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이볼브는 터틀락 스튜디오에서 만든 4 vs 1 경쟁 협동 FPS이다:게이머들은 몬스터 한 명과 헌터 4명으로 편을 가르고, 몬스터는 도망을 치고 헌터는 그를 쫒는 형식으로 게임이 진행이 된다. 게임의 분량이나 DLC 정책, 벨런스를 놓고 말이 많기는 하지만 이볼브의 기본 골격은 탄탄하고 재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후속작이나 보완책 등을 통해서 더 나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인은 본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취향만 맞으면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볼브의 등장은 단순하게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멀티플래이 장르가 등장하는 가능성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레인보우 식스:시즈는 게임 리빌 트레일러에서 게이머들의 보이스챗 음성을 집어넣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게임 내에 있어서 채팅이라는 개념이 게임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보조하는 개념이 된것이다. 다만 채팅이란 시스템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보이스 챗 장비의 염가화 덕분에 보급된지 몇년이 지난 상태이다. 전략을 짜고 움직이는 AOS 장르나 RTS 장르, MMORPG에서는 채팅이나 보이스 챗이 필수적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MMORPG 제작자들이 채팅 등의 의사소통에 수단을 중요한 시스템으로서 정하고 세심하게 다듬는 것 역시 이러한 특징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콘솔 중심의 FPS 장르는 어떠한가? FPS 장르, 특히 콘솔을 중심으로 흥한 콜옵식의 데스매치 중심의 멀티플래이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대화 한마디 일절 필요없는 단순함을 보여준다:게이머는 달리고, 쏘고, 죽이고, 죽는다. 이 과정이 짧게는 10여초에서 길게는 수십초를 한 싸이클로 삼아 돌고 돌 뿐이다. 물론 이러한 단순성이 수많은 사람들이 멀티플래이를 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게임을 단순한 규칙에 가두어버리는 문제를 갖는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 이후, FPS 장르 또는 TPS 장르에서 멀티플래이는 큰 변화가 없었다. 게임은 빠르고 단순하며 반복적인 사이클에 갇혀있을 뿐이었다.


물론 조금 조금씩 이러한 문제에서 변주를 주기 시작한 장르적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코옵으로 불리는 협동모드 게임들은 플래이어와의 유기적인 협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친구와의 보이스 채팅 역시 이러한 코옵 게임들을 플래이하게 만드는 유입요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가 AI라는 점에서 코옵 게임은 복잡한 전략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커모로즈(단축키 등을 통해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등을 통해서 간단한 의사소통은 빠르게 하는 등의 시스템적 보완으로 채팅이라는 기능을 보완하였다. 레프트 4 데드에서처럼 코옵 모드 매칭에서는 게이머가 특별한 채팅없이도 커모로즈와 인 게임 케릭터의 대사에서 얻는 정보만으로 전혀 모르는 게이머와 함께 협동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레프트 4 데드를 플래이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대전 모드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믿는다:특수 좀비 4명과 생존자 4명으로 구성되는 레프트 4 데드의 대전 모드는 독특한 게임 시스템과 경험으로 많은 게이머들을 매료했다. 그러나 여기서 좀비측 역할을 맡는 게이머들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에 자주 봉착한다: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모든 특수 좀비 4명이 그야말로 동시에 호흡을 맞춰서 생존자를 덮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좀비측 게이머들은 필수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FPS라는 게임 특성상, 키보드 채팅은 적합하지 않다:사실 이때부터 보이스 채팅을 이용한 전략-전술의 수립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외에도 난이도가 올라가고 각종 HUD가 꺼지는 리얼리즘 모드에서도 보이스 채팅을 통해 서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정보들을 보완해야 한다.


레프트 4 데드 시리즈의 대전과 리얼리즘 모드에서의 실험과 그것이 가져다준 독특한 경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레포데라는 게임 자체가 PC 기반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의 게이머가 플래이하는 콘솔쪽에서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한 점, 무엇보다도 콘솔 인프라가 이러한 파티플래이에 부적합했기 떄문이다:PS4의 파티 챗 기능(게임 중이라도 인게임 채팅이 아닌 파티채팅으로 분리시키는 기능) 등의 편리한 기능들은 과거 콘솔에는 부재하였으며, 또한 헤드셋이나 마이크 같은 부가적인 장비들이 기본적으로 지급되지 않았었기에 플래이어들이 이를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PS4와 엑원의 경우 이러한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탑재함으로서 보이스 채팅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그 결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재밌는 결과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데스티니를 보자. 데스티니는 세미(?) MMOFPS를 지향하는 작품이며, 레이드 모드 같은 경우에는 나름대로 복잡한 텍틱을 요구하기도 한다. 데스티니는 보이스 채팅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하며, 동시에 파티를 맺은 사람들끼리만 보이스 채팅을 공유하고 그 외의 타인과는 보이스 채팅을 하지 않게 만들어두는 등 보이스 채팅 시스템을 세밀하게 손보았다. 그 결과, 여타 MMORPG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레이드 모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볼브 역시도 이러한 환경과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임이다. 팀웍은 필수적이며 게이머는 포인팅으로 다양한 사물을 가리켜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보이스 채팅을 통한 빠른 정보의 공유(아레나를 깔았는데 몬스터가 잡혔는가? - 몬스터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 등등)가 절실하게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단순한 전략 전술 계획을 세우는 등의 소통도 필요하다. 보이스 채팅이라는 요소가 이볼브라는 게임에 있어서 거의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위상이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게임 내에서 의사소통이 편리해지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다면, 게임은 단순한 규칙을 벗어나서 좀더 복잡하고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의사소통이 만사형통이라 할 수는 없다:이미 이전에도 데몬즈 소울-다크 소울 시리즈처럼 채팅 없이 제스처만으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든다던가, 저니처럼 채팅 없이 오로지 이끔만으로 다른 게이머와 소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승리이며, 아이디어의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스 채팅을 통해 이룩된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러한 시스템 상의 보완을 뛰어넘어서 직설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소통을 하는 것, 더 나아가서 보이스 채팅을 이용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는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