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edium.com/p/ab0fae5b3a1c 를 블로그에 맞게 옮긴 글입니다.
정치신학에서 슈미트는 예외를 보편자보다 상위에 놓는 키르케고르를 인용한다. 예외는 강렬한 열정으로 보편자를 사유한다. 예외는 보편자보다 훨씬 뚜렷하게 모든 것을 드러낸다. 정상상황이 아니라 예외상황이 주권자의 본성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한병철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122쪽
칼 슈미트는 ‘정상상황이란 예외를 통해서 규정된다’라고 보았으며, 법을 구성하기 위한 ‘주권’의 힘이란, 단순하게 법이 무엇인가를 선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서 ‘무엇이 법 바깥에 존재하는가’를 규정하는 힘을 갖는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헤겔은 이를 가리켜 왕정에 있어 주권자인 왕이 무엇이 법규범인지를 선언하는 ‘예’와 법규범을 정지시키고 예외상황을 도출하는 ‘아니요’라는 두 단어로 주권이 형식을 지닌다고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위에서 키르케고르가 선언하였듯이 예외상황이야말로 주권자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점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예외는 법이라는 울타리에 포함되지 않고 그 바깥에 있으라 선언당하고 내쫒겨지는 것인가? 왜 예외는 없어짐을 당해야 하는가? 이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서 주장했듯이, 무엇이 예외인지를 결정하고 이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을 도출해내는’ 주요한 정치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번째 자유 그리고 게임…’(http://leviathan.tistory.com/1824)에서 지적한 것은, 게임의 형식과 네러티브가 제공하는 쾌감은 전적으로 위에서도 인용하였듯이 법 바깥에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힘, 법을 멈추게 만드는 ‘주권권력적’ 이라고 분석했었다. 즉, 게임의 쾌감이란 폭력Violance를 행사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쾌감을 얻는 비도덕적인 새디즘의 차원이 아닌, 법 바깥에 존재하는 폭력Gewalt(발터 벤야민적인 개념으로서)을 휘두름을 통해서 내부의 질서를 지키는 동시에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쾌감, 즉 주권권력적인 쾌감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빨리 달리는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만 존재한다
:경찰 또는 범죄자.
-니드 포 스피드:라이벌
니드 포 스피드 라이벌 역시 이러한 주권권력적 쾌감에 기초하고 있다:그것은 어떠한 물리적 형태의 폭력이 아닌 ‘과속’의 형태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과속은 파괴를 위한 과속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카마겟돈과 같이 인간을 짓뭉게고 피떡으로 만들기 위한 비도덕적 쾌감을 향한 과속이 아닌, 전적으로 ‘과속’을 규정하는 ‘법’ 바깥에 설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과속인 것이다:사회가 만든 법, 제도의 틀 바깥에 무엇이 있는가 시험을 해보기 위해서는 게임에서 레이서가 독백하듯이 ‘한계가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레이서의 증명의 이유는 ‘(나는) 태어난대로 자유롭다. 풀려났다’라는 선언에서 드러난다:그(=인간)는 태어난대로 자유롭지만, 사회라는 틀에 갖혀서 그 자유를 구속당한다. 그가 스스로 자유로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틀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자유의 실현이며 동시에 법을 멈추는 주권의 선언(나는 도로교통규범을 멈추고 내 자유를 실현하겠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유는 정상운행자들에 의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만약 게임에서 이들이 없었다면, 게임은 그저 텅빈 서킷을 놓고 경찰인척 하는 게이머와 레이서인척 하는 게이머 사이에서 벌이는 단순한 역활놀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벌이 단순히 역활놀이를 넘어서서 어떤 ‘긴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미친듯이 과속하는 플레이어들과 대비되는, 평범하게 주행하는 정상운행자들 때문이다: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느릿느릿하며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임 내의 돌발상황을 만들어내어 게이머들(경찰-레이서)을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동시에 법규를 벗어난 과속과 대비되는 ‘법규 내에서’ 움직이는 정상 운행자들을 설정함으로서, 역설적으로 과속이 단순한 속도의 폭주 이상을 넘어서 ‘법규의 위반’을 의미하는 지점을 도출한다. 이러한 정상운행자들은 단순히 도로주행을 위험천만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이들이야말로 규범내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일상’이며, 동시에 레이서가 틀을 부수고 뛰쳐나온 현실인 것이다. 그렇기에 레이서는 그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이 너무 무서워서 살지 못하는 삶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들 역시 자유롭지만, 그들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인식이란 현실이다:법과 질서란 대중이 존재한다고 믿기에 가능한 것이다.
-니드 포 스피드:라이벌
하지만 이러한 레이서의 일탈은 역으로 경찰을 불러온다.
