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SF 소설가 아서 C 클라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발달된 과학기술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마법과도 같은 신기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이는 비단 카고 컬트(비행기를 숭배하는 오지의 주민들 같은)뿐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과학기술을 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어구의 핵심은 과학과 마법이라는 양극단의 존재, 한쪽은 세계를 이해하는 이성의 영역과 다른 한쪽은 이성적 법칙과 관계가 없는 비이성과 신비의 영역은 한쪽의 극단적이고 정교한 발전을 통해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자면 마법이 충분히 과학적인 설명과 해석이 동반되게 된다면, 과학같은 이성적이고도 정합적인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게임 리뷰 첫머리에 인용한 이유는 이러한 과학-마법의 관계론을 변용하여 보드 게임(테이블탑 같이 오프라인 상에서 주사위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게임)과 컴퓨터 게임(컴퓨터 연산에 기반하여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가 동원되는 게임)의 관계에 대입해 보기 위해서다:보드 게임이 충분히 빠른 정교하고도 복잡한 공식과 함께 반응 속도(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반영되어 결과로 표상되는 과정)가 빨리진다면 보드 게임은 컴퓨터 게임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역도 가능할까? 컴퓨터 게임이 충분히 느려지고 판단 하나 하나가 치명적이 된다면, 보드 게임이 주는 경험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


파이락시스 게임은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봐야할 제작사다:파이락시스의 창업자 시드 마이어가 만들고 파이락시스 게임을 대표하는 문명이란 프렌차이즈 자체도 보드게임 문명의 받아서 탄생하였으며, 게임들의 대부분이 턴 기반의 전략게임이라는 점은 파이락시스 게임이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보드게임을 연상케 만드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엑스컴 2도 전작인 엑스컴:에너미 언노운과 함께 턴전략 게임이며 전작의 시스템을 많은 부분 개수하여 들고 왔었다. 하지만 본인이 전작에 대해서 리뷰해서 평가를 했었던 부분들을 생각해본다면, 엑스컴 2는 마땅히 기대감이 떨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http://leviathan.tistory.com/1661) 전작이 과거 유명했었던 전략 게임 프랜차이즈를 잘 만들어진 체스 퍼즐 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놓고, 다른 턴 기반 전략게임들이 걸어왔던 발전의 역사를 역행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엑스컴 2는 그런 실망감을 안겨준 전작과는 다르다. 엑스컴 2는 훌륭한 턴 전략 게임이며 게임을 끝낸 이후에도 다시 플레이를 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엑스컴 2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에는 엑스컴 1편의 모드인 롱 워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엑스컴 1의 경우 모드를 지원하지 않았지만, 롱 워는 엑스컴 1을 거의 마개조에 가까운 수준으로 뜯어고쳐서 원본의 본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꾸어버렸다. 롱 워는 게임의 전체적인 길이를 길게 늘리고 전략적인 선택지를 보강하며 난이도를 늘림으로써 매번의 선택이 장기적인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만들었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전투가 일종의 퍼즐게임화 되어가는 본작과 다르게 롱 워 모드는 전략적인 선택지를 늘림으로써 게이머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늘렸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게임에서 전략적 선택보다는 정답이 있어 게이머가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 보다는 정답을 향해서 얼마나 깔끔하게 나아가느냐라는 엑스컴 1편의 문제를 롱 워는 근원적으로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롱 워의 파급력은 엄청났으며 이는 엑스컴 2의 전체적인 모습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물론 엑스컴 2가 롱 워 모드처럼 아주 기나긴 시간을 두고 게임을 풀어나가는 형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엑스컴 2는 엑스컴 1편에 비교하면 그 플레이 타임(시작해서 엔딩을 보기까지)이 더 짧다고도 볼 수 있다.(물론 게이머가 실력이 있고 운도 어느정도 뒷받침 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엑스컴 2의 시간은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2편이 전작과 다르게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 순간마다의 선택이 게임의 판도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게이머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편과 다르게 2편에서 엑스컴은 도망자 신세이며, 그야말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 입장이며, 자원과 지원은 빠듯하게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적들은 더욱 강력해져서 제각기 엑스컴 대원들에게 치명적인 특수능력들을 갖고 있으며, 부상 판정이 너그러웠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작에선 스쳐도 부상판정을 받는 등 게임 자체가 더욱 가혹해졌다. 