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편의상 존댓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쿠아리스'는 지알로 영화(피와 살이 난무하는 이탈리아 표 호러영화)의 걸작으로 뽑히는 영화다. 이미 수많은 호러영화 팬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평가하고 극찬하였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분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존의 분석은 잠시 옆으로 제쳐두고, 조금 다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아쿠아리스의 올빼미 살인마, 어빙 윌리스는 얼핏 보기에는 기존의 슬래셔 물에 나오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치광이 연쇄살인마들이 살인의 동기나 법칙이 있었는데 반해서 어빙 윌리스는 그러한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어느 누가 연쇄살인마에게 구차한 이유가 붙기를 바라겠는가? 그냥 러닝 타임 내내 살인마가 나와서 가오 잡아주고, 토막내고 내장을 끄집어 내다가 결국 마지막에 자기보다 덩치도 작고 약한 여자 혹은 청소년 기타 등등 에게 쳐발린 다음에 마지막 장면에서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한 묘한 엔딩으로 마무리 지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호러 영화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쿠아리스는 뭔가 좀 다르다. 주인공들은 살인자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고 동료 베티를 무참히 살해한 뒤에, 밀폐된 극장에 남아서 각본을 살인마에 맞게 뜯어 고치면서(흥행을 위해서, 이 얼마나 달콤 살벌한 낱말인가!) 연극을 연습한다. 물론, 관객의 예상대로 살인마는 이미 폐쇄된 극장에 들어와있는 상태. 하지만, 살인마가 극장에 들어와서 먼저 한 일은 살인이 아니라 올빼미 가면과 무대 의상을 훔쳐서 무대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왜 살인마 어빙 윌리스는 극장에 들어오자 마자 한 일이 무대에 오른 것일까? 영화는 살인마에 대한 배경 설명을 거의 해주지 않는다. 그가 예전에 연극배우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16명을 참살한 미치광이 연쇄살인마라는 것 외에는. 하지만, 그가 진짜 미치광이 살인마였다면, 무대 위에서의 첫 살인(물론 영화에서 첫 살인은 아니지만) 이전에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살인을 행하지 않은 것일까?

 영화는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추론은 가능하다. 영화에서 살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베티의 살인, 나머지 하나는 살인마가 의상을 훔쳐입은 뒤에 무대 위에서 벌인 살인과 그 이후에 일어난 살인들. 이 두 살인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누군가가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점이다. 먼저 베티와 일리시아가 병원에서 극장으로 돌아올 때, 베티는 어빙 윌러스가 벌인 살인 행각에 대해서 낱낱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입에 곡괭이가 처박혀서 죽게 된다(말 조심을 하라, 라는 경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살인 장면을 연습하던 중, 살인마가 의상을 훔쳐입고 쭈삣거리면서 무대위에 올랐을 때, 연출가는 소리친다. "뭐하는거야? 어서 그녀를 죽이라구!"

 그렇다면 왜 어빙 월리스는 사람을 먼저 죽이지 않고, 상대방이 살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을 때 발동이 걸려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연극배우였다. 하지만, 그 역시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처럼 무명의 가난한 배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남들과 다르게 튀면 된다. 어떻게? 그래서 그는 영화 속의 배우들처럼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자극적인 연극에 출연한다. 하지만, 그래도 뜨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그는 점점 미쳐간다. 점점 명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져가고, 그는 결국 자신의 배역(아마도 살인마 역이었으리라)에 몰입한다. 결국 그는 미친다. 연극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는 현실에서 연극 속의 살인마 역을 충실히 재현한다. 따라서 '살인'이란 단어는 그에게 연극의 배역(살인마)에 몰입하게 하는 키워드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떴다'. 물론 그게 진짜 뜬거냐고 물어보면 할말 없지만. 그래도 그는 미치고나서도 투철한 직업정신(?)에 불타오른다. 탈출하자마자 간 장소가 바로 연극 무대였고, 심지어는 무대의상을 훔쳐서 쓰고 무대 위로 올라온다. 그러자 연출가가 소리친다. "뭐하는거야? 어서 그녀를 죽이라구!" 죽인다구? 그거야 말로 내 전공이지! 그리고 살인마는 자신의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한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관객인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호러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공포, 살인, 절망, 귀신 등등. 하지만 영화는 1/3이 지나도록 살인 장면은 커녕 가난한 3류 배우들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각주:1]. 이런 상황에서 결국 살인마가 무대위로 오른다. 하지만 그는 무대 뒤에서 주저한다. 관객들은 외친다. "젠장! 네가 진짜 살인마면 빨리 당장 무대 위로 튀어나와서 사람을 죽이란 말이야!" 그리고 살인마는 화답한다. 기꺼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인마가 무대 위에 오르고 제 2막이 시작된다.

 그 이후 영화는 살인마가 '무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연습을 하기 위해 모인 배우들을 다양한 공구로 참살하는 내용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희생자'인 배우들은 '살인자'인 배우를 피해 이리저리 '무대'를 도망다닌다[각주:2]. 사실 '아쿠아리스'의 희생자들은 여타 공포영화의 희생자들과 같은 바보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뭉쳐다니며, 무장을 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를 살아나갈 수가 없다. 왜냐고? 아직 러닝타임 90분을 채우기에는 시간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결국, 연약한 여주인공을 남겨두고 모두 죽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 살인마는 무대 위에 자신이 죽인 시체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편안히 앉아 휴식을 취한다. 마치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어'라는 느낌으로. 사실 그럴만도 하다. 그는 연출가(동시에 관객)의 주문을 충실히 수행했다. 다 죽였으니까. 따라서 그가 시체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과 동시에, 자신의 한 일(맡은 역할에 충실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살인마가 너무 역할에 충실해서 주인공까지 다 죽여버린다면, 그건 살인마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살인마는 여주인공을 죽이려다가 여주인공 손에 죽는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서 여주인공을 죽이려 하지만, 양미간에 총알을 맞고 결국은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다[각주:3]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살인마는 카메라를 향해서 씨익 미소를 짓는다. 누구를 향해, 무엇 때문에? 설마 후속편이라도 낼 생각인가?

 아니다. 살인마는 관객에게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제 만족하셨습니까?



사족.
 영화 기술적인 완성도로 이야기하자면, 아쿠아리스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지금봐도 훌륭한 시점이나 표현들이 많이 있다. 물론 80년대 특유의 신디사이저 풍의 음악이나 분위기는 좀 어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점을 제외하더라도 영화적 완성도는 딱히 흠 잡을 때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억 달러를 쳐박아 넣어서 2시간 동안 저질 농담과 허접한 카메라 워크로 사람 지루하게 만드는 마X클 베X 같은 감독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요즘 영화 감독들은 옛날 영화좀 보고 배워야 한다.

사족2.
 영화 포스터에는 도끼로 수족관을 깨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도끼로 수족관을 깨는 장면은 커녕 수족관이 단 한번, 그것도 별 의미 없이 쏨팽가리(맞나?)를 포커스로 맞추는 장면만 나온다.




  1. 주1.물론 나는 그것이 영화의 네러티브를 흐트러트린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분위기를 비참하고 암울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본문으로]
  2. 주2.이것이 영화란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 구조이다. 배우들은 극중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흔히 호러영화에 있어서 희생자-살인마의 역할을 분담하여 무대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주3.이것도 살인마의 주요 본분 중에 하나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