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이 리뷰는 다크소울 2 리뷰(http://leviathan.tistory.com/1856)에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개인적인 평가이지만, 현재의 게임업계의 큰 그림은 3개의 게임 프랜차이즈가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첫번째는 마인크래프트, 두번째는 콜 오브 듀티, 마지막 세번째는 소울 시리즈(다크소울, 데몬즈 소울, 그리고 블러드본)다. 특히 다크소울은 게임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화두를 게임 업계 전반에 제시한 케이스다. 과연 어려운 게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도전적인 게임이란 무엇인가, 소울 시리즈는 그것을 오래된 옛날에서 찾았다. 소울 시리즈는 불친절하고, 게임속에서 적들은 플레이어를 진짜로 죽일듯이 덤비며, 플레이어를 비웃는 듯한 수많은 함정들과 레벨구조, 게임 시스템까지 요즘 게이머들에게 '적대적'으로 비칠 수 있는 요소들을 잔뜩 탑재한 게임이다. 하지만 소울 시리즈는 어렵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만큼 게이머에게 성취감을 심어주었기에 유명하였다. 어려운 도전과제일수록 달성할 때의 쾌감이 증대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소울 시리즈는 증명하였다. 특히 요즘 같이 게이머에게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게 쉽게 해결하기를 추구하는(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거스르는 것만으로도 소울 시리즈는 큰 가치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울 시리즈의 문제는 게임 자체가 섬세한 레벨 디자인에 근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게임은 시스템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매우 적기 때문에 시리즈가 지속될수록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 힘들어지며, 다크소울 2는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본다면 소울 시리즈의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알맞게 딱 맞춰졌기 때문에(벨런스가 맞는가, 안 맞는가의 문제가 아닌 전체 시스템 간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그 어느 무엇이라도 섣불리 건드렸다간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무너질수도 있기에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소울 시리즈에 있어서 블러드본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각별하다: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에 기반하고 있지만 전혀 소울 시리즈 답지 않은 무언가이다. 재밌는 점은 이미 이전에 소울 시리즈를 경험한 사람들은 블러드본이 소울 시리즈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낼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게이머에게 어떻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렇기에 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가 단순히 하나의 테마에 갇혀서 자기 재생산적인 뒷방 늙은이가 아닌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프랜차이즈라는 것을 증명한 타이틀이기도 하다.


블러드본을 리뷰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블러드본의 게임 플레이는 회피 중심, 아니 회피 의존적이라 할 수 있다. 블러드본의 경우 소울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회피 중심의 게임 플레이로 극단적인 가지치기를 하였다. 소울 시리즈가 초보라도 대방패와 창 등의 무기를 이용하는 일명 가드 콕콕이 전술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적들과 보스와 싸워나갈 수 있었으며, 이외에도 주술, 암술, 마법, 기적 등의 다양한 마법과 이도류, 양손 무기 등의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의 게임 플레이를 회피만 살려놓은체 나머지를 모조리 다 제거해버린다.(심지어 방어구 마저도 블러드본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블러드본의 핵심 방어 기제, 아니 유일한 방어 기제는 '회피'다) 블러드본에서 게이머는 적을 락온을 걸어놓으면 빠른 스텝으로 회피를 하며, 락온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는 스텝보단 느리지만 좀 더 멀리 회피할 수 있는 구르기를 하게 된다. 대신 소울 시리즈의 구르기와 다르게, 블러드본의 회피는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회피의 무적시간은 더욱 길며 회피 속도나 스테미너 회복 속도도 더 빠르다. 소울 시리즈와 다르게, 블러드본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업템포'라고 할 수 있다. 대신 게임 내에서 적들의 공격은 더욱 빠르고 위력적이며, 이에 상응하듯 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와 비교하여 엄청나게 많은 회복 아이템을 게이머가 들고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며 적들이 지속적으로 회복 아이템을 드랍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내에서 회복 아이템은 없어서 부족할 정도이며, 게임 내내 게이머는 엄청난 양의 회복 아이템을 사용한다.


하지만 블러드본의 빠른 템포와 방어가 없는 게임 플레이 시스템은 오히려 게이머를 수동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방어 수단은 회피밖에 없는데 적들은 매섭게 공격해오고, 회복 아이템은 눈깜짝할 새에 모두 사라지는데 그렇다면 게이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안그래도 최근 게이머에게 가혹하다 평가받는 소울 시리즈에 기반하고 있는 블러드본인데, 자칫 잘못했다면 게임은 게이머에게 좌절감을 심어주기 딱 좋았다. 하지만, 게임은 리게인 시스템과 총 패링을 통한 소위 앞잡기(소울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배후공격 또는 패링을 통한 자세 무너뜨리고 큰 한방을 집어넣는 시스템)로 불리는 내장공격을 통해서 게임을 '빼앗던가, 아니면 모든 것을 뺏기던가' 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구축한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공격을 받은 뒤, 잃어버린 체력을 상대방을 공격해서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즉, 블러드본에서 적에게 맞는 것은 공격을 통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용인될 수 있는' 선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게임은 완전히 달라진다:적이 약한 공격을 한다면 나는 강공격을 통해서 적에게 더 큰 데미지를 주고 잃어버린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총 패링을 통해서 적의 큰 공격을 맞아주되 적의 자세를 무너뜨려 내장 공격으로 잃어버린 체력을 한번에 회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의해야할 점은 리게인의 핵심이 체력을 '회복'하는 수단이 아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시간이 지나면 리게인으로 회복할 수 있는 잃어버린 체력은 모두 그대로 사라지게 된다):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서 점점 더 필사적으로 변하게 된다. 적에게서 빼앗느냐, 아니면 그대로 뺏기느냐, 블러드본은 리게인 시스템을 통해서 게임을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공격 중심으로 재편한다.


