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에 해당되는 글 4건

게임 이야기

 

 

*닌텐도 스위치 버전 기준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슈퍼핫은 단순하다. 하지만 슈퍼핫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은 독특한 규칙으로 출발한다:플레이어가 멈춰있으면, 게임 내의 시간도 거의 멈춘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움직이면, 시간도 함께 움직인다. 이러한 대전제를 깔아두고 플레이어는 능동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야 한다. 스테이지 구조는 단순하고 적이 등장하는 패턴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슈퍼핫을 '어디에 등장하는 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의미에서 퍼즐 FPS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반적인 플레이 흐름을 놓고 본다면 이런 접근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슈퍼핫이 퍼즐 장르의 등식처럼 '정답이 존재하는 게임'일까? 이다. 마이크 타이슨의 "누구든 링 위에 올라와서 맞기 전까지는 계획을 갖고 있다"라는 말처럼, 슈퍼핫은 플레이어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맵 구조는 단순하다, 적들이 등장하는데도 패턴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흘러가는 '시간'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시간은 '거의' 멈춰있다. 그 말인 즉슨, 플레이어가 멈춰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조금씩 움직이며 플레이어를 압박한다는 것이다.
 
슈퍼 핫은 게임을 단순하지만 극단적으로 섬세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어는 적의 공격 한 번에 쓰러진다. 그 대신 제한된 탄약과 체력은 플레이어가 유일한 장점인 '시간을 느리게 하는 능력'에 모든 집중을 쏟아 붓게 만든다. 하지만 한 발자국의 움직임이나 심지어 카메라를 돌리는 행위 조차도 게임 내의 시간을 흐르게 만든다. 퍼즐 게임 장르의 경우라면 정해진 해답과 접근 방식이 존재 했었겠지만, 한 발자국 한 번의 시점이동만으로 게임 속 시간이 흘러버리기 때문에 매번 세웠던 계획들은 조금씩 틀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조금씩 생겨나는 변경점 때문에 슈퍼핫은 절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핫을 막 시작한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가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적들의 압도적인 물량과 빗발치는 탄환들을 피하기 위해서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 하지만 매 시도 매 순간이 이전 시도와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플레이 때는 매우 어렵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면, 게임은 빠른 걸음으로 움직인만큼 다른 게임의 1.5배속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의 두가지 템포를 이용하여서 시간을 원하는데로 굽혔다 필 수 있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게임은 살얼음판을 달리는 게임이 된다:플레이어의 감각은 고양되며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달려서 시간을 밀어붙이고 그 순간에 적을 해치우는 것을 반복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매 순간이 긴장감 넘치는 것이 슈퍼핫의 본질이다.
 
결과적으로 슈퍼핫은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게임이다. 단순한 컨셉이지만, 극단적으로 섬세하게 게임을 구성함으로써(움직임과 카메라 돌림에도 반응하는 시간의 흐름)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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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파이어 엠블렘:풍화설월이 7월 26일에 발매되었다. 각성 때의 기적같은 성공과 if의 상업적 성공(와 함께 평단과 팬층에게서의 엄청난 혹평)을 통해서, 파이어 앰블렘은 일본을 벗어나 세계적인 IP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풍화설월은 이를 증명하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풍화설월은 평단과 판매실적 양쪽 다 모두 성공적이었다:풍화설월은 다양한 웹진에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E샵이나 각종 판매 차트에서 좋은 실적을 거뒀다.

 

파이어 앰블램은 풍화설월은 최근 게임 프랜차이즈가 보여주는 경향성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기존의 프랜차이즈들은 점점 프랜차이즈 늘어난 게임 요소들을 정리하고, 프랜차이즈의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배틀필드의 경우 1과 V를 통해서 이전 현대전 시리즈에서 1942 시절의 게임 감각을 살리려고 했었고, 콜 오브 듀티는 블옵 3에서 4로 변화하면서 3편의 장점(스페셜리스트 등)을 가져오되 플랫포밍과 맵 구성을 이전 시리즈를 참조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가지 치기'는 게임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되, 플레이어가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들을 일관성 있게 유지함으로 프랜차이즈의 연속성을 살렸다.

