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사회가 무너질 때, 우리가 일어선다. When Society Falls, We Rise."



데스티니의 성공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게이머들과 게임 시장, 게임 산업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서비스로서의 게임인 MMORPG와 상품으로서의 게임인 콘솔 패키지 게임의 융합이었다. 전통적인 매치 기반의 멀티플레이가 아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게임에 접속해서 상호작용하고 함께 목적을 향해 나아가거나 서로 반목하는 등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한다. 컨셉 자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였지만, 정작 데스티니의 현실은 그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로비에 접속해있고, 필드 위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전형적인 MMOFPS였다. 이러한 데스티니의 결과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데스티니에 대해서 실망감을 느끼거나 혹은 게임 그 자체에 대해서 매료되기도 하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데스티니의 등장으로 게임은 이제 더이상 이전같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데스티니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항시 서버에 접속되어 있는 게임,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는 게임,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의 도래를 말이다.


톰 클랜시의 디비전은, 발매과정과 게임의 마케팅 과정에 다소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스티니와 유사한 MMOTPS 게임이다. 처음 3년전에 공개되었을 때 게임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과 오픈 베타 등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공개된 실 게임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디비전이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UBI 소프트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이 게임에 대해 게이머들이 걸었던 기대와 관심은 매우 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결론을 내리자면, 디비전은 데스티니가 만들었던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MMO 콘솔 게임의 완성형이라 칭할 수 있다. 데스티니가 발매 초기에 저질렀던 실수, 테이큰 킹을 통해서 만회했던 실수를 디비전은 1년간의 DLC 및 업데이트 로드맵을 통해서 커버하고 있으며, 더이상 '콘솔' 게임의 특성보다는 'MMO'의 특성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톰 클랜시의 디비전은 정진정명 RPG를 기반으로 엄폐형 TPS를 섞어둔 게임이다. 그렇기에 보통 밀리터리 슈터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헐렁한 후드티를 뒤집어쓴 동네 깡패가 수십발의 탄환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어기적 어기적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 밖에 없다. 혹자는 이러한 TPS에 RPG를 섞어둔 것이 슈터류 장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이런 평가에는 간과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이미 이전에 TPS와 슈터류가 결합하여서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멀티플레이 코옵의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기까지 한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매스 이펙트 시리즈는 엄폐형 TPS에 RPG를 섞은 게임으로 2편의 시점에서 게임의 메카니즘 자체가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에 비견될 정도로 완성형이었다. 매스 이펙트 2와 디비전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을 띄는데, 엄폐형 TPS에 RPG를 섞은 것 이외에도 두 개의 스킬셋을 들고 실제 전투에 참여하는 것, 적들의 체력이 높기에 여러가지 스킬들을 통해서 적들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등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을 공유한다 할 수 있다. 실제 두 게임의 코옵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적들의 체력은 무지막지하게 높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1점사를 통해서 위협적인 적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나가야 하며, 동료들이 가진 스킬셋에 자신의 스킬셋을 합쳐서 적들을 묶어 두거나, 종종 엎어져서 기어다니는 동료들을 살라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그렇다고 톰 클랜시의 디비전은 과거의 선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게임은 아니다. 디비전은 매스 이펙트의 전투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그 위에 디아블로 스타일의 파밍을 곁들인다:게이머는 보호장구 6개, 주 무기 2개(4개의 총기 악세사리), 보조무기 1개를 장비할 수 있으며, 아이템들은 4가지 등급으로 나뉘진다. 