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1.

"취직전 미국으로 대학 졸업 여행 중이었던 사키는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에 워싱턴 D.C에 들른다. 그녀는 백악관에서 앞에서 백악관을 향해 동전을 던지고, 곤경에 처한 와중에 알몸에 권총으로 무장한 타키자와 아키라와 만나게 된다."

-동쪽의 에덴 1화 中

카마미야 감독의 동쪽의 에덴은 일본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사회에 불만은 있지만 나서서 움직이지 않고 방관하는 젊은 세대들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젊은 세대를 내팽게치는 기성세대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성격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궁금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주인공인 사키는 미국 정치의 중심인 백악관에 동전을 던짐으로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2.

지난 칼럼에서 일본이란 나라의 정치적 특수성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사실, 일본이란 나라의 정치성과 문화, 그리고 사회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특수한 형태입니다. 형사 재판 유죄 판결의 비율 99.9%, 위헌 심판이 제기된 수백 수천건 중에서 60년간 단 5건의 위헌 판결, がたすかし 판결(주요 논지를 빗겨나가게 판결하여 법적, 정치적 논쟁 및 결단을 회피하고자 하는 판결), 국회의원 아버지 선거구를 아들이 이어받는 모습, 헌정 통치 60년 동안 우익인 자민당의 사실상 일당 독재, 관료가 국가의 중심인 나라 등등 과연 일본이란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죠. 오죽하면 일본인인 카마미야 감독도 SAC 2기에서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내용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라고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이러한 흐름은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일본은 근본적인 경제 구조 및 사회 구조가 무너집니다. 일신 고용제와 회사원은 회사의 한 가족이라는 개념, 회사 복지 체제 등으로 새로운 국가 경제 체계의 스텐다드를 세계에 보여주었던 일본은 정적이고 안정적인 사회 구조를 유동적인 형태로 바꾸게 됩니다.

이 때부터, 일본에 새로운 젊은 세대가 등장하게 됩니다. 기존의 공동체 주의나 전체주의적 사상에서 벗어나 서구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젊은 세대는 일본 기성 세대와 많은 사고 및 문화적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들이 소위 일본 사회에서 ‘신인류’라고 불리는 집단입니다.

이들은 과거 기성세대들의 정치적 수동성이나 개성의 말살 등에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과 전면적인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죠. 그러나 90년대 말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일본 사회 구조가 유동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계기로 일본 신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은 가시화 됩니다. 그리고 ‘과거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구조에서 편하게 지낸 기성세대들은 이런 불안정한 사회를 우리에게 넘기고 책임회피를 한다’ 라는 신세대의 불만은 기성세대가 쌓아온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되죠.(덧. 역으로 일본 기성세대는 이를 일본 신세대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일본 셀러리맨들이 주로 보는 만화 '시마 과장'에서는 심지어 일본이 경쟁력을 잃는 문제를 신세대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세대의 불만은 일본 사회 전반에서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대중문화, 일반적인 생활양식, 정치성의 표출 등으로 말이죠.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는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집권 여당을 바꾸는 기염을 토해내기까지 합니다.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및 만화에서도 이러한 일본의 젊은 세대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쪽의 에덴, 코드 기어스 시리즈, 공각기동대 SAC 등등 전과 다르게 일본 사회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흐름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다양하니, 밑에서 자세하게 분류하여 다루도록 하죠.





3.기존의 현실에 대한 비판

'당연'하게도 최근의 일본 애니메이션 및 대중문화는 기성 세대와 정치 구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대합니다. 이는 일본의 관료, 정치가들에 한정된 경우에서부터 일본 사회 전반, 여기에 심지어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경우(ex.동쪽의 에덴)까지 다양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갈등의 구조가 젊은 세대-기성 세대의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오메가 트라이브 킹덤이죠. 인류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퇴보하기 시작할 때, '신인류'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이 만화는, 노골적으로 니트, 폭주족 등의 소위 '사회부적응자'에 의한 혁명을 주장합니다. 만화에서 '진화'라는 요소만 빼고 본다면 일종의 정치 드라마로까지 보일 수 있을 정도죠. 또한 '가면전사 아쿠메츠' 같은 경우에는 학생이 기성사회의 사회악을 처단하는 존재로 등장하였고, '동쪽의 에덴' 같은 작품에서는 썩은 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젊은 구세주가 등장하기도 하였죠. 아예 '코드 기어스' 같은 작품에서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아들 이라는 테마까지 나오기도 했죠.

이러한 불만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과거 경제성장 시절 때 많은 것을 얻었던 기성세대에 비해 불안정한 사회에서 고통 받는 젊은 세대의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 두 번째는 급격하게 바뀌어가는 사회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 일본 식의 정형화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강한 불만입니다. 게다가 과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접합점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 있어서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일련의 이러한 흐름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의 갈등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특히 사춘기를 전후로 한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과 이를 타겟으로 하는 저항적인 대중문화 성향을 고려하면 이러한 내용의 작품들이 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0년 이전의 일본에서 그러한 저항적 속성을 지니는 문화 흐름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과 최근의 정치적 흐름의 변화 등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정치 비판적인 대중문화의 흐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4.미국에 대한 비판

상당히 생뚱맞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우스개 소리로 '답이 없을때는 무조건 일본을 공격한다'가 있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는 답이 없을 때면 미국을 공격합니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물론 현실과 정반대로, 미국외 세계의 대중문화에 있어서 미국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입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미국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괴물' 에서는 일개 소시민 가정보다도 못한 무능력한 집단으로, '님은 먼 곳에' 에서는 정당성 없는 전쟁에 한국군을 끌여들여서 소모품처럼 내다버리는 모습 등등 미국의 안 좋은 이미지를 많이 부각하였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 반미 정서는 세계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본 젊은 세대의 반미 정서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독특합니다. 일본에 있어서 미국이란 존재는 우방을 뛰어넘은 존재니까요. 일본은 1945년 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에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미국은 평화헌법을 제정하여 군대 설립을 봉쇄하였으며, 6.25 사변 이후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일본에 원조를 하고 이로 인해서 일본 경제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영향 하에 있었죠. 이에 대해서 '그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니냐?'라는 반론이 제기 될 수 있는데, 박정희 시절 말기만 하더라도 한국-미국 간의 관계 문제는 이미 유명한 일이었고,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한미 관계의 평등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압력이 드세었습니다. 일본은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의 결정을 거스르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미국과의 외교적 상황 차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정치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SAC 2기 같은 경우에는 극단적인 수구 세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과 협력하여 일본에 핵을 떨어뜨린다는 음모를 세우고, 코드기어스에서는 아예 미국이 일본을 식민 지배 하는 그러한 모습까지 보여주죠. 또한 가사라키에서는 미국을 위시한 거대 군수 산업체와 일본 '군수산업체' 사이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동쪽의 에덴의 첫 장면에서는 사키의 미국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을 드러냄으로서 일본 기성세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과 거대한 질서에 대한 반감을 표현합니다.

사실, 원래 그러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일본 내부의 사정이나 보수주의적인 기성세대들은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일본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만든 기성세대와 그 기성세대가 충성을 바치는 미국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그것이 적극적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죠. 이러한 경향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실제 이번에 집권중인 하토야마 총리가 미국의 태평양 함대에 대한 무상 연료 공급을 재검토 하겠다 라는 '대단히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미국에게 최초로 반기를 든 사건이죠.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 젊은 세대의 생각이 이러한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단히 인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음편은 일본 젊은 세대의 대안과 문제점 및 결론을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