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저번 시간에는 평점과 작품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사실 평점과 좋은 작품이란 소재는 논쟁적인 성격이 약한데. 일단 좋은 작품이라는 기준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고, 평점 시스템의 결점은 이미 이런 대중문화를 오랫동안 접해왔던 팬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문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오늘 다루게 될 평론 혹은 비평이라는 개념 자체는 상당히 논쟁적입니다. 먼저 가장 유명한 비평과 리뷰의 차이를 둘러 싼 치열한 공방과 근대 이후로 가속화 되고 있는 포스트 모던 미학과 평론에 의해서 점점 미와 예술의 기준이 상대화되고 있는 점들 등등 대중문화 비평이란 무엇인가 라는 쟁점을 두고 복잡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습니다.

일단 제가 추구하는 비평의 지향점을 말씀드리는 것보다, 먼저 비평이란 단어의 사전적 학문적인 정의를 내림으로써 단계적으로 이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순수예술 빛 회화비술 중심으로 발달한 미학적인 개념에서 개념에서 비평은 미학적인 개념의 실제 예술의 적용 및 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미학적인 사상의 구체적인 발로가 비평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이데거가 미란 존재의 현현이다 등의 어려운 이야기를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미학적인 개념 자체는 저 또한 수박 겉햟기 식으로 배운 부분이고 실제 대중문화 비평에 써먹기에는 상당히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미학적인 사조도 현대로 들어오면서 일정한 방향성을 띄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정형화된 미 나 예술의 개념이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즉, 과거에는 절대적 미의 기준에 기초해서 작품을 평가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를수록 이를 깨는 작품들이 등장하였죠. 그로 인해서 미의 기준은 확장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미의 절대성은 의미가 없는 개념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인상파 화가인 모네는 처음으로 그의 파리 전시회를 열었을 때, 그의 그림을 찢으려고 유산을 지팡이나 유산을 휘두르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 몇미터 위에 그림을 걸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네의 그림은 기존의 명암 개념을 무시한 인상파의 전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네의 그림이 위대한 명화라는 건 익히 알고 있죠. 하지만 등장 초기에는 기존의 미 개념과 맞지않는다는 점으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높게 평가받지 못했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미의 개념자체가 시기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비평이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의 선지가 등장합니다. 전자는 지금 현존하는 미와 작품의 완성도 및 선호를 판단할 수 있는 외적인 요소를 끌여들어서 현재의 작품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는 외적 비평이며, 후자는 기존의 비평체계를 받아들여서 작품의 구조, 플룻, 캐릭터를 분석하고 내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내적 비평입니다. 이 두가지 비평론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죠.

그런 비평이 갈리는 예를 하나 들어보죠. 2006년 방영되었던 BONES의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은 당시 상당한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죠. 하지만 이에 대해서 구조적인 분석 및 비평을 하는 평론가들은 에우레카 세븐의 플룻의 완성도와 스토리적인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을 지적하며 전반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문제점으로 '결과적으로 에우레카 세븐의 이야기 주제는 Boy meets girl이며 그외의 플룻은 이를 연출하기 위한 수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존의 주제와 이야기가 겉돌면서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떨어진다 할 수있다.'라는 점을 지적하죠.

뭐 이에 대해서 극렬 BONES 빠로서 여러가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에시드 와 히피 문화, 소통과 화해,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가는지 등의 소제 아래서 이야기가 구심점을 형성하고 그것이 이야기 전반의 존재하는 플룻의 헛점을 매꾸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먼저 인정해야되는 점은 위에서 지적한 문제가 작품 전반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비단 에우레카 세븐의 문제점이 아니라 BONES라는 제작사가 갖는 문제점입니다. 즉 작화나 다른 요소달은 훌륭하나 중심되는 이야기 축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근래의 소울이터나 DTB 2기 같은 문제를 터뜨리게 되는 겁니다.(사실 이런 문제는 DTB 1기 등의 완성도 있는 오리지널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반면 플룻이나 기본 설정이 좋은 작품, 강철의 연금술사 두번째 버전, 오란고교 호스트부 같은 경우는 엄청난 흥행과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죠.

여기서 짚을 점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한 작품 내에 두가지 상반된 비평은 공존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두가지의 관점은 절대로 절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더 훌륭한 비평일까요? 사실 이는 작품마다 다르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작품에 따라 플룻이나 작품의 내적 상징체계와 그 완성도가 주가 되는가, 아니면 외적인 배경지식과 인간의 심리, 장면이나 시퀸스가 주가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만약 강철의 연금술사 같이 탄탄한 플룻을 자랑하는 작품이라면 정자의 비평 방법론을, 카우보이 비밥처럼 그때 그때의 분위기 인물묘사에 능하다면 후자의 비평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니까요.

하지만 유념해야할 점은 각각의 비평론은 각각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구조적인 비평론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감상자를 무시한 탁상공론적인 비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적, 상황적인 비평론은 자칫 지나친 주관주의(비평 그 자체의 무용성)에 빠지기 쉽죠.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양쪽의 비평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겠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죠. 따라서 어느쪽의 비평론의 입장을 취하더라도 그 한계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덧.맨 마지막에 '아이폰에서 작성된 글입니다'라고 계속 뜨는데 은근히 신경쓰이는 문구네요;;;

덧2.무한하 0에 가까울 확률이기는 하지만....혹시 선배가 보고 계실지 모르니까 말씀드립니다. 선배, 저 선배 씹으려고 논쟁을벌인건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꼭 믿어주새요 ㅠㅠ

덧3. 중복된 부분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