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일상적인 삶에서 여러분들의 하루는 어떠한가? 상상해보자: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에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한다. 그리고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6시 쯤에는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약간의 여가를 즐긴 뒤에 밤 12시 쯤에는 잠자리에 들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진창나게 퍼마시고 주말을 편하게 즐길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삶이란 대단히 단순한 것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느날에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우울할 수도 있고,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질수도, 갑자기 엉뚱한 일이 일어나서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삶을 살더라도, 삶은 꼭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그 규칙 자체를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단히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왜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삶의 이야기를 하는가? 게임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게임이 쉽고 재밌게 풀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게임이 안풀려서 게임 자체가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게임이 끝으로 갈수록 재밌게 느껴질 때도, 반대로 처음에 재밌던 게임이 진행하면 할수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공하는 경험이란 게임을 플래이하는 동안 전적으로 '동일'하고 '균질'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 플래이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질인 '경험'이라는 부분이 게임을 플래이하고 느끼는 감상의 스펙트럼을 다른 매체보다도 더 다양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해해서는 안된다:그렇다고 해서 이를 철저하게 상대주의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라는 텍스트가 존재하는한, 그 텍스트라는 중력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게임 플래이의 온도차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게임마다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짧고도 미진한 고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게임들은, 분명하게도, 대단히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기도 한다:아케이드 류의 스마트폰 게임이나 콜옵 멀티류의 게임이 여기에 대표적으로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게임들은 언제 어느 순간에 해도 비슷하고도 안정된 경험을 제공한다:하지만 이 뜻이 게임 자체가 '조용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콜옵류의 멀티 플래이의 경우에는 게임 경험 자체가 대단히 자극적이며, 본인이 몇번 플래이해본 스마트폰 게임 더 펌(펀드매니저가 되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종의 아케이드 퍼즐 게임) 같은 경우에는 밀려오는 주식을 처리하는데 머리를 빠릿빠릿하게 굴려야 한다. 


게임의 온도차가 적다는 것, 게임이 일관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게임 자체가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이러한 일관되고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는 게임들은 게임의 사이클 자체가 대단히 '짧게' 돌아가기 때문에 게임이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게이머는 급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며, 그 적응 과정 자체는 격렬하며 자극적이며 한번 게임 하는 시간이나 리스폰 후의 플래이어의 생존 시간은 스탈린그라드에 떨어진 독일군/소련군 병사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콜옵의 경우에는 색적-사격-이동의 반복, 더 펌의 같은 경우 주식 가격 정보의 분석) 재미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평균적이고도 일관적인 온도차를 깨부수는 '격렬한 순간'이 가끔씩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콜옵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킬스트릭의 형태라는 보상으로 이어지는데, 많은 게이머들이 콜옵 자체의 온도차가 적은 게임 플래이를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한방의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게임을 지속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온도차가 적은 경험을 제공하는 콜옵 같은 게임들은 어떻게 본다면 인스턴트 식품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간단하게 즉석에서 편하게 즐길수 있으며 모두의 입맛에 맞게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게임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게임의 플래이 경험에 있어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와 정반대로 게임의 온도차가 극명한 게임들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는 게임 플래이의 페이스가 느리고 빠르고를 떠나서 '게이머가 게임에 많은 것을 채워넣을 수 있을 때' 가장 극명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격투게임 처럼, 프레임 단위의 공방이 일어나며 게이머가 순간순간 모든 판단을 하고, 그 판단 모두가 게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 그렇기에 매 순간순간의 라운드와 게임이 동일하지 않고 각기 다른 느낌이 들 때처럼 말이다. 


이런 게임들의 특징은 잘되는 게임들은 정말로 재밌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안되는 게임은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없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볼브를 들어보겠다. 기본적으로 숨바꼭질의 룰을 따르는 이볼브는 술래 역을 맡은 헌터들이 몬스터를 쫒아서 수백미터 넓이가 되는 맵을 뺑뺑이 도는 플래이를 보여준다. 헌터가 몬스터 플래이어를 제대로 쫒아갈 때, 게임은 더할 나위 없이 재밌다. 몬스터 플래이어는 끊임없이 몸을 비틀며 헌터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하고, 헌터는 초반 화력의 어드벤티지를 이용해서 몬스터 플래이어에게 타격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터의 팀웍이 조금이라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면 게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게임이 된다:헌터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몬스터를 쫒아서 수백미터가 되는 맵을 뺑뺑이를 돌며, 20분 내내 몬스터 얼굴 한번 보지 못한채 애꿎은 야생동물에게 총질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헌터나 몬스터 플래이어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본다면, 이볼브의 문제는 게임 디자인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게임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몇몇 전제들에 대해서 게이머들이 아직 낯설어 하는 인프라, 보이스채팅의 문제라고 본인은 생각한다:추적에 있어서 시각이나 청각적 정보는 중요하며, 포위망, 작전 등의 개념은 단순하게 커모로즈 같은 편의적 시스템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볼브에 있어서 의사교환, 보이스채팅의 개념은 '백지를 채워넣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백지를 채워넣는 행위가 여타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생소한 부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크게 두가지 부류로 온도차가 크냐 작냐를 나누기는 했지만 사실 게임 텍스트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매체적인 한계가 게임 경험을 온도차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 경험을 가능하게 할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위에서 논의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시작하기 위해서 남겨놓은 일종의 메모라고 생각하시고 접근해주시면 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