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https://medium.com/p/b34b2b11e2f5 를 블로그에 맞게 옮긴 글입니다.



“자넨 구세주가 아냐. 자네의 재능은… 좀 다른 영역에 있지.”

-스펙 옵스:더 라인



다섯번째 자유와 게임( http://leviathan.tistory.com/1824 )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게임이 주는 자유의 쾌락은 많은 지점에서 ‘무엇이 예외이고 법인지를 선포하는’ 주권권력과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기서도 지적은 하였지만, 주권권력적인 게임의 자유에 있어서 ‘폭력’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며, 게이머는 그 폭력을 자유롭게 점유하고 휘두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며, 동시에 그것이 기존의 질서를 지킨다는 점에서 심리적 방패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런 주권권력적인 폭력에 의하여 게이머는 점점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이라는 메소드 자체에 무감각해진다: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절단내고 토막내는 행위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그리고 게임의 스토리가 게이머를 아늑한 결말과 안전한 이야기로 이끌어가기에 눈치채지 못했던 지점들이 분명하게 존재하며 게이머는 이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스펙옵스:더 라인이 게이머를 끌어들이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스펙옵스가 인용하고 있는 텍스트는 명백하게도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핵심’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하지만 스펙옵스:더 라인이 스토리에 있어서 명백한 인용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파괴력은 ‘인용’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근 10년 동안 분명한 조류로서 성장하고 있는 밀리터리 FPS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모든 게임들이 ‘다섯번째 자유와 게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권권력적인 자유라는 테마를 이용해서 게이머를 매혹시켰다면, 스펙옵스는 역으로 그 주권권력적 자유가 갖는 파괴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춘다:주인공은 명령을 하달하는 상급기관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구조 임무로 두바이에 파견되었던 그들이 게임 막바지에서는 두바이의 생존자들을 식수망을 끊어 갈증속에 죽게 만들었으며, 33연대의 미군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두바이에서 생존자 구출 및 수색 임무를 맡았던 그들이 왜 두바이의 학살자로 변모한 것일까? 왜 선의로 시작된 임무가 명백한 악의와 광기로 물들어서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가?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강한 자는 자신 앞의 정의를 외면하곤 하지.

-스펙 옵스:더 라인



스펙 옵스:더 라인의 스토리의 진행은 전적으로 주인공의 ‘독단’에 의해서 진행된다. 이 ‘결정’은 두바이의 모든 상황을 ‘자의적’으로 재규정한다:처음 33연대와 조우하고 그들을 쏴죽이자, 주인공은 그들을 ‘탈영병이자 임무를 저버린 자들’로 규정한다. 부하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결정’에 의해 백린 박격포로 33연대와 민간인을 태워죽여버린 뒤, 그는 이 모든 일은 콘라드 대령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스토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들에서, 주인공의 결정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그리고 사태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스펙 옵스:더 라인의 스토리는, 아도르노가 지적하였던 서구문명이 등장하는 과정으로서의 신화 ‘오딧세이’의 완벽한 역이라 할 수 있다. 오딧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어서 다양한 광기와 예외상황들, 그리고 무엇보다 ‘신화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영웅인 그는 그것들(신화)을 극복하고 규정하면서 새로운 ‘계몽’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하지만 아도르노가 지적한 계몽의 변증법에 따라, 계몽은 절대적인 존재로서 다시 하나의 ‘신화’가 된다. 하지만 스펙옵스는 오딧세이아의 반대다:영웅은 안락한 집(미국)을 버리고 광기와 폭력이 휘몰아치는 신화의 세계(폐허로 변한 두바이)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세계를 규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중에 광기와 폭력에 동화되어 스스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신화’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영웅의 몰락, 안전했던 문명이 해체되어 파멸뿐인 신화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그의 ‘결정’이다. 하지만 스펙옵스가 바라보는 지점은 주인공을 넘어서, 더 깊숙한 지점인 ‘플레이어’에게로 시선을 옮겨간다:조금이라도 멈춰서서 생각해봤다면 이상했을 지점을 왜 그는 멈춰서지 않는가? 그리고 왜 게이머는 계속해서 이 끔찍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는가? 그의 주권권력적 독단 뒤에 숨어있는 가장 어두운 욕망이자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그것은 바로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공명심이며 게임이 공격하는 지점 가장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게임 말미에 로딩창에 게이머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로딩 메세지들(이제 만족했냐? 이게 다 너때문이야 등등)과 마지막 콘라드의 환영이 질책하는 것처럼, 게이머는 자신의 영웅심리를 위해서 이야기에 뛰어든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야기가 공격하는 것은 그의 영웅심리이자 홀로 폭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주권행사자가 원인임을 넘어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의 파괴성이다:너는 멈출 수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또는 언제나 다른 방안은 존재한다고 항명하던 주인공의 부하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는 파국적임을 게임은 암시한다. 그것은 제한도, 책임도 없이 오로지 ‘자신에게서 시작되며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멈추지 않는 주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폭력은 단순한 메소드가 아니다. 이 점에서 스펙옵스는 폭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고찰하고 있다:폭력은 인간을 물들이며 인간의 사고와 행동 역시 폭력에 맞게 변화한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의 부하들은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아래서 자신들을 폭력에 맡겨버린다.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들의 몰골은 처참해지며 그들의 언어와 행동은 점점 과격해진다.



집? 우리는 집에 갈 수 없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반드시 넘는 선이 하나 있거든. 만약 운이 좋다면, 임무를 다한 뒤에 죽는 것이지.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은 말일세, 대위. 평화뿐이었다네.

-스펙 옵스:더 라인



스펙옵스 더 라인이 대단한 것은 게임이 내세우는 자유의 매력을 게임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정공법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며, 많은 부분에서 그 공격은 성공적이다. 물론 게임의 재미가 미묘하다는 점은 상당히 미묘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