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 매체를 공급하는 플랫폼 업체다. 그러나 만약 '넷플릭스의 플랫폼의 실체가 무엇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도처에 존재한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 패드, PC, 콘솔, TV에 내장된 물건에 심지어 위유도 아니고 위에서 서비스하기 위한 디스크 버전도 존재했다. 넷플릭스의 실체가 무엇인가? 무엇이 넷플릭스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가장 근접한 대답은 '어디에도 존재하는 공기와도 같은 플랫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넷플릭스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영화든, 게임이든, 드라마든, 문화 콘텐츠 산업 성공의 핵심은 콘텐츠의 내용과 완성도, 대중의 호응도다. 넷플릭스는 오랫동안 이슈가 되는 드라마나 영화들을 독점 형태로 공급하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옥자, 로마, 기묘한 이야기, 킹덤 등등은 이러한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넷플릭스가 '오로지 독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플랫폼은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들, 유명한 것에서부터 딱봐도 싸구려처럼 보이는 것까지 많은 영화/드라마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전시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넷플릭스가 독점 콘텐츠를 포함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대중에게 노출하는 '방식'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공포', '드라마', 'SF' 등등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 구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콘텐츠의 속성을 세밀하게 쪼겐 뒤, 고객이 감상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하는 큐레이팅(박물관 전시품을 전시하는 것처럼)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는 자신이 보는 것을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소셜 미디어 기업들의 '개인화된 콘텐츠 서비스 제공'과 일맥 상통한다. 감상자가 본 콘텐츠는 영화에 붙어있는 속성 별로 쪼게지고 분석되어서, 그 영화나 그 영화 장르, 혹은 특정한 서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재추천되게 된다. 즉, 넷플릭스는 구독자 수가 늘고, 구독자가 오랫동안 플랫폼에 붙어있을수록 콘텐츠 제작이나 서비스가 강해지는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많은 고객들의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독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이외에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유달리 힘을 못쓰는 것처럼 보인다. 옥자나 로마의 성공은 분명 진취적이긴 하지만, 그외의 넷플릭스 전용 영화는 그렇게까지 재미를 못보는 부분이 있다. 물론, 전통적인 영화 산업이 넷플릭스와 같은 신흥 강자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아 직간접적으로 보이콧하는 이슈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소위 '대박을 치는' 영화를 못만드는 것은 넷플릭스 특유의 플랫폼 정책이 가장 큰 문제다.
 
넷플릭스는 모든 플랫폼에 있을 것을 전제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나 대형 TV에서 스크린 프로젝터까지. 영상을 재생하는 모든 플랫폼에 존재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대명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불가능하다:영화는 스크린의 크기와 음향 장비의 영향에 따라서 관객이 체험하는 것이 달라지는 매체다. 영화 머드에서 다룬 광활한 아칸소의 늪지대가 과연 스마트폰에서도 똑같은 감수성을 재현할 수 있을까. 고지라나 퍼시픽림과 같은 거대 괴수가 내지르는 괴성을 테블릿 피씨의 스피커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영화관이 비디오 렌탈 시장에 의해서 사라질 것이라 한 90년대 말 예측이 완전히 틀린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영화관에서만 재현할 수 있는 독점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와 같이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다.
 
그에 비해서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는 여타 플랫폼에 비해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가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영화와 다른 문법을 지니고, 콘텐츠 소비도 다른 양태를 따른다. 드라마를 예를 들어보자:드라마가 영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시간' 그 자체다. 영화보다도 더 오랜 시간 상영되고, 흥행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덧붙이고 분량이 늘어나기도 한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더 짧게 라면 더 짧은 형태의 시트콤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고, 더 길게라면 몇백시간에 가까운 시간의 드라마도 만들 수 있다. 영상매체라는 점에서만 동일할 뿐, 드라마는 완벽하게 다른 형태로 서사와 구조를 이해해야한다.
 
