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77건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The 'Modern Warfare'

서구 문명 역사에 있어 파괴적이고 광적인 정점이자 결과인 2차 세계 대전은 현대 국가 간의 총력전(Total War)이 '누가 전쟁에서 이기든 더이상 승자는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 전쟁이었습니다. 수백만명의 민간인 피해, 명백히 자행된 인권 유린, 학살, 숙청, 군국주의 등의 참혹한 결과는 현대 국가가 효율적이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인간을 멸종 시킬 수 있는가를 자명하게 드러내었죠.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말, 두 번의 폭격, 두 개의 폭탄이 국가들의 전쟁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게 됩니다. 바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죠. 단 두방의 폭탄에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원폭의 중심지를 아직까지 불모지로 만들어버린 이 사건은 만약 현대에 있어 총력전(=핵전쟁)은 승자나 패자는 커녕 세계 자체를 멸망 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두려움은 미소 양 진영간의 몇 번의 대리전과 정치적 외교적 신경전 및 무한 군비 증강으로 드러나는 냉전(Cold War)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죠.

여기서 현대전(Mordern Wafare)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현대전은 국가의 모든 국민, 산업, 과학 기술력을 쏟아 붓는 전쟁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병사를 훈련하는데 오랜 기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소수 정예 부대와 최첨단 과학 기술력만을 집어 넣어서 만든 값비싼 무기 및 장비들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적군을 제압, 살상하는 전문화, 첨단화된 전쟁 개념인 것이죠. 이러한 전쟁 개념이 잘 드러난 사례가 두 번에 걸친 이라크 전입니다. 이라크 전은 스커드 미사일을 이용한 정밀 폭격, 지하 벙커를 폭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벙커버스터, UAV 무인 정찰/폭격기 프레데터 드론, M1 에이브럼스 전차 등 각종 첨단기술이란 첨단 기술은 모두 이용한 전쟁이었고, 실전 '결과'에 있어서도 놀라운 전공을 거두었죠.

현대전이 전쟁사에서 갖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전쟁의 엔터테인먼트 화'입니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도 군대나 군사 관련 소재를 인간이 취미로 삼았다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전이 과거의 취미로써 군사학과는 다른 점은 바로 매스컴을 통한 대중문화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전쟁의 오락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례가 바로 이라크 전입니다. CNN의 실시간 보도를 통한 전쟁의 '스펙타클'한 면모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고, 이 때 많은 사람들이 CNN 보도를 마치 안방 드라마 보듯이 즐겼죠.

그 후, 이와 같은 현대전의 개념은 게임, 영화, 만화 등의 다양한 대중문화에 흘러 녹아들었고, 지금은 밀리터리 물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조류가 되었습니다.




Call Of Duty:Modern Warfare 2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엑티비전에서 유통하는 전쟁 FPS입니다. 트라이아크와 인피니티 워드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작품을 만들고, 만든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주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죠. 이 덕분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근 1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기 프랜차이즈입니다.

전통적으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7년에 인피니티 워드는 기존 시리즈 공식을 깨고 최초로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모던 워페어를 개발했습니다. 결과는 공전의 유래 없는 대성공이었죠. 현대전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현장감,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싱글 플레이,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멀티플레이까지 모던 워페어는 당시 게이머에게 있어 완벽한 게임이었죠. 모던 워페어 2가 나오기 전까지의 2년 동안 총 판매 누계 1300만장, Xbox 라이브 동시 접속자 수 Top 3 등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9년, 모던 워페어의 후속작 모던 워페어 2가 발매 됩니다. 그리고 모던 워페어 2는 지금까지의 존재해왔던 게임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워버립니다. 첫날 판매량, 첫주 판매량, 예상 판매량, Xbox 라이브 동시 접속자 수 등등 한 때 넘을 수 없는 기록으로까지 취급 받았던 GTA의 기록을 거침없이 깨버리고 말았죠.






The Campaign:For The Record

싱글 플레이는 전작의 5년 후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5년전 러시아 신 국수주의자인 자카예프의 죽음 이후로 러시아는 국수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카예프의 충실한 부하였던 마카로프를 쫒던 도중, 러시아 공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의 주모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이로써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죠.

싱글 플레이는 짧고 강렬합니다. 총 6시간이라는 액션 게임의 평균 싱글 플레이 시간보다 짧은 시간(F.E.A.R. 2만 해도 10시간 가까이 되었습니다)을 보여주지만, 그 6시간을 아주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싱글 플레이는 시리즈 특유의 현장감과 영화적 연출을 잘 살려내는데, 케릭터의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진행합니다. 또한 정신없는 총격전과 이벤트들 게임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훌륭하게 설계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출과 재미를 제외하고 스토리의 완성도는 상당히 엉성합니다. 미션마다의 완결성은 높지만, 미션 모두를 모아놓고 본다면 미션이 각각 따로 놉니다. 예를 들어 보죠. '굴라크' 미션은 전쟁의 주범이자 초 국수주의자인 마카로프가 미국인 보다 더 증오한다는 죄수를 확보, 탈출시키는 미션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미 미국-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이 죄수가 무슨 소용이 있죠? 그리고 죄수를 확보했다손 치더라도, 마카로프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 덫에 걸릴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의 스토리 라인은 구멍이 난 치즈 마냥 허점투성이입니다. 또한 싱글 플레이 역시 재미에 비해서 단조롭습니다. 1자형 단선 진행은 FPS 게임이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지만, 게임 내용 죄다 숨고 총 쏘고 숨고 총쏘고 숨고 총쏘고.....엔딩을 보고 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한건 총쏘는 거 말고는 한 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정말 재밌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됩니다.




하지만 게임 내적 요인보다 게임 외적으로 보았을 때, 모던 워페어 2는 문제가 많은 게임입니다. '현대전'이란 개념이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로서 자리잡은지 꽤 되었습니다만, 모던 워페어 시리즈 만큼 이를 잘 풀어낸 경우는 찾기 힘들죠. 문제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제작사인 인피니티 워드가 이러한 '현대전'의 엔터테인먼트 적인 개념에만 집중을 하고, 전쟁의 잔학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현대전'의 개념에서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를 극한으로 이끌어내어 만든 것이 모던 워페어 시리즈입니다.

