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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모레 델라모테는 과거 제가 리뷰했던 작품, 아쿠아리스(리뷰는 여기로  http://leviathan.tistory.com/966 )의 감독인 미쉘 소아비가 만든 좀비영화입니다. 북미 쪽 제목으로 Cemetery Man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보다는 원제인 델라모레 델라모테(Dellamorte Dellamore)라는 제목이 훨씬 더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밑에서 정확하게 분석하겠지만, 이 영화는 미쉘 소아비가 나름대로의 야심, 혹은 노림수가 다분히 깔려있는 작품입니다. 그냥 웃으면서 넘기기에는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많은 작품입니다. 사실, 툭까놓고 이야기해서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뭔가 미묘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죠.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영화 자체가 함축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서 자막은 뭔가...부족하더군요. 귀에 들리는 영어하고 자막하고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히어링이 된다면 자막 없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비선형적입니다. 오히려 상황극에 가까운 영화죠. 상황은 간단합니다. 마을 공동묘지에 사람을 묻으면 며칠이 지나서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다. 좀비로요. 그리고 묘지기 프란체스코 델라모테는 매일 밤 살아나는 좀비들과 투닥거립니다. 이렇게 투닥거리는 와중에 주인공인 프란체스코의 사랑을 만나고, 해어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묘지기로서의 역할과 어딘가 불현듯 떠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안좋은 형태로 결말을 맞이하고, 더이상 현실을 참을 수 없는 그는 묘지 밖으로 탈출합니다.


영화 내에서 공간의 개념은 이원적입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돌아오는 공간인 묘지,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델라모테 델라모레의 독특한 분위기와 컨셉 여기서 나오는데, 일반적인 좀비 영화에서의 관념, '비일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좀비'가 무너진 기묘한 공간 구도를 보여줍니다. 영화 오프닝 시퀸스, 집을 찾아온 좀비를 대수롭지 않은듯이 보고 총으로 쏴 죽이는 주인공 델라토레의 모습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며, 사실 마을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뿐 대부분 마을 공동묘지에 사람을 묻으면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지 않으고 쉬쉬하며, 묘지를 관리하는 주인공과 그 조수를 불길하게 생각하고 경멸하죠.  


전반적으로 영화는 죽은자들의 공간에서 사는 기묘한 묘지기, 델라모테의 관점에서 진행됩니다. 그의 시점에서 본 산 자들의 세계는 경멸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경박한 젊은이들, 죽은 딸을 이용해서 시장 선거에 재선되려고 하는 시장, 부패한 관료들, 돈으로 사랑을 파는 여자 등등...델라모테의 입장에서는 경멸받고 외면받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세상 그 자체입니다.  

죽음과 삶의 이원론은 많은 영화에서 사용한 장치입니다만, 델라모테 델라모레의 관점은 여지껏 등장한 영화들과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이를 드러내는 단적인 장치가 바로 주인공, 프란체스코 델라모테라는 이름의 유래와 그의 기원입니다. 죽음의 성인인 '프렌체스코'에 성인 Dellamorte에서 Morte, 이탈리아 어로 '죽음' 자체를 의미합니다. 사실, 그의 산자들보다 죽은자들과 더 가까이 지내는 모습이나, 살아있는 사람들로 무시당하고 경멸당하는, 심지어는 '부정'당하는 모습에서 그의 존재가 '죽음'그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자식에게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준 그의 어머니는 이름이 Dellamore, 즉 Amore(사랑)의 화신이라는 것이죠. 감독은 죽음의 어머니는 사랑이라고 설정함으로서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다'라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만들어냅니다.


뭐, 사람들이 종종 잊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어떤 생명이든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 죽음으로 끝을 맺죠. 시종(始終)은 여일(如一)하니, 이 두 관념을 분리해서 보지 말자는 것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특히 영화 전반의 핵심적인 사건들은 델라모테의 사랑과 본질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그는 자신이 사랑한 미망인과 납골당에서 섹스를 하고, 미망인은 섹스 후에 좀비에게 물려서 죽음을 맞이하고(엄밀하게는 좀비로 변했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실수로 죽인거지만), 다시 좀비로 변한 미망인과 주인공이 키스를 하는 등 죽음과 사랑의 이미지가 교차반복되어 드러납니다. 그 후로도 델라모테는 계속해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하죠. 


그리고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계속해서 부정당하는 현실에 지친 델라모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죽여서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한 것이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매번 그가 누구를 죽일 때마다 누군가 그의 죄를 뒤집어 씁니다. 심지어 백주대낮에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쏴죽였음에도 그의 살인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되지 못하죠. 그리고 영화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본업을 포기하고 묘지를 떠납니다. 하지만, 그 일탈의 끝은 낭떠러지였고 결국 그는 그를 기다리는 묘지로 회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죽음이 있어야 할 곳은 묘지뿐이라는 것이죠.


델라모레 델라모테는 좀비영화의 탈을 쓴 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보통의 좀비영화가 시체를 갖고 장난질을 하는 것이 주요한 이야기의 도구라면, 델라모레 델라모테는 좀비란 단지 상황에 불과한 특이한 작품이죠. 죽음을 부정하는 세계를 향한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