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edium.com/p/68006c0e7b21 를 블로그에 맞게 편집해 올린 글입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고스트 이전에서부터 이미 미국 찬양 혹은 팍스아메리카를 주창하는 스토리 일변도를 달린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물론, 고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스트가 그런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스트 자체의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스트의 싱글 스토리에 있어서 게이머는 남아메리카에 기반을 둔 남미연방과 전쟁중인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 활약하는 고스트의 부대원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첨단 무기인 신의 지팡이 오딘이 남미연방에 의해 탈취당하고 그에 의해 공격당하면서 몰락하며, 남미연방의 진군을 막기 위해서 거대한 벽을 세우고는 과거의 영광들 폐허가 된 미국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폐허가 된 미국,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는 고스트 부대원들, 한때 고스트였지만 남미연방에 의해 세뇌되어 적들에게로 전향한 로크와의 갈등 등등 게임은 다양한 갈등과 문제들이 서로 얽이고 섥혀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는 콜옵답게 시도에만 그치며(전작인 블랙옵스 2가 성공 아닌 성공을 거둔 지점과 대조된다) 어떤 조화를 이루어내지 않으며 케릭터들은 밋밋하며 재미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케릭터 간의 갈등은 마치 설익은 밥을 씹는것 마냥 어색하며 딱딱하다. 하지만 고스트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런 어색하며 거대한 대치상태나 거대한 줄거리의 부분이 아니다(물론 밑에서도 다루겠지만):오딘에 의해서 파괴되기 시작한 미국을 다루던 첫 스테이지 이후, 게이머는 불현듯 10년 후의 폐허가 된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남미연방의 정찰대들이 미국 민간인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전쟁중에서 민간인을 몰살한다는 이 엄청나게 자극적인 지점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거기에 대한 어떠한 이유나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 로크-일라이어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지점의 브리핑을 보자:거기서는 남미연방이 결성되고 미국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나 미국의 피가 섞인 사람들을 모두 사형시키거나 집단 수용소로 보냈다는 잔혹한 이야기가 마치 ‘지나가듯이’ 서술된다. 고스트는 이런 선정적이면서 잔혹한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는 지나쳐버린다.
물론 게임에서 남미연방의 미국에 대한 구체적인 증오에 대한 이야기는 위의 두가지 사건이 끝이다:하지만, 이 두 사건의 존재로 인해서 남미연방-미국 사이의 증오와 갈등이 단순히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더 뿌리가 깊은 것이 있음을 게이머들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향한 증오에 대해서 게임은 그것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것처럼’ 다룸으로서 그 증오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우리(미국)를 향한 증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그 일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근본을 이해하고 증오를 멈추는 것이 아닌, 증오 자체에 증오와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콜옵 시리즈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모던 워페어의 자카예프, 모던워페어 2,3의 마카로프 같이, 그들이 미국을 증오하고 미국 본토를 향한 무차별적 공격을 벌이려는 것에 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행동 원인은 어떤 사건 등의 문제가 아닌 ‘그 놈은 원래부터 그런 놈이니까’라고 하는 케릭터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들의 증오는 증오를 향한 증오이다. 하지만, 고스트의 경우에는 특별하다:그런 ‘당연스러운’ 증오를 넘어서서, 그 내부에는 이전 콜옵 시리즈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지 않았었던 쇼비니즘적이며 파시즘적인 색체를 갖고 있으며 이는 대단히 위험스러운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블랙옵스와 블랙옵스 2는 예외적인 지점들이 있다. 블랙옵스 1의 경우에는 그 노림수가 60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서브컬처 내에서 돌고 돌았던 거대한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이자 스릴러적인 지점을 풀어내기 위한 쪽에 맞춰져있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1은 똑같은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요한 지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블랙옵스 2는 후술할 문단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이후,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미국 본토 침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독립전쟁 이후로, 미국이 겪은 전쟁에 있어서 미국 본토가 직접적으로 ‘침공’받은 적이 있었던가? 