이번 작에서는 주요 작전지역 중에서 미국이 나옵니다. 미국의 테러 행위에 분노한 러시아가 미국 본토를 침공하기 때문이죠. 즉, 게임 내에서 미국이 '불타는 모습'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련의 미션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멋지게 나오지만,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얼마나 이 미션들이 소름끼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화(戰火)에 휩싸이는 것, 그것은 현재 국제 질서의 중심축이자 경제의 중심인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국제 질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대, 미국이 불탐으로 세계 정세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물론, 지금까지 게이머들은 수많은 세계적 위기 상황(?)을 다루어왔죠. 외계인, 템플 기사단, 악마, 괴물, 미치광이 과학자, 인류를 말살하려는 사이보그 등등, 하지만 실존하는 국가간의 충돌, 그것도 실존하는 '공간'에서 충돌한 적은 극히 드물었죠. 특히 게임에 있어 현대 미국 본토에 대한 타 실재 국가의 침공은 전무후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을 공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문제는 미국 본토에 대한 침공은 여러 가지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하게 재미를 위해서 미국 본토를 불태우기에는 미국의 붕괴로 세계가 입을 피해가 너무 많죠. 그런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단순하게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기엔 게임을 만든 제작사가 무책임하거나, 자각이 없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현대전이 흥행이 잘되는 엔터테인먼트 요소이기는 하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풀어낼 때 그 오싹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습니다.



'No Russian' - Remember, No Russian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발매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No Russian' 미션입니다. 게이머는 미국 CIA 잠입 요원이 돼서 마카로프가 러시아 공항을 테러하는 것을 돕게 되죠. 즉, 총기로 비무장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돕는 것이 게임의 주요 미션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던 워페어 2의 이 공항 학살 미션은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도 비무장의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테러리스트(물론 잠입한 CIA 요원이라는 설정이지만)가 돼서 말이죠.

물론 GTA 같은 경우에는 범죄자가 돼서 자신이 기분 내키는 데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아예 인간을 찢어 발겨서 채력 회복 용도로 쓰고, 더 심한 맨헌트나 포스탈 같은 경우에는 인간을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죽일 수 있죠. 하지만, 모던 워페어 2가 이들보다 더 잔인한 이유는 모던 워페어 2는 바로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테러라는 소재를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테러는 과거의 개념도 아니고 소멸된 개념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심지어 자신까지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테러는 소름끼치는 개념입니다. 또한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현대전 및 근대전에서 금기시 되었던 사항이고, 테러의 효과는 일반 대중에게 '공포'를 확실히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표현하기 위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빈번하게 사용하죠.

'No Russian' 미션이 더더욱이나 소름끼치는 이유는, 그 테러의 목적이 정치적 사상의 표현이나 요구가 아닌 미국과의 더 큰 전쟁을 위한 초국수주의자의 희생제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국민을 제물로 바쳐서 전세계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큰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 것은 이미 일반적인 테러의 범주를 뛰어넘었습니다. 이건 테러가 아니라 순전한 광기입니다.

더군나나 이 미션에서 게이머인 CIA 잠입 요원은 죽어서 미국-러시아 전쟁의 불씨를 제공합니다. 즉, 미션이 갖는 논란성에도 불구하고 게임 내에서의 미션의 중요성과 게이머의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입니다. 분명 게임 내에서 주인공은 게임 내에서 테러를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이 수십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아니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No Russian' 미션은 사실 전체 미션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가장 의미가 없는 미션이고, 꼭 플래이할 필요도 없죠. 이러한 사족과도 미션을 만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전에도 인피니티 워드는 '현대전'이란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전작 모던 워페어에서 핵을 터트리고, 피폭자의 시점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상황을 게임 내에 넣었습니다. 그 미션은 2007년도 가장 역겨웠던 미션으로 뽑혔죠.

이번 모던 워페어 2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전이란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테러라는 개념을 게임 내에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언론들이 이 미션에 대해 보도하였고, 하는 사람마다 이 미션을 거론하였죠. 마케팅 전법으로서는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던 워페어 2는 재밌죠. '현대전'이란 개념이 주는 파괴적이며 중독적인 매력과 전장의 긴박감, 영화 같은 연출은 다른 게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에 있어 재미를 떠나서 좀 더 게임을 팔아먹겠다고 게임 내에 수많은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미션을 집어넣는 것이 과연 옳은가의 문제는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 이건 도의적인 문제입니다.

일전에 사실적 폭력과 고문을 보여준 '마터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자극에, 자극에 의한, 자극을 위한 대중문화는 결국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자극(사드의 소돔 120일 처럼)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모던 워페어 2 같이 현대전이란 실재하는 개념이 갖고 있는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배제하고 극한의 자극과 재미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테러라는 개념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은 큰 문제입니다.

'No Russian' 같은 충격을 주는 게임들이 쉽게 나올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문제는 모던 워페어 2라는 아주 '성공적인 선례'가 등장하였고 이런 내용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인기를 끌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군요.



멀티플레이 및 스펙옵스에 대한 리뷰는 下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신고
8 1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1990년대의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세계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는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고 인간이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을 때 과연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철학적인 주제와 독특한 설정으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죠.

공각기동대: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는 그러한 극장판 공각기동대의 설정과 케릭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TVA입니다. 일면 원작의 명성을 등에 업고 인기를 벌어보려는 수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화 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 극장판과 달리 TVA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와 정치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TVA는 원작의 명성에 전혀 모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SF 작품이 Science Fantasy 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과학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인간의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주된 경향이죠. 하지만 공각기동대는 SF, 즉 Science Fiction 이라는 장르에 충실합니다. 과학을 통해 세계와 사회, 개인은 어떻게 바뀌는가, 거기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충분히 잘 보여줍니다. 특히 SAC는 현대 사회문제(정확히는 일본의 사회 문제)를 SF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통의 SF 장르 작품이 보여주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SAC의 전반적인 주재는 Stand Alone Complex입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과거의 농경 및 유목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연대나 유대의 끈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유로워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역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주었던 집단이나 사상, 종교로부터 해방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로 파편화되고 고립됩니다. 이런 고립된 상황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입할만한 대상을 찾고 방황합니다. 그리고 SAC에서처럼 웃는 남자나 개별 11인 같은 영웅이나 행동의 모범이 될 만한 대상을 찾아내면 그러한 대상에 자신을 대입하고 모방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동 목적적인 행위의 발생, 즉 Stand Alone Complex라는 겁니다.

SAC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홀로서기의 작업(Stand Alone)입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현대인들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은 일련의 SAC 현상에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이미지만을 취한다는 겁니다. ‘웃는 남자’ 사건에서는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현대사회의 영웅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개별 11인’ 같은 경우에는 아예 대중이 원하는 모습의 영웅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악역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왜 작품 내의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SAC와 같은 현상에 말려드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는 현대인들이 이미지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객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이미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원본을 모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원본의 모방자들에 반해,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안 9과는 SAC 현상의 숨겨진 진실을 바라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 난 것인가? 이 사건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인가? 그들은 SAC 현상의 본질까지 파고들고, 자신들이 일하는 정부 내부의 위협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목숨과 명예를 버리면서 까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그렇기에 작품에서 그들은 숨은 영웅입니다.