 

그러나 풍화설월은 가지 치기가 아닌 '가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기존의 파이어 엠블렘이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면서 몇몇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는 형태였다면, 풍화설월은 한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가진 재능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그 때문에 각성과 if를 해본 사람이 풍화설월을 처음에 하면 매우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파이어 엠블렘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에는 부합한다:각성 이후 파이어 엠블렘 신작들은 기존의 하드코어 SRPG에서 개성적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모이는 케릭터 게임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특히 각성은 이전 시리즈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지원회화와 결혼, 더 나아가서 자식세대까지 한꺼번에 등장시키면서 SRPG도 하는 동시에 소규모 미연시를 하는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였다. 하지만 각성과 if는 기존 시리즈의 시스템을 '그대로' 구현한 나머지, 결혼과 자식세대으로 이어지는 개연성이 매우 떨어졌다. '대체 장성한 자식들과 부모 세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자식세대는 부모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라는 서사적인 문제에서부터 '결혼을 했을 때 누구의 스킬과 외모를 따라가는가?'와 같은 시스템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풍화설월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다 더 자유로운 육성을 위해 게임을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구성하였다. 우선 기존의 전통과도 같았던 특징들(검-창-도끼 등과 같은 상성)을 스킬이나 별도 시스템을 통해서 분리하고, 부모세대-자식세대 간의 전승되는 스킬은 잘게 쪼갠 뒤 각각 교육 및 클래스 마스터를 통해서 얻을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풍화설월은 이전작과 다르게 엄청나게 유연한 게임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가령 케릭터 적성은 마법사지만 마법을 쓰면서 근접전에도 통달한 케릭터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심지어 아예 작정하고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 케릭터로 만들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이 풍화설월이다.

 

다만, 이 때문에 풍화설월은 게임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다: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오고, 시스템도 늦게 해금되는 것들이 많으며, 효율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극복하면 이 게임은 오랫동안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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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미드소마, 위커맨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 친구들.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지옥길,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영화 미드소마는 상당히 독특한 영화이다. 장르적인 구분을 내리자면 미드소마는 공포 영화다. 그러나 미드소마는 과연 무엇에 대한 공포영화인가? 라는 질문으로 들어간다면 이 영화는 오리무중에 빠지기 쉽게끔 되어 있다. 이교도 사회이자 단절된 사회인 호르가가 공포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교도들의 사회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주인공인 대니가 겪었던 사건과 대니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영화가 내리는 결론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본다면 단순히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깜짝 놀라게 만드는 공포 영화라고 쉽게 정의할 순 없다.

 

미드소마가 다루고자 하는 공포와 그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가 직접적인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위커맨(1973)을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다. 멀리 떨어진 변방의 섬에서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서 분투하는 경찰관이 결국은 인신공양의 제물로 간택되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위커맨은 미드소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호러 영화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위커맨의 이야기 구도는 올바른 주인공과 사악한 이교도 사이의 알력으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인 경찰관은 경찰 제복을 입고 1970년대 관점에서도 캐캐묵은 도덕관념과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에 대비한 사이비 종교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긴 하지만 나름의 논리와 정당성을 갖추었다. 위커맨의 서사 구조를 단순한 선악의 대결로 보기 힘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위커맨의 핵심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제 3자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의 기이함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춤과 율동, 그리고 자유분방한 성관념을 통해서 드러낸다. 사람들이 원시 고대 종교가 갖고 있는 편견들(인신공양, 생명 잉태에 있어서 여성의 강조, 성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 등)을 한 데 모은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악으로 둔갑시키지 않는다. 영화는 균형의 추로서 우리가 이입할 수 없는 보수적인 종교와 권위를 따르는 주인공을 설정함으로 어느 한쪽에 몰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두 문화의 충돌을 목도하게 만든다.

 

