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요네타라는 케릭터는 어찌보면 데빌 메이 크라이의 단테라는 케릭터의 거울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쿨시크하게 넘겨버리며 댄디즘을 추구하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무국적 무인종의 남자 단테, 그 대칭에는 비슷한 컨셉을 이어받으면서도 섹스어필과 섹스에 대한 테마를 케릭터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베요네타가 있다. 둘이 지향하고 있는 지점은 남성적인 극단과 여성적인 극단이라는 정반대이지만, 이들은 수직선상의 대칭되는 지점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수직선은 '현실에는 전혀 존재할 수 없는 관념적인 케릭터성의 구현'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살아있는' 케릭터들이 아니다. 케릭터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관념들을 어느정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는 익히 많이 봐왔다. 하지만, 케릭터들은 관념의 산물이 아니다:케릭터들에게는 드라마가 있고, 사람들이 케릭터에 공감하고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며, 이는 게이머에게 케릭터가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지점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베요네타와 단테는 그런 감상자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지점에서 벗어나있다(물론 게임 내에 서사가 없다든가, 그들이 몰개성적이라든가 매력적이지 않다든가 감정의 이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그들을 감상하게 만드는 무언가에 가깝다. 예를 들어보자:데빌 메이 크라이 4에서 단테는 무기 루시퍼를 얻고 난 다음 곧바로 루시퍼를 이용해서 장난스럽게 석판을 파괴하는 장면이나, 뜬금없이 보스와 함께 햄릿의 한 장면을 연극풍으로 재현하는 등 스토리나 드라마 부분에 있어 논리적 정합성에 떨어지는 행위들을 자주한다. 베요네타 역시도 그런 비정합적인 행위들을 게임 내에서 많이 보여주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자신의 가짜와 함께 댄스 배틀을 벌이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드라마를 구축하지도 않고, 서사를 구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행위를 이들은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행위들은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 있다:바로 이 둘이 스스로를 정의하는 '장르 구분' 자체다. 데빌 메이 크라이가 목표로 삼는 '스타일리쉬 액션'이라는 장르와 베요네타가 목표로 삼는 '논스톱 클라이막스 액션'이라는 장르는 언뜻보면 그 개념 자체가 와닿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스타일리쉬 액션 장르와 논스톱 클라이막스 액션 장르가 무엇인가? 이게 전통적인 게임 장르 구분과는 다르게 유의미한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가 만들어내는 게임 장르의 구분은 일반적인 장르 구분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구현해내고자 하는 '콘셉트'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데빌 메이 크라이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최초로 적을 띄우고 농락하며,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하게 적을 상대한다라는 개념을 실현한 게임이다. 그리고 베요네타는 강력한 회피와 슬로 타임, 그리고 쉬운 무기 사용과 캔슬 등의 개념을 게임 시스템에 삽입함으로써, 유연하고 화려하며 쉬운 액션, 매순간 순간이 '클라이맥스'인 액션을 구현하였다. 즉, 이들이 스스로를 규정내리는 장르 구분은 자신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전체 게임의 콘셉트 그 자체인 것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목표에 단테와 베요네타라는 케릭터를 대입하여 보았을 때, 이들 케릭터들이 비정합적이로 취하는 행동들, 황당한 행위들은 그 케릭터와 이를 둘러싼 드라마를 구축하려는 행위가 아닌, 게임 자체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콘셉트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단테는 멋진 인간이며, 보스와 함께 햄릿 연극의 일부를 재현하는 허세를 부림으로써 자신이 강하고 멋지고 유쾌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그것이 게임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한다. 베요네타는 역시도 섹드립과 특유의 색기를 통해서 남성 케릭터가 가질 수 없는 나긋하고 유연함을 보여주며, 이것은 게임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회피와 회피 시에 발동되는 위치타임과 함께 '유연하며 화려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분위기를 구축한다. 즉, 어떻게 본다면 이들 둘은 게임이라는 큰 틀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단테와 다르게 베요네타만이 갖는 싸우는 여전사로써의 독특한 위치일 것이다:'싸우는 여전사'의 이미지는 여성이 남성 없이도 스스로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런 강인한 여성이 괴롭힘 당하고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기제로도 작용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성적인 독립성과 성적인 종속감이 싸우는 여전사의 이미지를 두고 공존했으며, 이는 소위 '방어력 높은 갑옷'이라 불리는 헐벗은 갑옷으로 드러난다:그녀들은 싸우지만, 갑옷으로써 가치가 전무한 갑옷을 입고 있다. 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이런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함이다. 즉, 싸우는 여전사의 이미지는 보통 서로 모순되는 두 경향이 충돌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베요네타는 다르다. 베요네타는 오히려 그 점에 있어서는 당당하게 정문을 박차고 들어간다:온 몸에 꽉끼는 타이즈를 입은 이 치녀 콘셉트의 여전사는, 사실은 안경 이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습니다(옷이 머리카락이니까) 라든가 애보다 애만드는게 좋아(섹스가 좋아)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서 다른 케릭터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등 강한 섹스어필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것이 싸우는 여전사가 빠지는 클리셰와 모순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는 싸우는 여전사가 강인한 여성이라는 점을 어필하면서도 끝내는 남성적 욕망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면, 베요네타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남성적인 욕망이 아닌 게임이 취하고 있는 거대한 콘셉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취하는 치녀 콘셉트는 그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그로부터 그녀를 해방시킨다:섹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알몸으로 싸우지만 당당한 여전사. 킬라킬에서 키류인 사츠키가 '나, 키류인 사츠키, 대업을 위해서라면 알몸으로 싸워도 거리낌없다!'라고 외쳤을 때처럼(사실 킬라킬이야말로 이러한 테제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베요네타를 둘러싼 노골적인 섹스 코드들은 '나는 내 소비자에게 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은 나 그 자체이기에 나는 떳떳하다'라는 선언 하에서 그녀의 멋을 한층 더 강화하는 무언가가 된다.
이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대중이 은밀하게 요구하는 '창녀이면서 처녀인' 이 모순되며 왜곡된 관념에 대해서, 이들을 가장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완벽하게 깨부수는 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창녀이면서 처녀인 무언가에 가깝다는 것이다.
베요네타 2는 9월 20일에 Wii U 독점으로 발매된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령 제로:누레가라스의 무녀 영상+복귀 신고 (1) | 2014.09.21 |
---|---|
[칼럼]게임 한글화 시대, 왜 지금인가? (1) | 2014.08.27 |
디즈니 인피니티 2.0:마블 에디션 토이 박스 트레일러 (0) | 2014.08.20 |
[칼럼]P.T, 플래이 가능한 티저(Playable Teaser), 그 천재성에 대하여. (1) | 2014.08.18 |
[리뷰]얼티밋 마블 대 캡콤 3 (0) | 201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