카마미야 감독은 공안 9과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하지 말고 이미지 너머의 본질을 보라, 자신의 정의를 묵묵히 수행하라, 조직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을 지켜라 등등...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바로 고유한 원본이며 독특한 존재입니다. 즉, 작품을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의 객체가 아닌 주체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 주체로 거듭나라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스스로도 그러한 주체적인 인간은 현대 사회라는 시스템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1기에서 공안 9과를 파괴하면서까지 전뇌 경화 백신에 대한 비리를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9과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 2기에서는 조국에 핵이 떨어지는 상황을 막아냈지만 본질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은 결과적으로 공안 9과의 존재가 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인정될 수 없는 존재라고 감독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정부 조직과 일반 대중들, 난민, 해커, 마피아 등등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을 수 없는 영원한 사회와 조직의 아웃사이더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3기 극장판에서 주인공은 스스로 조직의 한계를 절감하고 조직을 나와서 독자적으로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마지막에 가서는 주인공 스스로가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조직으로 복귀하는 듯한 암시를 줍니다. 즉 공안 9과, 혹은 주체적 개인들은 조직의 일부가 될 수 없지만,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서 조직을 떠날 수도 없는 그러한 딜레마의 빠져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Endless Gig(끝나지 않는 연주, Gig이 연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입니다. 현대사회라는 시스템의 결함이 만들어낸 SAC 현상,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 정확히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의를 수행하는 사람들, 하지만 주체적인 개인은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은 다시 SAC 현상을 만들어내고... 현대사회란 결국 이러한 돌고 도는 순환 고리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 감독의 주장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일련의 주제 의식들을 추상적인 스토리가 아닌 구체적인 사회 현상이나 상징적인 상황을 통해 풀어냅니다. 덕분에 작품은 추상적인 스토리에 갇혀 해매지 않고 주제의식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공안 9과라는 특수한 조직이 처한 독특한 정치적 상황과 조직 사이의 긴장을 통해서 스토리의 긴장감과 템포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데도 성공합니다. 여기에 사이보그나 전뇌, 네트 등의 SF 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구요.





결론적으로,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는 재미와 주제의식을 둘 다 성공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약간의 흠이 있다면 2기의 국제 역학관계라던가 정치적인 설정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위를 심히 거슬리게 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도 나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고 있으니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빼고 본다면 SAC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감상하시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신고
4 0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바이오 하자드라는 게임이 걸어온 역사는 B급 좀비 호러 영화의 발자취와 유사합니다. 음산한 거대 저택에서 B급 호러 영화의 분위기를 물씬 낸 1편, 질병이 도시로 퍼져나가서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보여준 2편과 3편, 열차라는 폐쇄 공간과 1편의 거대 저택을 의식적으로 리메이크 한 느낌인 제로, 외딴 섬과 남극의 비밀 연구소을 배경으로 한 외전 코드 베로니카 등등.....마치 좀비영화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80년대 좀비 영화들이 다양한 장소와 소재로 다루었던 테마를 작품에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더 이상 예전의 좀비 영화들은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시리즈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갑니다. 3편 이후,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인 바이오 하자드 4는 좀비를 과감하게 버리고(!), 인간을 변형시키는 '플라가' 라는 기생충과 외딴 섬의 신흥 종교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또한 시스템 적으로도 대폭 변화를 주어서 무기의 개조 및 상인의 도입, 근접 전투 시스템, 버튼 액션 시스템과 이를 통한 영화적 연출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 덕분에 4편은 큰 호평을 받고,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부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되었습니다.

바이오 하자드 5편은 전체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 있어서 가장 야심찬 작품입니다. 4편은 실험적인 측면이 강했기 때문인지 정식 넘버링 타이틀임에도 불구하고 전작들과 스토리가 크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5편은 정식 스토리 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T-바이러스의 프로토 타입인 시조 바이러스, 엄브렐라 붕괴 이후의 세계관, 그리고 바이오 하자드 최고의 악역이자 시리즈의 복선이었던 알버트 웨스커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호평을 받았던 4편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시리즈 최초로 파트너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의 실험도 하였죠.





우선 바이오 하자드 5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파트너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존의 시리즈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을 번갈아서 플레이 하거나, 주인공 홀로 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5편에서는 시리즈 최초로 게이머와 파트너가 동시에 나와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파트너의 존재는 게임 내에서도 크게 부각이 되는데,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회복 아이템을 적시적소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올라갈 수 없는 곳을 올라가거나 한쪽이 길을 여는 동안 파트너가 플레이어의 후방을 커버 하는 부분도 나오는 등 파트너와의 협동을 적극적으로 부각합니다.

일단, 파트너인 쉐바의 A.I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게이머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길을 해매는 일은 없으며, 적시에 회복약을 쓰고 알아서 아이템을 챙기고, 정확히 적에게 공격하는 등 기본적인 동작은 충실히 수행합니다. 적어도 여태까지 제가 한 게임 중에서는 AI가 괜찮은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쉐바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사격의 효율이 너무 안 좋다는 겁니다. 게이머가 권총 한 두방+근접 공격으로 끝낼 일을 쉐바는 권총 5~6발 정도를 쓰고 다니니 말 다한 셈이죠. 게다가 시리즈 특성상, 탄약은 정말 잘 안 나오기 때문에 AI의 탄약 낭비는 정말 짜증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AI가 뛰어나더라도 기본적으로 숙련된 인간과 호흡을 맞추는 것만은 못하기 때문에 쉐바는 게이머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들어먹었습니다. 일례로 게이머들은 이름의 어감을 이용해 '이런 쉐바', '이런 쉐바 년', '쉐바아아', 쉐바 아로마의 풀네임의 이니셜을 따서 'ㅅㅂㄻ'(......)까지 정말 다양한 욕을 개발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악명에 비하면 그렇게 AI가 멍청하다는 느낌은 안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게임 시스템 자체는 많은 부분 4편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근접공격, 보스 전이나 이벤트 씬에서의 버튼 액션, 무기의 개조 등 다양한 부분에서 4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시스템들입니다. 기본적으로 골격 자체가 4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재미나 완성도는 준수한 편입니다.

