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오타나 문법상 오류는 후에 탈고할 예정입니다.


한 때 스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업계와 게임 플레이어들을 호령하였다:이나후네 케이지, 미카미 신지, 이타가키 토모노부, 켄 레빈,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 등등. 이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이 말하던 것이 현실이 되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버렸다:이나후네 케이지는 마이티 넘버 나인과 함께 사기꾼이란 평가를 들으며 주저앉았고, 이타가키 토모노부는 예산 부족에 허덕이며 데빌즈 서드라는 미완성 작품을 내며 거꾸러졌다. 켄 레빈은 바이오쇼크 시리즈에서 손을 때면서 업계에서 실종되버렸고, 피터 몰리뉴와 리차드 게리엇은 증빙되지 않은 공수표를 남발하다가 팬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개발자들의 몰락은 급작스러웠고, 그 끝은 초라했다. 


스타 개발자들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대자본이 들어간 트리플 A 게임 개념의 등장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게임 매체는 여타 대중문화나 매체에 비해서 기술 및 노동집약적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영화가 분업과 해체, 재조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였지만, 게임은 영화보다 이 분업의 강도가 더욱 높다. 또한 영상 매체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카메라와 영상 편집의 툴이 보편화되어 영상 매체 제작에 대한 허들을 꾸준하게 낮춘데 비해서, 여전히 게임은 프로그래밍과 수학 등의 전문화된 기술과 개발 인력을 요하는 부분들이 있다. 즉,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더욱 산업화된 매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산업화된 매체인 게임과 과거 우세하였던 '스타 개발자가 그의 독창적 색깔이 들어간 게임을 만들어낸다'라는 명제는 서로 상반되었다는 점이다. 매체 생산 과정이 수많은 공정으로 잘게 쪼게져있는만큼 한 명의 개발자가 전체 게임 개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한 명의 천재가 전체 게임 개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이것이 수많은 스타 개발자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를 보자:역사상 가장 유명한 낙하산 게임 개발자(?) 중 하나인 미야모토 시게루는 첫번째 동키콩 게임을 만들 때 코드 작업에서부터 간단한 게임 시나리오 작업, 더 나아가서 기타로 BGM 작업까지 직접하였다. 요즘으로 이야기한다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3명의 전문 인력 몫을 해낸 것이었다. 


이는 게임 개발 초창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마음 먹고 손을 뻗기만 하면 모든 것을 만들수 있었다. 스타 개발자들의 등장은 그러한 초창기의 게임 산업의 특수성에 기반하였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작품이 누적되면서 개발자 한 명이 모든 분야를 관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게임의 산업화가 두드러졌던 트리플 A 대형 게임들은 전문화된 인력과 분업, 효율적 예산 배분과 스케줄 관리가 맞물리면서 기업화된 개발 환경에 기반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가 바뀌면서 스타 개발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키워왔던 회사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개발자들이 빠져나와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활발해진 것도 게임 개발에 있어 조직이 강조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창기 개발자들의 독립 스튜디오 설립은 오히려 스타 개발자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말았다:초창기 개발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은 게임(정확하게는 트리플 A 게임들)이 더이상 아이디어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기 어려워졌다는 점과 게임 개발에 있어 다양한 인프라(특히 재정 등)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이나후네 케이지였다:이나후네 케이지는 개발에 있어서 기획 부분만 따로 전담하는 회사인 콘셉트를 만들고 개발을 외주화 시키는 독특한 시도를 하였다. 마이티 넘버 나인에서 아니후네 케이지는 자신은 기획을 전담하고 예산은 클라우드 펀딩으로, 실제 개발을 하는 회사로 록맨 제로를 만든 인티 크리에이츠를 끌어들이는 등 게임 역사상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심찬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은 수준 이하의 퀄리티와 지켜지지 못한 약속으로 게임 역사와 자신의 커리어에 절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주목해야하는 점은 마이티 넘버 나인으로 신뢰를 잃기는 했지만 이나후네 케이지와 콘셉트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로 나름대로 주목할만한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겠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의 실패는 단순하게 이나후네 케이지의 게임 기획 능력의 부족으로 몰아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히려 마이티 넘버 나인의 문제는 기획과 개발, 그리고 이를 지탱하기 위한 예산 사이에서의 벨런스가 무너진 부분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킥스타트 펀딩 외에도 지속적으로 펀딩을 하며, 여기에 추가목표를 올리는 등 개발 과정 자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부재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만들 떄 받았던 재정적 지원을 마이티 넘버 나인은 받지 못한 원인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이나후네 케이지의 몰락은 스타 개발자가 몰락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스즈키 유, 이타가키 토모노부 등등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조직 바깥에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는 모험을 했다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은 개발자들도 있다:다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로 돌아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 개발자로 칭송 받는 그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그가 게임을 만들지 않는 대신, 그의 게임을 만드는 방법론이나 철학은 닌텐도라는 집단 전체가 공유한다:슈퍼 마리오를 이제 더이상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들지 않지만, 그가 만들었던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의 방향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살아남은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은 더이상 자신의 개발 철학을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철학을 개인이 아닌 조직이 공유하는 회사는 시대가 지나도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이끄는 프롬이 그렇고, 30년 가까이 증자 없이 흑자 운영을 하고 있는 팔콤이나 플래티넘 게임즈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은 전반적인 시장 트렌드와 별개로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닌텐도의 케이스와 다르게, 이 회사들의 규모는 여전히 작다:한명의 제작자가 여러 포지션을 담당하는 멀티플레이를 지향함으로 자신의 분야 외에도 '완성된 게임'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회사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개발자 개개인의 과중한 업무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개발사들은 닌텐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필연적으로 작은 규모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초창기 스타 개발자들의 성공담이 인디 게임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이코노클라스츠나 아울 보이, 스타듀 벨리 같이 몇년 동안 개발자 혼자서 게임 내의 모든걸 기획하고 만드는 경우나 오버쿡드! 시리즈 같이 열 손가락에 꼽는 인원이 게임을 만들어서 성공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와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시장이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인디 게임들은 트리플 A 게임에서 시도할 수 없는 대담한 시도들이 이뤄지기도 한다. 물론, 트리플 A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들과 달리, 인디 게임들은 하나의 게임을 몇년에 걸쳐서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고 완성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을 쪼게 판다는 발상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디어를 꾸준하게 업데이트해서 완성시킨다는 개념(서비스로서의 게임)의 등장은 다양한 인디 게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게임 산업 초창기에 등장한 창작자의 개성이 넘쳐흘렀던 게임들이 등장하는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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