위커맨의 서사가 '제 3자의 관점에서 본 두 문화의 충돌'이라면 미드소마 서사의 핵심은 '이질적인 두 문화의 결합'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위커맨의 서사가 제 3자적인 관점이었다면 미드소마의 서사는 전적으로 대니가 호르가라는 공동체에 어떻게 편입되는가를 다루는 내부인의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분명 위커맨에서 나타나는 두 문화의 충돌이 미드소마에서도 일정 정도 다루어지긴 하지만, 미드소마는 모든 이야기와 서사 구조, 상징들이 대니의 삶에 있어서 시련-방황-극복-공동체의 편입이라는 구조로 맞춰졌다. 어떻게 보면 미드소마는 구조적인 부분에서 위커맨을 차용하되(인신 공양을 하는 이교도에 대한 이야기), 핵심적인 부분에서 위커맨과 정반대로 서사를 전개하여(이입할 수 없는 주인공 vs 모든 서사 구조의 중심인 주인공) 레퍼런스를 뛰어넘고자 하는 야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미드소마는 종교적인 상징과 징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찍이 조셉 켐벨은 영웅 신화에 대해서 "인간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자식의 탄생, 성장, 부모로부터의 독립 등)을 상징화 한 것이 신화이다"라 했다. 미드소마는 비록 영웅 신화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들을 서사와 배경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조셉 캠벨이 이야기한 구조로서의 신화를 따르고 있다. 영화는 첫 시퀸스에서 겨울의 호르가와 대니가 가족을 잃는 장면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겨울과 죽음의 이미지를 교차시키고, 한 사람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호르가로의 여정으로 이어지는 필연성으로 이어나간다.

 

미드소마Midsommar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사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24절기 중 해가 가장 오래 뜨는 '하지'다. 이러한 하지는 문화권에 따라 해가 가장 오래 떠있다는 점에서 생명이 가장 충만한 시기로도 묘사가 되는데, 첫 시퀸스가 대니 가족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죽음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서 시작해 해가 가장 긴 시기에 맞이한 생명력이 넘치고 폭발하는 순간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계절적 변화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을 다루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대니가 어떤 식으로든 그 나름대로의 구원을 찾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러한 생명의 폭발을 그로테스크한 장면들과 양식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벽화들이나 상징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양식 그 자체로서 그로테스크에 부합하기는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단순히 양식으로서의 그로테스크를 넘어서 육체의 훼손과 절단이라는 고어를 통해서도 생명력의 폭발으로 그로테스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주기가 끝난 노인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나 근친상간의 결실인 루벤의 존재, 피의 독수리를 당한 시체에 꽃을 꽂아두어 죽음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장면 등은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고어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그로테스크한 것은 감각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것을 최고도로 고양시킨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그로테스크한 형상물들은 동시에 한 시대의 넘쳐흐르는 기운의 표현이다….물론 그로테스크한 것의 원동력을 두고 보면 이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점이 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퇴폐적인 시대나 병적인 두뇌를 가진 자들도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그로테스크한 것은 퇴폐적 시대와 병적 개인들에게는 세계와 삶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적인 반작용의 표현이다…이 두경향 가운데 어느 경향이 창조적 추진력으로서의 그로테스크한 판타지의 배후에 있는가 하는 것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에두아르트 푹스, 당조의 조형예술;발터 벤야민,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에서 재인용.

 

아리 애스터는 이미 전작이자 데뷔작이었던 유전에서도 미니어처를 통해서 불길한 징조의 반복이라는 이미지를 구체화 시킨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 미드소마에서는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최대로 발휘하였다. 영화는 곳곳에 이미지와 상징을 촘촘하게 심어놨으며(심지어 영화의 첫 그림은 영화 시놉시스 전체의 요약이다), 이러한 영화 속 이미지와 상징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자 징조 그 자체다. 즉, 하지 축제 자체가 생명력의 과잉에 대한 상징인 것처럼, 영화는 이미지의 과잉을 통해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불길함과 필연성을 배치하며, 단지 개별 장면의 그로테스크함을 넘어서 영화 자체가 그로테스크 양식 자체가 된다.

 

그리고 생명력의 과잉에는 필연적으로 생명이 소비하여야 하는 소비재, 먹이가 필요하다. 그 먹이는 바로 외부에서 데려온 '죽어 마땅한 산 재물들'이다. 영화의 전반에 등장하는 외부자들은 영화 이야기와 호르가 공동체 관점에서 죽어야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마크는 섹스를 밝히면서 마을의 신성한 나무에 오줌을 갈기는 불경을 저질렀고, 조쉬는 학사 논문을 핑계로 마을의 경전을 도둑질하려 하였다. 잉마르가 데려온 커플 역시 호르가 공동체의 규범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기에 죽음에 대한 당위를 얻었다. 