하지만, 4편과 5편을 구분짓는 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게임의 분위기입니다. 기본적으로 4편이 중세시대와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한 김레온의 서바이벌 농촌 호러 액션(.....)임에 반해서, 5편은 액션 블록버스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파트너와 게이머가 둘이서 팀을 이루어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이미 호러의 성격은 많은 부분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게임의 연출이나 진행에서 공포물이라기 보다는 박진감 넘치는 재난 액션물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액션물의 구성은 게임의 전반적인 구성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공포물과 같이 긴장감을 조성하기 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적들과 몰려와서 싸우는 부분이 많다는 점, 그리고 게임의 퍼즐이나 아이템 조합 부분을 줄이고 간결화한 점, 거대 보스와의 전투를 많이 보여준다는 점 등에서 기존 시리즈의 성격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5편의 액션 게임화는 기존의 팬들에게 많은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켰지만, 대체로 5편의 변신이 훌륭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게임은 역시 일본에서 제작한 게임 답게 2회차 요소 및 수집 요소가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이번작에서는 PSN과 Live를 이용한 2인 Co-Op 모드와 1회차 클리어 이후 나오는 머셔너리 모드의 멀티 지원으로 게임의 볼륨이 상당히 늘어났습니다. 또한 자신의 기록이 리더보드와 연계되어 기록 비교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이번 작품에서 큰 장점입니다.





바이오 하자드 5편은 사실 혁신적이거나 놀라운 작품은 아닙니다. 일단 4편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기어스 오브 워나 기타 유명한 시리즈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의 장면이나 시스템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이오 하자드 5는 '액션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박진감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게임임에 분명하며, 게임 자체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고
6 1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미국 만화들은 한 케릭터나 히어로를 놓고 수 십년동안 작품을 생산하는 일본 만화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다소 독특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케릭터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과 접근,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케릭터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식에 의해서 막상 처음 입문하기에는 어렵다는 문제점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사실상 이야기의 구조가 시작과 끝이 아닌, 다양한 평행 세계에서 케릭터의 성격을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미국 만화의 라이센스 작품들은 게임에 있어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케릭터와 작품에 대해 너무나 많은 해석이 존재하기에, 작품을 게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캄 어사일럼 이전의 배트맨에 관한 게임들 중에 괜찮은 작품들은 얼마 없었죠.

'배트맨:아캄 어사일럼'은 한마디로 여태까지 나온 배트맨 관련 게임 중에서, 원작을 가장 압축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해낸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트맨이라는 히어로의 성격을 잘 드러내었을뿐만 아니라, 배트맨이 어떻게 악당들에게 대적하는가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크게 전투와 잠입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게임 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투 시스템 자체는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각주:1]와 유사합니다. 즉, 단순하게 방향키+ 몇 개의 공격키만으로 화려한 전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일단 게임 내에서 배트맨은 다수의 졸개들과 대치하는 1:多의 상황에 기본적으로 처합니다.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에 비해 평범하지만[각주:2], 졸개 한 둘 정도는 손쉽게 때려눕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1:多의 상황에서 배트맨이 둘러쌓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 배트맨은 자신을 공격하는 적에게 반격을 가하거나 배트랑으로 원거리의 적을 견제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전투의 우위를 점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매우 부드럽게 전개되기 때문에 대단히 화려하고 타격이 들어갈 때 마다의 효과나 음향이 묵직해서 때리는 맛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적들은 크게 몇가지 종류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들의 구성에 따라서 게이머의 전투 스타일이나 공략 방법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한 몇가지 요소만으로 충분하게 화려하고 복잡한 전투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트맨은 또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와 달리, 무장한 적들을 상대하거나 인질을 구출하는 등의 상황에서 들키지 않고 적들을 제압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잠입 파트야 말로 이 게임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일단 만화나 영화에 있어 배트맨의 기본 컨셉은 어둠 속에 숨어서 범죄자들의 공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영웅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배트맨은 어둠 속에 숨어서 악당들을 관찰하고, 기회가 오면 그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압합니다. 그러면 악당들은 점점 패닉상태에 빠지죠. 악당들은 배트맨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가 어디서 공격하는지는 모르고 공포에 떱니다. 하지만 배트맨은 그들이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숨어서 그들의 공포를 지켜보며 또다시 제압할 기회를 노립니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게이머 자신이 어둠 속에 숨은 한 마리의 포식자가 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악당들을 조용하게 신속히 처리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만화의 컨셉을 많이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무턱대고 무장한 악당들을 처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둠속에 숨어서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며 한명 한명 제압하는 그 긴장감과 스릴은 이 게임에 있어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아캄 정신병동은 기본적으로 배트맨이 잡아넣은 악당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입니다. 따라서 게임 내에서는 배트맨이란 작품에 나온 대표적인 악당들이 많이 등장하죠. 조커, 스캐어크로우, 포이즌 아이비, 배인, 할리 퀸, 킬러 크록, 리들러 등등 여태까지 배트맨의 최고의 맞수들이 나와서 자신만의 개성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배트맨의 잠재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려서 심리 공격을 하는 스캐어크로우와 아캄 정신병동 구석구석에 자신의 수수깨끼 남기고 이를 배트맨에 풀라고 요구하는 리들러 등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물론, 살인 광대 조커의 이미지 또한 훌륭하게 잘 살려냈구요[각주:3]

배트맨:아캄 어사일럼은 훌륭한 게임입니다. 물론 게임 자체의 본편은 생각보다 짧지만, 라이브와 연동되는 첼린지 모드나 리들러의 도전 같은 부분을 통해서 오랫동안 즐길 요소가 충분하며, 게임에 익숙해지면 2회차 나 3회차도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케릭터나 원작이 있는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1. 시간의 모래에서부터 두 개의 왕좌까지 [본문으로]
  2. 세계에서 손꼽히는 갑부에, 시커먼 박쥐 의상을 뒤집어쓰고, 동양까지 날아가서 무술을 배우고, 돈빨로 온갖 최신 최첨단 특수장비로 전신을 떡칠했다는 점을 빼면 [본문으로]
  3. 각주 3.특히 배트맨이 절대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자신을 죽이라고 도발할때의 그 모습이란 [본문으로]
신고
2 1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군 통수권자이며, 가정에 있어 아들과 아내에게는 완벽한 가장이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상하고 남편과 금슬이 좋은 현모양처다. 돈, 명예, 지위, 친구, 이 모든 것들을 가진 소년은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던 와중에, 소년은 한 남자를 만난다. 소년은 이 남자를 존경한다. 소년도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소년은 모르고 있다, 그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 남자라는 것을...“

암굴왕(2004)은 곤조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하여 이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저번 편에서 설명드렸듯이, 지금까지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많이 영화화 또는 만화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메이크 작품들이 소설을 그대로 옮기거나, 혹은 소설에 있어서 몇몇 중요한 포인트-대부분은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연적, 페르낭에 대한 복수-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품을 전개합니다. 이는 원작 자체가 분량이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따로 손을 댈만한 부분이 없을정도로 원작이 훌륭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굴왕은 원작을 아주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암굴왕은 원작과 달리 ‘복수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즉,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주인공이 아니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의 대상의 아들인 알베르 드 모르세르가 주인공이 되어 백작의 복수극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것이죠.

