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영원한 불꽃이 존재할까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영원히 살아 남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지금' 흥행하는 것, '지금' 대세 인 것, '지금' 인기 있는 것, '지금' 재미있는 것 등등...과연 '지금'이 '영원'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가다가 현재의 대중문화를 보면 회의가 든다. 과거의 위대한 명작들에 비하면 지금의 문화와 작품 들은 너무나 천박하다. 영화에서부터 애니메이션, 소설, 만화, 음악 등등 모두가 '지금'을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물론, 대중문화란 결과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문화 형태이다. 대중 문화가 현재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당연함 속에서 작품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영원의 불꽃'에 대한 믿음 또한 사라지는 듯하여 안타깝다.

영원한 불꽃. '아마데우스'에서 죽어가면서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묻는다. 과연 영원한 불꽃이 존재할까요?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살리에리와 그의 천재성을 외면한 세상으로 인해서 죽었다. 그가 만약에 겸손했었더라면,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소신을 조금이라도 굽혔었더라면, 그는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모차르트 당대의 음악은 희미해져 가고,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음악은 이제 '영원'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렇다면 영원한 불꽃은 무엇인가? 그의 음악, 그에 대한 신념과 열정, 그리고 광기였다. 열정과 광기는 그를 집어 삼켰지만, 그와 그의 작품은 이제 영원하다. 

영원성, 그리고 그러한 영원에 대한 광기와 열정. 이는 역사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호메로스, 그는 태어나서 장님이었지만 눈뜬자 보다 더 아름답게, 더 웅장하게 시를 지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모나리자'를 근 20년의 세월을 거쳐서 완성시켰다. 그리고 당시 평범한 상인의 아내의 초상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품이 되었다. 조지 프레데릭 헨델,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합창 '할렐루야'는 그가 부채를 갚지 못해서 감옥에 갇힌 동안 쓰여졌다고 한다. 그는 살아 생전 수십여개의 오페라를 만들었지만, 지금 그를 대표하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불려지는 곡은 할렐루야이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그가 그의 최고 걸작인 합창 교향곡을 완성했을 때, 그는 이미 귀머거리였었다. 반 고호, 그는 살아생전 그가 그린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그림은 돈으로 조차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인류의 유산이다.....등등 

물론 모든 영원한 작품들이 광기와 열정에 의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모든 영원한 작품들이 그 당시 인정 받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모든 영원한 작품에는 창작자의 고뇌가 들어있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자기 인생과 모든 것을 건 치열한 고민을 통해 작품은 완성된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는 남아있다. 치열한 고민과 고뇌, 광기,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고민과 고뇌는 일반적인 사람 역시 갖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순한 정도의 차이인가? 아니면 무언가 좀 더 본질적인 차이인 것인가? 이에 대해 스티븐 킹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창작은 화석을 발굴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 만드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것을 다듬어서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화석'이란 무엇인가? 원래 있었던 것이 땅에 묻혀서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븐 킹이 이야기한 화석화의 대상이 무엇일까? 

인간은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접한다. 이러한 인간의 경험은 축적되고 축적되어 하나의 층위을 이룬다. 그리고 한 인간이라는 다단계의 층위를 형성하는데에는 수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것까지, 하나의 인격을 구성하는데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것들이 상호조화 또는 갈등을 일으켜서 인간이라는 형태로 완성된다. 그런 와중에서 '화석'이 생겨난다. 그것은 개인의 역사에서 경험한 하나의 사소한 감정일 수도 있고, 또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의 부조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고 볼 수 잇다. 보통의 사람들도 그러한 화석의 일부를 경험하고 본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화석'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가나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화석'이 단순한 '일상'이 아님을 알고, 그것을 꺼내서 복원시키려 한다. 하지만, 화석은 완전할 수 없다. 기나긴 역사속에서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려서 조각나고, 파편화되고,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잃어버린 부분이나 원래의 모양을 '재구축' 할 수 있는 상상력이다. 그는 화석을 조립할 때, 그가 맞다고 생각하는 순서, 혹은 모양으로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화석은 하나의 모양으로 복원된다. 그리고 복원된 화석은 영원한 불꽃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상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일상이 영원한 불꽃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루와 순간이 영원이 될 수 있는가? 고고학자는 화석을 발굴할 때, 단순히 자신의 상상력이 아닌 원래 있는 생물의 구조 등과 화석을 비교하여서 화석이 원래 어떤 모양이었을지를 상상한다. 작가가 화석을 발굴할 때, 그 화석의 원래 모양을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인간' 그 자체이다. 즉, 인간 제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지 화석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영원한 불꽃은 작품이 갖고 있는 영원성과 가치를, 화석은 작품의 소재, 즉 인간사 전반을, 화석의 발굴과정과 재구축은 창작의 과정을 상징한다 보면 될 것이다. 어떤 화석은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을 발굴하는데 일생을 걸어야 할 수도 있고, 어떤 화석은 너무 섬세하기 때문에 복원과정에서 부서져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각고의 노력 있어야 훌륭한 복원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럴 수록 요즘의 작품 창작이나 감상, 그리고 작품의 상태에 대해서 심히 걱정이 되는 바이다.

뭐, 가끔 가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는 것이다.
 




덧.쓰다가....용두사미가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