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시대는 바뀌고 있다. 타이탄폴 1과 이볼브 등으로 대변되던 실험적 FPS 세대들은 이제 타이탄폴 2 등을 통해서 완벽하게 시장 내에 안착하였으며, 배틀필드 1로 대변되는 메이저 게임 프랜차이즈들도 이제 더이상 똑같은 내용으로 게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었던 FPS와 게임들은 바뀌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으로 급격하게 바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은 항상 이전에 보지 못했었던 탈역사성을 가진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과거는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과거로부터 미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과거의 것들이 되살아나 미래의 것들의 뒷통수를 아주 쎄게 후려칠 때도 있다. 


둠 2016은 한 마디로 거대한 충격이었다:호러 게임의 분위기를 지향했었던 둠 3 이후로 무려 10년이 지난 뒤에 등장한 정진정명한 속편은 무려 둠 3보다도 25년 전의 옛날 둠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년전에 울펜슈타인 뉴 오더를 통해서 도대체 회생 불가능할 것 같은 게임 프랜차이즈의 역습을 똑똑히 지켜본 적이 있었으며, 심지어 멀티플레이 중심의 최신 트랜드에서 엇나간 싱글플레이에서 얻은 쾌거라는 점에서 더 가치 있었던 사건이었다. 둠 역시 울펜슈타인의 성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울펜슈타인 뉴 오더가 스토리적인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면, 둠은 철저하게 게임 플레이적인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둠 2016은 분명 새로운 시대의 게임들로부터 많은 시스템을 차용하여 보완하고 있는 게임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모두 합쳐졌을 때 과거의 둠의 재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게임이 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둠이 현재의 FPS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과거의 둠이란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FPS와 과거의 둠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혹은 현재의 게임과 별개로 과거의 둠만이 가지는 개성이 무엇인가? 라는 집중에서 본다면 우리는 둠 2016이 어떤 작품인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둠의 과거 버전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는 부분은 바로 속도감과 압도적인 물량, 그리고 이 모든 걸 쉽게 즐길 수 있는 단순한 게임 플레이일 것이다.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넓은 아레나를 움직이며 무지막지하게 많은 적들을 상대하는 둠의 게임플레이 스타일은 후대 많은 게임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시리어스 샘 같이 둠의 게임 플레이를 고스란히 옮긴 게임도 있으며, 둠의 빠른 움직임에 착안하여 한 때 멀티플레이 게임을 풍미했었던 퀘이크 3나 언리얼 토너먼트 같은 게임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게임의 트렌드 사이클이 지고, 떠오르고, 다시 지는 과정이 반복되어도 둠은 단순히 '먼저 만들어졌기에 권위를 갖는' 게임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둠의 게임플레이는 너무나 잘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재미를 게이머들에게 선사하였기 때문이었다.


둠 3와 취소되었던 둠 프로젝트가 게이머들에게 많은 반향을 끌지 못했었던 것들도 그런 둠의 본질적인 측면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둠 2016이 만들고 싶은 게임은 완벽하게 90년대 만들어졌던 둠이었다:빠르고 잔인하지만 단순하며 호쾌한 게임을 둠 2016은 다시 재현하는데 성공하였다.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적들의 속도감과 물량에서 비롯되는 잔혹한 분위기일 것이다:게임은 마치 2배속 빠른 재생으로 진행되는 액션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악마들은 짧은 예비동작과 함께 빠르게 공격을 가하고, 임프의 화염구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오며, 헬 나이트는 플레이어를 진짜 묵사발로 만들어버릴 듯이 돌진한다. 때로 콜옵 시리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없는 적들의 움직임들이나 총 몇방에 픽픽 쓰러지는 모습들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둠은 다크소울의 배다른 형제처럼 느껴지는데, 다크소울이 게임의 속도감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게이머가 게임에 침잠하게 만들었다면 둠은 정반대로 게임의 속력을 무지막지하게 올림으로써 게이머도 마치 오버클럭된 CPU 마냥 빠른 속도로 생각하여 전투에서 살아남도록 발버둥치게 만든다는 점이다. 