사실, 원작에도 이런 컨셉이 다소 존재했습니다. 그 부분은 알베르가 백작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자 결투를 신청하고 나서 진심으로 백작에게 사과 하는 부분이었죠. 이는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알베르가 다혈질의 올곧은 청년이었음에 반해 암굴왕에서는 다소 다르게 나옵니다. 암굴왕의 알베르는 아직 세상과 자신,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사춘기의 소년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외부에서 인생의 지표를 찾기를 갈구하고, 결과적으로 백작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죠.

암굴왕이라는 작품은 그렇기에 원작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원수의 자식들과 그들의 친구들에 대한 케릭터성을 강화합니다. 그렇기에 작품은 젊고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자식들이지만, 백작의 가혹한 복수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 갈등을 겪고, 이로써 세상에 스스로의 힘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통해서 원작의 케릭터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립니다. 특히 알베르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자 친우였던 백작의 배신에 분노하고, 자신의 가족에 끝없는 불행을 가져다 준 백작을 증오했지만, 백작의 복수를 이해하고 그를 받아들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어 원작보다 더 깊은 케릭터를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원작은 백작이 행하는 복수의 정당성을 높이는 도구적인 케릭터에 불과하였지만, 암굴왕에서는 스스로의 주체를 확립한 케릭터로 변모하였습니다.

암굴왕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야말로 악의의 화신입니다. 원작에서 신의 대리인으로서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철퇴를 가한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있는 케릭터였지만, 암굴왕에서는 원작의 흡혈귀 같은 모습과 뒤틀린 완벽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원작의 백작이 어느정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어서 완벽했다고 할 수 있었다면, 이와 달리 암굴왕의 백작은 완벽한 동시에 너무나 위험하고 사악한 인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희곡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와 많은 부분 닿아있습니다. 마치 메피스토가 선의를 가장하여 파우스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듯이, 암굴왕의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선의를 가장하여 자신의 적들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유창한 달변과 우아한 외모 속에 감춰진 심연과도 같은 악의와 뒤틀림. 그리고 이를 모르고 접근한 이들은 자신의 과오와 죄악의 업보를 받아 파멸하게 됩니다. 완벽한 파멸, 그것이 그가 원한 복수였죠. 하지만, 알베르는 그의 분노와 복수심을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하려 하고, 이로 인해 백작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물론 원작에 비해서 백작의 케릭터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원작에서는 그가 선하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자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암굴왕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지요. 특히 막시밀리안 모렐과 백작 사이의 독특한 우정이나 그가 자신의 복수극이 점점 큰 불행을 낳자 결심이 흔들리는 부분 등을 제거하여 백작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작 역인 나카타 죠지의 퇴폐적이면서 귀족적인 목소리, 우아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백작의 외모 등은 이미 여태까지 나왔던 번안작이나 리메이크 작 중에서 가장 인상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전체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독특한 색감과 화려한 배경, 원작의 배경을 적절하게 SF의 형식으로 바꾼 점 및 원작과 케릭터에 대한 독특한 해석 등은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높입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화에 알맞게 적절히 소설 내용을 편집한 것도 훌륭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알베르와 백작의 결투 장면까지의 분량은 충분히 이 작품을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아쉽게도 완벽한 작품에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알베르와 백작과의 결투 이후의 내용 및 작화가 전반적인 작품의 질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부분이 정말 눈뜨고 못 봐주겠다, 쓰레기다, 뭐 그런 수준은 아닙니다. 제가 아쉬워 하는 것은 거기서 뒷심을 발휘했었더라면, 원작에 대한 훌륭한 변주곡이 되었을텐데 그 뒷심을 발휘하지 못해서 주저 앉아 버린 점에 대한 것입니다.

알베르와 백작의 결투, 대략 18화 후 22화까지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친구를 위한 프란츠의 희생 이후, 알베르가 그 상실감으로 방황하고 좌절하는 장면이 대략 5화 정도 진행되죠. 하지만, 우리는 여태까지 알베르가 유약한 성격이고 그에 상처받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상실감에 대해서는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서술했어도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 대신에, 백작의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왜 이 남자가 냉혹한 복수자가 되었는가를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백작이 24화 내내 자신의 숙적들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몰골로 만드는 복수를 하는데, 그 동기가 되는 회상이나 설명은 전 24화 통틀어서 고작 10분도 채 안된다는 것은 백작에 대한 모욕이 아니겠습니까? 18화에서 22화까지 부유하는 알베르를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백작에 대한 묘사를 강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게 들더군요.

게다가 원작에도 없는 ‘암굴왕’이란 설정은 도대체 뭡니까? 물론 원작에서는 파리야 신부가 그의 스승으로 그에게 부와 지혜 그 모든 것을 주었고, 그를 신의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스승적인 존재는 냉혹한 복수자인 백작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고, 암굴왕이라는 암흑의 존재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암흑의 존재가 백작을 악의 존재로 만들고 냉혈한으로 만들었다는 설정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듭니다. 원작의 백작은 거의 전지전능한 능력과 강철보다 더 굳센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모든 복수는 그의 치밀한 계획과 인내심 끝에 이루어 진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타자도 개입이 되지 않았죠. 백작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철인적인 인간상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암굴왕에서는 이를 전지전능한 악에 ‘휘둘리는’ 케릭터로 묘사되었죠. 스스로도 ‘몬테크리스토 백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몬테크리스토 백작 뿐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암굴왕의 영향력 아래 놓인 백작의 모습은 뭔가 모순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차라리, 스스로 뒤틀린 길을 선택했었더라면 더 박력있는 케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끝마무리는 훌륭했고 제가 말씀드렸던 부분들은 ‘아쉽다’ 수준의 문제이지, ‘망했다’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물론 흥행에서는 망했지만요. 원작을 읽지 않아도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잘 살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원작을 읽고 나서 봐도 나름의 독특함을 가한 훌륭한 변주곡이기도 합니다. 취향은 조금 타겠지만(완전히 주류에서 벗어난 작품이니), 추천 작입니다.