그리고 또 눈여겨 봐야할 점은 게임의 플레이 스타일이 무기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소울 시리즈의 경우 무기 개별의 특성보다는 무기군의 특성이 더 확실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블러드본의 경우, DLC까지 포함하여 총 26종의 주 무기, 16종의 보조 무기, 그외 사냥용 보조 도구 12개 등이 있으며 이들 각각의 개성이 대단히 뚜렷하며, 특히 주무기의 경우 무기 변형을 통해 각기 다른 두가지 플레이 스타일로 구분되기까지 한다. 블러드본은 무기 변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며, 한가지 스타일로만 풀어나갈 수 없는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자 변수이다. 게임은 공격 중에 부드럽게 변형공격을 통해서 다른 스타일로 이행한다. 예를 들어서 DLC 추가 무기인 무한궤도 톱의 경우, 공격속도가 빠르고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으며 총기를 쓸 수 있는 한손 메이스 형태와 적에게 큰 경직을 주고 특수공격과 강공격을 통해 문자 의미 그대로 상대를 갈아버리는 양손 전기톱 형태로 나뉘어진다. 게이머는 스텝 중이나 공격 중에 변형 버튼을 눌러서 공격을 가하면서 무기를 변형할 수 있는데, 한손 메이스에서 양손 전기톱으로 이행하는 경우에 넓은 범위를 긁어 올리면서 적을 견제할 수 있으며 양손 전기톱에서 한손 메이스로 이행할 때는 좁은 범위에 강력한 전기톱 공격을 가하면서 상대에게 안전하게 경직을 입히며 변형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블러드본의 무기 시스템은 분절적인 두 무기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 아닌, 각기 맡은 역활과 개성이 뚜렷한 두 가지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하나의 무기 안에 통합되어 있고 변형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풀어나가는데 초점을 맞춘다.


요약하자면 블러드본은 다크소울 시리즈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독특한 코옵/경쟁 매칭, 죽음을 통한 학습, 스테미너 기반의 게임 플레이, 스테미너의 소모 및 제한된 회복 자원으로 인해 매번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단 점 등) 몇몇 요소들을 뒤튼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게임을 만들었다. 블러드본은 잔혹하고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전투의 매순간 순간마다 게이머가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질만한 부분들이 있다. 거대한 보스가 플레이어를 죽이려고 덤벼들 때, 계속 스텝으로 뒤로 피하면서 어찌할줄 모르다가 스텝으로 뒤로 피하는 것이 답이 아닌 적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았을 때, 바로 그 순간 블러드본은 게이머의 머릿속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를 통해 블러드본은 바로 적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는 것의 쾌감, 적의 피를 뒤집어쓰고 내가 잃어버린 체력과 모든 것을 되찾았을 때, 그야말로 피에 취한다는 감각을 재현한다. 다크소울 시리즈가 오래된 전통, 왕도 판타지 같이 전설을 하나 하나 정복한다는 감정을 플레이어에게 불러일으킨다면, 블러드본은 이것을 뒤틀어서 그야말로 플레이어가 모든 것을 빼앗는 찬탈자의 기분, 목숨을 건 사냥을 하는 야수의 긴장감과 쾌감을 만들어낸다. 같은 게임 베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소울 시리즈와 블러드본은 정말로 다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블러드본은 빅토리아 고딕의 분위기와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코스믹 호러를 잘 섞었다는 분위기다. 게임 발매 초창기에는 이 둘의 결합이 대단히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빅토리아 시대가 갖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이성, 계몽, 상위의 세계, 그리고 광기라는 측면이 서로 잘 섞여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둘의 결합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고 글쓴이는 평가한다. 프롬 소프트 특유의 이야기하지 않는 스토리 텔링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빈 연결고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 베이스의 게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비틀어내었다는 점에서 프롬 소프트가 갖고 있는 개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중요한 것은 블러드본의 변화가 다크소울 3에도 영향을 끼쳐, 무기마다 무기 고유의 움직임을 추가한다던가 마케팅적인 부분에서 단순히 죽음을 넘어서라라는 죽음에 대한 마케팅이 아닌 '내면의 어둠을 받아들여라'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였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즉, 블러드본은 소울 시리즈가 변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앞으로도 이 시리즈가 새로운 변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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