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가 만든 엑스윙 미니어처 게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흥미로운 조언이 있다: 언제나 아미 로스터를 짤 때는 그 '지역 매장'의 메타를 생각하면서 짜라. PC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표현은 대단히 생소할 것이다. 물론 메타라는 단어 자체는 이미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개념( 게임에 있어서 우세한 전략이나 전술, 게임 운영법 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매장'의 메타를 항상 염두에 두라니? 하지만 이러한 조금 이해가 안되는 조언은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미니어처 게임은 어디까지나 실물의 미니어처를 사용해서 게임을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장소와 환경이 필요로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미니어처 게이머들은 이러한 장소와 환경을 모두 충족하는 결절 지점(지역 보드 게임 및 미니어처 매장)으로 모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엑스윙의 메타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메타를 지니는 PC 게임들과 다르게 지역단위로 쪼개질 수 밖에 없다:미니어처 게임이라는 물리적/게임 장르적 특징들이 게이머가 만날 수 있는 상대와 전략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의 발달은 미니어처 게임이라도 메타의 연구와 공유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엑스윙 미니어처의 사례와 같은 종종 게임을 둘러싼 유형/무형의 환경이 게임의 내연과 외연을 확장하는 것(혹은 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우리는 이것을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라고 지칭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문화의 가능성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는 게임에서는 새로운 문화는 등장할 수 없다:문화란 공유되는 속성이기 때문에 집단의 규모가 작아지면 작아질 수록 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게임 회사들이 자신들만의 '자체 플랫폼'에 게이머들을 얽메어 두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플랫폼이란 단순히 게임과 서비스가 유통되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다:플랫폼은 게임 제작사들이 게이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규정하는 의사소통과 사고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이 같은 플랫폼 아래서 묶여있다면, 제작사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소비자들이 자신의 한 게임에서 다른 게임을 소비하는 것을 유도할 수 있다.


게임이 DLC와 업데이트를 통해서 하나의 완결된 상품이 아닌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 개념으로 이행함으로써, 제작사들은 직접적으로 매출에 기여하지는 않지만 게이머들이 게임 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즐길거리들을 게이머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보통 이러한 것들의 일반적인 결과물들이 바로 E스포츠라 할 수 있을 것이다:E스포츠는 그야말로 게이밍 문화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무언가라 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 시스템의 헛점과 한계를 교묘하게 이용하기 까지 하는(스타크래프트 1 리그에서 버로우한 럴커를 시즈 탱크 스플래시 사격으로 죽이듯이) E스포츠는 멀티플레이라는 게이밍 환경이 보급된 이후 근 20년간 게이밍 문화를 설명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야심찬 게임 제작사들은 자신의 게임을 E스포츠화 하는 것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게이밍 문화는 변화하고 있다:더이상 이기기 위한 메타와 E스포츠는 모든 게임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없게 되었으며, 특히 게임 방송의 등장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즐기는 게이밍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더이상 게이머는 다른 게이머의 경쟁상대거나 협동상대가 될 필요가 없어졌다. 한 게이머는 방송으로 다른 게이머의 관객이 될 수 있으며, 게이머는 게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관객의 수요에 상응하는 배우가 된다. 많은 유튜브 게임 스트리머들이 어느 면에선 훌륭한 배우(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희곡 배우와는 다르지만)의 자질을 띄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초기 게임 영상물에 많은 영향을 끼친 제임스 롤프(AVGN)가 아마추어 영화 감독이었고, 그의 영상물에 B급 영화의 문법과 페러디들을 결부시킨 것도 단순히 넘겨짚을 사항은 아닐 것이다. 즉, 이제 게임은 경쟁/협동 뿐만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환경과 문화, 그리고 심지어는 다른 게이머들이나 자신마저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승리'만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물론 여전히 타인과의 경쟁/협동은 게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이러한 대전제가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해서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가령, LOL에서 징크스의 등장과 함께 많은 게이머들이 징크스의 '성능'과 별개로 징크스를 플레이해보고 싶다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표했었던 경우를 보자. 이 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들이 게임물을 흐린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찌푸려지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였지만, 핵심은 '이기기 위해서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닌 '케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항상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게이머들은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에 있는 콘텐츠나 표현 양태에 끌려서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SNS 등의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빠르게 전파되고 공유되는 양태는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인프라의 발전이 일구어낸 게이밍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버워치나 동방 프로젝트의 경우는 게임 위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덧대여져 만들어진, 그야말로 게임과 게이밍 문화의 복합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복잡한 맥락과 소비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었던 게임의 컨텐츠의 방향성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스팁의 사례를 보자. 스팁은 SSX나 토니 혹스의 프로 스케이터 같은 묘기를 부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이 다뤄지는 양태는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함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스팁은 전적으로 고프로(몸 등에 붙여서 스포츠, 격한 상황을 촬영하는데 사용하는 액션캠 브랜드) 감성에 근거하고 있다:게임의 모든 시도와 실패, 성공들은 녹화되고 기록하기 편하게 관리되며, 게임은 넓은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을 독려한다. 게임은 짧지만 반복적인 단위로 끊어지며, 게이머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더 나은 묘기를 시도하게 된다. 기존의 게임들이 긴 호흡으로 영화 같은 플롯과 장엄함을 강조한 나머지, 게임 방송으로써는 부적합한(한번 체험한 이후 그 컨텐츠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양태를 띄었다면 스팁 같은 게임의 경우 게임 방송이나 영상물 제작을 많은 부분 염두에 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게임 문화의 변화는 우리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었던 게임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