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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불린 사람은 하늘색 리본을 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겠지."


-파울로 파졸리니 감독,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미하일 하케네 감독은 동생(giantroot)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도덕적인' 새디스트입니다. 미하일 하케네 영화는 사람을 견딜 수 없게 고문합니다. 퍼니 게임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반전을 보여주고, 히든에서는 사람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엔딩을 보여주죠. 하지만, 미하일 하케네 감독이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상황이 보여주고 있는 인간의 추악함과 그로부터 인간이 각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고문한다는(?) 측면에서 미하일 하케네는 도덕적 새디스트라 불릴만 합니다. 사실, 하얀 리본이라는 영화 자체도 이러한 미하일 하케네 식 새디즘이 여지 없이 발현된 영화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표현양식과 연출, 미장센 덕분에 놀라운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인 교사가 마을 의사가 낙마사고를 당하는 것을 회상하면서 시작합니다. 마을 의사의 낙마사고에서부터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까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을에서의 일상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을 통해서 인간의 추악함을 낱낱이 까발리죠. 사실, 하얀 리본의 플룻은 낙마사고 이후 일어난 이상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실을 찾아나가는 노력이나 과정보다는 사건에 대처하는 인간 군상들의 반응과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진행될 수록 평범해 보이는 마을이 사실은 광기와 뒤틀림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자신의 책임을 나몰라라 하는 남작, 자신의 딸을 범하는 의사, 자신의 아이들에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목사 등등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속은 모두 썩어있죠. 이러한 세계를 미하일 하케네는 고전 예술 사진의 프레임을 그대로 본따서 짜냅니다. 아름답고 정물화를 보는 듯한 정교한 미장센 위에 인간들의 추악한 이야기를 덧칠함으로서 하얀 리본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미칠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하얀 리본을 지배하고 있는 코드는 바로 '침묵'입니다. 마을을 지배하는 역겨운 기운에도 불구하고 그 아무도 문제를 소리내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의사와 그 조수의 불륜 후의 대화, 남작의 수확제 연설, 목사의 예배,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아들, 목사가 가족에게 하는 이야기 등등 영화 내에서 침묵은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영화 내에서 모든 대화는 공허합니다. 대화 내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탈을 쓴 인형들이 서로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말하는 듯한 낯섬까지 느껴집니다. 이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 그리고 그 가족 사이의 대화와 대칭된다고 할 수 있죠. 하케네는 이러한 침묵을 정적인 카메라 워크와 롱태이크로 잡아냅니다. 앞서 이야기한 정교한 미장센, 정적인 카메라워크와 롱테이크가 서로 얼기고 섥히면서 보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립니다.


하얀 리본에서 중요한 소재는 바로 아이들입니다. 보통 아이들이란 어른들의 추함과는 거리를 둔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영화 하얀 리본에서는 마을이 만들어낸 타락의 핵심이자 정점이 바로 아이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영화는 영화 내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을 아이들이 일으킨 것으로 암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할 것을 요구하는 교사에게 침묵합니다. 또한 아이들의 부모인 목사도 교사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하죠.


재밌는 점은,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미하일 하케네는 영화 내에서 아이들이란 존재를 순수하거나 어른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존재가 아닌 어른 사회의 충실한 반영이자 카피로 묘사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묘사하지는 않고 은연중에 이를 암시하면서 아이들이 이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은 어른들 역시 악을 보면서 침묵하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게다가 어른들, 특히 목사가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메어주는 장면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허위와 가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얀 리본은 놀라운 영화이며, 20세기 유럽 사회의 문제점을 잘 짚어낸 역작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덧.이번 리뷰는 망했네요...그냥 적당히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