물론 진주만 기습같은 케이스나 미국의 영향력 내에 있는 영역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테러리즘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이 본토 침공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인지하게 된 계기는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이다:적들은 언제 어디서나 부지불식간에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이것은 전쟁이란 더이상 선전포고도, 군인들만 투입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게 된다: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현듯 내쳐짐을 당하듯이 경험하고 휘말리며 동시에 희생자가 되며, ‘테러리즘’이라는 단어와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으로서 국가 안보의 개념이 강조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콜옵 시리즈의 국토침공의 이미지는 이런 911적인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다:그것은 어떤 예고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본토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다던가(모던 워페어2), 생화학 테러를 시도하던가(블랙옵스, 모던 워페어 3), 혹은 전산 시스템을 박살내서 미국의 무기로 미국을 공격하는(블랙옵스 2) 등등의 급작스럽고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그리고 이는, 911의 거대하면서 전면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콜 오브 듀티가 그런 본토 침공이라는 선정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차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인들이 겪었던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한 성찰과 공동체를 돌아보는 형태는 결코 아니다:조나단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그것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그런 엄청난 비극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들은 그것과 어떻게 화해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콜옵에 있어서 본토침공이란 소재는, 정확하게는 미국이 갖고 있는 위험(특히 테러와 폭력에 대한)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이자 동시에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정당화’의 기제로서 존재한다:그들은 미국 바깥에 미국을 증오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을 침공하는 하나의 세력의 형태로 고정을 시켜야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자신들을 증오하는 외부를 제거할 수 있는 정당화 기제와 명분(저들이 죽어야, 우리가 산다)을 동시에 획득한다. 그렇기에 콜옵 시리즈의 스토리들은 대부분 상대방 수장 케릭터를 살해함으로서 완결된다: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고통받고 서로를 증오했는데 그것이 ‘단 한명의 의지를 꺾는 것’(모던 워페어 3 트레일러에서 이야기한것처럼)으로 끝이 날까? 혹은 뒤집어서 단 한명의 의지로 그런 거대한 전쟁과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재밌는 점은 이러한 전쟁의 위협과 폭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설파하는 것은 미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통한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팍스 아메리카가 아니라는 점이다:정확히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세계에는 ‘미국 이외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미국이 흔들리면 전세계가 흔들리며 미국이 평화로우면 전세계가 평화로워진다. 즉 미국이 곧 전세계인 것이다. 모던 워페어 3에서, 왜 미국이 러시아를 향해서 벌인 테러행위(물론 마카로프가 꾸민 거지만)가 전쟁이 진행중인 미국을 넘어서 유럽으로 확대되는 것일까? 왜 미국을 향한 증오가 전세계를 향해서 전염적으로 퍼져나가는가?(동유럽에서는 러시아군이 사람들을 총살하며,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에게 기름을 끼얹고는 불을 붙인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하게 어떤 연관성없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이미지의 연쇄작용, 미국의 혼돈이 전세계로 전염하는 듯한 이미지’에 기반해서 이렇게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일까? 본인은 후자쪽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시리즈에서 게이머들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평화를 지키려 노력한다: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단 하나의 공격(미국을 향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 뛰어다닐 뿐이다. 미국을 향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 모든 법과 절차, 심지어는 미국이라는 법경계를 넘어서 버린 이 초인적 주권자들의 행동은 미국적 가치의 전파라는 외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닌 더욱 뻔뻔한 명제를 선언하고 있다:’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곧 세계이며 세계의 주권자이다’라고.
(모던 워페어의 경우에는 시리즈 첫 작품이다 보니 이러한 설명에 맞지 않는 지점도 많다:하지만 재밌는 점은 모던 워페어 역시 그런 선정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핵’의 존재다:게임 중 게이머는 핵을 맞고 점점 죽어가는 병사의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게이머는 무력하게 죽어갈 뿐이다. 그리고는 그것의 공포를 미국에게로 전이시킨다:자카예프가 마지막에 미국에게 핵을 발사하는 것을 보라. 그것 역시 미국을 향한 증오이자 파괴행위이다. 다만 후속작과 다르게 실패했을 뿐이다.)
다시 고스트로 돌아와보자:고스트가 다른 시리즈와 비교해서 가장 특이한 지점은 게임의 풍경이 재앙이 도래하고 난 뒤의 세계, 즉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남은 것을 지켜야 한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장르적 문법은 우리를 구성하고 있었던 모든 것을 벌거벗겨 버림으로서 ‘무엇이 진정한 우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스트 역시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장르 문법을 따름으로서 ‘도대체 우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미국’ 그 자체이다:고스트의 세계에 있어서 미국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의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들의 과학력은 그들을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했으며, 그들의 부와 아름다움은 그들 자신의 무기에 의해서 산산조각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것이 있다:그것이 바로 ‘고스트’ 부대다.
