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혹시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라는 영화를 아시는가? 그 영화에 이런 시퀸스가 있다:빈 집에 들어가 생활을 하는 특이한 취미를 가진 주인공은 빈 집에서 생활하는 도중에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 가족들은 가족여행이 계획대로 안됐음을 짜증내며 서로에게 지치고 언짢은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김기덕의 주요 모티브인 '중산층 판타지의 붕괴'를 저자극적으로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여행이란 것은 마치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여행이란 일탈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라는 것, 그리고 빈 집의 그 장면에서 김기덕은 중산층 가족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짜증과 현실을 짧고 인상적으로 다루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파크라이 3과 4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앞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파크라이 3과 4는 게임 자체도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더욱 재밌는 부분은 바로 '스토리'에 대한 게이머들의 비슷한 평가들(찝찝하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김기덕 감독 영화의 한 장면, '여행'과 '귀환'이라는 모티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치 일 보고 뒤 안닦은거 같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파크라이 3과 4의 스토리평가는, 파크라이 3과 4가 기존의 게임 프랜차이즈들의 스토리와 서사구조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게임에서 주인공이 여러 사람들의 부탁을 듣고 좋은 일을 하며 죽어 마땅한 놈들을 총으로 쏴죽인다는 점에서 파크라이 3과 4는 다른 게임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나쁜 놈을 쏴죽이는 것과 별개로 게이머들이 공통적으로 찝찝하게 느끼는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만약 게임 스토리가 나쁘다고 판단된다면, 사람들은 '스토리가 나쁘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크라이 3과 4 엔딩 찝찝하네요...'라던가 '4 같은 경우는 차라리 히든 엔딩이 굿엔딩이네요' 라는 식의 평가를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파크라이의 게임 스토리를 '잘못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납득은 되는데 찝찝한 무언가'라고 평가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게임들은 '찝찝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우리는 파크라이 시리즈의 게임 플래이 방식에 주목하여야 한다:파크라이 1편부터 거대한 필드와 자유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여주었고, 2편부터는 본격적으로 오픈월드 FPS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픈월드 게임들의 대부분이 3인칭인데 비해서, 파크라이 시리즈가 갖는 특징은 바로 FPS라는 점이다. 또한 재밌는 점은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흥행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3편에서는 단순하게 '야외'라는 공간을 넘어서 '광기로 벗어난 비일상의 세계'라고 스테이지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파크라이 3의 게임 경험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초록색으로 빛나는 폴리네시아의 정글은 단순하긴 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존재하며, 항정신성 의약품에 근거한 경험들을 게임의 스테이지로 채용하는가 한편, 정신나간 퀘스트들과 맛이간 케릭터들을 게이머는 파크라이 3에서 경험한다. 4편은 이러한 3편의 특징들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모습을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3편과 4편의 주인공들이 모두 이러한 상황에 '의도치 않게' 뛰어들었다는 점이다:3편의 제이슨은 동생의 면허 취득 축하 파티에서 정글로 스카이다이빙 하다 루크섬에 떨어졌다. 4편의 아제이는 어머니의 유해를 고향에 돌려놓기 위해서 생면부지의 고향 키라트로 돌아간다. 재밌는 점은 이 두 이야기의 시작이 '일상에서 탈출한/벗어난 여행'라는 요소에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오픈월드의 정의는 애매하지만, 좀 포괄적인 접근을 더해보자면 '미션이나 스테이지 구성에 얽메이지 않고 내 할일을 찾아내는 넓은 공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광대한 오픈월드의 구체적인 모습과 스테이지 구성은 항상 게임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레드 데드 리뎀션에서는 서부 개척 시대의 종말에 어울리는 세계를, GTA5에서는 현대문화와 서브컬처를 비꼬고 집대성하는 모습을, 어크 시리즈는 역사적 사건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는 파크라이 3와 4의 시작이 일상에서의 탈출, 그리고 '여행'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만약 그렇다면, 게임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일상에서 탈출해서 즐기는 비일상의 여행'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파크라이 3과 4가 여지없이 보여주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광기'는 여행의 '목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파크라이 3과 4의 세계, 루크섬과 키라트는 광기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게이머는 이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놀이기구(미션 및 활동)를 탈 수 있다. 게이머는 수목원에 들어가서 식물들을 즐기듯이 원시와 고대의 야만성을 즐기며, 공포를 즐기기 위해 유령의 집에 들어가듯이 항정신성 의약품을 한껏 들이킨 스테이지를 체험할 수도 있다. 즉, 파크라이의 세계는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게이머를 위한 일탈의 공간이자 출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게임 속의 스토리는 심각하기 그지없다:친구와 형제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다니거나(3편), 막장이 된 모국을 구하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4편)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중간중간 드러나는 '태도'이다. 약공장에 불을 지르고는 환각을 보면서 싸우거나, 공중감옥에서 악몽을 보며 탈출하거나 등 게임은 얼핏 진중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부분에 광기와 장난스러움을 덧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파크라이 3과 4는 다른 게임들과 차별적이다.


