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고스트가 나왔던 때를 꼽을 것이다. 고스트는 게임 프랜차이즈 역사에 거대한 오점을 남겼다. 콜옵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와 싱글플레이, 맵만 넓었던 역대 최악의 멀티플레이, 60프레임조차도 방어못했던 퍼포먼스까지, 콜옵 고스트는 콜옵이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고스트의 기록적인 실패 이후로 콜옵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드벤스드 워페어와 블옵 3를 내면서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특히, 이 두 작품은 기존의 콜옵이 갖지 못했었던 신선함을 추가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들은 가시적인 위험이 있는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일 때다. 위험은 가시적일 때 관리가능하다. 그렇기에 어드벤스드 워페어와 블옵 3가 기존의 게임 노선에서 선회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그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피닛 워페어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13번째 콜옵이자, 모던 워페어를 만들었던 위대한 제작사 인피니티 워드(에서 리스폰으로 핵심인력이 빠져나가서 얼마 남아있지 않은 잔재)가 만들어낸 인피니트 워페어는 발매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된 작품이었다. 우주로 날아가서 도그 파이팅을 보여주었던 공개 트레일러의 충격은 당시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액티비전은 이미 모던워페어 3가 나오는 시기쯤 해서 스페이스 워페어 등의 상표등록을 했었고, 그런 점에서 콜옵이 우주로 날아가는 것은 논리적인 수순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물론, 발매 후의 평가는 여전히 정진정명한 콜 오브 듀티라는 평가가 절대 다수이다:싱글은 짧지만 여전히 재밌고, 멀티는 기존의 작품들의 장점만을 가져오고자 노력하였다. 콜옵을 매년 구매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인피닛 워페어다. 하지만 바로 이 정진정명한 콜옵인 인피닛 워페어에서 콜옵 프랜차이즈 붕괴의 징조가 느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피닛 워페어 싱글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우주로 나아가는 게임 플레이로 사람들을 벙찌게 만들어놓고서는 정작 게임 본편은 모던워페어 1편과 그 이전의 콜옵 스타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이다:게임은 짧은 복도와 작은 방들이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바로 전작이었던 블옵 3가 다양한 능력과 함께 맵을 거대하게 키우고 게이머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적을 처리하는 아레나 형식의 스테이지를 구성한 것과는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게임 플레이만 놓고 본다면 인피닛 워페어는 일종의 '복고적'인 게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는 인피니트 워드가 좋은 시절에 만들었던 구작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옵 3에서 했던 것처럼 로드아웃 개념을 들고오는 등 기존 시리즈의 장점을 갖고 오고자 많은 노력을 꽤하기도 하였다.


인피닛 워페어의 싱글플레이에서 좋게 평가할 부분은 바로 스토리일 것이다:이전의 콜옵들,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옵 3, 심지어는 그들이 만들어낸 망작인 고스트까지 포함해서 콜옵의 싱글은 점점 복잡한 테마를 지향하게 되었다면, 인피닛 워페어의 이야기는 2차세계대전을 다룬 콜옵의 이야기들인 전쟁 영웅들과 그들의 전우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게임의 연출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콜옵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지만, 인피닛 워페어는 테마와 스토리 측면에서 '다시 콜옵의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평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함내에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 군상을 집어넣고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과 갈등에 집중한다. 인피닛 워페어는 콜옵 역사상 가장 많은 조연들과 얼굴을 마주한다고 볼 수 있는데, 게임은 최대한 이들에게 목소리와 케릭터성을 부여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린다. 이를 통해서 게임은 함장을 따르는 수많은 부하 인물들과 주인공 사이의 유대를 다루고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에 이를 터뜨리고자 한다. 기획의도와 구조만으로 보았을 때 인피닛 워페어는 기존의 콜옵보다는 짜임세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 싱글 스토리에는 분량이라는 큰 문제가 있다:기본적으로 5~6시간 내외의 짧고 집중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콜옵식 싱글플레이의 원칙을 이번 인피닛 워페어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문제는 이 콜옵식 스토리의 공식이 게임의 스토리에 이입하기도 전헤 게임을 끝내버린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게임은 사이드 미션을 싱글 캠패인에 도입하여서 게임의 분량을 어떻게든 늘려보고자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 결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감정을 이입할 사이도 없이 급박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게임은 동료들의 죽음을 마치 20시간 정도 플레이를 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들의 죽음을 다루듯이 비장하게 이를 연출하지만, 정작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장렬한 희생이 어색하고 찝찝한 기분을 남길 뿐이다.(심지어 이 모든 것이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다!) 만약 인피닛 워페어 싱글이 더 나은 평가를 받으려 했었다면, 적어도 10시간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어야 했었다.


싱글플레이는 아쉽다고 할 수 있지만, 멀티플레이는 '답보'라는 표현을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개성이 없다. 게임은 기존의 블옵 3와 어드벤스드 워페어의 멀티플레이를 그대로 들고왔다:월 런이나 킬스트릭과 별개로 움직이는 페이로드, 그리고 상시 달리기 지원과 함께 커진 맵 구성까지 게임의 모든 부분은 이전 작품들의 평가를 그대로 준용해도 될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콜옵이 매년 발전해야한다는 명제는 모던 워페어 1편부터 3편까지를 내리 경험했던 유저에게 있어서 논센스이겠지만, 콜옵이 블옵 시리즈나 어드벤스드 워페어를 통해서 자신만의 색다른 변주를 꾀했다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던 워페어 이후 콜옵은 항상 트렌드보다 반 발자국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서 인피닛 워페어는 게임 자체를 성공했던 부분만 그대로 차용해서 게임을 보수적으로 다듬는데 집중하였다.  


물론 콜옵이라는 프랜차이즈의 특성을 생각한다면(매년 나오고, 게이머들에게 평균적인 재미를 제공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인피닛 워페어는 여전히 뼈대 자체가 훌륭한 게임이다. 블옵 3의 월런과 부스터를 이용한 맵구조의 복층화는 게임적인 측면에서 검증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인피닛 워페어의 내부에서 오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비롯된다:배틀필드 1과 타이탄폴 2는 전작들의 구조를 치열하게 다듬어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였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과거의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재미를 새로운 형태로 되살리는데 성공하였다. 둠은 울펜슈타인:뉴 오더와 함께 싱글만으로 값어치 있는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게임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리고 어드벤스드 워페어와 블랙옵스 3는 이러한 발전하는 게임 트렌드에 발맞춰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점점 높아지고 변화를 요구하는 게이머들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는 어떤가? 인피닛 워페어는 너무 쉽게 그 반발자국 앞서 나가는 이점을 포기해버렸다. 2016년 발매된 게임들이 프랜차이즈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거둔 성공을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동력으로 쓰고 있는데 반해서 인피닛 워페어는 싱글과 멀티 양측면에 있어서 먼저 거둔 성공에 너무나 쉽게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인피닛 워페어는 정진정명한 콜옵이다.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콜옵이었던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옵 3에도 이러한 타이틀이 붙는다는걸 감안한다면, 인피닛 워페어는 너무나 쉽게 안주해버린 정진정명한 콜옵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어야 한다. 한 때 모던 워페어 3도 그런 타이틀을 얻었던 적이 있었고, 그때도 콜옵 프랜차이즈는 무사히 살아남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던 워페어 3가 나왔던 시기의 게임들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시작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안주는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에게 있어서 시기는 너무나도 좋지 않다:한 때 게임계를 정의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무너지고 다시 정의되는 이 시기에 인피닛 워페어는 게이머에게 재미는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약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프랜차이즈로서의 콜옵이라는 거인이 무너지고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서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