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격투 게임은 한 때 오락실을 지배하였던 장르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에 비해서는 많이 쇠락한 장르다. 오락실 및 아케이드 문화의 몰락, 콘솔 시대의 도래, 승패가 극단적인 장르 특성, 모르면 당할 수 밖에 없는 고유한 문법 등등 격투 게임 장르는 게임 문화의 대중화와 동떨어진 장르였기에 자연스럽게 쇠락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서 격투 게임들은 과거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슬금슬금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물론 모던 워페어 신드롬처럼 신흥 프랜차이즈가 등장하여 장르 전체가 시장을 지배하는 이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프랜차이즈들이 재발견되고 재해석되면서 신작들도 꾸준하게 나왔다. 과거의 영광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만큼 격투 게임에 입문하기 좋은 시기도 없을 것이다.

 

물론 격투 게임 장르의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고 제작사들이 많은 노력을 들인 것도 사실이다. 대전 이외에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던가(예시:모탈컴뱃 X의 일일 타워 콘텐츠 및 Test Your Luck, 팩션 워 같은), 기존의 전통을 재해석해서 단순화 시키는 등(예시: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강제연결이 쉬워진 부분이나 최근 아크 시스템 워크 게임에서 나오는 스마트 콤보 같은) 장르 문법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격투 게임 장르의 중흥을 설명하기는 힘들긴 하다. 분명 격투 게임은 장르 문법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 변화가 일어났는지 대중이 어떻게 인지한단 말인가? 장르를 즐기는 내부의 커뮤니티에서는 분명히 인지할 수 있어도, 장르를 입문하는 유저들에게는 허들이 내려간 부분이 크게 와닿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격투 게임 장르의 입문 허들이 내려갔기 때문에 격투 게임 장르가 중흥을 맞이했다"로 접근하기 보다는 "격투 게임 장르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입문을 유도하고 있다"로 접근해야지만 설명을 할 수 있다. 아케이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격투 게임은 보는 맛이 있는 장르였다:콤보로 화려하게 상대를 농락하며 상대의 심리를 파악해서 불리한 게임을 뒤집어 엎는 등 난이도와 별개로 짧은 시간 동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게임 장르가 격투 게임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드라마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과 커뮤니티"가 존재했었다. 옛날에는 오락실마다 전설같이 내려오는 고수들이 꼭 존재했었고, 잘하는 사람들의 대전은 오락실에 놀러온 사람들이 잠시 게임을 멈추고 지켜보게 만드는 감탄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또한 오락실이라는 물리적 공간 내에서 플레이어들은 서로 정보와 공략을 공유하고, 신규 유저를 끌어들이고 육성하였다. 요즘 같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튜토리얼도 존재하지 않고, 혼자 연습할만한 공간이나 기회도 존재하지 않는 오락실 시대에 격투 게임이 흥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과 커뮤니티가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서 수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락실 문화의 쇠퇴와 콘솔 시대로의 이행은 필연적으로 격투 게임 장르의 쇠퇴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오락실이란 지역적, 물리적인 환경이 사라지면서 신규 유저 유입이 자연스럽게 끊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자서 배우기에는 게임은 어렵고 사람을 초대해서 TV 앞에서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으며, 자신이 잘하는걸 자랑하기에는 더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격투 게임 장르 특유의 드라마틱함은 묻히게 되고, 장르 특유의 단점이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보급되면서 격투 게임은 다시 각광받게 된다. 요컨데 오락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제공하던 사람을 만나는 기회와 커뮤니티의 제공이 인터넷이라는 환경으로 넘어가면서 잘하는 사람의 대전 영상을 찾아보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 또한 E스포츠 라는 개념, 특히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은 스타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을 양산하기 시작하였다:소닉 폭스나 MK레오, 제로, 우메하라 다이고 같은 인물들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것도 환경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렸다. 이들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했었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으로 이들의 플레이는 사람들이 격투게임에 빠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격투 게임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대세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다. 제작사들이 과거 작품들의 성공을 재해석해서 시스템들을 재정비하고 있기도 하고,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플랫폼에서 입문자들을 위해서 충분한 설명과 이벤트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격투 게임 장르의 중흥은 게임 문화가 게임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중요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