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흔히 와우라 불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온라인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MMO RPG입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와우가 처음 나왔을 때, 와우는 아주 대차게 까였다는 사실을요. 그도 그럴 것이 와우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MMORPG이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개성 없는 MMORPG이기도 합니다. 당시 나왔을 때 와우는 수많은 MMORPG의 시스템을 짜집기 하였고, 그 결과 모자이크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악평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반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연 다른 시스템을 짜집기한 게임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냐고. 하지만 게임의 완성도와 게임의 신선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와우는 여태까지의 MMORPG가 보여주었던 시스템의 잠재력을 백분 끌어올렸고, 그 결과 MMORPG의 완성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즉, 와우 라는 게임은 혼탁한 원석을 아주 화려한 보석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게임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와우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스템 외적인 측면, 유저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것이죠. 시스템적으로 보았을 때, 와우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그 '완벽'이란 와우 이전의 MMO의 테제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즉, 와우 이전의 MMO는 와우 수준의 대규모 플레이어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시스템 바깥의 어떤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대단히 부족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하우 부족은 현재 와우 시스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여기 와우를 막 시작한 A씨가 있습니다. A씨는 와우 내에 지인도 없고, 와우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죠. 그리고 그는 하루에 할 수 있는 게임 시간이 제한되었습니다. 게다가 와우는 같이 랩업할 만한 초보도 거의 없으며, 같이 다니는 쪼랩도 대부분 계정 귀속탬을 덕지덕지 쳐바른 만랩들의 부케들이었죠.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만랩을 찍었습니다. 이제 그는 와우 컨텐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레이드를 뛰려 합니다. 하지만 갓 만랩에 아무 지식도 없는 그는 파티 채널에서 아무 막공장들에게 귓을 넣어봅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A씨는 그의 장비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인X, X포 같은 곳을 들어가보게 됩니다. 그는 레이드를 뛰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비가 영던급~십자군 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군자금도 거의 없으며, 주변 지인도 없기 때문에 제작템이나 마부, 보석 구하기도 힘듭니다. 이제 그에게는 선택지가 3가지가 있습니다.

1.일퀘를 뛰고 전문기술 소재를 경매장에 팔고, 문장을 모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번다.
2.현질을 합니다.
3.게임을 접습니다.

A씨는 이왕 하는거 징하게 하기로 마음을 먹고 1번을 선택합니다. 일퀘를 25개 꽉 채워서 할 경우에 거의 500골에 가까운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A씨는 다행이(?) 무두, 채광을 찍었기에 광물과 가죽을 죄다 경매장에 팔 수 있구요.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템은 열심히 영던 스핀을 돌아서 문장으로 때웁니다.

이렇게 약 한달을 보내니 A씨 수중에는 2만골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A씨는 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고 십자군 25인 쇼퍼로 참여합니다. 그는 아주 다행이도(?) 주술사를 했기에 대부분의 템을 기본가에 먹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기코 5000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수, 즉 레이드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스펙은 안되는 군요.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부족한 것은 장신구와 반지, 그리고 목걸이군요. 그는 이제 장신구를 맞추기 위해서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다시 십자군 25인 쇼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런, 2넴에서 상급 위안이 떴네요. 그는 큰맘먹고 경매에 참여합니다. 기본가 500! 600! 800! 1000! 1200!........하지만 그는 상급 위안의 최종 낙찰가에 경악하고 맙니다. 무려 2만 3000골! 이는 A씨가 한달동안 개고생을 한 돈보다 더 많습니다. 더 웃기는 건요? 저게 장신구 평균 가격이라는거죠. 하지만 저것이 없으면 A씨는 얼음왕관으로 진격하지 못합니다. 뭐, 헤딩팟이나 할일없는 여빛들이 쩔해주러 오는게 아니면, 얼음왕관은 요원합니다.

이제 A씨는 2번 아니면 3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시는 A씨에게 대단히 호의적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만약 A씨가 천클이나 판금클이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A씨는 십자군 파밍은 커녕, 십자군 쇼퍼로도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A씨가 아즈 호드였다면? 그는 처음간 십자군 쇼핑에서 미칠듯한 골드 레이스를 보고 좌절했겠죠.

그렇다면 이게 블리자드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의 습성 문제입니다. 강하면 더 강해지고 싶고, 돈을 모으면 돈을 더 모아지고 싶고, 힘이 있으면 약자에게 더 행사하고 과시하고 싶고...이러한 인간의 습성이 결국 엄청난 장벽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에 와우는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한 게임입니다. 만랩 이후, 컨텐츠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태, 그리고 인간들의 경제학적 사회학적인 움직임을 조절하는데 실패한 게임이죠. 그 결과 게임 내의 장벽은 게임 자체가 아닌 게이머에 의해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웃기는 것은 이러한 와우의 시스템 자체가 바로 한때 MMORPG가 지향했던 이상향, 바로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MMORPG 자체의 한계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 상황의 절정은 현질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MMORPG에 있어서 일종의 벽인 것이죠. 더이상 나아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멈추느냐. 그것이 빠르나 늦으나 MMORPG를 하는 유저라면 마딱뜨리게 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단 하나 뿐입니다. 아예 게임의 문법,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어떻게? 글쌔요, 누군가는 게임 내에서는 외부효과가 존재하지 않는 완전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문제는 그러한 문법을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느냐 입니다. 이는 아마도 게임 개발자들에 의해 좀더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