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3인칭 액션 게임이든 1인칭 액션 게임이든 간에 '파쿠르' 또는 '프리러닝' 요소를 도입한 게임들이 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이 마케팅의 주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는 그렇게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도시의 복잡한 건물, 인공물, 지형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달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파쿠르 또는 프리러닝은 대중문화 깊숙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심지어는 13구역 같이 그것이 '메인 키워드'가 되는 영화가 등장함으로서 과거 힙합과 랩이, 그라피티가, 플래시몹이 차지했었던 힙한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이어받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있다. 하지만 게임과 파쿠르의 결합에 앞서서 우리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과연 파쿠르와 프리러닝이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요소일까?


여기 미묘하고도 섬세한 함정이 숨어있다. 파쿠르와 프리러닝, 그리고 게임과의 결합은 분명하게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흐름과 경향 자체가 게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전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보라: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모서리 난간을 잡고 오르며, 장애물과 계곡을 뛰어넘고, 함정들을 피하거나 살금살금 움직이는 등의 다양한 동작을 이용해 게임을 클리어하게 된다. 물론 현대적이면서 세련되고 쉽고 화려한 파쿠르에 비하면 페르시아의 왕자는 대단히 투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현대적인 파쿠르/프리러닝 게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작품이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라는 점, 그리고 시간의 모래가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에서 파쿠르와 프리러닝은 새롭게 도입된 개념이 아닌 '재발견된'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파쿠르라 인지하는 것이 과거의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파쿠르나 프리러닝이 게임의 역사에 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아닌 예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선반에서 선반으로 건너뛰어 움직이는 개념, 이동의 게임화라는 의미에서 플랫포밍이라 불렀다. 사실, 이는 어찌보면 말장난에 가까운 개념이다:파쿠르든 플랫포밍이든 사실 본질적으로는 게임 내의 이동과 이를 게임의 시스템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개념으로 사실상 동일한 개념에 가깝기 떄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플랫포밍이라는 개념이 파쿠르와 프리러닝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렇게 보도록 하자:최근에 나온 다잉 라이트는 1인칭 프리러닝 액션 좀비 오픈월드 게임이다. 그리고 게임은 게임내의 플랫포밍 요소들을 프리러닝 게임 답게 구성을 해놓는다. 게이머는 난간을 오를 수 있고, 벽에 메달릴 수 있으며,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는 장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왜 1인칭 프리러닝 액션 게임을 찾아보기 극히 드물까? 미러스 엣지 이후로 1인칭 프리러닝 게임은 사실상 전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에서 1인칭이라는 시점 자체는 프리러닝을 구성하기 힘든 시점이다. 언차티드같은 3인칭 액션 게임처럼 발판에서 발판의 이동루트를 확인할 수 있고 그리고 케릭터의 모션을 통해서 여기가 건너가도 되는 구역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1인칭의 제한된 시점은 3인칭의 전지적인 관점은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잉 라이트의 프리러닝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게이머가 일직선으로, 수평으로 달려나갈때는 게임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담장을 넘거나, 슬라이딩으로 바리케이드를 피하거나...조금만 익숙해진다면 이러한 장애물들은 즐길 수 있는 상쾌한 도전이 된다. 하지만 게임이 수직적인 이동을 요구하는 순간, 갑자기 게임은 답답하고 짜증나는 막장 게임으로 돌변한다. 어디에 난간이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실 게임은 3인칭 액션 게임에서 많이 보여지는 '색칠된 난간'이라는 기제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색칠된 난간이라는 기제조차도 1인칭의 제한된 시점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라디오 타워나 빌딩 같은 곳을 오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게이머는 추락사에 추락사를 거듭할 뿐이며, 짜증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여기에 아주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 숨어있다. 파쿠르와 프리러닝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케릭터의 '육체'를 사용하는 개념이다:하지만 과연 프리러너들이, 파쿠르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각만으로 프리러닝을 할 수 있을까? 다잉 라이트에서 경험했던 문제처럼 시각이라는 감각은 의외로 제한되어있는 감각이다.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가하지만, 프리러너들은 달릴 때 시각 뿐만 아니라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서 자신의 균형감각을 찾고 장애물들을 건너 뛸 것이라 본인은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단지 시각에 의존해서 달릴 수 밖에 없는 게임에서의 프리러닝 요소는 3인칭 카메라라는 보완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하기 힘든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각을 틀어보자:프리러닝이나 파쿠르 자체가 게임에 구현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면, 다른 게임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답은 명확하다:현실을 게임으로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게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디스아너드의 경우,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을 들고와서 복잡 다단한 레벨 디자인을 플랫포밍의 형태로 구현하였다. FEZ의 경우, 시점의 변화를 통해서 발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발상의 전환'을 하도록 요구하였다. 슈퍼마리오 갤럭시 2의 경우에는 중력을 통해서 세계가 뒤집히고 변화하는 모습을 플래이어가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저스트 코즈 시리즈는 만능 그래플을 게임에 투입하였다. 어드밴스드 워페어는 엑소 수츠를 사용한 점프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육체가 직접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프리러닝의 개념을 넘어서, 이 발판에서 저 발판으로 건너가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더 포괄적인 질문으로 이행하면 오히려 답은 명쾌하고 재밌게 풀리게 된다.


재밌는 점은 다잉 라이트 역시도 그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게임은 저스트 코즈의 그래플링 훅 개념을 도입하여 프리러닝과 결합시킨다. 그 결과, 그래플링 훅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게임은 매우 부드럽고 명쾌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오작동과 판정의 이상함은 있지만, 그러한 문제 정도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플링 훅이라는 개념 자체가 게임에 있어서 부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게임의 마무리의 난점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그래플링 훅은 다잉 라이트 게임에 있어서 프리러닝의 결점을 보완하는 핵심적인 요소인데, 그래플링 훅을 얻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진행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해금하고 채득하는 것이 아닌 별개로 레벨을 올려서 해금을 해야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문제를 훌륭하게 보완할 정답을 찾아내고서는 그 정답을 알아보지 못할 악필로 휘갈겨 쓴 듯한 모습은 다잉 라이트라는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