고스트란 초자연적인 존재이며, 전설 그 자체이다:처음 인트로 영상에서 이 특수부대들이 생존불가능의 상황에서 살아남아서 도저히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무적의 존재로 포장되는 지점을 보자. 재밌는 점은 이 이야기가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전해주는 방식으로 전승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가족은 훗날 모두 고스트 특수부대에 들어서게 된다. 즉, 전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승되며, 아버지가 죽어서도 아버지의 유지는 아들들이 이어받아 고스트의 전설은 계속된다. 미국이 물질적인 부분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잃지 않은 정신적인 지점, 그것이 바로 전승되는 전설이자 무너지지 않는 신화인 고스트 부대이며 이들은 전통적인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소집단인 ‘가족’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고스트라는 존재는 보수주의자들이 본 미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미국적 정신이 지키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나’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남은 세계, 폐허가 된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살아남은 미국이란 어디있는가? 장벽으로 남미 연방의 진군을 막고, 그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른다. 하지만, 그들이 지켜야 하는 민간인, 일상의 삶, 세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지켜야하는 일상의 모습이 전혀 안드러남으로서 고스트는 기묘한 결론에 도달한다:고스트 특수부대가 지키면서 동시에 ‘이것이 미국이다’라고 할 수 있는 시공간은 바로 남미연방이라는 타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높게 쌓아올린 거대한 ‘벽’뿐이다. 모던 워페어 2나 3의 경우에는 극단적으로 선정적이긴 하지만, 그에 의해서 피해를 입는 민간인들이 나왔다. 블랙옵스 2에서도 민간인들이 존재하는 지역에서의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거부함으로서, 고스트는 미국이 지켜야하는 요체란 타자의 배격이며 더이상 순수한 미국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지점이라고 설파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로크-고스트 사이의 갈등과 아버지 일라이어스가 죽은 뒤에 이를 포장하는 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로크의 존재는, 그것은 분명하게 작위적이며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대적자라고 밖에 할 수 없다:그는 타락한 고스트다. 12년전 임무 실패로 낙오된 그를 남미연방이 잡아서 그들을 위해 싸우는 하수인으로 세뇌시킨 것이다. 하지만 전설이나 신화는 꺾을 수 없다. 그렇기에 게임은 새로운 전설을 가져온다:남미 아마존의 한 원시부족은 독특한 고문 방법으로 인간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을 굴복시킨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전설에 대비되는 새로운 선정적인 전설(절대적 타락)을 만들어냄으로서, 게임의 이야기는 고스트 부대원들에게 가장 극명한 공포를 심어준다:그 어느 누구도, 로크처럼 타락할 수 있다. 즉, 미국이란 존재는 타자에 의해서 더럽혀질 수 있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라이어스의 죽음을 다루는 서사로 구체화 된다:아버지를 우리쪽으로 데려왔다, 그가 더렵혀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가 우리를 지켜볼 수 있게, 라고 아들인 해쉬는 이야기한다. 이러한 서사를 다룰 때 영상은 극명한 흑백대비를 통해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한다:하얀색의 실루엣이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면서 타락하는 장면을 암시하는 로크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하얀색의 실루엣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빛을 향해서 끌어올려짐을 당하는 지점에서 순수함을 지키는 일라이어스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고스트는 콜옵 특유의 역전된 인과관계로 포장한다:서사가 있기에 스펙타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펙타클을 일으키기 위해서 서사의 인과관계가 재정립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고스트의 서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스펙타클을 위해서 역전된 인과관계를 보여준 게임은 이제 증오를 폭력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인물간의 관계를 평면화 시키고 서사를 ‘역전’ 시킨다. 이야기는 절대무적이자 죽일 수 없는 존재로서의 고스트를 상대하기 위해서 타락한 고스트인 로크를 삽입하고, 지키고자 하는 민간인이나 가치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듯이 반복되는’(그리고 밑에서 다룰 블옵2의 스토리 때문에 그것은 당연하지 않다) 미국을 향한 증오를 향해 똑같이, 아니 더욱 무서운 형태(죽일 수 없는 초자연적인 공포)로 적들을 사냥하고 괴롭히겠다고 말한다. 