정보라는 획득하기 어려운 재화의 추가로 다른 지역에 접근하거나 다크 이벤트를 확인하는 등의 활동에 제약을 두고,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관리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엑스컴 2에는 제한된 재화로 싸우는 것보다 더 핵심적인 요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게임에는 아바타 프로젝트라는 외계인의 연구 프로젝트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프로젝트는 점차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외계인들의 방해는 누적되어 쌓여간다. 게이머의 목표는 이러한 방해사항을 뚫고 아바타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전에 외계인의 본거지를 쳐서 외계인을 절멸시키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이라는 요소 때문에 엑스컴 2는 매 선택들이 매우 중요해졌다:게이머는 어벤저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위원회에서 주는 임무를 해결하고 외계인의 공격을 방어하며, 아바타 프로젝트를 방해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게이머의 손을 빠져나가는 것들이 결국은 생길 수 밖에 없다:예를 들어서 최우선 임무의 경우, 임무를 각기 대응하는 이벤트가 있지만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임무는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머는 자신이 판단하였을 때 어떤 이벤트가 발생되어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이벤트는 일어나는 것 자체를 꼭 막아야하는지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 내의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예측불가능한 형태로 게이머를 맞이할 때도 있다:엑스컴 2는 전반적인 미션의 흐름 이외에도 월드맵에서 다양한 이벤트들이 발생하고 각기 이벤트들은 시간을 소모함(스캐닝)으로써 이벤트에 해당하는 자원을 습득하거나 유리한 효과를 받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빠듯한 시간이란 요소와 겹치면서, 이런 무작위적인 이벤트들은 때로는 게이머가 역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항상 어떤 판단을 내리고 게임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부분을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게임은 많은 부분 게이머가 느끼기에 느린 페이스로 진행된다.


게임이 전반적으로 자원이나 시간측면에서 빠듯해졌지만, 재밌는 점은 그만큼 게임의 전략적 선택지도 늘려두었다는 것이다:이제 병사들은 진급시 생기는 병과 능력 이외에도 다양한 보조 무장이나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외골격 수트 같은 강력한 장비를 사용할 수도 있다. 장비할 수 있는 수류탄이나 탄환의 폭도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에 게이머의 전략적 선택 폭은 전작에 비해서 많은 부분 증가하였다. 심지어는 시간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에 근접하게 되면 게임이 전작에 비해서 더 쉬워진다는 평가마저도 들을 정도다. 하지만 전략적인 선택이 늘어났다는 점은 게이머에게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본다면 엑스컴 2는 게임의 템포를 전작에 비해서 느리게 만드는데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물론 롱 워와 같이 게임의 길이를 늘리는 동시에 게임의 매순간 순간의 선택에 집중하게 만드는 모습은 아니지만, 매 순간의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예측가능한/불가능한 결과를 맞이하는지를 보고 컨트롤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컴 2는 보드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월드맵의 UI도 그렇지만, 턴 기반의 전략 게임이라는 점, 더 나아가 게임의 템포가 컴퓨터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느리고 긴장감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엑스컴 2는 충분히 게임이 느리고 무거워 진다면 보드게임과 같은 오프라인 게임들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자체에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게임 내의 시스템을 익히는데 있어서 두서가 없다는 점, 튜토리얼을 진행하면 황당하게도 게임이 어려워 진다는 점, 최적화가 정말로 개판이라는 점 등등 게임이 완벽무결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컴 2는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게임이다. 전작이 갖고 있었던 한계들을 훌륭하게 뛰어넘고 더 나아가 클리어 이후에도 계속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엑스컴 2의 매력은 대단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