신고
4 0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그랜 토리노'는 명백한 보수주의 영화입니다. 보수적이면서 꽉 막힌 노인네가 이민자 아이에게 미국적 가치관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서 미국을 물려준다는 내용의 영화는 언뜻 보면 미국적 가치관의 재생산과 미국 우월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랜 토리노의 강점은 그러한 맹점에서 비켜나서 납득이 되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랜 토리노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노인이 아이를 만나고, 아이에게 자신의 가치를 전수한 다음, 아이를 위해 죽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스토리 보다는 영화적인 상황과 은유를 통해서 영화적인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아내를 잃은 노인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미국적인 가치를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였고, 자동차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성실히 일했으며, 아내를 사랑했고, 미국 차를 몰고 다니고, 미국적 가치를 숭상하고 이민자들과 그의 문화를 경멸합니다. 영락없는 미국인의 전형이죠.

하지만, 노인은 고독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일제 차를 몰고 다니는 자식들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서 아버지 집을 차지하려고 하고, 손녀는 할아버지의 자부심이자 보물인 그랜 토리노에만 눈독을 들이죠. 즉, 이는 구세대가 쌓아온 미국이라는 가치관은 업신여겨지고, 미국이 가진 부와 권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런 와중에서 노인은 소년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동네 양아치의 협박에서 소년을 구해준 것이지만(역설적이게도 노인은 소년을 구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차츰 이웃에 사는 이민자 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그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는 소년에게 아버지 적인 존재가 되어서 소년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을 가르키기 시작합니다.

현대 미국 사회는 이제 백인 주류가 아닌,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전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다양한 인종 민족 그룹에 의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영화에서 노인 이외에는 백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노인이 사는 마을에는 더 이상 노인 이외에는 백인이 살지 않죠. 심지어는 이민자가 '너는 왜 다른 백인처럼 나가지 않냐?'라고 묻기까지 합니다. 이제 미국은 백인이 아닌 다양한 민족 그룹에 의한 다원적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이죠.

하지만, 소위 아메리칸 드림은 이민자 사회를 왜곡합니다. 기존의 이민자 고유의 사회나 가치를 무너뜨리고 싸구려 저질 미국적 가치에 물들게 합니다. 마약이나 방탕, 음주 등등 이는 미국이 그들에게 있어 기회가 아닌 하나의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소년의 사촌 형이나 그 친구들이 이런 타락한 가치관에 물든 이민자 2세대들로 나옵니다. 그리고 스스로 소년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소년을 타락시키려 하죠.

이럴 때, 노인이 소년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소년에게 미국적 가치를 가르키고, 미국이 주는 기회와 평등을 누리게 하려 도움을 주죠. 이로써 노인과 소년 사이에는 유사 가족관계가 형성됩니다. 아버지가 없는 소년에게 노인이 아버지 역할을 맡고, 소년은 노인의 가치를 이어받아 정신적인 아들이 되는거죠. 이 영화에서 가족이란 단어는 중요한 키워드인데, 가족은 사회적 가치의 전수자이자, 자식 세대의 보호자이고,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노인과 소년 사이의 관계는 미국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전승되고 보존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영화는 담담하면서 차분하게 전개해 나갑니다. 특이한 점은 미국이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들(자기들이 진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이겼던 한국전을 통해)에 대해 영화는 '그건 우리가 명백하게 잘못한거야'라고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게다가, 미국이 미국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미국의 죄는 아버지 대에서 끊어야한다는(노인의 순교) 영화의 주장은 최근 미국 영화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자체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자는 보수주의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인 화법이나 이에 대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각은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저로써도 수긍이 됩니다. 어쩌면 이제는 미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저력일지도 모르겠네요.

신고
4 0
분류없음


(쓸만한 사진이 암굴왕 말고는 없더군요...)




"여기 한 남자, 에드몽 당테스가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착한 청년이었으며, 유능한 뱃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약혼자가 있었으며,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큰 범선의 일등 항해사였고 곧 있으면 선장이 될 예정이었다. 세상의 불행과 전혀 관계없어 보였던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자신이 친구들이라 믿었던 자들의 손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14년 간의 감금과 형용할 수 없는 고통, 기적적인 탈출, 그리고 비정한 복수에의 맹세. 그리고 과거의 에드몽 당테스는 죽고 여기에 비정한 신의 대리인, 복수의 천사, 광기의 화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등장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프랑스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 소설가 중 하나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대중문학의 고전으로 취급받고 있는 이 작품은 후대의 수많은 대중문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케릭터는 현대의 대중문학에 있어서 많은 의미를 가지는 케릭터입니다. 완벽하지만 어딘가 뒤틀린 남자, 선의라는 가면 아래 완벽한 복수를 계획하는 인간, 초인적인 의지와 집요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나약한 인간 등등...이런 관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행복한 인생을 살던 남자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리고 그 나락 속에서 기사회생한 뒤의 처절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백작의 복수는 일반적인 숙적의 죽음이 아닌, 숙적에 대한 완벽한 파멸입니다. 그 파멸은 자신의 목전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숙적들은 파멸이 눈앞에 닥치자, 절규합니다. 오 신이시여,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인과응보이며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끝내고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의 연인과 함께 프랑스를 뜹니다.

이야기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에드몽 당테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기까지의 과정, 후반부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완벽한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백미인 후반부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은 추리극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극에 있어서 탐정은 극중의 인물이 아닌, 바로 독자 자신이죠. 독자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매 장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행동과 말, 그리고 언뜻 지나가는 단상들을 통해서 그의 복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를 추리할 수 밖에 없죠.

이는 독자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입니다. 복수의 계획을 보여주지 않고,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복수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킬 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독자가 작품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또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치밀하고도 완벽한 계획 아래서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는 숙적들과 복수, 그리고 감동적인 화해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킵니다.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또한 당연하게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그 자신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 다단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비정한 복수자입니다. 하지만, 총이나 칼로 하는 복수와 다른 형태의 복수를 지향하죠. 그것은 숙적들의 완벽한 파멸입니다. 단순한 죽음, 치욕,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숙적들의 인생 자체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백작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고, 14년 동안 자신의 스승인 파리아 신부에게서 배운 귀족적인 교양과 지식으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하지만, 14년 간의 고난은 백작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불신, 염세, 그리고 14년 동안의 복수에의 갈망과 숙적들에 대한 증오입니다. 이로인해 백작은 뒤틀린 내면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문학적인 지식과 교양으로 우아하게 포장을 하죠. 그래서 겉으로 그는 괴팍하고 오만한 동방의 귀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기에, 그 이면에 숨어있는 백작의 복수심과 집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의와 무지를 가장하고 자신의 숙적들을 서로 이간질하고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백작의 모습은 소름끼치면서 매혹적인 것입니다.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백작은 자주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으로 칭합니다. 물론 이는 백작의 세상에 대한 염세와 경멸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내용에 있어서도 적절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는 백작은 남을 배신하고 악행으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막강한 지위에 오른 악인들에게 완벽한 파멸을 선사하는가 하면, 선하게 살아왔지만 그 보답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보답을 주죠. 이와 같이 어긋난 세상의 이치(악한 놈은 잘 살고, 착한 놈은 고생한다)를 바로잡는 역할을 백작이 수행한 것입니다. 또한 직설적이긴 하지만, 백작의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Monte-Cristo,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의미)

