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위치 버전을 기준으로 한 리뷰입니다.


훌륭한 게임의 조건은 다양하다:플레이어를 흔드는 스토리나 아름다운 그래픽 또는 아트워크, 재미 등등 사람마다 훌륭한 게임을 정의하는 조건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본 리뷰에서는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매체로서의 게임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게임은 직접 경험하는 매체이자 자신을 다른 매체에 투영하여 누리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많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끔, 게임 내의 표현과 서사 및 규칙 등을 통일성 있게 구성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훌륭한 게임이 될 수는 없다: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 성립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일 뿐이며, 진정 훌륭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훌륭한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든다. 흔히들 많은 플레이어가 착각하는 자유도의 개념이 여기에 부합할 것이다:엄밀하게 게임은 규칙이 있어야지만 성립 가능하기에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규칙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게임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 규칙을 이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갔을 때의 쾌감은 여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훌륭한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단순히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학습하고 규칙을 이용해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가게끔 유도한다.


이 리뷰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투 더 브리치도 그런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서브셋 게임은 FTL을 통해서 로그라이크와 우주 함선 운영 및 전술을 훌륭하게 결합하였다. FTL의 특기할만한 점은 인디 게임 기준에서도 자원을 엄청나게 적게 잡아먹으면서도(거친 도트풍의 그래픽, 거의 전혀 없는 그래픽 애니메이션 등) 게임으로서 재미는 매우 뛰어났다. 인투 더 브리치도 마찬가지다:게임은 16비트 콘솔 시절의 그래픽 수준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 규칙은 직관적인 동시에 정교하다. 흥미로운 점은 로그라이크 류의 무작위 생성 요소들을 게임에 탑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투 더 브리치의 게임 플레이는 무작위 요소에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플레이어는 거대한 메카닉을 3대 조종하여 전력을 공급하는 그리드를 보호하고, 정해진 턴 동안 버티면 된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점은 게임의 단순한 구성이다:우선 지도는 8X8의 타일로 구성되어 있어 상당히 작은 규모에서 게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적들의 체력도 낮고, 별도의 데미지 계산 공식이나 파라미터들이 있지 않기 때문에 공격/방어 수치에 따른 변수도 없다. 규칙도 단순히 정해진 턴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고, 한 판에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으며, 심지어 조작하는 캐릭터 수도 최대 3명이기 때문에 첫인상은 매우 조촐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첫인상과 별개로 인투 더 브리치는 단순반복적인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반복적인 플레이와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매우 밀도가 높고 플레이어의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게임은 직관적인 규칙과 흐름을 갖고 있기에 복잡한 규칙 숙지가 없더라도 다양한 파훼법을 실험해볼 수 있다. 또한 지도의 생성이나 적의 구성 등을 결정하는 로그라이크 요소들은 게임을 클리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질리지 않게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투 더 브리치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가진 전략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본질은 여타 로그라이크와 다르게 무작위에 근거한 반복이 아닌 다양한 환경에 대해 플레이어의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쪽에 가깝다. 이는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미덕이다.

이런 인투 더 브리치의 미덕은 '확정된 미래'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게임 내의 미션 중 하나인 열차 보호 미션을 보자. 열차는 총 4턴에 걸쳐서 선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리고 괴수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스폰되고, 스폰된 괴수들은 주변의 건물이나 열차를 공격한다. 게임 내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표시된다. 어떤 괴수가 어디를 공격하고, 예측되는 피해는 어떻게 되며, 괴수의 스폰 위치는 어디며, 열차는 어디로 움직이는지 등등 각 턴이 시작될 때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확정된 미래를 제시한다. 장기/체스로 놓고 본다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다음 상대의 수를 미리 알려주고 플레이어가 상대 수에 대한 파훼법 자체를 역설계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역설계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장기말, 3대의 메크로 조합된 스쿼드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메크와 스쿼드들은 데미지를 입히는 것을 넘어서 '필드'를 지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기본 스쿼드인 리프트 워커는 컴뱃 메크의 주먹을 이용한 준수한 데미지+밀처내기로 주력 딜을 하며, 캐논 메크와 아틸러리 메크를 이용해 괴수들을 먼 거리에서 밀쳐내어 낙사를 유도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또다른 스쿼드인 블리츠크리그의 경우, 상대에게 가한 데미지가 인접한 유닛/건물에 따라 타고 흐르는 라이트닝 메크와 상대를 낚아채서 강제로 뭉치게 만드는 후크 메크, 전도체로 취급받는 돌덩이를 집어 던지는 볼더 메크의 조합을 통해 괴수를 밀쳐내고 제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가 뭉치는 것을 유도하여 라이트닝 메크의 전기 채찍으로 괴수를 일망타진하는 식의 플레이를 보여준다. 인투 더 브리치에 등장하는 총 8개의 스쿼드들은 서로 겹치는 컨셉없이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전장을 통제하며, 각 유닛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여야 확정된 파멸을 뒤바꿀 수 있다.