하지만 둠은 단순히 게이머를 잔혹한 상황으로만 몰아넣지만은 않는다. 아니,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멋진 징조들의 작가 테리 프레쳇이 그랬듯이, '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악마와 싸우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수단은 더블 베럴 샷건이란 것이다'라는 말을 둠 2016은 충실하게 따른다. 둠 2016은 게이머를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화가 나있으며, 그리고 가장 잔혹한 자로 만든다. 둠은 게이머가 악마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고, 악마보다 더 무식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악마를 그야말로 찟어 죽이고 쳐죽이고 터뜨려 죽이게 만듬으로써 게이머가 그야말로 피와 폭력에 취하게 만든다. 과거의 둠 역시도 매우 매우 악마들에게 화가 난 게이머를 설정함으로써 망설임 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만들었는데 둠 2016은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악마와 작중 인물들, 더 나아가 게이머들까지 질리게 만들 정도로 지독하게 화가 난 인물을 설정하였다. 또한 글로리 킬(비틀거리는 적을 일정 무적시간과 함께 찢어죽이는 닌자 가이덴 2의 멸각 시스템과 유사한 시스템) 시스템과 연출을 통해서 무적 시간이라는 전략적인 부분과 함께 폭력의 폭발이라는 연출적인 부분을 둘다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둠 2016의 싱글 스테이지 구성은 과거의 둠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구작의 미니맵이 부활한 부분도 그렇지만, 큰 장소에 아이템들을 흩어 놓고 게이머가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싸우게끔 만드는 아레나식의 스테이지 구성은 콜옵식의 복도식 스테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아레나 형태의 스테이지 구조가 다시금 유행을 타고 있지만(이 또한 트렌드가 바뀌는 중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블옵 3 마저도 아레나식의 스테이지 구조를 보여준적이 있다), 둠 2016의 아레나는 여타 작품들과 다른 좀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구작들이 2D 맵을 3D 형태로 속이는 쪽이었기에, 게임 플레이 자체가 평면적인 형태일 수 밖에 없었다면, 둠 2016은 더블 점프나 난간 잡기 같은 최근 만들어진 FPS 시스템와 퀘이크 3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점프 패드나 포탈 같은 개념을 게임에 탑재하였다. 이는 게임 스테이지에 수직적인 높이감을 부여하였으며, 게이머는 더이상 앞뒤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뛰고 발판 위에 올라서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탄약과 체력회복을 아이템으로 하는 과거 게임의 특성을 둠은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게이머는 필연적으로 아레나 구석 구석을 탐색하고 달리면서 쏘면서 적들을 처리하게 된다. 


둠 2016의 싱글 플레이를 모두 합쳐서 본다면 게임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는 끊임없이 게이머가 생각하도록 만들게 하는 탄탄한 기본이 깔려 있다. 물론 둠 2016이 전략적으로 큰 그림을 보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게이머는 악마들이 몰려오는 걸 보면서 끊임없이 임기응변으로 악마를 처리하고 아이템을 주워먹을 것을 계산하고 달리면서 쏘고 악마를 아주 박살내버려야 한다. 하지만 게이머는 이에 대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이머는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화가 나있으며, 게임은 게이머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게임을 만들어두었다. 많은 게임들이 복잡한 시스템과 레벨업 등의 요소를 집어넣었지만(물론 둠에도 이런 시스템이 있긴 있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에 양념을 더해주는 곁다리 같은 개념이다), 둠 2016과 같이 단순 명료한 시스템에 많은 가능성을 부여한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즉, 둠 2016은 과거의 재미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현대적인 시스템과 함께 연출의 재해석, 속도감에 대한 고찰 등의 다방면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재밌는 싱글플레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둠 2016에는 멀티플레이와 스냅맵이 있다. 다만 멀티플레이는 둠 2016에 있어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다:그것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 멀티플레이의 흐름 자체가 이미 헤일로 등에서 본 것 같은 몰개성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둠 2016의 멀티플레이는 싱글플레이가 거둔 성공에 비교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다. 스냅맵은 과거 둠 커뮤니티가 보여주었던 모딩 문화를 게임 자체에 접목시킨 부분이며, 어찌보면 둠이라는 게임이 갖는 역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본격적인 모딩과 다르게 게임 제작사가 모듈화 된 유저 제작 콘텐츠 환경을 조성한 점은 기존의 모드가 갖고 있는 가능성 보다는 편의성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스냅 맵 모드 자체는 훌륭하긴 하지만(이걸로 웨이브 디펜스나 멀티플레이 맵을 만드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엘더스크롤이나 폴아웃 처럼 별도의 모딩 킷을 제공하는 것도 좋았으리라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둠 2016은 싱글플레이가 재밌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게임들이 2016년을 장식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둠 2016의 포지션은 독보적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과거의 재미를 부활시켰다는 것이 아니다. 싱글플레이만으로 게이머를 사로잡은데 성공하였다는 점, 계속해서 게이머를 생각하게 만들고 게이머가 생각한대로 부드럽게 게임이 진행되게 만들었다는 점 등은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들이었다. 비록 둠 2016이 2016년에 나온 게임들 중에서는 최고는 아닐지는 몰라도, 적어도 2016년을 뜻깊은 한 해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