 

이 외부자들에게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대문명의 개인주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외부자들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호르가 공동체와 대치된다. 영화의 초반 시퀸스에서 대니를 짐처럼 생각하고 해어지길 주저하는 크리스티안이 그러하고, 원치않게 대니를 스웨덴 여행에 동참시키면서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크리스티안의 친구들도 그러하다. 이들을 다루는 영화의 시퀸스는 매우 '어색'하다. 무언가 서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지만, 각자 자기 주장에 갇혀서 멤돌 뿐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체면치례나 사회관계를 고려하여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티안의 최후는 특별하다: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겨울잠과 겨울의 기운을 대변하는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화형을 당한다. 그는 마크나 조쉬과 같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대변하지만, 흥미롭게도 극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주인공인 대니와 여성성의 대척점에 섰다. 이러한 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크리스티안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과 섹스를 하는 장면이다:기존 공포 영화 문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섹스 장면은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점, 섹스와 같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행위조차도 개인의 것이 되지 못하는 점, 남성성의 거세 등등이 드러난다. 섯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현대문명을 남성성에 호르가와 같은 고립된 공동체를 여성성에 대입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결국은 펠레가 대니에게 물었던 '과연 그(크리스티안)가 너를 지탱해주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대니의 대답은 크리스티안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와 개인주의를 버리고 호르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니는 5월의 여왕으로서 세상의 중심에 서며, 크리스티안이 외도를 하였을 때의 충격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나눈다기 보다는 동기화하는')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불타죽어가는 호르가 마을의 산 제물에 공감하며 통곡을 할 때, 대니 혼자서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미드소마는 감독의 야심이 넘처나는 작품이다. 그리고 관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충분히 있고 감독도 자신의 재량을 십분 발휘한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과잉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많은 상징들과 복선들을 영화 내에 우겨넣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리다:영화 초반에 24절기를 암시하는 달의 그림을 넣은 장면이나 곰과 공주의 그림을 대니가 자고 있는 방에다 붙여 넣은 것, 호르가 마을에서 묵을 때 각 인물들의 마지막이 침대 머리맡에 태피스트리 형태로 새겨진 것, 바이킹 전통 처형 방식인 피의 독수리나, 조쉬의 발에 세겨진 도둑이라는 룬문자 등등. 영화는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디테일에 집착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1회 감상으로 모두 찾아내는 건 어렵다. 물론 영화의 큰 틀에서의 구조가 관객들도 충분히 따라올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미드소마는 자칫 잘못하면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자기만 털어놓는 괴작이 될 뻔하였다. 

 

즉, 미드소마는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 정보량의 임계치에 근접한 물건이다. 더 과하거나 이야기 구조를 비틀었으면 이 영화는 카드로 만들어진 집처럼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미드소마는 공포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이나 특이한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광들에게 어필할만하며, 이후로도 계속 거론될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만약, 아리 애스터가 미드소마의 성공에 취해 더 야심찬 영화를 만든다면, 그때는 이해 자체가 어려운 괴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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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리메이크된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피닛 워드는 이미 모던 워페어 3과 인피닛 워페어, 고스트 같은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질 떨어지는 물건들을 만든 전력이 있다.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존에 했던 것을 재탕하거나(모던 워페어 3), 남이 한 것을 베끼거나(인피닛 워페어), 심지어 그것보다도 더 엉망인 물건을 만드는 것 정도다.(고스트)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는 기존에 했던 것을 적당히 재탕한다는 의미에서 명약관화였다. 단지 그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가 늦던 이르던 도달하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콜 오브 듀티의 시대가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던 워페어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단 것이다.

 

