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존 윅 시리즈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존 윅 시리즈는 코믹스 중심의 최근 트랜드(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영화다:원작도 없는 간결한 서사에, 오로지 액션만이 중심이 된 영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 영화 리뷰 만화에서는 존 윅 시리즈를 '그 어떠한 주제의식 없이 존 윅이 사람을 몇명 쏴죽이는게 중요한 영화'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일견 이러한 평가는 옳은 것처럼 보인다:최근에 개봉한 3편인 파라벨럼도 "존 윅이 뉴욕에서 탈출함 - 존 윅이 최고 의회와의 중재를 위해 원로를 찾아감 - 친구인 윈스턴을 죽이기 위해 뉴욕으로 돌아옴 - 덤비는 모든 적들을 제거하지만 윈스턴에게 배신당하고 살아남음"이라는 4가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액션씬(총격, 맨손 격투, 나이프 파이팅, 근접전 등등)들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존 윅 시리즈는 1편에서부터 3편까지 짧은 시놉시스 내에서 반전이나 영화 특유의 주제의식 없이 러닝 타임 내내 액션으로 몰아붙이는 영화였다.

 

하지만 과연 존 윅 시리즈가 "아무런 내용없이" 액션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영화 시리즈였을까? 좋은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관객이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몰입의 요소를 갖는다. 존 윅이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죽이는 살인마였다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일어나는 모든 액션은 거북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존 윅이라는 케릭터가 움직이는 모티브에는 분명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점에서 모 영화 리뷰 만화의 평가는 존 윅 시리즈의 핵심을 빗겨나간 수박 겉햟기에 불과하다. 영화는 분명 존 윅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가? 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잘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빗겨나간 채로 영화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윅 1편은 흥미롭게도 10년 전에 나왔던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과 유사하다:둘 다 건드려서는 안되는 사람을 건드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주인공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악역들에게 몇 배에 상응하는 고통을 주는 것으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존 윅과 테이큰이 주는 카타르시스의 핵심은 테이큰의 명대사 "(전혀 사적인 감정이 없다는 악역에게)나에겐 완전히 사적이야"로 축약할 수 있다:주인공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고, 개인적인 삶을 파괴하였던 무정한 세상과 잔인한 폭력에 대해서 몇배의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도 공감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건드려서는 안되는 주인공을 건드려서 좆되는 악역들"이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두 영화는 후속작이 나오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테이큰 시리즈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주인공의 딸을 건드려서 좆됨"(1편), "건드려서는 안되는 주인공의 전처와 딸을 건드려서 좆됨"(2편), "건드려서는 안되는 주인공의 전처를 죽여서 좆됨"(3편)이라는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주다가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몰락하게 되었다. 물론 3편이 나름대로의 반전을 설정하기는 했지만, 관객들이 테이큰 시리즈에 요구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존 윅 2편은 독특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확장하였다:1편은 존 윅이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생활의 파괴에서 비롯된 분노가 동인이었다면, 2편은 존 윅이 빠져나올 수 없는 공적인 세계(킬러들과 암흑가의 규칙들)에서 자신의 사적인 생활(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이러한 공적인 세계 1편에서도 어느정도 드러나기는 했지만(암살자들의 성역인 콘티넨탈 호텔이나 암살자들의 화폐인 금화 같은), 그것을 전세계적인 규칙과 암살자들의 공적인 사회로 구축한 것은 2편의 공이 크다. 

 

그렇다고 2편은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정 설명을 갖다 붙이지 않았다:관객이 아는 것은 존 윅이 산티노에서 빚을 졌다는 것, 그리고 그 빚은 존 윅이 산티노의 부탁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원시적인 채무 관계이며, 채무라는 시스템을 기능케 하는 공동체와 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2편에서 관객들은 설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필요 없이, 1편에서 어렴풋이 보였던 암살자들의 사회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사회의 미니어처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존 윅의 세계는 무협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계관과 비슷하다:둘 다 세상 안에 작은 미니어처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고(암살자들의 세계와 강호), 그 내부에서의 규칙들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동시에 납득가능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존 윅 2편부터는 이러한 무협 영화에서의 강호라는 커뮤니티를 암흑가의 커뮤니티로 재해석하는 동시에(기술에 대한 존경, 주고 받는 예의와 격식 등), 서브컬처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범죄, 무협, 총격전 등의 클리세를 뒤섞는다. 존 윅 시리즈는 그야말로 전세계 액션 영화의 잡탕과도 같은 시리즈다. 이런 점에서 존 윅 시리즈는 고전적인 액션영화의 오마주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와도 맥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킬 빌이 B급 영화의 오마주를 통해서 일종의 예술영화(?)를 만들었다면, 존 윅 시리즈는 자신이 B급 영화라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존 윅 시리즈의 매력일 것이다.

 

2편이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자신 사이에서 정당한 복수(공적인 규약을 지켰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배신한 산티노를 쏴 죽인 것)를 선택하는 이야기였다면, 3편은 공적인 조율을 통해서 평화를 되찾고자 한다. 영화의 부재인 파라 벨럼Para Bellum은 4세기 경 쓰여진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군사학 논고에서 나온 유명한 격언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라"(Si vis pacem, para bellum)에서 따온 것인 동시에 탄약 종류 중 가장 유명하고 많이 팔린 9mm 탄약의 규격을 뜻하는 중의적인 제목 선정이다. 여기서 존 윅은 전세계 암살자들을 적으로 돌렸지만, 자신의 복수가 정당한 것임을 알리고 자신의 사적인 삶(평화)을 되찾기 위해 공적인 권위(모로코에서 만나는 암살자 기원의 일족)에 호소한다. 영화는 제목에 전쟁을 준비해라Para Bellum고 하였지만, 평화를 원하면Si vis pacem이라는 전제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전세계 암살자들을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도 평화를 원하는 존 윅이라는 케릭터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매력을 가졌다. 필요하다면 권총, 산탄총, 저격총, 나이프, 몽둥이, 심지어는 연필로도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이지만 동시에 상대에 대한 예의와 격식을 끝까지 지키는 케릭터이기 때문이다. 서로 아는 킬러를 죽이지 않고 보내준다던가(1편), 격식을 지킨 친구를 마무리 일격을 가하지 않고 놓아준다던가(2편), 예의를 갖춰서 싸워준 상대를 죽이지 않는 등(3편) 걸어다니는 살인 기계에 인간미를 가미한 것이 존 윅이란 케릭터다. 그렇기에 존 윅은 "거칠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신사답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라는 필립 말로의 경구가 들어맞는 인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존 윅은 엄청난 고난을 경험한다. 많은 사람들은 존 윅 시리즈를 "택티컬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모든 것들을 갖다 붙인 영화" 또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는 영화"로 본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3편을 본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 윅은 "적들보다 존 윅이 더 처맞는 영화"다. 그리고 이것이 존 윅이라는 영화 시리즈의 정체성이자 존 윅이라는 인물의 정체성 그 자체다:자신의 사적인 삶들(아내와의 추억, 개, 친구 등등)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온갖 고통과 역경을 겪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뚜기처럼 일어나 예의와 격식을 갖춰가며 상대를 쓰러뜨리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고전적인 헐리웃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공감할 수 있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존 윅은 개 한마리와 자동차 한대로부터 시작된 영화였지만, 이제는 전세계를 적으로 돌려버린 한 남자에 대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관객에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면 모든 사람에게는 말도 안되는 사소한 것이지만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려도 상관 없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존 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잘 건드리고, 액션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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