게이머들은 더 좋은 아이템을 구비하여서 더 높은 체력/화력/스킬 파워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코옵 미션들과 다크존 등의 게임 컨텐츠에 도전하게 되고, 이 과정 중에 좋은 아이템을 얻지 못하더라도 피닉스 포인트 또는 다크존 화폐 등을 통해서 2차적으로 좋은 아이템을 구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와우나 여타 MMORPG에서 찾아볼 수 있는 컨텐츠의 소진 과정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메인으로 도전하는 컨텐츠 이외에도 부수적으로 모이는 자원을 통해서 더 좋은 장비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MMORPG의 콘텐츠 소비 구조는 게임을 장기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하면서도, 긴 텀을 두고 보았을 때 모든 게이머게 결국은 엔드 컨텐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을 확보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디비전이 여타 다른 게임들과 비교되며 동시에 차별화되는 부분은 디비전이라는 게임의 시스템이나 컨텐츠 소비 과정보다도 오히려 좀 더 부차적인 부분에 있다:디비전은 실제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뉴욕을 거의 1:1 축적으로 게임 내에 옮겨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디비전은 게임 내의 수많은 미션과 장소들을 뉴욕의 명소를 그대로 옮겨놓았으며, 1:1 축적으로 옮겨놓은 것도 모자라서 바이러스 사태로 엉망이 된 부분을 세밀한 디테일까지 잡아서 모든 스테이지에 우겨넣기까지 하였다. 초반부 미션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나 링컨 터널의 경우, 처음 들어갈 시에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세밀하며 압도적인 스케일로 구성되어 있다. 디비전의 대부분의 스테이지들은 거대한 공간을 두고 다양한 엄폐물을 여기저기 배치해두는 전형적인 아레나 스타일의 교과서적인 스테이지 구성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처음 게임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는 것은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디테일과 현실 축적에 대응하는 스테이지의 크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스테이지 구성들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역으로 '게임'으로써는 다소 묵과하기 힘든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몇몇 스테이지들은 종종 직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으며, 혼돈 그 자체를 옮겨놓기 위해서 배치해놓은 엄폐물들은 역으로 부조리한 상황을 종종 일으키기도 한다(살짝 삐져나온 손에 대고 총질을 해서 다운된다던가...이런 경우는 매우 어려움 난이도에서 비일비재하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어째서 이러한 스테이지를 디비전은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가이다. 디비전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는 정확하게 현실의 미니어처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게임들이 현실의 특정 장소를 모티브로하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게임적인 재미나 플레이를 위해서 인위적인 가공을 하였다면, 디비전은 처음부터 이러한 것들을 2순위에 두고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하면 좀 더 게임 내에 디테일하게 녹여낼 수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에 게임은 오픈월드의 면적인 공간이 아닌 대로와 대로가 만나는 선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게임적인 공간이라기 보다는 현실의 뉴욕이란 공간을 옮겨두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게임의 배경 시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게임은 대재앙이 몰아치고 난 뒤, 세계가 멸망하고 난 뒤 새롭게 시작한 세상을 다루고 있지 않다. 디비전의 세계는 멸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이며, 그렇기에 디비전의 세계는 플레이어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지근 거리의 세계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두고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며, 게임은 이를 어떠한 과장없이 현실적으로 묘사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게임은 멸망하는 사회 속에서 이 세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다양한 세력들(라이커, 라이어터, LMB, 클리너)이 혼돈의 뉴욕 위에 군림하며, 그 와중에 법과 질서를 다시 세상에 세우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디비전의 요원들이 이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디비전은 디테일한 스테이지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이럴 수 있다 라는 적들의 설정, 그리고 수많은 배경 이야기들과 사이드 스토리, 이야깃거리들의 존재를 통해 게이머가 단순히 폴리곤이나 픽셀 덩어리와 싸우는 것이 아닌, 대재앙이 일어난다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암울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디비전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하는 부분은 바로 게임 서사적인 부분이다:게임은 실제 일어날 수도 있는 세계를 플레이어들에게 납득시키고 있으며, 미국만의 도시가 아닌 전 세계의 도시라 할 수 있는 뉴욕이 바이러스에 의해서 무너지고 사람들이 망가지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무너지는 세계의 끝자락이라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요원들과 함께 협력하여 뉴욕을 되찾는 것, 모든 것을 지킬 수 없다면 남은 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라는 감각을 플레이어들에게 제대로 심어주고 있기에 게임에의 몰입감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처음 미션을 진행하고, 사이드 스토리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서는 이러한 감정이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게임이 본격적인 파밍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 이러한 감정은 많은 부분 사그러 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각을 잘 살리고 있는 공간인 다크존의 존재가 게이머들을 반기게 된다.