이러한 독특한 백작의 케릭터는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살았던,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중반은 프랑스에 있어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과격한 프랑스 혁명이 지난 이후 나폴레옹의 집권, 나폴레옹의 몰락과 부르봉 왕가의 재집권, 부르봉 왕가의 몰락과 입헌군주제의 도래, 또다시 혁명...이렇게 격동의 시기를 겪는 당시 프랑스 문단은 봉건적인 과거와 귀족중심적인 문학 사조를 탈피해서 새로운 격변의 시대에 알맞은 흐름을 만들었어야 했죠. 이렇게 격변의 시기를 이끈 유명한 작가들, 발자크,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등의 작가들을 가르켜 '낭만주의 사조'라고 칭합니다.

그렇기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따라 탄생했습니다. 굳은 의지로 고난을 해쳐나가고, 과학과 문학, 예술, 철학 등에 박식하며, 정의를 관철하고, 자신을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 인, 스페인 인이 아닌 세계인이라 칭하는 이 인간이야 말로 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의 혼란기라는 역사가 원했던 철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대중이 원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원래 극작가였으나, 돈을 벌기 위해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합니다. 당시 신문은 거의 최초의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었죠. 즉,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이 성공한 것은 당시 대중의 수요에 맞았던 것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대중문학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 케릭터가 가지는 매력,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기법, 당시 대중과 대중문학 사이의 관계 등등 지금까지도 분석 및 재해석 되고 있으며, 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나 전개 및 묘사에 있어서 흠잡을 때가 없지만, 지금으로서도 부담되는 소설의 분량(두꺼운 양장본으로 총 5권)은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죠. "몬테크리스토 백작! 그 감미로우면서 우아한 광기의 이름이여!"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는 과거의 독자, 현재의 독자, 미래의 독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이 모든 시대에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고전이며 불후의 명작이죠. 이 글을 끝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백작의 대사를 인용하겠습니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다음 리뷰는 암굴왕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2 0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도박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확률이나 운만으로 일확천금을 한다는 발상 자체에서부터 사회의 통념에 상당히 이단적이기도 하고, 도박 자체의 중독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하게 하는 악영향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국가에서 도박을 금지하거나 제한을 두죠. 하지만, 싱가포르의 건국자가 말했기를 "중국인에게 모든 것을 시킬 수 있었어도, 단 하나 마작(도박의 일종)은 끊게 할 수 없었다"와 같이 도박은 적어도 인류가 모두 성인군자가 되거나, 멸망하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후쿠모토 화백의 도박묵시룩 카이지는 이러한 도박에 대해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만화는 한 명의 인간 쓰레기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도박을 통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기사회생하고, 살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절망적인 도박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도박 중독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작품에 있어서 거대한 스토리 라인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현재까지 40권 까지 나온 작품 자체가 총 열 손가락에 꼽을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도박묵시룩 카이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그림체입니다. 요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각지고 투박한, 좀 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악한 그림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조악한 그림체야 말로 카이지의 매력입니다. 도박에 중독된 인간들의 왜곡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던가, 도박 패에 희비가 엇갈려서 울렁거리거나 무너지는 인간들의 모습들을 뭉크의 그림 '절규'처럼 사람까지 일렁거리게 하는 등 도박 중독자들의 희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카이지에서 그림체는 하나의 매력포인트로 작용한다는 것도 이를 입증합니다.

카이지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도박에서 이기고 지는 희비와 파멸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한 에피소드가 만화책 몇 권에 이어서 진행되는 만큼, 이야기의 템포가 느려지거나 맥이 빠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작품에서는 이를 시원시원한 연출과 직설적인 묘사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에피소드의 완급 자체가 훌륭해서, 이길 것 같으면 거기서 한번 뒤집어서 위기가 찾아오고, 다시 위기가 기회가 되고...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사실, 작품에서 도박은 단순히 도박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도박이란 것에 대해 묘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박이 우리 인생의 상황을 극단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포와르 호의 가위 바위 보 카드 게임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을, 리조트에서 외나무 다리 레이스는 각자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사이의 실존적인 고독을, E 카드 게임은 버러지 처럼 기면서 사는 인간들의 반항심을 등등...이런식으로 도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암시하는 도구로 작용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도박 묵시룩 카이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도박 중독자의 도박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생에 대한 메타포인 거죠. 물론 최근 에피소드인 17보 마작 같은 경우에는 마작이란 소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샛길 인생을 살아온 인간의 병적 심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작품의 큰 흐름 내에 존재하는거죠.

이러한 큰 흐름속에서 카이지는 작은 버러지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생과 사가 걸린 도박이 아니면 제대로 집중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죠. 하지만, 도박이나 승부에 있어서는 사람이 180도 바뀝니다. 또한 도박에 있어서 속임수를 쓰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양심이나 도덕관념에 충실하고, 강자 앞에서는 강하고 약자 앞에서는 자신을 굽힐 줄 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구요. 어떻게 보면,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향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승부에서 상대방의 속임수에 굴하지 않고 승부하는 모습, 그러면서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그런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화는 현재 17보 마작 에피소드가 끝나고, 재애 그룹 회장 아들과의 승부로 들어섰습니다. 사실 만화가 40권 정도가 되니까 점점 승부가 복잡해지고,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 묵시룩 카이지는 훌륭한 만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고
2 0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영화 국가대표는 한국 스키점프 국가 대표팀에 대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무주 동계 올림픽을 위해서 동계 올림픽 개최지 후보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급조한 스키 점프 국가대표 팀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동계 올림픽에 나갔는지, 그리고 그들이 국내에서 국제 대회에서 어떻게 질시를 받았는지와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스토리 구조는 전형적인 신파물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해외 입양아, 바보 동생에 귀머거리 할머니를 부양해야하는 소년 가장, 약 때문에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나이트클럽 웨이터, 특기도 없이 아버지 음식점 중국인 여종업원을 사랑하는 중졸 학력 보유자 등 전형적으로 세상이 갖다 버린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말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계 올림픽 대비를 하고, 무주가 개최지 선정에서 탈락하자 곧바로 대표팀이 해채되어 자비로 올림픽 출전까지 하는 등 많은 고난을 겪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섭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영화의 주제이자 핵심인 '국가대표'라는 명예입니다. '국가대표'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국가대표란 사람들이 중졸학력자, 약물중독자 양아치, 소년가장, 수출 입양아[각주:1]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이용 당하고,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버려진 존재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한 국가를 대표해서 세계로 나선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국가대표로써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영화 마지막 나가노 올림픽 이후에도 그들은 국가대표가 아닌 찐따 취급을 받습니다. 원래부터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급조되고 사용가치가 다 되면 갖다 버릴 존재들이었으니까요.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아니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은 윗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사용되는 소비재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이들의 명예이자 멍에인 '국가대표'는 다시 한번 재해석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국가'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선 것이 아닌, '우리'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선 것이라구요. 따라서 그들이 심판의 편파판정, 미국의 텃세, 한국 올림픽 위원회의 미지원, 세상의 질시를 극복하고 세계 사람들 앞에서 박수를 받는 장면은 동시에 우리를 위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고 세상의 멸시를 받아가면서 단물 쪽쪽 빨아먹고 사람을 헌신짝처럼 갖다버리는 인간들을 넘어서서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무명의 사람들에 대한 찬사인 것입니다.