영화와 차별화된 드라마의 서사와 구조의 핵심에는 '인물'과 '이슈 메이킹'이 있다. 영화에 비해서 드라마에서 인물이 갖는 중요성은 막대하다:긴 러닝 타임에 대비하여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추상적인 서사가 아닌 배우이자 배우의 페르소나인 극 중 인물이다. 막장 드라마의 예를 들어보자:주변에서 부모님 나이대의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입을 하는 것은 극 중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모든 막장 드라마들은 서사가 '인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서사 자체의 당위나 개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막장 드라마는 끊임없이 굴러간다. 이걸 보는 사람들이 작품에 원하는 것은 개연성이 아니라, 분노를 풀 수 있고 혹은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막장 드라마를 넘어서 모든 드라마에도 해당된다. 드라마의 러닝타임은 극단적이라서 영화보다 아득히 늘어나거나, 서사를 완벽하게 처리못할 정도로 짧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드라마 작품들은 공감할 수 있거나 관객이 보면서 이입하는 동시에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입체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드라마의 또다른 핵심은 이슈메이킹이다:만약 드라마가 밋밋하게 쭉 흘러가기만 한다면 관객을 오랫동안 붙잡는 것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영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막장과 같은 서사 진행을 보여준다: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서 A사건이 벌어지면서 극중 긴장감을 올려놓고는,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A사건은 사실 별거 아니었고 B사건이 터지면서 인간들의 관계가 꼬이게 만든다. 떡밥과 낚시 드라마의 대명사였던 JJ 에이브럼스가 앨리아스라는 미드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개연성이나 당위성 등은 제쳐두고 '끝나기 전에 어떤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이 바로 그 다음화에 이어져서 마무리되는' 형식은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드라마의 기본이 되었다.
 
드라마 장르의 두 요소는 상대적으로 영화보다 드라마가 플랫폼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였다.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상대적으로 영화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콘텐츠들은 사전에 제작하는 형태를 띄기 때문에 기존 드라마들보다 상대적으로 서사의 짜임세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가서 이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슈퍼내추럴이나, 여주인공이 임신을 했는데 드라마 찍겠다고 무리수를 부려서 임산부 여주인공을 내보낸 앨리어스 등과 같이 '흥행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없다. 모든 시즌들은 '이어져도 그만, 안 이어져도 그만'의 독립적인 서사 완성도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그만큼의 독점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게임 시장에서의 구독형 수익 모델은 어떨까. 이미 포트나이트나 도타와 같은 구독형 배틀패스의 기믹은 오래전부터 시장에 안착한 상태였다. 심지어 최근 논해지고 있는 구독형 수익모델은 이미 PSN+에서 일부 구현되기도(가입하면 월마다 무료게임 전달) 하였다. 그러나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보여주는 엑스박스 패스나 엑스클라우드 등이 최종적으로 넷플릭스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더 나아가서 구글과 아마존이 클라우드 게임 시장에 뛰어들면서 게임을 '구독형으로 서비스'한다는 것이 정해지면서 게임의 구독형 서비스 모델은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넷플릭스의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기믹이 전통적인 트리플 A 게임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대척된다는 것이다:게임은 점점 거대한 스크린과 다양한 버튼 조작을 요구하는데, 스마트폰이나 테블릿 같은 크기의 디스플레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는 클라우드 게이밍 및 구독형 수익 모델에 있어서 큰 문제점이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드라마라는 장르와 자사 플랫폼의 특장점을 서로 융합해 상부상조를 했었다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구독형 서비스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나 연구도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현재 엑스박스 패스가 파격적일 정도로 구독 게임의 수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본다면 엑스박스 진영이 구독형 게임 서비스라는 포문을 먼저 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나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구독형 게임 서비스가 무언가(큐레이션, 혹은 다양한 게임들을 클리어했을 때의 특전, 또는 게임 외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플랫폼 등)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구독형 게임 서비스는 그저 허울만 좋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