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런칭 당시에 플4를 구매하고 굴리면서 느낀 소감입니다.


많은 매체들이 플래이스테이션 4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그것이 이전 콘솔보다 향상된 성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게임을 더 빠르고,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선언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일단 첫째, 본인은 이러한 전문적인 이야기에는 잼병이며, 단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을 이야기할수 있는 막눈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런것들은 전문 웹진들이 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차세대이기에 이전 기기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조금 별개의 문제지만 위유의 문제 역시도 이렇게 볼 수 있다:다만, 위유는 사양선정에 있어서 타겟팅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플래이스태이션 4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성능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로 타기종과 그 팬층을 밟아짓뭉게기 위한 선정성을 향한 논쟁의 형태로 변질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플4의 성능 논쟁은, 선정적인 자극을 위해서 행해지는 무언가이다:플4는 어떤어떤 칩셋을 박았으며 이는 어디서 어떤 성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선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사실의 선언이 논쟁적이고 선정적인 것은 그런 사실 자체가 아닌 그 사실과 비교되며 대비되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경우에 있어서 이 공격의 목표는 바로 엑스박스 원이다. 그리고 마치 사실을 이야기하는척 하면서 은근슬쩍 비교대상을 옆에다 가져다 놓고 객관적으로 열등한 게임기 엑스박스 원을 만들려는 극렬 팬들의 행동들은 성능이 더 뛰어나면 더 좋은 게임기가 된다는 것, 그리고 기능이 뛰어나면 소프트도 부차적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일종의 ‘성능’에 대한 선정적 판타지에 기초하고 있다: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게임기의 성능은, 그것이 갖고 있는 잠재력의 문제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혹은 얼마나 그것의 한계를 교묘하게 회피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가 라는 지점으로 기기의 성능은(특히 엑원과 플4의 정도의 차이에 있어서는) 극복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물론 현재 엑스박스 원의 개발 및 마케팅적인 실수로 인해서 엑스박스 원의 출발점이 플4보다 더 뒤떨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양산되고 있는 논쟁들의 출발점이란 타자를 벌레밟듯이 짓밟는 쾌감을 느끼려는 뒤틀린 심성의 극렬팬들에 의해서 대부분 조장되고 있음을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지적해야하는 것이다.


성능적인 문제는 그렇기에, 오히려 부차적인 무언가이다:플4가 어떤 기계이고 무엇을 지향하는가는 성능이라는 디테일을 넘어서, 그 디테일들로 구성된 전체 그림을 보고 그 그림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루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플4는 어떤 게임기인가? 그리고 이들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우리는 먼저 과거의 플래이스태이션들의 특징들과 변화들을 되짚어서 볼 필요가 있다:광학미디어를 사용한 플래이스테이션과 DVD를 탑재하고 인터넷 회선 사용을 최초로 시도한 플래이스태이션 2, 그리고 블루레이 재생과 미디어 서버의 기능, 셋톱박스의 기능을 탑재한 플래이스태이션 3 등등. 플4와 비교해서 재밌는 지점을 많이 갖는 것은 전세대인 플래이스테이션 3이다:플3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단계의 콘솔이다. 인터넷을 통한 업데이트나 멀티플래이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셋톱박스(국내의 경우에는 그것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넷플릭스의 존재를 감안하면)의 기능 역시 뚜렷하게 이 시기부터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거실에서 TV와 함께 종합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기기로서 기능한 것은 사실 엑원이나 플4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엑원이 셋톱박스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실제 TV와의 결합(녹화, 방송 등등의)을 시도했었다면, 플4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능을 잘라낸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플4에서 가장 주목해야하는 기능은 바로 게임 방송을 위시한 ‘공유기능 Share’이다. 플4는 기본적으로 공유버튼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자신의 게임 스샷, 영상, 심지어는 생방송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게임기들이 외부적 장치의 도움들(캡쳐보드, 방송용 마이크-헤드셋 등등)과 복잡한 설정들(기계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송하는 것이 아닌, 게임-컴퓨터-방송 이라는 단계를 거쳐야했기 때문에 설정조작 등의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했었다)을 거쳐야지만 게임 방송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 플4는 오로지 버튼 하나의 조작만으로 모든것을 쉽게 공유할 수 있다:물론, 전문적인 장비를 쓰는것에 비교하면 플4라는 기기 자체의 영상/스샷/방송 공유의 질은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인 질의 저하가 아닌, 그것이 표준화된 기기를 통해서 ‘대중화’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게이머는 어떠한 제약없이 플4를 사는것만으로 게임을 방송하거나 영상을 올리거나 스샷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그것이 게임이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공유 기능이 갖고 있는 지점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경계가 확장하며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기본적으로 게임은 ‘하는’ 매체이며, 하는 것으로 소비되는 매체이다. 하지만 공유라는 것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게임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임기 플4가 따로 패드에 공유 버튼을 분리하면서까지 공유 기능 자체를 강조한 것은 플4라는 기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공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개개인이 게임 내에서 만나서 경쟁/협동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 혹은 혼자 플래이하는 경험 이외에 무언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는 게임이 단순히 경험으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문화’ 그 자체로서 기능하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물론, 게임은 이전에도 문화였으며 스샷/영상/방송의 형태가 아닌 형태로도(글이나 리뷰 등등) 공유되었었다. 하지만, 그것이 플4의 공유 버튼의 형태 같이 양식화되고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된 것은 아마도 플4가 최초의 형태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칭찬에 앞서서 우리는 스팀의 스크린샷 찍기 기능이라던가, 다양한 형태로 그런 영상/스샷/방송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공유가 양식화되고 자연스러운 지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4가 대단한 지점은 SNS라는 것이 거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용기있게 첫발을 내딛고, 그것을 훌륭한 완성도로 완성시켰다는 점이 있다.