그리고 플래이어의 시점이 '1인칭'이라는 점도 유념해둘만 하다. 파크라이 3과 4가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가장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점이 바로 이 FPS라는 장르적 특성인데, 재밌는 점은 이 FPS에서는 '케릭터의 수동성'이 강조되기 쉽다는 것이다:구체적인 이유는 여지껏 설명된 적이 없지만, 어찌보면 FPS의 케릭터는 '내가 바깥에서 보고 인간형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내 자신의 분신으로써 존재하는 카메라맨'의 성격이 더 짙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프 라이프의 고든 프리먼 같이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케릭터도 있지만, 파크라이 3의 제이슨이 수동적인 부분이 강해서 아쉬웠다 라는 평이 은근히 존재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그런 부분을 보강한(좀더 적극적인 리액션을 보여준다) 4편의 아제이도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인상이란 점은 3과 4편의 스토리텔링의 문제라기 보다는 'FPS'가 갖고 있는 장르적 한계와 후술할 여행이 갖는 본질적 한계와 맞물리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파크라이 3과 4가 스토리와 게임 진행의 측면에서 '일탈적 여행'이라는 지점을 강조했기에 역으로 게이머가 갖는 한계가 생긴다. 그것은 바로 여행을 온 관광객은 어디까지나 '외부적 관람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편의 제이슨은 자신이 루크섬의 광기와 야만에 점점 물들고 거기에 알맞은 인간으로 변화하게 되지만, 정작 본질적으로 그는 외부인이기에(어떤 현지인은 그를 '백설공주'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완벽하게 동화될 수 없으며 찝찝한 두 엔딩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편의 아제이 역시도 아미타와 사발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만, 그 어느 선택도 해답이 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점점 그들과 겉돌게 되는 아제이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결국 엔딩의 찝찝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분명하게도 주인공들이 이 광기로 알록달록한 테마파크의 관객이기 때문에 생긴다:관람객은, 테마파크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다. 모든 것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테마파크 자체를 상호작용하여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광기와 일탈의 테마파크는 언젠가 끝을 맞이해야 한다. 테마파크에서 영원히 살 수 없듯이, 게이머 역시도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언제가 되어야 할까? 가장 적당한 순간은 바로 '엔딩'일 것이다: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야하는 순간. 그리고 게임은 광기와 현실 사이에서 괴리된 찝찝한 엔딩을 제공한다. 게이머들이 대부분 느끼는 찝찝함이란 바로 그것일 것이다:즐겁게 뛰놀았던 광기의 세계는 결코 현실의 이성과 합리가 대입될 수 없는 완벽한 일탈의 세계였다는 것, 결국은 게이머는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게이머 자신이 게임이 끝난 이후에도 현실에서 광기에 미쳐서 날뛸거라고 생각하고 이런 엔딩을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게임이 이러한 스토리 구조를 보여주는 것은 '관광객과 테마파크의 위치'를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완결성, 자신의 문법을 그대로 관객에게 드러냄으로서 이것이 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마술사의 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엔딩의 찝찝한 여운은 빈 집의 그 장면과 유사하다:여행은 항상 즐거울 수 없으며 완벽한 여행이란 없다. 그것이 의도하든, 혹은 의도치 않든 간에 파크라이 3과 4의 이야기는 관객을 즐겁게 속이고는 자신의 속임수를 관객에 내보이고 퇴장하는 마술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