 

다크존은 무규칙 PVP 공간이라 할 수 있다:같은 파티원을 제외하면 적과 동료의 구분이 모호하며, 서로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공간이다. 이는 데이Z 같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게임 내 몹보다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어가 더 무서운 공간'이란 컨셉을 트리플 A 급 게임에 적용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다크존에선 같은 레벨 대에선 가장 강력한 등급의 적들만이 나오며, 몹 리젠이 빠르고 강력한 대신에 적을 처치할 시 좋은 아이템과 약간의 피닉스 크레딧을 획득할 수 있다. 또한 같은 팀이 아닌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노리고 급습하는 경우도 있고, 죽을 시에 다크존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경험치 및 다크존 화폐 등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다크존은 항상 긴장감이 도사리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매 후 현재까지 한달 간의 다크존은 컨셉 그대로인 배신이 판을 치는 혼돈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매우 어려움 난이도를 클리어하고 일정 수준 이상 파밍한 게이머들이 다크존 레벨을 높여 더 좋은 장비 도면을 구하기 위해 도는 사냥터의 느낌이 강했으며, PVP를 통해서 얻는 보상이 리스크에 비해서 크지 않기 때문에 PVP 보다는 서로 손을 대지 않는 노터치 공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파밍이 끝난 게이머들이 심심풀이로 PVP를 거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에 고레벨 다크존에서 PVP는 이제 그렇게까지 희귀한 경우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다크존이 약속했던 것에 비해서 심심한 공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크존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할 점은 다크존이라는 스테이지가 보여주는 맵의 복잡성이다:다크존은 공정한 게임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기존의 매치 기반의 게임들이 공정한 플레이를 위해서 대칭되는 구조를 지닌 맵을 보여주었다면, 다크존은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재앙의 혼돈이 햘퀴고 지나간 공간이며 동시에 기습과 급습, 뒤치기 등의 배신에 용이하게 짜여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만약 PVP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동기부여, 도전과제 등의 시스템적인 백업만 잘 갖춰진다면 다크존에서 이루어지는 디비전의 PVP는 여타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양상을 띄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다크존이라는 공간을 활기차게 만들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목할만한 부분은 디비전이 1년여에 걸친 장기간의 업데이트 플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알려진대로 디비전은 뉴욕이라는 공간의 1/3만을 다루고 있으며, 게임 내의 각종 아티클에서 언급만 되고 있는 사상 최악의 다크존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은 게임 내에 등장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습격' 컨텐츠의 경우에는 발매 직후 공개 된 것이 아닌 4월 12일에 업데이트 에정으로 나와 있으며, 메이저하거나 마이너한 업데이트들도 무료 DLC들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디비전은 처음부터 약 1년간의 라이브 업데이트를 통해서 게임 접속자 수를 유지하고, 게임을 '살아있게' 만드는데 주력하는 그야말로 MMO 게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스플래툰이나 자사의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시즈나, 혹은 곧 발매 예정인 배틀본 같은 게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업데이트되고 유지되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이란 속성은 일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으며, 디비전은 업데이트 플랜을 통해서 이를 게이머에게 자세하게 약속하고 있다. 물론,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유지'가 되고 지켜질 것인가, 이다.


결론적으로 톰 클랜시의 디비전은 정말로 새롭거나 게임 역사를 뒤흔들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게임은 아니다. 데스티니와 같이 디비전은 혁신적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게임들의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패키지 게임과 서비스 게임의 운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특히 서버의 불안정성 문제나 불릿킹, 호넷런 같은 버그성 파밍의 문제) 하지만, 디비전은 데스티니가 저질렀던 실수(업데이트 주기가 너무 길었던 문제;서비스로서의 게임을 지향하면서 DLC 발매 주기가 너무 길었다)를 반복하지 않았으며(현재까지는, 말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론이나 다크존 같은 참신한 개념 등을 통해서 뭔가 다른 것을 만들고자 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디비전은 지금으로써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다. 다만 이 게임이 얼마나 더 큰 그림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하나 있다:디비전은 서비스로서의 게임과 상품으로서의 게임 사이의 과도기적인 게임으로써 데스티니와 함께 게임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 할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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