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현대인들에게는 모두가 공유하는 은밀한 공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가 너무나 연약하고 복잡한 기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 사회가 예기치 못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라는 공포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포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의 삶이 정말로 깨지기 쉬운 인프라 위에 세워졌음을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종말이 거의 도래한 니어 아포칼립스와 종말 이후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에는 섬세하고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세상이 멸망한 이후에도 우리가 믿었던 것이 과연 가치있었던 것들인가(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세상이 끝나가는 그 지평선에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행하고 볼 것인가(니어 아포칼립스)? 톰 클렌시의 디비전은 분명 그런 의미에서 후자를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다:폴아웃 4의 사례는 게임의 설정과 스토리가 게임과 매칭되지 않는다면 어떤 재앙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면, 디비전은 게임의 설정과 세계가 게임과 매칭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디비전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디비전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수많은 게임 중 하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비전의 핵심은 뉴욕이라는 공간을 구현하는 디테일에 있다. 게임의 모든 지형지물들은 현실의 비율과 1:1로 매칭되며, 게임은 거의 4년 이상을 쏟아부은 트리플 A 게임 답게 엄청난 디테일을 보여준다. 또한 게임 속의 세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 특유의 '과장됨'을 억누르려 한다:디비전은 기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들 같이 현실의 지형지물을 모티브로 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닌, 현실 위에 약간의 새로운 터칭을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터칭이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디비전이라는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디비전은 이 바닥의 장르(MMORPG)의 특성을 따르는 쪽 보다는 뉴욕이라는 배경을 살리는데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게임은 현실의 도시처럼 대로와 거리라는 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의 스테이지 구성은 너무 디테일이 넘치는 나머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못할 때가 있다. 가령 초반 터널 미션의 경우, 맵은 쓸데없이 넓은데다가 미션 전체의 구조 역시 성기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하지만 디비전이 게이머에게 제공하려 했었던 것은 게임적으로 완벽한 경험이 아닌 현실 뉴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면이라는 재현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에 처음 게이머가 이 미션을 마주했을 때는 현실과 1대1로 대응하는 이 스케일 덕분에 대단히 인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MMORPG의 특성 및 파밍이 중심이 되는 게임 특성 상 이 감흥은 게임을 반복하면 할수록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디비전의 스토리는 별다른 반전이 있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도 신선하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디비전의 이야기는 게임의 메인 플룻을 따라 이어지는 서사에 있지않고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방계적인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에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섬뜩한 과거의 이야기들과 적들에 대해서 동정심이 느껴지게 만드는 로딩 문구와 2차 자료들은 세계가 점차 망가져가면서 사람들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특성이 1대1로 대응하는 뉴욕이라는 세계와 결합되면서 디비전의 게임 서사는 매우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게임 내의 디비전 요원의 설정이다:게임 내에서 디비전은 설정상 최후의 수단으로 사회에 잠복해 있는 대기요원으로써, 누가 평시에는 디비전 요원인지 알 수 없다는 것과 함께 비상시가 된다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우리의 이웃이,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디비전 요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게이머가 회수하는 1차 투입된 실종 디비전 요원들은 군대 출신 이외에도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며, 이러한 디비전의 설정들은 주인공과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눈높이를 맞춤으로써 게이머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여기서 UBI와 톰 클랜시 게임 프랜차이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서사가 등장한다:위기의 상황에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모든 전권을 위임받은 요원들(주인공)이 세계를 자신의 방법과 믿음대로 재구축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인공의 대척점에는 처음 뉴욕에 투입되었던,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축하려 했었던 메인 악역인 아론 키너가 있다. 게임은 주인공과 아론 키너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지어주지 않기에 폴 로드가 지적했었던 아주 중요한 문제, '선한 의도를 가졌다는 믿음 이외에 대체 디비전 요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약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를 마주하고 있다. 실제 다크존의 게임 플레이 방식이나 앞으로 업데이트 등을 통해서 전개될 이야기들은 이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에 디비전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마주하는 껄끄러움을 스토리 및 게임 시스템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비전은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운 게임이라 할 수 있으며, 현대 대중이 갖고 있는 공포와 함께 대중이 매료되고 몰입할 수 있는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정식 리뷰에서도 다루겠지만 디비전이라는 게임 자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몇몇 부분에서는 분명한 단점을 갖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디비전은 흔한 트리플 A 게임과 다르게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임이며, 게임의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 게임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