한 때 역사를 풍미했던 작품이 리부트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갓 오브 워도 리부트에 가까운 후속작으로 우리를 찾아왔고, 둠 2016년도 둠 3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새롭게 등장한 전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새로운 리부트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모던 워페어가 만들어냈었던 역사의 터닝 포인트를?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할 것이다. 모던 워페어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점은 영화적 연출을 싱글플레이에 도입하였다는 점과 킬 스트릭으로 대변되는 빠르게 죽고 죽이는 멀티플레이 사이클을 확립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던 워페어는 분명 이후 10년 간의 경향성을 결정한 중대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콜 오브 듀티가 1년 단위로 발매되는 사이클을 택하였을 때, 이미 이 프랜차이즈의 성패는 정해졌었다. 트리플 A 게임 치고는 다소 짧은 2년~3년 간의 개발 사이클 동안, 콜 오브 듀티는 반보 전진(슬레지해머, 트라이아크), 2보 후퇴(인피닛 워드)를 하며 제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팬들은 매년 나오는 콜옵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다른 프랜차이즈들은 모던 워페어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연출이나 방법론들을 찾아냈고, 게임 시장과 소비자도 거기 맞춰서 변화하였다. 배틀필드뿐만 아니라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등장, 배틀 로열 장르의 성립, 콜옵의 킬 스트릭 시스템을 한 단계 진화시킨 타이탄폴, 무료 플레이 게임을 재정의한 포트 나이트의 강세 등등을 통해 보았을 때, 이미 모던 워페어의 문법을 받아들인 제작자들은 그 노하우를 새로운 형태로 풀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요컨대, 콜 오브 듀티가 지금에 와서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를 만든다는 것은 광활한 사막 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빠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미 세상은 변해서 흘러가는데, 그 위에 인피닛 워드는 모두가 갖고 있는 기본 소양을 한 움큼 더한 물건을 시장에 출시하려 하고 있다. 그 물건이 바로 모던 워페어 리부트다. 그나마 슬렛지 해머와 트라이 아크가 조금씩 변주를 주면서 이 프랜차이즈의 생명선을 조금씩이라도 늘려보려 했었지만, 그 간의 노력들은 이번 모던 워페어 리부트로 모조리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남들은 10년 간 바뀌었는데 이 프랜차이즈는 다시 10년 전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겠다고 선언한 꼴이 되었으니까.

 

물론,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매도나 폭언은 자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외부적인 요인 측면에서도 불안하다. 일단은 기존 블옵 4와의 포지셔닝의 문제다. 블옵 4는 분명하게 멀티플레이만 존재하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이다. 멀티플레이로서 모든 것을 거머쥐겠다(코옵, 소규모 팀파이트, 그리고 배틀 로열까지)는 블옵 4의 실험은 분명 흥미로웠고, 많은 팬들에게 어필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본 작과 블옵 4 간의 동종 포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기존 콜옵들도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서 새로운 작품을 하지 않고 이전 작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멀티플레이에 올인하고, 시리즈 최초로 새롭게 추가된 배틀 로열 모드까지 있는 블옵 4는 콜옵 내에서도 전례가 없는 작품이었고, 콜옵과 팀포 2/오버워치의 경계선상에 놓인 특이한 작품이었다. 거기에 구작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작품을 얹는다면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콜옵 팬덤 층을 반으로 쪼갤 여지가 있다. 즉, 블옵 4의 존재는 모던 워페어 4에게 있어서는 독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것은 바로 액티비전의 이해가 안되는 행보다:액티비전은 슬렛지 해머-트라이 아크-인피닛 워드의 3년 개발 체계를 트라이 아크-인피닛 워드(+슬렛지 해머)라는 2년 개발 체계로 바꾸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피닛 워페어나 고스트나 모던 워페어 3 같은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를 죽이지 않고 살리고, 슬렛지 해머 같이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도 흥행도 성공한 회사를 역량이 후 달리는 제작사 밑에 붙여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블옵 시리즈를 만드는 트레이아크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다시 2년 체계로 돌아가버렸으니 트레이아크의 운신 폭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블옵 4의 성공 이후 액티비전이 했어야 했었던 것은 새로운 작품을 더 빨리 더 적은 인원으로 뽑아내는 것이 아닌, 팬층이 그 게임을 오래도록 붙잡고 즐길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하는 것이었다. 팬들은 이미 1년 단위로 바뀌는 콜옵 멀티 환경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모드인 블랙아웃도 프랜차이즈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정과 노하우를 쌓아올리는 기간이 필요했었다. 하다 못해 1년 정도는 블옵 4에게 기회를 주고 지속적인 이벤트와 서비스 등을 개최했어야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낡아빠진 명작의 리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번개처럼 달리는 자는, 천둥과도 같이 무너진다고. 물론,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분명 다른 프랜차이즈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작 블옵 4나 전전작 WW2 정도의 성공이 될 수 있을까? 시장은 점점 가혹해지고, 좋은 게임은 넘쳐나며, 콜옵식 데스매치 위주의 멀티플레이는 이제 구식이 되었다. 이건 이미 블옵 4도 인정한 부분이다. 거기에 탱크 몇대 추가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제 번개 같은 섬광이 천둥과도 같이 무너질 때가 오고 있다.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의 종말의 서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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