하지만 장기나 체스에서 '미래에 확정적으로 일어날 수'를 안다고 해서 그것을 역설계하고 파훼하기가 쉬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상황과 조합에 따라서는 모든 경우에 정답이 되는 신의 한 수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게임은 닥쳐올 결과만을 보여줄 뿐,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정 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만이 닥쳐올 결과를 토대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은 플레이어가 고민한 만큼 부드럽게 화답한다:이렇게 플레이어의 생각을 유도하고, 생각한 만큼 작동한다는 점이 인투 더 브리치의 핵심적인 매력이다. 이런 매력 덕분에 혹자는 인투 더 브리치가 퍼즐 장르의 문법을 따른다고 이야기했지만, 정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속성 때문에 명확한 파훼법이 존재하는 퍼즐 게임의 장르로 놓고 보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인투 더 브리치는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스쿼드 메크들과 괴수들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점에서 퍼즐 게임 특유의 정교함을 갖고 있기도 하며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로그라이크 요소들은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생각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변수 생성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하였듯이 게임은 짤막하고 단순한 것들을 조합하고, 이마저도 확고한 규칙에 근거하여 생성하기에 확률의 변덕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예를 들어 괴수의 공격 패턴은 장기/체스의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유사하며,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내의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평가한 뒤 행동한다. 이 덕분에 플레이에 따라서는 다음 턴의 괴수 움직임뿐만 아니라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다다음 턴의 괴수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심지어는 통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투 더 브리치에서 생성되는 무작위 요소들은 확률의 변덕스러움보다는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있는 도전이다.



하지만 때로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다. 본질적으로 인투 더 브리치는 퍼즐게임이 아니며, 항상 정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규칙에 따라 괴수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각각의 스테이지에서는 전술적으로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되, 장기적인 전략에서는 피해를 관리하는 위험 통제를 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전략적인 피해 관리 요소가 바로 섬 형태의 스테이지 구성과 전력 그리드, 명성의 관계다. 우선 게임은 크게 스테이지의 테마를 결정하는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섬은 7~8개의 구역 스테이지로 잘게 쪼게져 있다. 각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플레이어는 전력 그리드와 명성을 보상으로 얻게 되는데, 플레이어의 필요에 따라서 이들을 원하는 순서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지만, 자원 관리 요소가 들어있다.

특히 주의해서 봐야 하는 부분은 전력 그리드다:게임 내에서 메크는 파괴되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완벽하게 수리되지만, 메크에게 전력을 공급해주는 그리드는 게임의 전체 체력을 상징하며, 이것이 0으로 줄어들면 곧바로 게임 패배로 이어진다. 전력 그리드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피해가 누적되기 때문에, 한 스테이지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 다음 스테이지 때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역으로 플레이어가 그리드 손실을 최소화하고, 전력 그리드를 틈틈이 보상으로 모은다면 한두 번의 그리드 손실은 감수할만한 손실이 된다. 이러한 그리드 손실은 어떻게 피할 수 없는 결과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스테이지 클리어 외에 보조 임무를 달성을 위한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각각의 스테이지들은 제각기 다른 단순한 보조 임무들을 갖고 있다:특정 건물을 지키거나, 시설을 작동시켜 특정한 목표를 행하거나 등의 다양한 내용을 가진 보조 임무들은 특정한 조건 달성 시 명성이라는 보상을 제공한다. 이 명성 점수는 각 스테이지가 끝나고 나서 플레이어가 원하는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재화로 활용되는데, 파일럿의 레벨업보다는 메크 기능 해금을 위한 리액터 코어 투자로 강해지는 것이 더 직관적인 인투 더 브리치에서는 명성 점수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각각의 보조 임무들은 녹록지 않고 때로는 스테이지 내에서 전력 그리드 손실로 이어지는 판단을 해야 하기도 한다.  즉,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단기적인 전술과 장기적인 전략 부분에서 균형을 요구하며,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메크 업그레이드와 장비, 파일럿 운영은 스쿼드의 능력을 보정하는 세부적인 요소들이다. 큰 틀에서의 게임 운영을 스쿼드 선택이 결정한다면, 파일럿의 육성과 장비 또는 리액터 코어의 확보는 플레이를 편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파일럿의 경우, 메크 업그레이드보다 레벨업의 한도가 제한되며 레벨에 따른 능력 개방이 무작위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육성과 강화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파일럿은 각기 가진 개성이 뚜렷하고 무엇보다 게임 클리어/패배 시, 자신이 선택한 파일럿 한 명을 레벨과 능력을 계승하기 때문에, 초반 스테이지 클리어에 도움을 준다. 메크 업그레이드와 장비의 경우, 리액터 코어 투자를 통해 메크나 장비의 정해진 옵션을 개방하는 쪽이긴 하지만, 리액터 코어 자체가 게임 내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이기 때문에 장비의 어떤 옵션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인투 더 브리치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턴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흠잡을 곳이 없는 게임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로그라이크 류 게임답게 짧게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양태로 게임이 흘러가는데, 이들을 풍족하게 만드는 다양한 변수와 스쿼드가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기존 8개의 스쿼드를 해금하고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도전을 요구하지만 말이다. 추가로 스위치 버전으로 이식된 인투 더 브리치는 기기의 컨셉과 상당히 잘 맞아떨어진다. 애당초에 도트풍의 2D 게임인 만큼 큰 화면보다는 작은 화면에서 보았을 때가 더욱 어울리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클리어까지 걸리는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스위치로 휴대하며 틈틈이 하기에는 매우 적당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투 더 브리치는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빌고 있지만, 단순화된 규칙들과 확정된 미래를 고쳐나가는 게임 플레이 덕분에 여타 로그라이크류 게임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에 도달한 로그라이크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스위치를 갖고 있다면 구매를 적극적으로 고려해도 좋은 게임이며, 추후 FTL 같이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더 확장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훌륭한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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