공유 시스템은 SNS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트로피 비교, 게임 친구와의 대화를 위한 ‘파티 앱’ 등의 다양한 기존 기능들을 플4에서는 확장했다는 점(친구수의 증가, 기존 헤드셋을 이용한 파티 음성 체팅 같은)이나 소셜미디어와 연동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그렇게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보았을 때는 플4가 노리는 것은 공유이상을 넘어서 게임이 게임 콘솔이라는 기기의 시공간적 한계(게임기를 켰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게임 친구들 같은)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으로서, 그리고 모든 게이밍 경험의 ‘중심’이자 ‘서버’로서 플4를 기획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바로 플래이스태이션 앱이다:게이머는 이제 게임 내의 친구들을 게임기를 키지 않고도 핸드폰을 통해서 간단한 채팅을 나눌 수 있으며, 트로피 비교등의 간단한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더이상 게임 콘솔의 시공간은 게임 콘솔이 켰을때만 존재하고 껐을 때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항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기존의 게임들이 소셜 게임적인 시도로서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스마트폰/패드 어플리케이션으로 게임을 가볍게 통제할 수 있게 만든 것처럼 플4는 게임을 단순하게 콘솔의 키고/끔에 의해서 플래이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 하나의 생활양식의 형태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비타와의 연동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이 지점은 상당히 흥미롭다:비타는 기기 그 자체로서는 훌륭하지만 그것을 다루는데 있어서 어떻게 다룰건지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기에 실패한 기기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소니는 이 기기를 플4에 ‘종속된’(오해하지 마시라:비타 역시도 독립적인 기기이다. 하지만, 플4와의 관계에 있어서 비타는 종속된 기기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형태의 관계로, 서버에 접속된 하나의 ‘단말기’로서 설정한다. 리모트 플래이라는 기능은, 플4를 서버로 정해놓고 플4가 게임의 화상을 비타로 보내면, 비타는 그것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게임을 조작하면 비타가 플4에게 조작 신호를 보내는 형태로 진행된다. 솔직히, 비타의 리모트 스크린 기능은 아직까지는 ‘쓸모 있는’ 기능이라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거대한 화면으로 보여주기 위한 스펙타클이 비타라는 휴대용 기기의 제한된 형태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많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눈이 편한 큰 화면을 일부러 버리고 작은 화면으로 누가 플래이하겠는가? 또한 휴대용 기기가 갖는 조작성의 한계의 경우는? 휴대용 기기는 장시간 손에 들고 할경우에 패드와 다르게 손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된다:비타 리모트 기능은, 전적으로 기기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관계이며, 이것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는 좀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즉, 장기적으로 봤을 때(물론 소니에게 그만한 시간이 남아있다면) 하나의 콘솔을 중심으로 모든 기기들이 서버에 접속하는 단말기처럼 게임을 하거나/게임이라는 경험 자체의 지평을 넓히는 그런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래이스태이션 4는, 소니가 ‘게임’이라는 문화를 놓고 그것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응축하고 포섭하려고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으며, 지금까지로서는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셋톱박스 자체는 한국에서 시험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며 또 알 수 없기에 그부분은 생략한며, 소니가 바라보는 미래는 현재로서는 상당히 미래지향적이며 야심차다. 문제는 이 플4라는 기기가 가져오는 미래를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SCE의 모기업인 소니가 오래 버틸 수 있는가? 라는 문제다(잘 알려진대로 소니는 최근 장기적인 부진을 겪고 있다) 하지만 플래이스테이션 나우(과거 플래이스테이션 3 이전의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 등의 서비스로 엑원과의 경쟁에서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플래이스테이션 4의 전망은 기업의 부정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자기 미래를 개척해나갈수 있는 저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플래이스태이션 4는 그만큼 자기 철학이나 개성에 있어서는 뚜렷한 기기이기 때문이다.


(기기의 내구성…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현재로써는 확실치 않다:분명한 점은 과거의 초기 불량에 비교한다면 엑원이나 플4나 모두 안정적인 지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며 전세대의 개발 노하우가 이번 세대에 접목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불안하신 분들은 매년 나오는 신공정 플4를 기다리셨다가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