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왜 과거의 게임들은 도트 또는 픽셀 그래픽으로 나왔을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이유는 단순하다:픽셀 기반의 게임들은 그 당시 게임 내의 그래픽 구현이 그것만 가능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 뿐이었다. 그 당시엔 반짝거리는 쉐이더도, 폴리곤도, 물리를 구현할 수 있는 하복 엔진도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근래에 들어서 과거의 픽셀 형태의 그래픽을 재현하고 있는 게임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의 경우, 게임이 고전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비한 분위기의 픽셀 기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용량은 이전의 픽셀 기반의 1~2mb 단위의 패미콤 게임들과 다르게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는 무려 1기가에 육박하는 용량을 자랑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엔터 더 건전 같은 경우도 용량이 1기가에 육박하며, 이스케이피스트 같은 게임도 400~500메가를 자랑한다. 심지어는 요즘 게임치고 용량이 작다고 할 수 있는 크로울 같은 게임도 수십메가 바이트로 과거의 게임들에 비교하면 용량이 수십배 단위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용량의 비약적인 변화는, 분명하게도 과거의 게임과 지금의 게임 사이에 쓰여진 '기술'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젠 과거와 달리 게임 개발에 있어서 도구와 방법론이 정형화 되었으며, 개발에 있어서 이전 게임들이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호사들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의 차이는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는 이 두 게임들의 용량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과거와 현재의 게임들의 용량 차이가 아니라, 어째서 이 둘이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가이다:우리는 과거에 비해서 더욱 발전된 기술과 세련된 표현 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게임들은 다시 과거의 표현 양식을 빌려서 게임을 만드는가?


물론 거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트리플 A급 게임들과 다르게 작은 예산으로 운용되는 인디 게임들로써는 선택지의 폭이 적다는 사안도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픽셀이나 도트 그래픽으로 게임이 나오는 것은 그 부분에 대한 게이머들의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를 보자:게임은 대사도 없으며, 전적으로 도트 그래픽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게임이 만들어내고 있는 분위기는 어딘가 아련하고 추억을 자극하는 색감이나 음악 등의 게임 서사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게임 서사는 멸망한 이후 다시 그 위에 세워진 세상이라는 게임 내의 세계를 신비롭게 풀어나간다. 주목할 점은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의 신비로움은 게임 자체의 신비로운 분위기에도 근거하고 있지만 젤다의 전설 같은 고전 RPG들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픽셀 그래픽틀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옛날 게임들이 갖고 있는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이며,  픽셀 그래픽은 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표현 방법이다. 그렇기에 게이머들은 게임 자체의 신비로움과 함께 이 게임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과 향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픽셀 그래픽에 대해서 우리 같은 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추억하는 지극히 한정된 문화라고 비판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이러한 픽셀 그레픽이 베타적인 문화 향유자들을 위한 흐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의 한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를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픽셀 아트를 전세계 도시 곳곳에 붙이고 돌아다니는 인베이더 아티스트나, 픽셀 그래픽 풍의 설치 미술들, 혹은 그런 것들을 연상케하는 광고나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등 픽셀 그래픽은 분명하게도 자신만의 자리를 자리잡고 있다. 과거 게임이 몇몇 너드와 오타쿠를 위한 배타적인 서브 컬처의 위치를 점했었다면, 이젠 그것이 점점 광범위한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형태의 대중문화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로 돌아와보자:이 게임을 10년, 20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해왔던 사람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라는 게임 자체가 매우 뛰어난 게임 서사를 갖고 있는 게임인 것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픽셀 그래픽이라는 오래된 게임적 전통을 오랫동안 게임을 즐긴 게이머들 뿐만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한 대중들 역시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자리잡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게임은 이전에 비해서 좀 더 대중적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게임이라는 서브컬처가 잃어버리는 것도 생기겠지만, 이로 인해서 게임은 새로운 가능성도 갖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