또한 고스트의 스토리는, 다른 콜옵들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증오를 마주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증오를 너무 당연하게 설명하기 거부하는, 아니 더 끔찍하게 그것을 신격화 시키고 그것이 우리를 타락시킬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미국이라는 정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를 향한 공격을 모두 제거해야한다 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런 파시즘적이며 도발적으로 보자면 나치즘에 가까운 이야기를 뻔뻔하게도 서사의 구조로 역전시켜서 녹임으로서 증오를 위한 증오를,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성전의 형태를 지지하는 역전된 서사를 보여준다:증오와 파괴가 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증오와 파괴는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것이기에 해결불가능하다고 뻔뻔하게 선언하기 위해서 서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해결을 위한 서사가 아니라, 존재를 정당화하는 서사로서의 역전된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콜옵 시리즈의 스토리 역시 고스트와 같은 극우적이며 도발적인 서사에 기초하고 있다고 혹평할 수 있겠다:하지만 중요한 점은 시나리오적인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모던 워페어 이후로 모든 게임들은 형식적이라도 어떤 ‘공정함’을 집어넣고자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모던 워페어 에서는 플래이어의 아군으로서 러시아 군이 나오기도 하며, 모던 워페어 2에서는 최종적인 적으로서 쉐퍼드 장군이 나오고, 모던워페어 3에서는 마카로프 같은 국수주의자였지만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니콜라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블랙옵스에서는 소련군 장교가 적으로 나오긴 하나, 그는 소련군을 더럽히는 암적인 존재로서 묘사되며 러시아 군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레즈노프가 강제 수용소에 갇혀있었다는 지점들을 통해서 진영을 넘어서는 선악의 분명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며, 가장 변형되어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블랙옵스 2라고 할 수 있다.
블랙옵스 2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라울 메넨데즈는 시리즈 최초로 미국을 증오할만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존재다:니카과라에서 이란-콘트라 사건을 실제로 보고 미국에 대한 반감을 키웠으며, 미국인 소유의 헛간에서 잠을 자다 보험금을 노린 미국인에 의해서 자신의 여동생이 평생 불구가 되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었다. 또한 아버지가 미국에 의해서 살해당했으며(물론 마약 카르텔 일을 하긴 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여동생마저도 자기 부대원의 복수에 눈이 먼 우즈의 정신나간 행동 때문에 잃게 된다. 그리고 그는 수십년의 세월에 걸쳐서 미국을 공격하고 무너뜨릴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한다. 그것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99%를 대변한다고 이야기하는 코르테스 디아를 조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마지막에는 엔딩에 따라서 그의 복수는 성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을 향한 증오와 미국과의 관계는 메넨데즈와 알렉스-데이빗 메이슨 부자와의 악연으로 구체화된다:미국을 증오하는 메넨데즈와 메넨데즈의 증오로 인해 자신의 부대원이 몰살당해 분노하다 실수로 메넨데즈의 여동생을 죽인 우즈, 그리고 그 복수로 자신의 아버지 시체를 눈앞에서 목도하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은 데이빗까지. 모든 갈등은 서로를 향한 이유있는 증오의 원환을 돌면서 생성된다. 어찌보면 데이빗이야말로 ‘나와 함께 고통받아라 Suffer with me’라는 메넨데즈의 대사처럼, 끝없이 물고 물리는 증오의 연쇄의 가장 막바지 이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메넨데즈의 모든 음모가 결실을 거두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자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2는 여전히 콜옵이라는 한계에 잡혀 있다:과연 메넨데즈라는 초인 한명의 존재로 그 모든 것들(군수 기업 물자 빼돌리기, 테러, 그리고 전세계적인 호응)이 가능했을까? 재밌는 점은 게임은 메넨데즈 개인의 복수라는 지점에는 자세하게 초점을 맞추고 ‘그’가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는 자세하게 다루지만 정작 그가 조직한 ‘코르테스 디아’가 왜 미국을 증오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런 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살라자르의 배신이 밝혀지고 그가 잡히는 지점일 것이다:살라자르가 그의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를 당당하게 설명하려 할때, 그의 변명은 묵살당하고 그는 끌려나가서 극 바깥으로 사라진다. 심지어는 하퍼가 살아있을 경우에는, 그가 변명할때 하퍼가 투항한 그를 처형함으로서 그의 입을 막아버린다. 왜 게임은 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배신자이자 코르테스 디아의 열렬한 추종자인 살라자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왜 그를 곧바로 극 바깥으로 추방하는가? 