듬었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밑에서 하나하나 씩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변화점은 전작의 그래픽이나 게임 내의 연출 효과입니다. 전작인 F.E.A.R.가 그 당시 대단한 수준의 그래픽과 효과를 보여주었고, F.E.A.R.2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작이 보여주었던 당시 PC게임의 극한의 그래픽을 F.E.A.R.2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F.E.A.R.2의 그래픽 엔진 자체는 전작의 그래픽 엔진의 향상 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킬존 2나 최신 언리얼 엔진을 쓴 게임과 비교해서는 더 뛰어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F.E.A.R.2는 극한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게임에 비해서 게임에 알맞는 대단히 역동적인 그래픽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 타격감은 여전히 대단하며, 호러 파트에서의 화면의 왜곡이나 깜빡거리는 효과도 여전히 대단합니다. 그리고 더 대단한 사실은 이러한 효과들이 기존의 엔진의 개량버전을 썼지만, 전작보다 조금 더 높은 사양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소 사양이 Geforce 6600GS라는 것은 이 게임이 얼마나 최적화를 잘 했는지(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요구 사양이 얼마나 낮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이 리뷰는 E6300, 1G, 7600GS에서 쾌적하게 돌리고 난 뒤의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번 F.E.A.R.2는 전작에 비해서 연출적으로 대단히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전작에 비해서 주인공이 대단히 험하게 구른다는 느낌이죠. 물론 전작의 포인트맨도 폭발에 휩쓸려 날아디니거나, 자유 낙하, 뒷통수 맞기 등 험하게 굴렀지만, 이번작의 마이클 베켓처럼 다이나믹하게(?) 굴러다니지는 못했죠. F.E.A.R.2에서 베켓의 시점은은 상황에 따라서 아주 역동적으로 흔들립니다.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과 함께 HUD가 같이 흔들리면서 마치 플래이 하는 게이머도 같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간간히 존재하는 오른쪽 버튼 연타 힘겨루기도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도 덩달아 힘을 쓰게 만드는(물론 나중에 언제 나오는지를 알면 좀 지루해지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몰입감을 줍니다. 이런식의 역동적인 시점은 게임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F.E.A.R.2 게임은 전작인 F.E.A.R.의 게임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클론 병사와 ATC 사설 용병 부대와의 화끈한 액션 파트와 알마가 일으키는 이상 현상을 겪는 호러 파트, 이렇게 두 가지로 게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적들과 펼치는 액션 파트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화끈합니다. 적들은 여전히 똑똑하며, 엄폐물을 잘 씁니다. 내가 엄폐물을 쓰면 수류탄을 던지고, 구석에 몰면 강하게 저항하며, 내가 수류탄을 던지거나 근접전을 펼치면 거리를 두고 도망갑니다. 적들의 AI들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투 파트는 어렵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전작에도 있었던 초반사 신경(일명 슬로우 모션)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슬로우 모션을 쓰는가가 전투의 관건이 됩니다.
F.E.A.R.2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바로 적들이 총에 맞아서 완전히 걸레가 되어버리는 장면들입니다. 슬로우 모션인 상태에서 총을 맞고 빙글 빙글 돌며 춤추듯이 쓰러지는 적들이나, 샷건이나 수류탄을 맞고 뼈와 살이 분리되어 피떡이 되는 장면은 대단히 중독적입니다.(물론 그에 비례해서 잔인성도 대단히 올라갔지만) 또한 게임 속에서 타격감도 일품이기 때문에, 전투가 매우 박력있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러 파트는 여러 가지로 좀 미묘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게임 내의 연출 자체가 대단히 역동적으로 바뀌었듯이, 호러 파트도 이에 발맞추어 깔끔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물론 깔끔한 연출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치 링이나 주온의 구질구질한 느낌을 헐리우드 식의 세련됨으로 포장한 거 같은 느낌입니다. 게임 내에서 알마나 어보미네이션 등의 등장은 깔끔하며, 갑자기 툭툭 튀어나와서 사람을 놀래킵니다. 일단 연출 자체는 무섭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의 구질구질하면서 신경을 긁는 연출은 많이 줄어들었더군요. 좀 아쉽다고 할 수 있죠. 동양적인 호러라기보다는 서양적인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런부분에서는 좀 자제하고 분위기만 띄워줬으면...'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더군요. 뭐, 그래도 호러 파트도 나름 무서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멀티플래이는 전작과 비슷. 물론 전작부터 그랬듯이 F.E.A.R. 자체가 과연 멀티플레이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싱글플레이 중심의 게임이기 때문에 멀티는 그냥 양념수준에 머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칼럼 F.E.A.R. Combat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멀티는 전작과 거의 비슷한데, 총격전+근접 격투전이라는 느낌입니다. 여전히 참여 인원수는 16명 한정이고, 이번작에서는 전작의 슬로우 모션 데스매치를 삭제, 그 대신에 도미네이션의 변형인 기갑전(EPA를 타고 도미네이션을 하는 모드)을 넣었더군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F.E.A.R.2 멀티는 팀 데스메치/데스메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차라리 슬로우 모션 데스메치를 부활시켰으면 하더군요.
일단 이렇게 따지고 본다면 F.E.A.R.2는 괜찮은 타이틀입니다. 전작인 F.E.A.R.에 비해서 연출도 좋아졌고, 전투는 박력있고 화려해졌으며, 호러 파트는 깔끔해져서 미묘하게 변하기는 했지만 무섭기는 여전히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번작이 생각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F.E.A.R.가 메타크리틱 기준 평균 88점, F.E.A.R.2가 메타크리틱 기준 평균 80점) 전작을 발전 계승만 했지, 전작에 비해서 혁신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작과 비슷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F.E.A.R.2는 완성도 자체는 높은 게임입니다. 물론 이번작에서 스토리상 엄청난 떡밥을 던져놓는 바람에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거 3편 노린건가' 싶을 정도이기는 합니다만, 게임의 몰입도는 매우 높고 잘 만들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