솔직히, 국가대표는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전형입니다. 일반적이거나 덜 떨어진 인간이 영웅이 된다는 너무나 전형적인 구도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영화의 완급이나 적절한 개그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긴장감 있는 스키 점프 장면 등을 통해서 영화에 완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합니다. 영화 마지막의 자막은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구요. 따라서 국가대표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영화의 클라이맥스, 형의 부상으로 바보 동생이 스키 점프를 해야하는 상황이 옵니다. 그러나 동생은 점프대에서 내려다 본 올림픽 경기장에 압박감을 느끼고 안으로 들어오죠. 그러자 형이 동생을 붙잡고 소리치는 한 마디.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간단 말이야!"

....대한민국 영화의 금기(?)가 하나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정말 웃기다기 보다는 대단히 진지해서 그닥 문제될 게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엄청나게 공감이 되더군요(......)



  1. 해외 입양아는 돈받고 팔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영화속에서도 그런식으로 표현이 되죠.
 [본문으로]
신고
4 1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감독한 호소다 감독의 신작 섬머 워즈는 가족 드라마+SF+로멘스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작품입니다. 여름방학 선배와 함께 친가에 내려가서 선배의 연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시끌벅적한 대가족이 만나면서 생기는 해프닝과 OZ라는 가상 공간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이버 테러가 이야기의 두 축으로 나뉘어서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별개였던 이야기가 점점 맞물려 들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입니다. 처음 주인공이 나츠키 선배의 본가로 가는 도중, 동행하는 선배의 가족들이 점점 늘어나는 인상적인 인트로에서 OZ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테러의 대항하는 마지막까지, 거의 대부분의 가족들(혹은 가족의 지인)은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OZ라는 최첨단 가상공간 및 모든 일의 주범 해킹 A.I 러브머신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가족이란 것은 우리의 역사 이전에서부터 존재해왔으며, 혈연 및 지연으로 인간을 결속시킨 인류 최초의 커뮤니케이션 집단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섬머 워즈는 OZ라는 최첨단 커뮤니케이션과 가족 및 지연이라는 구식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가족의 핵심이자 가장인 나츠키의 할머니는 OZ에서 러브머신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을 전쟁이라 보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관계를 맺어온 지인들에게 현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로써 OZ에서 일어난 문제가 현실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을 막습니다.

얼핏 이 장면은 '나츠키의 할머니는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쉬운데, 실상 우리 일상 속에서도 이런 장면은 찾아보기 쉽습니다. 누군가 '사람이 자기 아는 사람을 따라 3명만 건너뛰어도 전세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라는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지연은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렇기에, 나츠키의 할머니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거죠. OZ에서 일어난 사이버 테러가 현실에서 실질적인 사상자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구식 관계와 신식 관계 사이의 1차전은 구식 관계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렇기에 사이버 테러의 범인이자 해킹 A.I 인 러브머신은 나츠키의 할머니를 제거[각주:2]하여 인적 네트워크의 접점을 제거합니다. 실상, '이성적'인 A.I의 입장에서 본다면 네트워크의 접점이자 구심점인 가장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가족들도 할머니의 죽음으로 큰 실의와 좌절에 빠지구요.

하지만, '가족'이란 쉽게 무너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츠키의 가족들도 그러한 슬픔을 넘어서 가족 사이의 유대를 확고히 하고, 러브머신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직업과 특기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자위대에 근무하는 사람은 군용 안테나를 공수해오고, 전자상가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연산을 위한 슈퍼 컴퓨터를 공수하고, 슈퍼컴퓨터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어부인 사람이 배를 끌고 오기까지 하는 등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에서 신식 커뮤니케이션을 마냥 부정적인 것만으로 그려내지는 않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나츠키의 가족의 힘만으로 러브머신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전세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은 새로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힘없는 다수가 결집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섬머워즈는 위와 같은 대립 구도를 어려운 소재나 표현을 끌어들이지 않고 쉽게, 그러면서 동시에 인상적이면서 재밌게 표현합니다. 가족 간의 화해와 단합을 보여주는 마지막 일전을 앞둔 식사 장면[각주:3]이나, 가족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야구 중개 장면, 그리고 마지막 이 작품의 진정한 명장면이자 백미인 고스톱 장면 등등... 그 외에도 섬머 워즈에는 멋진 장면들이 많습니다. 이야기 완급도 훌륭하고, 재미도 있고 잔잔한 감동도 있는 작품입니다. 올 여름 개봉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꼭 봐야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1.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족이라는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한 적이 많았지만, 이렇게 대가족을 중심 소재로 삼은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밌는 게, 이러한 일본의 대가족의 이미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가족의 이미지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대가족이란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어떤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덧2.여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족이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을 정말 잘 잡아낸 애니메이션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덧3.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서는 스토리로도 볼 수 있군요.

  1. 실상, 한국이나 몇몇 나라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사회발전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연이라는 것이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으로]
  2. 실제 러브 머신이 할머니를 죽인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러브머신이 나츠키 가족의 존재를 눈치채는 부분 뒤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거 같습니다. [본문으로]
  3. 특히 할아버지의 첩의 자식이자 러브머신 개발을 담당한 와비스케가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식탁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장면을 통해서 그와 가족이 서로 화해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본문으로]
신고
8 1
1 2 3 4 ··· 8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