이는 게임이 미국과 미국을 향한 증오의 구도를 메넨데즈-메이슨 부자의 악연의 형태로만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며, 만약 이야기를 더 이상 확장하게 된다면 거기서부터 블랙옵스 2는 콜옵일 수 없게 됨을 인정해버리게 되는 것이다:메넨데즈만을 잡아서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없다 라는 것, 세계가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경험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 미국패권주의적인 문제가 깔려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옵스 2는 기존의 콜옵이 갖고 있었던 한계에서 벗어나서 스토리를 다각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왜냐면, 그들은 왜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하는가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것이 한명의 케릭터의 형태로 응축되어 나타나긴 하지만) 그리고 게임의 엔딩은 그런 지점에서 더 건설적이다:마지막에 데이빗 메이슨이 메넨데즈를 죽일 것인지 살린 것인지를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만약 메넨데즈를 죽인다면, 데이빗은 메넨데즈를 죽임으로서 증오의 연쇄를 이어갈 것을 결정하며 동시에 미국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라는 상징물이 되고자 했던 메넨데즈의 계획을 완성시키는게 된다:그리고 이것은 전세계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는 배드 엔딩이다. 반면, 메이슨이 메넨데즈를 죽이길 거부한다면 메넨데즈의 계획은 틀어지게 되며 동시에 세계는 전장의 화염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 그것은 증오의 연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또한 마지막 메이슨이 메넨데즈를 보고 이야기하듯이 ‘그는 헛소리하는 불쌍한 노인네일 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그의 존재를 죽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의 비극(불쌍한 노인네)을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콜 오브 듀티:블랙옵스 2는 콜옵 시리즈에 있어서 가장 기묘한 게임이며 동시에 콜옵이라는 한계에 붙잡혀 있지만 콜옵을 벗어나려고 애썼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편견과 증오를 ‘생산’해서 파는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콜 오브 듀티 시리즈 시나리오의 특징은 세련된 척하면서 뒤로는 대단히 허술하고 최소한의 인과관계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이야기를 논파하는데 있어서, 세련된 철학이나 현학적인 말장난, 혹은 미학적인 깊은 탐구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단순히 스토리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 문제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시나리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꾸준하게 팔리고 있으며, 어떠한 논쟁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다. 어째서인가?
이렇게 볼 수 있다:사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하는 것은 편견과 증오의 ‘재생산’이다. 게임은 기존에 존재하는 불안과 편견, 특히 미국 외부를 향한 증오를 가져와서 콜옵 스타일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즉, 콜옵의 시나리오는 증오와 편견을 만들어내는 주범이 아니라 ‘종범’인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콜 오브 듀티, 더 나아가서는 고스트라는 나치즘에 가장 근접한 게임이 창창한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대중이 그러한 스토리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스트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문제는 그외에도 심각하며 장기적으로 시리즈 전체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는 점, 동시에 블랙옵스 2의 성공이나 다양한 작품들의 성향에 비추어보았을 때 대중의 취향과 경향에 대해서 여기서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에서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고스트의 시나리오이다:그것은 민주주의를 넘어선 초인이 전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법을 정지시키고는 누가 죽을지 살지 결정하는 묵시록의 4기사이자 정복의 기수 샘 피셔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리스트보다 더 파시즘적이며 나치즘적이다. 본인이 블랙리스트를 주권권력의 위험성을 다룬 호모 사케르의 분석에 근거하여 분석했었다면, 고스트의 스토리는 나치 시절 레니 리펜슈탈의 선전영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올림피아나 의지의 승리 같은 작품을 통해서 나치와 국가를 장엄하며 위대한 신화시대의 도래로 포장하고 재해석했었다면, 고스트는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세계에서 이전 세계의 신화이자 유령들이 전세계를 배회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증오를 더한 증오와 폭력으로 맞받아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다른 신화의 미화이자 포장이다:다만 그것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의 기치를 올리지 않았으며, 분명하게 유대인을 죽이자고 주장하지 않을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사실은, 블랙리스트의 샘 피셔라는 케릭터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을 거라는 주권자로서의 믿음을 줄 수 있었다면 고스트에 있어서는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스트는 더 끔찍하다. 감당못할 정도로 끔찍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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