왜 경찰은 파괴를 목적으로 하며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법 바깥에 설 수 있는 레이서를 사냥하려 드는 것일까? 재밌는 점은 레이서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무모한 주행을 감행하면 감행할 수록 경찰이 운운하는 ‘공공의 안전’은 점점 더 위협받게 된다. 그것은 게임 내의 연출이 아닌 게이머의 ‘플래이’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경찰을 따돌리는 과정중에서 역주행은 기본이며 표지판에 머리를 들이받거나 반대편 차로의 주행자를 들이받는 등의 일들은 다반사로 일어나며 게이머로 하여금 스트레스와 아슬아슬한 짜릿함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공안전을 이야기하면서 레이서를 추적하며 그들과 함께 공공안전을 신나게 파괴하는 경찰의 목적은 사실 현재의 공공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그들이 레이서를 사냥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이 ‘법 밖에 설 수 있다’라는 가능성 하나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도 언급하였듯이(다섯번째 자유와 게임…칼럼에 인용한 부분 참조), 법의 수중에 놓여있지 않은 폭력은 법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대중이 법 바깥에 설 수 있는 ‘자유’의 존재를 발견하고 법 바깥으로 나가기를 선언해버린다면 법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법(경찰)이 법으로 남기 위해서는 예외(레이서)를 제거해야한다. 경찰이 ‘그 어느 누구도 해치려하지 않는 자들’(레이서들)을 사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법밖에 서는 것만으로 법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속은 위험하다. 그리고 그것이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것또한 어느정도는 사실이다-게임을 해본 사람은 모두 동의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러한 공공안전과 별개로, 공공안전이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공공선의 모든 것인가? 이에 반대하는 가장 극론으로서, 멋진 신세계에서 매독에 걸리고, 추하게 늙으며, 죽어갈 권리를 주창한 것을 떠올려야 한다:이러한 극론의 존재와 거부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너무나 많은 가치를’ 공공선에 투자하고 있음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공안전을 무너뜨리고 아나키즘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안전이라는 미명하에서 우리는 응당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우리가 공공안전을 멈추고 다양한 사유를 견지하기를 포기하고 공공안전의 폭주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경찰의 추적과 보호Pursue & Protect라는 슬로건이 갖고 있는 묘한 위화감 같은,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 말이다.)
페이트는 나를 통해 그를 규정하려 하고 있다…..그리고 나는 그를 통해서 나를 규정할 것이다.
-니드 포 스피드:라이벌
법밖에서 뛰노는 자들로서, 경찰은 레이서를 잡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며, 레이서는 경찰을 떨쳐내기 위해서 무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 법 밖에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물론 그들의 행동의 방향성은 아예 다르다:하나는 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또다른 하나는 그들을 법 안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달린다. 또한 레이서가 레이서인척 하면서 도로 위에서 레이서들을 공격하는 잠복경찰을 판단하듯이, ‘그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선언처럼 이들이 도로 위에서 과속하는 본질적인 양태 자체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은 대등한 폭력(과속)을 행사하는 자들로서 본질적으로 대등하며 서로 교류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 교류란 바로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지점이다:대등한 대립자Rival으로서, 그들은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상대방’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게임 중 ‘경찰차를 이용해서 레이서 미션을 한다던가’, ‘레이서 차를 이용해서 경찰 미션을 한다던가’ 등의 경계 무너뜨리기의 시도인 것이다. 물론 게임 내에서는 어떤 최소한의 서사를 통해서 그들이 그래야하는(서로 사이드를 바꿔야하는) 이유를 제기한다. 하지만, 레이서가 ‘나는 너의 적이 아니다. 나는 너의 대립자Rival이다. 나는 네가 더 빨리 달리게 해줄 것이다. 나는 네게 목적을 주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레이서의 인식은 경찰과 레이서들의 싸움이 어떤 파멸적인 반목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무언가’의 형태로 이해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것은 법 밖에 선 ‘무법자’들이 서로를 더 잘 사냥하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법 밖에 서는 ‘무법자’들로서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지막 레이서가 제시한 ‘모든 갈등을 끝내기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서의 그랜드 투어’의 형태로 드러나면서 의미심장해진다:레이서와 경찰 모두에게 도전장을 던진 제퍼(레이서측 주인공)는 결국은 과속의 대가(죽음)를 치루고 만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끝난 것처럼 보이는 레이스는, 경찰이 그의 대사를 이어받으면서(나는 너를 더 빠르게 달리게 하고, 네게 목적을 주겠다. 그리고 너를 유명하게 만들어주겠다) 모든 레이서들에게 도전장을 던지면서 게임은 끝을 맞이한다. 즉 경찰이 레이서의 탈을 썼을 때 썼던 레이서 가명 F-8(F-Eight, FATE), 즉 운명 같은 결말로서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레이서가 된 것이다. 이는 과속이라는 법 바깥에 서는 것을 통해서, 서로는 서로를 규정하며 그 결과 그들은 서로 동일하게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과속은 네 목숨을 위협할거라고. 하지만 과속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니드 포 스피드: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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